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사회 불만 청년들 모아 조직한 ‘속도전청년돌격대’
⊙ 모든 공사 현장 동원… 95% 인력으로 작업
⊙ “노동 현장서 사고당하면 ‘개죽음’”
⊙ 강제로 끌려나간 여성들 성폭행 일상
⊙ 모든 공사 현장 동원… 95% 인력으로 작업
⊙ “노동 현장서 사고당하면 ‘개죽음’”
⊙ 강제로 끌려나간 여성들 성폭행 일상
-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016년 9월 16일 함경북도 무산지구 홍수 피해 현장에서 철도 선로 복구작업에 나선 청년돌격대원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5월 4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평양 건설사업에 1년 사이에 2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20만 명이 넘는 군인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공사장으로 나왔다고 선전했다.
현실은 달랐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평양 살림집 건설 현장이나 고속도로, 발전소 등 다양한 건설 현장에 청년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북한 당국은 청년들에게 ‘속도전청년돌격대’ ‘청년돌격대’라는 이름을 붙여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다.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김정일이 1974년 3월 청년동맹 전원회의에서 청년들이 속도전 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조한 후 조직됐다. 이들은 이후 북한의 주요 도로, 기업 공장, 산업, 문화시설 등 건설 현장을 담당해왔다.
청년돌격대와 속도전청년돌격대 외에도 북한은 1978년 2월부터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각 전문 분야별로 ‘2.17 과학자·기술자 돌격대’ 등을 조직해 생산 현장에 파견했는데, 북한 당국은 이들이 기술혁신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고 선전했다. 1980년 1월 조직된 ‘5.19 과학기술혁신 돌격대’는 같은 해 11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4.15 기술혁신돌격대’로 확대·개편돼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희천공작기계공장’에 최초로 파견된 이후 자체적인 신기술 개발 및 생산공정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이 밖에도 1990년대 강원도에서 청년수원지와 원산수력발전소, 원산역 건설 등을 담당했던 ‘강원도 7월 31일 청년돌격대’와 1991년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함경남도 함흥~부전 간 철도전기화 공사를 위해 구성된 ‘9월 6일 청년돌격대’, 2000년대 초반 평남북부탄전 개천지구 탄광 산하 무진대청년탄광의 새 탄층 개발에 이바지했다는 ‘12.1 청년돌격대’, 2001년 신의주시 주택 건설 과정에서 시설물 공사에 참여한 ‘6월 24일 청년돌격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에 투입돼 성과를 도출했다는 ‘9.18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등이 있다.
김정은 시대에도 청년돌격대는 산업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삼수발전소 및 고산과수농장 건설 현장 등에 투입돼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6.18 건설돌격대’, 2012년 창설돼 세포 등판 건설 현장 등에 투입된 ‘9.22 건설돌격대’, 2015년 평안북도와 황해북도 토지정리 사업에 참여했던 ‘토지정리돌격대’ 등이 있다.
군대식 조직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들이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직속 기관인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지도국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중앙의 청년돌격대 지도국 산하 14개 여단과 지방에 각 도 청년동맹 지방위원회 산하 11개 여단 등 총 25개 여단이 있다.
지휘부에는 대열, 재정, 시공, 안전, 후방(후생), 자재, 운수 부서와 참모 등이 있으며 기동예술선전대와 군의소도 있다. 여단 예하는 대대, 중대, 소대 등 군대식으로 편성돼 있고, 대원들의 직급도 전사(戰士)에서 대좌(대령)까지 군사 칭호를 부여한다.
이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군사 조직과 같이 운영하며 제복을 입는다. 제복 왼쪽 앞가슴 김일성 배지 아래 직급 표식이 있으며, 1990년부터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현역 중좌 1명을 각 여단에 군사지도원으로 배치, 1개월에 10일씩 사격술, 총검술, 100리 행군 등 정규군 못지않은 군사훈련 또한 받고 있다.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깡패 집단”
이곳에 입대하는 청년들은 대부분이 군에 입대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들은 자원입대보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끌려가는 경우다. 부모, 형제가 없는 고아 출신의 청년들도 대개 이곳으로 보낸다.
