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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27〉 김현감호(金現感虎)

- 여자는 탑을 돌며 무엇을 빌었나?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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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로 둔갑한 호랑이, 흥륜사 탑돌이에서 만난 김현과 하룻밤 정을 통한 후 자기 희생해 출세길 열어줘
⊙ 탑돌이 하면서 사랑을 간구했던 호랑이가 어수룩하지만 진실된 사랑을 준 김현에게 감동한 것
⊙ ‘야합(野合)’은 고대에는 신(神)과 통혼하는 중요한 방법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조선 시대 민화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모습의 호랑이. 한국인들에게 호랑이는 무섭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과 소통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김현감호(金現感虎)〉 조에는 신라 사람 김현(金現)과 당(唐)나라 사람 신도징(申屠澄)이 여자로 변신한 호랑이를 만나는 기이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라는 제목처럼 우선 김현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에는 해마다 2월 초파일(初八日)에서 보름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흥륜사(興輪寺)의 전각과 탑을 다투듯이 빙글빙글 돌며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다.
 
  원성왕(元聖王) 때 김현(金現)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탑돌이를 했다. 그는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홀로 탑을 돌았는데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따라 돌았다. 그러다 서로 마음이 통해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탑돌이를 마친 김현은 처녀를 구석진 은밀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정을 통했다.
 
  일을 마치고 여자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아쉬운 마음에 따라갔다. 여자가 거듭 사양하며 거절했지만 김현이 막무가내로 쫓아갔다. 그렇게 서산(西山)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에 들어갔다. 집에는 모친으로 보이는 할미가 있었다.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구냐?”
 
  여인이 사정을 말하자, 할미가 대꾸했다.
 
  “비록 좋은 일이긴 하나 그런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雖好事 不如無也]. 하지만 이미 저질렀으니 나무라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네 형제들이 해코지를 할까 걱정이다. 은밀한 곳에 숨게 해라.”
 
  할미의 걱정은 당연했다. 다 큰 딸이 나가서 그렇고 그런 일을 벌이고 돌아온 데다 그 자취까지 남겨 남자가 따라왔으니 오빠들이 보면 사달이 날 일이었다.
 
  신라 때가 지금보다는 성적(性的)으로 자유로웠으나 아무 도리도 없고 격식도 없는 막무가내 식은 아니었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太宗 春秋公)〉 조를 보면, 김유신(金庾信)의 여동생 문희(文姬)와 김춘추(金春秋)가 야합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성풍속을 잘 보여준다.
 
  김유신이 김춘추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의도적으로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려 놓고는 제 집으로 가서 꿰매자고 한다. 그리고 여동생 문희에게 바느질을 해 주라며 방으로 밀어 넣는다. 김유신의 의도는 후일 왕이 될 김춘추와 자신의 여동생을 엮어 주려는 거였다. 물론 여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집안을 위한 전략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문희와 야합을 하게 된 김춘추는 자주 왕래하며 정을 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희의 배가 불러 왔다. 오빠 김유신은 짐짓 노발대발했다.
 
  “네가 부모님께 아뢰지도 않고 임신을 했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호령을 불같이 하며 마당 한가운데 장작 쌓아 불을 붙여 놓고 태워 죽이겠다며 쇼를 벌인다. 그 연기를 보고 놀란 김춘추가 사정을 알아보고는 결국 정식으로 문희를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다. 그렇게 김유신의 음모극이 성공한 바탕에는 ‘함부로 몸을 굴리면 안 된다’는 당연한 논리가 깔려 있고, 그것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람이 사는 곳엔 언제 어디든 원칙과 격식이 있다. 신라 때가 지금보다 자유로운 연애와 성관계가 가능했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무작정 들이미는 식은 전혀 아니었다.
 
 
  처녀로 변한 호랑이
 
2009년 경주시 사정동 경주공고 배수로 건설현장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수습한 ‘○(王?)興○’라는 글자를 세로로 새긴 신라시대 수키와 편. 원래는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고 새겼다고 추정되며, 이는 이 일대가 흥륜사가 있던 곳임을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아무튼 이렇게 여자를 따라온 김현은 그 집에 숨었다.
 
