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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23〉 유아 살해의 알리바이

손순은 아이를 땅에 묻고 하멜른의 사나이는 피리를 불다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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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의 효자 손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헨젤과 그레텔〉… 실상은 유아 살해 이야기
⊙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쥐새끼’들이란 바로 아이들이었을 것
⊙ 가난했던 시절 아이들은 음식을 놓고 다투는 귀찮은 경쟁자이되 제거하기 쉬운 대상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기아가 닥쳤을 때 아이들을 제거했던 잔혹한 역사를 보여준다.
  말이 많으면 본질이 흐려진다. 유명한 것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모두가 잘 아는 것 같아도 정작 그 핵심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가난한 남자가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운오(運烏)라는 이름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어찌어찌해서 결혼을 해서 애[小兒] 하나를 낳았다. 가난해서 처와 함께 날품팔이를 하며 근근이 살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자식 놈이 자꾸 할머니인 노모가 먹을 음식을 먹는 거였다. 고민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자식은 또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뿐이오. 어머니께서 잡숫는 것을 자꾸 뺏어 먹으니 어머니께서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소? 우리 이 아이를 땅에 묻어 버립시다.”
 
  그렇게 해서 부부는 아이를 업고 산에 올라가서 땅을 팠다. 그런데 그 땅에서 이상하게 생긴 돌종[石鐘]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놀란 부부가 그 돌종을 나무에 걸고 쳐보니 소리가 은은한 것이 들을 만했다.
 
  종소리를 들은 왕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아보라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사정을 알게 된 왕이 크게 감탄했다.
 
  “큰 효자로구나. 본보기가 될 만하다.”
 
  그러며 집 한 채를 내려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지극한 효성을 치하하게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9 효선(孝善)편에 실린 〈손순매아(孫順埋兒)〉 이야기다. 자식을 죽이려 할 정도로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기에 하늘이 감동해서 돌종을 내렸고, 왕 역시 그것을 깨닫고 가난에서 구제해 줬다는 얘기이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은 훈훈한 이야기로 《삼국유사》에 떡 하니 실려 있으니,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적어도 이 기록을 실은 일연 스님 당대에는 미담으로 받아들여졌을 게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엔 마뜩잖을 뿐만 아니라 정말 큰일 날 소리다. 생생한 살인미수 기록을 자랑하듯 떠벌리다니, 그것도 제 자식을 말이다. 보통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일연 스님은 이 사건을 자식을 생매장하려는 기괴한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보지 않고 노모를 봉양하는 갸륵한 아들의 이야기로 보았다.
 
  사실 제 자식을 죽이려 한 아버지 손순이 정신병자이거나 파렴치한 악한이라면 설명은 순조롭다. 사이코패스라는 명칭을 이마에 떡 붙여 버리는 것으로 우리 맘이 편해진다. 하지만 손순은 사이코도 미친 자도 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질 나쁜 아버지도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왕의 하사품으로 살림이 넉넉해지자 자식을 죽이려 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아이의 ‘무게’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나온 손순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실은 효도로 포장된 ‘유아 살해’의 끔찍한 이야기다.
  결국 모든 것이 가난 때문이고 궁핍해서란 소린가? 물론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핵심을 조금 비켜 나가 있다. 그 당시 손순만 가난했던 게 아니라 대부분 궁핍했고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는 뭔가 더 음침하고 복잡한 것이 도사리고 있다.
 
  일단 한 가지를 짚고 가야 하는데, “그 당시 부모들에게 아이란 어떤 존재였을까?”이다. 그들에게 아이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을지 알아야 실마리가 풀릴 듯하다.
 
  그건 〈손순매아〉의 기록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살해당할 뻔한 아이는 아들인지 딸인지도 분명치 않다. 단지 ‘어린아이[小兒]’라고만 언급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도 없는 노모의 이름을 굳이 덧붙여 ‘운오(運烏)’라고 알려준다. 서술의 균형이 안 맞지만 그건 지금 시각이고, 그때는 그렇지 않았던 거다. 자식의 성별이나 목숨 따위는 고작 노모의 이름만도 못한 거였다.
 
