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여성살해’ 등 묻지마 범죄는 여성혐오 등 피해망상의 문제가 아니라
‘만성 정신질환자’의 문제
⊙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의식적 통제하에 있다는 생각은 착각
김보연
1962년생. 가톨릭대학 의대 졸업 / 현 성가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의 신경과학연구회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법제이사, 가톨릭의과대학 외래교수
‘만성 정신질환자’의 문제
⊙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의식적 통제하에 있다는 생각은 착각
김보연
1962년생. 가톨릭대학 의대 졸업 / 현 성가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의 신경과학연구회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법제이사, 가톨릭의과대학 외래교수
- 2016년 5월 21일 서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여성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 사건은 ‘만성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세상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있다. 우리나라가 지옥 같다는 ‘헬 조선’이다. 취직이 어려워 ‘스펙’을 쌓는다고 졸업하지 않고 학원가를 돌아다니고 어렵게 취직해도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 감정에 따라 하루하루 즐기며 소비하기 원한다. 장기 불황에 세금도 늘고 정치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며 다툰다.
철학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 정신의학은 이를 ‘사회적 불안’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이성과 성찰의 능력을 실험하였고 칸트가 ‘경험이 마음의 주관적 현상’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자랑한 것도, 마음의 작용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는 말이다.
전쟁과 굶주림으로 삶이 고단했던 19세기의 니체는 생존을 위한 노예 같은 삶에서 깨어나라고 ‘신(神)은 죽었다’며 ‘주인 의식’을 외쳤지만, 한국의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여전히 신과 인생에 종속되기를 원한다면 그의 주장은 의미를 잃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관찰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생활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의 심리철학적 생각의 특징은 의식(이성)이 무의식(충동·습관·방어)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태도이며 마음의 진실을 찾고 환자를 이해하며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삶에서 순간 튀어나오는 ‘전치’ ‘투사’ ‘억압’ 등 무의식의 ‘방어(defense)’는 자기 보호 수단이지만 혼란스럽고 불안한 감정과 생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변덕을 부린다고 했다. 프로이트의 ‘방어’를 잘 이해하면 다양한 인간관계와 집단, 사회의 심리 행동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묻지마 범죄’와 집단 방어
최근 강남역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선 낯모르는 사람에 의해 주민이 폭행당했다. 여론의 ‘묻지마 범죄’라는 말로 인해 국민의 불안이 가중되고 ‘여성 혐오’니 ‘남녀 화장실 분리’니 하는 본질과 무관한 주장이 제시되었다.
가해자가 ‘만성 정신질환자’로 밝혀지자 경찰은 일선 경관이 정신질환자의 폭력성을 진단하고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행정입원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하여 정신 장애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불안, 갈등을 만성 정신질환자에게 ‘전치(displacement)’하는 ‘공연한 난리’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간 우리 정부는 만성 정신질환자와 그 치료기관을 차별해 왔다. 극빈(極貧) 정신질환자에 대한 요양급여 진료비는 하루 정액 2770원이며 그것도 8년간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일부 정신병원에서 인권문제가 제기되자, 타 기관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정신보건법을 만들어 강제입원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강제입원 절차에 대해 경찰, 법관들의 참여는 비용 문제로 공무원들이 판단하자는 권력욕을 ‘합리화(rationalization)’하는 정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미 국민들도 만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으며, 피해망상의 심리는 타인을 공격하기보다, 두려움과 공포로 사람을 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방어 기제의 진화, 발달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서 진화한다는 원칙을 이해하도록 하자. 동물들은 자연에서 빠르게 포식자를 발견해서 그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 생각(의식)이 필요 없는 무의식 반사(방어)가 뇌의 편도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싸우거나 도망치는(fight and flight) 순간의 선택이 반사행동이다.
또한 포식자 혹은 먹이의 출현은 불쾌(공포)와 불안 또는 쾌감이 동반하여 프로이트는 불쾌를 줄이고 쾌감을 추구하는 ‘쾌-불쾌의 원리(pleasure-unpleasure principle)’를 말한 바 있다.
