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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갑작스러운 일본 문화 열풍, 어떻게 봐야 하나

지금의 일본 열풍은 文 정권 시절 ‘노 재팬’에 대한 반발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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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주도의 반일 기조가 만연하면 젊은 층 문화는 오히려 반문화적 호기심과 신비감 탓에 일본에 관심 갖게 돼
⊙ 일본에서도 嫌韓 확산되자 젊은 층의 韓流 소비는 오히려 늘어
⊙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너의 이름은〉,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마세의 노래 ‘Night Dancer’ 등 히트
⊙ 만화 〈슬램덩크〉 히트했던 1990년대에는 YS 정권이 중앙청 폭파 등 反日 캠페인 벌여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최근의 일본 문화 열풍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
  국내 문화·레저 분야에서 갑작스레 ‘일본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문화 전성시대’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먼저 레저 분야부터 살펴보면, 현재 여행업계의 일본 관광 상품은 눈부신 활황(活況)을 맞고 있다. 일본 여행 자체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래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정도를 제외하고 여행업계 중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회복세는 무서운 수준이다. 연합뉴스 2023년 2월 27일 자 기사 “‘노재팬? 눈치 안 봐요’… ‘삼일절 연휴’ 만들어 日 여행 러시”를 보자.
 
  〈일본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국경을 닫았다가 다시 연 지난해 10월 한 달 한국 국민 약 12만3000명이 일본에 간 것으로 집계된다. 이후 11월 31만5000명, 12월 45만6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더니 지난달에는 56만5000명을 넘겼다. 일본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37.7%에 달하는 수치다.
 
  관광업계에선 앞으로 일본에 가는 우리 관광객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일절인 내달 1일에도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항공권 대부분이 팔렸다. (중략) 하나투어 관계자는 “최근 판매된 패키지 여행과 항공권 3개 중 1개는 일본 여행 상품”이라며 “해당 기간(삼일절 전후)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한국인의 ‘일본행 러시’는 일본 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발판으로 반격 능력 보유를 선언하고,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한국 국민의 반일(反日)감정을 고조할 만한 행보를 감행하는 모습을 고려하면 과거와는 다른 흐름이다.〉

 
 
  ‘Night Dancer’, 멜론 일간차트 93위 올라
 
  그런데 이 같은 분위기는 여행업계에서만 형성되는 게 아니다. 자국(自國) 콘텐츠가 사실상 장악하다시피 하는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서도 그야말로 ‘난데없는’ 수준으로 근래 일본 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게 영화 부문이다.
 
  먼저 1월 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사례가 있다. 일본의 고등학교 농구부를 소재로 1990년대 초중반에 연재됐던 스포츠 만화가 원작인데, 한국 개봉 즉시 원작 만화에 향수(鄕愁)를 지닌 3040 남성층을 끌어들였고 곧 1020 여성층까지 이에 가세했다. 이렇게 롱런하며 3월 9일 현재까지 38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일본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의 380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만의 일도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일본 실사(實寫) 영화도 한국에서 상당한 흥행성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11월 30일 개봉한 일본 순애(純愛)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다. 개봉 후 꾸준히 관객몰이를 이어가 3월 2일까지 109만841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일본 실사 영화의 한국 흥행기록 역대 2위 수치다. 중요한 점은, 애초 일본 실사 영화가 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본 게 2001년 공포영화 〈주온〉이 마지막이었다는 점이다. 무려 21년 만의 100만 돌파다.
 
  더 있다. 이번에는 대중음악 분야다. 지난해 8월 발표된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마세(imase)의 노래 ‘Night Dancer’가 2월 24일 454만 가입자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디지털음원 플랫폼 멜론의 일간차트에서 93위에 올라 일본 J팝 사상 최초로 일간차트 100위 내 입성에 성공했다. 이 같은 결과에 이마세 본인도 깜짝 놀라 “일본 음악으로서 처음 멜론 종합 랭킹 톱100에 든 점에 놀라움으로 가득하다”고 직접 코멘트를 작성해 배포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대단한 기록이 불과 지난 3개월 사이, 단기간 안에 이뤄졌다는 사실. 확실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異常) 열기가 맞다.
 
 
  反日정서의 실종(?)
 
