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원재훈 詩人이 쓰는 대한민국 구라열전 ② 金周榮 : 월간조선

몇 달 전인가, 김주영(金周榮) 선생이 거나하게 취해서 한 이야기가 있다.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였다. 장충동 족발집에서 ‘소맥(燒麥)’부터 시작한 그 자리는 와인을 사발에 부어 마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선생은 엄마처럼 우리를 걷어 먹였다. 더 먹어라, 더 마셔라. 재미난 이야기 해줄게. 선생의 걸쭉한 육담(肉談)이 무르익어가던 시간, 문득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쓴 수없이 많은 단어 중에서 단 하나의 말을 고른다면, 그것은 ‘엄마’다. 세상에는 큰 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겸손, 배려, 사랑, 포옹 등등 사람들을 이끄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나에게는 오직 엄마가 있을 뿐입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선생의 모습은 단순한 취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말들은 망치가 못을 박듯 내 가슴에 와 박혔다. 가난과 엄마는 쌍두마차처럼 김주영 작품 세계를 질주했다. 경북 청송의 가난한 소년 주영이에서 《객주》의 작가 김주영을 이끌어왔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지금까지의 김주영 문학을 열 수 있는 키워드라는 이야기다.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를 물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 단어가 일상적이고 구체적일수록 좋다. 김주영의 엄마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김주영 문학의 특징을 ‘가난한 자들의 의기투합’이라고들 하지만, 선생은 엄마가 당신의 문학에 가장 중요한 단어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무엇을 쓰든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객주》를 비롯한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 중에 대표작은 역시 《홍어》이겠지만 《겨울새》를 비롯한 선생의 작품마다 엄마의 그림자는 깊고도 넓다.

‘엄마’로부터 떠나고 싶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선생의 집필실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그것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산문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그 산문은 바로 엄마에 대한 단상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그 엄마로부터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폭탄선언이었다. 2009년 모친(母親)의 육신을 이 지상에서 보내드리고 이제 2년이 더 지났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나처럼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작가는 드물지요. 우리 고향에서는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그냥 엄마라고 해요. 아들이 칠순이 되든 팔순이 되든 말이지요. 우리는 보통 엄마라고 부르다가 어머니로 보내드리잖아요. 엄마 엄마 하고 따르다가 어머니로 모시고 그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거지요. 하지만 나는 엄마로 ‘엄마’를 보내드렸지요. 내 나이 칠순에 어머니가 작고하셨어요. 어머니의 장례는 고인의 유언대로 아무도 부르지 않고 아우와 의논하여 가족끼리 치렀어요. 꽃이 진 것처럼 조용한 절차였어요. 어머니 육신을 화장해서 어린 시절 소풍 가던 강가가 보이는 산 위에서 ‘엄마 뼈’를 뿌려드렸어요.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디다. 다 어머니의 뜻이었어요.”

선생은 엄마의 뼈를 뿌리면서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이 어디로 가는지도 보았다. 그러한 조용한 의식은 선생에게는 큰 뜻이었지만, 주위의 지인들은 참으로 섭섭했을 것이다. 김주영의 엄마는 친구들의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폭넓은 인간관계와 명사로서의 유명세로 인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의 표정에서 엄마를 보내드리는 선생의 깊은 마음이 보였다. 선생은 이어 말했다.

“아버지 없이 홀몸으로 날 길러서 엄마는 가난의 또 다른 모습이었지요. 그 고생은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했듯, 지독한 것이었어요. 내게 엄마는 바로 가족이라는 모든 것이었어요. 나에게 남아 있는 가족 말이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부터 그 가족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그때부터 나는 방황과 방랑을 거듭합니다. 한때는 어머니를 미워했어요. 어떤 적에는 저주도 했지요.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러한 감정이 바로 내가 삶을 탄탄하게 살게 된 근거였음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더욱더 내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로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심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젠 그 엄마로부터 떠나야 되겠어요.”

무슨 말일까? 여태 발표한 작품이 어떤 작품이든 엄마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 데 반해, 엄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쓴 작품을 탈고했다고 털어놓았다. 제목은 《잘 가요. 엄마》. 작가생활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란다. 어머니의 육신을 당신 손으로 보내드리고 나서, 이제 그 인연의 끈을 작가로서 작품으로 마침표를 찍을 참이다.

