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4〉 : 월간조선

봄날 성안에 꽃이 흩날리지 않는 곳이 없고, (春城無處不飛花)
한식날 봄바람에 버들가지가 나부끼네. (寒食東風御柳斜)
날이 저물어 한나라 궁에는 촛불이 밝혀지고, (日暮漢宮傳蠟燭)
옅은 연기가 다섯 제후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 (輕煙散入五侯家)

8세기 말 하급관리로 일했던 한굉(韓)이 지은 ‘한식(寒食)’이다. 안사의 난을 겪은 뒤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덕종(德宗)을 위시해 조정은 시름에 잠겨 있었는데, 한굉이 이 시를 지어 장안이 다시 생명력을 얻어가고 있음을 노래했다. ‘한식’을 읽은 덕종은 크게 기뻐해 한굉에게 중서사인(中書舍人)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한굉은 시 한 편 덕분에 중급관리로 승진했고 명성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시에서 나온 ‘춘성(春城)’이라는 시구는 그 뒤 후대인들이 즐겨 사용했다.

오늘날 중국 서남부의 한 도시는 아예 ‘봄의 도시’라는 뜻으로 변용해 쓰고 있다. 윈난(雲南)성 성도(省都)인 쿤밍(昆明)이 그 주인공이다. 쿤밍은 도시 홍보 광고 글귀마다 ‘날마다 봄날인 쿤밍(昆明天天是春天)’이라 소개하고 있다. 위도상으로 보면 쿤밍은 북회귀선 바로 위에 위치한 아열대 기후대다. 실제 윈난성은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접경해 있다. 하지만 쿤밍은 연평균 기온이 16.5℃에 불과하다. 가장 더운 6월 평균기온은 19.9℃, 가장 추운 1월 평균기온은 8.1℃밖에 되질 않는다.

이처럼 쿤밍이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높은 산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쿤밍의 평균 해발은 무려 1891m에 달한다. 고산에 있다 보니 날씨가 맑거나 서리 끼지 않는 날이 많다. 연평균 일조시간은 2200시간을 넘고 서리 없는 날은 278일이나 된다. 비는 적당히 내려서 연평균 강수량은 1450mm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기후 조건 덕분에 쿤밍은 사계절이 봄 같고 언제나 꽃이 만발한다. 그렇기에 쿤밍의 또 다른 별명은 ‘꽃의 도시(花城)’다.

아시아 최대의 화훼시장

쿤밍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10여 km를 가다 보면 이런 별칭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더우난(斗南) 화훼시장이다. 더우난은 중국에서 가장 큰 화훼 거래장터다. 전체 면적이 8만m2에 달하고 날마다 2만명이 200~500ｔ의 생화를 거래한다. 하루 거래액은 600만~1200만 위안(약 10억3800만~20억7600만원)으로 연평균 거래액이 100억 위안(약 1조7300억원)을 넘는다. 거래된 화훼는 고속도로, 철도, 비행기를 통해 중국 내 60여 개 도시와 전 세계 46개국으로 수출된다. 이는 중국을 넘어서 아시아 최대 규모다.

더우난의 진면목을 보려면 시장 내 있는 쿤밍국제화훼교역센터(KIFA)를 살펴봐야 한다. KIFA의 일과는 저녁 6시부터 시작한다. 쿤밍 주변 화훼기업들이 보내온 각종 생화가 KIFA 창고에 도착한다. 창고는 축구장보다 훨씬 넓다. KIFA 직원들은 도착한 꽃을 품종별, 상태별로 나눈다. KIFA에서는 하루 최대 300여 종, 200만 송이의 생화를 거래한다. 가장 많이 거래하는 품종은 장미, 카네이션, 백합, 국화, 패랭이꽃 등이다.

