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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13〉 미즈노 루리코의 〈나무의 집〉

흐린 날의 낮별처럼, 흰색 크레용처럼 희미한 유년 이야기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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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 당시, 불안했던 어린 소녀의 심리를 동화처럼 그린 시
⊙ 그 시절로 돌아가고 악어의 눈과 코끼리의 발을 찾고 싶다
동화 삽화인 헨젤과 그레텔 모습.
숲속을 걸어 나무의 집에 다다른 장면이다.
  木の家
  水野るり子
 
  影のない大きな昼間のなかに子どもたちだけが取り残されてい
  た 木の家を棄てたのは子どもたちだろうか 大人たちだろうか
  大人たちはなにげなく手近な窓を開いて 昔の木の家のあゐ方
  向を指さしてみせる すると木の家は思い出のように昼のはずれ
  の方に見え 植物の細い茎が壁を這い 昆虫が低〈唸っている
  兄と私は窓辺によっていくたびもその木の家を眺めた
 
  * * *
 
  兄はいった あれは木の家ではない ぼくらの木の家は黄ぱん
  だ夜の地図の上で朽ちかけている あの錆びついた扉を押しあ
  するものはだれもいない 木の家のそばを通るものさえいない
  木の家の内部の壁は夜空のように暗く湿気の底に沈んでいる
  ぼくには見える 壁の上に残された小さな星々のようないくつも
  のしみが あれらの点々をつないでごらんあれは幼ない夜々
  にぽくらが描きつづけたふしぎな動物たちの姿なのだ
 
  深い闇の底から今もぼくらを見上げる目のないワ二 ぼ〈らを追
  う足のない象 ぼくらを呼びながら墜ちいく鳥 ぼくらの手が
  知らずこ描きつづけたあの生きものたちはどこからやって來たの
  だろうか 木の家の內部は彼らのあえぎに満たされている 彼ら
  を光の中ヘ連れ出すためには わずかー本の線 ーつの点を
  加えれぱたりるのかもしれない だがそのための時間がもうぼ〈
  にはない
 
  毎夜私はー人になると夢のざらざらした原野で私を追いかけ
  てくるワニの頭を見た 荒れ果てた町なかをさまよう象の足とで
  くわした 海に沈む鳥たちを見た かれらのふくらんだ尾や頭の
  部分は夢の外ヘはみ出していて そこから静かに血を流してい
  た それは傷口のように私を苦しめた
 
  毎夜兄はー本のマツチを手に木の家のある方向ヘ出発しつづ
  けた すベての声のないあの生きものたちを今は地上から燃や
  しつくすことを兄はねがった だが夜が明けるごとに兄は傷つい
 
  た魚みたいに死の匂いを立てて私のもとに流れついた ぬれ
  た長い髪が額を覆って熱のある兄は見知らぬ少女のようにみ
  えた 兄のひたすらな歩行もついにあの動物たちまで届かなかった
 
  * * *
 
  木の家の暗い絵が幼ない日の落書であるかどうか私には記憶が
  ない だが木の家が腐蝕し 木の壁が崩れおちる前に 私もま
  たあそこヘ向かって出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 あのうす
  れてゆく点々を星のようにつないで 見棄てられたワニたちの目
  や足の位置を見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のためにはー本のマ
  ツチでなくー本の勁い絵筆を私は持ちたいと願った
 
 

  나무의 집
  미즈노 루리코(정수윤 옮김)
 
시인 미즈노 루리코
  그림자 없는 커다란 낮 속에 아이들만 외따로 남아 있었다 나무의 집을 버린 것은 아이일까 어른들일까 어른들은 무심히 가까운 창을 열고 오래전 나무의 집이 있던 곳을 가리켜 보인다 그러자 추억처럼 낮이 비껴간 쪽으로 나무의 집이 보이고 가는 식물 줄기가 벽을 탄다 곤충이 나지막이 윙윙거린다 오빠와 나는 창가를 지날 때마다 나무의 집을 바라보았다
 
  * * *
 
  오빠는 말했다 저것은 나무의 집이 아니야 우리 나무의 집은 누레진 밤의 지도 위에 썩어 가고 있다 그 녹슨 문을 밀어젖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무의 집 옆을 지나는 사람조차 없다 나무의 집 내벽은 밤하늘처럼 어둡고 습기 속에 푹 잠겨 있다 내게는 보인다 벽 위에 작은 별처럼 남겨진 여러 개의 얼룩들이 점점이 박힌 그것들을 이어 봐 어린 날 우리가 밤마다 그리던 이상한 동물들이 거기 있잖아
 
  깊은 어둠 아래서 지금도 우리를 올려다보는 눈이 없는 악어 우리를 뒤쫓는 발이 없는 코끼리 우리를 부르며 떨어져 내리는 새 우리의 손이 우리도 모르게 그려 나간 그 생명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무의 집 내부는 그들의 가쁜 숨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을 빛 속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는 단 한 줄의 선 단 하나의 점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이미 그만한 시간이 없다.
 
