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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물들다 〈4〉 복수 이야기, 운명 이야기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소설 《배따라기》 中)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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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운명의 부하다”(소설 《백경》 中),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소설 《보바리 부인》 中)
⊙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의 실상은 필연이었다”(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 中)
인간의 운명은 어떤 유전자 지도로 그려질까. 일러스트=조선DB
  노(老)시인 이문길(李文吉)의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브로콜리숲 간)가 나왔다. 책 머리말에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원님 덕에 나팔 불다’라고 하고 싶었다. 시끄러워하는 줄도 모르고 평생 나팔을 불었으니 나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럽다”라고 썼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속담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반가웠다.
 
  산문 〈석남사 도토리〉를 음미해보았다.
 
 
  석남사 도토리
 
이문길 시인의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
  〈타향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혹시 글 쓰는 사람 있을까 찾아보아도 없어 혼자 가까운 수락산 석남사에 자주 갔는데 그곳에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석남사 안에서 도토리를 줍다가 늙은 여승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석남사에는 가지 않는다.
 
  석남사는 수락산 북쪽 골짝에 있다. (중략) 그날도 늦가을 바람에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속에 어디선가 투닥투닥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자세히 보니 산신각 주변에 커다란 도토리 나무들이 있어 살찐 도토리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이튿날 나는 비닐봉지 한 개를 가져가 떨어진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도토리는 아무도 줍지 않아서인지 산비탈 철조망 아래까지 떨어져 있었다. 내가 거기까지 갔을 때였다. 담 밖 개울에서 갑자기 큰소리로 여자의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그 절에 있는 늙은 여승이었다.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절 밖에도 도토리가 많은데 왜 절 안에서 도토리를 줍느냐면서 꾸중을 했다. 알고 보니 그 늙은 여승은 절 안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는 절의 것이라 그냥 두고 우선 절 밖에 있는 도토리부터 줍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산에 있는 도토리라 그냥 주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절 안의 것은 아무나 주우면 안 되는 줄 비로소 알았다. 그 여승은 내가 도토리를 주우러 담을 넘고 들어온 도둑처럼 여겼다. (중략)
 
  나는 그날 도둑 신세가 되어 도망치듯 그 절을 내려오고 말았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석남사에 가지 않는다. 석남사 오르는 길에 토종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어 살구가 익을 무렵이면 거기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않았다. 혹시 그 무서운 늙은 여승을 만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도토리를 줍던 날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으니 그 욕심 많은 늙은 여승이 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절에는 가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물어 가을바람이 불면 산골짝에는 도토리, 산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밤을 줍는다고 아내와 둘이서 앞산을 넘어 고산 신숙주 묘 앞까지 갔던 일도 옛일이 되었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어디 가면 도토리나무가 있고 어디 가면 밤나무가 있는지 알고 있다. 주워와 반으로 쪼개어 길에서 말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레가 많아 보관할 수 없었다. 우리 아파트 뒤안 뒷문 밖 근린공원에도 도토리는 있다. 언젠가 도토리를 주워 주머니에 넣어 와 삶아 베란다에 널어 말렸더니 푸른 곰팡이가 피어 모두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산에서 도토리나 밤을 다 주우면 산 짐승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며 주운 것을 다시 산에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가을에 근린공원 벤치에 앉아 도토리가 투닥투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줍지 않는다.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아도 줍지 않는다.〉

 
 
  그깟 도토리 몇 알이 뭔데…
 
  이 글을 읽는데 ‘서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수락산 석남사에 가고 싶어도, 늙은 여승 때문에 갈 수 없다. 여승이 싫으면 안 만나면 되는데 수락산도, 석남사에도 가지 않았다. 그 심사를 알 듯도 모를 듯도 같다.
 
  여승이 “왜 절 안에서 도토리를 줍느냐”라고 꾸중할 수도 있다. 절 밖에도 도토리가 많은데 굳이 절 안에서 도토리를 줍는 것이 얄밉게 보였으리라. 고즈넉한 절간을 좋아하던 시인으로선 여승의 말이 상처가 되었다. 도토리 줍는 게 무슨 큰 죄도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인구에 회자(膾炙)될 일도 아니다. 그 사소함, 작은 섭섭함이 석남사의 아름다움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깟 도토리 몇 알이 뭔데….
 

  정치적 발언을 하는 신부가 싫어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이도 마찬가지다. 신부가 뭔데…. 신부도 늙은 여승도 지상의 여느 영장류처럼 그저 실수를 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여승에게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아무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 용서하면 될 일이다. 세상에서 용서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 예수도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 5장 39절)고 하지 않았나. “복수의 길에 나설 때 먼저 무덤을 두 개 파라(When you begin a journey of revenge, start by digging two graves)”라는 말이 있다. 복수하다가 헛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에 나온 이 대사가 떠오른다.
 