전국 각지 문제의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서 걸핏하면 싸움을 하고, 도둑질, 강도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다.
속도전청년돌격대 중앙선전선동부 간부 출신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거의 깡패 집단이다”면서 “같은 부대끼리도 싸우지만, 공사 현장에서 매일같이 다른 부대와 싸움을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들은 싸우는 것 외에도 공사장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면서 “주민들은 속도전청년돌격대원들이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부터 한다”고 했다.
속도전청년돌격대원이었던 한 탈북민은 “내가 속했던 부대는 대부분이 실제 깡패 출신들이었다”면서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기 전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깡패 놀이를 하던 청년들이 한꺼번에 같은 소대나 중대로 입대할 수가 있다. 이들이 돌격대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과거를 씻고 착실하게 살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이들이 한번 싸우면 굉장하다. 대부분 패싸움을 하는데 다른 부대나 현역 군인들과 싸운다”면서 “삽과 곡괭이는 기본이고 손에 들리는 건 뭐든 들고 싸운다. 또한 이들이 주둔하는 반경 몇 km 지역의 민가에는 식량 한 톨, 처녀 한 명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약탈이나 강간 등 온갖 범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공사 현장서 등짐으로 시멘트, 벽돌 날라”
한국에서 공사 현장에 가보면 대형 기중기, 굴착기 등 다양한 중장비들이 공사를 진행한다. 물론 인력도 동원되지만 대부분 기계가 힘든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북한은 정반대다. 북한 공사 현장에서는 중장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돌격대로 공사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 모두가 북한의 공사는 모두 사람이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평양 아파트 건설 현장같이 TV에 나오는 공사 현장은 기계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냥 선전용으로 그 이면에 사람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아파트 공사 현장에 모래와 시멘트, 돌을 운반하는 일부터 모두 사람이 등짐으로 나른다. 우리의 경우 보통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작업은 레미콘이 한다. 하지만 북한은 긴 철판을 펼쳐놓고 그 위에 모래와 시멘트를 붓고 사람이 삽으로 섞는다.
박상학 대표는 “북한 공사장에서는 건설장비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인력으로 한다. 아마 아파트를 짓는 데 98%는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에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로 7년간 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던 탈북민 안성씨는 “북한의 공사 현장은 모든 것이 열악하다. 중장비가 없어 사람이 등짐으로 시멘트나 100kg이 넘는 돌을 날라야 한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거운 돌을 등짐으로 옮기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실제 돌에 깔려 죽은 사람도 있다”라고 증언했다.
622돌격대에서 6년간 일을 해온 이재희씨는 “돌격대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어려운 환경도 있지만 먹지 못하는 것과 모든 것을 등짐과 들것으로 날라야 했던 것”이라며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도 들고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도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인정했다. 《로동신문》은 2013년 ‘마식령속도’ 발표 100일을 맞아 관련 사진을 게재하면서 “산세가 가팔라서 사람도 발을 붙이기가 어려운 산비탈로 수십 톤의 물과 120톤의 골재를 등짐으로 져 날라 공사를 보장했다”고 선전한 바 있다.
돌격대원들 먹을 것 없어 대낮에 강도질까지
북한 속도전청년돌격대와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이들에게 ‘돌격대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서로 다른 소속에 다른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똑같이 겪었던 어려움은 ‘배고픔’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군대와 같은 조직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먹을 식량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원한다. 돌격대로 공사 현장에 참가했던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도전청년돌격대가 각종 공사 현장으로 파견되면 중앙에서 각 연대나 대대 단위로 1년 치 식량을 공급한다. 보급되는 식량은 당연히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정해진 배급량 대로만 돌격대원들에게 배급해도 굶지는 않는다고 한다.
