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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8> 원효냐, 의상이냐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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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석가모니가 영취산 집회에서 대중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던 중 자신의 ‘깨달음의 실체’를 말로 설명할 길이 없어 문득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 된 유래는 바로 염화시중(拈華示衆)에서 비롯됐다. 이때 제자 중에 오직 마하 가섭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아보았고, 그도 역시 스승의 깨달음을 말로써 대답할 수 없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를 염화미소(拈華微笑),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한다. 사진=대한불교조계종 정수사 홈페이지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어느 날 연꽃 하나를 집어들고 미소를 지었는데, 그 밑도 끝도 없는 행동에 다 어리둥절해할 때, 가섭((迦葉)이란 제자만이 그 의미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러자 석가모니가 “가섭이 진리를 아는구나”라고 했단다.
 
  이 유명한 이야기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거듭 들었는데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성어까지는 알아들었지만 정작 ‘대체 깨달았다는 그게 뭐냐’에 대한 답변은 속 시원히 들은 적이 없다. 말하는 분마다 석가모니처럼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며 하시는 말씀이 대충 이랬다. “그걸 깨달으면 득도해서 부처가 되는 것인데, 세상에 어디 부처 되기가 쉽냐.”
 
  석가모니가 깨달았고 가섭도 알았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동안 궁금했다. 살펴보니, 의상(義湘·625~702)과 원효(元曉·617~686)처럼 위대한 양반들도 그것이 못내 궁금했던 것 같다. 무진장 노력을 해서 결국 알아냈고 깨달았다 한다.
 
  이 두 양반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상반된다. 한 명은 진지하고 세심하다 못해 매사가 신중한 인물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너무 털털하고 더펄거려서 유쾌하기는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둘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삼국유사(三國遺事)》 <낙산이대성 관음·정취, 조신(洛山二大聖 觀音·正趣, 調信)> 조에 실려 있다. 이야기는 지금의 동해 낙산사(洛山寺)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진지한 의상(義湘)의 갑갑한 구도 이야기
 
의상대사 진영. 사진=조선일보
  의상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관음을 찾아 당나라를 두루 다녔지만 본국에 돌아와 보니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관음보살이 우리나라 동해안에 계신다는 것이 아닌가. 그 놀라운 사실을 그만 몰랐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을 낙산(洛山)이라고 불렀던 거였다. 서역에 관음이 있는 곳인 보타낙가산(寶陁洛伽山)의 이름을 따서 말이다.
 
  의상은 이런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그토록 진지하고 치밀한 양반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떻게 우리나라는 쏙 빼 두고 엉뚱한 곳을 한참을 헤매고 다녔단 말인가. 그러나 역시 의상은 의상이었다. 낙산에 관음이 산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의상이 7일 동안 재계(齋戒)를 하고 나서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이른 새벽 물 위에 띄웠다. 그러자 불법을 수호하는 용천팔부(龍天八部)가 나타나 그를 낙산의 굴속으로 인도해 들였다. 굴에 들어간 그가 공중을 향해 예를 올리자, 허공에서 수정염주(水精念珠) 한 꾸러미가 나오기에 의상이 이를 받아서 굴 밖으로 물러나는데, 이번엔 동해(東海)의 용(龍)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 하나를 바치기에 이도 같이 받아서 나왔다.
 
  의상은 다시 7일 동안 재계를 하고 굴에 들어가서 비로소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만났다. 관음이 말했다. “내가 앉은 산꼭대기에 대나무 한 쌍이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절을 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굴을 나오니, 정말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그래서 금당(金堂)을 짓고 진흙으로 보살상[塑像]을 만들어 봉안해 모셨다. 그러자 솟아났던 대나무가 사라졌다. 그제야 의상은 이곳이 관음의 진신이 계신 곳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관음이 머무는 곳’이란 의미로 절 이름을 낙산사(洛山寺)라 하고, 이전에 받았던 염주와 여의주를 이곳에 모셔 두고 떠났다.
 
  이 이야기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는데, 깨달음을 관음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절을 창건하고 대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얻는다는 점이다.
 
  아니, 신적 존재인 관음을 만나면 대번 깨닫는 게 아니란 말인가? 세상에 이럴 수가 …. 그럼 왜 그토록 관음을 찾아 헤맨 거지? 중국에선 간첩혐의로 잡혀 고초까지 치른 것도 다 관음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관음을 만나도 깨닫지 못하고 한참 후에 깨닫다니 ….
 
  혹시 의상이 깨달았다는 것이 엉뚱한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잘 보면 정말 그럴 것도 같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관음보살이 계신 곳이라고 이름을 ‘낙산’으로 불렀고, 그도 그 소문을 듣고 여기에 왔다. 그리고 이 낙산에서 관음의 진신을 만났다. 그 후 의상은 대나무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관음보살이 이곳 낙산에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럼 고작 의상이 깨달았다는 것이 ‘관음은 낙산에 계신다’는 거란 말인가? 진정한 깨달음이란 것이 겨우 이런 거야? 정말 그렇다면 허무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의상은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봉안하고 떠났던 것이다.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자 평생에 걸쳐 온 정성을 다했던 그가 그러지 못했다면 결코 그렇게 훌쩍 떠날 리 없다. 몇 날 며칠이고 목욕재계를 더 했을 것이고 절을 몇 채라도 더 지었을 것이다.
 
