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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대사 인터뷰 ③ 다울 마투테 메히아 페루대사

“한국은 페루의 두 번째 교역국… 페루, 부산 엑스포 최초 공개 지지”

글 : 류종수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서울의과학연구소(SCL Healthcare Group)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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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후한 남미 신사… 자녀에게 ‘너는 할 수 있어’ ‘담대하게 나아가라’ 말해
⊙ 12월 말 5년간의 주한 대사 임기 마치고 은퇴… 서울이 마지막 근무지
⊙ 한국 대사로 활동하며 페루의 對韓 수출물량과 금액 50% 이상 증가
⊙ “페루보다 훨씬 경제 강국인 한국이 공무원들의 2주택, 3주택 문제 삼는 것 이해하기 어려워”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다울 마투테 메히아 주한 페루대사는 나의 오랜 친구다. 첫 만남은 서울 한남동 페루대사관 관저에서 있었다. 2018년 3월 어느 따뜻한 봄날의 일이다. 그때 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제협력단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지원하는 페루 사회보장청의 건강보험 시스템 개선사업을 위해 페루로 출장을 떠나려는 참에 마투테 대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참 적극적인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첫인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후한 신사였다.
 
  두껍고 강한 상체, 굵직하고 광채가 나는 눈과 이마, 어려운 보건 의료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유머와 미소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그의 대화 스타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매료됐다.
 
  첫 만남 이후 페루대사관저 혹은 서울시내의 식당에서 한 달에 두어 번 만나서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기곤 했다.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부인 가브리엘라(54) 여사,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녀 다니엘라(26), 차녀 알렉산드라(25), 아들 세바스찬(22)이 가족이다.
 
  올해 70세 생일을 맞은 마투테 대사는 오는 12월 말 5년간의 주한 대사 임기를 마치고 은퇴한다. 서울이 그의 마지막 근무지다.
 
 
  ‘외교는 보고서로 이뤄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축하 주한 외교사절단 리셉션에서 마투테 대사는 김건희 여사를 만났다.
  마투테 대사는 정열적으로 일한다. 지역과 국가와 종교와 무관하게, 본인의 스케줄이 허락한다면 다른 주한 대사관의 행사에 참석한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원칙을 실천한다. 그래서 페루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는 항상 많은 외교관으로 성황이다.
 
  지난 7월 28일에 서울 포시즌스 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린 페루 국경일 행사. 페루대사로서 그가 마지막으로 개최하는 국경일 행사라 500여 명이 넘는 축하객이 대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국회에서 개최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축하 주한 외교사절단 리셉션을 다녀온 다음 날 마투테 대사는 나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전화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건희 여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김 여사와의 대화 시간이 5분쯤 됐다는데 마투테 대사는 이런 인상을 받았다.
 
  “총명하고, 우아한 분이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잘할 거예요. 그분이 공격적인 언론 환경에서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무거워요.”
 

  직업 외교관들은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표현보다는, 완곡하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도록 훈련받는다. 마투테 대사가 자주 말하는 외교의 원칙이 있다.
 
  ‘외교는 보고서로 이뤄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항의나 의견을 서류에 담아 상대측에 전달하지 말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로 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마투테 대사는 늘 사람을 만나느라 분주하다.
 
 
  외교관의 자녀들
 
다울 마투테 메히아 주한(駐韓) 페루 대사와 부인 가브리엘라 마투테 여사.
  마투테 대사를 워낙 잘 알지만, 기록으로 남을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팩트 체크’를 위해 지난 11월 3일 오후 7시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마투테 대사 부부를 마주했다. 그는 1박 2일의 부산 출장을 마치고 막 귀경한 참이었다.
 
  수프와 빵과 치즈를 가볍게 나누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영국 에든버러대학에서 분자생물학 석사 과정을 마친 장녀 다니엘라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대사 부인 가브리엘라 여사는 영국 에든버러의 장녀,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건축디자인 석사 과정을 하는 차녀 알렉산드라,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전산보안을 전공하는 아들 세바스찬과 매일 영상 통화를 한다. 가브리엘라 여사는 아빠의 임지를 함께 떠돌아다녀야 하는 자녀들의 심리적 건강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 동물들, 식물들을 다 두고 떠나야 하는 아이들의 상실감이 너무 커요. 이사를 하면, 아이들이 쓰던 이부자리,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 작은 소품을 따로 챙겨 항공편으로 먼저 부쳤어요.”
 
  가브리엘라 여사가 딸과 통화해보라며 전화를 내게 건넸다. 대사 부부의 승낙을 받고 다니엘라와 즉석 인터뷰를 했다. 다니엘라는 흔쾌히 질문에 답을 주었다.
 