밤 9시부터 중국 각지에서 온 화훼 도매상인들이 KIFA로 몰려든다. 상인들은 먼저 창고로 가서 경매에 나올 꽃의 상태를 점검한다. 창고가 크기에 날카로운 눈으로 꽃을 빠르게 살펴본다. 10시 정각이 되면 경매를 시작한다. 4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경매석은 매일 빈자리 없이 꽉 찬다. 짐차가 갖가지 꽃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를 끌고 경매장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한다. 상인들이 전광판에 나타나는 가격을 보며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탁자 위의 버튼을 누르며 경매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경매는 다음날 1~2시가 넘어서야 끝나는데, 상인들은 구입한 꽃을 옮기느라 보통 새벽 4시까지 창고에 남아 일한다. 그동안 필자는 더우난시장을 3차례 찾았다. 2009년 11월에는 화훼 생산기업이 생화를 따서 KIFA로 보내고, 상인들이 꽃을 낙찰받아 가져가는 전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당시 경매장에서 한 일본인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윈난의 꽃은 품질이 뛰어나면서 가격이 싸다. 중국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일본에서도 환영받는다”고 말했다.

쿤밍에 새 화훼시장 문열어

자유시장 한편에서 집에서 재배한 장미를 비롯해 다양한 꽃을 가지고 나와 파는 노인.

KIFA 경매는 더우난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시작일 뿐이다. 새벽 3시부터는 바통을 이어받아 자유시장에서 장이 열린다. 축구장 3배 크기의 자유시장은 윈난성 각지에서 몰려온 화훼 재배농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아침 7시에는 그 숫자가 5000명에서 최대 1만명까지 늘어난다. 저녁 6시까지 더우난은 이들 차지다. KIFA 경매는 화훼 생산기업만 참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유시장은 약간의 가입비를 내고 회원 등록을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등록된 회원 수는 6만명을 넘는다.

가져온 꽃다발을 트럭이나 삼륜차에서 내리는 농민, 지정된 자리에서 좌판을 펼쳐 호객행위를 하는 재배농,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꽃 상태를 살펴보는 소매상, 이들에게 먹거리를 파는 장사치 등으로 자유시장은 온종일 북적댄다. 아침에는 장미가, 낮과 오후에는 카네이션과 백합이 주로 거래된다. 이렇듯 더우난은 어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꽃이 아직 시들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 피고,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 끊이지 않는(一花未謝一花開, 四季花開開不絶)’ 쿤밍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우난시장은 1980년대 초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됐다. 이를 쿤밍시 정부가 나서서 1999년 체계화하고 규모를 키웠다. 또한 세계 최대인 네덜란드 알스메이르 화훼경매센터와 합자해 2002년 12월 KIFA를 개관했다. KIFA는 화훼 정리, 정보제공, 경매, 포장, 배송, 항공운송 등 운영 시스템이 네덜란드와 동일하다. 자오웨이펑(趙衛鵬) KIFA 회원부장은 “KIFA는 규모와 거래량에 있어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 2위이며 등록된 거래 회원 수는 1만5000명(2009년 현재)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8일에는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더우난시장은 문을 닫았고, 2km 떨어진 곳에 ‘더우난국제화훼산업원’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화훼산업원은 2010년 홍콩으로부터 38억8000만 위안(약 6712억원)을 투자받아, 2011년 시공해 올 초 완공했다. 면적이 23만m2에 달해 기존 시장보다 3배나 넓다. KIFA도 규모가 갑절로 커졌다. 또한 올해 내 지하철이 개통되면 앞으로는 누구나 손쉽게 더우난을 찾아가 다양한 화훼 상품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괄목할 성장은 14억 중국인의 소비 급등 덕분이다. 2013년 중국 내 화훼 소비총액은 1288억 위안(약 22조2841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6.6% 늘어났다. 생산 총면적은 122.7만ha로 전 세계 화훼 생산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30년 만에 소비는 90배, 생산은 50배가 늘어난 수치다. 화훼 수출액은 6억4600만 달러로 전년대비 21.3%나 급증했는데, 윈난성이 2억2000만 달러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윈난은 중국 절화(切花) 수출의 75.6%를 맡고 있다.

