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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모던 뉘우스

봉건적 신분제의 붕괴

종과 노비, 백정(白丁)은 모두 단군의 자손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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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정도 다 같은 귀·입·코 똑같이 틀림없는 조선인
⊙ 불평의 고해를 헤쳐 이상의 천국, 형평사회를 건설하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전북 전주지역 남녀 백정 모습.(《유리원판목록집Ⅰ》, p.147)
  조선사회의 양인·천민, 양반·상민의 이원적 대립이 1894년 갑오개혁으로 급작스레 무너졌다. 어린 양반 ‘도련님’이 환갑 넘은 천민을 “~하게”라고 하대하거나 천민이 어린 양반에게 “~하소”라고 부르던 신분제 언어습관 역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다. 의식에서 봉건적 신분제의 심리적 기저가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으나 갑오개혁 이후 양반과 상민, 천민이란 ‘법제적 신분’을 더는 강요할 수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함남 북청지역 한 집안의 노비 모습.
(《유리원판목록집Ⅰ》, p.32)
  1923년 5월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백정(白丁)들의 반란은 봉건적 계급차별 의식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이 사건을 ‘형평사(衡平社) 운동’이라 부른다. 이 운동은 1년 전인 1922년 일본의 최하층 에다(穢多·예다)족이 일으킨 ‘수평운동’과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외치던 계급사상에 영향 받은 것이지만 한국통사(通史)에 보기 힘든 밑(민중)으로부터 분출된 근대화 운동이었다.
 
1928년에 개최된 형평사 제6회 정기전국대회의 포스터.
  역사적으로 신분제 해방 사상은 17세기 영국 혁명시기에 일어난 ‘레벨러(Leveller・수평파 혹은 평등파)’들의 급진주의적 자유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학자들도 있다. 당시 레벨러들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높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예속된 클리엔테이지(Clientage・예속관계) 사회를 거부하며 왕정과 귀족,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이 사라진 대의정부를 요구했다. 이들의 급진사상이 근대적 민주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평운동 7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경남 진주 성문 앞의 기념탑.
  형평사 운동은 진주에 사는 이학찬(李學贊)의 각성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백정의 신분이었지만 자산가였다. 교육열이 높아 자녀를 학교에 진학시키려 했으나 백정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진주에 사립학교(일신고등보통학교)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땅 고르기’ 공사에 출역한다.
 
형평운동가 강상호.
  이학찬은 학교가 완공되면 백정 자녀의 입학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에서 70여 명의 동료 백정과 함께 학교 설립을 도왔지만 입학이 불허된다. 충격과 울분을 느낀 그는 진보사상가 강상호(姜相鎬), 《조선일보》 진주지국장 신현수(申鉉壽) 등과 함께 1923년 5월 형평사를 조직한다. 전국 각지의 사회운동 단체와 지식인, 봉건적 신분제에 불만을 품던 이들이 가세해 형평사는 금세 전국조직으로 몸집을 불린다. 1923년 이후 조선인에 의한 동맹파업과 소작쟁의 건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형평사가 사회에 미친 영향도 컸다.
 
  형평사는 1931년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해산을 당한 뒤 ‘대동회(大同會)’라는 이름으로 존속했으나 사회운동 단체로서의 역할은 축소되고 말았다.
 
  《월간조선》이 소개하는 〈사람을, 우마같이, 대접함이, 불가한, 일〉은 《가정잡지》 1908년 1월호에 실렸다. 필자 이름이 없는 이 글은 봉건적 신분제 타파를 외치며 ‘사람을 우마로 부리는 자는 우마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호소한다. 《정진(正進)》 1929년 5월호에 실린 박평산(朴平山)의 〈형평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고찰〉, 안병희의 〈형평운동의 정신〉은 형평사가 세워지고 6년 뒤에 쓰였다. “정의의 함성으로 잠든 사람의 귀청을 요동시켰다”고 형평사 운동을 평가하고 있다. 현대어 표기로 고치되 원문을 살려 옮겨 적는다.
 

