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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현장취재

국제사회에 울려 퍼진 北 인권 목소리

“점점 파렴치해지는 북·중·러 독재자들… 이젠 학대자들에 대항할 때”(힐렐 C. 노이어 유엔워치 상임이사)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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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권선언 75주년… 스위스 제네바서 25개 민간단체 주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 열려
⊙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 반체제 인사, 한입으로 ‘자유’ 외쳐
⊙ “시진핑 박해 막을 것은 국제사회 압박과 제재뿐”(지얄 로 박사)
⊙ 연단 오른 탈북민 한송미씨 “공개처형 강제 관람 후 탈북 결심”
⊙ 韓 국적 탈북민 제네바 연설 6년 만… 文 정권 때는 없었다
⊙ 케이시 라티그 FSI 대표, “국제사회에 北 인권 인식 높이는 계기”
탈북민 한송미씨가 지난 5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지현 기자
  배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밖에 나갈 땐 옷을 챙기고, 졸리면 눕는다. 당연한 일상이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당한 사람들. 전 세계엔 아직도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 개발, 탈레반 정권의 재집권, 중국의 소수민족 박해. 세계 곳곳에서 자행 중인 탄압 아래서다.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인 2023년에도 인권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핵심 과제다. 지난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인권이 화두였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홍콩, 신장(新疆), 티베트의 인권을 문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북한 정권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이를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소외했던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 떠올린 셈이다.
 
  이후 5월 22일 채택한 ‘한-EU’ 공동성명에서도 인권 문제를 부각했다. 두 정상은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굳건한 공약을 재확인한다”면서 ‘북한 내 인권 침해 및 유린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윤 정부는 지난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고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도 다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에는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 발간하기도 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차츰 집중되는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인권 문제의 바로미터가 되는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그 현장을 찾아 각국 인권 참상의 현주소를 짚고,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살펴봤다.
 
 
  “독재자들에게 책임 물어야”
 
기조연설을 맡은 힐렐 C. 노이어(Hillel C. Neuer) 유엔워치 상임이사. 사진=박지현 기자
  세계 곳곳에서 인권 탄압을 받은 이들은 매년 제네바에 모인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 참석을 위해서다. 인권재단(HRF)과 유엔워치(UN WATCH) 등 25개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 회의는 인권 피해자들이 연단에 올라 그들 입으로 직접 그 실태를 증언하는 자리다. 올해는 지난 5월 17일 제네바 국제회의센터(GICG)에서 열렸다.
 
  중국(중국·신장 위구르·티베트),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이란, 북한,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쿠바 등의 반체제 인사, 운동가, 정치범과 그들의 가족 및 외교관, 언론인까지 수백 명이 참석했다. 한국 언론은 본지가 유일했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힐렐 C. 노이어(Hillel C. Neuer) 유엔워치 상임이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인권 침해 대두로 1948년 유엔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독재자들과 권위주의자들은 하바나(쿠바)에서 하라레(짐바브웨), 니카라과, 북한, 모스크바(러시아), 베이징(중국)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파렴치해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세계 인류의 5분의 1인 15억 인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대륙 내 반체제 인사들을 징역 보내고, 티베트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강제 흡수 교육시키고 있으며, 아시아 민주주의의 마지막 전초기지인 홍콩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신장에서는 수백만 명의 위구르족들이 수용소에 갔습니다. 러시아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인들을 짓누르고 밤낮으로 폭격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선고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난에 허덕이는데, 독재자 김정은은 세계를 협박하기 위해 핵무기에 국가의 모든 돈을 퍼붓습니다.
 
  이 같은 독재 정권을 퍼지도록 내버려 두면 언젠가 큰 대가를 치릅니다. 독재자들은 서로 단결합니다. 우리도 이들에 대항해 단결해야 합니다.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세계인권선언의 약속을 현실로 끌어내고,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학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이번 회의가 변화의 촉매제가 되길, 억압에 맞서고 독재 정권에 도전하며, 모든 이가 마땅히 누릴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러·중·이란 연사들, 한목소리로 ‘자유’ 외쳐
 
왼쪽부터 피터 양(Peter Yang), 에브게니아(Evgenia), 시마 바바에이(Shima Babaei). 액자의 사진은 각각 아버지, 남편, 아버지. 사진=박지현 기자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이는 러시아 기자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Vladimir Kara-Murza)의 부인인 에브게니아(Evgenia)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남편을 대신해 나온 그는 “푸틴 정권이 옹호하는 거짓말, 폭정, 테러의 반대편에 선 남편이야말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면서 “남편의 멘토이자 친구인 보리스 넴초프가 생전 언급한 ‘자유의 비용은 크다’는 말을 요즘 수차례 곱씹게 된다”고 했다. 넴초프는 지난 2015년 크렘린 근교에서 암살당한 러시아 전 야당 지도자다.
 