녹조현상 심각

국내외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화훼 생산기업과 재배농이 선택한 방법은 대규모 생산체제 구축과 무차별 농약 사용이다. 필자가 취재했던 화훼기업은 거대한 단지에서 다양한 꽃을 재배했다. 하지만 병충해 방지를 위해 적지 않은 양의 농약을 사용했다. 이에 반해 외국투자기업은 친환경 방식을 고수한다. 한 한국기업 책임자는 “우리는 진출할 때부터 유기농 방식으로 꽃을 재배했다”며 “생산량은 줄어들지만 향기가 좋고 색깔이 선명한 고부가가치의 꽃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뿌려진 농약은 별다른 정제처리 없이 하수구와 개울로 흘러들어갔다. 곧바로 쿤밍 주변 강과 호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곳이 뎬츠(池)다. 뎬츠는 전체 면적이 311km2에 달하는 중국 6대 담수호다. 쿤밍 서남부에 남북 41.2km, 동서 13.3km로 넓게 퍼져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뎬츠는 쿤밍을 살찌운 젖줄이었다. 주변 자연풍광도 아름다워 ‘고원강남(高原江南)’이라 불려왔다.

오늘날 뎬츠는 중국에서 녹조가 가장 심각한 호수다. 1990년대 초 첫 녹조가 발생하더니, 1990년대 중반에는 부영양화가 호수 전체로 번졌다. 이로 인해 31종에 달했던 어류는 16종으로 줄어들었다. 그중 4종은 지구상에서 뎬츠에만 서식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호수 주변에 난립했던 화학·비료·시멘트·특수강 공장이 오염의 주범이었다. 수십 개의 공장 중 폐수정화시설을 설치한 곳은 거의 없었다. 딩젠화(丁建華) 쿤밍녹색협회 부회장은 “공장보다 훨씬 많은 화훼농장에서 사용한 농약이 하천을 타고 유입되면서 뎬츠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윈난의 왕조들

오삼계가 진원원을 위해 지은 궁전 내 청동으로 만든 동전(銅殿).

매년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수질을 개선해야 할 골칫덩어리로 전락했지만, 과거 뎬츠는 여러 왕조를 잉태했었다. 기원전 278년에 건국한 소수민족왕국 뎬국이 그 첫 번째다. 뎬국은 《사기(史記)》가 ‘비옥한 평지가 수천 리에 달한다’고 기록할 정도로 농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진시황과 한무제 대군의 침입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15년까지 400년간 번성했다. 오늘날 윈난을 가리키는 약칭이 ‘뎬()’이고, 뎬츠의 이름이 지금까지 유지될 만큼 뎬국이 남긴 유산은 지대하다.

그 뒤 한족 왕조가 윈난을 간접 지배했지만, 8세기부터 소수민족왕국이 부흥했다. 다리(大理)에 도읍을 둔 남조(南詔)와 대리국이 각각 738~902년, 937~1253년 쿤밍에 동경(東京)을 두어 뎬츠 일대를 통치했다. 원나라가 대리국을 멸망시킨 뒤에야 윈난은 중국 왕조의 지배권 아래 완전히 복속됐다. 특히 명대에는 한족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쿤밍에서 주민 수에 있어 토착 소수민족을 능가했다. 이들을 기반으로 청대 초기에는 청조에 저항하는 여러 한족왕국이 명멸했다.

동전 안 신선상은 오삼계를 본떠 만들었다.

그중 오삼계(吳三桂)가 세운 대주(大周)는 청조를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다. 오삼계는 본래 명의 장군으로 천연의 요새 산해관(山海關)에서 청군을 방비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자성(李自成)의 난으로 명조가 멸망하고 가족이 포로로 잡히자, 오삼계는 농민군에게 투항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참수당하고 연인인 진원원(陳圓圓)이 이자성의 수하에게 겁탈당하자 마음을 바꿨다. 1644년 오삼계는 산해관을 열어 청군에 투항했고, 농민군의 섬멸과 명 잔존세력 소탕에 앞장섰다.

청조는 큰 공을 세운 오삼계에게 윈난과 구이저우(貴州)의 행정·군사 전권을 부여했다. 이에 오삼계는 쿤밍에 번(藩)을 설립했다. 오삼계의 번과 광둥(廣東), 푸젠(福建)의 다른 두 번은 독립정권이나 진배없었다. 1673년 강희제가 황권 강화를 위해 철번(撤藩)을 단행하자, 오삼계가 앞장서 삼번의 난을 일으켰다. 오삼계는 중부지방까지 진공하고 황위에도 올랐지만 1678년 병으로 급사했다. 오삼계 사후 삼번은 쇠락해져 1681년 진압됐다. 그 뒤로 윈난에서 흥기한 정권은 나오지 않았다.

