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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知人之鑑 〈15〉 뛰어난 지도자란 미루어 헤아리기[推]를 잘하는 사람이다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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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 제자들에게 미루어 헤아림을 가르쳐
⊙ 선조, 이이가 정여립 추천했지만 거부
⊙ “임금은 자신을 버리고 사심을 없이하여 늘 고요한 마음과 적은 욕심으로 안팎의 대비를
    엄중히 하고 사사로운 청탁이나 민원을 단호히 차단해야” (진덕수)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공자와 자공. 공자는 제자들에게 미루어 헤아리는 법을 가르쳤고, 자공은 그 뜻을 잘 헤아렸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하나만 아는 사람은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제로(0)다. 조금만 주의해서 읽어 보면 《논어(論語)》에는 바로 이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을 깨우치고 길러주려는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먼저 공야장(公野長)편이다.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너를 안회와 비교할 때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제가 어찌 안회와 비슷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사람이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말했다. “너는 안회만큼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네가 안회만큼 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
 
 
  미루어 헤아림을 가르친 공자
 
  자공(子貢)은 공자의 최고 수제자 안회(顔回)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다. 흔히 안회는 인자(仁者)에 가까운 인물이고 자공은 지자(知者)에 가까운 인물로 간주된다. 그런 자공에게 공자는 아주 가혹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당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뛰어난 자공이었기에 지혜로운 답변을 했고 공자는 그래서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해 준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다름 아닌 자공의 대답이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사람이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실 공자가 던진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자공은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대답을 했을까? 그만큼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을 공자가 평소에도 강조했음을 우리도 미루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안회는 하나를 배우면 그것을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10이고 자공은 2였던 것이다.
 
  학이(學而)편에는 미루어 헤아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화가 실려 있다. 역시 자공과 공자의 대화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게 아첨[諂]을 하지 않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교만[驕]하지 않는 것(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는 말했다. “그것도 좋다. 하나 가난하지만 즐거이 살 줄 아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는 것(사람)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자공은 말했다. “《시경(詩經)》에 ‘잘라내고 쪼듯, 갈고 다듬듯’이라 하였으니 바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바입니다.”
 
  공자는 말했다. “사(賜)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이미 지나간 것을 일깨워 주자 앞으로 올 것도 아는구나!”〉
 
  공자는 자공의 말을 듣고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촉구했는데 그 점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시경》에 나오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구절을 인용하자 공자는 “이미 지나간 것을 일깨워 주자 앞으로 올 것도 아는구나!”라고 자공의 미루어 헤아림을 칭찬해 준 것이다. 공자가 미루어 헤아림[推]을 직접 이야기하는 대목을 통해 일단 미루어 헤아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강조는 마무리한다. 술이(述而)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네 귀퉁이가 있는 물건을 갖고서 한 귀퉁이를 들어 보여주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시 반복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여립을 보는 선조와 이이의 관점 차이
 
이이는 정여립을 선조에게 추천하는 등 사람 보는 눈에서 한계를 보여줬다.
  1586년(선조16년) 10월 22일 선조는 이이(李珥)를 이조판서로 임명한 직후 인사에 관한 의논을 한다. 이조판서는 문관(文官)의 인사를 책임지는 최고책임자다. 이 자리에서 이이는 “정여립(鄭汝立·1546년 명종1년~1589년 선조22년)이 남을 업신여기는 병통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배웠고 재주가 있다”며 중용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선조는 “정여립은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헐뜯는 사람도 많으니 어디 쓸 만한 자라고 하겠는가?”라며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석 달 후인 선조17년 1월 이이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이의 정여립 천거는 두고두고 이이의 오점(汚點)으로 남게 된다. 선조는 선조18년 5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정여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는다.
 
  “정여립에 관해서는 내가 누차 만나서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기질이 매우 강한 자인 듯하나 실로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결국 정여립은 먼 훗날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죄목을 얻어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자, 이 경우 독자 여러분은 선조와 이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사람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판단하겠는가?
 
