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우 교수의 기절초풍 법의학야화 〈1〉 자살한 남자들은 왜 정액을 배출하나 : 월간조선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죽음의 질도 삶의 질 못지않게 소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웰다잉을 준비함에 있어 죽음들은 어느 정도 죽음이 예견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다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한 대학생과 부딪쳐 숨진 전남 곡성군청 공무원의 케이스처럼 위험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도 간혹 발생한다.

박의우 교수가 시체현상과 관련된 문제, 사인과 관련된 문제 등 법의학 관련 궁금증을 모아 지난 5월 펴낸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쿠북)의 표지.

법의학의 검시대상이 되는 죽음들은 대부분 그 죽음 자체를 예상할 수 없었거나 예상하지 못한 죽음들이다. 이러한 죽음엔 목격자가 없는 변사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을 대비해 죽음을 준비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얼마전 필자는 의대 졸업 후 37년간 법의학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부검 현장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모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사람의 죽음들을 들여다보면 그 죽음이 불가항력적 사례도 있었으나 적지 않은 경우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인간의 수명은 운명으로 그 시기가 정해졌다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삶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안타까운 사망사례들을 통해 그 사망과 관련한 중요한 핵심을 파악해 우리들 삶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체는 미소짓지 않는다

‘사망 후에도 생존 시의 표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웃으면서 삶을 마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다 간 사람일 것이라고들 한다. 사망자의 얼굴에도 표정이 남아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대부분의 경우 사망 전이나 사망하는 과정에서의 표정은 사망 후에 사망자의 얼굴에 남아 있지 않고 사라진다. 즉, 대부분의 경우 사망자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사람이 사망하면, 사망 시점부터 여러 가지 시체현상(사후 변화)이 곧바로 시작되는데, 그 시체현상 중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약 30분 내외)에 전신의 근육은 굳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시체경직(강직)이라 한다. 이 시체경직이 시작되기 전에는 일단 전신의 근육이 이완된다. 따라서 사망 직전까지 어떠한 표정이 있었다고 해도 사망 직후의 근육 이완에 의해 그 표정은 전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얼굴의 표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웃는 표정이 그 하나이고, 찡그리거나 긴장하고 노한 표정이 그 두 번째다. 두 가지 표정 중에서 웃는 표정은 사망 후에 곧바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사망 후 지속되는 수가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웃는 경우에는 표정을 형성하는 근육에 피로가 심하지 않으나, 찡그리거나 긴장하고 노한 표정일 때는 근육의 피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망자의 손이나 팔에서 생길 수 있는 즉시성 시체경직(‘시련’이라고도 한다)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사망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놀람과 긴장이 수반되는 경우, 손이나 팔의 근육이 긴장상태에 있는 채로 사망 후 곧바로 시체경직으로 변한다. 마치 표정을 형성하는 얼굴 근육도 ‘즉시성 시체경직’과 마찬가지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설명을 근거로 사망 후에 찡그리거나 화난 표정은 관찰이 가능하나, 웃는 표정을 관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망 후에도 수염과 손톱이 자랄까

곡성의 눈물...만삭의 아내에게 이별의 말도 못했다. 야근을 마치고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 여섯 살 아들과 함께 귀가하던 중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한 대학생에게 부딪혀 숨진 전남 곡성군청 공무원 양대진씨의 불의의 사고를 그린 조선일보 그래픽.

사망 전에 면도를 해 깨끗한 상태의 얼굴이었음에도 사망 후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 부검을 할 때 또는 입관 전에는 수염이 약간 자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개체가 사망한 후에도 수염과 손톱이 실제로 자라는지의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수염이나 손톱이 실제로 자란다는 것은 세포분열이 필수적인데, 개체의 사망 후에는 세포의 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돼 있기는 하지만, 결코 세포분열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망 후에는 사실상 수염과 손톱의 성장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참고로, 초생반응(超生反應, supravital)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생반응은 심장, 폐장 및 뇌의 기능이 정지되는 개체사(個體死)와 모든 세포의 기능이 정지되는 세포사(細胞死)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며, 이 기간 동안 몇 가지 반응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망 후에도 백혈구의 식균작용이 68시간까지 일어난다는 보고가 있고, 정자의 운동은 사망 후 30시간 내지 70시간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망 후 수시간 동안 장의 연동운동이 지속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사망 후 수염과 손톱 주위의 피부가 건조하면서 수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염과 손톱은 주변 피부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후의 시체경직 현상으로서 피부에 있는 입모근(立毛筋)의 경직은 수염을 다소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는 데 일부 역할을 한다.

남자가 자살하면 반드시 정액이 유출될까

“목을 매 사망하면 남자의 경우 정액이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그렇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남성의 경우 정액이 성기 외부로 나오는 현상은 사망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비특이적인 소견의 하나로서 사망의 원인이나 종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망자가 목을 매 사망한 후 서 있는 자세였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 정액이 하부로 흘러내리는 것은 아니다. 즉 정액은 사망자가 누워 있는 자세였다고 해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망 후의 자세가 물구나무를 서듯이 거꾸로 돼 있었다고 해도 정액은 유출될 수 있는 것이다.

사망 후 진행되는 소위 ‘시체현상’ 중에는 시체경직이 있다. 이는 신체의 골격근 이외에도 근육으로 이뤄진 모든 부위에서 진행되는 현상이다. 남성의 저정낭(貯精囊, 정액을 저장하고 있는 주머니)에 존재하는 근육 역시 시체경직 현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정낭에 압력이 작용하게 돼 내부에 저장돼 있던 정액이 외부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사망 후 대변이나 소변이 흘러나오는 현상을 흔히 본다. 이는 생존 시 수축돼 있던 괄약근(括約筋, 항문 및 방광하부에서 대소변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수축하는 근육조직)이 이완되고 사망 후 복부에 수동적으로 압력이 작용함으로써 대변이나 소변이 흘러나오게 되는 현상이다.

시체경직 현상이 진행되기 전인 사망 직후에는 전신적으로 근육이 이완되는 시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소변의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대소변의 유출 역시 사망의 원인이나 종류와는 관계가 없는, 법의학적으로 보면 특이하지 않은 소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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