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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여인들 〈2〉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한씨 미녀의 사랑

글 : 엄광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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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안장왕, 태자 시절에 백제 땅 개백에서 놀다가 한씨녀와 사랑에 빠져
⊙ 한씨녀가 감옥에서 읊은 ‘단심가’는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 한씨녀의 고난과 구출은 《춘향전》과 흡사
⊙ 안장왕과 한씨녀의 사랑의 무대인 왕봉, 고봉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인근으로 비정

엄광용
1954년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한국사 전공) 수료 /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외 다수. 2015년 장편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제11회 류주현문학상 수상
행주산성에서 내려다본 한강.
행주산성 인근의 옛 지명은 개백으로 고구려 안장왕이 한씨 미녀를 만난 곳이라고 한다.
  안장왕(安臧王)은 문자명왕(文咨明王)의 장자다. 어릴 적 이름은 흥안(興安)이다. 문자명왕 재위 7년에 태자가 되었고, 재위 28년에 문자명왕이 죽고 나서 고구려 제22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기록에는 안장왕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 재위 11년 10월에 안장왕이 오곡성(五谷城)에서 백제군과 싸워 이기고 적 2000여 명을 죽였다는 기록만 전할 뿐, 나머지는 별다른 사건도 없이 그렇고 그런 내용만 담겨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 잡지(雜志) 지리(地里)편에 보면 왕봉현(王逢縣)과 달을성현(達乙省縣)에 대한 설명 중에 다시 안장왕 이야기가 아주 짧게 언급되고 있다. 즉 왕봉현은 개백(皆伯)이라고도 하는데, 한인(漢人·氏) 미녀(美女)가 안장왕을 맞이한 지방이므로 ‘왕봉(王逢)’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을성현은 한씨 미녀가 고산(高山) 위에서 봉화(烽火)를 피워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므로 후에 고봉(高烽)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렇게 《삼국사기》에 나오는 왕봉현과 달을성현의 지명 유래 기록을 통하여 ‘안장왕과 한씨 미녀’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과 《해상잡록(海上雜錄)》에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해상잡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옛날 문헌 《해상잡록》에 나오는 기록을 토대로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한인(漢人)’은 ‘한나라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성씨이므로, 한씨(韓氏)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한씨(漢氏)가 없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가 《해상잡록》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상고사》에 소개한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한씨 미녀,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 그가 지은 ‘단심가’는 한씨녀가 옥중에서 부른 ‘단심가’와 흡사하다.
  〈안장왕은 태자 시절에 상인의 차림을 하고 당시 백제의 땅인 개백(지금의 행주산성 부근)에 가서 놀았다. 그곳에는 장자(長者)인 한씨(韓氏)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딸 주(珠)가 절세가인이었다. 국경을 지키는 백제 군사의 감시를 뚫고 몰래 개백현에 들어가 한씨 저택으로 숨어든 태자는 한주 낭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아마도 한주 낭자의 아버지는 상인 출신으로 개백현의 부호였을 것이다. 고구려 태자가 상인 복장으로 개백현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면 그의 저택를 찾아갔을 때도 물품 거래의 명목을 대고 객사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 고구려 태자 흥안과 백제 미녀 한주는 남모르게 정을 통하고 부부가 될 것까지 약속했다.
 
  “나는 고구려 태자인데, 귀국하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와 백제군을 물리치고 나서 정식으로 그대와 결혼할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온 태자는 부왕인 문자명왕이 죽자 곧 고구려의 왕이 되었다.
 
  안장왕은 한씨 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쳤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한편 개백의 태수는 한씨 미녀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몸소 찾아가 청혼을 했다. 그때 한씨 미녀가 말했다.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는데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그 남자의 생사나 안 뒤에 청혼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태수는 화가 나서 그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한씨 미녀가 누구인지 대답을 하지 않자 태수는 다시 다그쳤다.
 
  “바른대로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그자는 고구려 첩자가 분명하다. 적국의 첩자와 정을 통했으니 너는 죽을죄를 지은 것이다.”
 
  태수는 한씨 미녀를 옥에 가두고 온갖 감언이설로 꾀었다. 그러나 한씨 미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조를 지키고자 했다.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렇게 한씨 미녀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자, 태수는 그녀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이때 고구려의 안장왕 귀에도 한씨 미녀가 옥에 갇혀 온갖 고초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들어갔다. 안장왕은 고민 끝에 ‘을밀’이라는 지혜롭고 용감한 장수를 보내 한씨 미녀를 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을밀이 ‘한씨 미녀 구하기 작전’에 성공하자 안장왕은 몸소 달려가 한씨 미녀를 만났다.〉
 
  한주가 자신의 심정을 읊었다는 시조가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로 잘 알려진 시조와 거의 구절과 내용이 흡사하다. 대개 ‘단심가’는 정몽주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 유추해 보건대, 정몽주가 읊었다는 ‘단심가’는 원래는 오래 전에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생각하며 읊은 연시(戀詩)였다고 생각된다.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를 읊었을 때, 정몽주는 고구려 시대 때부터 인구에 회자(膾炙)되어온 한씨 미녀의 ‘단심가’를 읊어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 수도 있다.
 
