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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끝〉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

아파트를 사랑의 공동체, 협력의 공동체로 만들려면…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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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어원은 ‘어 파트(a part)’.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
⊙ 아파트 문화를, 하우스를 홈으로, 컴파트먼트(compartment)로 만들자
⊙ 누가 어린애를 낳으면 그 집에 깃발을 올려주자. 애국했다는 감사의 표시로…
⊙ 3D프린팅 기술로 초가집의 아름다운 곡선, 능선과 어울리는 집을 지으면 어떨까
⊙ 제조지식이나 설비 없어도 전 국민이 제조업자가 될 수 있는 ‘一人 메이커’ 세상 도래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주거 형태가 아파트다. 이어령 선생은 아파트를 ‘집(하우스)’이 아닌 ‘가정(홈)’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일러스트=조선DB
  ‘[   ]이(가)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   ])’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집이 아닌 게다. 이때 집은 주택(하우스)이 아니라 가정(홈)이다.
 
  그런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혼자니까 대화 없이 지내겠지. 더러는 애완견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겐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위드아웃 도그(house is not a home without dog)’, 개 없으면 집이 아닐 게다. 상상력을 발휘해 개(dog)를 뒤집으면 갓(God)이 된다. 신이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God?) 목사님이나 신부님, 열심인 신자에겐 ‘갓’이 집이고 가정이다.
 
  고약한 상상도 가능하다. 돈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the money?)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   ]에 무엇을 넣든 개인의 자유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넣겠는가?
 
  내가 지금껏 집 짓는 법을 말하고, 미래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여전히 ‘[   ]’가 비어 있다. 여러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한다. 다만,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담긴 생명력, 사랑, 애정을 집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말을 우선하고 싶다.
 
  우리 집에 족집게 과외 선생을 모셔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이라 여기는 집, 아버지가 돈 버는 기계가 된 집, 그런 가정이 되어선 안 된다. 엄마와 누나, 아버지, 형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는 정다운 집이어야 한다. 희랍시대에 소크라테스가 제 자식이 아니라 갑남을녀(甲男乙女) 자식을 가르쳐 폴리스 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오이코스(oikos)로 불린 가사 일로 가정을 지켜낸 어머니 역할이 집이자 홈, 그리고 가정이다. 제주 돌담처럼 뾰족한 돌, 둥근 돌이 합쳐져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집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고 외친다.
 
 
  미래의 집, 사랑과 협력으로 이루는 집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 지어진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이어령 선생은 소통이 단절된 아파트먼트를 서로 협력하는 컴파트먼트로 만들자고 말한다. 사진=조선DB
  많은 사람이 강변에 모여 살 수 없어서 요즘엔 아파트 생활을 한다. 아파트의 어원은 ‘어 파트(a part)’다.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다. 층간소음이라는 게 위층에서 나는 소리 때문일까. ‘머리가 흔들리면 싸움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잠을 자는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나면 몹시 기분이 나쁘다. 옛날 쥐가 많던 시절, 천장에서 난리를 치는 격이다. 그래도 그 시절, 사람들은 잠자코 살았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쥐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현대인의 주거를 대표하는 아파트는 주행을 멈추는 자동차 차고(車庫)처럼 활동이 멈춘 인간을 수납(受納)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외침은 순전히 재미로 하는 이야기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건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파트를 강변으로 옮기거나 강변에 아파트를 짓자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 문화를,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아파트는 일본식 외국어다. 아파트먼트가 바른 표현인데 미국에서나 쓰는 말이고 다른 곳에선 플랫(plat)이라 부른다.
 
  어쨌든 이 아파트먼트에 반대되는 의미가 컴파트, 혹은 컴파트먼트(compartment)다. 기차를 여럿이 타는 것을 컴파트먼트라고 한다. 혼자만의 독식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것을 뜻한다. 요새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근황을 알고, 심지어 대화도 나눈다. 그런데 정작 옆집에 대해선 누군가 홀로 죽어도 알지 못한다. 사체 썩는 끔찍한 냄새를 맡고서야 무관심을 탄식하게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고, 아파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면 기가 막힌 홈, 가정을 꾸밀 수 있다.
 
  지금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은 직업이나 연령이 제각각이다. 공무원도 살고 자영업자도 살고 전문직 일을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파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트라넷(intranet·조직 내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환경)에 주민들을 다 등록하는 게다. 예를 들어 ‘나는 미술 선생이야. 무슨 자동차를 타고 주말마다 산에 올라’ ‘나는 서울시청에 근무하는데 광화문 방향으로 날 태워주면 별풍선 하나를 줄게’ ‘나는 목공사인데 요즘 일거리도 없어서 집에서 논다. 혹시 선반이 부서졌다면 연락을 달라. 금방 고쳐드리겠다’고 글을 올리면, 이걸 인트라넷 시삽(SYSOP·System Operator·시스템 운영자란 뜻)이 서로 공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사람과 카풀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런 방법은 어떤가. ‘나는 영어 선생인데 아이들을 틈날 때 공짜로 가르쳐줄 용의가 있다. 대신 가끔 주말과 휴일에 당신들 놀러갈 때 가끔 묻어가자’고….
 