 
  ‘담대하게 나아가라’
 
마투테 대사와 장녀 다니엘라.
  “아버지는 늘 세 가지 행동 원칙을 강조하셨어요.
 
  첫째, 항상 계획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때는 슬기롭게 변화에 적응하고, 유연한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둘째, 아빠는 말과 표정, 옷을 늘 단정하고 우아하게 하라고 강조하세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하지 말라고 하죠. 직업 외교관 생활에서 얻게 된 철학인 거 같아요.
 
  셋째로 ‘조심조심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너는 할 수 있어’ ‘탐구하고 조사해봐’ ‘담대하게 나아가라’ 이런 말을 늘 해주셨어요.”
 
마투테 대사의 가족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모처럼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왼쪽부터 장녀 다니엘라, 부인 가브리엘라, 차녀 알렉산드라, 아들 세바스찬.
  마투테 대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페루대사로 6년을 근무하는 동안 장녀 다니엘라는 12세에서 18세까지 청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집안에서는 반드시 스페인어를 사용했어요. 남아공에 라틴 아메리카 국가 그룹이 많이 진출해 있어서 문화적인 고립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국을 떠도는 외교관 자식으로서의 비애가 있어요. 모든 곳에 다 적응하는 듯해도,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공허함이죠.”
 
  석사 과정을 끝낸 그녀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난 후 전문직 여성으로 경제적 기반을 만든 후에 결혼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사 부부는 벌써부터 “결혼해서 빨리 손자·손녀들을 안겨달라”고 성화라고 한다.
 
 
  페루가 제일 먼저 부산 엑스포 지지한 이유
 
마투테 대사는 지난 10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BTS 공연에 앞서 박형준 부산시장과 만났다.
  마투테 대사는 지난 10월 15일 밤 부산에서 열린 BTS 공연에 VIP로 초청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사 부부에게 최신형 벤츠 차량을 의전용으로 제공했다. 박 시장이 그를 이렇게 특별 대우한 이유가 뭘까?
 
  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마투테 대사의 대답이다.
 
  “제가 최고의 선물을 부산시에 주었기 때문이죠. 부산시가 2030년 국제 엑스포 유치에 전력투구하고 있잖아요. 첫 번째 공식 지지서를 제출한 나라가 페루입니다. 부산에서 특별 대우를 받을 만하죠?”
 
  엑스포 유치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매력적인 협력관계를 제시하면서,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를 집중 공략하는 상황에서 페루 정부가 힘든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현지 대사인 마투테 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페루가 한국에 수출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부산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물류 거점입니다. 페루의 부산 지지는 이런 점에서 당연한 결정입니다. 엑스포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주한 사우디아라비아대사와 주한 이탈리아대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와 절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잃을 처지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외교적인 결정에는 상당한 정책적인 이유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투테 대사는 지난 5년 동안 한국 주재 대사로 활동하며, 페루의 대한(對韓) 수출물량과 금액을 50% 이상 증가시키는 성과를 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페루의 두 번째 교역국이다.
 
  “한국의 첨단 산업들이 페루 발전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지난 5년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AI 기술 기반의 회사들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보고 느낀 건 3차·4차 기술 산업으로 진입하기에는 페루의 기술 생태계와 인력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차 생산물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크죠.”
 
 
  ‘아버지의 나라’가 좌파 포퓰리즘으로 거덜 나
 
마투테 대사 부인 가브리엘라 마투테 여사는 대사들의 배우자회(ASAS)의 회장이다. 지난 11월 7일 한국의 의료검진 프로그램과 건강보험 시스템을 견학하기 위해 스페인 대사 부인 및 15개국 대사 부인들이 서울의과학연구소의 자매 기관인 하나로 건강검진 재단 종로센터에 모였다.
  마투테 대사와 부인 가브리엘라 여사는 탁월한 업무 파트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럽다.
 
  대사 부인은 ‘주한 대사들 배우자 모임(Ambassadors Spouses Association of Seoul·ASAS)’의 회장을 맡고 있다. 가브리엘라 여사는 “한국에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곳들을 저만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사 부인들이 방문하면 도움이 될 기업과 의료기관, 관광지들을 잘 챙겨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
 
  “부인께서 베네수엘라의 대사로 전 세계를 누볐으면, 부군보다 더 큰 성과를 냈을 것”이라는 농담에 그녀는 이런 진지한 답을 내놓았다.
 