  그런데 잠시 후, 호랑이 세 마리가 나타나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호랑이 같은 오빠가 나타나도 심장이 쪼그라들 텐데 진짜 호랑이가 나타났으니 난리가 난 거였다. 그리고 세상에 그 호랑이들이 사람처럼 말을 했다.
 
  “집에서 누린내가 나는데? 요깃거리가 있는 것 같네.”
 
  할미가 무슨 소리냐며 꾸짖었다.
 
  “무슨 미친 소리냐, 어디 냄새가 난다고 그래!”
 
  이때 하늘에서 호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이 생명 해치기를 좋아하니, 마땅히 하나를 죽여 악을 징계하겠노라!”
 
  이 소리에 호랑이들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세 오빠들이 멀리 도망쳐서 스스로 반성한다면 제가 대신 그 벌을 받을게요.”
 
  그러자 호랑이들이 기뻐하며 달아나 버렸다.
 
  돌아가는 정황과 하는 말을 보니, 이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였던 거다. 호랑이와 그러고 그랬으니 난리가 날 일이었다. 그녀가 김현에게 말했다.
 
  “저와 낭군은 비록 같은 부류는 아니지만 하룻저녁의 즐거움을 함께했으니 부부의 의(義)를 맺은 겁니다. 세 오빠의 악행을 하늘이 미워하시어 저희 집안의 재앙이 되었으니, 제가 그 재앙을 감당하려 합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느니 김현의 손에 죽겠다며 방법을 일러주었다.
 
  “내일 제가 저잣거리에 들어가 사람들을 해치겠습니다. 그러면 왕이 저를 잡으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할 겁니다. 그때 낭군은 겁내지 마시고 성의 북쪽 숲속까지 저를 쫓아오시면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자 김현이 답했다.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고 다른 부류와 사귀는 것은 정상적인 일은 아닙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그러나 이미 일을 무사히 치렀으니 이는 하늘이 맺어 준 겁니다. 그런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세상의 벼슬을 구하겠습니까?”
 
  참 갑갑한 소리였다. 호랑이 앞에서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여자가 김현을 설득했다.
 
  “낭군님, 이제 제가 죽는 것은 하늘의 명령이며, 저 또한 바라는 겁니다. 또 낭군께는 경사요, 우리 가족에게는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이렇게 제가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이 생기는데,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해 절을 지어 명복을 빌어 주시면,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울면서 작별했다.
 
  다음 날 정말 무서운 범이 성 안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쳤는데, 너무 사나워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원성왕이 범을 잡는 자에게 2급 벼슬을 주겠다고 하자 김현이 나섰다. 김현은 호랑이 여인이 가르쳐 준 대로 북쪽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호랑이가 여인으로 변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제 발톱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흥륜사의 장(醬)을 바르고 그 절의 나팔 소리를 들으라고 하세요.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김현이 찬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졌는데, 곧 호랑이로 변했다.
 
  그렇게 김현은 벼슬에 올랐고, 호랑이에게 다친 사람들을 치료했다. 김현은 서천(西川) 가에 절을 짓고 호원사(虎願寺)라 칭하고는 호랑이의 명복을 빌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김현이 호랑이 여인을 만나 정을 통하고 그녀로 인해 벼슬을 얻었다는 거다. 얼핏 보면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잘 따져 보면 꺼림칙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사랑을 한다고? 더욱이 자신을 희생해서 하룻밤 남자를 도와줘? 왜?”
 