  사람을, 우마같이, 대접함이, 불가한, 일
 
《가정잡지》 1908년 1월호에 실린 평론 〈사람을, 우마 같이, 대접함이, 불가한, 일〉.
  말도 다르고 글도 다르고 거지(행동거지-편집자)도 다른 나라 사람을 내가 어떻게 대접할고. 저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니 사람으로 대접함이 가할고.
 
  모양도 다르고 혈맥도 다르고 조상도 다른 나라 사람을 내가 어떻게 대접할고. 저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니 사람으로 대접함이 가하니라.
 
  그런즉, 말이 다르고 글이 다르고 거지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혈맥이 다른 나라 사람도 사람으로 대접함이 가하거든, 말도 이 나라 말 같이 하며 글도 이 나라 글 같이 쓰며 땅도 이 나라 땅에 같이 살며 모양도 같이 이 나라 사람의 모양이며 혈맥도 같이 이 나라 삶의 혈맥 받은 한 조상의 한 자손과 한 나라의 한 백성으로, 너는 사람이 아니라 우마라 하야 그 코를 뚫으며 그 머리를 굴려 싸우며 그 궁둥이에 채찍질하고 그 등허리에 올라 앉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는 사람이라 하면 어떻다 할고. 우마 된 사람은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려니와 사람 등에 올라앉은 사람은 인정 없고 불측한 사람이니라.
 
  얼른 생각하면 세상에 사람 쳐 놓고야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 눈으로야 사람을 우마로 보일 리가 없을지며, 사람 마음으로야 사람을 우마로 생각할 리가 없을지라. 우마로 보지 않으면 우마로 부리지 못할지며 우마로 생각지 않으면 우마로 대접치 못할지니 사람을 우마로 할 사람은 세상에 생겨나도 아니하였을지어늘, 공연히 이 같이 장황케 말함은 무슨 의사뇨?
 
  슬프다. 제군네만 이것을 없을 이치라 할 뿐 아니라 나도 없을 이치라 하며, 제군네만 이것을 없을 일이라 할 뿐 아니라 나도 없을 일이라 하는 바라. 그러나 분명 없을 이치인데 있고 정녕 없을 일인데 있으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으리오.
 
  또 얼른 생각하면 옛사람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을는지 못 알지나 지금에야 어디 그런 사람이 있으며 다른 나라 사람에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못 알지나, 우리 대한(대한민국-편집자)에야 어디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할지나, 옛사람도 아니요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라 곧 지금 우리 대한에 그런 사람이 많으니 어찌 더욱 기가 막히지 않으리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어디 그런 사람, 그런 일이 있으랴 하며 질문할지나 내가 찬찬히 말하리라.
 
  서울 시골 없이 재상 집에나 사대부 집에나 부잣집에는 집집마다 옷 입고 밥 먹고 웃고 말하고 손 딸린 소와 말이 몇 바리씩(마리씩-편집자) 있도다. 그 소와 말의 특별한 이름은 다 각각이로되 보통 이름은 하나이니 즉 종이라. 종이란 이름만 한번 지은 후에는 그 이름 고치기가 하늘에 올라가기보다 어려우며 땅 속에 들어가기보다도 어려워,
 
  어미 이름이 종이면 딸의 이름도 종
 
  아비 이름이 종이면 자식의 이름도 종
 
  할아비 이름이 종이면 손자 손녀의 이름도 종
 
  8대조 9대조 이름이 종이면 8대손 9대손의 이름도 종
 
  이라. 하여 천지는 변하여도 종의 이름은 변치 아니하여 상전이 동으로 가면 종은 싫을지라도 동으로 따라가며 상전이 서로 가면 종은 싫을지라도 서로 가며 상전이 물로 들어가라 하면 물로 들어가며 상전이 불로 들어가라 하면 불로 들어가며 상전이 죽으라면 죽고 살리라면 살리며
 
  종은 집이 있어도 제 집이 아니라 상전의 집이며
 
  종은 땅이 있어도 제 땅이 아니라 상전의 땅이며
 
  심지어 제 몸도 제 몸이 아니라 상전의 쓰는 기계며 제 자손도 제 자손이 아니라 상전이 부리는 우마니
 
  상전은 누구냐 하면 종 부리는 사람의 존칭하는 이름이라. 상전은 무슨 재주가 많고 공이 많아서 상전이 되었는가.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니라. 제 조상부터 저 사람의 상전이 된 고로 나도 저 사람의 상전이 되었으며, 종은 무슨 죄가 많고 지혜가 없어 종이 되었는가.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니라, 제 조상 적부터 저 사람의 종이 된 고로 나도 저 사람의 종이 되었나니.
 
