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文人, 옛 잡지를 거닐다 ⑤ 문인들의 사생활 : 월간조선

1930년대 문인 중에서 멋쟁이는 소설가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이 으뜸이다. 그는 20만원(당시 1원의 가치는 요즘의 1만원을 상회한다)의 거재(巨財)를 가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유성기 도락(道樂)으로 수백 원을 썼고, 150여 원짜리 금시계도 찼다.

양복도 서울 덕수궁 뒤쪽에 있는 유명한 일류 중국양복점에 가서 130~140원을 주고 맞추고 구두는 에나멜 구두요, 모자는 박래품(舶來品·외국으로부터 배에 실려 온 물품)만 썼다고 한다.

김동인의 낭비벽은 문단에서도 유명했다. 평양 출신인 그가 서울에 오면 최고급 호텔에서 묵거나 명월관 기생집에서 머물렀다. 술과 여자, 낚시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재산이 거덜나고 부인조차 도망을 갔다.

이에 비해 소설가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은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삼천리》 1935년 3월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씨(氏·염상섭)의 원래 성격이 호탈(豪脫)하여 의복에는 그리 개절(介節)치 않아서 여름이면 줄이 꼬깃꼬깃한 모시 두루마기에 50전짜리 맥고(밀짚)모자, 겨울이면 백의(白衣)인 흰 바지저고리에 가끔 짚신도 신고 고무신도 끌고 …>(p150)

한국 근대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염상섭은 김동인처럼 ‘모던’을 흉내 내지 않았다. 얼굴꼴도 귀공자 타입은 아니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도 멋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예 머리까지 박박 깎고 다녔을 정도. 패션 감각도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다만 검은 ‘대모(玳瑁)테 안경’(거북의 일종인 대모의 견고한 등판을 가공해 만든 안경)을 썼다.

<… 춘원의 옷 입은 범절이 그 부인 허 여사(허영숙·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의사시험의 첫 여성 합격자-편집자 주)가 속 타리만치 치장할 줄도, 곱게 입을 줄도 모른다. …>(p151, 《삼천리》 1935년 3월호)

한번은 춘원 부부가 서울 명동 입구에 자리한 정자옥(丁子屋)에 들른 일이 있다. 정자옥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세운 백화점. 해방 후 ‘미도파백화점’으로 개칭했고 지금은 ‘롯데영플라자’가 들어서 있다.

<… (춘원 부부가) 어느 춘일(春日)에 산보를 갔는데 막상 (정자옥에) 들어가 보니 시체(時體) 남아(男兒)들이 말쑥하게 치장하고 다니는 모양이 하도 부러워 남편을 모던 신사로 만들 작정으로, 꼬불쳐 둔 10원짜리 지폐를 내어, 그중에서 제일 좋은 모자 하나를 7원 주고 사 드렸다.

그때는 아래위가 어울리더니, 만물(萬物)이 늙고 낡게 되는지라 7원짜리 그 박래모자도 3~4년간 쓰고 지내는 사이에 이제는 때묻고 구겨져 고래상(古來商)에서도 잘 사 주지 않게 되었다. …>(p151)

김억 對 박종화 對 염상섭

그러나 춘원은 여전히 낡은 모자를 쓰고 태연히 외출했다.

한국 근대 최초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를 펴낸 안서(岸曙) 김억(金億)은 춘원보다 더해 ‘물화(物貨)의 은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야말로 단벌 신사였다. 《삼천리》에 따르면, 안서의 옷은 37원인가 주고 산 예복지(禮服地) 양복을 춘하추동, 4계절 쭉 내리 입어 ‘이제는 양복지가 닳아 태양광선이 거울같이 몸을 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3년 전(1932년) 구입한 검은 모자도 달랑 하나뿐이었고, 삼복(三伏)에도 늘 쓰고 다녔다.