 
  《춘향전》의 모델이 된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
 
  고구려 안장왕 때의 장군 을밀(乙密)에 대한 이야기 역시 《삼국사기》에는 전하지 않고 《해상잡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나오고 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상잡록》의 기록에서 발췌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책은 전해지지 않아 원전의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무튼 신채호의 기록을 토대로 을밀 장군을 보내 한씨 미녀를 구하게 된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 안장왕은 태자 시절 백제 땅인 개백현(皆伯縣)에 사는 한씨 미녀 ‘한주(韓珠)’를 사랑했는데, 즉위하고 나서도 그녀를 잊지 못하여 신하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개백현을 회복하여 한주를 구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금은 물론 만호후(萬戶侯)의 상을 줄 것이다.”
 
  이때 장군 을밀이 선뜻 나섰다.
 
  “천금과 만호후도 좋지만, 신의 소원은 안학 공주와 결혼하는 것뿐입니다. 신이 안학 공주를 사랑함이 대왕 폐하께서 한씨 미녀를 사랑하심과 마찬가지입니다. 폐하께서 만일 신의 소원대로 안학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이 폐하의 소원대로 한씨 미녀를 구해오겠습니다.”
 
  을밀은 오래 전부터 문자명왕의 딸인 안학 공주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다. 문자명왕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올라 안장왕이 되었으니, 안학 공주는 바로 왕의 친누이동생이었다.
 
  안장왕은 마침내 을밀의 청을 허락했다.
 
  “좋소. 을밀, 그대가 한씨 미녀를 구해온다면 바로 안학 공주와 결혼을 시키도록 하겠소.”
 
  당시 안장왕은 마음이 급했다. 한주의 미모에 반한 개백현의 태수가 청혼을 했는데,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서 그것을 거절했다. 그러자 태수는 적과 내통을 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한주를 옥에 가둔 채 감언이설로 달래고 때로는 엄포를 놓는 등 온갖 신체적·정신적 고문을 하면서 괴롭혔다.
 
  도무지 한주가 말을 듣지 않자, 태수가 죽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고구려 안장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니 을밀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을밀은 곧 수군 5000명을 거느리고 바닷길로 떠나면서 안장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먼저 백제를 쳐서 개백현을 회복하고 한씨 미녀를 살려낼 것이니, 폐하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천천히 육로로 오시면 수십 일 안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을밀은 곧 배를 타고 바닷길을 통해 백제 땅으로 들어갔다. 개백현은 지금의 행주산성이므로, 강화도를 통해 한강으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는 뱃길이었다.
 
  일단 을밀은 결사대 20명을 뽑아 평복으로 위장하여 개백현으로 잠입시키고, 그는 5000의 수군을 지휘하여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한편 그 무렵, 백제의 개백현 태수는 마침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 관리와 친구들을 모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까지도 옥에 갇혀 있는 한주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태수는 졸개를 보내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다음과 같은 자신의 말을 전하게 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오늘 너를 죽이기로 작정했으나, 만약 네가 마음을 돌리면 곧 너를 살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이 바로 네가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주는 태수의 전하는 말을 냉정하게 되물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태수가 내 뜻을 빼앗지 않으면 오늘이 태수의 생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태수의 생일이 곧 내가 죽는 날이요, 만약 내가 사는 날이면 태수의 죽는 날이 될 것이다.”
 
  졸개로부터 이 같은 한주의 말을 전해들은 태수는 크게 노하여 빨리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을밀의 결사대 20명이 춤추는 광대패로 가장하고 연회장에 들어가서,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생일 축하객들을 베어 넘기며 소리쳤다.
 
  “지금 고구려 군사 10만이 개백현에 입성하였다!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모두들 손을 들고 항복하라!”
 
  그러자 연회장에 있던 백제의 태수를 위시하여 이방과 집사, 그리고 그들의 권속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을밀의 군사 5000명이 성을 타넘고 들어가 백제 군사들을 일거에 제압했다. 그 틈을 타서 을밀은 호위무사들과 함께 감옥을 부수고 들어가 한주를 구할 수 있었다.
 
  개백현이 고구려 군사들에 의해 점령되자, 육로를 통해 대군을 이끌고 백제 땅을 밟은 안장왕은 아리수(漢江) 일대의 각 성읍을 쳐서 항복받고, 아무런 장애 없이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개백현에 이르렀다.
 
  안장왕은 태자 시절에 사랑했던 한주를 만났으며, 그는 약속대로 친누이동생 안학 공주를 을밀에게 시집보냈다.〉
 
  고구려 안장왕과 한주, 을밀과 안학 공주, 두 쌍의 사랑 이야기는 조선시대 남원 땅의 성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인 《춘향전》과 흡사하다. 《춘향전》은 순수창작이라기보다는 고구려 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일 수 있다.
 