17세기 삼번의 난 겪은 후 새 양조법 유행

삼번의 난을 겪은 뒤 쿤밍에서는 새 양조법으로 빚은 술을 즐겨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 증류된 바이주(白酒) 원액에 장미꽃잎과 얼음설탕을 넣어 숙성해 마시는 장미술(花酒)이었다. 장미술은 당대에 처음 빚기 시작해 명대에 만주(滿洲)의 랴오닝(遼寧)성을 중심으로 제조됐다. 쿤밍에서도 명대부터 빚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18세기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됐다. 오삼계 정권을 진압하기 위해 온 청군을 통해 만주의 양조법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장미술은 꽃의 도시인 쿤밍에 잘 어울렸다. 19세기에는 장족의 기술발전도 이뤄졌다. 1860년대 광둥과 푸젠의 상인이 쿤밍을 찾아와 대량 구입한 뒤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되팔 정도였다. 1940년대에는 장미술이 일반 바이주와 쿤밍 술시장을 양분했다. 특히 필(畢)씨 양조장의 장미술이 쿤밍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가전비법(家傳法)으로 증류한 원액에다 짙은 향의 장미를 더해 3년을 숙성시켜서, 술 맛이 좋고 향기가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크고 작은 민간 양조장이 모두 국영 술공장(酒廠)으로 통폐합되면서 장미술의 생산이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0년대부터는 생산원가가 폭등했다. 화훼 재배농이 대량 생산에 집착하면서 농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에 따라 깨끗하고 신선한 장미꽃을 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초 장미술을 생산하던 핑(甁)술공장이 문을 닫았다. 현재는 작은 양조장 두어 군데가 명맥을 근근이 잇고 있다.

시장에는 60~100위안대(약 1만380~1만7300원)의 장미술이 서너 종류 판매되고 있다. 이런 연유 때문에 필자는 술을 2013년에야 처음 맛보았다. 1998년 이래 쿤밍을 취재와 휴양으로 20여 차례나 찾았던 점에 비춰볼 때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최근 들어 쿤밍시정부와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장미술을 부흥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양조술이 발전하질 못해 앞날이 밝지 못하다. 이처럼 장미술은 산업발전과 환경오염에 영향받은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푸얼차의 주산지 시솽반나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으로 50분을 가면 시솽반나(西雙版納)자치주에 도착한다. 시솽반나는 북위 21도에 위치해 있어 북회귀선보다 낮다. 이런 위도 때문에 시솽반나에는 겨울이 없다. 오직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우기는 5월 하순에 시작해 10월 말까지 이어진다. 건기는 10월 하순에서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지속된다. 우기 동안 1년 강수량의 80~85%가 내린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이 15℃에 불과하고 7~8월에는 27℃를 유지한다. 한 해 평균기온이 20℃로 사람이 살기 쾌적하다.

이런 시솽반나의 기온은 쿤밍처럼 높은 해발에서 비롯된다. 전체 면적의 65%가 해발 800~1300m에 이른다. 해발이 1300~2500m인 산지도 10%를 넘는다. 이 해발대는 북부에 주로 몰려 있고 남부는 500~800m의 평지다. 시솽반나의 주도(州都) 징훙(景洪)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800m 이상에서는 푸얼차(普洱茶)와 커피를 심고, 평지에서는 고무나무와 바나나를 재배한다. 산지에는 하니족(哈尼族), 이족(彛族), 라후족(拉祜族), 부랑족(布朗族) 등이 살고, 평원에는 다이족(傣族)이 거주한다.

이 같은 자연조건 덕분에 시솽반나에는 풍부한 식물군이 번식한다. 시솽반나에서 자라는 식물은 무려 2만 종이 넘어 중국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중 열대식물이 6000종이고, 지구상에서 시솽반나에만 존재하는 식물도 500종에 달한다. 우거진 열대우림 속에는 수많은 동물과 조류가 서식한다. 아시아 코끼리, 벵골 호랑이, 표범, 코뿔소 등 760종이 넘는 야생동물이 활동한다. 조류는 429종에 달해, 중국 전체의 3분의 2를 점한다.