가난은 문인들에게 독배와 같다. 해방 후 좌우이념이 충돌하던 시절, 문인들의 생활고는 심각했다. ‘대가(大家)’라고 불리는 신문연재 소설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49년 7월 발행된 잡지 《민성》에는 당시 신문연재 소설 하루치 원고료가 500원으로 적혀 있다. 또 시는 한 편당 1000원에서 1500원, 산문(소설 수필 등)이 200자 원고지 1장에 100원으로 50매 정도의 단편소설을 쓰면 5000원이다. (1949년 당시 경기미 1등품 한 가마니 80kg에 9830원이었다.)

그러나 명목상 원고료였지 그 시절, 물가가 폭등했고 발표할 지면도 없었다. ‘외상’으로 글을 싣고 ‘술’로 갚았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투잡(two job)’을 뛰지 않고선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 문인들은 신문사나 잡지사, 출판사, 혹은 학교에 취직해야만 호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 그러한 빈(貧)의 경지에서 무슨 훌륭한 문학작품이 나올 것이랴! 조선의 시인, 소설가란 거의가 자기의 본분을 딴 데다가 빼앗겨야만 살 수 있는, 오히려 생활의 여가에서라야 겨우 작품을 빚어내게 되는 비참, 그것이다. …>(p72, 《민성》 1949년 7월호)

한번은 《민성》지 기자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와 횡보 염상섭의 집을 찾아갔다.

당시 월탄 선생의 집은 서울 종로구 충신동(일명 황토골)에 위치해 있었다. 떡 벌어진 한옥 앞에서 “이리 오너라”를 목청 높여 부르면 남자 하인(雇兒)이 나왔다. 월탄의 집 정원에는 파초(芭蕉)와 대추나무가 심어져 있고, ‘쌍조수루(雙棗樹樓)’라는 현판이 붙은 사랑채의 서재와 별채가 나왔다.

<… 근 50간(間)은 됨직한 주택의 이 사랑채 서재와 정원! 삼복더위지만 후두둑 파초잎의 빗소리만으로도 능히 더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중략) 하여간 이 땅의 문사들이 그래도 이만한 정도의 생활은 되어야 좋은 작품이 생산되지! 하는 느낌을 금치 못하였다. …>(p72)

박종화 선생의 자택. 서울 종로구 충신동의 주택을 1975년 평창동으로 옮겨놓았다.

월탄의 부 대부분은 원고료가 아니라 유산 덕분이었다.

<… 선생의 유복(裕福)은 다름 아닌 유산 그것이니 한 선비로서 달리 생업(生業)이 있는 것이 아닌 소비 일방의 검소한 생활이라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p72)

당시 월탄은 소설 《홍경래》를 신문에 연재 중이었고 해방 후 《청춘 승리(靑春勝利)》《금삼(錦衫)의 피》《다정불심(多情佛心)》 등을 펴냈었다. 그러나 ‘발행 부수가 뻔한, 인세 수입이래야 제때 한몫 선뜻 주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월탄이 호주호우가(好酒好友家)지만, ‘연접내방(連接來訪)하는 교우(交友) 접대비만으로도 그 반은 지출될 것’이었다.

월탄 박종화.

<… 한때 《백조》의 동인이자, 애초에는 <흑방비곡(黑房悲曲)>의 시인이요, 현대 문단의 대가인 월탄 박종화씨가 그만하면 문필로만의 생활도 됨직 하건만 유산으로 지탱된다는 것은 우리 민족 전체의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p73)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편집국장 겸 주필을 지낸 염상섭은 해방 후 빈털터리 ‘맨몸’으로 귀국했다. 당연히 집 한 채, 옷 한 벌 있을 리 만무한 ‘적빈(赤貧)’ 상태였다.

그러나 선생은 가난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고리채를 돌려써서 파산에 가까운 형편이었으나 한잔 술만 마시면 세상일은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저 문학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민성》지 기자는 ‘염상섭과 술은 뗄 수가 없고, 술이 없는 날은 원고를 쓰지 못했다’고 썼다.