  “복수는 내 손이 아닌 하느님 손에 달린 일이다(Revenge is in God’s hands, not mine).”
 
  복수의 여부는 그저 운명(運命)에 맡겨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운명이야말로 신이 자연에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불륜남의 충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포스터.
  몇 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2014)에 실린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의해 영화(2021)로 만들어졌는데 스크린 앞에서 자정을 넘긴 적이 있다. 순식간에 시간을 빨아들여 179분짜리 영화가 마치 30분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상처(喪妻)한 배우 가후쿠는 여자 운전사 미사키를 고용한다. 홋카이도 산골(나카돈베쓰)에서 자란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차를 몰았다. 불이 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그런 곳이었다. 가후쿠는 죽은 아내를 떠올린다. 아내는 다른 남자(다카쓰키)와 사귀고 있었는데 가후쿠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 불륜남(다카쓰키)이 가후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가후쿠 씨 부인은 정말로 멋진 분이셨습니다. 물론 내가 아는 거라고 해야 가후쿠 씨가 아는 데 비하면 100분의 일도 안 될 테지만, 그래도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멋진 분과 20년이나 같이 지냈다는 것을 가후쿠 씨는 뭐가 어찌 됐든 감사해야 합니다.”
 
  가후쿠는 이 대목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죽은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을까? 자신의 내면에 깃든 ‘운명이 꿈틀하는’ 소릴 들었을지도 모른다. 계속된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 속 대화다.
 
  “아무리 깊이 서로를 이해하는 상대라 해도, 그토록 사랑하는 상대라고 해도, 결코 남의 마음을 그냥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걸 바라다가는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워질 따름이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그래서 노력만 한다면, 노력한 만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솔직한 자세로 화해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로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스스로를 깊고 진솔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륜남이 마치 가후쿠에게 충고하듯 말한다. 진심으로 불륜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남편 자신의 마음과 솔직한 자세로 화해하라는 것이다. 너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후쿠의 마음이 몹시 흔들렸으리라. 분노와 증오, 복수와 앙갚음… 이런 단어는 정말 풀이할 수 없는 행간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 〈레버넌트〉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말처럼, 복수(분노, 증오, 앙갚음)는 신의 몫으로 돌려놓아야 할까. 가후쿠가 아내의 불륜 사실을 모른 척하듯, 운전기사 미사키가 무심히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던지듯…, 알면서도 모른 체해야 할까.
 
  증오, 복수, 분노는 ‘후추’와 닮았을지 모른다. 성난 감정은 형태가 없다. 금방 탔다가 금방 꺼진다. 잘 잊힌다. 마치 후추처럼.
 
  김엄지의 소설 《어느 겨울날-다른 어느 것도 아닌》(2013)에 후추 이야기가 나온다.
 
  〈외로운 마음에 마트로 향했다. 어항이 진열된 코너에서 물고기를 구경했다. 침구류 코너에서 베개와 이불을 구경했다. 베개를 사려다가 말았다. 즉석 카레와 와인, 모닝빵을 카트에 담았다. 아무래도 후추는 없었다. 후추를 찾아 마트 안을 한 바퀴 더 돌았다. 후추를 찾는 동안 어째서 후추가 필요했는지 잊어버렸다.〉
 
 
  ‘후추를 찾는 동안 어째서 후추가 필요했는지 잊어버렸다’
 
  우리는 종종 화를 내다가도 왜 화를 내는지 잊어버린다. 화내는 도중 멈춘 ‘발화’의 지점에서 불길에 휩싸인 자신을 보며 허탈하게 웃는다.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없다. 후추를 찾는 동안 후추가 어째서 필요했는지 잊듯이 화를 내면서 화를 내야 마땅한 원인을 잊어버린다.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말의 행위, 언어의 의도성이란 때로 부질없다. 다시 소설의 한 대목이다.
 
  〈난 재작년에 손가락 하나 잘릴 뻔했어. Y는 내게 다친 검지를 내밀었다. 선명하게 그어진 경계를 볼 수 있었다. 꿰맸니? Y는 네 바늘 꿰맸다고 했다. 뼈가 보였니? 뼈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파 썰다가, 파. 어려운 것도 아니고, 파. 피가 철철 났어. 사람 손가락에서 그렇게 피가 많이 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 무슨 정신이었는지 몰라. 정신없었지. 정신 차려보니까 걸레로 꽁꽁 감싸놨더라고. 이 작은 검지에 걸레를 둘둘 감아놓은 거야. 살겠다고. 살겠다고 걸레를 감아놓은 거야. Y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나도 Y를 따라 웃었다. Y가 한 이야기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지만, Y의 웃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Y의 코가, 그녀의 콧구멍이 너무 크게 벌렁거렸기 때문이었다.〉
 