식물자원의 보고

여기에 란창강(瀾滄江)이 시솽반나를 가로질러 미얀마와 라오스로 흐른다. 란창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해 윈난을 거쳐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어진다. 동남아인들은 이를 메콩강이라 부른다. 완벽하게 보전된 삼림, 풍부한 식물, 진귀한 동물, 동남아의 젖줄…. 면적이 중국 전체의 0.2%에 불과하지만, 시솽반나는 다양한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어 ‘식물자원의 보고’ ‘중국의 아마존’이라고 불린다.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3년 유네스코는 시솽반나를 국제생물보호구로 지정했다.

열대우림은 시솽반나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는데, 열대식물원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징훙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열대식물원에 도착한다. 열대식물원은 1959년 문을 연 중국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다. 본래 중국과학원 쿤밍식물연구소의 지부로 세워지면서 문을 열었다. 한때 윈난성정부가 관할해 지위가 격하됐지만, 1996년 중국과학원 직속으로 승격되면서 규모가 지금처럼 커졌다. 현재는 전체 면적이 900ha에 달한다.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는데, 그중 열대식물이 5000여 종이나 있어 시솽반나의 모든 열대식물이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원으로 들어서면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찾는 이를 반긴다. 필자가 식물원을 방문했던 날은 건기의 끝자락이던 5월 3일로, 징훙 시내의 기온은 36℃에 달했다. 한데 식물원 내 체감온도는 징훙보다 5~6℃쯤 낮았다.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라는 격찬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열대식물원은 아주 커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란창강의 지류인 뤄쒀강(羅梭江) 중간에 있는 섬과 그 일대를 식물원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열대식물의 보고인 열대우림원,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선물했거나 심은 나무가 있는 명인명수원(名人名樹園), 전 세계 80여 개국의 나라 꽃과 나무를 옮겨온 국수국화원(國樹國花園), 대나무 250여 종이 있는 백죽원(白竹園), 200종의 야생난으로 구성된 야생난원 등 10여 개의 전문구역이 있다.

특히 기화이목원(奇花異木園)은 오직 시솽반나에만 있거나 오지 밀림에 서식하고 멸종위기에 놓인 꽃과 나무 254종을 보존하고 있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야생식물 400여 종을 모아놓은 남약원(南藥園)과 함께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이렇듯 진귀한 식물이 많아 1986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은 열대식물원을 방문했다. 그 인연을 뒤쫓아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도 지난 3월 찾아와 야생식물의 보존과 야생동물의 보호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고무나무 재배 급증으로 생태계 파괴

시솽반나 어디를 가든 고무나무를 심기 위해 파헤쳐진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지금 시솽반나의 생태계는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열대우림이 조금씩 줄어들고 식물이 500여 종이나 멸종됐다. 파괴의 주범은 뜻밖에도 고무나무다. 고무나무 재배지가 빠르게 확장됐기 때문이다. 징훙에서 열대식물원으로 가는 길에서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도로 주변 산에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운영되는 고무나무농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지난 반세기 만에 고무나무는 시솽반나 전체 산림의 20%를 넘어섰다.

본래 고무나무가 열대우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1947년 동남아 화교들이 묘목을 가져와 농장을 개설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특히 개혁개방 후 플랜테이션 농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고무나무는 시솽반나를 대표하는 식물로 등극했다. 고무나무는 200m2마다 매년 9.1m3의 지하수를 빨아들인다. 번식력이 강해 주변 식물을 멸절시키며 뻗어간다. 실제로 1988년 116만 무(·1무=666.67m2)였던 고무나무 재배면적은 2006년 615만 무로 폭증했다.

고무나무는 시솽반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고무나무 숲이 늘어난 이유는 고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10년간 고무 가격은 3배나 뛰었다. “고무나무가 야오첸수(搖錢樹·중국 신화에서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나무)로 변했다”는 소문이 시솽반나를 강타하면서 기업, 농민 할 것 없이 숲을 파헤쳐 고무나무를 심었다. 보통 900그루를 심으면 1년 10만 위안(약 1730만원)을, 300그루를 심으면 5만~6만 위안(약 865만~1038만원)의 소득을 냈다. 이 같은 고소득을 좇아 시솽반나 전체 농민 40만명 중 13만명이 고무 농사에 종사한다.