  잘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그 오빠 호랑이들은 사람을 마구 해치는 존재라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 개중에는 착한 호랑이도 있을 수 있지,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이렇게 속 편히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일연 스님도 김현과 만난 호랑이 여인 이야기가 색다르다고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이어서 신도징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호랑이 여인에게 배신당한 신도징
 
심사정의 그림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맹호도〉. 당나라 신도징의 아내가 된 호랑이는 결국 맹호로 돌아가고 만다.
  정원(貞元) 9년(793)에 당나라 사람 신도징(申屠澄)이 현위(縣尉) 벼슬에 임명되어 진부현(眞符縣)의 동쪽 10리쯤 되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심한 추위에 눈보라까지 심하게 쳐서 말이 도무지 앞으로 가질 못했다.
 
  그래서 길가 초가집에 들어가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늙은 부모와 한 처녀가 있었다. 열댓 살쯤 돼 보이는 처녀는 비록 머리는 헝클어지고 때 묻은 옷을 입었지만 눈처럼 흰 살결에 꽃 같은 얼굴이며 행동이 아주 아름다웠다. 신도징은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부모에게 청했다.
 
  “혹시 따님이 미혼이라면 혼인하고 싶습니다.”
 
  보통 지방관들이 시골을 지나다가 겁탈을 일삼는 것이 예사였는데 신도징은 그런 자가 아니었던 거다. 부모는 흔쾌히 허락했고, 신도징은 사위의 예를 갖추어 그녀의 부모를 모셨다. 그렇게 날을 보내고 다음 날 여자를 태우고 떠났다.
 
  부임지에 도착해서 둘은 잘 살았다. 그러는 사이 1남 1녀가 태어났다. 신도징은 아내를 공경하고 사랑했다. 어찌나 사랑했는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내용의 시를 읊어 주기까지 했다.
 
  기한이 차서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두고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예전 여자의 집을 찾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그리워하는 마음에 하루 종일 울었다. 그러다가 벽 모퉁이에 호랑이 가죽 한 장이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물건이 아직도 여기에 있을 줄 몰랐구나.”
 
  그러며 그것을 휙 뒤집어썼다. 그러자 순식간에 호랑이로 변하더니 으르렁거리며 할퀴고서는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신도징이 너무 놀라 피했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아내를 찾았다. 크게 울부짖으며 아내를 찾았지만 끝끝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신도징 이야기는 결국 사랑하는 호랑이 여인이 제 본성대로 가 버렸다는 것이다. 자식을 둘이나 낳았지만 소용 없었다. 심지어 호랑이로 변신한 여인은 신도징을 잡아먹을 듯이 할퀴고 공격했다. 그래서 그가 애들을 데리고 피하기까지 했던 거였다. 그래도 신도징은 그녀를 못 잊어 산을 헤매며 울부짖었다.
 
  여인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본래대로 가 버린 것이 꼭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가 날개옷을 찾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늘로 가 버린 것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선녀는 자식들을 데리고 갔지만 호랑이 여인은 제 혼자 가 버렸다. 무엇보다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훔쳐 강제로 납치해 결혼한 것이지만, 호랑이 여인은 정식 혼례를 치르고 좋아서 함께 살았다. 사는 동안도 최선을 다해 일했고 신도징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호랑이 가죽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뒤집어쓰고 변신한 것이다. 신도징과 함께 산 것이 자발적이었고, 또 신도징이 자신을 극진히 사랑함도 알았지만, 끝내 자신의 본성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이다. 호랑이 여인이 떠난 것은 신도징의 잘못이 아니라 그 여인의 소관이다. 본성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신도징의 여인과 김현의 여인을 비교하면, 얼마나 김현의 여인이 대단한지를 대번 알 수 있다. 1남 1녀를 낳고 오랫동안 같이 부대끼며 살았지만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변신해서 남편과 자식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발톱을 세운 호랑이 여인도 있는데, 겨우 하룻밤 단 한 번 정을 통한 것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김현을 위해 희생했으니 말이다.
 
  대체 김현의 여인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숭고할 수 있단 말인가?
 
 
  2월 초파일의 탑돌이와 야합
 
2009년 4월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재현된 탑돌이 행사. 원래 탑돌이는 고대인들이 신(神)과 통혼하는 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 호랑이 여인의 속마음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만나게 되는 정황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현과 여인은 부처님 탄신에 탑돌이를 하다가 만났다. 그건 야합(野合)이었다.
 
