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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원 납북자 카드 입수

“‘풍복호’ 미리 잠복한 간첩이 北으로 유인한 듯”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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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군인들 이미 아버지 이름 알고 있어”
⊙ 납북자 중 1명 1970년대 한국서 간첩활동하다 체포
⊙ 납북자 최원모, 6·25전쟁 당시 켈로부대원으로 활동
1967년 6월 북한군에 납북된 ‘풍복호’ 선주 최원모씨(원 안)다. KLO8240 유격백마부대 활동 당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북한은 6·25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남한 주민을 납치해 북한에 억류해왔다. 납북 사건은 특히 남북한 대결이 치열했던 시기인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통일부에 의하면 북한이 지금까지 납치한 남한 국민은 총 3835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현재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수를 516명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납북자의 대부분은 어부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2008년 최초 작성된 ‘납북 사건 관리 카드’
 
2008년 국정원이 작성한 풍복호 최원모 선주의 ‘납북 사건 관리 카드’다. 사진=납북자가족모임
  최근 기자는 납북자 관련 취재를 하던 중 국가정보원이 2008년 작성한 ‘납북 사건 관리 카드’를 입수했다. 납북 사건 관리 카드에는 1967년 6월 4일 오후 6시경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 중이던 ‘풍복호’가 다음 날인 6월 5일 오전 8시경 북한 무장선 10여 척에 포위당해 총격을 받고 납북됐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당시 ‘풍복호’에는 최원모 선주와 7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풍복호’가 납북되고 3개월 뒤인 1967년 9월 25일 인천항으로 5명의 선원이 귀환했다. 하지만 최원모 선주를 포함해 2명의 선원은 그대로 북한에 억류됐다.
 
  귀환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에서 정치교양, 경제학 등을 통해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으며, 군산 지역의 주요 시설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또한 남한으로 돌아온 후에는 북한 찬양선전, 지하당 조직, 북한 찬양 삐라 살포 등의 활동을 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최원모 선주를 비롯한 나머지 2명의 선원은 왜 귀환하지 못한 것일까. ‘납북 사건 관리 카드’에는 ‘6·25전쟁 당시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었던 최원모 선주는 남하하면서 원적지에서 좌익분자를 살해한 것이 발각되어 억류됐다’고 적혀 있다.
 

  최원모 선주는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대북(對北) 첩보 활동을 벌였던 켈로부대 대원이었다. 북한은 최 선장이 켈로부대 소속 ‘북진호’의 함장이었으며 북한군을 사살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인민재판에 넘기고 풍복호 선원 일부를 억류했다.
 
  최원모 선주의 아들인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과거 아버지가 고향에서 치안대장을 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면서 “그 사실을 북한에서 알고 아버지를 억류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장과 함께 억류된 A씨는 당시 16세였다. 당시 최원모 선주는 어린 A씨를 배에 태우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학비를 벌겠다”며 사정하는 A씨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풍복호’에 올라 조업을 하다가 납북된 A씨는 최 선장과 함께 북한에 억류됐다. A씨와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한 어부가 A씨의 어머니를 찾아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닻을 올리고 배가 북한을 떠나려는데 A가 숨을 헐떡대며 부둣가로 뛰어나왔어요. 뒤늦게 배가 떠나는 걸 알았나 봐요. 우리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치는데 북한군의 제지를 받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울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미안합니다. 배를 돌리지는 못했어요.”
 
 
  “선원 B씨가 ‘풍복호’를 北으로 유인한 것 같아”
 
최원모 선주가 67년 납북 당시 타고 있던 ‘풍복호’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최성룡 이사장은 최원모 선주와 함께 억류됐던 또 다른 선원 B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B씨의 고향은 경상도인데 전라북도 군산에서 ‘풍복호’ 선원으로 일했다”면서 “당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까지 와서 배를 타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B씨가 ‘풍복호’를 북한으로 유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에 억류됐다 돌아온 ‘풍복호’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군인들은 최 선장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B씨만 따로 분리해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최성룡 이사장에 의하면 북한에 억류됐다가 돌아온 ‘풍복호’ 선원 5명은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북한에 억류되기 직전 선장은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도민증을 바다에 버렸어요. 그런데 북한군이 배에 올라와 선장에게 ‘최원모 선생 어서 오시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눈치챘어요. 누군가 우리 배를 일부러 이곳까지 유인했다는 것을요.”
 