  태고적 종법 나던 시대를 연구한즉, 혹 힘 많은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억제하며 부리기도 하며, 혹 권리 높은 사람이 권리 낮은 사람을 억제하며 부리기도 하며, 또 혹 그 나라 처음 일어날 때에 부락이 각각 나누어서 서로 범할 제 이 부락 사람이 저 부락 사람을 사로잡아 오면 종으로 부리며 저 부락 사람이 이 부락 사람을 사로잡아 오면 종으로 부리나니. 우리나라 신라 고구려 백제 시대 사기(史記-편집자)를 상고(相考-편집자)하건대 남의 부락 사람을 잡으면 의례히 공 있는 장수의 노비로 나누어 준 일이 많으니 이것이 다 어둔 시대의 열리지 못한 일이라. 족히 모범할 것이 못되거늘.
 
  그 풍속이 오늘까지 남아서 종이라 하는 이름이 있는데 근래 종 있는 집을 보면 더욱 기막히는 일이 많토록(많토다-편집자). 어느 도에 흉년이나 들어 유리개걸하는 사람이 많으면 흉년이 아니 든 곳의 사람이 타도에 그 유리개걸하며 다니는 사람 중에 나이나 어리고 성품이나 순한 아이가 있으면 잡아 두고 종으로 부리고, 종 두지 못할 형세면 잡아 두었다가 종으로 팔아먹으며, 또 혹 부모가 조촐하여 미실미가한 아이가 있으면 잡아 부리기도 하며 팔기도 하고, 또 혹 어떤 고약한 놈이 제 속으로 난 자식을 돈에 욕심이 나서 팔아먹는 것을 사서 부리기도 하며, 싼 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기도 하며 또 혹 내 집 종을 남의 집에 팔기도 하며 남의 집 종을 사기도 하나니.
 
  슬프다. 우리 예의 지방에 인정 있는 사람들아. 한번 생각하여 보시오.
 
  □□(판독불가-편집자)의 사람을 물건과 같이 사고파는 것도 대단히 불가할 뿐더러 나는 저 사람에게 무슨 원수가 있어 제 사람을 대대로 두고 우마같이 부리며, 저는 이 사람에게 무슨 은혜를 져서 이 사람을 이렇게 부모같이 섬기라 하느뇨. 못될 일이 한 가지요.
 
  무슨 일로 제 사람을 잡아 두고 너는 내 일만 하여 주며 너는 내 돈만 모아 주며 너는 내 수중에 늘어라 하리오. 못될 일이 두 가지요.
 
  사람마다 자식을 낳으면 아무쪼록 돈 많고 권리 많고 높은 사람 되기를 원하거늘 종 된 사람은 자식을 낳으매 남 집 밭 갈아 줄 송아지 하나 낳은 셈이요, 손자를 낳으매 남의 집 소년 타고 다닐 망아지 하나 낳은 셈이라. 사람마다 있는 소원과 희망을 막으니 못될 일이 세 가지요.
 
  아들 낳은 것을 좋아하고 딸 낳은 것을 섭섭히 아는 것은 우리나라의 보통 인정이거늘 남의 마음을 거슬려 내 집 종은 딸만 낳기를 바라나니. 못될 일이 네 가지요.
 
  사람이 남에게 모진 소리를 한마디 듣거나 뺨을 한 번 맞아도 분한 마음을 품기가 어렵거늘 무죄한 사람을 집에 두고 날마다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몽둥이질하다 종아리질한다 하니 창자가 있는 사람이면 어찌 뼈가 녹도록 원망하지 아니 하리오. 못될 일이 다섯 가지요.
 
  남의 몸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매어 놓고 간대야 또 다른 집으로 팔려 갈 뿐이라. 종 된 놈의 신세는 상전 집이 터문서(땅문서-편집자)에도 없이 망하여야 종이 아니 될지라. 그런고로 종 된 자의 마음은 상전 망하기만 축원하는 자가 태반이니 그 집이 될 리야 될 수가 어찌 있으리오. 못될 일이 여섯 가지요.
 
