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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인문학 〈11〉

호수에 드리워진 위대한 사랑의 密語, 워즈워스와 그래스미어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찾으소서.”

글·사진 : 문갑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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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작 名畵 〈초원의 집〉의 작가
⊙ 내가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볼 곳은 잉글랜드와 하일랜드의 접점 그래스미어
⊙ 워즈워스 이후 영국문학은 비평가 찰스 램, 소설가 월터 스콧·제인 오스틴, 시인 셸리·키츠·바이런 같은 ‘스타’들을 양산하며 전성기 초입 열어
⊙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잉글랜드에서 걷기의 심장과 영혼이 있다면 그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district)다”
⊙ 워즈워스를 비롯해 키츠, 셸리, 러스킨 같은 문학가들이 영감을 받아 불멸의 문학작품을 낳은 곳, 윈더미어를 비롯한 16개 호수
⊙ 도브코티지 근처 사라 넬슨의 진저브레드(생강빵)도 꼭 맛봐야
대표적인 호수 윈드미어 근처의 정경이다. 봄이 되면 호수 주변은 온통 수선화가 노란 꽃을 피운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그대를 향한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한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도
  결코 서러워 말자.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 없는 가슴에 품고.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며
  죽음의 눈빛으로 부수듯
  티 없는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1961년 만들어진 영화 〈초원의 빛〉에 등장하는 시다. 제목이 ‘Splendor in the grass’다. 시는 영국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가 쓴 원문과 다른 번역본이다. 즉 원문은 이렇게 전개된다.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조병화 시인이 영화에 나오는 시를 번역했다고 하는데 원문과 비교하면 무엇이 더 서정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문학에서 의역도 창작이 될 수 있다는 사례라고 본다. 한국문학 대가의 힘이다.
 
  올드팬들은 영화가 뇌리에 생생할 것이다. 고교생 역인 워런 비티(버드)와 나탈리 우드(윌마)의 풋사랑 이야기다. 남자 때문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렸다 회복한 윌마는 결혼한 버드와 목장에서 재회한다.
 
  흘러간 세월이 돌아오지 않듯, 떠나간 사랑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안 윌마가 돌아오는 차 속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시를 읊는다. 바로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이다. 한때 찬란했던 광채가 사라지는 가을처럼.
 
  〈초원의 빛〉이 한국에서 처음 상영된 게 1962년 중앙극장에서였다. 1971년 허리우드극장에서 재개봉돼 당시 청춘의 심금을 울렸다. 그해 최무룡·윤정희 주연의 동명작이 나올 만큼 대단했다.
 
  여기서 잠깐 영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한다. 워즈워스가 영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기 위해서이다. 많은 전문가는 영문학의 골격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때 이뤄졌다고 하면서 이런 사례를 제시한다.
 
  셰익스피어는 자기 작품에서 2만8829개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그 두 배가 넘는 6만여 개를 쓰고 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신조어만 1700여 개나 나온다.
 
  〈햄릿〉 한 편에 600개가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이다. ‘셀 수 없는(countless)’ ‘서두르다(hurry)’ ‘외로운(lonely)’ ‘우울한(gloomy)’…. 단어를 몇 개씩 이어 만드는 것도 그의 특기 가운데 하나였다. ‘침묵을 깨다(Break the ice)’ ‘명백한 진실(Naked truth)’ 같은 것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별은 달콤한 슬픔(Sweet sorrow)이다.’
 
  학자들은 영문학사를 고대(로마철수~노르만정복-대표작 〈베오울프〉), 중세(~1499-대표작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의 순서로 나눈다. 르네상스기(1500~1650)에 이르러 우리가 아는 존 던, 에드먼드 스펜서 같은 시인이 비로소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초강국으로 일약 발돋움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1558~1603) 재위 기간과 겹친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밤이 내려앉고 있다. 양들이 아직 배가 고픈지 눈 덮인 풀밭을 거닐고 있다.
  산문작가로는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 여러 에세이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 국가(영국)가 발전하면서 언어(영어)의 지위까지 동반상승하는 전형이다.
 
  1660년부터 1798년까지를 신고전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영문학은 화려하게 개화했다. 〈실낙원〉의 존 밀턴, 풍자의 대가 존 드라이언, 〈천로역정〉의 존 버니언 등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이번에 다룰 낭만주의 시의 거장 윌리엄 워즈워스다. 워즈워스 이후 영국문학은 비평가 찰스 램, 소설가 월터 스콧·제인 오스틴, 시인 셸리·키츠·바이런 같은 ‘스타’들을 양산한다. 이른바 문학 전성기 초입이었다.
 