  아이의 무게를 달아볼 저울이 하나 더 있다. 《삼국유사》 효선 편엔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손순매아〉조 바로 앞에 〈향득사지할고공친(向得舍知割股供親)〉이라는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향득(向得)이 넓적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를 공양하다”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데, 전문은 이렇다.
 
  〈웅천주에 향득이란 자가 있었다. 흉년이 들어 그 아버지가 거의 굶어 죽게 되자 향득이 제 넓적다리 살을 베어 봉양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니 경덕왕이 벼 500석을 내려주었다.〉
 
  아들의 넓적다리 살을 아버지가 알고 먹었는지 모르고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식의 살을 먹는 그로테스크함이 이 서술에선 가볍게 가려진다.
 
  아무튼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 이야기는 손순의 효성 이야기와 구조가 똑같다. 가난했고 흉년이고, 먹을 것이 없어 부모가 괴로워하고, 그래서 수단을 발휘했더니, 왕이 알게 되어 구제를 받았다는 식이다. 효성이 끝내주게 지극하신 자식들이 발휘한 놀라운 수단이 바로 ‘제 아이를 죽이는 것’이고 ‘제 허벅지 살을 베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제 허벅지 살 정도의 무게쯤 되는 거다.
 
  하긴 그렇다. 《효경(孝經)》의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란 말처럼, 몸과 살과 피부, 머리털, 모든 것이 다 부모께서 주신 것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제 정자가 만들어낸 자식 놈이나 제 허벅지 살이나 모두 부모께서 주신 것이 맞다. 그러니 때가 되면 재깍재깍 가져다 바치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니 손순이 보기에 아이는 이름도 필요 없다. 아들인지 딸인지도 상관없다. 그냥 허벅지 살 정도의 부속품 주제에 ‘감히 모친의 밥을 날름날름 처먹었으니’ 죽어 마땅하긴 하다. 이제 대충 알 것도 같다. 아이의 무게가 요즘과는 아주 다르니, 효도에 비하면 자식이란 건 깜도 아닌 거였다.
 
  이 정도에서 〈손순매아〉를 대강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꺼림칙함이 있다. 땅을 팠더니 돌종이 나왔다는 거 말이다.
 
  일연은 그것을 신적 영험의 증거로 봤기에 《삼국유사》에 실었다. 그는 돌종의 출토를 불교적 영험담으로 보았기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손순은 옛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홍효사(弘孝寺)라 부르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진성왕(眞聖王) 때에 포악한 후백제의 도적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 왔을 때,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았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 했는데 잘못 전해져 지금은 지량평(枝良坪)이라 한다.〉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삼국유사》의 전형적 후일담이다. 그렇지만 일연 스님의 이런 설명에도 찜찜함이 못내 가시지 않는다.
 
  왜 하필, 꼭 때마침 땅에서 돌종이 나왔는지는 여전히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13세기 독일 하멜른으로 가보자. 거기도 손순 이야기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꽤 뒤숭숭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니, 어쩌면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하멜른을 덮쳤다가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이끌려 사라진 쥐떼는 어쩌면 어른들과 먹을 것을 놓고 경쟁했던 아이들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아이들 동화책에도 실린 유명한 이야기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지만, 논란도 많고 해석도 분분하다. 그림형제가 《독일전설》에 〈하멜른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수록해 놓은 것이 가장 오래되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1284년 하멜른에 이상한 사내가 나타났다. 여러 색깔로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목도리를 두른 행색의 이 사나이는 자신을 쥐잡이라고 소개하고는 도시의 쥐를 죄다 잡아주겠다고 장담을 했다. 시민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그러자 쥐잡이 사내가 작은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집에서 온갖 쥐들이 뛰쳐나와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사내는 피리를 불며 도시 밖으로 나가 베저(Weser) 강변에 이르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사내를 따라온 쥐들이 그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모조리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귀찮은 쥐에서 해방된 시민들은 약속한 대가의 지불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온갖 핑계를 대며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몹시 화를 내며 하멜른을 떠난 사내는 성 요한과 바울의 축일인 6월 26일에 다시 나타났다. 알록달록한 옷은 어디로 갔는지, 이번엔 사냥꾼 모습에 붉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가 피리를 불자, 이번엔 쥐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더기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그를 따라 도시 밖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모두 130명의 아이가 사라졌다.〉
 
  이후 기록은 ‘아이들이 사라진 길에선 누구도 춤을 추지도 않고 악기를 연주하지도 않는다’는 등과 같은 이런저런 후일담과 역사적 사실 확인 등을 부기(附記)하는 것으로 마친다.
 