  일단 이 같은 상황을 두고 국내 언론미디어의 해석은 어딘지 일목요연(一目瞭然)한 구석이 있다. 앞선 연합뉴스 기사에서 인터뷰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윗세대로 갈수록 역사·정치 문제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세대가 점차 바뀌면서 그런 면이 상당 부분 흐려졌다”면서 “과거사와 문화 소비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한편 같은 기사에서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본 여행 러시에 대해 “같은 여행 경비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은 다른 선택지보다 일본이 더 크다”며 “한일 문제가 불편하고 신경 쓰이더라도 일본 여행으로 얻는 편익이 그보다 더 크면 ‘나를 위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허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사뿐 아니라 관련한 대부분 보도가 이 같은 해석으로 일관하는 추세다.
 
  원론적으로는 모두 맞는 얘기다. 문제는 그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들이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며 일어난 ‘노 재팬(No Japan)’ 불매운동 당시에는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라고 딱히 과거사와 문화 소비를 분리해 생각하는 듯 보이지도 않았고, 자신이 얻는 편익(便益)을 중심으로 사고하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2023년 3월 1일 자 칼럼 “[노트북을 열며] ‘노 재팬’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반일감정으로 국민을 조종했던 정치 세력은 휴화산일 뿐”이라며 “정치적으로 선동·악용된 ‘노 재팬’ ‘죽창가’는 영어 표현으로 ‘방 안의 코끼리’다. 불편하지만 모르는 척하는 존재를 뜻한다. 방의 5년짜리 주인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질 뿐”이라 적었다. 결국 정권의 기조(基調) 변화에 따라 한국의 반일감정은 꾸준히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다는 얘기다.
 
  이 역시도 물론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최소한도 정권 차원에서 반일감정이라는, 상수(常數)에 가까운 시한폭탄 정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국민정서도 크게 영향받는 게 사실이다.
 
 
  ‘노 재팬’ 운동에 대한 반동인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도 있다. 지금의 ‘일본 문화 전성시대’는 어쩌면 바로 저 ‘노 재팬’ 불매운동이 2019년부터 수년간 한국 사회를 휘저어놓았기에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황이 그렇다. 2017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대한민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 수출 제한 및 일명 ‘백색국가’ 지정 해제를 공표한 뒤 사실상 ‘곧바로’ 불붙기 시작한 ‘노 재팬’ 불매운동은 곧 파시즘적 분위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 가는 매국노 팔로우하는 계정’이라는 제목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등장해 일본 여행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고 대중의 사이버 테러를 유도하는 행태가 등장하는가 하면,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국내 매장 앞에서 손님이 드나드는지 감시하며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나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공개하는 사실상의 초상권 침해 범죄행위를 시도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일본 상품을 불매하지 않으면 친일파’이자 ‘친일 매국노’가 되고, 그에 대한 우려만 공개적으로 표명해도 사이버 테러를 면치 못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특히 젊은 층의 문화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애초에 청년 문화는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 즉 일종의 반문화(反文化)적 성향을 띠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배적인 주류(主流) 문화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대항 문화 성격을 띠게 된다는 뜻이다.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세대 문화가 그랬고, 1960년대의 히피 세대 문화도 그랬다. 사회가 산업화, 고도화의 단계를 밟을수록 자연주의, 천연주의, 인간성 회복 등의 테마가 젊은 층 문화의 중심이 된다. 경제적 풍요가 가득할수록 반(反)자본주의적 어젠다들도 보다 힘을 얻는다.
 
 
 
YS 시절의 일본 문화 붐

 
김영삼 정권은 중앙청 철거를 하며 반일 캠페인을 벌였지만, 당시에도 젊은이들은 일본 문화에 열광했었다. 사진=조선DB
  과거 한국의 반일감정과 당대 문화 흐름도 유사한 맥락으로 흘러갔었다. 문재인 정권 이전에 가장 가까운 ‘강력한 반일 기조’ 정권은 김영삼 정권이었다. 취임 첫해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구(舊)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지시, 1995년 실제 철거에 들어갔다. 그해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발언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된다. 저 유명한 ‘일제의 풍수(風水) 침략’이라는 ‘쇠말뚝 괴담’이 등장해 내무부에서 국가정책 차원으로 전국 명산(名山)을 다니며 118개의 쇠말뚝을 뽑고, 일제가 개악(改惡)했다는 한국의 고유 지명 찾기 작업도 벌였다.
 
  그런데 정작 일본 문화가 젊은 층에서 일대 붐을 형성한 시기도 1990년대, 대부분 김영삼 정권 시기와 겹친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부터 흐름이 거세진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젊은 층의 왜색(倭色) 문화 유행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봐도 1992~1997년 기사들이 가장 많이 검색된다. 당시 상황을 담은 《경향신문》 1997년 8월 29일 자 기사 “‘경술국치’ 이후 87년, 구석구석 파고든 ‘왜색 옷에 왜색 춤’”을 보자.
 
