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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인문학 〈3〉 근대 최고의 시인 단테와 《神曲》

인류가 낳은 최고의 시인,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글·사진 : 문갑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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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에서 버림받은 단테, 베로나로 망명했다가 라벤나에 묻혀
⊙ 스스로 지은 묘비명, “여기 나 단테가 고국에서 추방되어 누워 있다”
⊙ 피렌체, 뒤늦게 라벤나에 유해 반환 요청했지만 “너희가 싫다고 쫓아낸 것 아닌가? 단테는 실로 라벤나의 시인이다”라고 조롱…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에는 假墓만
⊙ 도시국가로 분열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독립 꿈꿨지만 반대파가 외세 끌어들여 숙청당해… 그가 방황한 시간은 오디세우스의 2배, 아이네이아스의 3배
⊙ 《신곡》의 시작은 최고의 명문,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저승여행 시작
⊙ 《신곡》을 완벽히 이해하려면 신약–구약–전도서에 그리스·로마신화, 철학, 천문학 지식 필요
⊙ TS 엘리엇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근대를 나눠 가졌다. 제3자는 없다”고 극찬
산타크로체 성당 앞에 있는 단테의 동상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적인 최고의 상상력을 가진 시인(詩人)이다.” 두란테 알리기에리(1265~1321), 우리가 단테라 부르는 인물에게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바친 헌사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근대시를 이해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다”며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근대를 나눠 가졌다.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TS 엘리엇의 표현대로라면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동급처럼 보인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단테보다 299년 뒤인 1564년 영국에서 태어나 1616년 사망했다. 그가 필명(筆名)을 날리기 전 300년 동안 단테는 그야말로 문학계의 독보적 황제(皇帝)로 군림했다는 뜻이다. 단테는 《신생(新生)》 등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대표작은 단연 《신곡(神曲)》이라 하겠다.
 
  서구세계 고등교육에서 필수과목이었던 《신곡》의 원래 제목은 ‘la commedia’다. 이탈리아어로 극본(劇本) 혹은 희극(喜劇)이라는 뜻이다. 희극이라는 단어는 코미디 혹은 개그를 연상시키지만 본래는 디오니소스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와 싫어하는 상대를 비꼰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여기에 신에게 바친, 신성한이라는 형용사 ‘divina’를 붙인 이가 보카치오다.
 
  단테보다 50년 늦게 태어난 《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는 단테를 흠모했다. 가장 먼저 그의 일생에 대한 책 《단테의 삶》을 썼고 1374년 《신곡》을 주제로 공개 강연을 시작한 보카치오는 단테에게 ‘시성(詩聖·divino poeta)’이라는 호칭을 헌정했다. 그 영향을 받아 1555년 베네치아에서부터 출간된 《신곡》 인쇄본부터 ‘la divina commedia’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단테가 공직에 있을 때 근무하던 피렌체 팔라초 베키오다. 입구 왼쪽에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과 오른쪽에 헤라클레스와 카쿠스상이 보인다. 다비드상은 모조품이다.
  내가 동서문화사에서 발간한 《신곡》에 도전한다고 하니 한 지인(知人)이 “쉽지 않을 텐데…”라고 했다. 866이라는 숫자가 찍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말은 계속 뇌리를 때렸다. 이유는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왜 《신곡》이 인류의 역사에 남을 명작인데도 독파(讀破)가 쉽지 않은지, 말로 설명하기보다 《신곡》에 등장하는 문장을 살펴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싸움터를 떠나서 종려나무 잎을 받기까지 나를 떠나지 않았던 이 덕에 대해 나는 아직도 사랑의 불에 타고 있었는데 그 사랑에 의해 나는 다시 그대에게 말한다. 그대는 이 덕을 기꺼워하며 따르고 있었는데 이 소망이 그대에게 약속하는 바를 그대가 말해준다면 반갑겠다.〉 (천국편 25곡)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싸움터’와 ‘종려나무 잎’ 속에 숨어 있는 함의(含意)다. ‘싸움터’란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말한다. 로마시대 박해받던 그리스도 교도들이 삶을 전쟁처럼 살았던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종려나무 잎’은 순교의 표상이다. 더 구체적으론 서기 62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세 분에게 영예를 내리실 때마다 당신의 소망을 상징하셨음은 당신께서 아시는 바 대로입니다.〉 (천국편 25곡)
 