  5년 전. 14세의 나이에 과감히 히잡을 벗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여 유명해진 이란 여성 시마 바바에이(Shima Babaei)도 이 자리에 섰다. 악명 높은 ‘에빈 감옥’ 독방에서 목숨을 건 탈옥 후 국경수비대의 총격을 피해 이란을 탈출, 국제사회에 이란의 인권 실태를 알리고 있다.
 
  시마 씨는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나라에서 왔다”면서 “우리는 체포, 고문, 돌팔매질, 채찍질, 투옥, 강간 및 처형이 난무해 ‘자유’란 찾아볼 수 없는,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독재자 중 하나에게 점령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슬람 반체제 인사인 아브라함 바바에이(Ebrahim Babaei)의 딸이다. 아브라함은 지난 2021년부터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시마 씨는 “오늘은 아버지가 실종된 지 513일째 되는 날”이라면서 “이슬람공화국에 의해 삶을 빼앗긴 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투옥된 아버지를 위해 나온 대학생 아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맨발의 변호사’로 알려진 인권 운동가 궈페이슝(Guo Feixiong)의 아들 피터 양(Peter Yang)이다. 양씨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12년간 수감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국제사회에 중공의 박해를 알릴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아버지가 감옥에서 고문당하는 동안 대장암 말기였던 어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켜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중국의 인권 운동가 양젠리(Yang Jianli) 씨는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중국 내 인권 침해는 폭증하고 있다”면서 “그의 통치하에서 전에 없던 거대한 인권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고 했다.
 
 
  티베트 문화 근절하는 중국
 
  중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티베트 내 학교를 체계적으로 없애고 중앙 집중식 기숙학교로 대체했다. 티베트의 정체성과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방책이다. 티베트 출신 지얄 로(Gyal Lo) 박사는 “기숙학교뿐만 아니라 기숙유치원도 존재한다”고 했다.
 
  “기숙유치원에 간 4세, 5세짜리 아이들은 티베트어를 하지 못합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못해요. 마치 외국에서 자란 아이가 됩니다. 중국공산당은 티베트 아이들이 중국인이 되도록 강요합니다. 정원사가 땅에서 나무를 뜯어내는 것처럼 중국공산당은 우리를 근절하기 위해 티베트의 문화적 뿌리를 캐내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계속된다면 5000년 된 티베트 문명은 끝날 겁니다.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을 막을 것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뿐입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NGO 활동을 하는 마리-클레어 카크포티아(Marie-Claire Kakpotia)는 ‘할례(FGM·Female genital mutilation)’가 단지 서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그 역시 할례 피해자다.
 
  2020년 NGO를 설립해 FGM 생존자를 무상 치료 중인 그는 “유럽에만 강제 시술 피해자가 50만 명에 달한다”면서 “이것이 서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주변에 알려달라”고 했다.
 
  이 밖에도 이날 최연소 강연자였던 16세의 아프가니스탄 소녀 닐라 이브라히미(Nila Ibrahimi)와 체 게바라 경호원의 손자이자 망명을 강요당한 쿠바의 언론인인 아브라함 히메네스 에노아(Abraham Jiménez Enoa) 등의 연사들이 한목소리로 ‘자유’의 가치를 역설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연사들에게는 약 8분씩이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울림은 길었다.
 
 
  “정부, 지원 많이 해줬다”
 
  이런 무대에 탈북민도 섰다. 한송미(30)씨다. 힐렐 노이어 상임이사는 “한씨는 가난과 억압이 만연하고, 수용소에서는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북한에서 간신히 탈출한 생존자 중 한 명으로, 북한 정권을 상대로,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한씨는 “이렇게 큰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고 했다. “특히 한국 정부(주제네바대한민국대표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 자리라 어깨가 더 무겁다”고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뒤로 약 600명의 청중이 보였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대본은 이미 해져 있었다. 드디어 돌아온 차례, 트위드 소재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한씨가 총총히 연단으로 올라섰다. 관중은 일제히 집중했다. 첫마디는 이랬다.
 
