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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반항하는 북한의 MZ세대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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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혼전동거 늘어나… 저출산으로 합계출산율 1.9명
⊙ 집에서 한류 콘텐츠 발견된 북한군 대좌, 한류 영상물 도매상 등 처형… 〈펜트하우스〉 시청자는 징역 10~12년
⊙ “한국의 문화적 침공은 김정은과 북한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평양거리의 젊은이들. 북한의 젊은이들은 당의 지시가 잘 안 먹히는 신세대이다. 사진=조선DB
  김정은 머릿속에선 지금 내전(內戰)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교전(交戰) 상대는 북한의 MZ세대, 이른바 ‘장마당 세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이 케이팝(K-pop)을 ‘악질적인 암(vicious cancer)’으로 규정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10일자 기사다. 《로동신문》이 《뉴욕타임스》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해줬다.
 
  《로동신문》 6월27일자 1면 사설에는 ‘백절불굴의 혁명 정신은 새 승리를 향한 총진군의 위력한 무기’라는 제목 아래 “우리 혁명의 밝은 미래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투쟁기풍에 의하여 굳건히 담보된다….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들이 주력으로 등장하고 우리 당의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허물어보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우심해지고(심해지고) 있는 현실은 혁명전통교양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로 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로동신문》 편집 관례상 위 문장은 김정은 육성(肉聲)이라고 봐야 한다. 김정은의 선전포고(宣戰布告)다.
 

  김정은은 왜 젊은 세대가 무서운가? 자신의 말을 한 귀로 흘리기 때문이다. 자기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 벌벌 떠는 나이 든 세대와는 달리, 장마당 세대는 독재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당(黨)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부채 의식이 없는 탓이다. 그래서 전제군주(專制君主)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상이완(思想弛緩), 정신무장(精神武裝) 같은 구세대식 표현도 조롱한다. 당연히, 존경심도 없다. 신도 수 기준 세계 9위의 사이비종교(似而非宗敎) 주체교(主體敎)는 ‘일사불란(一絲不亂) 집단주의(集團主義)’가 핵심 교리 중 하나다. 집단주의의 정점에 태양족 백두혈통 김씨 일가가 있고, 그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잘살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세뇌한다. 하지만 신도들이 세뇌에서 깨어나면 교단은 무너진다. 그래서 말을 안 듣고, 말이 안 통하는 젊은 세대의 등장은 김정은 시각에선 그 자체가 권력의 붕괴다.
 
 
  김정은, 이혼 막으라고 지시
 
  북한의 10대는 이전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사회현상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2018년 양강도에선 월(月) 평균 이혼 판결이 100건을 넘어섰다. 이혼을 막으라는 김정은의 특별 지시가 떨어질 정도다.
 
  핵심은 특별 지시 하달 전부터 북한 전역의 결혼 풍속이 급속도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돈 못 벌고 무능하면 결혼 후 한 주든 한 달이든 바로 갈라서는 사례가 나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김정은 지시 이후로도, 북한 주민들은 체면이나 남 눈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 이혼은 이제 감춰야 하는 일이 아니다.
 
  혼전동거(婚前同居)도 많다. 3~4년을 함께 살다가 서로 능력과 성향을 확인한 후 뒤늦게 결혼등록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다. 만혼(晩婚)은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저출산 문제는 남쪽만의 고민이 아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is my own)〉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9명이다. 세계 평균인 2.4명,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균 2.1명, 인구 유지에 필요한 수치 2.1명보다 아래다. 조사 대상 198개국 가운데 119위. 덧붙이자면, 최하위 198위는 1.1명인 한국이다. 한 자녀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도 부모도 자연스럽게 개인주의로 이동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자유롭게 미래를 꿈꿀 수는 없지만, 북한 청소년들이 ‘호기심(好奇心)’과 ‘재미’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호기심과 재미는 그들의 삶을 위로하는 활력소이자 대리몽(代理夢)이다. 그래서 끊을 수 없다. 북한 밖 다양한 세계의 존재를 형형색색으로 알려주는 문화 콘텐츠는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에 빠르게 스며든다.
 