  “아버지의 나라가 좌파 포퓰리즘 세력의 22년 장기 집권으로 거덜 났습니다. 풍부한 석유 자원으로 마련한 국부(國富)는 바닥이 났고요. 마두로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베네수엘라는 이제 재기 불능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경제난을 피해 인접 국가의 난민으로 떠돈다는 뉴스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마투테 대사는 부인이 자신보다 높다며 ‘마담 프레지던트’라고 부른다. ‘우리 집 대장’ 그 정도의 의미 아닐까?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토닥토닥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는 부부를 보면, 두 사람이 은퇴 후에도 친구처럼 재미있게 잘 살 거라는 생각이 든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살고 싶어”
 
주미(駐美) 워싱턴 참사관 시절 마투테 가족의 모습이다.
  “45년간 외교관으로 바쁘게 살았는데 은퇴 후에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사 부인이 대신 답을 했다.
 
  “매일 둘이 손을 잡고 해안을 걸으며, 태평양을 바라보며 살고 싶어요. 수도 리마의 아파트로 짐들을 거의 다 옮겼습니다. 남는 가구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버릴 것은 버려야죠.
 
  45년의 공직 생활과 11년의 대사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제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휴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는 미국과 영국으로 가서 지내기도 하고, 유럽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할까도 합니다. 남편은 지금까지 일 중독자로 살았습니다. 남편이 푹 쉴 수 있도록 힘껏 도와야죠.”
 
  그리고 그녀는 부산을 다녀온 얘기를 했다.
 
  “지난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정상회담이 열렸던 누리마루 행사장 내부에 들어가서 전시된 기록 사진들을 봤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한 페루 대통령과 당시 주한 대사의 사진들이 있었어요. 남편이 정말 고생했던 옛일이 확 떠올랐습니다.”
 
  페루는 1997년 1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5차 APEC 회의에서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때 페루 외교부의 실무 책임자가 마투테 대사였다.
 
  “남편은 페루의 APEC 가입을 위해 몇 년간 밤잠을 자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청년의 힘으로 무쇠처럼 일했던 남편이 이제 70세가 되어 은퇴를 하다니 세월이 정말 무상해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눈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후지모리 대통령과의 인연
 
마투테 대사와 주한 페루 육·해·공 무관들이 관저의 국기 앞에 나란히 섰다.
  마투테 대사가 페루 외교부에서 APEC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페루 대통령은 알베르토 후지모리였다.
 
  후지모리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1938년생으로 현재 84세인 그는 페루의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종신 집권을 꿈꾸던 그는 2000년 부정선거 등 다양한 범죄 혐의로 인해 탄핵을 당했다. 그러자 곧바로 일본으로 탈출했다. 일본 구마모토 출신인 아버지 덕분에 그는 일본 국적 소유자이기도 했다.
 
  후지모리는 2005년 페루에 밀입국하기 위해 칠레에 갔다가 체포됐다.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고 2007년 페루로 강제 송환됐다. 이후 2010년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문제적 인물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마투테 대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냉정하고 쌀쌀맞은 분이었어요. 말수가 별로 없고, 속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장기 집권 시도와 독재적인 정치 스타일, 뇌물 수수로 페루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습니다. 아직도 감옥에 있어요. 국민들 모르게 일본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세가 불리하자 일본으로 도피한 것에 배신감을 느낀 페루 국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집권 초기에는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 좌익 게릴라에 대한 강경 대처로 페루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외교관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 국가적인 숙제들을 맡겨준 대통령이었습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1990년 대통령 당선 후 국가부채 상환 불이행으로 국가 부도 상황을 맞은 페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나섰다. 후지모리 는 마투테 대사를 콕 집어서 미국 워싱턴 DC의 페루대사관에 경제 담당 참사로 보냈다.
 
  워싱턴에서 세계은행, IMF, 남미개발은행(IDB)을 상대로 외채 상환을 조정하는 게 마투테 참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국제 개발은행들과의 협상을 통해 페루의 국가 채무 상환 일정을 조정했고, 채무의 일부는 탕감받았습니다. 새로운 개발 자금들을 끌어들여서 외화난을 타개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때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알링턴에 제 집을 한 채 구입했고요.”
 
 
  외채 협상 시 아버지의 문제 해결 방안 활용
 
  과일주스 제조 공장을 운영했던 마투테 대사의 부친은 네 아들의 교육에 엄격했다. 공장에서 일을 시키면서,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수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하도록 했다.
 
  마투테 대사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의 부친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공장의 기계가 고장이 나면, 아버지는 그 기계를 직접 다 뜯어서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된 부분을 완전히 해체해서 구조와 작동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아버지의 그 가르침이 제 칠십 인생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미국 주재 페루대사관에서 경제참사로 일할 때 부친이 알려주신 문제해결 방법을 활용했다.
 