  이후 토머스 칼라일, 존 스튜어트 밀, 존 러스킨 같은 사상가 겸 문학가와 샬럿·에밀리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토머스 하디, 앨프리드 테니슨이 등장하며 영문학은 세계 문학의 주류가 됐다.
 
  앞서 나는 워즈워스가 계관시인이라고 했다. 이 명칭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서 비롯된다. 즉 빼어난 시인에게 명예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워준 데서 유래하는데, 영국에서 계관시인은 종신제이며 지금은 총리의 추천으로 임명된다.
 
  그들은 일정한 연봉을 받으며 왕실의 경조사 때 시를 지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무를 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최초의 계관시인 칭호는 제임스1세 당시 1616년 B. 존슨이 받았지만, 정식으로는 1670년 J. 드라이든이 임명돼 연봉 300파운드와 카나리아제도산 포도주 1통을 받았다고 한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맞닿은, 영국 지도로 봤을 때 서쪽 중간 팬 곳 내륙에 ‘더 레이크(The Lake)’라는 지역이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더 레이크’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팻말이 자주 보인다.
 
호수 주변의 풀밭에서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은 “잉글랜드에서 걷기의 심장과 영혼이 있다면 그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district)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컴브리아(Cumbria)주에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국립공원이다.
 
  동서 50km, 남북 40km의 넓이에 윈더미어(Windermere)를 비롯해 16개의 호수가 깊은 계곡과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즈워스를 비롯해 키츠, 셸리, 러스킨 같은 문학가들이 바로 여기서 영감을 받아 불멸의 문학작품을 낳았기 때문이다. 워즈워스는 동생 도로시와 얼스워터(Ullswater)를 걸으며 다음과 같은 명작을 낳았다.
 
  산골짜기 언덕 위 높은 하늘에
  떠도는 구름처럼 이내 혼자서
  지향 없이 떠돌다 보았노라
  한 무리 모여 있는 황금 수선화
  호숫가 수목이 우거진 그늘
  미풍에 나부끼며 춤을 추었소.

 
  워즈워스의 대표적인 시 ‘수선화(Daffodils)’의 구절이다. 수선화는 ‘Narcissus’라 하는데 그리스신화에도 나온다. 수선화는 초봄인 2~3월에 꽃이 피지만 워즈워스 기념관 기념품에는 수선화가 만발해 있었다.
 
  워즈워스가 여행할 때를 제외하곤 평생을 보낸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그에겐 숙명 같은 땅이다. 1770년 코커마우스(Cockermouth)에서 변호사 아버지 존 워즈워스의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
 
  영국인들은 지명에 정관사 ‘더(The)’를 붙이길 좋아한다. 국립공원 호수지구에 ‘The Lake’, 남북쪽 고속도로는 ‘The North’ ‘The South’, 런던 금융지구는 ‘The City’인데 세상의 최초라는 자부심 아닐까.
 
  M6고속도로에서 켄달 쪽으로 빠져나가면 윈더미어~엠블사이드를 거쳐 케즈윅, 그래스미어(Grasmere) 같은 호수와 워즈워스가 특히 사랑했다는 호수 얼스로 거미줄처럼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넓이의 작은 도로들이 연결된다.
 
  워즈워스가 여덟 살 때인 1778년, 어머니는 서른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다. 아버지도 워즈워스가 열세 살 때인 1783년에 생을 마감한다. 이후 워즈워스는 큰아버지 밑에서 고독한 소년기를 보낸다.
 


도브코티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워즈워스의 시구들이 여기저기 써 있다.
  코커마우스는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작은 정원 앞에 돌로 된 대문이 세워져 있으며 옆에는 작은 카페 겸 티켓판매소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모의 침대와 아이들 방이 보존돼 있다. 홍수가 나서 집이 잠기는 바람에 개보수를 거쳤고, 그 때문인지 250여 년 전 집 같지는 않다.
 
  집 뒤로는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는데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나무 벤치가 몇 개 있고 워즈워스가 살았던 18세기 정원을 재현하겠다며 내셔널 트러스트 소속 정원사들이 지금도 꽃을 가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작은 돌이나 항아리, 혹은 낡은 화분에 다양한 꽃을 심어놓고 나무 팻말에 워즈워스의 시 한 구절을 적어놓았다.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정원 바로 뒤 작고 예쁜 강이 흐른다.
 
