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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5〉 전투의 그늘

글 : 유영식  전 예비역 해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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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선을 넘은 생존 장병의 침묵 … “불을 켜고 잠을 자고, 엘리베이터 혼자 타기가 겁나”
⊙ 천안함 1주기 때 ‘마음의 돌’ 매달고 사는 최원일 함장의 인터뷰를 주선할 수 없었다
⊙ 현행법상 전투행위 자체는 보훈대상 아냐 … ‘전투행위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 시급
⊙ 서해바다는 전쟁의 바다 … 국가도 참전장병들에게 합당한 의무 다해야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2010년 12월 24일 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특별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
많은 생존 장병들이 전상 인정이 안 돼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
  천안함 피격사건 생존자 전환수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NLL 인근 해역 경비작전 수행차 출동임무 수행 중인 (2010년) 3월 26일 어뢰에 공격을 받았고, 그날은 야간에 수제비로 야식을 먹고 빨래하던 중 봉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함정이 두 동강 나는 그 순간, 함수 쪽에 있다가 간신히 구조되었으나, 동기생 한 명은 함미의 체력단련장에 있다가 전사했는데, 그 동기생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씨는 손가락 부상을 인정받아 보훈대상자가 되었으나, 상선의 항해사 꿈을 접고 바다와 관련 없는 직장에 영업직으로 취직했다.
 
  2년 전 천안함 생존 용사들과 가진 인터뷰 조사에 의하면 생존자 중 60%가 “잠잘 때 악몽이 잦고 불을 켠 채로 잠자고 있다” “사고 직후에는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는 게 두려웠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갑자기 옆 건물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지하철 타고 가다가 열차가 전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라고 진술했다.
 
 
  자살해도 국가유공자가 되는 현실
 
2017년 3월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해군 중령이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병사나 간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지만 취직을 못할 것 같아 두렵다” “국민적 영웅이라 칭하고 엄청 띄우더니 행사 때는 높은 분들에 밀려 구석에 박힌 들러리 신세”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3명만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실태에 대해 한 생존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훈련 중에 부상을 당하거나, 사무실 집기를 운반하다 허리만 삐끗해도, 내무반별로 휴일날 축구하다 다쳐도, 극히 일부지만 심지어 자살해도 국가유공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 해군본부 인사근무처장을 지내며 전사자 현양(顯揚) 활동을 한 오계록 예비역 해군 제독은 “천안함 사건 이후 생존 장병에 대한 지원책이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당시 해군에서 극한의 침몰상황에서 살아 나온 장병들에게 군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본인들이 원하는 보직, 즉 인사요청을 받아들이는 것과 희망 시에 군 병원에서 언제든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게 전부였다.
 
  오 제독은 “생존 장병의 심리치료 환경조성을 위해 각 부대에 소속된 생존 장병의 진료 여건 보장을 위한 지침을 하달했지만, 그나마 새로운 보직을 받은 간부들은 수시로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생존 장병들은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인 심리치료와 관리가 필요했는데, 군 병원에 트라우마를 전담할 전문 인력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는 것이다.
 
  천안함재단이 발족되고 전사자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자 전사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천안함재단에서 생존 장병에게 소정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위로금을 받은 생존 장병들은 그마저도 전투 중 사망한 장병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해군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당시 이 기부행위를 보도자료로 작성해 언론에 제공했던 필자는 한 배를 탔던 전사자에 대한 생존 장병들이 갖는 ‘짐’이 있음을 직감했다.
 
 
  생존 장병의 전투 후유증 문제 소홀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함정의 침몰과 전사자가 발생한 것은 초유의 사태였다. 정부와 해군은 대규모 전사 장병에 대한 예우와 선양을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피격 원인의 문제점을 검토해 이후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와 군이 시간을 두고 진행했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와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책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가운데 국민들의 모금운동도 일어났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이 모금운동은 애국심의 발로였고, 지금도 당시 국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나라를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국민 참여 모금운동 현상을 보고 현역군인으로서 ‘군인의 죽음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고, 국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전사자에 대한 추모와 지원책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고, 국민의 애도와 추모 마음을 바탕으로 천안함 전사자 현양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생존 장병의 전투 후유증 문제다.
 