  종 많이 둔 집 자손은 셈한 일까지 남에게만 맡기는 고로 나타(懶惰-편집자)하기 쉬우며 까닭 없이 높은 사람 된 고로 거먼(거만-편집자)하기 쉬우리니 못 될 일이 일곱 가지요.
 
  종 된 사람과 누구든지 벗하기도 싫어하며 혼인하기도 싫어하나니 무슨 원수라고 남에게 이런 못할 일을 하리오. 못될 일이 여덟 가지요.
 
  우황(하물며-편집자) 오늘은 옛날과 달라 우리 동포가 어느 지경을 당하였느뇨. 종 된 놈이 차마 또 누구더러 종이라 하느뇨. 못될 일이 아홉 가지라.
 
  옛적의 어떤 사람이 어떤 돌아다니는 아이 하나를 종으로 두고 부리더니 후에 알아본즉 외사촌 아들이라.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보내었다 하니 실상 생각하여 보면 종 둔 사람은 의사람 부리는 것과 다를 것이 얼마 못될지니, 촌수는 좀 멀지라도 누가 우리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 아니리오.
 
  문명 각국에도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다 못하는 고로, 고용꾼은 두나 우리나라같이 사고팔고 세전(世傳-편집자)하는 종이란 명사야 어디 있으리오. 사람을 우마로 부리는 자는 우마만도 못한 사람이니.
 
  생각할지어다. 종 둔 사람이여. 깨달을지어다. 종 둔 사람이여.
 
  그자는 이르되 종 둘 만한 형세에 종 아니 두는 가정은 화락한 가정이요, 자선한 가정이요 복 있는 가정이라 하노라.
 
  (출처=《가정잡지》 1908년 1월호, p.12~18)
 

  형평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고찰
  박평산(朴平山)
 
잡지 《정진(正進)》의 1929년 5월호(창간호) 표지(왼쪽).
잡지 《정진(正進)》에 실린 박평산의 글 〈형평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고찰〉(오른쪽).
  형평운동을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양반이 되려는 양반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의식 분자이다. 물론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형평운동이란 절대 양반운동이 아니라 조선의 구제도를 파괴하고 신사회 제도를 세우자는 것에 형평운동의 진적(眞的) 근본정신이 있는 것이며 이상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의 사회는 노자(勞資) 양대 계급이 대립하여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의 계급이 또한 대립되어 있다. 그리하여 백정(白丁)이니 무엇이니 하여 압박을 하게 되었으며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공평치 못한 사회제도인가!! 그러면 소위 백정이 사람 아니고 어떤 짐승이었던가 하면 그렇지도 아니하다. 다 같은 귀도 눈도 입도 코도 똑같은 틀림없는 사람이라. 그러던 조선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면 그렇지도 아니하였다. 조선의 2300만 민족이라 하면 형평사원 40만을 제외한 2300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생리학상으로 보아 틀림없는 사람이며 조선민족으로 보아 틀림없는 조선인인 동시에 다 같이 갓과 옷을 똑같이 입은 백의동포이다. 그런데 어찌 백정이라 하야 압박을 하게 되었던가? 여기에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자기가 섬기는 옛 임금을 위하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고 새 나라 새 임금에게 복종치 아니한 것을 미워하야 백정이라는 이름을 씌워준 것이 유일한 원인이었었다. 형평운동이란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일어난 것이 곧 형평운동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형평운동을 양반운동으로 오해하는 점으로부터 사원 비사원 간에 많은 충돌이 생기게 된다. 이 얼마나 모순의 결정인가.
 
  사적(史的) 고찰
 
  이러한 의의를 가지고 1923년 4월 24일(거금 6년 전) 이것이 형평이라 하겠다. 경남 진주에서 아래와 같은 선언을 가지고 첫 소리로 만천하에 진동케 되었다.
 