  〈우리 청소년은 지금 ‘일본 문화’ 한복판서 살고 있다. 예전처럼 음성적이지도 않다. 집단·공개적으로 찾는다. PC통신엔 수많은 소모임, 거리에선 음반·만화가 판친다. 일본의 ‘스타’는 한국서도 마찬가지. ‘X재팬’ 공연 땐 원정까지 떠난다. 처음엔 흥미로 접하지만 점점 세뇌된다. 일본을 욕하면 속이 상한다. 청소년의 영혼까지 파고든 ‘일본 문화’.〉
 
  심지어 1995년에는 KBS1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8월 17일 방영분으로 ‘굿바이 도쿄’ 편을 편성해 한국 청소년 사이 깊숙이 퍼진 일본 문화를 진단하기까지 했다. 어느 여고 2학년생이 일본 노래와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일본 문화에 빠져들고, 급기야 “일본 것은 좋고 세련된 반면, 한국 것은 촌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설정이다.
 
 
  주류 문화에서 금기시되는 것은 청년 문화의 원재료 돼
 
  돌이켜보면 서두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작 만화 〈슬램덩크〉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바로 이때 즈음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여전히 깨지 못하는 일본 실사 영화 한국 흥행기록도 1999년에 국내 개봉된 또 다른 순애 영화 〈러브레터〉가 지키고 있다. 물론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는 오히려 일본에서 중학교를 나온 또 다른 학생이 ‘애국자’ ‘독립군’이라고까지 불리며 이들 일본 문화에 빠진 친구들을 나무란다는, 다분히 교훈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당시 젊은 층에 불어닥친 일본 문화 열풍이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 분위기가 온통 정권 주도로 반일 기조가 만연하면 젊은 층 문화는 오히려 반문화적 호기심과 신비감 탓에 일본에 관심을 갖는 쪽으로 흘러간다. 기성세대의 주류 문화와는 차별화된 또래 문화를 형성하고픈 젊은 층 특유의 심리도 작용한다. 그러니 일본 문화 향유(享有)가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그 소비층은 늘어만 가는 구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당대 주류 문화 또는 전반적 사회 분위기에서 금기(禁忌)시되는 것은 청년 문화의 원재료가 된다는 공식은 1920년대 미국 백인 청년 사회의 재즈 열풍 시절부터 변한 것이 없다.
 
 
 
嫌韓 확산되자 韓流 소비 늘어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1990년대 당시와 정확히 같은 청년 문화 흐름이 정반대로 일본에서도 혐한(嫌韓)감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아키히토 일왕에게 사과를 요구한 상황 이후 일본 주류 미디어들은 일거에 혐한 무드의 반응을 쏟아냈다. 사실상 한류(韓流) 블로킹이라 여겨질 만한 반응이 일본 방송계 중심으로 펼쳐졌다. 한창 잘나가던 K팝 아티스트들의 일본 방송 출연이 한순간에 막히고, 낮 시간대를 장악하던 한국 TV드라마 방영도 마찬가지로 크게 위축되었다. 바로 직전인 2011년만 해도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K팝 그룹이 3팀이나 출연했던 일본의 대표 연말 방송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서도 2012년부터는 K팝 팀 출연이 뚝 끊겼다.
 
  필자도 당시 일본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바 있다. 일본 최대의 DVD·CD·만화·서적 판매 및 대여점 체인 쓰타야의 한 매장에서 바로 일주일 전만 해도 대여 코너 상단에 가득 진열돼 있던 한국 TV드라마 DVD가 어느 순간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풍경이다. 모두 서가 아래의 잘 보이지 않는 위치로 유배(?)당해 있었다. 쓰타야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매장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했었는데, 한국의 ‘노 재팬’ 불매운동 당시 편의점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일본 맥주를 지켜보면서 그런 게 바로 일본식 ‘공기(空氣)를 읽는’ 침묵의 전체주의적 전개였고 그게 이제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이후 일본 상황도 1990년대 한국 상황과 정확히 같았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소비가 어느 정도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생성되자 일본 젊은 층은 오히려 그에 매력을 느껴 인터넷 기반으로 더더욱 K팝과 K드라마 소비에 열중했다. 팬층도 두꺼워지고 팬들의 충성도 역시 전에 없이 배가(倍加)됐다.
 