의식, 생각(이성)은 큰 뇌와 해마를 통하며, 편도보다 늦게 진화하였고 신생아의 뇌 발달 순서도 마찬가지이다. 아기의 경우 엄마의 불안, 실수, 화풀이 등이 반복 전달될 때,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므로 방어가 발달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어려서부터 아기와 엄마 사이의 안전한 애착과 공감적 관계 형성이 성인이 되어 건강한 자아, 성격, 방어의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정신분석학이 말해 주는 일상생활에 상식이 되는 ‘방어’를 알아본다.
첫 번째가 자기애적인 방어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남이 날 괴롭힌다는 피해의식의 투사(projection), ‘난 몰라’ 하는 식의 ‘부정(denial)’, 종교전쟁, 이념분쟁처럼, 세상을 선와 악, 네 편 내 편으로 나누거나 이간질하는 ‘분열(splitting)’이 있다.
두 번째가 미성숙한 방어다. 마음이 어려지는 ‘퇴행’, 몸의 증상이 나오는 ‘신체화’가 여기 속한다. 세 번째가 불안에 의한 방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식의 ‘전치(displacement)’, 뜻과 반대로 행동하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목적은 딴 곳에 있지만 그럴듯하게 달리 포장하는 ‘합리화’,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는 ‘감정의 고립’ , 지적인 태도로 우쭐대는 ‘지적화’, 벌컥 화를 내며 몸을 사용하는 ‘행동화’, 없던 일로 하자는 ‘취소’, 숨어서 상대를 괴롭히는 ‘수동·공격’,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이 없어지는 ‘해리’가 있다. 특히 ‘억압(repression)’은 불쾌한 무엇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가장 흔하고 중요한 방어이다.
네 번째가 성숙한 방어인데 ‘유머(humor)’, ‘승화’, ‘억제(supression)’로 비교적 현실의 왜곡이 적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집단 방어는 전치를 통해서 희생양(scapegoating)을 만드는 것이다. 교실 왕따, 당파 싸움, 그리고 ‘묻지마 범죄’의 대응반응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프로이트 마음의 모델과 ‘방어(defense)’의 뇌 과학
프로이트 박사는 일생 동안 여러 번에 걸쳐서 ‘마음의 모델’을 개정하였다.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는 지형 모델(topographical model)에서 의식은 합리적 이성을, 무의식은 원시적, 충동적, 비합리적인 욕망의 즉시 충족을 대리하였다. 그리고 무의식의 충동적인 에너지는 위험(불쾌)하여 의식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힘을 처음에는 ‘방어’, ‘억압’이라고 하였고 이후에 효과적인 설명을 위해서 이드(Id, Es), 자아( Ego, Ich), 초자아( Superego, über-Ich)의 3가지 인격이 도입된 구조이론(structural model)을 만들었다.
이드는 무의식이며, 자아와 초자아는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가지 동물이 상징하는 인격에 대응한다면 감정적이고 충동, 욕망과 자유에 충실한 사자는 이드에, 인간의 노예지만 현실 적응, 생존형인 낙타를 자아(이드와 초아자의 협상)에, 그리고 법규와 도덕, 신을 대변하는 용을 초자아(이드의 욕망을 검열)라고 생각해 보자. 이 세 가지 인격이 승화하여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인물이 ‘어린아이’, ‘초인(übermensch)’일 것으로 추측한다.
방어의 심리적 이득은 잠시 불안, 수치심, 우울한 감정을 줄일 수 있다. ‘억압’은 가까운 사람에 대한 분노를 눌러서 집단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의심, 혼란, 주저를 피해 급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타인도 속일 수 있으므로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필자는 행동학자 스키너의 의견대로, 방어는 불안을 피하려는 학습행동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최근 미국의 신경학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 1966)는 공포(감정) 반응이 편도를 거치는 빠르고 의식할 수 없는 회로가 있고 큰 뇌를 거치는 길은 느리나 의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신경학자 판크세프(Jaak Panksepp)는 ‘마음의 고고학’(2012)에서 프로이트의 욕동 혹은 본능과 비슷한 찾기, 돌보기, 두려움, 공황, 놀이, 성욕, 공격성 등 7가지 선천적 일차 감정들의 신경 핵이 발견되었고 일차 감정들은 편도를 경유해 2차 학습 과정이 진행되고 큰 뇌의 생각과 인지 회로에 3차로 연결된다고 하였다.