  우리는 부처님 탄신을 음력 4월 초파일, 그러니까 4월 8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음력 2월 8일이 맞다.
 
  중국의 《요사(遼史)》나 《금사(金史)》에도 부처님 탄신은 2월 8일로 되어 있고, 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4월이 아닌 2월에 연등을 켰다. 유명한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도 “2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켠 등불 같구나”라며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연등회를 2월에 했음을 노래하고 있다. 2월 8일이 언제부터 4월 8일로 바뀌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4월 8일을 부처님 탄신으로 여겼다. 음력과 양력 차이 때문에 혼선이 온 것은 아니다. 신라시대나 조선시대나 내내 음력인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이렇게 두 달이나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고대(古代) 중국의 역법 때문이다. 인월(寅月)이니 축월(丑月)이니 하는 복잡한 간지(干支) 얘기는 접어 버리고, 간단히 말하자면 하(夏)·은(殷)·주(周)로 나라가 바뀔 때마다 정월(正月)을 한 달씩 뒤로 옮겼기에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나라를 세운 황제들은 기존 것을 싹 갈아엎으려고 그런 건지, 아니면 황제란 무릇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지배하는 자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려 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정월을 옮겨 버려 기록들이 꼬이게 되어 버렸다. 동일한 날에 부처님 탄신을 지켜도 그 시대 기록들은 각기 다른 월(月)로 기록하게 되었고 그렇게 뒤섞여 후대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즉, 주(周)나라 4월이 하(夏)나라 2월이기에, 부처님 탄신 2월 8일이 주(周)나라 기록엔 4월 8일로 나오게 되었다. 예로부터 책력(冊曆)은 하(夏)의 것을 따라 정월(正月)을 정하기에 주나라 이후 정월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의 문면을 그대로 따서 부처님 탄신을 4월 초파일로 지키게 된 것이다.
 
  아무튼 당시에 부처님 탄신을 맞아 탑과 전각을 돌며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 탑돌이 행사를 했는데, 그때 김현과 여인이 만나 정을 통했다.
 
  “신성한 장소에서 간절히 소원을 빌어야 하는 중생(衆生)들이 그런 음탕한 짓을 하다니. 에이, 쯧쯧쯧….”
 
  이렇게 혀를 차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그건 지금 시각에서 그렇다. 당시 풍속과 정황을 보면 이들을 방탕하다거나 성욕에 미쳤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바른 마음가짐으로 정진하기 위해 탑돌이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건 지금에 그런 것이고, 당시는 김현이나 여인 둘 모두 그렇게 정을 통하기 위해 탑을 돌았다고 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이들의 목적은 야합이었기 때문이다.
 
  ‘야합’은 뉘앙스만큼이나 부정적이지만 사실 고대에는 신(神)과 통혼하는 중요한 방법이고 절차였다. 마땅히 장려하는 신령스런 행동들이었다. 야합은 신께 제사를 드리는 집단 음주가무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지금의 음란한 탈선과는 다른 의미였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물론이고, 임신조차도 어떻게 되는지 몰라 출산을 두고 삼신할미와 같은 관념을 만들어 냈던 시대보다 더 멀고 먼 옛날이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출산은 복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많아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생산이 가능한 것일까?’에 대한 질문의 답은 ‘신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져 있었다. 그 신의 은총을 구체적으로 이 땅에 구현하는 행위가 바로 야합이었다. 신이 하늘에서 성교(性交)를 통해 땅에 비를 내리고 곡식을 자라게 하며 짐승들을 생육시키는데, 그 모습을 이곳에서 모방[mimesis]하는 것이 구체적인 남녀간의 성교였다. 그래서 씨를 뿌릴 때나 추수할 때 당연히 이런 축제 의식이 있었다. 이는 동서양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런 야합의 집단혼음(集團混淫) 결과로 태어난 인물은 그래서 신의 자식으로 여겨졌다.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 선망의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야합과 그 자식들에 관한 기록들이 후대에도 삭제되지 않고 남게 된 것이다. 고구려 건국 영웅 주몽은 해모수(解慕漱)와 유화(柳花)의 야합에 의해 태어났고, 신라 김유신은 김서현(金舒玄)과 만명부인(萬明夫人)의 야합해서 탄생했다. 위대한 성인 공자(孔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관점이 다른 시대였다.
 