 
  고봉은 지금의 고양시 일대
 
경기도 고봉산 늪지 생태공원. 한씨녀가 봉화를 피워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라 해서 ‘고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왕봉현과 달을성현은 지금 한강가의 행주산성에서 고양시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비정(比定)된다.
 
  《삼국사기》 기록에 보면 안장왕이 백제를 공격한 것은 재위 5년(523년)과 11년(529년) 두 차례였다. 그러나 백제 땅의 한씨 미녀를 구하기 위해 장수 ‘을밀’을 보낸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잘 알 수 없다. 다만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결과론을 놓고 볼 때 안장왕 11년이 맞을 것 같은데, 그 기간이 태자 시절 한씨 미녀와 만난 때로부터 너무 오래된 것이 또한 그와 같은 사실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안장왕이 왕봉현에서 한씨 미녀를 만난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개백(皆伯)이라고도 하는데,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맞이한 지방이므로 ‘왕봉(王逢)’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달을성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씨 미녀가 고산(高山) 위에서 봉화(烽火)를 피워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므로 후에 ‘고봉(高烽)’이라 이름하였다.〉
 
  ‘왕봉(王熢)’의 봉 자와 ‘고봉(高烽)’ 봉 자가 모두 ‘봉화’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안장왕은 한씨 미녀를 구하기 위해 을밀 장군을 보냈을 때 성공하면 봉화대에서 신호를 보내 만나자는 약속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을밀 장군은 한씨 미녀를 구하자, 곧바로 그녀와 함께 고산에 올라가 봉화를 피워 안장왕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달려오게 만들었을 것이다.
 
  달을성과 고봉은 지금의 고양시 관산동과 고봉산 일대로 비정된다. 실제로 고봉산 일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도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안장왕편이나 백제본기 성왕편에도 529년에 오곡성(五谷城·황해도 서흥)에서의 전투 기록이 나온다. 당시 안장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북변을 쳐들어왔는데, 이때 백제에서는 좌평(佐平) 연모(燕謨)가 보·기병 3만으로 고구려군과 오곡원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때 백제군은 고구려군에게 패배하여 전사자가 20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행주산성 앞의 한강을 삼국시대에는 ‘왕봉하(王熢河)’라고 불렀다. 이 지명 또한 안장왕과 깊은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이 지역으로 안장왕이 보낸 을밀 장군의 5000 군사가 침투해 들어와 개백현 감옥에 갇혀 있던 한씨 미녀를 구출했기 때문이다.
 
  일부 역사학자는 《삼국사기》 지리편에 나오는 안장왕과 한씨 미녀에 관한 기사가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의 김대문(金大問)이 지은 《한산기(漢山記)》의 기록을 인용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기도 했다. 《한산기》 역시 《해상잡록》처럼 현재는 전해지고 있지 않은 고대(古代) 문헌이나, 고려 중기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할 당시에는 참고문헌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기사가 《삼국사기》 본기에 기록되지 않고 지리지에만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본기에서 다룰 만큼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산기》는 김대문이 한강 유역에 있던 한산주(漢山州)의 도독으로 부임했을 당시에 그 지역의 역사·지리·풍속 등을 다룬 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부식은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가 설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사실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 잡지(雜志) 제6권 지리편 ‘한산주’의 지명 소개에서 간략히 다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을밀대의 유래
 
  한편 을밀 장군의 이름은 평양성 을밀대(乙密臺)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아들 을밀이 적과 싸워서 지켜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을밀대는 금수산 을밀봉에 있는 평양성 내성(內城)의 북장대(北將臺)로, 고구려 6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이다. 안장왕 시절의 을밀 장군과는 연대가 맞으나, 을지문덕 아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그 활동 시기가 7세기 이후이므로 100년의 착오가 생긴다. 아마도 을지문덕의 을(乙)이란 글자에서 연관성을 가져다붙여 을밀대가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나돈 것일지도 모른다.
 
  을밀 장군의 아내가 된 안학 공주의 경우, 현재 평양시 대성산 기슭에 그 터가 남아 있는 안학궁과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안학궁은 안학 공주가 태어나기 이전인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성을 이전할 때 건설한 것이므로 연대가 맞지 않다. 안학 공주의 아버지 문자명왕이 안학궁에서 따다 딸의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역사와 인물, 풍속과 지리는 서로의 연관 관계 속에서 설화나 전설로 재구성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거기에는 팩트도 있고, 구전되면서 많은 사람의 상상력이 포함되어 여러 차례 윤색(潤色)이 가해졌을 것이다. 한씨 미녀가 감옥에서 읊었다는 ‘단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의 진위를 어떻게 가릴 것이며, 안장왕과 한씨 미녀나 을밀 장군과 안학 공주 두 커플의 설화와 같은 이야기를 토대로 엮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춘향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두고두고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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