이 소설은 인터넷 ‘문학동네’에서 연재한다. 이미 초고는 탈고를 한 상태. 매달 퇴고하면서 꼼꼼히 고쳐 내보낸다. 《잘 가요. 엄마》라는 제목에서 이미 모든 말을 다 한 것이다. 소설은 시골에 있는 아우에게 어머니의 부고를 들으면서 시작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의 삶을 되짚어 나가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절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에는 작가의 손과 열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김주영의 소설을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사색을 하게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 원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엄마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강물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뿌려드린 엄마의 영혼도 이제는 자유로울 것이다.

응어리

무엇이 김주영이라는 작가를 만들었을까. 선생의 불우한 유년시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가출과 방황, 일탈적인 행동으로 공부를 할 겨를이 없었다. 단 이야기책을 좋아해서 만화방에서 굴러다니는 만화책을 훔쳐보거나, 어른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느라 군데군데 찢어댄 소설책을 읽었을 뿐이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아이는 이야기가 좋았고, 어려운 자신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10년 만에 졸업을 할 정도로 공부와는 무관했다. 책도 그리 읽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자리 잡은 작가 김주영에게 소설을 쓰게 했을까. “응어리지요. 응어리진 마음을 압니까? 불우한 환경과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응어리. 삶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응어리, 그 응어리가 글을 쓰게 만든 겁니다. 이문열, 이근배, 김원일 작가를 비롯해 김훈씨에 이르기까지 그 경우는 다르지만 응어리가 있을 겁니다. 작가에게 그런 응어리는 작품의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엇인가. 선생은 아버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엄마가 있으면 아빠가 있는 법이다. 선생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선생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잔혹한 것인가.

“아버지는 나에게 ‘부재’인데, 그래도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를 두들겨 패고, 매정하게 그런 분으로 내 곁에 잠시 머물다가 일찍 돌아가셨죠. 아버지에게는 별 영향을 못 받았지요. 그래요. 그래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한 번도 바라본 적이 없는 어른, 어린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몽둥이 찜질’로 나를 다스렸던 분이지요. 내 삶에 그런 영향을 미친 분인데, 그나마 일찍 가셨으니 나에게 아버지는 없다고 하는 편이 좋지요.”

너무 무거운 기억을 꺼내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모든 영웅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객쩍은 소리를 했더니, 선생은 “그런가” 하면서 허허 웃어버린다.

“어머니는 내 나이 일흔까지 곁에 있었지요. 내가 엄마에게 품었던 미움과 저주, 반항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어요. 그건 바로 어머니의 선물이지요. 작가인 나를 만든 겁니다. 물론 어머니는 여러 모습이에요.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라나 반가의 여인이 된 어머니가 있지요. 역경을 딛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도 있지요. 가난하게 살면서 된 고생을 한 어머니도 있지요. 사람마다 어머니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마치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우리의 고향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객주》 10권 집필

보부상 이야기를 다룬 소설 《객주》 전집. 김주영 작가는 9권으로 막을 내렸던 이 소설의 10권 집필 계획을 최근 밝혔다.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말은 고향이다. 선생에게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예수가 이야기했지요. 고향에서 환영받는 선지자는 없다고. 그래요. 선지자까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저 역시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해요. 고향에서 주영이는 가난한 아이, 헐벗은 아이, 공부를 꼴찌 하는 아이, 월사금도 못 내는 아이, 남의 밭에서 서리를 해 먹은 못된 아이인 거지요. 지금도 고향에 가면 ‘주영이 왔나’ 정도예요.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내가 뭔가 열심히 해야지 하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지요.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고향 사람들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선생은 문득 오프라 윈프리의 이야기를 꺼낸다. 미시시피강 하류, 먼지만 자욱한 오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성폭행과 낙태, 그러한 이야기를 주위에 해도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던 흑인 여자아이, 남자친구가 곁을 떠날까 봐 헤로인을 같이 했다는 절대 고독의 소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가 드디어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시골에 놀러 왔다가 자신의 생모를 만나 임신만 시키고 튀어버린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만난 아버지의 부인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책을 읽어라.”