  그래도 깨달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에는, 의상의 성격처럼 쫀쫀할 정도로 끈적끈적 들러붙어 있는 이 이야기로는 좀체 쉽지 않다. 헐렁헐렁하고 틈이 많은 원효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유쾌한 원효(元曉)의 경박한 구도 이야기
 
  의상이 관음을 만났고 절을 지었다는 소문을 원효가 듣는다. 그래서 예불을 하려고 낙산을 찾는다. 원효가 낙산에 오르려고 남쪽 교외에 이르렀다. 보니 논 가운데서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그가 장난 삼아 그 벼를 달라 하자, 여자도 장난 삼아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원효가 또 길을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다. 거기에 한 여자가 마침 시냇물에 생리대를 빨고 있었다. 그가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자 그녀가 생리대를 빨던 그 물을 떠서 바쳤다. 원효는 여자가 준 물을 쏟아 버리고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벌판에 서 있는 소나무 위에 앉아 있던 파랑새가 소리쳤다. “멈춰라, 제호화상(醍醐和尙)아!” 그러고는 보이질 않았다. 원효가 그 소나무에 다가가 보니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드디어 원효가 낙산사 절에 도착해서 관음상을 보니 거기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야 원효는 앞서 만났던 여자가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고 한다. 원효가 의상이 들어갔던 그 신성한 굴에 들어가서 다시 관음의 진신을 보려 했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하고 떠나갔다.
 
  원효도 의상처럼 만남과 깨달음의 시점이 어긋나 있기는 하지만, 그도 의상처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틀림없다. 마지막에 원효가 의상이 들어갔던 굴에 들어가 관음을 만나려는 시도는 원효 특유의 경박스런 장난이다. 이미 깨달음을 얻은 자가 관음을 다시 만나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풍랑이 일었던 거고 그 뜻을 이해한 원효가 훌쩍 떠났던 거다.
 
  원효도 관음을 만났지만 깨달음은 뒤에 이루어졌다. 낙산사 관음상 밑에 놓인 신발을 볼 때 벼락같이 깨달았다. 그 신발의 다른 한 짝이 소나무 밑에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는 그렇게 관음이 곧 소나무였다는 것과 그가 희롱했던 두 여인 역시 관음의 화신(化身)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건 여자들과 소나무가 관음이었다는 것을 아는 단순한 인지의 깨달음이 아니라 진정한 깨달음이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았던 그 위대한 것 말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를 말로 풀이하면 이렇다. 집착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거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나는데,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뿐이고,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여기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보도록’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정말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 전달할지 말지 고민한 것이 사실 같다. 이렇게 말로 풀이하니까 제대로 설명하려 할수록 더 난해하게 엉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일연 스님도 《삼국유사》에서 의상과 원효 이야기로 풀어 놓았던 것이다. 그나마 여러 상황을 통해 이해하라고 말이다.
 
 
  빨래터는 금남구역
 
  원효는 구속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설파한 불교의 가르침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런 원효도 실은 현상에 얽매여 있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벼 베는 여인에게 장난삼아 벼를 달라며 희롱한다. “벼를 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원효의 시대가 너무 멀어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은근한 성적 상징인 듯싶다.
 
  여인이 “아직 영글지 않아 줄 수 없다”는 희롱의 대답을 하는 정황을 고려하면, 원효는 벼 베는 여인에게 집적댄 것이 분명하다. 지금보다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던 신라시대를 감안하면 어떤 상황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도라지 타령>의 분위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 한두 뿌리만 캐어도 / 대광주리에 철철 넘누나 /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 어여라 난다 지화자 좋다 /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
 
  굳이 ‘백도라지’와 ‘대광주리’의 상징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 노래에 담긴 성적 은유를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원효는 그렇게 벼 베는 여인에게 거절당했는데, 이번엔 생리대 빠는 여인에게 또 수작을 건다. 생리대를 빤다는 것이 너무 생경할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1회용 생리대를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잘 모르겠지만, 1회용이 없던 시절에 여성들이 생리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렇다. 그들은 천으로 생리대를 만들어서 아이들 기저귀처럼 빨아서 썼다. 재활용은 당연했다. 천이 귀한 시절이니 말이다.
 
  예전 여자아이들이 태어나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바느질을 배웠다. 말로는 “시집가서 남편 옷을 지어 주고 이불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리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초경 전에 바느질을 꼭 배웠다. 자기 생리대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지금의 우리가 전혀 짐작도 못하는 것은, 생리하는 것을 무슨 흉인 줄 알고 감추는 정황이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말로는 자연스럽네 어쩌네 하지만 쉬쉬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리대 가격이 나날이 다달이 해마다 끝없이 오르고 있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세상에 이런 안정적인 시장 확보가 이루어진 물품이 카르텔화되어 계속 가격을 올리는 것을 두고도 불공정 시비를 걸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도 이런데 옛날엔 더 심했다. 그래서 아무리 지독한 시어머니라도 며느리가 빨래터에 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에 잘 나타나 있듯이 빨래터에서는 여인들이 모여 더운 날 머리도 감고 목욕도 했다. 그리고 짐작하겠지만 바로 생리대를 빨았다. 그래서 남자들이 얼씬거리면 안 되는 거였다. 빨래터는 금남(禁男) 구역이었다.
 