중앙으로부터 식량이 도달하면 연대, 대대장들이 식량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들은 대원들의 식량을 빼돌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채운다. 이들이 하는 수법은 간단하다. 중앙에서 보급한 쌀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서 식량창고에 넣고 남는 돈을 챙긴다. 북한에서 쌀과 옥수수 가격은 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거의 3~4배 차이가 난다.
또한 간부들은 필요할 때마다 부대 식량 창고에서 옥수수를 빼내 시장에 팔아 현금으로 바꿔 사용하기도 한다. 당연히 대원들에게 갈 식량은 계속 줄어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대나 소대별로 대대에 식량을 받으러 가는데 중대장과 소대장이 중간에서 식량을 빼돌린다.
안성씨는 “여기저기서 식량을 다 빼돌리고 나면 정작 대원들에게 차례지는 양은 거의 없다”면서 “공사 현장에 동원되면 초반에는 그나마 쌀알이 조금 섞인 옥수수밥을 먹는다. 그러다 점점 쌀이 사라지고 그냥 옥수수만 보이다 이후 식사량마저 조금씩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재희씨는 “6년간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배고픔이었다”면서 “힘든 일을 하면서 최소한 하루 세끼는 먹어야 하는데 하루 한 끼 먹고 일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대원들이 처음 공사 현장에 나올 땐 간식이라든지 자신에게 필요한 비상식량을 조금씩 마련해서 나온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되겠나”면서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두워지면 막사를 몰래 빠져나와 민가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이어 “대원들이 민가로 내려가 외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외상값을 갚을 길 없는 대원들은 도둑질을 하게 된다”면서 “밤만 되면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면서 곡식, 가축 등 닥치는 대로 훔친다”고 덧붙였다.
밤낮 가리지 않고 도둑질을 하는 것은 다반사고 대낮에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질까지 일삼는다고 한다.
하루에도 열 명씩 죽어나가
이처럼 속도전청년대원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매일 살인적인 작업량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씩 쓰러지는 사람이 발생한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목숨까지 잃는 이들도 있다.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해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돌이나 흙을 옮기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깔려 사망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물론 공사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고들이 왕왕 발생한다. 그때마다 안전 장비가 제대로 없는 북한에서는 곧바로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공사 현장에서 하루에만 열댓 명씩은 죽어나가는 곳이 북한 공사 현장이다.
하지만 죽은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없다. 시신 처리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그곳에 그냥 묻어버린다고 한다.
안씨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하루 20명 가까이 됐다. 겨울에는 죽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신을 고향에 보내주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그걸 다 보내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으면 개죽음이다. 누구 하나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가끔 국가에서 훈장을 주긴 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그 훈장도 아무 의미 없다”고 했다.
북한 각지의 공사 현장에 동원되는 여성 돌격대원들은 배고픔뿐만 아니라 성범죄에도 노출된다. 여성 돌격대원 대부분이 권력을 쥔 돌격대 간부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돌격대 간부들은 여성 대원들을 특별히 돌봐주는 듯 접근하거나 먹을 것을 몰래 주겠다고 유혹한 뒤 자신의 방으로 불러내 성폭행을 한다. 여성들은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다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하면 완전히 넋이 나가 저항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열악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여성들은 권력에 의한 성범죄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에게 작업 제외, 추가 식량 지급 등의 편의를 제공해주면서 지속해서 성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의 2020년 8월 21일 자 보도에 따르면, 북한 평양~만포~혜산 내륙선 북부철길 공사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이 상급자의 지속적인 성폭행에 치욕스러움을 느끼고 자살했다.
해당 매체는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부철길 신(新)공사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 주민이 2020년 8월 초순 돌격대 지휘부 상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까지 하게 되자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함경북도 새별군이 고향인 22세의 이 여성은 오랫동안 돌격대에서 일하다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년 전 19세의 나이로 돌격대에 자원해 들어왔다.