  ‘파’ ‘피’가 왔다 갔다 하는 의미망의 왜곡을 드러내는 대사다. Y의 말(의미)에 ‘내’가 웃는 게 아니다. 검지에 걸레를 둘둘 감은 비극적이자 ‘웃픈’ 상황은 이미 기억 속에서 증발되어버렸다. 시선은 Y의 손가락이 아닌 입과 콧구멍에 가 있다. ‘천천히 뜯어보니 Y는 입만 큰 것이 아니라 눈, 코, 입이 다 컸다’. 그것 때문에 웃는다.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데도 상대는 엉뚱하게 반응한다. 분노하고 절규해도 상대는 그저 딴생각에 빠져 있다. 함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쥐와 족제비와 벼룩
 
한정주가 번역한 이덕무의 산문집 《문장의 온도》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라는 부제를 단 《문장의 온도》(2018)를 읽는다. 이 책에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년)의 산문 〈쥐와 족제비와 벼룩〉이 실려 있다. 이덕무가 24세에서 26세까지 3년 동안 쓴 산문집(《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몇 개의 글을 뽑은 책이 《문장의 온도》(한정주 번역)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마리 쥐가 닭장 안으로 침입해서 네 발로 계란을 안고 눕는다. 그러면 다른 쥐 한 마리가 그 꼬리를 물고 끌어당겨서 닭장 밖으로 떨어뜨린다. 곧장 다시 꼬리를 물어 당겨서 쥐구멍으로 옮긴다.
 
  또한 병 안에 기름이나 꿀이 있으면 올라가 쭈그리고 앉는다. 꼬리를 병 안으로 깊숙하게 집어넣어 기름이나 꿀을 묻힌 뒤에 몸을 돌려 그 꼬리를 핥거나 빨아먹는다.
 
  다음은 족제비와 벼룩 이야기다.
 
  〈… 족제비는 벼룩이 온몸을 물면 곧장 나무토막 하나를 입에 물고 먼저 시냇물에 꼬리를 담근다. 벼룩은 물을 피해 족제비의 허리와 등 쪽으로 모여든다. 물에 담그면 피하고 다시 물에 담그면 피한다. 점차 목덜미까지 물속으로 집어넣으면 벼룩은 마지막으로 족제비가 입에 물고 있는 나무토막으로 모인다. 그러면 족제비는 나무토막을 물에 버리고 언덕으로 뛰어오른다.…〉
 
  누가 쥐와 족제비에게 이런 지혜를 가르쳐주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스레 획득한 것일 뿐이다. 의도적인 가르침은 늘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인류 역사에서 교육 만능론은 늘 실패하고 말았다. 가령 한 마리 쥐가 계란을 안고 눕는다고 해도 어찌 다른 쥐가 그 꼬리를 물고 끌어당길 줄 안단 말인가? 족제비가 벼룩을 퇴치하는 방법은 기가 막히다. 누가 족제비에게 이런 귀한 지혜를 주었을까. 자연이 선사한 삶의 지혜일까.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은 누가 가르치거나 깨우쳐준 것도 아닌데 제각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늘 불길에 휩싸이는 인간의 감정도 그렇다. 증오와 분노의 감정도 그렇다. 이 불길에 뛰어들었다가는 집도 산도 다 태워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물 흘러가는 대로 쪽빛 운명에 맡겨야 할까. 쥐와 족제비가 자연에서 지혜를 터득하듯이 말이다.
 
 
  “나는 운명의 부하다. 그 명령에 따른다. 알겠는가”
 
1851년 H.멜빌의 장편소설 《백경(Moby Dick)》에 나오는 선장 에이헙(Ahab)의 그림이다.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헙은 흰고래를 잡기 위해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결국 사투 끝에 흰고래를 작살로 명중시켰으나 피쿼드호와 함께 바다로 사라진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봤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1851)에서 선장 에이헙은 부하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운명의 부하다. 그 명령에 따른다. 알겠는가. 이것은 바다가 있기 전 태곳적부터 예정된 것이다.”
 
영화 〈마담 보바리〉(1991)의 포스터. 엠마 보바리 역에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영화다.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말은 앞서 니체의 말(자연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 연상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1857)은 시골의사의 부인 보바리가 바람을 피우다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통속적인 이 소설이 고전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작가가 ‘운명’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엠마(보바리 부인)는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아름다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 인생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 ‘소리 없는 거미’ 같은 권태가 점점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에 거미줄을 치고 있다.
 
  남편 샤를르는 매우 평범한 인물이다. ‘문제적 자아’가 없는 인물이다. 자아가 없다는 말은 세계와 갈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하지 않는 내면은 황량한 들판과 같다. 샤를르는 엠마의 외도 상대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1981년 KBS 〈TV문학관〉에서 방영한 김동인 원작 극화 〈배따라기〉의 한 장면이다.
  그는 운명론자였다. 어쩌면 그로선 최선의 선택일지 모른다. 이 말을 접하니 김동인(金東仁·1900~1951년)의 소설 《배따라기》(1921)가 생각난다.
 