  “페루가 국제 금융기관에서 받은 차관이 어떻게 부실하게 집행되고 사용됐는지, 고장 난 기계를 분해하듯이 철저하게 하나씩 뜯어내고, 분석했습니다. 밤새 작업을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곤 했습니다.
 
  국제은행 담당자들을 만나서 페루에서 부실 채무가 발생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그려준 그림이 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국제개발은행들의 신뢰를 이끌어냈습니다. 페루 정부는 국제 금융기구에 일정액의 부채 채무 상환을 약속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페루 정부가 하달한 부채 탕감을 위해 협상했습니다. 그 후 추가 차관 도입에 성공했습니다.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이 지시한 과제를 1년 5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장 난 기계를 해체하면서 알려주신 가르침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외채 조정 협상에 성공한 후 마투테 참사는 후지모리에게 대면 보고를 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제가 작성해 올린 서류들을 읽으면서, 저의 설명을 짧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투테’라는 인사가 전부였습니다. 후지모리는 그의 별명대로 ‘차가운 물고기’였어요. 속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정치인이었어요.”
 
 
  “고맙습니다. 마투테”
 
  후지모리는 마투테 외교부 심의관에게 다시 임무를 부여했다. ‘1997년 1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5차 APEC 회의에서 페루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라’는 지시였다. 페루가 APEC에 정식 멤버로 가입해야지만 수출을 성장시키고, 생산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었다.
 
  마투테 심의관은 칠레를 포함한 기존 회원국 세 나라가 페루의 APEC 가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한 회원 국가라도 반대가 있으면 APEC 회원국이 될 수가 없다.
 
  마투테 대사 특유의 친화력과 끈기로 칠레 등 3개 국가의 반대를 극복했고, 페루는 1997년 러시아, 베트남과 함께 APEC 멤버가 되었다.
 
  APEC 가입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주요 현안이었다.
 

  밴쿠버에서 APEC 가입을 성사시킨 직후 마투테 심의관에게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맙습니다. 마투테.”
 
  이게 후지모리가 건넨 인사의 전부였다며, 마투테 대사는 지금까지도 서운해하고 있다.
 
  한국대사는 45년간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한 마투테 대사의 마지막 자리다. 페루의 외교관 정년은 70세다. 벌써부터 조금씩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리마 해변에 자리한 아파트로 짐을 옮기고 있다. 마투테 대사는 상당한 재력가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버지니아주의 알링턴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고향인 사막도시 ‘이카(Ica)’에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집과 땅, 페루의 전통주 피스코를 만드는 포도농장이 있다. 그가 이재(理財)에 밝은 것은 형제들의 영향이 컸다. 마투테 대사는 4형제 중 둘째. 형은 페루의 ‘국가회계감사원장’을 지냈다. 두 동생은 공학을 전공하고 사업가가 됐다.
 
  “어린 시절 4형제가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아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었지만, 다른 형제들은 경제학·수학·과학이 전공이었습니다. 형제들한테 수학의 원리를 많이 배웠고, 나중에는 미시·거시 경제학을 배웠죠. 주식과 부동산의 투자이익을 분석하는 능력이 생긴 것도 형제들 덕입니다.”
 
 
  “공무원들의 다주택 문제 삼는 것 이해하기 어려워”
 
  마투테 대사는 한국의 대통령실이 두 채 이상 집을 소유한 공직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에 당황했다고 한다.
 
  “한국과 페루 두 국가는 똑같이 시민의 자유와 자본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페루보다 훨씬 경제 강국인 한국이 공무원들의 2주택, 3주택을 문제 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유럽 선진국의 중산층들은 대개 교외에 전원주택을 한두 채씩 갖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지방에 집을 보유하고 주말에 거주하는 게 지역경제에도 큰 보탬이 됩니다. ‘공무원은 집을 딱 한 채만 소유해야 한다’ 그런 규제를 가하는 선진국이 있나요?”
 
  마투테 대사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뭉텅뭉텅 투입해서 미국의 집 두 채를 산 것은 아니다. 매매액의 30% 정도만 현금으로 지불했고, 나머지 70%는 은행 융자금을 빌려서 해결했다. 매달 은행에 내는 원리금, 세금과 관리비 등은 월세를 놓아 받는 돈으로 충당했다.
 
  미국에 있는 두 집 모두 은행 융자금을 대부분 갚았다. 이제부터 받는 월세는 은퇴 외교관 마투테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줄 ‘효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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