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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 物語 〈11〉 ‘요미우리’와 ‘히키후다’

에도시대 과학적 사고의 문을 연 《해체신서(解體新書)》

글 : 신상목  (주)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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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기타 겐파쿠·나카가와 준안, 네덜란드의 해부학 서적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 ….
    연골·신경·동맥 등 용어 창안
⊙ 1804년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青洲), 유방암 수술하면서 전신마취 수술 성공
⊙ 호시노 료에츠(星野良悦), 1792년 인체 목골(木骨) 만들어
⊙ 서구의 과학적 사유(思惟) 도입, 세계관의 전환 계기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스기타 겐파쿠의 《중정(重訂)해체신서》(1820년)에 실린 인체 골격도.
  근대성을 구성하는 합리성은 관찰·가설(假說)·검증이라는 과학적 사유 과정을 근간으로 한다. 합리성은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분석(分析)’을 중시한다. 분석을 의미하는 ‘analysis’는 어원적으로 ‘잘게 쪼개는 것(breaking down)’에서 연유하였다. 분석은 대상을 양파 까듯 계속 쪼개고 나누어 더 작은 요소(element)로 쪼갤 수 없을 때까지 쪼갬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발상이다. 현대 과학문명은 분석을 기초로 하는 귀납적(歸納的) 사유의 산물이다.
 
  인체의 질병규명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지식체계인 의학은 15세기 이후 서구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 현상을 분석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서양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의 내부구조를 파악하고, 각 기관의 기능, 역할, 상호관계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인체분석의 기초로 ‘해부’(解剖·anatomy)를 중시하였다.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해부를 경원시한다. 히포크라테스가 해부학의 시조로 불릴 정도로 ‘의학=해부학’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서양의학과 달리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의학은 기(氣), 정(精), 신(神)의 수양(보양)을 중시하며, 몸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조화를 중시하고 생명 작용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해부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전통 동양윤리의 관점에서 사체에 손을 대는 것은 불경(不敬)이었고,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둔 생명론의 관점에서 사자(死者)의 골격과 장기(臟器)로부터 생로병사의 단서를 찾을 수도 없었다.
 
 
  일본 지식계를 강타한 서양의 해부학
 
《해체신서》를 펴낸 스기타 겐파쿠.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례(葬禮)의 역(役)을 부여받은 일부 하급 신분을 제외하고는 의사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터부시되었다. 18세기 들어 일본에 서양의 의학서가 전래되자 일본 지식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진다. 데지마상관(出島商館·나가사키에 마련된 네덜란드인 전용 거류구역)에 체류하는 네덜란드 의사 등이 가져온 근대 의학서, 특히 해부학 서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 서양의 서적들은 금서(禁書)로서 막부의 허가 없이는 유통이 제한되었지만, 실제 의술을 담당하던 의사들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인체를 이토록 자세하고 정밀하게 뜯어볼 생각을 하다니. 처음 접하는 인체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앞에 두고 일본 의사들의 직업의식이 꿈틀거린다.
 
  1754년 고방파(古方派·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한방의학) 의학자인 야마와키 도요(山脇東洋)가 사형수의 시체 해부에 입회한 후 1759년 관찰 내용을 기록한 《장지(蔵志)》라는 해부 도감을 출간한다. 일본 최초의 해부 실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나, 서양 해부학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인체 내부의 외관을 묘사한 수준으로 진정한 의미의 해부도해(解剖圖解)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전기가 찾아온다. 1771년 봄 난방의학(네덜란드 의학)에 관심이 많은 의사인 나카가와 준안(中川淳庵)은 데지마상관장이 에도 출부(出府) 시 숙박하는 거처인 나가사키야(長崎屋)를 방문한 차에 《타펠 아나토미아》를 비롯한 서양 해부학 서적을 접한다. (《타펠 아나토미아》는 독일 의사 쿨무스가 저술한 《Anatomische Tabellen》이라는 해부도보의 네덜란드어판인 《Ontleedkundige Tafelen》의 일본어 통칭이다.)
 
  《타펠 아나토미아》의 정교한 인체 내부 묘사에 감탄한 나카가와는 동향의 의사인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에게 동 서적들을 소개하고 구매를 권유한다. 매사 의욕이 넘치던 활동가 스기타의 자금 마련으로 책을 입수한 두 사람은 《타펠 아나토미아》를 탐독하면서 자신들의 무지(無知)를 깨닫고 강렬한 지적 탐구욕을 느낀다. 같은 해 3월 사형수의 해부를 참관하기 위해 죄수 처형장을 방문한 스기타와 나카가와는 오이타(大分) 출신의 의사인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와 조우한다. 우연히도 마에노 역시 별도의 루트를 통해 《타펠 아나토미아》를 소유하고 있었다. 의사였지만 이들도 인체 내부를 상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3인의 의사는 해부를 참관하면서 《타펠 아나토미아》에 묘사된 인체가 실제의 인체와 정확히 일치하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서양 해부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3인은 그 자리에서 《타펠 아나토미아》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일본 최초의 본격 번역서 《해체신서》
 
  번역을 목표로 삼기는 했으나, 변변한 네덜란드어 사전 하나 없이 의학서를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에노가 약간의 네덜란드어 지식이 있었으나, 인사말을 나누는 정도의 초급 수준이었다. 이후 번역 과정은 한 편의 장대한 ‘맨땅 헤딩’ 스토리였다. 암호 해독과 다를 바 없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극복하는 방법이 고안된다.
 