  “엄마는 제게 두 번의 삶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1993년, 저를 낳았을 때이고 두 번째는 2011년 북한에서 저를 구출했을 때입니다. 제 삶에 영웅이 있다면, 바로 그녀입니다.”
 
  제네바로 출발하던 날, 새벽. 딸을 배웅하러 인천공항에 온 한씨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몸조심하고 잘 하고 오래이”라며 연신 다 큰 딸의 손을 매만지던 그였다.
 
  한씨는 한때 북한에 홀로 남겨졌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먼저 탈북했고, 그는 이모 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이후부터는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나무를 베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저를 버린 줄 알지는 않았을까. 한씨가 말을 이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최악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북한의 어머니들은 용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제 이름은 한송미입니다. 저는 북한의 한 시골,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제가 3세 때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이는 이제 돈도, 먹을 것도, 살 곳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엄마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일을 하고 계셨는데, 과수원 주인은 2년 동안 우리가 삶은 풀을 먹고, 소들과 함께 헛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청중석 곳곳서 눈물
 
약 600명의 청중이 한송미씨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관객은 눈물을 훔쳤다. 사진=박지현 기자
  어머니가 탈북한 건 한송미씨가 12세 때였다. ‘꼭 다시 오겠다’며 한씨에게 곱셈표를 건넨 엄마는 ‘돌아오면 시험을 볼 테니 공부하고 있으라’고 했다. 구구단을 몇 번이고 외웠지만, 약속한 날에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했어요. ‘엄마는 어디 있는 거지?’ 그때 저는 이모 댁에 살고 있었는데, 기차소리가 들리면 역으로 달려가곤 했어요.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이렇게 생긴 여자를 본 적이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 아이는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차역은 노숙(露宿)하는 아이들로 가득했어요.”
 
  어느 날 엄마로부터 편지가 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와 삼촌은 아사(餓死)했고 또 다른 삼촌은 기차로 투신했습니다. 길에는 죽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 번 굶어 죽을 뻔했고,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제게 중개인(브로커)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그때마다 이모는 ‘중국에서 팔려가거나, 장기 적출을 당할 것’이라고 했고, 저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이 메었다. 청중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송미씨는 15세 때 처음으로 공개처형을 본 이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이를 지켜보는 게 의무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앞줄에 서야 했어요. 처형당한 여성의 남편과 4세짜리 아이도 그 광경을 봐야 했습니다. 줄에 묶인 여성은 세 번이나 총을 맞았습니다. 총격 이후 앞으로 굴러 떨어지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딸 구하려 中 남성에게 스스로 팔려간 엄마
 
  끔찍한 경험은 이듬해에도 해야 했다. 이번에는 22세의 청년. 한국 영화 CD를 팔았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17세가 되던 해, 북한에는 미래가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몇 년 전 엄마가 보낸 중개인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중국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중개인과는 떨어져 앉아야 했습니다. 한 정거장에서 경비원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혜산에 있는 할머니에게 간다고 하자, ‘중국에 가는 거지?’라며 저를 때리고, 발로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길로 하차해야 했고, 내린 기차역에서 다른 경비원은 저를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힘겹게 밀쳐내고 달렸습니다. 그러자 한 무리의 군인이 보였습니다. 제발 도와달라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할 동전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공중전화를 찾은 그는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를 만나 북·중 접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이따금씩 총알들이 발치에 떨어졌다. 중국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씨는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11년 5월 20일, 한국 땅을 밟았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단연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첫마디는 ‘왜 이렇게 키가 작은 거야’였죠. 저는 평생 굶다가 겨우 150cm가 됐거든요. 제가 이 연설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가 일기장을 보여줬습니다. 2006년 8월 26일. 저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던 엄마는 중국 남성에게 스스로를 팔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 한국으로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북한에는 먼저 탈북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늘 아이들이 있다고요. 어머니들은 그 끔찍한 정권으로부터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요.”
 
 
  “더 많은 탈북민 이 자리 서길”
 
2023년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에 참석한 연설자들. 사진=박지현 기자
  ‘김정은은 독재자고, 북한 정권은 악마다.’ 한송미씨는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직접 겪은 일상을 덤덤히 털어놨을 뿐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 일상 자체가 너무도 비일상적이라서다.
 