필자는 두 사람의 연구를 연결하여 프로이트의 ‘방어’를 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자아의 작용이라고 한 모든 방어는 위험 회피를 위한 유사 생존 반응이며, 편도가 중심이 된 반사적 감정, 행동반응이며, 이를 뒤따라 큰 뇌가 학습된 해석을 자신에게 설명한다.
한국인은 장기간 경제불황과 정치적 혼란으로 엄청난 불안의 내홍에 맞서고 있다. 심리적 구조가 취약한 만성 정신질환자는 사회 정신건강의 리트머스시험지이다. ‘묻지마 범죄’는 ‘피해망상으로 인한 우발적 범죄’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으며 사회적 약자와 병자에 대한 관리 미숙으로 발생하는 확률적 범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쩌면 일반 범죄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망상의 내용도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서 변하기 때문에 필자의 전공의 시절 많았던 ‘간첩 망상’은 요즘 거의 볼 수 없다. 따라서 ‘여성 혐오’처럼 환자의 모든 망상에 ‘혐오’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대통령’, ‘안기부’, ‘경찰’ 등 수십 가지가 될 것이다. 사건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 일부 시민단체의 반응이 투사, 전치, 분열 등의 자기애 또는 불안에 의한 집단 방어로 해석될 수 있어 유감이다. 강남역 묻지마 범죄는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피켓이 아니라, ‘만성 정신질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라’는 피켓이 필요한 사건이다.
거울 뉴런, 인간의 3가지 착각
신기하게도 신생아는 수 시간 후 엄마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얼굴의 움직임을 흉내낼 수 있으며, 자신의 관찰과 행동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 system)은 생존과 학습을 위해,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 예측하는 신경계이며 자연의 선물이다.
엄마의 거울 뉴런도 아기의 상태를 공감하며 보호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뛰어난 타인 인식에 비해 자기 인식에 필요한 신경회로는 상대적으로 진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자기 인식은 노력이 필요하고 불쾌감으로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며 방어의 왜곡은 생존 전략이고, 자연 선택의 압력인 것이다.
공감을 잘하는 뇌는 자기와 타인의 구분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남에게 하는 평가와 감정을 잘 관찰하면, 그곳에 자신의 것이 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인간관계의 패턴에서 찾아보시라.
일찍이 붓다는 모든 사물은 원인·결과로 관계하는 연기(緣起), 인간 삶의 한계인 고통(苦), 모든 것은 변하며(無常), 자신의 의지에 속고 있다는 무아(無我)를 설파하였다. 또한 세상과 자기에 대한 경험은 착각, 환영(Maya)이며, 우리의 마음과 감각이, 무의미한 것을 중요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고 가르쳤다(무명, 無明).
프로이트와 무의식과 현대 뇌 과학은 붓다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인 코졸리노(Cozolino, Louis)가 말한 인간의 3가지 착각을 필자가 부연 설명해 본다.
사람이 흔히 하는 첫 번째 착각은 우리의 의식적인 인식(현실)이 우리 뇌의 특정 영역에서 함께 만들어져서 하나의 화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방어’, ‘심리장치’ 들은 경험이 외적 사실이라고 믿도록 마음에서 변형된 주관적 착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째 착각은, 우리의 경험은 현재의 순간에 발생하며 현재에 살고 있고 의식적인 생각과 결정은 감정과 행동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뇌는 행동하기 전에 기존의 정보(기억, 경험)를 90% 다시 사용한다. 편도의 반사 반응으로 감정과 행동은 생각과 결정에 선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결정론이 말하는, 우리는 과거 경험과 같이 현재에 산다는 말은 의미 있는 표현이다.