[원고지 수로 5매 삭제(削除)]
 
  1. 간부 등의 형평사들 모처에 매도코저한 사실
 
  1. 간부배(輩)의 배임 급(及) 사기에 관한 사실
 
  1. 간부의 독제 급 권리 쟁탈과 해방운동을 마비케 하는 사실
 
  1. 일반사원을 우롱하는 사실
 
  1. 공인 은닉신임장 위조에 관한 사실
 
  1. 간부 대 사원의 모욕적 언사에 관한 사실
 
  1. 허무맹랑한 부언(浮言)을 방(放)하야 내로 자체운동을 방해하고 외로 사회이목을 현위(眩威)케 하는 사실
 
  1. 형평운동의 작금 연혁에 관한 사실 등에 죄악이었었다. (이하 생략)
 
  (출처=《정진(正進)》, 1929년 5월호, p.11~17)
 

  형평운동의 정신
  안병희
 
  1. 형평운동
 
《정진(正進)》에 실린 안병희의 글 〈형평운동의 정신〉 첫 장.
  대체 형평운동이라 함은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일을 하느냐는 것인지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이제 우리 동족이 조선 각지에 대개 40만명이나 있다. 조선 전수를 2300만이라 하면 2300만분의 40만이라는 민족은 즉, 우리 형평계급의 민족일 것이다. 하면 다 같은 조선민족이지만은 ‘백정’이니 ‘피쟁’이니 ‘갖바치’니 ‘천인’이니 하야 그 무엇이 특별한 조선이나 있는 것처럼 왜—천대를 주며 학대를 주며 멸시를 하는가 하고 또 우리로서는 그 어떠한 조선이나 있는 것처럼 천대와 박대를 슬픈 느낌에 신음하면서 억울한 포한을 가지고도 의연히 짓밟혀 살아온 것은 그 무슨 이유일까.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는 인생이 아닌가. 왜 천대를 받는가. 멸시를 당하는가. 다 같은 인생으로 다 같은 조선사람으로 다 같은 남자로 다 같은 여자로서 짐승이나 또는 저—무엇으로 대우할 이유가 무엇이며 무슨 도리인가? 우리들은 이와 같은 생각에 없던 눈이 떴으며 없던 귀가 뚫렸으며 없던 입이 벌어졌다. 옳거니, 이때까지의 모든 천대와 멸시가 우리의 과실이다. 왜 그러냐 하면 눈이 없었던 것이 과실이었고 귀가 없었던 것이 과실이었으며 입이 없었던 것이 과실이었다. 말하자면 울기도 전에 젖 주는 이가 있지 아니할 것이다. 즉, 자기의 일은 자기의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우리들이 이미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는 이상에 우리의 힘으로써 모든 천대와 멸시를 이 인간 사회에 대하야 하소연하며 취소하도록 담판하며 요구하여서 □□□□(판독불가-편집자) 천대하는 행위와 멸시하는 버릇을 고치게 하며 없이하게 할 수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신앙을 확실히 잡았다.
 
  한데 거기에 대하야는 무엇보담도 제일로 우리의 다수가 한 덩어리로 묶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즉 다수 단결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 동네는 동네로 단결이 되고 한 고을은 고을로 단결이 되고 한 도는 도로서 단결이 되어서 조선 각처의 총단결 즉, 조선 형평사 총본부이니 결국은 조선 각지의 우리 계급 40만이 한 몸뚱이와 같이 단결이 되는 것이 필요타 한다. 이와 같은 의미로서 형평사라는 조직이 생겼다. 형평이라 함은 이 인간세상을 이 인간사회를 저울로 달아서 평탄하게 고른다 하는 의미이다. (5행 삭제)
 
  함으로 지금에 와서는 우리 형평사가 남병산에 동남풍이 불듯 비온 뒤에 죽순처럼 곳곳마다 자유를 부르짖고 평등을 요구하며 정의의 함성으로 이미 잠든 사람의 귀청을 요동시키었다. 하지만은 아직 우리 동족의 일부분과 또는 일반 보통사람 사이에는 깊었던 잠을 깨지 못한 이가 많다. 함으로 우리들은 불민함을 무릅쓰고 근래 8년 동안을 두고 동서 사방으로 우리의 동족을 위하야 인간사회를 위하야 자유를 찾자, 평등을 찾자, 행복을 찾자는 대사업에 노력한다. 이것이 즉 형평운동이다.
 