 
  아파트 1동은 셰익스피어, 2동은 정철, 3동은 이어령…
 
서울 모 아파트의 꽃밭에서 아이들이 뛰돌고 있다. 130여 평 정도 되는 꽃밭으로 사계절 꽃이 가득하다고 한다. 사진=조선DB
  아파트먼트는 분리되어 있지만, 컴파트먼트는 공동체다. 가족처럼 내가 없는 걸 저 사람이 가지고 있고, 내가 지닌 것이 저 사람에게 없을 때 ‘워크셰어링(work-sharing)’이 가능하다. 아파트에 몇백 명씩 살지 않나? 잘만 하면 워크셰어링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우리 아파트를 책 읽는 동네로 만들자. 아파트 이름을 전부 작가 이름으로 짓자”고 하면 어떨까. 투표를 통해 득표 순으로 아파트 1동(棟)은 셰익스피어 동, 2동은 정철 동, 3동은 이어령 동으로…. 어떤가? 뭔가 신선하지 않나?
 
  또 아파트 마당을 관리인에게 맡길 게 아니라 한 평씩 전 주민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원하는 사람은 거기다 꽃도 심고 나무도 심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가가호호(家家戶戶) 꽃씨를 나눠주고 모종삽도 빌려주면 ‘셰익스피어 동’ 주민들은 봉선화를 심고, ‘정철 동’ 사람들은 목련을 심어 그렇게 분양받은 땅에서 꽃과 나무를 심은 뒤 가을이 되면 얼마나 잘 가꾸었나 품평회를 해서 1등상을 주는 게다.
 
  그리고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예컨대 누구 집에서 어린애를 낳으면 그 집에 깃발을 올려주자. 애국했다는 감사의 표시로 말이다. ‘우리 손자가 합격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환갑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의 첫니가 빠졌습니다’ 하고 깃발을 세워주는 게다. 서로 안 친해도 몇 동 사는 사람이 어린애를 낳은 소식을 원치 않아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가 아니라, 서로 헤어진 파트가 아니라, 컴파트먼트가 된다. 하우스가 아니라 홈들이 모여서 타운이 되는, 홈타운이 된다.
 
  그런데 이걸 무슨 통반으로 나눠 주민 대표자가 나서서 강제한다면 지옥이 된다. “셰익스피어 1동 3반 사람들은 어디어디 모여서 무얼 해야 한다”고 숙제를 내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도망칠 게 뻔하다. 자율적인 커뮤니티가 되어야 사회주의 국가가 실패한 공동체 운동을 아파트에서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을 공유하듯 아파트에 살며 기쁨과 슬픔마저 나눌 수 있다. 그런 셰어링(공유)을 큰소리내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 말고, 작은 아파트 한 동, 한 층에서라도 시작한다면 세상이 바뀌는 게지. 큰돈 들인 무슨 국가기념일을 만들어봐야 안 먹힌다.
 
 
  3D프린터로 하는 건축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아시아나 C.C. 클럽하우스 전경이다. 초가집의 부드러운 곡선을 살려 디자인했다. 미국 골프 플랜사(社)의 로날드 프레임(Ronald W.F.ream)이 설계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만의 건축이 있고 건축 양식이 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건축물, 인도네시아 하면 떠오르는 수상가옥,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하면 떠오르는 땅밑 암굴 교회….
 
  여러분은 한국 하면 어떤 집이 생각나는가? 한국적인 집이란 게 있을까? 초가집? 기와집? 이제는 시골에 가도 초가집을 볼 수 없다.
 
  초가지붕을 허물고 슬레이트를 얹었기에 슬레이트집이라 해야 할까? 그렇지만 슬레이트집은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무국적 집 같다.
 
  지금은 3D프린터 시대다. 3D프린팅으로 초가집을 얼마든지 스캔할 수 있는 세상이다. 비도 안 새고 썩지도 않는 집…. 3D프린터로 찍으면 초가집하고 똑같이 만들 수 있다. 벌써 중국에서는 3D프린터로 집을 짓고 있다고 한다.
 