  사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한류는 엄밀히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일본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 수많은 연예기획사의 K팝 팀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 일본시장으로 한꺼번에 진출하다 보니 피로도가 심해져 점점 신규 진출 팀들 성적은 떨어지고 있었다. 한국 TV드라마도 싼값에 일본 방송의 낮 시간대를 ‘때워주는’ 역할 정도로 전락해 주류 상품으로서의 긍정적 이미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2012년 이후 일본 내에 한류 상품 유통을 비난하고 퇴출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오히려 화(禍)가 복(福)으로 바뀌어 그렇게 2017년 즈음이 되자 2010년대 초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한류 영향에 주류 미디어들도 결국 승복(承服)하고 다시 한류를 받아들이게 된 순서다. 2017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K팝 걸그룹 트와이스를 출연시키며 6년 만에 K팝 반영이 이뤄진 것을 계기로 다시 물꼬가 틔워졌다. 그리고 그 흐름이 2023년 현재까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노 재팬’ 운동의 전조들
 
지금 불고 있는 일본 열풍은 문재인 정권 시절 ‘노 재팬 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볼 수 있다. 사진=조선DB
  이제 지난 ‘노 재팬’ 불매운동을 돌아보자. 사실 문재인 정권 당시 한국 대중의 반일감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건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 이후부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직접적 원인이 된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판결 건만이 작용한 것조차 아니다. 엄밀히 그 전년도인 2018년 하반기부터 점차 반일감정은 빌드 업(build up)돼가고 있었다.
 
  2018년 9월, 제주도 국제 관함식에 참가할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의 해상자위대기 게양을 놓고 대한민국 해군 측에서 욱일기 문양은 역사적 이유로 용납될 수 없으므로 대신 일본 국기를 게양토록 일본 측에 요청하자 일본 외무성이 크게 반발해 일어난 ‘제주 국제 관함식 자위대 욱일기 논란’이 있었다. 10월에는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신일본제철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판결 건이 있었다. 곧 같은 해 12월 20일부터 이듬해인 2019년 1월 23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해군 함정들에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의 저공 위협 비행이 실시된 ‘일본 해상 초계기 저공 위협 사건’이 불거졌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이 2019년 5월 2일, 앞선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 매각에 대한 매각 명령을 신청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짧은 시간 동안 일본과의 굵직한 외교적 트러블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니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의 반일감정도 급격히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었다. 2019년 7월 이후 ‘노 재팬’ 불매운동 국면으로 넘어간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간 반일감정의 주소는 변화하는 대중의식이 시시각각 반영되는 대중문화계 이슈들을 통해 보다 명확히 읽힌다.
 
 
  ‘트와이스 사나 레이와 사건’
 
김포국제공항 일본행 탑승수속장 모습. 작년 10월 일본 무비자 입국이 재개되면서 일본 여행 관광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대표적으로 2019년 4월 30일 ‘트와이스 사나 레이와 사건’이 있었다. 인기 K팝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일본의 연호(年號)가 바뀌는 데 대해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게시한 것을 두고, 일왕이 바뀌면 함께 바뀌는 일본의 연호 자체가 일본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와 관련이 깊은 만큼 이를 굳이 인스타그램에 언급한 것은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때가 때인 만큼’ 이 같은 비난은 순식간에 인터넷 공간을 휩쓸었고, 곧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종합일간지들마저 해당 사건을 대서특필(大書特筆)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는’ 시점이었다는 얘기다.
 
  이보다 먼저인 2018년 10월 29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일본 우익그룹 아이즈원의 공영방송 출연을 금지시켜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순식간에 3만여 명의 동의를 얻어내는 사건도 있었다. 아이즈원은 한일(韓日) 합작 그룹이라는 점만으로 당시 정서에서 눈총을 산 걸그룹이었기에 그만큼 주시(注視)받고 있었던 게 사실인데, 그 근거들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심지어 그룹에 소속된 한 멤버가 일본 활동 당시 반전(反戰) 메시지의 콘서트에 참여했던 것까지 “사과와 반성이 없는 평화주의 메시지는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의 전형적 술책”이라며 우익이라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후 KBS 측에서 아이즈원 일본인 멤버들에게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뚜렷한 행적이 없다며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반박했지만, 그럼에도 아이즈원에 대한 ‘우익 논란’은 팀이 해산되던 2021년 초까지 끊이지 않았다.
 
  이렇듯 점진적으로 반일감정이 격화되다가 2019년 7월의 ‘노 재팬’ 불매운동을 맞이하게 된 순서다.
 
