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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도의 역사 읽기 〈10〉이승만·박정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복전(顚覆戰)은 성공단계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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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70년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 김대중 정권 때부터 안보관·가치관 변화 …, 대한민국 국가혁신 체제 무너져
⊙ 문재인 정부의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 주장은 세계적 추세에 반하는 것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역임. 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한국자유회의 실행간사
김대중 정권때부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가전략이 흔들리게 됐다.
  지금 북한은 대륙간 탄도탄을 완성,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이 자체도 놀라운 현상이지만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역사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게 되면 현재 한국의 태평이 더욱 놀랍기만 하다. 아니 괴이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장하는 이유가 남한을 적화할 때 한미동맹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돕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다수가 ‘반일배미 접중연북(反日排美 接中聯北)’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공직자, 지식인, 대중을 가리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좌우익을 막론하고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현재를 ‘휴전’ 상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전복전(顚覆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술적으로 휴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1·21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KAL기 폭파, 아웅산 폭파, 서해해전, 천안함 폭침, 핵과 미사일 시험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형 도발이 6·25 남침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즉 ‘전쟁의 연속’인 것이다.
 
  전쟁의 형태는 게릴라 전쟁, 통상 전쟁, 전복 전쟁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한국은 제주 4·3사건으로 본격화되는 빨치산, 즉 게릴라 전쟁을 겪으면서 건국되었다. 그 게릴라 전쟁의 결과는 북한 공산당의 전면 남침이었다. 3년여 동안 전면전을 겪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북한 당국의 대남 공작과 남한 내 자생적 종북세력 및 좌익 혁명세력들의 대한민국 전복 전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복 전쟁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대한민국 국민 다수의 의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정도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평양에서 남파하는 간첩은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승만·박정희 성공의 역설
 
대한민국은 1·21사태 등 전쟁과 다름없는 일들을 겪으며 국가발전을 이루었다.
  386세대 이하는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장군이 만들어 낸 부르주아 생활방식의 계승자들이고, 대한민국이 모든 국민에게 베푸는 자유와 안전과 문화를 누렸다. 그들은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장군이 이끈 대한민국의 진가를 당연히 인정해야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덕분에 대중은 공산주의자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지식인들은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도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너무나 안전한 나머지 종북(從北) 좌익세력을 경시하게 됐다. 남한의 좌경세력과 그 동조자들이 보기에, 진정하지만 상대적인 자유는 허황되지만 절대적인 그림자 내지 우상을 위해 파괴되어야 했다.
 
  이런 전쟁 상태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ideal democracy)가 가능했겠는가? 그런 전쟁 상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전체주의식 독재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전쟁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했는데, 체제 방어 장치로는 국가보안법밖에 없었다.
 
  남한은 경제개발을 이룩하여 국방을 갖춰 나가는 노선을 취했고, 북한은 무력 증강에 전력투구하여 주요 전력을 지하화하는 등 요새화하였다. 이 노선의 차이는 그대로 가면 남한이 승리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남한의 정권은 그 승리의 노선과 전략을 해체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제의를 거부도 아니고 아예 무시하고 있다.
 
  국내 좌익진영은 냉전(冷戰)이 끝났는데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적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냉전이 실제로 끝났다면 북한은 왜 핵 개발과 위협에 저렇게 매진하고 있다고 보는가? 미국의 좌익 언론도 북한의 위협을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냉전적 사고인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관료들이 가지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무부와 국방부의 노선 차이가 현저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북한이 ICBM을 계속 고도화하고, 한국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나올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남북한 양쪽 모두에 제재를 가하려 들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징조가 보이고 있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안보관 전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매진했던 것은 앞에서 말한 ‘전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경제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이제 체제경쟁 하자”고 북한에 선언했다. 그런데 경제 후진성이 해결되고 나자 정치인들은 이제 ‘통일문제’가 과제라고 생각하고 매달리게 됐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노선을 계속해서 갔더라면 남한의 승리로 해결됐을 것을 망쳐 버린 것이다. 누가 이런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자 한국의 안보정책을 일대 전환시켰다. 그것은 우리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것이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의 사고방식 내지 입장이었다. 미국과의 군사·안보 정보가 차단되기 시작한 것이 김대중 정권 때부터였다. 이러한 안보관의 대전환으로 인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관점은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주적(主敵)논쟁이 벌어지는 바탕이 되었다.
 
  김대중을 비롯한 이른바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들은 언필칭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을 말했다. 박정희를 비롯한 산업화세력의 후신과 자기들 민주화세력이 손잡아야 한다는 것이며 도덕적 우위와 향후 지도성은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가진다는 의미였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산업화세력이야말로 민주화의 기반을 구축해 온 세력이다. ‘민주화세력’은 산업화를 반대한 세력이었다. ‘민주화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세력이 산업화를 천신만고 끝에 이루고 민주화를 진전시켰던 것이 진실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성공을 이끌어 왔던 국가혁신 체제는 해체되고 북한의 대남전략은 성공해 갔다.
 
  이른바 ‘민주화’ 시대에 한국의 정체성과 국가전략에 큰 혼란이 오게 된 것은 당시 공산권 붕괴에 대한 우리의 좌표 설정이 어긋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이 그런 세계사적 대전환이라는 상황에서 버티리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1993년 북한 핵문제가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붕괴론은 계속되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위정자들을 비롯해 한국인 대부분은 북한은 적이 아니라고, 그리고 남한을 정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도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보수파도 똑같이 그래 왔다. 그렇기에 바른정당은 노무현의 묘에 가서 “종북은 없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의 좌익 내에도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끊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것을 깨야 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과제다.
 
 
  대한민국은 역사의 추세에 역행하려는가
 
로베스피에르는 청렴강직한 정치인이었지만, 나라를 공포정치로 몰고 갔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제는 친북·종북 행위를 규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친북 행위를 하는 리스크가 사라진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친북 분자들은 북한이 남한을 이겨도 자신들은 이용 가치가 있어서 북한으로부터 대접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친북이 어느 경우나 이롭다고 타산한다. 어느 경우에나 지배자층에 속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체제전복 세력이 자유롭게 체제를 파괴하게끔 허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 유엔 인권선언을 읽어 보면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세력에 대한 호칭법에 있어서 ‘좌·우’는 체제 내의 경쟁세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과 북한을 추종하는 남한 내 전복세력을 좌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지방자치를 연방제 수준으로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언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내세우는 연방제 통일방안이나 통일전선 수법이 떠올라서만은 아니다. 독일의 어느 학자는 “‘연방제’는 중앙집권화로 가는 중간과정”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정부는 교육과 도로와 같은 사업을 해 낼 재정이 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순수한 의미의 연방제는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연방제 국가가 실질적으로는 중앙집권 국가나 다름없다. 이것이 역사의 추세다.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의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다.
 
  좌파세력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자기들만이 도덕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지금 정부도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면서 박근혜 정권을 사법적으로 단죄하려 하고 있다. 단순히 박근혜 정부만을 청산하자는 게 아닐 것이다. 이를 빌미로 대한민국 70년을 적폐로 규정하고 청산하려는 것이 그들의 내심일 것이다.
 
  역사상 깨끗한 정치인으로는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과 프랑스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를 든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세계대전 개전을 막지 못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기요틴의 대살육을 연출했다.
 
  이것이 드라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등을 생각하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의 향방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통치나 정치를 맡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다. 그게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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