오늘날 시솽반나의 고무산업은 중국에서 규모 1위, 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무나무가 시솽반나에 경제적 부를 가져다줬지만, 생태계는 급속히 파괴됐다. 2007년 중국과학원은 보고서를 통해 “고무나무 숲이 지금처럼 확장될 경우 조류는 70% 이상 줄어들고 포유류는 80% 이상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중국 언론도 르포를 통해 잇따라 문제점을 지적하자, 뒤늦게야 시솽반나주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불법 농장을 철거하면서 면적이 줄어들었지만, 2014년 말 455만 무에 달한다.

13개 민족 共存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으로 자연환경이 급변하는 데 반해, 현지 소수민족은 옛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시솽반나는 다민족 사회다. 2014년 말 호적 인구는 98만명인데, 이 중 소수민족은 76만명으로 77.6%에 달한다. 다이족이 29만7000명으로 가장 많고 하니족(18만6000명), 이족(5만6000명), 라후족(5만6000명), 부랑족(3만6000명) 등 13개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 다이족은 시솽반나에서 한족보다 많은 주류민족으로 흥미로운 역사 변천을 겪었다.

본래 다이족은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윈난성 서북부에서 구이저우 서부까지 넓게 분포해 살았다. 예부터 한족 왕조는 이들을 애뢰(哀牢), 백만(白蠻), 백의(白衣), 백이(白夷) 등으로 불렀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다이족은 기원전 5세기경 윈난 서북부 누강(怒江) 일대에 달광(達光)국을 처음 건국했다. 달광국은 기원전 2세기 말 한나라와 교역하면서 세력이 급성장했다. 쿤밍에서 흥기했던 뎬국과 경쟁하면서 1세기 초까지 번성했다.

1세기 중엽 후한의 대군이 침입하면서 다이족 사회에 첫 변화가 불어 닥쳤다. 후한의 공격으로 달광국은 무너졌고 민족 성원의 일부는 서쪽으로, 일부는 남쪽으로, 일부는 고향에 남았다. 서쪽으로 간 다이족은 이라와디강 중류에 진출해 샨(·Shan)을 건국했다. 샨국은 민주적인 왕권 계승과 강력한 군사문화를 기반으로 6세기까지 번성하면서 미얀마 동부와 윈난성 서남부를 지배했다. 오늘날 미얀마에 거주하는 다이족을 샨족이라 부르는 것은 이 같은 역사에서 비롯됐다.

남쪽으로 간 다이족은 달광국을 재건하고 후한에 조공을 바쳤다. 이 달광국은 400년간 독자성을 유지하며 발전했다. 고향에 남은 다이족은 한족 왕조의 간접통치를 받았는데, 6세기 버마족이 세운 표(驃)국이 샨국과 달광국을 멸망시켜 유민(流民)이 들어오자 이를 규합해 몽사조(蒙舍詔)를 성립했다. 몽사조는 머지않아 윈난 서북부의 여섯 소국(六詔·육조)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7세기 후반부터는 당나라의 후원을 받아 육조를 통합하여 738년 다리에서 남조를 건국했다.

중국과 東南亞의 다이족

그로부터 남조는 250년간 윈난성을 통치했다. 세력범위는 쓰촨(四川)성 남부, 구이저우 서부, 미얀마 동부에 미쳤다. 이런 남조의 영향력으로 중국-미얀마-인도로 이어지는 남부 실크로드가 열렸다. 하지만 902년 정변이 일어나 남조가 멸망하고 937년 바이족(白族)이 주도한 대리국이 세워졌다. 이에 다이족의 주류는 12세기 징훙으로 내려와 과거부터 정착했던 동족들을 흡수해 맹륵()국을 건국했다. 맹륵국은 빠르게 성장했으나, 13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붕괴했다.