세 번째 착각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의식적인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무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사례만 받아들이며 반대되는 주장은 무시해 버린다. 이러한 인간의 착각은 편견을 낳기도 하고 잘못된 예측, 반복 행동은 불안과 신경증을 만든다.
정신건강, 자기 인식의 진화
우리의 뇌는 현실을 전달하면서 또한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현대인에게 흔한 신경증은 미리 걱정하고 과도하게 예측하고 불안해하는 것인데, 사실은 자극에 의해 과거 충격을 재경험하고 자동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인식을 확대하여 방어의 왜곡과 충동, 그리고 무의식적 편견 등을 건설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극복하거나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전통 종교와 철학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정신의학자의 진료실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뇌와 마음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아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방어와 임기응변을 알아야 하며 자기 성숙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자기 관찰과 인식이 중요하다.⊙
철학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 정신의학은 이를 ‘사회적 불안’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이성과 성찰의 능력을 실험하였고 칸트가 ‘경험이 마음의 주관적 현상’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자랑한 것도, 마음의 작용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는 말이다.
전쟁과 굶주림으로 삶이 고단했던 19세기의 니체는 생존을 위한 노예 같은 삶에서 깨어나라고 ‘신(神)은 죽었다’며 ‘주인 의식’을 외쳤지만, 한국의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여전히 신과 인생에 종속되기를 원한다면 그의 주장은 의미를 잃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관찰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생활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의 심리철학적 생각의 특징은 의식(이성)이 무의식(충동·습관·방어)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태도이며 마음의 진실을 찾고 환자를 이해하며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삶에서 순간 튀어나오는 ‘전치’ ‘투사’ ‘억압’ 등 무의식의 ‘방어(defense)’는 자기 보호 수단이지만 혼란스럽고 불안한 감정과 생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변덕을 부린다고 했다. 프로이트의 ‘방어’를 잘 이해하면 다양한 인간관계와 집단, 사회의 심리 행동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묻지마 범죄’와 집단 방어
최근 강남역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선 낯모르는 사람에 의해 주민이 폭행당했다. 여론의 ‘묻지마 범죄’라는 말로 인해 국민의 불안이 가중되고 ‘여성 혐오’니 ‘남녀 화장실 분리’니 하는 본질과 무관한 주장이 제시되었다.
가해자가 ‘만성 정신질환자’로 밝혀지자 경찰은 일선 경관이 정신질환자의 폭력성을 진단하고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행정입원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하여 정신 장애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불안, 갈등을 만성 정신질환자에게 ‘전치(displacement)’하는 ‘공연한 난리’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간 우리 정부는 만성 정신질환자와 그 치료기관을 차별해 왔다. 극빈(極貧) 정신질환자에 대한 요양급여 진료비는 하루 정액 2770원이며 그것도 8년간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일부 정신병원에서 인권문제가 제기되자, 타 기관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정신보건법을 만들어 강제입원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강제입원 절차에 대해 경찰, 법관들의 참여는 비용 문제로 공무원들이 판단하자는 권력욕을 ‘합리화(rationalization)’하는 정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미 국민들도 만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으며, 피해망상의 심리는 타인을 공격하기보다, 두려움과 공포로 사람을 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방어 기제의 진화, 발달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서 진화한다는 원칙을 이해하도록 하자. 동물들은 자연에서 빠르게 포식자를 발견해서 그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 생각(의식)이 필요 없는 무의식 반사(방어)가 뇌의 편도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싸우거나 도망치는(fight and flight) 순간의 선택이 반사행동이다.
또한 포식자 혹은 먹이의 출현은 불쾌(공포)와 불안 또는 쾌감이 동반하여 프로이트는 불쾌를 줄이고 쾌감을 추구하는 ‘쾌-불쾌의 원리(pleasure-unpleasure principle)’를 말한 바 있다.