스스로 성 상납 하기도
이런 가운데 일부 여성은 편의를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성을 상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강도 백암군 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던 강은미씨는 “간부들은 여성 돌격대원 중에서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을 선발해서 자신의 비서로 일을 시킨다”면서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보좌하는 목적으로 그 여성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춥고 배고픈 나머지 먹을 것을 얻고, 편한 일자리로 옮기기 위해 간부들에게 몸을 바치는 여성도 있다”면서 “가혹한 노동 환경에 견디기 어려워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안씨는 “이러한 성폭행 문제는 북한 주민들도 다 알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돌격대에 갔다 온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상황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에 더해 오히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달랐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평양 살림집 건설 현장이나 고속도로, 발전소 등 다양한 건설 현장에 청년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북한 당국은 청년들에게 ‘속도전청년돌격대’ ‘청년돌격대’라는 이름을 붙여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다.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김정일이 1974년 3월 청년동맹 전원회의에서 청년들이 속도전 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조한 후 조직됐다. 이들은 이후 북한의 주요 도로, 기업 공장, 산업, 문화시설 등 건설 현장을 담당해왔다.
청년돌격대와 속도전청년돌격대 외에도 북한은 1978년 2월부터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각 전문 분야별로 ‘2.17 과학자·기술자 돌격대’ 등을 조직해 생산 현장에 파견했는데, 북한 당국은 이들이 기술혁신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고 선전했다. 1980년 1월 조직된 ‘5.19 과학기술혁신 돌격대’는 같은 해 11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4.15 기술혁신돌격대’로 확대·개편돼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희천공작기계공장’에 최초로 파견된 이후 자체적인 신기술 개발 및 생산공정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이 밖에도 1990년대 강원도에서 청년수원지와 원산수력발전소, 원산역 건설 등을 담당했던 ‘강원도 7월 31일 청년돌격대’와 1991년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함경남도 함흥~부전 간 철도전기화 공사를 위해 구성된 ‘9월 6일 청년돌격대’, 2000년대 초반 평남북부탄전 개천지구 탄광 산하 무진대청년탄광의 새 탄층 개발에 이바지했다는 ‘12.1 청년돌격대’, 2001년 신의주시 주택 건설 과정에서 시설물 공사에 참여한 ‘6월 24일 청년돌격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에 투입돼 성과를 도출했다는 ‘9.18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등이 있다.
김정은 시대에도 청년돌격대는 산업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삼수발전소 및 고산과수농장 건설 현장 등에 투입돼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6.18 건설돌격대’, 2012년 창설돼 세포 등판 건설 현장 등에 투입된 ‘9.22 건설돌격대’, 2015년 평안북도와 황해북도 토지정리 사업에 참여했던 ‘토지정리돌격대’ 등이 있다.
군대식 조직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들이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직속 기관인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지도국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중앙의 청년돌격대 지도국 산하 14개 여단과 지방에 각 도 청년동맹 지방위원회 산하 11개 여단 등 총 25개 여단이 있다.
지휘부에는 대열, 재정, 시공, 안전, 후방(후생), 자재, 운수 부서와 참모 등이 있으며 기동예술선전대와 군의소도 있다. 여단 예하는 대대, 중대, 소대 등 군대식으로 편성돼 있고, 대원들의 직급도 전사(戰士)에서 대좌(대령)까지 군사 칭호를 부여한다.
이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군사 조직과 같이 운영하며 제복을 입는다. 제복 왼쪽 앞가슴 김일성 배지 아래 직급 표식이 있으며, 1990년부터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현역 중좌 1명을 각 여단에 군사지도원으로 배치, 1개월에 10일씩 사격술, 총검술, 100리 행군 등 정규군 못지않은 군사훈련 또한 받고 있다.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깡패 집단”
이곳에 입대하는 청년들은 대부분이 군에 입대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들은 자원입대보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끌려가는 경우다. 부모, 형제가 없는 고아 출신의 청년들도 대개 이곳으로 보낸다.
전국 각지 문제의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서 걸핏하면 싸움을 하고, 도둑질, 강도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다.