  워즈워스는 큰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1787년 케임브리지대학 세인트존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179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혁명의 열기로 타오르던 프랑스를 경험한 뒤 1792년 워즈워스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워즈워스가 살던 도브코티지의 전경이다.
  워즈워스는 1799년 생가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그래스미어(Grasmere)의 ‘도브코티지(Dove cottage)’란 곳에 정착했다. 원래 선술집이었다는 도브코티지는 ‘평화로운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먼저 코커마우스를 보고 그래스미어의 도브코티지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워즈워스 기념관이 여기뿐일 줄 알았다. 나중에 큰 착각임을 알았다. 도브코티지에서 1802년 워즈워스는 동생 도로시의 친구였던 메리 허친슨과 결혼해 자식 셋을 낳았다. 그래스미어의 도브코티지 역시 내셔널 트러스트가 1890년부터 관리하고 있었다. 집 옆에 기념관이 있다.
 
  내부 촬영을 금하고 있으며 규모 자체가 아주 작은데 특이하게도 일본의 짧은 단가인 하이쿠의 명인 마쓰오 바쇼와 관련된 전시물이 많았다. 바쇼는 워즈워스를 흠모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동생 도로시와 함께 살았던 이곳은 뒤는 산, 앞에는 호수가 앞의 건물에 가렸지만 작게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마을이 아기자기한 정취를 자아내며, 그가 가족과 함께 영원히 잠들어 있는 교회도 있다.
 
큰길가에서 도브코티지가 보인다.
  교회 공동묘지 바로 옆에 한국인들뿐 아니라 각국 관광객이 꼭 맛을 본다는 사라 넬슨의 진저브레드(생강빵)가 있다. 이곳에서 워즈워스는 안정되고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대표작이 대부분 여기서 쓰였다. 정원에서 강낭콩과 완두콩을 키우며 시상을 가다듬었는데 그게 한 알의 밀알이 되었는지 지금도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저녁 벽난로의 연기가 굴뚝을 통해 솟아 나오는 마을의 광경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장면과 비슷하다.
 
  워즈워스는 1808년 도브코티지를 떠나 두 번 이사를 한 다음 1813년 도브코티지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진 라이달마운트(Rydal mount)로 옮겨서 정착했다.
 
  라이달마운트는 말 그대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집이다. 앞으로는 호수가, 뒤로는 산이 솟아 있다. 햇빛 잘 들고 널찍한 이 집은 워즈워스의 자손들의 소유로, 그들이 가끔씩 묵으며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1850년 워즈워스가 사망할 때까지 37년을 산 곳이어서 13년을 산 고향 코커마우스나 8년을 살았던 그래스미어의 도브코티지보다 더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곳의 나이 든 여성관리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라이달마운트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자 꽤 흥분하며 워즈워스의 손때가 묻은 책상이며 서재, 의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녀는 집 앞의 정원을 마음껏 감상하라고 권했다.
 
  앞으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를 갖춘 정원에 장미, 수국 등 온갖 꽃이 만발해 있어 세 곳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다.
 
도브코티지 가까운 힐탑은 워즈워스가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던 곳이며,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짧아진 영국의 석양이 자그마한 마을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사위가 어둠에 잠긴다.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에 엠블사이드라는 관광도시를 지났다. 호수를 끼고 있으면서 자그마한 B&B(Bed and Breakfast・간이 숙박)들이 즐비한 예쁜 마을이다.
 
  그곳 ‘화이트 라이온 호텔’이라는 펍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나이 든 페인트공이 맥주잔을 들며 인사를 해왔다. 영국의 호텔 식당은 카페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어둠 속 펍의 야외탁자는 노동자와 중산층의 격의가 없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워즈워스가 본 호수와 가을을 생각했다.
 
  혹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워즈워드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다포딜’이라는 호텔에 묵을 것을 강력히 권한다. 호수를 앞으로 바라보고 있는 호텔 다포딜은 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깨끗한 시설과 스파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 짐을 풀고 호수를 마음껏 거닐어보라. 낮이고 밤이고, 햇살 눈부신 여름이고 흰눈 내리는 겨울이고 여러분이 시인으로 변모하는 마술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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