염상섭의 호 ‘횡보’는 술에 취해 걸음걸이가 비뚤고 바르지 않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서울 중산층의 감각과 언어, 풍속을 작품 속에 녹인 문단의 거목이었지만, 위상과 상관없이 염상섭의 집은 늘 가난했다. 술을 입에 달고 살았던지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채 사흘 밤낮 이사를 다녔다. 또 외상이 가능한 술집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갔다.

횡보의 장남 염재용씨는 “선친이 직장암으로 별세하기 직전에도 정종을 숟가락에 떠서 입안에 넣어 줄 정도로 생을 술과 함께 지냈다”고 했다. 고집과 술 세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결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문인이었다.

횡보의 집을 찾은 기자에게 염상섭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이의 소설을 한 줄도 읽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 진절머리 나는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

<… 원래 문인을 청백(淸白)의 사(士)라고도 말하지만, 재물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날에는 그만큼 문학을 덜 생각하게 될 것이니까 자연 가난에 쪼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문인이 구차하게 살지 않는다고 하니 그들은 우리들의 문인보다 상재(商才)가 많다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p73, 《민성》 1949년 7월호)

金東仁 아내의 울음

《만국부인》에 실린 김동인 부인 방문기.

《만국부인(萬國夫人)》 창간호(1938년 10월호)에 김동인의 아내 김경애(金瓊愛) 여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문사 김동인씨 부인 방문기’. 창간호에 실릴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전국적인 관심사였다. 동인의 낭비벽으로 첫 부인이 도망간 후 1930년 숭의고녀 출신의 김 여사와 재혼했었다.

원고료로 월세집에 세 들어 신접살림을 차릴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 《만국부인》 기자는 시종 ‘김동인과 전처(前妻)와의 관계’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4쪽에 달하는 인터뷰가 모두 전처와 전처 자식들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기자) 전처 자식들에 대해 애착을 가집니까.

“(김 여사) ….”

—그 애들하고 경애씨가 낳은 어린아이와 어느 쪽이 더 사랑스럽습니까.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자식 귀한 줄을 모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사랑스럽다든가 하는 생각이 없답니다.”

—그 애들이 자기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는 기색이 뵈지 않습니까.

“속으로는 어쩌는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절대로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않아요.”

—아버지가 애들을 사랑합니까.

“네, 사랑합니다. 어머니 없는 애들을 아버지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어쩝니까.”

급기야 기자는 이렇게 유도신문을 던진다.

“내 친구 중에 후처가 된 이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전처 자식이 있지요. 그가 늘 하는 말인즉, 자기 남편이 전처 자식을 사랑하면 질투가 생겨서 못살겠다는 겁니다”라고.

그러자 김 여사는 “그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혹 그렇게 되는 때가 있지요. 내 맘이 불쾌할 때 그 애들을 가지고 귀해 하고 사랑하면 마음이 더 불쾌합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김동인의 경제상황은 어땠을까.

김 여사는 기자에게 “우리가 전에는 재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며 “경제적으로 아직 안정되지 못한 데다 남편의 몸이 사철 약해서 화가 날 때가 많다”고 했다.(《조선일보 사람들》의 ‘김동인 편’을 찾아보니 1930년대 당시 ‘극도의 신경증을 겪었고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끝으로, 《만국부인》 기자는 김 여사에게 “남편이 매일 외출하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2~3일에 한 번씩 나가십니다.”

—그 외 시간엔 늘 원고를 쓰십니까.

“아니에요. 늘 누워 계시지요.”

—그러면, 각 신문 잡지에 죄다 소설을 쓰시는데 그것은 언제 쓰십니까.

“워낙 빨리 쓰시니까요, 원고 쓰시는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신문에 2회분씩 쓰는 것도 30분 이내로 쓰는데, 그것도 고단하셔서 야단입니다. 몸만 건강하시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습니다.”

—시댁에서 경제보조가 있겠지요.

“없습니다.”

—그러면 순전히 원고료로 생활하십니까.

“….”

이 질문에 김 여사는 대답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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