  여기서 ‘세 분’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천국에서 그리스도를 친견(親見)하는 영광을 얻었다는 뜻이 이 짧은 문장에 숨어 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덕인 믿음(베드로), 소망(야고보), 사랑(요한)을 상징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예문은 《신곡》을 읽을 첫 번째 자격이 《성경(聖經)》에 해박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단테 생가의 모습이다. 원래 건물을 헌 후 다시 지었다.
  〈엘렉트라가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는 안면이 있었다. 갑옷으로 무장한 카이사르는 매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펜테실레이아도 보였고 다른 곳에는 라티누스 왕이 공주 라비니아와 앉아 있는 것도 보였다.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낸 브루투스도, 루크레티아,… 그리고 모두에게서 떨어져 외로이 있는 살라딘도 보였다.〉 (지옥편 4곡)
 
  〈선량한 영혼이 예서 강을 건넌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니 카론이 너를 꾸짖었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는 짐작이 갈 것이다.〉 (지옥편 3곡)
 
  앞 문장의 엘렉트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신 아틀라스의 딸이다. 헥토르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트로이군의 총대장이었지만 적장 아킬레우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안키세스의 아들이다. 그는 트로이가 함락되자 새로운 땅을 찾다 로마제국의 시조가 됐다고 전해진다.
 
  펜테실레이아는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왕국 아마존의 여왕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며 라티누스는 라티움의 왕이다. 라비니아는 아이네이아스의 아내이며 타르퀴니우스는 로마 최후의 왕이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하고 공화제를 창시한 실존 인물이다.
 
  루크레티아는 미모와 정절(貞節)로 유명한 고대 로마의 전설적 여인이며 살라딘은 튀르크의 왕으로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군과 싸워 이겼다. 그 ‘이교도’에게 단테는 ‘모두에게서 떨어져 외로이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고급 유머다. 두 번째 인용문의 ‘강’은 망자(亡者)들이 사후에 건너는 ‘아케론 강’이다. 아케론 강은 슬픔과 근심과 죽음의 강이다.
 
  카론은 아케론 강을 왕복하는 뱃사공이다. 그가 노한 것은 이 강을 산 사람이 건넌 적이 없었으며 산 사람은 체중을 지니고 있기에 카론이 모는 가벼운 배로 강을 건너려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는 뜻이다. 이 예문들은 《신곡》을 읽을 두 번째 자격이 그리스·로마신화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폭넓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말해주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참고로 단테는 지옥에 세 개의 강이 있다고 상정했다. 지옥편 3곡에 나오는 아케론 강, 지옥편 7곡에 나오는 스틱스 강은 늪에 가까우며 지옥편 12곡에 나오는 플레게톤은 피가 철철 끓는 피의 강으로 묘사돼 있다. 여기에 강에 머리를 담그는 순간 모든 것을 망각(忘却)하는 레테 강과 에우노에 강은 연옥의 끝, 천국 직전에 있는 성스러운 숲에 있다.
 
단테 생가에 있는 단테의 흉상이다.
  〈방자한 창부(娼婦)가 그 위에 앉아 사방에 추파를 던지면서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계집을 가로채이지 않으려는 태세로 거인 하나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이 내가 보는 앞에서 여러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계집이 음란한 눈을 파뜩 나에게로 돌리자 흉포한 정부(情夫)는 계집을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후려쳤다. 의심과 분노로 미쳐 날뛰는 거인은 ‘괴물로 변한 수레’를 나무에서 풀어 숲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연옥편 33곡)
 
  이 글에서 ‘창부’는 부패한 로마교황청과 당시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이른다. 보니파시오 8세는 프랑스 왕에게 붙잡혀 고생하다 숨을 거뒀다. ‘거인’은 교황과 밀통해 흉계를 꾸미는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다. ‘숲속으로 수레를 끌고 들어갔다’는 말은 교황청이 프랑스 왕의 강제에 의해 로마에서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진 것(1309년·아비뇽 유수)을 말한다.
 