  정여립은 이처럼 이이가 선조에게 추천했다가 즉석에서 거절을 당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이가 죽자 정여립은 입장을 바꿔 이이를 헐뜯었다. 그것도 선조와 함께하는 경연(經筵)에서 이이를 비방한 것이다. 이이가 살아있을 때는 이이를 공자에 견주기도 했던 정여립이었다.
 
  정여립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총명하고 통솔력이 있었으며 자기 주장이 강했던 인물”이었음은 인정했다. 1570년(선조3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운(官運)이 별로 없어 한직을 맴돌았고 1584년에야 홍문관 수찬(修撰)에 오를 수 있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했다는 평을 듣는 인물로서는 너무나도 느린 승진이었다. 여기에는 선조의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경연에서 정여립이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이를 비방하자 당시 이이에 대해 생각이 비판적으로 바뀌어 있던 선조조차도 “정여립은 송나라 때의 형서(邢恕)같은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형서란 원래 정명도를 따르다가 세상이 바뀌자 가장 먼저 정명도 공격에 나섰던 인물이다. 형서는 철종에게 “신은 정명도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이제 정명도가 베어져 천토막이 나더라도 구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한다. 형서는 이후 사마광의 식객이 되었다가 다시 사마광을 배반하고 이후 장돈에게 붙었다가 또 장돈을 배반한 후 다른 사람의 심복이 된다. 그래서 주자 이래로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형서라는 인물은 배신의 대명사였다. 선조의 눈은 그만큼 정확했다.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 이이
 
  정여립은 원래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있으면서 서인(西人)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이의 사망 후 이발에게 선을 댔다. 이발은 동인의 핵심인물이었다. 아마도 경연에서 이이를 비방한 것도 변신의 진실성을 입증하라는 동인세력의 암묵적인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전향(轉向)증명이라고 할까?
 
  정여립은 이이가 살아 있을 때는 이이에게 붙어 서인편을 들다가 이이가 죽자 이발의 동인에 가담했다. 정여립의 반란이 정말 반란인지 아니면 서인들의 음모에 희생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인과 동인을 오가며 출세를 도모하다가 결국 낙향하여 기축옥사(己丑獄死) 때 비명횡사를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공자는 예를 모르는 사람[不知禮者]은 비명횡사한다고 했다. 정확히 그대로다.
 
  당시 생전에 이이와 가까웠던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조차 선조에게 “이이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기뻐했던 사람입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이의 사람 보는 눈[知人之鑑]은 결코 높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모자랐던 것이다. 반면 선조가 정여립에 관해 두 번째로 말한 내용, 즉 “정여립에 관해서는 내가 누차 만나서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기질이 매우 강한 자인 듯하나 실로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논어》 의 태백(泰伯)편과 비교해 보자.
 
  〈공자는 말했다. “거만한 데다가 곧지도 못하고, 어리석은 데다가 공손하지도 못하고, 무능한 데다가 신실함도 없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무능하다는 부분만 뺀다면 고스란히 정여립을 두고 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루어 헤아림은 곧 인재를 보는 능력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유(子游)의 대화다.
 
  〈자유(子游)가 노나라의 무성이라는 읍을 다스리는 읍재(邑宰)가 되었다. 이에 공자는 자유에게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고 묻는다. 자유는 이렇게 답한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때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또 공무(公務)가 아니면 한 번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그냥 밋밋한 대화 같지만 자유의 대답은 함축하는 바가 크다. 그의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 대해 송나라 정치가이자 유학자 진덕수(眞德秀)는 자신의 책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원래 이 책은 황제 앞에서 경전을 읽고 풀이한 내용을 담은 것이라 경어체를 사용했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자유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무가 아니면 자신의 집에 오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담대가 현능하다[賢]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대체로 이 두 가지는 아주 작은 행실[細行]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미루어 헤아려[推] 보아서, 첫째 길을 다닐 때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았으니 이는 굽은 길을 피하고 빨리 하려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을 살펴낸 것이고, 둘째 공무가 아니면 한 번도 사사로이 윗사람의 집에 오질 않았으니 이는 윗사람을 섬기는 데 아첨으로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살펴낸 것입니다.
 