의식, 생각(이성)은 큰 뇌와 해마를 통하며, 편도보다 늦게 진화하였고 신생아의 뇌 발달 순서도 마찬가지이다. 아기의 경우 엄마의 불안, 실수, 화풀이 등이 반복 전달될 때,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므로 방어가 발달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어려서부터 아기와 엄마 사이의 안전한 애착과 공감적 관계 형성이 성인이 되어 건강한 자아, 성격, 방어의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정신분석학이 말해 주는 일상생활에 상식이 되는 ‘방어’를 알아본다.
첫 번째가 자기애적인 방어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남이 날 괴롭힌다는 피해의식의 투사(projection), ‘난 몰라’ 하는 식의 ‘부정(denial)’, 종교전쟁, 이념분쟁처럼, 세상을 선와 악, 네 편 내 편으로 나누거나 이간질하는 ‘분열(splitting)’이 있다.
두 번째가 미성숙한 방어다. 마음이 어려지는 ‘퇴행’, 몸의 증상이 나오는 ‘신체화’가 여기 속한다. 세 번째가 불안에 의한 방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식의 ‘전치(displacement)’, 뜻과 반대로 행동하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목적은 딴 곳에 있지만 그럴듯하게 달리 포장하는 ‘합리화’,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는 ‘감정의 고립’ , 지적인 태도로 우쭐대는 ‘지적화’, 벌컥 화를 내며 몸을 사용하는 ‘행동화’, 없던 일로 하자는 ‘취소’, 숨어서 상대를 괴롭히는 ‘수동·공격’,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이 없어지는 ‘해리’가 있다. 특히 ‘억압(repression)’은 불쾌한 무엇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가장 흔하고 중요한 방어이다.
네 번째가 성숙한 방어인데 ‘유머(humor)’, ‘승화’, ‘억제(supression)’로 비교적 현실의 왜곡이 적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집단 방어는 전치를 통해서 희생양(scapegoating)을 만드는 것이다. 교실 왕따, 당파 싸움, 그리고 ‘묻지마 범죄’의 대응반응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프로이트 마음의 모델과 ‘방어(defense)’의 뇌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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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신경학자 조지프 르두. |
이드는 무의식이며, 자아와 초자아는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가지 동물이 상징하는 인격에 대응한다면 감정적이고 충동, 욕망과 자유에 충실한 사자는 이드에, 인간의 노예지만 현실 적응, 생존형인 낙타를 자아(이드와 초아자의 협상)에, 그리고 법규와 도덕, 신을 대변하는 용을 초자아(이드의 욕망을 검열)라고 생각해 보자. 이 세 가지 인격이 승화하여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인물이 ‘어린아이’, ‘초인(übermensch)’일 것으로 추측한다.
방어의 심리적 이득은 잠시 불안, 수치심, 우울한 감정을 줄일 수 있다. ‘억압’은 가까운 사람에 대한 분노를 눌러서 집단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의심, 혼란, 주저를 피해 급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타인도 속일 수 있으므로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필자는 행동학자 스키너의 의견대로, 방어는 불안을 피하려는 학습행동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최근 미국의 신경학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 1966)는 공포(감정) 반응이 편도를 거치는 빠르고 의식할 수 없는 회로가 있고 큰 뇌를 거치는 길은 느리나 의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신경학자 판크세프(Jaak Panksepp)는 ‘마음의 고고학’(2012)에서 프로이트의 욕동 혹은 본능과 비슷한 찾기, 돌보기, 두려움, 공황, 놀이, 성욕, 공격성 등 7가지 선천적 일차 감정들의 신경 핵이 발견되었고 일차 감정들은 편도를 경유해 2차 학습 과정이 진행되고 큰 뇌의 생각과 인지 회로에 3차로 연결된다고 하였다.
필자는 두 사람의 연구를 연결하여 프로이트의 ‘방어’를 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자아의 작용이라고 한 모든 방어는 위험 회피를 위한 유사 생존 반응이며, 편도가 중심이 된 반사적 감정, 행동반응이며, 이를 뒤따라 큰 뇌가 학습된 해석을 자신에게 설명한다.