  〈누구보다도 심하게 여윈 얼굴은 본래 성스러운 교회를 수중에 넣었던 사람이다. 투르 출신으로 이제는 단식함으로써 볼세나의 뱀장어와 베르나차 백포도주의 죄를 속죄하고 있다.〉 (연옥편 24곡)
 
  ‘누구보다도 심하게 여윈 얼굴’은 1281년부터 4년간 교황으로 재임한 마르티노 4세를 말한다. 그를 두고 ‘식탐(食貪)으로 따지자면 굉장히 죄 많은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뱀장어를 무척 좋아해 볼세나 호수에서 뱀장어를 잡아다 베르나차의 화이트 와인에 담가 뱀장어를 취하게 한 뒤 구워 먹는 식성이 있었는데 그것도 1년 내내 즐길 정도였다.
 
  심지어 자기 방에서까지 뱀장어를 포도주에 담갔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먹는 것에 대해 절제를 완전히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예문은 《신곡》을 읽을 세 번째 자격이 당시 도시국가로 뿔뿔이 갈라져 반목을 거듭했던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세, 그리고 갈등의 주역이 되었던 교황 및 각국의 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극복해야 한다.
 
한 시민이 벽에 그려놓은 단테의 모습이 재미있다.
  〈몰인정하고 사악한 계모 때문에 히폴리토스가 아테네에서 쫓겨났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너도 피렌체에서 쫓겨날 것이다. 모의가 이루어지고 계획도 이미 짜여 있으므로 머지않아 실행에 옮겨지리라. 날마다 그리스도가 매매되고 있는 곳에서 그자가 생각했느니라. 세상일이란 매양 그러하지만 패한 당파(黨派)는 세상의 소리 높은 비난을 받을 것이다.〉 (천국편 17곡)
 
  이 문장에서 ‘그리스도가 매매되고 있는 곳’이란 성직자들이 온갖 죄를 저지르는 교황청이며 당시 교황은 보니파시오 8세였다. 천국편 17곡에서 단테에게 앞날을 예고하는 사람은 단테의 고조부 카차구이다이다. 단테는 당시 황제(프랑스-스페인-독일)와 로마교황과의 대립에서 교황당의 온건파 백당(白黨) 소속이었는데 교황의 배신으로 급진파 흑당(黑黨)에 패배한다.
 
  그 후 단테는 오늘날의 국무장관 격인 피렌체의 ‘프리오레’라는 관직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공금횡령죄라는 누명을 쓰고 2년간의 국외 추방과 함께 당시 피렌체에서 사용됐던 금화(金貨) 5000피오리노의 벌금형까지 받았다. 이에 단테가 불응하자 더 큰 보복을 당했다. 한 달 뒤 영구 추방과 함께 피렌체 사법당국에 발각될 경우 화형(火刑)에 처하겠다는 것이었다.
 
  20여 년 가까운 망명생활의 신산(辛酸)을 단테는 《신곡》 천국편 17곡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남의 빵이란 얼마나 쓴 것인지 또 남의 층층대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결국 단테는 고향 피렌체가 아닌 베로나와 라벤나를 전전했다. 1321년 라벤나 영주의 요청으로 베네치아에 외교사절로 파견됐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피렌체 인근 라벤나의 성프란체스코 수도원의 한 모퉁이에 묻혔다. 단테의 묘비는 그가 죽은 지 160년이 지난 1483년 베네치아의 집정관 베르나르도 벰보가 세워줬는데 묘비에는 단테 스스로가 써둔 글이 새겨졌다. “여기 나 단테가 고국에서 추방되어 누워 있다.” 이로 미루어 모든 희망을 잃은 단테에게 《신곡》은 삶의 유일한 보람이었을 것이다.
 
카페 골목에서 발견한 단테의 그림이다.
  단테는 《신곡》에 《성경》과 그리스·로마신화뿐 아니라 문학·철학·예술지식을 종횡(縱橫)하며 지옥, 연옥, 천국을 그려냈다. 그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것을 성취한 것이다. 피렌체는 라벤나에 단테의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가 핀잔만 먹자 1829년 산타크로체 성당에 단테의 가묘(假墓)를 세웠다. 거기엔 “가장 고귀한 시인을 경배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저 옆구리가 몹시 마른 자는 미켈레 스코토이다. 그는 참으로 요술과 마법을 부리는 재주가 능란했다. 보라, 구이도 보나티를, 또 아스덴테를. 그들은 가죽과 끈만 주무르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이제야 뉘우치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지옥편 20)
 
  이 문장에 등장하는 미켈레 스코토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점성술사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 주석(註釋)을 단 인물이다. 그의 주석서가 아라비아로 넘어갔는데 이탈리아인들은 그리스 서적이 아닌 아라비아에서 역수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해 비로소 그의 철학세계를 접하게 됐다. 그만큼 중세는 유럽에서 지식의 암흑기였다.
 