  자유는 일개 읍재일 뿐이었는데도 그 사람을 취하는 것을 이처럼 (최선을 다해) 했습니다. 따라서 그 이상의 지위에 있는 경우 재상은 천자를 위해 백료(百僚)를 고르며 임금은 천하를 위해 재상을 고를 때 반드시 이처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송나라의 명신) 왕소(王素)는 재상을 임명하는 문제를 논하면서 환관이나 궁첩은 후보자들의 이름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사마광(司馬光)은 간관(諫官)을 쓸 때에는 권간(權奸)들과 밑으로 통교하지 않는 자를 써야 한다고 했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한 이후에야 강직하고 바르며 공명정대한 인사가 관직에 진출하게 되고 반면에 인사청탁을 다투어 하고 아첨을 일삼는 풍조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진덕수는 일개 읍의 인사선발을 실마리로 삼아 송나라 황제의 재상 고르는 법으로 이야기를 확대하고 있다. 이 또한 진덕수의 제대로 된 미루어 헤아림[推]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미루어 헤아림은 리더의 바른 마음으로 경계해야
 
당 현종은 간신 이임보의 농간에 마음이 흐려졌다.
  진덕수는 부정적 의미의 미루어 헤아림, 즉 임금의 마음을 호리는 기술에 대해 《신당서(新唐書)》에 나오는 다음 사례를 든다.
 
  〈“이임보는 황상의 뜻을 잘 알아냈다[刺=探]. 이때 황제의 춘추가 높아 듣고 결단하는 것이 점점 게을러졌고 스스로 몸가짐을 바로 하는 데 염증을 느꼈으며 대신들을 접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다가 이임보를 얻자 그에게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맡겼다.
 
  이임보는 임금의 욕심을 길러내는 데 능해 이로부터 깊은 궁궐에서 연회나 즐기며 미인들과 잠자리를 하느라 임금의 다움[主德]은 시들어 갔다. 이임보는 매번 청을 올릴 때마다 먼저 좌우를 물리치게 하고서 황상의 아주 작은 뜻까지 살폈으며 궁궐 내 요리사나 몸종들에게까지도 은혜와 신임을 베풀어 천자의 동정을 반드시 소상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이임보(李林甫)는 당나라 현종 때의 대표적인 간신이다. 이런 인물에 대한 진덕수의 처방이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임보가 황상의 뜻을 잘 알아낸 것은 곧 (한나라 원제·元帝 때) 석현(石顯)이 임금의 작은 뜻까지 능히 알아낸 것과 같고, 임금의 욕심을 잘 길러낸 것은 곧 조고가 진나라 2세 황제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음란한 즐거움에 빠지도록 권한 것과 같습니다. 또 좌우를 물리치게 한 것은 곧 (하·夏나라 때) 한착(寒浞)이 안으로 궁궐 내 여인들에게 알랑거리고 왕망(王莽)이 내시와 궁녀들을 잘 섬긴 것과 같습니다. 옛날의 간신들이 이처럼 하나씩만 갖고 있던 재주를 이임보는 한꺼번에 다 겸했으니 이임보는 석현과 조고와 한착과 왕망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당나라 왕실은 이로 말미암하 거의 망할 뻔했습니다.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서 미루어 헤아려 보건대 그 이유는 명황제(현종)의 마음이 먼저 흐려진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임보가 파고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임금이 진실로 능히 자신을 버리고 사심을 없이하여 늘 고요한 마음과 적은 욕심으로 안팎의 대비를 엄중히 하고 사사로운 청탁이나 민원을 단호히 차단한다면 제아무리 간신들이 설친다고 하더라도 어찌 그 간사함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겠습니까?
 
  《예기(禮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도리에 적중하니 마음에 (억지로) 작위(作爲)하는 바가 없어 지극히 바른 도리를 지킬 수 있다.’ 이 말은 곧 하나의 바른 도리만 잘 지켜도 수많은 사람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것은 임금이라면 반드시 마음으로 다잡는 바[約]를 지키는 좋은 방도라고 하겠습니다.”〉
 
  미루어 헤아림[推]도 좋은 출발점[善始]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좋은 출발점이란 리더의 바른 마음가짐[正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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