  이런 고래의 풍습이 불교의 전래 이후 습합되어 탑돌이 같은 불교행사에 녹아든 거였다. 그것이 신라시대 탑돌이였다.
 
 
  ‘찌질이’ 혹은 ‘순정의 사나이’ 김현
 
국보 195호 묘기에 장식된 성행위를 하는 남녀의 모습. 신라시대의 개방적인 성풍속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김현이 몹시도 변변찮은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된다. 야합은 국가적 행사로 흥륜사 탑돌이는 대단한 장관이었다. 당연히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나와 탑을 돌며 소원을 빌었고, 그렇게 서로서로 눈이 맞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김현만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소원이 너무 간절해서?’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삐딱한 생각은 김현이 보잘것없기에 그 많은 여성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여인이라고는 오직 한 명, 마지막까지 짝을 찾지 못한 여인이 남았을 뿐이다. 그녀가 남은 이유는 간단하다. 호랑이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김현은 순진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한심하게 질척거리기까지 한다. 어떤 여인과 눈이 맞아 정을 통했다면, 야합답게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는 죽자고 여자를 따라간다. 좋게 말하면 순정주의자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찌질한 팔푼이다.
 
  게다가 사람도 아닌 호랑이에게 속아(?) 섹스를 하고서도 그것을 천생연분인 것처럼 여긴다. 여인이 자신을 죽이라는 말에 “어떻게 배필을 팔아서 벼슬을 사느냐”며 거부한다. 우리는 결론을 알기에 김현의 말이 애틋한 순애보로 들리지만, 실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얼간이 같은 헛소리다. 오빠 호랑이들이 돌아와 잡아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늙기는 했어도 할미도 역시 호랑이였다. 또 누가 아는가, 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화가 난 여인이 호랑이로 변신해서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지 말이다. 으르렁거리고 할퀴던 신도징의 호랑이 여인을 한번 떠올려 보시라. 이제 감이 오시는가. 빨리 도망치는 것이 상책일 텐데, 거기서 호랑이 여인을 앞에 두고 ‘사랑’, ‘배필’ 운운하고 앉아 있으니 정말… 답이 없는 인간이다.
 
  사실 궁금한 것은 이런 거다.
 
  “둘 중 누가 먼저 유혹했을까?”
 
  김현과 여인이 동시에 서로 눈빛을 교환했을까? 먼저 치근덕거린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 궁금증은 왜 여인이 홀로 남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여인이 김현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마지막까지 기다렸다는 소리는 하지 마시라.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호랑이란 것을 잘 아는 여인은 다른 남자들이 먼저 접근했어도 피했을 거다. 야합이란 ‘같은 무리(?)’끼리 하는 거지 ‘다른 무리(?)’와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둘이 정을 통한 것은 얼간이 같은 김현이 우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녀를 끌고 으슥한 곳으로 간 것도 김현이고, 집까지 따라간 것이나, 이후 울며 연연하는 것을 보면, 김현이 주도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여인의 집에서 할미가 전후 상황을 듣고는, “비록 좋은 일이긴 하나 그런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하나 이미 저질렀으니 나무라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라고 탄식했던 말을 잘 곱씹어 보라. 할미가 인간이라고 여길 때는 딸의 행실에 대한 탄식처럼 들리지만, 호랑이라는 것을 알고 들으면 아주 다르게 들린다. 정을 통했으니 ‘좋은 일’이지만,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유는 호랑이가 사람과 야합을 하고 사랑하는 짓은 아무래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맺어질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던 거다. 그걸 할미만 아는 것이 아니라 여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김현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김현이 먼저 여인을 유혹했고 사랑했고 적극적으로 여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여인이 호랑이인 줄 알고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사랑했다. 그녀를 팔아 벼슬을 얻겠다는 생각에 주저했고, 괴로워했으며, 그녀가 죽은 후 절을 지어 평생 그녀의 명복을 빌어 주었으니 말이다.
 