  구이도 보나티와 아스덴테는 각각 점성술사와 마법사다. 《신곡》에는 이처럼 마포 김서방, 압구정동 박사장 같은 자신과 관계되는 인물들이 자객처럼 갑자기 불쑥 등장한다. 그들을 단테는 가차 없이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보낸다. 개인적 친소(親疎)가 작용했을 것이다. 앙갚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중 단테가 가장 멸시한 이가 교황 보니파시오 8세다.
 
  인용한 글들을 보면 《신곡》을 이해하기 위한 네 번째 자격이 단테의 실제 삶을 알아야 한다는 것임을 수긍할 것이다. 그래야 그가 《신곡》에서 얼마나 날카롭게 인물들에 대한 주관적인 평을 하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다만 뜬금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단테의 주변 인물들은 무시해도 괜찮다. 우리가 700년 전 피렌체나 베로나, 피에솔레에 살던 갑남을녀를 다 알 수는 없다.
 
단테 생가 앞 보도블록에 나타난 단테. 한 노파가 이걸 알려주면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다섯 번째 《신곡》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구축해 놓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구조와 당시 단테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지리관(地理觀)의 이해이다. 《신곡》은 서두(序頭) 격인 1곡을 시작으로 지옥-연옥-천국이 각각 33편씩이다. 즉 전체가 100곡으로 구성됐는데 이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의 구조와 같다.
 
  〈인생의 중반기에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숲속이었다. 그 가혹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도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본 두세 가지 일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단테 《신곡》의 도입부를 이탈리아어로 이탈리아의 어느 식자층(識者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읊는다면 공짜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신곡》의 시작은 문장의 아취(雅趣)가 그윽하지만 그게 사실임을 내가 담보할 수는 없다. 숲에 들어간 단테의 앞을 표범과 사자와 이리가 가로막는다. 각각 음란(淫亂)과 오만과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들이다.
 
  이때 한 사람이 나타난다. 로마의 대(大) 서사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기원전 70~19)다. 베네치아 인근 만토바 출신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을 “안키세스의 정의로운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노래했다”고 소개하자 단테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한없는 존경심을 표한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럼 당신이 바로 그 베르길리우스,
  벅찬 강물처럼 말의 원천이 되었던 분입니까?
  오오 시인의 명예이고 빛이신 당신,
  오랫동안 간절한 열망과 큰 애정을 갖고 당신의 시집을 찾아 읽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입니다.
  나에게 명예를 안겨준 아름다운 문체는 오로지 당신에게 배운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 짐승을. 저놈한테 쫓겨 되돌아온 것입니다.
  스승님 여기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저놈이 있으면 맥박도 혈관도 모두 떨림이 멎지 않습니다.〉
 
  이렇게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저승여행을 시작한 단테는 지옥편 4곡에서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 베르길리우스 다음인 6번째로 슬그머니 갖다 놓는다. 시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쯤에서 독자들은 미소지을 것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화를 본다.
 