 
  모르고 먹으면 감로수요
 
낙산사 의상대와 관음송. 겨울바다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의상대와 해송(海松) 관음송이 바다와 어우러져 동양화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사진=조선일보
  원효는 바로 그런 여인에게 가서 수작을 부린 거다. 생리대만 들고 와서 빠는 경우는 없다. 대개 빨랫감을 한참 담은 그 밑 깊숙이 숨겨 와서 다른 빨래를 하면서 빠는 거였다. 그걸 알면서도 이 짓궂은 양반이 수작을 건다. “물 좀 마십시다.” 참 뻔뻔도 하다. 여자는 생리대를 빨아서 더러워진, 정확하게는 핏물이 섞인 물을 떠서 마시라고 준다. 벼 베는 여인에 비하면 반응이 좀 더 적극적인 셈이다. 아무튼 그 물을 누가 먹겠는가. 그래서 원효는 물을 버리고 깨끗한 냇물을 떠서 마신다.
 
  원효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생리대 빠는 여인에게 수작을 부리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물을 버리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 물을 마셨어야 했다. 대체 뭐가 더럽단 말인가. 생리대 빤 물은 더럽고, 같은 냇물인데 다른 곳에 있는 물은 깨끗하단 말인가. 당나라로 유학 가다 하룻밤 무너진 무덤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뭔가 번쩍 깨달았다던 그 깨달음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모르고 먹으면 감로수요 알고 먹으면 시체 썩은 물이란 것을 깨달았다면, 생리대 빤 물이나 그냥 물이나 같은 거라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생리대 빤 물이라도 모르고 먹었다면 그냥 달게 마셨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는 구분했던 거다. 활달해서 얽매이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정작 구분하고 얽매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원효가 관음상 앞의 신발을 보는 순간 벼락처럼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 말이다. 구분해서 허상에 매였기에 관음을 만나고도 그것이 여자인 줄 알고 어쭙잖은 수작이나 붙였던 거였다. 만약 인자한 모습의 관음을 만났다면 감히 그러지 못했을 것 아닌가. 바로 그것을 깨우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의상이 왜 관음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대나무가 사라지는 순간 깨달았는지 알 수 있다. 관음을 만나는 행위는 본질이 아니었던 거다. 관음이 어디에 있든 그것은 하등에 상관없는 거였다. 관음을 만나든 말든 구분하고 얽매여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거였다.
 
  석가모니가 깨닫고 의상과 원효도 깨달은 위대한 진리는 이렇다. 쾌락을 쾌락으로 그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고통을 고통으로 그 본질 그대로 본다면 그 역시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거라고. 그냥 그런 거라고.
 
 
  정보과잉과 미래담론의 겁박
 
  최근 졸업한 학생 둘을 만났다. 한 명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나이가 있어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조바심에 괴로움을 토로했다.
 
  “지금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과장님과 부장님을 보면 그 모습이 제 10년 후 모습인 것 같아서요.”
 
  다르게 말했지만 둘 다 결국 이런 말이었다. 그렇게 조직에 묻혀 사는 삶이 싫다기보다는 답답해 보이고, 나쁘다기보다는 뭔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들도 안다. 취직을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취준생’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그 문제로 마음이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그들보다 가진 것이 많은 나는 해 줄 말이 몇 마디 없었다. 그저 쓸쓸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는 대학이 좋은 대학으로 분류되다 보니 입학식에 오는 학생들의 얼굴엔 그야말로 천상에 오른 것 같은 환희가 넘친다. 그런데 그들이 4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졸업할 때가 되면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졸업식에서 웃고 있는 학생을 만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한 학생들은 물론이고, 좋다는 대기업에 취직한 그도, 그 어렵다는 고시를 뚫은 그녀도, 하나같이 겉으로만 웃을 뿐 4년 전 환희는 온데간데없다.
 
  그 이유가 나같이 어쭙잖은 선생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사회가 너무 퍽퍽해서일 수도 있다. 답은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지만, 석가모니의 우언(寓言)을 따르자면, 그 모든 것이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엉뚱한 것이 가리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피곤해진 이유가 여럿이지만 정보과잉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아 문제다. 넘치는 정보로 인해 선택이 오히려 어려워졌다. 심리학자의 연구결과는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한다. “선택지가 적당해야지, 너무 많으면 외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선택지를 일일이 따지고 고민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쓴다. 피곤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앞으로 뭐 하지?” 그리고 사회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놈을 끌어들여 사람들을 협박하고 겁박한다. ‘백세시대’라며 이런저런 것을 준비하고 마련하란다. 그때까지 내가 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을 불신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백세시대가 아니란 것도 아니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내일을 빌미로 생각과 삶을 얽어매어 오늘을 망치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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