  별 볼일 없이 하찮을지 모르지만 김현은 순정을 지닌 순수한 사랑꾼이었다.
 
 
  김현은 호랑이 여인을 ‘어떻게’ 감동시켰나?
 
  이제 정말 중요한 것 하나가 남았다.
 
  “사람도 아닌 호랑이 여인이 왜 탑돌이에 나왔지?”
 
  김현이 탑돌이를 한 이유는 야합의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호랑이 여인은 그렇지 않다. 부류가 다르니 그녀가 야합을 목적으로 행사에 나왔다고 할 수는 없다. 뭔가 다른 소원이 있었던 거다. 부처님의 자비는 미물(微物)까지 포용하기에 호랑이도 탑돌이 소원을 빌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끝가지 간곡하게 탑을 돌며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대체 그 소원이 무엇일까? 일연 스님도 궁금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답을 찾은 것 같다. 그 답으로 신도징 이야기를 병치시켜 제시한 것이다.
 
  신도징의 여인은 호랑이의 본성을 끝내 벗어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신도징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랬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다. 신도징의 여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훨씬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김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호랑이라는 본성을 벗어 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한 것이다.
 
  여인이 자신을 팔아 벼슬을 하라며 설득하는 다섯 가지 이득에도 그런 점이 나온다.
 
  “낭군님, 이제 제가 죽는 것은 하늘의 명령이며, 저 또한 바라는 겁니다. 또 낭군께는 경사요, 우리 가족에게는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이렇게 제가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이 생기는데,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명령’이라는 것이나 ‘낭군의 복’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문제아 오빠 호랑이 셋이 죽지 않고 달아났으니 ‘우리 가족의 복’이라고 한 것이나 호랑이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나라 사람들의 기쁨이 된다’는 것도 납득된다. 다만 하나, ‘저 또한 바라는 바’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살하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니다. 그럼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나? 그도 아니다. 천상에서 벌을 내리겠다는 호통이 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죽음을 알지 못했다. 그럼 여인이 ‘죽는 것이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일까?
 
  그것은 그녀가 탑돌이를 통해 김현을 만나 정을 통하고 사랑을 알게 된 후라는 상황을 놓고 보면 이렇게 풀이된다. “이제 여한이 없으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낭군을 만나 이렇게 진정한 사랑을 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는 말인 것이다.
 
  결국, 호랑이 여인은 탑을 돌면서 기도했다. 소원을 빌었다. 감히 사람 남자와 성교를 하겠다는 그런 난잡한 소원이 아니었다. 김현은 야합이 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여인은 달랐다. 진정한 사랑 찾기가 목적이었다.
 
  그녀가 탑을 돌며 간곡히 빌었을 목소리를 번역하면 아마도 이럴 거다.
 
  “소녀는 비록 미물(微物)인 호랑이이오나 진정한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을 얻었다. 김현을 만났던 것이다. 호랑이인 줄 알고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녀를 더 걱정해 주는 바보 같은 남자, 김현을 만났던 것이다.
 
  이제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는 〈김현감호〉의 제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김현은 호랑이 여인을 ‘어떻게’ 감동시켰는가? 김현은 호랑이 여인의 ‘무엇을’ 감동시켰을까? 이런저런 추측이 나올 것이다. 성교라고 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어수룩한 김현, 보잘것없는 한심한 김현, 제 주제도 모르고 호랑이 여인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김현, 호랑이에게 속아 성교를 하고도 분노보다는 그녀를 성심으로 대하고 사랑한 김현, 바로 그의 순수한 마음, 사랑.
 
  그것이 여인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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