피렌체 시내의 상점에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단테가 등장한다.
  〈오! 스승님, 학예의 자랑이신 스승님,
  이와 같은 영광을 받으며 다른 이들과 다른 모습을 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베르길리우스)가 나에게 대답했다.
  “이 사람들의 명성은 너의 세상에서 널리 알려져 있듯 여기서도 천상의 혜택을 받고 다른 이들과 달리 특별한 지위에 올라가 있다.”
  이때 목소리가 들렸다.
  “떠나갔던 그가 지금 돌아왔다. 위대한 시인이다, 모두 경의를 표하라.”
  그 목소리가 멎고 주위가 조용해졌을 때 네 명의 큰 그림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슬픈 빛도 기쁜 빛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착한 스승(베르길리우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른 세 사람 앞에 서서 왕자(王者)처럼 손에 칼을 들고 오는 사람을 보라.
  저자가 시인의 왕(王) 호메로스이다.
  다음에 오는 이가 풍자시인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가 셋째이고 맨 끝이 루카누스이다.
  아까 나를 부른 ‘시인’이라는 한마디의 이름을 이분들은 모두 나와 같이 나누고 있다.
  이들이 나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고마운 일이야.”
  다른 새들보다 높이 하늘을 나는 매와 같은
  그 숭고한 시의 왕자가 이끄는 훌륭한 한 일파가 만나는 광경을 이렇게 하여 나는 목격하였다.
  다섯 사람은 잠시 담소하더니 내 쪽을 돌아보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내 스승도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분에 넘치는 영광을 베풀어 이 현자들의 여섯 번째 사람으로서 나를 그들 모임에 초대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단테의 피안(彼岸)으로의 여행은 서기 1300년의 부활절인 성(聖) 금요일 저녁에 시작돼 다음주 목요일 아침까지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 당시 단테는 지구의 절반은 육지, 나머지 절반은 바다라고 생각했다. 육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혹은 스페인의 카디스), 동쪽은 인도의 갠지스 강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예루살렘에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밑으로 내려가면 대척점, 즉 예루살렘에서 볼 때 지구의 반대편이 연옥이며 그 중간에 지옥이 펼쳐진다. 지옥은 모두 아홉 개의 옥(獄)이며 그중 8옥이 10개의 악의 구렁으로 갈라져 있다. 열 개 구렁은 뚜쟁이, 아부하는 자, 성직 매매, 마법, 탐관오리, 위선, 절도, 권모술수, 분열, 허위의 죄를 범한 자들이 있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지옥이면서 형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머무는 림보(Limbo)라는 곳도 있다. 림보는 ‘비통의 깊은 골짜기’라는 뜻인데 이들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살다 죽었으므로 세례를 받지 않아 천국에는 못 가지만 덕이 있기에 ‘한숨은 쉬고 있으나 통곡은 하지 않는’ 것이다. 기원전 사람이었던 베르길리우스 역시 림보에 거처하고 있었다.
 
단테 뮤지엄에 있는 연옥의 상상도다.
  지옥 다음인 연옥은 산(山)의 형태인데 밑바닥부터 피(彼) 파문자, 임종 시 회개한 자, 베드로의 문(門), 교만한 자, 시기하는 자, 분노하는 자, 게으른 자, 탐욕하고 낭비하는 자, 탐식하는 자, 욕정에 사로잡힌 자들이 자신의 죄가 사면될 때까지 머무는 곳이다.
 
  천국의 구조는 월천→수성천→금성천→태양천→화성천→목성천→토성천→항성천(恒星天)→원동천을 거쳐 하느님이 머무는 지고천(至高天)에 이른다. 《신곡》을 읽다 보면 지옥, 연옥은 상상이 가능하다. 우리가 여러 문화를 통해 짐작하던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국은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해 냈기에 당시의 별자리 등 천문학적 설명이 계속 튀어나오고 단테의 박물학자(博物學者)적인 지식이 총동원돼 읽기에 다소 부담스럽다. 재미있는 것은 천국의 어느 자리에 어떤 인물이 배치돼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천국편 33곡은 성 베르나르가 마리아에게 단테가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청하는 장면이다.
 
  〈어머니이신 동정녀, 당신 아들의 따님이시여.
  어느 피조물보다 겸허하고도 가장 존귀하시며 영원한 신의 뜻이 정하신 대상이시여…
  지금 그(단테)가 하느님 모습을 뵈옵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 나 자신이 하느님 뵈옵기를 원할 때보다 더욱 간절하오니 여기에 모든 기도를 바쳐 모자람이 없기를 바라옵니다.〉
 
  성 베르나르가 성모 마리아에게 ‘당신 아들의 따님이시여’라고 한 것은 대천사 미카엘의 수태고지(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받아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았는데 그 예수가 곧 하느님과 일체라는 뜻이다. 지고천에는 하느님이 있고 그 밑에 마리아를 필두로 이브, 베아트리체, 세례 요한, 아담과 베드로, 안나, 루치아 등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짧은 지면에 내가 제시한 ‘《신곡》 완전정복’하는 식으로 5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지침서를 쓸 수도 없거니와 그럴 능력도 없다. 《성경》을 비롯해 복음서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며 이는 그리스·로마신화나 천문학적 지식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된다. 다만 3번째와 4번째 조건, 즉 당시 이탈리아가 처한 정세와 단테의 삶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단히 요약해 볼 수 있겠다.
 