  청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작게 환호를 지르는 이도 있었다. 일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행사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쏭미한’을 찾았다. 몇몇 연사는 작은 한씨를 꼭 안아줬다. “자유를 향한 용기를 높이 산다”면서다.
 
  한송미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자녀들이 먼저 탈북한 부모의 사랑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계기로 북한 인권의 실상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고, 다른 여러 탈북민에게도 이 자리에 적극 참여하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연 이후 한씨는 제네바 국제회의센터를 찾은 제네바 최초의 국제학교인 에콜린트 스쿨(Ecolint school)과 추크 루체른 국제 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Zug and Luzern) 학생들 30명을 대상으로 별도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
 
 
  FSI, 탈북민 국제무대에 세워
 
탈북민인 한씨가 국제무대에 선 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가 있어서 가능했다. 왼쪽부터 이은구 대표, 한송미씨,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gue Jr.) 대표. 사진=박지현 기자
  인권은 북한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정과 명망, 존중에 목마른 김정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은 탈북민은 독재 정권의 실상을 폭로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다. 탈북민이 국제무대에 서는 건 그래서 큰 의미다. 그런데 탈북민에게 영어는 커다란 장벽이다.
 
  탈북민인 한송미씨가 국제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가 있어서 가능했다. 지난 2014년부터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던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의 후신(後身)이다.
 
  2020년 재탄생한 FSI는 단순한 영어 교육 기관이 아니다. 탈북민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국제사회에 영어로 알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영어 연설과 영문 자서전 출판을 통해서다. TNKR 시절부터 FSI와 연을 맺은 한씨는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 국제무대에까지 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영문 자서전인 《Greenlight to Freedom(자유를 향한 청신호)》도 펴냈다. 한국에서 가져간 한씨의 저서도 현지에서 상당한 인기였다.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 gue Jr.)와 이은구 FSI 공동대표는 일정 내내 한씨 옆에서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라티그 대표는 워싱턴 DC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에서 경제적 약자, 흑인들의 교육권을 위한 교육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교육 전문가다. 2010년 자유기업원(CFE)에서 일하며 한국에 둥지를 틀었고 2012년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을 계기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민단체 프리덤 팩토리의 국제협력실장과 탈북자학교인 물망초학교에서 국제협력자문위원도 지냈다.
 

  라티그 대표는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킨 송미가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FSI는 앞으로도 여러 탈북민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 공동대표는 이날 참석한 세계 곳곳의 NGO 관계자들과 부지런히 교류하며 향후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라티그 대표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히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적 움직임’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회의에서 교류한 세계인들과 함께 북한 인권 관련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은구 대표는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와 국제학교 강연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탈북민이 국제사회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FSI는 오는 7월에도 7명의 탈북민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6년 만에 연단 오른 韓 국적 탈북민
 
제네바 국제회의센터(GICG) 내부에는 직전 해 연설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은 2022년 연단에 오른 탈북민 티모시 조 씨. 사진=박지현 기자
  올해로 15회째.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에서 북한 인권은 빼놓지 않고 다룬 주제다. 그러나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한국 국적’의 탈북민이 연단에 오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했던 전 정부 영향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작년에는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티모시 조 씨가 참석했다. 두 번의 탈북과 네 번의 수감 생활을 증언한 그는 “고문과 기아로 죽은 수감 동료들이 동물 시체처럼 내버려졌다”면서 “아직도 그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애원하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2021년에도 영국에 거주 중인 탈북민이 연사로 나섰다. 박지현씨다. 박씨는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조직에게 성노예로 팔려가고, 강제 송환된 후 노동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경험을 알렸다. 2018~2020년 세해에는 탈북민 연사가 아예 없었다.
 
  다만 2018년에는 선교 활동을 갔다가 북한에 억류당했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Kenneth Bae) 씨와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웜비어의 부모가 참석해 북한 정권을 규탄했다. 배씨는 “나는 억류된 2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북한의 2500만 주민들은 지난 70년 동안 자유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오토웜비어의 모친인 신디 웜비어는 “북한은 전 세계 모든 정권 중에서 가장 끔찍한 정권”이라고 했고,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는 “우리 가족을 1년 반 동안 인질로 잡은 북한은 지금 국제사회를 상대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 이전에는 북한의 대외보험총국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17),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원 출신인 이영국씨(2016), 2014년 영국 BBC 선정 ‘세계 100대 여성’에 뽑힌 북한 인권 활동가 박연미씨(2015), 북한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 출신 안명철씨(2014)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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