  우리들은 제일로 남에게 의뢰하는 생각을 두지 못할 것이다. 의뢰하는 것이 곧 자기를 무시하는 것인 고로 남에게 모욕을 면치 못하나니 우리는 귀족의 힘도 의뢰치 못할 것이며, 신사 학자의 힘도 의뢰치 못할 것이며, 부자 양반의 힘도 의뢰치 못할 것이다. 우리를 천대하는 자, 우리를 수고롭게 하는 자, 우리를 학대하는 자에게 대하야는 다만 끝까지 싸울 뿐이다. 함으로써 이 글을 씀에 대하야서도 관리와 학자와 명사와 저—당대에 명성이 혁혁한 양반님네에게 이 책을 보아주시기는 조금도 생각 끝에도 두지 않는다. 우리들을 백정놈이니 천인이니 하야 모욕하고 천대하는 모든 거룩하신 이에게도 보아주시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우리의 동족이 되는 형평계급의 여러분, 수고를 같이하며 슬픔을 같이하며 원수를 같이하며 피의 눈물을 같이 떨어뜨리는 우리의 형제에게 반듯이~ 깊이~ 이 글의 의미를 깨쳐 내기를 간절히 원하고 빌 뿐이다.
 
  2. 인간성의 원칙(형평사의 강령)
 
  지금에는 전하 대세의 원리를 따라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따라 모든 계급에서는 각기 그 계급의 행복을 위하야…(2줄 가량이 말줄임표다. 검열로 인해 삭제된 것으로 파악된다.-편집자) 저이들은 다—다수가 단결이 되어서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의 동족을 역시 우리도 이 인간사회에 대하여 모든 불평을 타파하자는 운동 즉, 형평운동을 일으켜서 다방 각처의 형평사가 생긴 것이다. 우리도 다수로서 단결의 힘을 만들자는 것이다.
 
  함으로 형평운동의 목적을 담고자 할진대 형평사의 강령이 우리 운동의 법칙이 되어 따라서 인간성의 원칙이 될 것이다. 제1로 강령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1. 아등(我等)은 경제조건을 필요로 한 인권해방을 근본적 사명으로 함.
 
  1. 아등은 일반 사회단체와 공동제휴하야 합리적 사회건설을 기(期)함.
 
  1. 아등은 형평운동의 원활과 단일의 촉성을 기함.
 
  1. 아등은 본 계급의 당면한 실제적 이익을 위하야 투쟁함.
 
  1. 아등은 아등 자신의 힘으로써 절대의 해방을 기함.
 
  제일 아등은 경제조선을 필요로 한 인권해방을 근본 역사 명으로 함. 우리는 이 인권해방을 즉 우리의 몸에 얽힌 그 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그 줄을 끊어 버리려 함이 가장 중대한 문제가 되겠지마는 경제조건을 필요로 한 문제를 삼지 않고는 인권해방이란 송장을 해방하는 것과 같고 허수아비를 해방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설령으로 우리의 운동이 그 목적을 단순히 인권해방에만 있다 하자. 또는 아주 해방이 되었다 하자. 다시 말하자면 일반 보통 사람과 같은 지위에까지 승격이 되었다 하자. 그 무엇이 다행하며 고마우랴. 먹지 아니할 수 있으랴. 입지 아니할 수 있으랴. 집에서 살지 않을 수 있으랴. 속담의 말로 금강산이 경개 좋다고 하여도 먹은 뒤에야 경치타고 인권해방만 하면 굶었을지라도 좋으며 얼어 죽을지라도 좋으랴. 우리 백정계급의 경제(생활상태) 즉 의복 음식 거처가 그야말로 참혹한 처지에 빠졌으며 빈약한 생애에 피눈물로 신음하야 살아왔다.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그 무엇으로 생산방법을 하였는가? 이 점에 대하야는 우리의 전문으로 한 직업이 있기 때문에 가죽장사, 가죽신장사, 키(쟁이)장사로서 겨우~ 생명을 이어 올 뿐이었는데 게다가 간혹 악마의 혹독한 토색의 갈고리에 끌려서 여간 생활의 자료는 억탈되었으며 천금일신이라는 생명까지도 빼앗긴 동무가 많다. 그러면 우리의 살아옴이 그—죽음이냐? 산 것이냐?—아! 우리의 조상은 산송장으로 살았으며 산 허수아비로 살았었다. 우리의 생명을 이어 오던 모든 음식물이 그—고량진미의 육식이었던가? 먹기는 먹었지만은 삼순구식의 백반총탕에 불과하였고 우리의 육신을 가리던 의복류가 그—능라주속((綾羅紬屬·비단-편집자)의 검의이었던가? 입기는 입었지만은 헌순 백결의 남루추복에 불과하였고 우리의 자녀를 길러내던 가옥 간이 그—고대광실의 껍데기이었던가? 살기는 살었지만은 오막살이의 일간두옥에 불과하였었다. 거기서도 다만 팔도 동간은 유아형제라는 동족의 애로서 구구한 생활로 모든 불평에 신음하면서 반천년 동안을 살아왔다.
 