  삼짇날 날씨가 좋아 ‘나’는 평양성 주위를 산책하며 완연한 봄기운을 만끽하던 중 어딘가에서 배따라기 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노랫소리에 이끌려 어딘가로 향하던 그때 ‘나’의 눈에 뱃사람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보인다. 배따라기를 잘 부르는 것으로 보아 고향이 영유인 듯한데, 그에게 물으니 고향에 20년 정도를 못 가봤다고 한다. 왜 고향에 못 갔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거저 운명이 데일(제일) 힘셉데다”라고 탄식한다. ‘나’는 남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함께 담배를 피우며 그의 사연을 듣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형이 보기엔 아내와 동생의 관계가 수상했다. 이른바 삼각관계다. 예쁜 아내는 아무한테나 말을 잘 걸고 애교를 부렸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미워 자주 때렸다. 견디다 못해 아내는 자살하고 동생은 가출했다.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아우는 뱃사람이 되었고, 남자는 아우를 만나 지난 일을 사과하기 위해 역시 뱃사람이 되었다. 10년이 지나도록 아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자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하면서 그는 조난을 당했다. 정신없이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10년 넘게 떠돌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아우가 곁에서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다. 남자는 담담히 “어떻게 여기 왔느냐”고 묻자 아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결국엔 두 부류. 운명론자 아니면 허무주의자”
 
오르한 파묵의 소설 《하얀 성》
  100세 철학자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은 운명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의 생각이 궁금해 《김형석의 인생문답》(2022)을 펼쳤다. 김 교수에 따르면 “누구나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절대적인 변화는 가져올 수 없지만 어느 한계까지는 바꿀 수 있지 않느냐”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이 어떤 목적이 있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그 목적이 운명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100세 철학자는 비록 신앙인이긴 하지만 운명의 힘을 절감했고, 그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신(神)의 섭리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다음은 김 교수의 운명론을 길게 인용해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나를 연설 대회에 내보냈어요. 내용은 다 외우고 있었는데 청중 수백 명 앞에 섰더니 그만 주눅이 들었어요.
 
  결국 연설도 못하고 울먹이다가 내려왔어요. 그다음부터는 아버지가 절대 연설 대회에 내보내지 않았어요. 중학생이 되어 다른 사람이 강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했어요.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기회가 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1년에 200회 가까이 강연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되돌아보면, 나도 운명의 테두리 안에서 살았고 그걸 벗어나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100년 넘게 살아보니, 나의 삶을 이끈 것은 신의 섭리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방이 되고 2년 후 나는 조국의 반인 북한을 떠나 38선을 넘어야 하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공산 사회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열 달밖에 안 된 큰아들을 아내가 업고 남쪽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황해도 해주 쪽에서 약속한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불심검문에 걸려 파출소로 가게 됐어요. 계장이 조서를 꾸미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심문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크게 울렸습니다. 전화기 너머 통화 내용이 나한테까지 들렸어요.
 
  “지금 평양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제부터 잡혀 오는 놈들은 무조건 떠난 곳으로 되돌려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계장은 전화를 끊고 나한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장연까지 간다”고 둘러댔어요. 그는 아랫사람을 불러 “이분들을 데리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장연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을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류장에서 나는 따라온 사람에게 “표를 사고 기다려야 할 텐데,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권했어요. 그 사람은 꼭 그렇게 하라며 순순히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남쪽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어요.
 

  쇼펜하우어는 “젊었을 때는 모두가 자유를 외치다가도 늙으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어요. 지혜로운 사람들은 운명론자가 된다는 뜻이지요. 철학자는 결국엔 두 부류예요. 운명론자 아니면 허무주의자예요.
 
  그런데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끌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나는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를 받아들였어요. 섭리란 내가 모르는 제3자가 나를 이끄는 것을 느끼는 거예요. 지금도 나의 선택과 결정이 내 자유로운 것이기보다는 어떤 섭리의 길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하얀 성》은 ‘나는 왜 나인가?’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소설이다. 17세기, 베네치아에 살던 젊은 학자인 ‘내’가 나폴리로 향하던 중 타고 있던 갤리선(노예나 죄수들에게 노를 젓게 한 돛배)이 오스만제국 함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갤리선 선장은 포로로 잡힐 경우 노 젓는 노예에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혹독하게 채찍질하지 못했고 결국 선장의 이러한 겁쟁이 같은 행동 때문에 ‘나’는 노예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소설 속 ‘나’는 말한다.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실상은 필연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우연은 필연이자 그게 운명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선장이 그때 겁을 먹지 않았더라도 내 인생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의 실상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우연이 필연이 되는 시간을 모질게 이겨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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