  천안함 1주기 시점이 되자 언론들은 최원일 중령(당시 천안함장)에 대해 인터뷰 요청을 물밀 듯이 해 왔다. 그러나 해군 입장에서는 참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피격사건으로 최 함장은 그 순간부터 가슴에 돌을 달고 사는 심정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북한의 도발과 분노를 강력하게 표출하고 싶었지만, 그의 입장은 역시 생존자의 아픔을 다시금 들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천안함의 전사한 장병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그의 고뇌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천안함 추모식이 다가오면 언론은 전사자 가족의 생활과 아픔을 주요 관심사로 다뤘다. 자연스레 생존 가족의 근황과 생활이 기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반해 생존한 장병들에겐 늘 그늘이 존재했다. 그들의 전투 후유증은 표면화하지도 못하고, 그들 역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이중의 압박이 생존 장병들의 마음을 옥죄고 놓아 주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최근 천안함처럼 극단의 사선을 넘어 생존한 장병들이 겪고 있는, 드러내지 못하는 아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해군 법무실장으로 오랫동안 군 법무업무에 종사한 김칠하 변호사는 천안함 생존 장병이 겪는 어려움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김 변호사 주장은 이렇다.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전투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보훈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 전투행위의 결과 사망하거나 상이 등급(7급 이상)을 받거나 훈장을 받은 자에 대해서만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어 일반 천안함 참전 장병은 법상의 보훈혜택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국가를 위해 특별히 희생과 헌신한 전투행위에 대해 새로운 보훈정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전투행위를 국가유공자로 포섭할 필요성이 크다면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동법의 적용대상으로 추가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하지 아니하고 천안함 참전 장병의 경우만 특별히 보훈예우가 필요하다면 특별법인 가칭 ‘전투행위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전상(戰傷)인가 공상(公傷)인가
 
2011년 3월 27일 백령도 연하리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식에서 고 임재엽 중사의 어머니가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변호사의 이 같은 주장은 ‘적으로부터 공격 받은 천안함 장병의 전투 후유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우선 “천안함 장병들은 참전해 전투행위를 한 것인지, 국가의 수호·안전보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반적인 직무를 수행한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북한이 불법적으로 일으킨 전쟁도발 행위라면 사망하거나 부상한 천안함 장병들은 공상자가 아닌 전사자나 전상자로 예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에 앞서 2016년 3월 24일 개최된 천안함 6주기 호국보훈 세미나에서 세종대 김민석 교수는 “적이 천안함을 공격해 46명은 전사하고 58명이 생존했다면 58명은 참전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당시 적의 공격에 의해 전사한 동료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 살아남은 생존 장병에 대한 예우가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으로 대접받고 있으니 말 그대로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임영호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6명의 전사자와 13명의 부상자라는 전투피해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부상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009년 6월 29일 국가보훈처에서는 2005년 연천 GP 총기난사 사고 당시 내무반에 있던 21명 전원에 대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해 국가유공자로 등록시킨 전례가 있다. 연천 GP 총기난사 사고는 내부적인 문제로 인한 총기난사 사고였던 점에 비해, 제2연평해전은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가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전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국가가 제2연평해전 부상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유공자 등록기준에 있어 사안에 대한 성격과 형평성을 무시한 처사다.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되지 못하고 있는 참전 장병들에 대해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되어야 한다.”
 
  이처럼 천안함 피격사건의 생존 장병과 제2연평해전 부상자에 대한 예우 문제의 핵심은 위험작전구역에서의 전투행위라는 인식의 기반 위에서 그 결과가 공상이냐 전상이냐 하는 해석의 문제이다.
 
 
  서해 NLL 해역의 평시 작전 위험성
 
서해5도서 인근 해역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어선들을 보호하는 해군 함정들.
서해5도서 해역에서의 근무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위험한 임무이다.
  필자는 국민들이 서해 NLL 경비작전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한다면, 국민들은 이를 전상이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1999년 이후 서해에서 벌어진 3차례의 교전과 1차례의 어뢰피격 사건이 왜 전투행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1953년 NLL(북방한계선)이 설정된 이후 1973년 서해사태 때까지 서해상에는 큰 충돌이 없었다. 1953년 당시 북한은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NLL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을 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휴전 이후 북한은 서해지역에 보유한 함정이라곤 3척 수준으로, 북한 주민의 해상 탈북을 통제할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0년 지난 1973년 북한은 느닷없이 서해사태를 야기했다. 서해사태는 1973년 10월부터 12월 사이 10여 차례에 걸쳐 북한이 집중적으로 NLL을 월선 도발한 사태다. 고속전투함 위주의 전력을 갖춘 북한이 연평도, 대청도 등 연안까지 거침없이 침범하고, 인천 백령도와 연평도를 오가는 우리 여객선을 에워싸는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켰다.
 
  북한은 휴전 이후 고속함 위주의 함정 건설에 집중해 1973년경 약 80척의 유도탄정 고속정 어뢰정을 건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안 전투력에서 남한보다 우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73년 서해사태 때 우리 군은 적의 도발에 대응할 무장을 갖춘 소형 고속함이 없었던 관계로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군도 고속정을 건조하기 시작해 지금의 참수리정과 유도탄 고속함으로 발전시켜 왔다.
 
