金炯國
1942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장, 녹색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서양화가 장욱진의 평전을 직접 적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다.
한용진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컬럼비아예술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 뉴욕과 제주도를 오가며 작업 중이다. 그의 작품은 캘리포니아의 레딩(Redding)시청 조각공원, 덴마크의 헤르닝(Herning)미술관, 시카고대학 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영미술관, 보성고등학교,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그리고 김종학 화백 스튜디오의 작은 조각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 “돌은 침묵이다. 아무 말이 없다. 돌은 온갖 시류를 담고 있다. 돌과 함께 유희한다. 잃어버린 자아, 그리고 아직 찾지 못한 자아를 찾아보려고. 나는 돌에서 마음의 평화를 갈구한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한용진 작가.
돌에서 숨소리가 난다. 조각가의 손을 거쳐 간 모든 돌은 저마다 사연이 있어 보인다. 어떤 돌에서는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이 느껴지며, 또 다른 돌에서는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촌의 한 작업장. 재미 조각가 한용진은 혼신을 다해 현무암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부탁으로 조각상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한용진은 자신이 안은 못난 돌들에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백발의 육척장신(六尺長身) 작가는 뭉툭한 손으로 부드럽게 돌을 쓰다듬고, 무언의 눈빛으로 교감했다. 그는 평생 조수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손가락에 감긴 반창고가 사치품 같아 보일 정도로 그의 손은 거칠었다. 단단한 돌을 닮아 가는 그의 손이야말로 그가 한국 현대미술사의 1세대 대표 조각가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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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돌을 다듬어 온 한용진 작가의 손. 그의 손은 톱, 징, 망치이기도 하다. |
그가 처음 조각에 입문한 것은 경기중학교 재학시절이다.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김구(金九) 선생의 동상을 만들기도 했던 민족주의자 박승구(朴勝龜, 1915-1990)가 그의 스승이었다. 대학에서는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金鐘瑛,1915-1982), 서양화가 장욱진(張旭鎭,1917-1990)의 가르침을 통해 더 넓은 예술 세계를 경험한다. 대학 졸업 후 이화여대 교수가 돼 학생을 잠시 가르치다가 1963년 도미, 새로운 배움을 찾아 나섰다. 서양화가 문미애(文美愛, 1937-2004)와 결혼하고 그는 덴마크 중부지방 소도시 헤르닝(Herning)의 한 대학으로 적을 옮겨 청동 제작법을 가르쳤다. 유럽에서의 활동을 접고 귀국할 무렵, 뉴욕에 있던 김창렬(金昌烈, 1929-) 선생의 권고로 새로운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뉴욕에 있던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는 여러 인연으로 같이 의지하며 지냈다. 수화의 무덤에 세운 비석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오랜 외국 생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깝지만, 그의 초자연적인 작품들은 이국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평생을 떠돈 그는 결국 ‘되돌아왔다’. 그것도 현대 조각으로는 참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인 구멍 숭숭 뚫린 제주 돌을 가지고서다. 처음에는 제주 돌로 어떻게 조각표면을 표현할까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듬다 보니 짙은 검은색 바탕은 밤하늘이 되고, 숭숭 난 구멍은 그대로 밤에 빛나는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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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진 작가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제주 서귀포 중문의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한 작가는 작업하다가 막히거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제주의 바닷가를 찾는다. 자연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연 자체가 최고의 조각품이다. |
자연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작품들도 있다. <토산과 섬> 시리즈에는 결코 현무암에서는 표현 불가능할 것 같은 섬세함의 선(線)이 있다. 석양의 아름다움은 붉은색이어서가 아니라 지평선이 있기에 돋보인다는 말처럼 그의 선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느낌이 든다.
그와 오랫동안 교감을 나눠 온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에 대해 “마전작경(磨作鏡), 즉 벽돌을 갈아 기어코 거울을 만드는 선(禪)불교 수행을 닮은 치열한 집념”이라고 표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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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진 작가가 에어해머(air hammer)로 묵묵히 돌을 깎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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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의 이영미술관 앞뜰에 전시된 한용진 작가의 작품. 작품의 소재가 되는 ‘막돌(雜石)’은 흰색과 검은색이 마구 섞여, 흔히 조경공사를 할 때 경사지의 돌쌓기 마감공사에나 쓰이는 돌이다. 막돌은 석질이 다층(多層)구조라 깎는 면에 따라 여러 가지 색과 질감을 나타내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신의 아호를 ‘막돌’이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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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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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진 작가가 제주도에 머물면서 작업하는 공간은 제주 돌하르방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작품활동을 펼치는 돌쟁이, 이창원씨의 작업장이다. 돌을 다듬는 사람은 심성이 곱다고 했던가. 두 돌쟁이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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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작업실 마당에 전시된 한용진 작가의 작품. 그는 작품에 제목을 쉽게 붙이지 않는다. 제목을 알고 나면 작품의 전체가 아닌 한 부분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자체가 살아남아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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