  아이들 130명이 실종된 이 사건에 대해선 그야말로 해석이 분분하다.
 
  마을마다 있던 광란의 무도의식(舞蹈儀式) 때 아이들에게 광증(狂症)이 집단적으로 발현되었고 그 결과 정신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는 설명으로 시작해서, 소년십자군 원정에 끌려갔다는 주장, 전쟁에서 패해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설명, 새로운 도시로 식민 이주를 한 거라는 해석 등 다양하다. 심지어 산사태에 매몰되어 산 채로 매장되었다, 흑사병 등의 전염병에 아이들이 사망한 거다, 고대(古代) 게르만식 제의(祭儀)로 아이들을 희생시킨 것이다까지, 그야말로 나올 수 있는 의견은 모두 나온 성싶다.
 
 
  어른들은 어디서 뭘 했나?
 
  모두 다 그럴듯한 설명들이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것도 풀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홀려 사내를 따라갈 때, 어른들은 왜 만류하지 않은 거지?”
 
  물론 어른들은 들과 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붙잡아 둘 어른들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 마을 공동체를 감안하면 선뜻 끄덕여지지 않는다. 파수꾼 한 명 없이 아이들만 남겨두고 마을을 텅텅 비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마을 밖으로 나가는 130명이나 되는 아이의 긴 행렬과 피리 소리를 마을 주변의 들과 산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듣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 훤한 대낮에 납치극이 광범위하고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누구도 몰랐다는 건 아무래도 억지 같다.
 
  아이들은 어떻게 사라진 걸까? 어디로 간 걸까? 왜 하필 하멜른의 130명 아이란 말인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과 후의 하멜른의 상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아이들이 사라진 후, 마을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을 사람들이 이 사건을 도시 기록부에 기록했다. 시청에도 “피리 부는 사람을 따라 쾨펜산 밑으로 가 사라졌다”고 적었다. 성문에는 라틴어로도 적어 놓았다. 1572년에는 시장이 이 이야기를 제목과 함께 교회 창문에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라고 그림형제가 기술하고 있다. 이런 조치를 보면, 130명 아이의 실종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거나 도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충격이었을지는 모르나 마을은 마을대로 어떻든 그대로 유지되며 굴러갔단 거다.
 
  그럼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의 하멜른은 어떠했을까? 분명한 것은 쥐 때문에 도시가 난장판이었다는 점이다. 딱딱한 기록 투의 《독일전설》이 아니라 조금 후대(後代)의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이 시(詩)로 쓴 내용을 보면, 쥐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 마을의 사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쥐가 개와 싸우고, 고양이도 물어 죽이고, 요람의 아기까지 물어뜯었다. 생선 같은 것을 먹어 치우는 건 당연하고, 치즈 통을 엎지르고, 수프 주걱을 핥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사방에서 찍찍 날카롭게 쑤셔대는 소리가 마을에 가득했다. 이불이건 옷이건 시커먼 쥐들이 설치는 그야말로 ‘온 세상이 쥐 천지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난장판이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쥐가 없어지고 아이들도 사라진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실종사건의 바탕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하멜른 사람들의 잘못이 있다는 점이다. 쥐잡이 사내와의 약속을 깨뜨린 것이 사단이었다. 그러나 그 잘못은 사내가 저지른 유괴사건이란 어마어마한 악행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고, 사라진 아이들을 기리는 하멜른 시의 간절한 노력에 비하면 가벼운 실수 정도로 비치게 되었다. 그렇게 하멜른 사람들의 잘못이 덮여 버렸다.
 
  하지만 정말 마을 사람들의 잘못이 단지 약속을 깬 정도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약한 경쟁자’였던 아이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대학살》.
  프랑스 어느 지방에서는 이상하게도 부모들 사이에서 자던 아이들이 질식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단다.
 