  대략적인 방법은 이렇다. 우선 기존 지식으로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 표시해 둔다 → 의미가 확정된 단어로부터 전후 단어의 의미를 유추한다 → 모르는 단어는 일단 건너뛰어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가 그림 또는 여타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 가능성을 좁혀 나간다 → 한 문장에서 의미가 확정된 단어가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면 문장 전체의 뜻을 추측하여 그로부터 각 단어의 의미를 추정하고, 그 의미를 다른 문장에 사용된 같은 단어에 대입해서 말이 통하는지를 확인해서 의미를 잠정적으로 확정한다 → 의미가 확정되면 다시 그로부터 전후 단어의 의미를 유추한다. 이런 과정의 계속적인 반복이다.
 
  스기타 자신이 “키(舵)도 돛도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듯하다”고 표현한 어려움 속에서 수수께끼 풀 듯, 퍼즐 맞추듯 번역이 진행되었다. 기의(記意·signified)를 알아도 그에 해당하는 일본어 기표(記表·signifier)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는 아예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야만 했다. 신경(神經), 연골(軟骨), 동맥(動脈) 등 기존 동양의학의 관념에는 없던 인체의 부위와 기관에 새로운 일본식 이름이 부여되었다.
 
  참여자들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번역에 매달린 지 3년 후인 1774년 《타펠 아나토미아》의 번역본인 《해체신서》(解體新書)가 출간된다. 가장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 마에노가 번역이 충분하지 못함에 부담감을 느껴 극구 작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는 것을 사양했다고 할 정도로 번역 자체의 수준은 높지 않다.
 
  그러나 번역의 수준을 떠나 《해체신서》의 출간은 일본의 지식사(知識史)에 있어 분기점(分岐點)을 찍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해체신서》는 서양 언어로 된 서적을 일본어로 옮긴 최초의 본격적 번역서이다. 더구나 그 내용은 기존의 관념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터부의 영역이었다. 《해체신서》는 일본인들이 서구의 관념을 자신들의 관념으로 변환하는 번역이라는 언어적 통로를 만들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기존의 윤리, 규범에 가로막혀 있던 금단(禁斷)의 문턱을 넘어 세계관의 전환을 기하는 계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세계 최초 전신마취 외과수술
 
일본 의학계는 하나오카 세이슈(왼쪽)가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유방암 절제 수술(오른쪽)을 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의학은 《해체신서》 이전의 의학과 이후의 의학으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해체신서》가 일본 의학에 미친 임팩트는 컸다. 《해체신서》는 의학이 책상머리 고담준론에서 벗어나 실증과 실용의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해체신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에 노출된 일본 의학계에는 특유의 탐구정신과 성실함으로 서구를 포함한 당시 시대를 앞서는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青洲)의 전신 마취 외과수술이다. 서양 의학계에서는 1846년 미국 하버드 의대의 존 워런(John Warren)이 에테르를 사용하여 집도한 환자의 목 혹 제거 수술이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 의학계는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은 1804년 일본인 의사 하나오카 세이슈의 유방암 수술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나오카는 동양의학과 난방의학을 두루 섭렵하며 절개, 절제, 봉합, 소독 등 외과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의사였다. 하나오카는 외과적 치료를 요하는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이 너무 커서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자주 처하자 환자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마취제 개발에 진력한다. 모친과 아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가 모친이 사망하고 아내가 실명하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집념 어린 노력 끝에 ‘통선산(通仙散)’이라 불리는 마취제를 개발한 하나오카는 1804년 당시 60세 여성 환자의 말기 유방암 절제(切除) 수술을 집도한다. 환자는 결국 수술 4개월 만에 사망하였으나, 수술 후 20일 만에 기력을 회복하여 수백 리 떨어진 귀향길에 오를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는 등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일본 의학계는 하나오카의 제자가 남긴 제법(製法) 기록에 근거해 분석한 결과 통선산의 마취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수술에 대한 기록이 명시적으로 남아 있어 서양 의학계에서도 하나오카가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수술을 했다는 주장을 긍정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호시노의 인체 골격 모형
 
호시노 료에츠가 제작한 인체 목골.
  《해체신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以上)을 추구한 의사도 있다. 해부학에 기초한 의학 교육에는 인체 골격 모형(human skeleton model)이 매우 유용하지만, 당시에는 의사라 할지라도 실물 인골(人骨)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히로시마의 의사 호시노 료에츠(星野良悦)는 솜씨 좋은 의사로 평판이 높았지만 숙모의 하악(下顎) 관절 탈골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는다. 호시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인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감하고 정부의 특별 허가를 얻어 사형수를 직접 해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인체 골격 모델 제작에 나선다. 1792년 솜씨 좋은 목공의 도움을 얻어 300여 일의 제작 기간을 거친 끝에 인체 목골(木骨)이 완성된다. 일본 의학계가 세계 최초의 인체 골격 모형이라고 주장하는 ‘호시노 목골’의 탄생이다. 혈관이 통하는 뼈의 구멍까지 구현될 정도로 실물에 가깝게 세밀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호시노의 목제 골격 모형은 후에 막부에 헌상되면서 에도로 옮겨져 의학 전공자들의 연구 및 교육에 활용되었다.
 
  이후 호시노의 제자인 가가미 분켄(各務文献)이 제작한 ‘가가미 목골’(1810), 가가미의 제자인 오쿠다 마쓰리(奧田万里)가 제작한 ‘오쿠다 목골’(1819) 등의 등신대형 인체 골격 모형이 차례차례 제작되어 에도시대 실증 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슷한 시기 조선의 사정은 어땠을까?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 병원을 견학한 조선의 신진관료 송헌빈은 그곳에서 해부도와 해부용 인형 등을 보고는 “정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는 인술(仁術)을 하는 자가 할 짓이 아니다. 고약하고 고약하다”고 적었다고 한다. 《타펠 아나토미아》가 조선에 먼저 전래되고 조선의 지식인이 새로운 세계관에 노출되었다 할지라도 조선이 과학적 합리성에 눈 뜨고 스스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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