  한데 지금에 우리의 생활상태, 즉 경제관계는 향상이 되어 있던가? 또한 퇴보가 되었던가?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대한 문제 아니 사활문제이다. 옛날에는 천한 직업을 강제로 하여 왔지만은 박해를 당하던 대신에 인권을 빼앗긴 보수로서 울면서 겨자 먹기로 간신히 생명만은 보전하여 왔다. 지금에 와서는 더러워하고 침 뱉고 그것이라면 천리로 만리로 구축하려던 소고기 장사 가죽장사를 누구가 하는가? 가죽장사의 순전한 이익은 저—신사 양반들의 독차지가 되었고 우리 동무 중 어리석은 분네들은 다만 사소한 전푼에 팔려서 동무 백정의 이문을 뺏기고 눈이 새빨개지며 소고기 장사로 말하더라도 근래에는 전 조선의 어느 지방 할 것 없이 비사원(보통사람)의 영업자가 날로 증가한다. 그 비사원 영업자 즉, 새로 난 백정이 자꾸~ 생기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와 중대한 사건이 뒤를 이어 발생된다. (중략) 그러면 백정도 사람인 이상에 사회단체 안에 있는 백정일 것이다. 사회운동 안에 있는 것은 반듯하다. 그렇지만은 우리는 이—인간사회에서 최하층의 밑바닥에서 짓밟히기 때문에 절대로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을 박탈당하였다 함으로 가장 간절히 그 인권해방에 열중이 된 것이다. 하지만은 자유를 찾자, 평등을 찾자 행복을 찾자 함에 있어서는 일반사회 단체와 동등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사회단체의 운동이나 우리 형평단체의 운동이나 다—동일한 사회운동 즉 사람의 운동인고로 제휴를 면치 못할 것이며 공동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휴’라 함은 손을 마주잡는다는 말이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사회운동 즉 사람의 운동의 정의란 저—태양(해)의 광명과 같다. 검은 장막의 속과 같이 저 암흑터에 잠겼던 천지만물이 그 고고한 광선에 비쳐서야 비로소 그 자태를 나타내게 되며 천태만상을 일어나니 사람의 운동, 즉 사회운동이 인류의 역사적 발전을 따라 점점 장족의 진보가 되어서 여성운동 소작운동 노동운동 수평운동 무산운동 형평운동이 생겼다 하면 각기 그 주의 주장의 목적하는 바 광명은 경우가 동일함으로, 동지단체의 관계를 가졌다 함으로 동지단체의 관계가 있고 우의 단체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가 있는 이상에 어찌 제휴, 즉 손을 마주잡지 않으며 공동으로 운동하지 않으랴! ‘합리’라 함은 진리에 적당하다는 말이다. ‘건설’이라 함은 만들자는 말이다. ‘합리적 사회’라 함은 진리에 적당한 사회라는 말이다. 즉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다. 동무들이여! 만천하 애중이여! 소리를 같이하며 힘을 같이하야 불평의 물결이 넘치는 고해를 헤쳐 나서 이상의 천국, 이 세상 극락, 즉 형평사회를 건설하자-.
 
  (출처=《정진》, 1925년 5월호,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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