속도전청년돌격대 중앙선전선동부 간부 출신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거의 깡패 집단이다”면서 “같은 부대끼리도 싸우지만, 공사 현장에서 매일같이 다른 부대와 싸움을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들은 싸우는 것 외에도 공사장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면서 “주민들은 속도전청년돌격대원들이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부터 한다”고 했다.
속도전청년돌격대원이었던 한 탈북민은 “내가 속했던 부대는 대부분이 실제 깡패 출신들이었다”면서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기 전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깡패 놀이를 하던 청년들이 한꺼번에 같은 소대나 중대로 입대할 수가 있다. 이들이 돌격대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과거를 씻고 착실하게 살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이들이 한번 싸우면 굉장하다. 대부분 패싸움을 하는데 다른 부대나 현역 군인들과 싸운다”면서 “삽과 곡괭이는 기본이고 손에 들리는 건 뭐든 들고 싸운다. 또한 이들이 주둔하는 반경 몇 km 지역의 민가에는 식량 한 톨, 처녀 한 명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약탈이나 강간 등 온갖 범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공사 현장서 등짐으로 시멘트, 벽돌 날라”
한국에서 공사 현장에 가보면 대형 기중기, 굴착기 등 다양한 중장비들이 공사를 진행한다. 물론 인력도 동원되지만 대부분 기계가 힘든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북한은 정반대다. 북한 공사 현장에서는 중장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돌격대로 공사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 모두가 북한의 공사는 모두 사람이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평양 아파트 건설 현장같이 TV에 나오는 공사 현장은 기계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냥 선전용으로 그 이면에 사람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아파트 공사 현장에 모래와 시멘트, 돌을 운반하는 일부터 모두 사람이 등짐으로 나른다. 우리의 경우 보통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작업은 레미콘이 한다. 하지만 북한은 긴 철판을 펼쳐놓고 그 위에 모래와 시멘트를 붓고 사람이 삽으로 섞는다.
박상학 대표는 “북한 공사장에서는 건설장비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인력으로 한다. 아마 아파트를 짓는 데 98%는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에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로 7년간 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던 탈북민 안성씨는 “북한의 공사 현장은 모든 것이 열악하다. 중장비가 없어 사람이 등짐으로 시멘트나 100kg이 넘는 돌을 날라야 한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거운 돌을 등짐으로 옮기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실제 돌에 깔려 죽은 사람도 있다”라고 증언했다.
622돌격대에서 6년간 일을 해온 이재희씨는 “돌격대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어려운 환경도 있지만 먹지 못하는 것과 모든 것을 등짐과 들것으로 날라야 했던 것”이라며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도 들고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도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인정했다. 《로동신문》은 2013년 ‘마식령속도’ 발표 100일을 맞아 관련 사진을 게재하면서 “산세가 가팔라서 사람도 발을 붙이기가 어려운 산비탈로 수십 톤의 물과 120톤의 골재를 등짐으로 져 날라 공사를 보장했다”고 선전한 바 있다.
북한 속도전청년돌격대와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이들에게 ‘돌격대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서로 다른 소속에 다른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똑같이 겪었던 어려움은 ‘배고픔’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속도전청년돌격대는 군대와 같은 조직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먹을 식량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원한다. 돌격대로 공사 현장에 참가했던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도전청년돌격대가 각종 공사 현장으로 파견되면 중앙에서 각 연대나 대대 단위로 1년 치 식량을 공급한다. 보급되는 식량은 당연히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정해진 배급량 대로만 돌격대원들에게 배급해도 굶지는 않는다고 한다.
중앙으로부터 식량이 도달하면 연대, 대대장들이 식량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들은 대원들의 식량을 빼돌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채운다. 이들이 하는 수법은 간단하다. 중앙에서 보급한 쌀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서 식량창고에 넣고 남는 돈을 챙긴다. 북한에서 쌀과 옥수수 가격은 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거의 3~4배 차이가 난다.
또한 간부들은 필요할 때마다 부대 식량 창고에서 옥수수를 빼내 시장에 팔아 현금으로 바꿔 사용하기도 한다. 당연히 대원들에게 갈 식량은 계속 줄어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대나 소대별로 대대에 식량을 받으러 가는데 중대장과 소대장이 중간에서 식량을 빼돌린다.