한국인은 장기간 경제불황과 정치적 혼란으로 엄청난 불안의 내홍에 맞서고 있다. 심리적 구조가 취약한 만성 정신질환자는 사회 정신건강의 리트머스시험지이다. ‘묻지마 범죄’는 ‘피해망상으로 인한 우발적 범죄’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으며 사회적 약자와 병자에 대한 관리 미숙으로 발생하는 확률적 범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쩌면 일반 범죄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망상의 내용도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서 변하기 때문에 필자의 전공의 시절 많았던 ‘간첩 망상’은 요즘 거의 볼 수 없다. 따라서 ‘여성 혐오’처럼 환자의 모든 망상에 ‘혐오’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대통령’, ‘안기부’, ‘경찰’ 등 수십 가지가 될 것이다. 사건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 일부 시민단체의 반응이 투사, 전치, 분열 등의 자기애 또는 불안에 의한 집단 방어로 해석될 수 있어 유감이다. 강남역 묻지마 범죄는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피켓이 아니라, ‘만성 정신질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라’는 피켓이 필요한 사건이다.
거울 뉴런, 인간의 3가지 착각
신기하게도 신생아는 수 시간 후 엄마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얼굴의 움직임을 흉내낼 수 있으며, 자신의 관찰과 행동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 system)은 생존과 학습을 위해,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 예측하는 신경계이며 자연의 선물이다.
엄마의 거울 뉴런도 아기의 상태를 공감하며 보호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뛰어난 타인 인식에 비해 자기 인식에 필요한 신경회로는 상대적으로 진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자기 인식은 노력이 필요하고 불쾌감으로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며 방어의 왜곡은 생존 전략이고, 자연 선택의 압력인 것이다.
공감을 잘하는 뇌는 자기와 타인의 구분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남에게 하는 평가와 감정을 잘 관찰하면, 그곳에 자신의 것이 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인간관계의 패턴에서 찾아보시라.
일찍이 붓다는 모든 사물은 원인·결과로 관계하는 연기(緣起), 인간 삶의 한계인 고통(苦), 모든 것은 변하며(無常), 자신의 의지에 속고 있다는 무아(無我)를 설파하였다. 또한 세상과 자기에 대한 경험은 착각, 환영(Maya)이며, 우리의 마음과 감각이, 무의미한 것을 중요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고 가르쳤다(무명, 無明).
프로이트와 무의식과 현대 뇌 과학은 붓다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인 코졸리노(Cozolino, Louis)가 말한 인간의 3가지 착각을 필자가 부연 설명해 본다.
사람이 흔히 하는 첫 번째 착각은 우리의 의식적인 인식(현실)이 우리 뇌의 특정 영역에서 함께 만들어져서 하나의 화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방어’, ‘심리장치’ 들은 경험이 외적 사실이라고 믿도록 마음에서 변형된 주관적 착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째 착각은, 우리의 경험은 현재의 순간에 발생하며 현재에 살고 있고 의식적인 생각과 결정은 감정과 행동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뇌는 행동하기 전에 기존의 정보(기억, 경험)를 90% 다시 사용한다. 편도의 반사 반응으로 감정과 행동은 생각과 결정에 선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결정론이 말하는, 우리는 과거 경험과 같이 현재에 산다는 말은 의미 있는 표현이다.
세 번째 착각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의식적인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무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사례만 받아들이며 반대되는 주장은 무시해 버린다. 이러한 인간의 착각은 편견을 낳기도 하고 잘못된 예측, 반복 행동은 불안과 신경증을 만든다.
정신건강, 자기 인식의 진화
우리의 뇌는 현실을 전달하면서 또한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현대인에게 흔한 신경증은 미리 걱정하고 과도하게 예측하고 불안해하는 것인데, 사실은 자극에 의해 과거 충격을 재경험하고 자동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인식을 확대하여 방어의 왜곡과 충동, 그리고 무의식적 편견 등을 건설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극복하거나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전통 종교와 철학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정신의학자의 진료실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뇌와 마음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아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방어와 임기응변을 알아야 하며 자기 성숙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자기 관찰과 인식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