  로마제국은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으로 옮겼다. 서기 395년 당시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죽기 전 로마제국을 동서(東西)로 나누어 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데 서로마제국이 서고트족, 훈족, 반달족 등 야만족에게 잇따라 유린당하더니 476년 게르만 출신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동로마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스페인을 비롯한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는가 하면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는 등 1453년 오스만튀르크에 멸망하기 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그 사이 옛 로마제국의 본거지 이탈리아는 베네치아공화국, 페라라공국, 피렌체공화국, 제노바공화국, 시에나공화국, 나폴리공화국,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로 분열됐다.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에는 교황이 지배하는 교황령이 있었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요즘 같으면 승용차로 한두 시간 거리인 피렌체와 사탑(斜塔)으로 유명한 피사와 시에나 같은 이웃 나라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상잔(相殘)을 거듭했다. 거기엔 음모와 배신과 반목과 암살과 저주가 버무려져 있었다. 《신곡》의 페이지마다 이런 내용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 벽에는 피렌체를 빛낸 명사들의 동상이 있다. 단테의 모습이다.
  당시 유럽 최강국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었다. 두 나라 모두 옛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반도에 욕심을 부렸기에 이탈리아는 주변국의 외풍에 시달렸다. 서로마제국 멸망 후 첫 주인은 프랑크왕국의 메로빙거 왕조에서 궁재(宮宰·토지 등 재산권 관장)를 지내던 피핀(714~768)이다. 그는 섬기던 왕을 폐위하고 751년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
 
  피핀은 교황의 요청으로 로마 주변을 지배하던 랑고바르드 왕국을 토벌한 뒤 이탈리아 중부 영지(領地)를 교황에게 인도했다. 이게 로마교황령의 기원이다. 그 대가로 피핀은 하극상의 왕위 찬탈에 대한 정당성을 로마교황으로부터 인정받았다. 피핀이 죽자 왕국은 두 아들 카를과 카를로만에게 분배됐으나 둘째가 일찍 세상을 떠 카를이 단독 지배자가 됐다.
 
  카를은 독일 작센, 바이에른을 비롯해 동유럽 보헤미아,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손에 넣었다. 그런 그를 노린 사람이 당시 교황 레오 3세다. 레오 3세는 카를에게 ‘교회의 보호자’로 자신을 도와줄 것을 제안했다. 대신 카를에게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冠)을 씌워주고 짙은 붉은색 옷을 입혀줬다. 관(棺) 속으로 들어갔던 서로마제국이 뜬금없이 부활한 것이다.
 
  서기 800년 12월 25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이 열렸는데 카를 황제는 속으로 거북했다고 한다. “왜 로마교황이 황제의 관을 씌워주는 것인가?” 이런 전례 없는 일이 마치 교황이 황제의 서임권(敍任權)을 가진 것처럼 비쳤는데 레오 3세는 아예 기록까지 조작해 로마교황이 로마황제를 임명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서쪽을 로마교회에 기증한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증 문서’가 그것이다. 이는 역사상 최대의 위서(僞書)였다. 814년 카를 대제가 사망하자 제국은 장남 루트비히 경건왕(778~840)으로 넘어갔다가 루트비히 경건왕이 죽은 뒤 세 아들에 의해 삼분(三分)됐다. 세 아들은 843년 베르조약을 통해 영토를 괴상하게 분할하는 데 동의했다.
 
  장남 로타르 1세는 황제 칭호와 독일 및 프랑스 중부와 프로방스, 이탈리아(로타르 왕국)를, 셋째 루트비히 2세는 프로방스를 제외한 지금의 프랑스(서프랑크왕국), 넷째 카롤루스 대머리왕은 서부를 뺀 지금의 독일(동프랑크왕국)을 차지했다. 유럽을 위에서 아래로 쭉 갈라 셋으로 나눈 구획 정리는 지금도 계속되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간 반목의 원인이 됐다.
 
  카롤링거 왕조의 맥이 끊어지자 서로마제국 황제 자리는 독일 작센 왕조→잘리에르 왕조(프랑켄 왕조라고도 불림)→슈타우펜 왕조(호엔슈타우펜이라고도 불림)로 이어지는데 신성(神聖)이란 말이 붙은 것은 1157년 슈타우펜 왕조의 바르바로사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을 때다. 이탈리아어로 ‘붉은 수염’이라는 뜻의 정열적인 군주 바르바로사는 그때 교황권에 도전했다.
 