  “제가 자다가 그만 뒤척여서 그만 깔아 버렸지 뭡니까, 흐흐흑.”
 
  대충 이런 답변을 부모들이 한다는 거다. 이런 소리를 어쩌다 한둘이 하면 모를까, 너무 많이 자주 빈번하게 집단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부모들의 이런 핑계(?)에 교회지도자들은 ‘어린 아이를 부모 사이에서 재우지 말라’는 칙령을 내리기까지 한다.
 
  대체 아이들은 왜 죽었을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누가 죽였을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고 그래서 확증할 수도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로버트 단턴은 《고양이 대학살》에서 꽤나 흥미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의 크륄레에서는 1000명의 아기 중 236명이 돌 전에 사망했고,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의 약 45%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사망 이유야 여럿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먹을 것 부족이었다. 가난, 기근, 흉년. 이런 것들이 근본 원인이었다. 아이들이 굶어 죽었냐고? 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미치도록 삐져나오는 뱃살을 빼기에 광분한 요즘 시대는 죽어도 이해 못할 말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절 우리나라만 해도 ‘보릿고개’ 같은 황당한 말이 정말 있었고, ‘초근목피(草根木皮)’란 말이 북한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개념을 거의 잊어버린 현대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 바로 ‘새로 태어난 아이란 같이 숟가락을 들고 함께 먹을 것을 노리는 경쟁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경쟁자가 공교롭게도 매우 약하고 어설프며 쉽게 제거(?) 가능하다는 이점(利點)을 노려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슬프지만 엄연히 상존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이를 추운 곳에 내놓아서 얼어 죽게 하거나, 구걸 보내놓고 부모들끼리 도망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마을 공동의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면 꽤 많이 죽어 나간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심각하게 따지지도, 근절시키지도 않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당시의 유아 살해와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기록에도, 동화 속에도 넘쳐난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 아이들을 깊고 깊은 숲에 유기한 것이 바로 그들 부모였다. 당대에 이 이야기는 매우 핍진성(逼眞性) 있는 생생한 이야기였던 거다.
 
  하멜른에서 사라진 것은 둘이었다. 쥐와 아이들. 와삭와삭 식량을 먹어치우는 시끄럽게 찍찍대는 쥐새끼들과 130명의 아이. 그들이 사라졌다. 모두 피리 부는 사나이 때문에 말이다.
 
  감이 오시는가? 아직도 지금의 눈으로 아이들을 그저 마냥 사랑스럽게만 보고 계신가?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를 퇴치했고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갔다. 쥐는 난장판을 만드는 존재였다. 그리고 아이들도 역시 그렇다. 흥부의 자식들은 모두가 사랑스런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제 자식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나 그들도 하나같이 입을 달고 나온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흉년에, 가난에, 와삭와삭 먹어대는 지칠 줄 모르는 입. 빽빽 울어대며 시끄럽게 안달복달 해대는 그 입 말이다.
 
  하멜른 사람들에겐 그 아이들이 바로 쥐새끼들이었던 거다. 아마도….
 
 
  집단 침묵과 공모의 알리바이
 
  요즘은 친부모가 자식을 학대해서 죽였다는 뉴스가 나오는 판국이니, 손순이나 하멜른 사람들이 벌인 짓이 무엇인지 이제 이해했을 것이다. 이들 부모에게 자식은 귀찮은 존재였다.
 
  그러나 대뜸 자식들을 유기하거나 없앨 수는 없다. 윤리적 문제를 떠나 사회적 문제가 개재되기 때문이다. 인권 같은 고상한 가치를 차치하고라도 통치자나 국가 입장에선 인구가 사라지는 현실적 문제이고,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흉년이나 가난으로 아이들이 버거운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대책 없이 태어나 빽빽거리고 날름날름 먹어치우는 아이란 버거운 문제를 손순은 효(孝) 이야기로 알리바이를 얻었다. 하멜른 사람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유괴담이란 알리바이를 만들어냈다. 효를 위해 아이를 죽이려 했다는 알리바이는 당대의 미담이 되고도 남을 이야기였다. “글쎄 떠돌이 풍각쟁이가 데려갔다니까!”라는 말은 믿든 믿지 않든 뱀잡이, 쥐잡이가 흔했던 당대에 그럴듯한 멋진 알리바이가 되어 주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어쩌면 하멜른에는 그런 사나이가 오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모두가 믿고 시청에 써 붙이고 교회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 버린 집단 알리바이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그렇게 집단 침묵과 집단 공모의 알리바이가 공식화되면 그만인 것이다.
 