이 몽골의 침입으로 다이족 사회는 또다시 큰 변화를 맞았다. 맹륵국이 무너지면서 일부 왕족과 주민은 지금의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로 이주했고 다른 왕족과 주민은 태국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라오스의 라오(Lao)족, 베트남의 눙족(Nng), 태국의 타이(Tai)족 등 각 나라에서 주류민족 또는 소수민족으로 정착한다. 이를 통해 태국과 라오스의 역사가 13세기 다이족의 이주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아시아 전역의 다이족은 6600만명이고, 이 중 중국에 126만명이 살고 있다.

오늘날 중국과 동남아 각지의 다이족 간에는 언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기본 문법은 같지만, 단어나 표현의 발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와 풍습은 동일하다. 전통 축제도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 대표적인 축제가 물 뿌리기다. 물축제는 중국에서 ‘포수이제(潑水節)’, 태국에서 ‘쏭크란’이라 불린다. 먼 옛날 다이족 주민들이 기후를 관장하며 횡포를 부리던 천신을 물리친 뒤, 몸에 묻은 썩은 내를 물로 뿌려 씻어냈던 일을 기념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먹는 주식과 즐겨 마시는 술도 동일하다. 다이족은 쌀과 찹쌀을 하루 두 번 먹는다. 쌀로 만든 쌀국수도 즐겨 먹는다. 보통 쌀과 찹쌀을 찧어서 바로 먹기에 하루라도 지난 밥은 거의 입에 대질 않는다. 현지 쌀은 자미(紫米)로 윤기가 흐르고 차지다. 또한 시솽반나의 토양은 수분이 높고 광물질이 풍부해 밥맛이 아주 좋다. 다이족은 오늘날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지만, 과거에는 손으로 밥을 뭉쳐 먹는 게 식사 예법이었다.

다이족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술 즐겨

쉬상반나 다이족 전통식당에서 나온 음식들. 다이족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반주를 즐긴다.

시솽반나에서는 이 자미로 미주(米酒)를 빚는다. 먼저 자미를 깨끗이 씻어 반나절 물에 담갔다가 건져 물기를 빼서 지에밥을 짓는다. 지에밥을 고루 펼쳐서 차게 식힌 뒤 곱게 빻은 누룩과 혼합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은 술독에 물과 함께 넣어 젓고 밀봉한 뒤 천천히 끓인다. 술이 완전히 끓어오르면 술독 주둥이를 열어놓고 30시간 정도 놔둔다. 그 뒤 술독 뚜껑을 1~2일 열어두어 발효를 완성한다. 이러한 양조법은 우리의 쌀술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이족은 발효된 술을 20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는 저장고에 넣어 한 달간 숙성시킨다. 제대로 숙성된 술이어야 다이족 미주라 할 수 있다. 이를 라오스에서는 ‘라오라오’, 태국에서는 ‘사토’라 부른다. 단지 알코올 도수가 라오라오와 사토는 10~15도인 데 반해 다이족 미주는 25~30도로 높다. 다이족이 한족과 다른 소수민족의 양조법을 받아들여 제조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이족 미주는 과음한 뒤에도 뒤끝이 거의 없다.

과거 다이족은 집집마다 미주를 마셨다. 지금은 소규모 양조장과 전통 식당을 중심으로 제조한다. 흥미롭게도 다이족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술을 즐겨 마신다. 식사하면서 마시는 적정량의 반주는 건강에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이족은 누구나 음주에 일가견이 있다. 필자는 시솽반나를 두 번째 찾았던 2013년 1월에 다이족 미주를 처음 맛보았다. 현지에서 우연히 친분을 맺은 관얼다이(官二代·고위 관리의 자녀)들이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그들은 다이족, 이족, 한족 등 민족 성분이 다양했는데, 회합 장소가 마침 다이족 전통식당이었다. 그날 차려진 진미성찬에 고급 미주를 들이켜며 분위기를 주도한 이들은 갓 대학을 졸업한 다이족과 이족 여성이었다. 시솽반나는 고대 다이족어로 ‘멍바라나시(巴拉娜西)’, 즉 ‘이상적인 낙원’이라는 뜻이다. 태국인들은 달리 ‘천 개의 논이 있는 (풍족한) 땅’이라 부른다. 이런 표현처럼 시솽반나는 풍요로운 대지 위에 열정적이고 이방인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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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4〉

윈난성 쿤밍의 장미술과 시솽반나 다이족의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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