  “교황에게는 세속 권력에 개입할 권리가 처음부터 없다. 황제는 신으로부터 직접 세속의 통치를 위임받았고 제국은 신으로부터 직접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언하며 자신의 왕국을 ‘신성제국’이라 칭한 바르바로사를 제압하기 위해 역대 교황들은 국가 간 협상과 음모, 성직을 매매해 번 돈으로 상대방을 매수하는 등 타락해 갔으며 이게 훗날 종교개혁을 불렀다.
 
단테의 가묘가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이다.
  1250년 12월 13일 프리드리히 황제의 죽음을 끝으로 슈타우펜 왕조가 멸절하면서 1273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가 독일 왕으로 등장할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도 비어 있었다. 이게 대공위(大空位) 시대다. 바로 이런 파란만장한 시대에 단테는 오늘날의 국무장관 격인 피렌체 공화국의 중책(重責)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피렌체에는 두 파벌이 있었다.
 
  교황을 옹호하는 겔프(Guelfi)파와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Ghibellini)파다. 겔프의 어원(語源)은 독일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벨프가(家)의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기벨린은 앞서 말한 슈타우펜 혹은 호엔슈타우펜이라 불리는 왕조의 성(城)인 블링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벨프가와 슈타우펜가는 독일 황제 자리를 놓고 12세기부터 싸운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이 싸움이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번졌는데 피렌체는 1266년부터 겔프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겔프파는 ‘Bianchi(희다)’와 ‘Neri(검다)’파로 다시 분열되었다. 이것은 대립되는 두 대표적 가문의 상징색에서 유래됐다. 상공업자 중심의 비앙키파(백당·白黨)는 귀족 중심의 네리파(흑당·黑黨)와 교황을 지지하는 점에선 같았지만 독립성이 강했다.
 
  《신곡》에서 단테는 교황과 교황청에 비판적이었는데도 겔프파에 속한 것은 그가 교황의 간섭보다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의 이탈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더 우려했기 때문이다. 《제정론》이라는 단테의 또 다른 저서를 보면 단테는 일단 교황의 힘에 기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외적(外敵)을 막은 뒤 독립 피렌체 왕국을 세울 꿈을 품고 있었다.
 
  겔프 네리당은 1301년 교황과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동생이었던 발루아 백작 샤를의 군대를 피렌체로 끌어들였다. 내부를 치려 외부 힘을 빌린 것이다. 정권을 독점한 네리당은 이후 비앙키당을 숙청했는데 이 덫에 단테가 걸려든 것이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의 1곡부터 7곡을 피렌체 집에 놔뒀으나 추방당하면서 원고가 사장(死藏)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단테의 집에 난입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궤짝 속 원고를 찾아 읽고는 감동해 타지에 살던 단테에게 그 원고를 보내줬다고 한다. 원고를 되찾은 단테는 《신곡》 집필을 재개했다. 부분별로 글이 완성될 때마다 카네 델라 스텔라라는 친지에게 보내 여러 복사본을 만든 뒤 나눠서 보관했다. 그런데 단테가 급사하면서 13편의 원고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어느 날 단테의 큰아들의 꿈에 단테가 나타나 원고가 있는 방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잠에서 깬 아들이 그 자리에 가보니 과연 원고가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시는 이런 극적인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는 다소의 과장도 섞였겠지만 과연 《신곡》은 하늘이 내린 작품이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앞서 나는 단테의 《신곡》이 쉽지 않은 작품이며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갖춰야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을 걱정하는 독자들에게 히말라야 등산을 상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각주를 읽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이른다. 그 사이 독자들은 경박한 요즘과 달리 인류 지성(知性)의 최고봉이 주는 희열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오늘날의 소설가들은 단테의 《신곡》에 몰두하기보다 그를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신비로운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그가 템플기사단의 일원이었다느니 고대 비밀의 전수자라느니 하는 이야기부터 아예 단테를 탐정으로 그려낸 소설도 있다. 이탈리아 작가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등 4권과 미국 작가 매튜 펄이 쓴 《단테클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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