  사실 하멜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것만이 사실이다. 유괴된 것인지 살해당한 것인지, 그 살해도 집단 광기에 휩싸여 그런 것인지 신(神)의 진노를 풀려고 제의로 바친 것인지 알 수 없다. 전쟁에 패해 볼모로 주었는지, 대가를 받고 팔아 버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분명한 것은 시끄럽고 성가신 그들이 사라졌고 그래도 도시는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도시를 탄탄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까짓거 아이는 필요하면 또 낳으면 되니 말이다. 손순이 아이를 땅에 묻자며 부인에게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님은 한 분뿐이오”라고 했던 말은 공연한 헛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손순매아〉로 돌아가 처음 제기했던 의문의 답을 찾아보자. 아이를 생매장하려고 판 땅에서 ‘때마침 출토된 돌종’ 말이다.
 
  돌종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이는 생매장되어 죽었을 것이다. 하멜른의 아이들은 사라짐으로써 도시의 건강성(?)이 회복되었지만, 손순이 제 아이를 땅에 묻는다고 손순 집의 궁핍함이 해결될 것은 아니었다. 손순 집안의 문제는 돌종이 나옴으로써 해결되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임금의 정치적 타협(?)
 
  사실 손순의 행태를 보면 의아함이 한둘이 아니다. 그토록 노모를 봉양하고자 했다면, 아이와 함께 밥을 먹게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도 아니면 아이를 혼내든지 단단히 일러두면 된다. 당시는 충분히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아니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대이니 구타 정도야 일도 아니었고 훈계를 빌미 삼은 징벌도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손순은 아이를 통제하려는 노력 대신 극약 처방을 꺼내든다. 유아 살해 말이다.
 
  어떻든 일은 잘 풀렸다. ‘하늘도 감동한 효성’이다 보니 웬걸 땅에서 돌종이 떡 하니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그 돌종의 출토를 두고 왕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는 없다. 하늘이 인정한 효성을 두고 왕이 그런 눈을 뜨면 곤란하다.
 
  “돌종이 나왔다고? 왜 하필 거기서?”
 
  “네가 가져다 묻은 거 아냐?”
 
  “자작극(自作劇)이지, 그렇지? 쇼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이런 어설픈 질문을 했다가는 정권을 흔드는 폭풍이 되어 삽시간에 왕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왕이 취할 자세는 하나뿐이다. 효성에 감복하지 않아도 감복한 척해야 한다. 집을 하사하고 먹을 것을 내리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는 것(?)’이 현명한 정치적 판단이다. 허벅지 살을 베어 구워 먹인 엽기적인 인간에게도 칭찬을 했는데, 까짓 이것 정도야 뭐….
 
  하멜른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약간의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손순은 시작부터 끝까지 당당하다. 피리 부는 풍각쟁이 정도의 알리바이가 아닌 하늘을 끌어들인 알리바이에 그 누구도 감히 대들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손순은 땅을 판 이유를 아이를 통해 해결하고, 때마침 돌종이 출토되는 어설픈 기이함을 하늘이 감동한 효성으로 둔갑시켰다. 이 놀라운 알리바이 앞에선 유아 살해도, 석연치 않은 돌종 조작 냄새도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정말 하늘이 감동했을 수도 있고, 정말, 아주 정말, 우연히 아이를 묻으려던 그 땅에서 돌종이 나왔을 수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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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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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수준    (2018-05-20)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1
진짜너무하다........
  Joshua1123    (2018-02-07)     수정   삭제 찬성 : 12   반대 : 21
님 신청곡입니다 송창식이 부릅니다, 피리부는 사나이.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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