선생은 이야기를 하면서 오프라의 성공은 바로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인한 것임을 강조했다. 오프라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읽었던 이유도 그녀의 모습에서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당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인생을 생각해 보면, 최초의 동기 부여가 그래도 책 읽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어려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절간에 이무영 선생의 소설책이 있었는데, 누군가 담배를 말아 피웠는지 군데군데 파장이 되어 있었지요. 그 책을 훔치기도 하고, 주워 읽기도 했어요. 그래서 문학을 했고, 문학을 해서 살았어요. 문학은 너무나 고마운 겁니다. 문학을 해서 애를 기르고, 문학을 해서 후배들에게 소주 한 잔 사줄 수 있었어요.

어떤 유명한 대중가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음악이 소주 한 잔 사주지 않아도 음악이 좋아서 한다고 했는데, 나는 달라요. 나는 문학이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어요. 문학을 해서 여행도 다닐 수 있었어요. 남달리 운이 좋아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지요. 나는 작가로 살면서 많은 것을 누렸어요. 너무나 고마운 존재지요. 그래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문학을 할 겁니다. 만약에 다음 생에 신이 나에게 문학적인 재능을 주지 않는다면 원고지와 잉크, 펜을 파는 문구점이나 서점을 할 겁니다. 그렇게 문학 곁에서 서성거리면서 살 거예요.”

선생은 문학의 은혜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선 선생의 모든 지식은 문학을 통해서 왔다. 쓰기 위해서 독서를 했고, 독서를 해서 세상과 사람을 본다. 그것을 쓴다. 학창시절에는 가난 때문에, 분노 때문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공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문학이 있어서 책도, 논문도 읽게 되었다. 쓰고 싶은 소설의 자료조사를 위해 시작된 독서는 선생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공부하는 버릇이 들었다. 선생은 말한다.

“문학은 나에게 술을 사주었고, 너무나 많은 것을 베풀었다.”

이러한 마음이 《객주》 10권을 집필하고자 하는 원동력이다. 9권에서 일단 마무리한 《객주》의 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 그것은 이미 10권에 대한 암시인지도 모른다. 선생은 문학을 사랑하고 고마워한다. 어떤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명성을 얻었으면서 그 문학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에게는 그러한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다. 선생은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것이다. 《객주》를 10권으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욕은 이제 칠순을 넘겼지만 앞으로 팔순을 넘는 세월이 자신에게 주어진다면 좋은 소설을 서너 권은 더 남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작년에 멕시코의 한 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남미의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하는 노(老)작가를 보았지요. 그 양반 85세였어요. 여든 살이 넘어서 쓴 소설이 3권이 넘어요. 그때 소설가 이승우씨가 같이 있었는데, 그 역시 깜짝 놀라더군요. 소설은 일종의 근력 싸움이기도 해요. 나이가 들어서 소설을 못 쓰는 이유는 근력이 떨어져서이지요. 근력과 열정이 소설을 쓰게 합니다. 그걸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요, 혈압과 혈당이 높아져서 몸이 시달립니다. 그래서 저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약도 먹고 하면서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소설가는 노동자지요.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근력이 있어야 돼요. 글을 쓰기 위해 근력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나이가 들면, 어떤 작품을 쓰겠다고 벼르기만 하고, 정작 작품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작가는 펜을 놓는 그 순간까지 글을 써야지 벼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문단에 이병주 선생과 같은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글을 썼다. 선생은 요즘엔 그런 분들이 드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의 이러한 열정이 혹여, 타인의 눈에는 탐욕스럽게 비칠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욕심이 지나치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머릿속에서 뭔가 핑핑 돌아가고 근력과 손을 통해서 그것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예술의 중심은 문학

엄마에서 시작한 문학 이야기는 노작가의 열정, 작품에 대한 자세까지 이어졌다. 그의 삶 중심에는 문학이 있었다. 오늘날 문학의 위상에 대해 질문했다. 21세기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로 문학의 자리가 위태로운 것은 아닌가, 책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문학도 그 자리가 예전 같지가 않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선생은 대답했다.