  이후 서해에는 우리 고속정 전진기지, 전탐감시대, 항공기지, 유도탄 기지를 집중적으로 건설했고, 북한도 서해에 함정 전진배치, 유도탄 기지 증강, 해안포 집중 등 서해는 남북한 간에 강력한 ‘구역방어’를 위한 공격 전력이 집중하는 곳으로 급변했다.
 
  남북이 NLL을 두고 일정 수준의 전투력이 강화된 상태에서 일종의 힘의 균형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고, 특별히 위기를 조장할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1999년까지 남북 간에는 강력한 해상 충돌 없이 NLL은 평온하게 유지됐다. 이러한 가운데 해상의 전투전력은 점점 더 정교하고 강력하게 집중돼 왔다. 일례로 북한은 고속함정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전차에 달던 포를 함정에 장착하는 등 1990년대 들어 해상 근접전투에 필요한 조치를 해 오고 있었다.
 
  남북한 간에 점점 증강된 전투력을 보유한 시기인 1999년을 기점으로 NLL 인근 해역은 ‘전투의 바다’로 변했다. 서해에서 북한과의 해상교전이 3차례 있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의 피해는 없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은 전사 6명, 부상 13명, 참수리 357호정 침몰이라는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3차 교전인 대청해전에서 우리 군은 피해가 없었고, 북한 함정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고, 함정은 예인 상태로 퇴각했다. 그 이후 잠수정의 어뢰에 의한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했다. 천안함은 해전의 성격으로 볼 때 제2차 대전 이후 잠수 함정의 어뢰로 함정을 공격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서해 바다는 전쟁의 바다
 
천안함사태 등은 서해5도서에서의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위험지수로 따질 때 서해 NLL 해역은 전쟁의 바다이다. 서해 경비작전에 투입되는 함정은 평소에도 대전투 준비태세를 유지하지만, 출동 전 점검을 통해 기관, 무장, 탄약 등 분야별로 언제든 기동과 사격이 가능하도록 완벽한 전투준비 상태를 갖추고 투입된다. 그러나 NLL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과의 조우는 그야말로 긴장이다.
 
  고속정장과 편대장들은 적 경비정의 사격거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만, NLL을 무시하고 기동하는 북 경비정의 월선을 차단하고 저지하는 기동은 유사시 적 경비정의 사격거리 이내로 우리 함정이 기동해야만 한다.
 
  더욱이 우리의 교전규칙은 북한의 선제공격 후 반격의 경우가 대부분인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상호간 수천 발의 조준사격이 있었던 3차례의 모든 교전은 북한 함정의 선제공격 이후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장병들의 피해 위험도는 매우 높다.
 
  특히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은 NLL 경비작전의 형태를 변동시킬 정도로, 적 잠수함으로부터의 함정 보호를 위해 고속기동을 해야 하고, 위험 해역에서는 수시로 변침기동해야 하는 등 함정의 기동 양상이 마치 대잠수함 작전(ASW)을 진행하는 수준으로 격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 승조원과 장비의 피로도는 출동 기간 내내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높아진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적 잠수함(정)과 수상함을 탐지하고 싸우는 일은 고강도 위험에 연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갈등 해역이라고 해도 교전이 이루어지는 해역은 유일하게 서해 NLL 인근 바다이다. 이곳은 사실상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경비작전에 참가하는 지역으로서 전투해역이다. 이곳에 전진 배치된 우리의 고속정, 초계함 10척 정도가 늘 도발의 위험을 무릅쓴 채 경계작전 근무를 하고 있다.
 
  이는 청해부대를 비롯한 UAE, 이라크 자이툰사단 등 해외파병 지역 임무보다도 더 위험한 지역에서의 임무수행이다. 3차례의 교전과 1차례의 피격사건으로 52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도 합당한 의무 다해야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예비역 해군은 “전투 함정 간 발생하는 경계작전은 과거 베트남전 참전으로 파병을 인정받은 수송부대, 즉 비둘기부대보다 더 위험지역에서의 전투형 복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천안함 전사자 묘역에서 주장했다. 서해 NLL에서의 교전(전투) 결과와 경계작전의 위험도를 고려해 생존 장병을 참전으로 인정해 예우해야 하며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마땅하다.
 
  김칠하 변호사는 “천안함 참전 장병은 물론 연평해전 참가자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는 참전 장병 중 상이등급을 부여 받지 못한 장병은 군인으로서 일반 의무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참전, 전투 행위를 해 특별한 희생을 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보훈정책은 중요한 과제다. 국가유공자 지정이나 훈장을 받지 못한 연평해전과 천안함 참전 장병들에게 어느 정도의 예우가 합당한지 결정되어야 한다. 생존한 참전 장병들이 겪는 고통은 일종의 폐쇄성 질환이다. 이는 지속적일 수도 있고, 잠복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참전한 장병들의 고충을 외면한 채 젊은 장병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눈을 부릅뜨고 적과 싸우라고 명령하려면 국가도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들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선(死線)에 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곧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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