  그리고 편의점에 일본 맥주가 진열돼 있는 것만 봐도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사진을 올리며 비난하는 식의 전체주의 감시국가 수준이 되자 그에 대한 반발심에 오히려 그동안 한국에서 거의 사멸(死滅) 수준으로 시들해져 가던 일본 문화가 점차 수요층을 늘려갔고, 그 결과가 2022년 기점으로 일거에 폭발하는 흐름이다.
 
  2022년 일본의 지식재산권에 해당하는 ‘포켓몬빵’ 열풍이 2030세대에서 크게 일어나 전국 편의점 앞이 해당 상품을 구매하려는 이들로 북적이게 된 것도 이 같은 ‘일본 문화 전성시대’의 전조(前兆)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닫혀 있던 일본 관광이 같은 해 가을 재개되자 아직 팬데믹 상황임에도 ‘노 재팬’ 불매운동 이전과 비교해 일본 여행객이 76%(참좋은여행 집계)까지 일순간에 회복된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2023년 1/4분기 ‘일본 문화 전성시대’는 차근히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일본 문화 붐, 오래가지는 못할 듯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일본 문화 전성시대’는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말이다. 이 역시도 이미 기존 사례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1990년대 청년 세대를 휩쓸다시피 한 일본 문화 열풍은 1998년 막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영화, 만화, 노래, 애니메이션 등에 걸친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오히려 한풀 꺾였다. 금기시돼왔던 상품으로서의 독특한 매력이 떨어지자 일종의 대항 문화로서 입지도 사라져 오히려 청년 세대 반응이 시들해진 것이다. 1차 개방 조치 이후 2~3년 정도는 ‘반짝’ 했지만, 2004년 사실상 거의 모든 일본 문화 콘텐츠가 개방된 4차 개방 조치 이후 일본 문화 상품은 사실상 국내에서 사멸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 많던 일본 문화 팬들은 대신 한국 콘텐츠로 유입돼 한국 대중문화 전성시대가 그즈음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점점 규모가 커져가는 일본에서의 한류 상황을 두고 반박이 나올 수도 있지만, 현재 ‘K’라는 글로벌 호칭이 붙은 한류 상품들은 그사이 글로벌 인기 상품으로 떠올라 전 세계를 휩쓰는 중이다. 지금의 일본 한류 팬들은 그저 전 세계가 즐기는 상품이기에 우리도 즐긴다는 감각이 강하다. 다만 거기까지 한국 대중문화 상품 질(質)이 올라가는 동안 공백(空白)을 금기시된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지탱해줬다는 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일본 문화 전성시대’는 생각보다 그 기간이 짧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지금은 엄밀히 일본 대중문화 상품의 질이나 방향성이 갑자기 바뀌어 매력을 얻어내고 있는 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눌리고 금기시돼왔던 지난 2~3년간의 응축된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는 형국일 뿐이다. 곧 일본 콘텐츠 자체의 변치 않는 질적(質的) 문제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이 ‘특수(特需) 기간’ 동안 일본 대중문화 산업이 큰 변혁을 이루지 않고서는 말이다.
 
 
  3·9대선 이틀 후 문 닫은 ‘노노재팬’ 사이트
 
  어찌 됐건 ‘노 재팬’ 불매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런 대중운동이 전체주의 수준으로 심화됐을 때는 지금과 같은 백래시(backlash) 현상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열풍은 다시 정상화되는 수순을 밟겠지만, 그동안 새롭게 일본 문화에 유입돼 고정 소비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대중도 분명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오히려 사멸해가던 일본 문화의 국내 파이를 조금이라도 키워주는 효과를 낸 게 ‘노 재팬’ 불매운동이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단한 아이러니다.
 
  이렇듯 대중문화 유행과 그 기저(基底)에 깔리는 대중심리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현상이다. 정치적 감각으로 통쾌한 ‘사이다’를 제공하는 식의 전개로는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그 반동(反動) 현상들에 당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문화와 관련된 정권의 정책 방향이나 각종 대중운동 영역에서 반드시 인지해둬야 할 부분이다.
 
  그런 건 상관없이 그저 ‘그때’만 통쾌하고 시원하면 된다는, 그렇게 일시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감각이라면, 그건 더 이상 정책이나 대중운동 영역이라 보기도 힘들다. 그런 건 ‘정치적 꼼수’라고 한다. 참고로, 2019년 7월 11일 개설돼 ‘노 재팬’ 불매운동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하며 수많은 ‘불매기업 리스트’를 양산해낸 ‘노노재팬’ 사이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바로 이틀 뒤인 2022년 3월 11일 갑자기 “‘불매’라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기반한 목소리를 멈추기 위함”이라는, 기존과는 정반대 입장을 내세우며 서비스를 종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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