“그래요. 전 모든 예술의 중심에는 문학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회화, 연극, 영화까지 말이지요. 이것들은 모두 문학의 주변예술이라고 생각했지요. 문학이 예술의 근간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축이라고 말이지요. 그런 시대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제 누군가 문학이 예술의 축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어요. 문학의 위치가 주변예술에 비해서 흔들리고 있는 거예요.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이창동은 소설가이고 유하는 시인이었지요. 아주 좋은 작가들이었어요. 그들이 문학이 아닌 영화에서 자리를 잡는 모습은 우리 시대 문학의 한 위상을 보여주는 거지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문학을 하는 이들의 경솔한 모습입니다. 결국 문학의 위기는 문학을 하는 이들이 자초한 거예요.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설익은 음식을 내는 식당에 손님이 찾아가겠습니까.”

문학을 설사하듯, 배설하듯 한다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당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런 설익은 작품들이 자꾸 나오면 독자들은 점점 문학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한 작품을 오래 생각하고 오래 머릿속에서 굴리고 해야 한다.

“적절한 지적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문학상이 너무 많아요. 그것이 문학작품을 남발하는 한 원인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마치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정부에서 대학을 정비하겠다고 하듯이 말이지요. 매체도 너무 많아요.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고 작가는 서둘러 작품을 쓰고 조급하게 발표하지요. 그런 모든 것이 문학의 자리를 흔드는 겁니다. 이제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단골 커피집에서 세상을 본다

다소 이야기가 무거워졌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선생은 근처의 냉면집으로 가자고 했다. 냉면집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 선생이 담배를 끊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군대에서 지급하던 화랑담배에서부터 시작한 흡연은 이내 하루 두세 갑을 피우는 골초로 만들었다. 작품을 쓰면서, 술을 먹으면서, 심심하면 한 대 한 대 또 한 대, 그러다 보니 65세쯤 되자 기침이 자주 나서 잠을 청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무슨 병에 걸렸나 싶어 병원에 가니 폐기종인데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진료를 한 의사가 매우 걱정을 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이다. 의사에게 금연을 해야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금연의지가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을 더 피웠다. 하루에 두 갑, 세 갑을 피운다는 말은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그냥 담배를 물고 산다는 이야기다. 몸에서 냄새가 나고, 기침이 나서 대화하기에도 불편했다. 그래도 피웠다.

“그런데 말이지요.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갈 일이 있었어요. 공항 흡연실에서 두 대를 피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그만 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금연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너무 몸이 아프니까 든 생각 같았어요. 그래서 공항의 재떨이에 담배와 라이터를 버리고 지금까지 한 대도 안 피웠습니다.”

물론 부작용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금연을 하고 3년 동안 원고를 못 쓴 것이다.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원고를 쓸 수가 없었다. 꿈에서도 담배가 나타나 유혹했다. 그래도 견뎠다. 결국 담배와 이별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고! 살찌고, 술을 더 많이 먹게 되더군요. 하하. 하지만 담배를 끊으니까 너무 컨디션이 좋아요. 아침에 일어날 때 상쾌하고.”

냉면집에서 식사 후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일어났다. 선생은 골목길로 가자면서 말했다.

“지금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가르쳐주는 겁니다. 출근해서 집필실에 있다가 여기 냉면집이나 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기 커피집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한 시간가량 마십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조금 앉아 있다가 청계천을 두 시간가량 산책하지요. 그리고 글 쓰고 어떤 날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십니다.”

선생의 단골 커피집에 앉았다. 선생이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여기에 앉아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말이지요. 재미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한 사람도 같은 옷이나, 비슷한 옷을 입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점심시간이 되면 이 골목에 식당이 많아서 굉장한 인파가 몰려드는데 한 사람도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없다는 거지요. 우리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비만인 사람이 많아요. 내가 북한에 한 보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말이지요, 북한에는 뚱뚱한 사람이 딱 두 사람 있어요. 나머지는 복장도 비슷하고 모두 말랐어요. 두 사람은 김정일과 그 아들이지요. 마른 사람들은 기동성이 좋지요. 빨리 움직이고.”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서울 장충동 사무실에서 소설을 집필 중인 김주영 작가의 모습.

뭔가 의미심장하다. 커피집에서 일어나 선생의 집필실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 물었다.