  북한에 납치되어 끌려가고 나서 B씨의 행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풍복호’가 납치되고 3년 뒤 1970년 B씨는 남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다 검거됐다. 이후 B씨는 재판을 통해 징역을 살게 됐다.
 
  B씨는 복역 후 최성룡 이사장의 어머니를 찾아와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910년생인 최원모 선주는 평북 정주 출신이다. 최 선장은 6·25전쟁 당시 KLO(Korean Liaison Office) 8240 유격백마부대 선박대장으로 ‘북진호’라는 배를 몰고 군수물자 보급과 중공군·인민군 포로 수송, 부대원과 민간인 대피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유격백마부대원들은 2600여 명이었다. 이들은 최원모 선주처럼 군번도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주로 오산학교 출신들로 부대원 대부분의 고향은 평북 정주였다. 유격백마부대는 KLO의 20개 유격부대 중 평북 출신들로 구성된 유일한 부대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황해도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였다고 한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최원모 선주는 201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현재 최 선장의 위패는 국립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최 이사장의 어머니 김애란씨도 6·25전쟁 당시 KLO8240 유격백마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김씨도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17년 국가유공자가 됐다.
 
  최 이사장은 아버지 최원모 선주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십 년간 정부와 유엔을 통해 북한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최 이사장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아버지는 1970년에 인민재판소에서 조선 인민들을 학살했다는 죄명으로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사형되셨다”면서 “시신은 시간이 오래 지나 찾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최성룡 이사장은 2000년부터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을 구출하거나 사망한 국군포로의 유해를 송환하는 일을 해왔다. 2004년에는 북한 내 협조자를 통해 얻은 정보로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의 남편이 한국에서 납북된 학생 김영남씨라는 것을 밝혀냈다.
 
 
  “정부, 북한에 개인 재산 반환 요구한 적 없어”
 
2002년 4월 29일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행사장에서 김애란 할머니가 1967년 납북된 남편 최원모 선주와 풍복호 사진을 내보이며 남편의 기일이라도 알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최성룡 이사장은 최근 1967년 당시 아버지가 타고 나갔다가 북한에 빼앗긴 ‘풍복호’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아버지가 타고 간 ‘풍복호’는 엄밀히 말해 개인 재산”이라면서 “북한이 남한 주민의 개인 재산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먼저 해양수산부와 통일부에 지금까지 정부가 북한이 강제로 빼앗아간 남한 주민들의 재산 반환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답변을 요청했다. 다음은 최 이사장이 해수부와 통일부에 답변을 요청한 내용의 일부다.
 
  〈2000년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노무현, 문재인 정부로 세 번의 정상회담에서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보내고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귀환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가족의 재산인 어선(선박)의 귀환을 요구했는지 답변을 요구드립니다. 단 한 번이라도 선박에 대해 북한에 요구했는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해수부와 통일부는 질문에 대한 답을 회피했다. 해수부 답변의 일부다.
 
  〈납북 피해자에 대한 보상 성격의 지원과 관련하여서는 관련 법률인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 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항으로 선박, 어업 손실에 대한 피해 보존 등 추가적인 보상에 대한 것은 해수부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사료되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통일부의 답변이다.
 
  〈정부는 그간 남북 간 회담 등 계기 시 납북자 문제의 해결 필요성을 북측에 지속 제기하였으나 북측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 이사장은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에 개인 재산 반환을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북한에 책임을 물어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선박 송환과 관련해 해수부에 문의했다. 해수부는 “6·25전쟁 이후 우리 선박이 북한에 납북된 것에 대해선 확인하고 있지만, 선박에 대한 반환 요구는 해수부가 아닌 외교부나 통일부가 담당하는 업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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