안성씨는 “여기저기서 식량을 다 빼돌리고 나면 정작 대원들에게 차례지는 양은 거의 없다”면서 “공사 현장에 동원되면 초반에는 그나마 쌀알이 조금 섞인 옥수수밥을 먹는다. 그러다 점점 쌀이 사라지고 그냥 옥수수만 보이다 이후 식사량마저 조금씩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재희씨는 “6년간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배고픔이었다”면서 “힘든 일을 하면서 최소한 하루 세끼는 먹어야 하는데 하루 한 끼 먹고 일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대원들이 처음 공사 현장에 나올 땐 간식이라든지 자신에게 필요한 비상식량을 조금씩 마련해서 나온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되겠나”면서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두워지면 막사를 몰래 빠져나와 민가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이어 “대원들이 민가로 내려가 외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외상값을 갚을 길 없는 대원들은 도둑질을 하게 된다”면서 “밤만 되면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면서 곡식, 가축 등 닥치는 대로 훔친다”고 덧붙였다.
밤낮 가리지 않고 도둑질을 하는 것은 다반사고 대낮에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질까지 일삼는다고 한다.
하루에도 열 명씩 죽어나가
이처럼 속도전청년대원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매일 살인적인 작업량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씩 쓰러지는 사람이 발생한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목숨까지 잃는 이들도 있다.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해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돌이나 흙을 옮기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깔려 사망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물론 공사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고들이 왕왕 발생한다. 그때마다 안전 장비가 제대로 없는 북한에서는 곧바로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공사 현장에서 하루에만 열댓 명씩은 죽어나가는 곳이 북한 공사 현장이다.
하지만 죽은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없다. 시신 처리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그곳에 그냥 묻어버린다고 한다.
안씨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하루 20명 가까이 됐다. 겨울에는 죽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신을 고향에 보내주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그걸 다 보내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으면 개죽음이다. 누구 하나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가끔 국가에서 훈장을 주긴 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그 훈장도 아무 의미 없다”고 했다.
북한 각지의 공사 현장에 동원되는 여성 돌격대원들은 배고픔뿐만 아니라 성범죄에도 노출된다. 여성 돌격대원 대부분이 권력을 쥔 돌격대 간부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돌격대 간부들은 여성 대원들을 특별히 돌봐주는 듯 접근하거나 먹을 것을 몰래 주겠다고 유혹한 뒤 자신의 방으로 불러내 성폭행을 한다. 여성들은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다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하면 완전히 넋이 나가 저항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열악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여성들은 권력에 의한 성범죄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에게 작업 제외, 추가 식량 지급 등의 편의를 제공해주면서 지속해서 성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의 2020년 8월 21일 자 보도에 따르면, 북한 평양~만포~혜산 내륙선 북부철길 공사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이 상급자의 지속적인 성폭행에 치욕스러움을 느끼고 자살했다.
해당 매체는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부철길 신(新)공사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 주민이 2020년 8월 초순 돌격대 지휘부 상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까지 하게 되자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함경북도 새별군이 고향인 22세의 이 여성은 오랫동안 돌격대에서 일하다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년 전 19세의 나이로 돌격대에 자원해 들어왔다.
스스로 성 상납 하기도
이런 가운데 일부 여성은 편의를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성을 상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강도 백암군 발전소 건설에 동원됐던 강은미씨는 “간부들은 여성 돌격대원 중에서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을 선발해서 자신의 비서로 일을 시킨다”면서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보좌하는 목적으로 그 여성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춥고 배고픈 나머지 먹을 것을 얻고, 편한 일자리로 옮기기 위해 간부들에게 몸을 바치는 여성도 있다”면서 “가혹한 노동 환경에 견디기 어려워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안씨는 “이러한 성폭행 문제는 북한 주민들도 다 알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돌격대에 갔다 온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상황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에 더해 오히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