“저는 참 안타까워요. 안철수씨의 지지율이 60%, 아니 70%가 나와도 그것이 바로 투표로 이어지는 게 아니에요. 선거는 조직이라는 것이 있어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안철수씨와 같은 전문가는 더욱더 자신의 일에 매진해서 그 분야의 세계 최고가 되는 게 더 좋아요. 예를 들면 빌 게이츠와 같이 되는 거지요. 빌 게이츠가 정치한다고 하지 않잖아요.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면 간혹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린다는 거예요.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지요. 그렇게 가서 망가진 사람 많이 있어요.”

그런 현상은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에서 오는 것인데, 그럼 어떤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인가 물었다. 선생은 간단하게 말했다.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다면 참 좋은 일이지요. 유럽의 어떤 나라들은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요.”

김주영 선생에게 전업 작가의 길에 대해서 물었다. 어려운 시절, 글만 써서 생활을 한 선배 전업 작가가 후배 전업 작가에게 혹은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다. 선생은 우선 자신은 전업 작가로서 행운을 누린 경우라고 말했다. 많은 전업 작가가 힘들게 살고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소설가는 작가이기 전에 생활인이다. 선생은 작가의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돈에 대해서 집착하면 안 돼요. 생활이 어려우니까 돈 생각나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돈에 집착하면 안 돼요. 부작용이 생겨요. 사람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계산을 하게 되고 책이 안 나가면 불안하니까 또 자꾸 책을 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보다는 느리게 찬찬히 가야 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씩 내공을 쌓아가는 그런 인내심이 필요해요. 정말 돈을 만지고 싶다면 말입니다. 골프에 멀리 공을 보내려면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이 있어요. 필드에 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공이 멀리 안 나가요. 같은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쓸 때 멀리 보고 가는 거지요. 느리게 천천히 한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책을 냅니다.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많고 좋은 작품을 독자는 알아보지요. 저의 경우에도 최근에 낸 《빈집》과 같은 소설은 좀 서둘렀어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가요. 엄마》와 같은 경우에는 천천히 썼어요. 다 써놓고도 한참을 보고 또 보고 있어요. 베스트셀러, 상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해요. 오로지 작품에만 열중해야 합니다.”

많이 쓰기보다는 많이 읽어라

선생은 많이 쓰기보다는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어라,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문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풍습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 지적인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작가로서 오래가는 비법이지요.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경험이 자꾸 쌓이면 소설가로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권했다. 세상을 읽어야 책도 읽히는 법이니까, 그런 말을 하다가 이런 못을 박았다.

“작가는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이념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여기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기가 힘들어요. 보수냐 진보냐의 딜레마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념의 기준이 아니라, 작가 양심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념에 빠지다 보면 작가의 마음은 어느새 황무지가 됩니다.”

선생을 만나기 전에 인촌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객주》 10권을 쓴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리고 지역에서 제공해 준 집필실에서 집필을 한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작가에게 집필실은 어떤 의미일까?

“글 쓰는 일은 숨어서 하는 일이기도 해요. 많은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서 숨어버리지요. 전화, TV, 술자리가 방해 요인이 되기 때문이지요. 어떤 장소에서 완전히 세상과 멀어져서 작품에 몰두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객주》 10권을 집필한다 하니까, 고맙게도 울진 엑스포공원 내에 있는 군수 관사를 정비해서 집필실을 만들어줬지만, 그건 상주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료조사나 답사를 하면서 머무는 공간입니다. 물론 거기에서 몇 주 머물면서 글을 쓸 수도 있고요. 그런데 갑자기 이문구 선생이 생각나는군요. 이문구 선생은 한겨울에 난로도 없는 출판사 편집실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면서 자신을 찾아온 여러 명의 친구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철필에 잉크를 찍어서 원고를 썼지요.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잡담을 하면서 쓴 작품들이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 아닙니까. 나는 이문구 선생처럼 쓰지는 못하지만 작가에게 공간은 숨어서 쓰는 공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의 집필실에서 나와 혼자 조금 걸었다. 오래된 장충동의 식당들, 사람들이 분주했다. 아파트 5층 정도로 유독 키가 큰 나무 아래서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저 나무 말이지요. 내가 첨 봤을 때 내 키 정도였는데 저렇게 커버렸어요.”

나무를 바라보는데, 철필로 잉크를 찍어 쓰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한 사람, 불우한 사람, 그들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서 한 자 한 자 피를 찍어 쓰는 작가의 모습. 나무는 너무나 조용하게 자란다. 키 큰 선생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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