  매일 밤 나는 홀로 황량한 꿈의 들판에서 나를 쫓는 악어의 머리를 보았다 더없이 황폐해진 마을을 방황하는 코끼리의 발과 맞닥뜨렸다 바다로 가라앉은 새들을 보았다 그들의 부푼 꼬리와 머리 부위가 꿈결 밖으로 불거져 나와 거기서 조용히 피가 흘렀다 그것은 상처처럼 나를 괴롭혔다
 
  매일 밤 오빠는 성냥개비 한 개를 손에 들고 나무의 집 쪽으로 떠나곤 했다 소리 없는 그 모든 생명체들을 이젠 지상에서 모조리 불태워 버리기를 오빠는 바랐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오빠는 상처 입은 물고기처럼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내게로 흘러왔다 젖은 긴 머리칼이 이마를 덮어 열이 있는 오빠가 낯선 소녀처럼 보였다
 
  * * *
 
  어두운 나무의 집 그림이 내 어린 날 낙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의 집이 부식되어 나무의 벽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나 또한 그곳으로 떠나야 한다 저 옅어지는 점점을 별처럼 이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악어들의 눈과 발의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 개비 성냥이 아닌 굵은 붓 한 자루 갖기를 나는 바랐다
 
 
서양 동화책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나무의 집.
  마침표도, 쉼표도 하나 없는 이 산문시는 유년의 추억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다. 상처 입은 물고기처럼 죽음의 냄새가 밴 이 시는 1983년 출간된 《헨젤과 그레텔의 섬(ヘンゼルとグレ-テルの島)》에 실렸다.
 
  이 시의 줄거리를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사금파리처럼 유년의 저편에서 반짝이는 상처를 쓸쓸히 더듬는다. 화자(話者)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한 아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패망을 전후한 시절, 스무 살의 오빠(오빠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사망했을까?)와 어린 여동생인 ‘내’가 그린 꿈의 공간, 즉 나무의 집에 대한 얘기다.
 
  의식 밑바닥에 있는 이미지의 단편을 동화처럼 엮었는데 전혀 생경하지 않고 아름답다. 동화적 상상력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판에 박힌, 섬세하지 못한 설명인지 모른다. ‘가는 식물줄기가 벽을 타듯, 곤충이 나지막이 윙윙거리듯’ 그려낸 유년의 추억은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아름답다.
 
  유년의 그때, ‘나’와 오빠가 머물던 나무의 집. 그 집의 녹슨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무의 집 곁을 지나는 이조차 없었다. 그 집 나무 벽 위에 작은 별처럼 점점이 박힌 얼룩을 ‘이으면’ 동물의 무늬가 되곤 했다. 그 무늬는 눈이 없는 악어, 오빠와 ‘나’를 뒤쫓는 발이 없는 코끼리, 두 사람을 부르며 떨어져 내리는 새였다. 그래서 나무의 집엔 쫓고 쫓기는 동물들의 가쁜 숨소리로 가득했다. 가끔 그들의 부푼 꼬리와 머리 부위가 ‘꿈 밖으로’ 불거져 나와 어린 ‘나’를 괴롭혔다.
 

  이 시의 절창은 마지막 연이다. ‘나’는 나무의 집에 얽힌 추억을 불러내고 싶다. 유년의 그 시절로 돌아가 악어의 눈과 코끼리의 발을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 굵은 붓 한 자루를 갖고 싶다.
 
  시인 미즈노 루리코는 1932년생이다. 일본이 패망했을 때가 14살이었으니 전쟁의 아비규환을 이성이 아닌 여린 감성으로 견뎠을지 모른다. 시인은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동화 번역과 시작(詩作)으로 생계를 이었다. 지금까지 펴낸 시집 이름도 동화를 닮았다. 《동물도감》 《라푼젤의 말》 《개암나무색 눈의 여동생》 《고래의 귀이개》 《유니콘이 오는 밤에》 등이다.
 
  〈나무의 집〉을 읽으며 시인 조은의 첫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에 실린 〈전원일기1〉, 이문재의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에 실린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이 떠올랐다. 모두 가족과 유년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유년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꿈틀대는 감성의 시원(始原)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 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 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이하 3, 4연 생략)
 
  - 이문재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중에서
 
 
  이문재 시인에게 ‘옛집’은 삶의 원초성을 간직한 추억의 공간이다. 떠나감과 버림받음이라는 이중적인 뜻이 담겨 있다. 세월이 그 공간을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그 공간은 ‘빈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같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을 수 없다. 영혼은 그 공간을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옮기는 이삿짐을 꾸리며 가족들은 평화로운 날들이 주렁주렁 열리리라 믿었다. 즐비한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도 신비롭던 그 봄 잡목 숲을 일궈 과실나무를 심었다. 어린 과실나무가 빗물을 걸러 먹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빗물에는 삭정이들만 떠내려갔다. 야산을 감싼 꽃잎은 넓었고 인근 비행장을 이륙하던 비행기 소리에 비탈의 도라지 밭이 세상을 희끗희끗 열었다. 아버지는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가며 저수지에서 발을 씻었다. 아버지의 물살이 저수지에 가득 찼다. 멀리서 보는 아버지는 잔잔히 굽이쳐 산 하나를 넘어갔다.
 
  - 조은의 〈전원일기1〉 전문
 
 
한국삐아제가 펴낸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실린 삽화. 헨젤과 그레텔이 새엄마를 따라 숲속 길을 걷고 있다.
  조은의 기억은 좀 더 사실적이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이사 간 그곳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조차 신비로웠다. 집을 감싼 야산의 꽃잎은 넓었다. 그러나 화자의 시선이 아버지로 옮아간다.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목가적 전원과 멀어져 있다. 아버지는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는 곳에 있다. 왜 아버지가 그곳에 있는지 시인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귀갓길, 저수지에 앉아 발을 씻는 아버지. 그 모습을 시인은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의 물살이 저수지에 가득 찼다’
 
  〈나무의 집〉과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전원일기1〉은 유년의 추억을 그리고 있다. 그 추억은 허기진 상처처럼 비극적인 것이지만 그 비극은 날카롭지 않고 둥글다. 흐린 날의 낮별처럼, 흰색 크레용처럼 희미하지만 천천히 궤도를 그리며 추억의 한쪽을 따스하게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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