  지금 수십 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층 빌딩이 세워지는 판에 초가집을 짓는다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어느 유명 외국인 건축가의 경우, 한국의 초가집이 너무 아름답다며 유명 골프장 클럽하우스에다 초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이렇듯 3D프린팅 기술로 초가집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 능선과 어울리는 집을 지으면 어떨까. 한 마을을 그렇게 만들면 잃어버린 옛 마을의 풍경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달나라에 집을 짓겠다고 우주선에다 시멘트나 벽돌을 실어서 로켓을 쏠 필요가 없다. 로봇과 3D프린터를 실은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면 된다. 그럼 로봇이 알아서 프로그램에 따라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달에 우주비행사가 살 기지, 착륙시설을 만들 것이다. 사진은 미국 NASA가 만든 달 착륙기지의 상상도다.
  달나라에 집을 짓겠다고 우주선에다 시멘트나 벽돌을 실어서 로켓을 쏠 필요가 없다. 로봇과 3D프린터를 실은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면 된다. 그럼 로봇이 프로그램에 따라 알아서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달에 우주비행사가 살 기지, 착륙시설을 만들 것이다. 어떻게? 로봇이 달의 토양과 암석 등을 채취한 뒤 3D프린터에 집어넣고. 3D프린터는 평면으로 된 문자나 그림이 아닌 디지털 정보로 물체를 인쇄한다. 물체를 제작하는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다. 2024년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미국 나사(NASA)는 달의 토양을 기반으로 다양한 3D프린팅 건축 기술을 시험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약 현실화되면 달에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세운 우주 착륙기지가 들어설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놀랍다. 이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한국의 풍경이 달라지고 농촌이 달라지지 않을까? 비록 초가집이지만 안에는 최첨단 기기가 꽉 들어찬 초가집….
 
  3D프린터를 모든 학교에 나눠줘서 학생들이 저마다의 공장장, 회사 사장이 되면 어떨까. 모두가 홈페이지를 하나씩 만들어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물건을 파는 게다.
 
  5000만 명의 한국인이 ‘메이커스(Makers: The New Industrial Revolution)’가 되는 것이다. ‘메이커스’라는 말을 처음 만든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의 생각처럼 누구나 집에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개인 제작(personal fabrication)’ 환경….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조지식이나 설비가 없어도 누구나 ‘일인(一人) 메이커’, 전 국민이 제조업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 메이커스가 국력의 바탕이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생활을 인정이 넘치는 집단으로
 
  내가 이야기하는 ‘[   ]이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   ])’는,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양쪽(both, and)을 다 갖는 시대를 여러분이 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렇게 됐을 때 여러분은 한국에 태어난 것이 가난의 전통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가장 풍요한 문화자본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한,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고 아파트먼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면 가능하다.
 

  이미 만들어진 아파트 생활에다 세계 어느 나라도 못 하는 사랑의 공동체, 협력의 공동체를 더하면 되는 게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가난하면서도 사람답게 살아왔던 인정(人情)이 있는 집단을, 이익의 집단이 아니라 정(情)의 집단을 만들었을 때,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고아도 독거노인도 모두 외롭지 않을 게다.
 
  이렇게 되면 동화작가 안데르센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의 〈성냥팔이 소녀〉를 한국으로, 한국의 아파트먼트로, 컴파트먼트로 보내시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많이 팔 게 틀림없소. 겨울 추운 날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그 성냥을 다 사줄 테니까. 이제 당신의 동화는 끝났소.”
 
  이렇게 여러분은 한국인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와 네가 함께 짓는 집
  산은 그 높이가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고
 
  강은 그 깊이가 아니라
  용이 살아야 신령한 강이라 했다.
 
  그래 집은 커서가 아니라
  나누는 정과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내 집이라 할 수 있으니
 
  너의 흙
  그리고 나의 돌로 집을 짓자.
 
  낮에는 햇빛
  밤에는 별과 달이
  우리 집 창문과 뜰을 만든다. 〈끝〉

 
연재를 마치며…
 
  이어령 선생이 타계하시기 직전에 시작한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는 3월호 연재를 끝으로 모두 24차례 진행되었습니다. 더러 지면 사정으로 한두 달 쉬었을 망정 2021년 10월호부터 쉬지 않고 걸어왔습니다. 간혹 독자님들이 물으셨습니다. “이 글이 선생의 글인지, 기자의 글인지 헷갈린다”고요. 저도 헷갈립니다.
 
  선생께서는 도저히 당신이 집필하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시자 평생 탐색하신 ‘한국인 이야기’ 텍스트를 기자에게 건네시며 “주춧돌을 삼아 기자의 생각을 보태어 완성하라”고 맡기셨습니다. 워낙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위중하셔서 부득이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줄 알면서도 선생이 남기신 큰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오직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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