  선봉장은 ‘한류(韓流)’다. 말이 통하기에 전파력(傳播力)이 남다른 것이다. 위기감에 휩싸인 북한 당국이 2004년 한국 영상물 전문 단속기구인 ‘109상무’를 만들었다. 불시 가택 수색 등 대대적 단속을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단속 방식은 아날로그인데 회피 수단은 진화하기 때문이다. CD가 USB로, SD카드로 바뀌었는데, SD카드는 유사시 잘라버리거나 삼켜서 증거인멸이 쉽다. 109상무 단속에 대비해, 노트북을 켜면 아예 기록과 메모리가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노트북 암호를 ‘109타도’로 설정한 것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김정은의 최신 응전(應戰)은 2020년 12월 4일에 나온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남한 영상물 유포자에 대한 형량(刑量)을 최대 사형, 시청자에 대해선 징역을 기존 5년에서 최대 15년으로 강화한 악법이다. 김정은이 느끼는 공포심의 성문화(成文化)다.
 

  이 법을 제정한 이후로 김정은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초조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청년세대에 대한 사상통제를 거듭 강조했고, 4월 세포비서대회에선 “청년들의 사상통제가 최중대사(最重大事)다. 옷차림부터 언행까지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세포비서’는 당 최말단 조직 일꾼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K팝이나 한류 흉내를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단속하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한류 유행은 잡을 수 없었다. ‘데일리NK’는 북한군 내부 소식통의 전언을 토대로, 지난 2월 북한군 3군단 훈련장 사격장에서 3군단 후방부장인 김모 대좌가 군단 지휘부 장교와 핵심 군인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 총살당했다고 보도했다. 김 대좌 집에서 한류 콘텐츠가 대량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반동들에게 동조하는 이적행위를 한 역적’이라는 것이 죄목이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정치범수용소로 호송됐고, 집과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다고 한다. 법 시행 후 첫 군부대 단속 건인 것을 보면, 김 대좌 총살은 군 내부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범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지난해에는 20대 북한군 3명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의 안무를 따라 했다가 끌려가는 일도 있었고, 3월 초엔 남조선 영상물을 유포한 평양시민 4명을 공개처형했다. 사동구역 대원리사격장에서 평양시 전체 인민반장들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집행했다고 한다. 5월에는 한류 콘텐츠 도매상 역할을 하던 원산 주민도 공개처형했다.
 
  지난 6월 초에는 평성에서 SBS TV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시청하던 20대 남녀 4명이 10~12년 형을 받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평성 운동장에서 공개재판할 만큼 요란을 떨었지만, 주민들 반응은 ‘왜 우리만 가지고 이러냐?’다. 권력층이 외부 문화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극소수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비디오 게임을 하고 서양 영화를 보며 한국 드라마를 애청한다는 걸 북한 주민들은 다 안다. 김정일의 애창곡이 최희준의 ‘하숙생’,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였다는 건 잘 모르겠지만.
 
 
  새 선전가요 나왔지만 주민들 외면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해보자. 지난 6월 하순 조선중앙TV는 새 선전가요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 영상 편집물을 방송했다. 노동당과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가요다. 신곡 발표는 오직 당(黨)만 할 수 있으니 예전 같으면 북한 전역에 이 노래들이 울려 퍼져야 한다.
 
  신문은 “우리 마음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율이 됐다”며 “새 노래들이 온 나라를 격정의 도가니로 끓게 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정은 다르다. 아무도 자발적으로 듣지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독점(獨占)이 깨졌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권력이 듣지 않는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고, 그곳에선 김정은보다 더 힘과 영향력이 센 무엇이 있다는 뚜렷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문화 경쟁자’의 존재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나름대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며 주민에게 다가갔지만, 주민들이 외면한 것이다.
 
  이 두 곡은 김정은과 당 간부들이 관람한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서 처음 발표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6월 22일 공연의 녹화 실황을 방영했고, 6월 24일에는 뮤직비디오 형태의 영상 편집물도 공개했다.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가수, 바닷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단원, 드레스를 입고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 단원들의 장난스러운 표정 등 한국 뮤직비디오를 모방한 영상이다.
 
  이렇게 유연하게 다가가도 대중은 반응이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윗대가리’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쩌면 변화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 건 북류(北流)가 한류(韓流)에 완전히 밀렸다는 사실일 수도 있다.
 
 
  남자 친구에 대한 호칭이 ‘동지’에서 ‘오빠’로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 편집장은 오랫동안 북한 문제에 천착해온 전문가다. 북한 내부에 비밀 취재원을 두고 생생한 뉴스를 전한다.
 
  그는 “한국의 문화적 침공은 김정은과 북한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이 입수한 북한 정권 문서에 따르면, 북한 청년 사이에서 한국 콘텐츠와 한국식 말투가 대유행이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에 대한 호칭이 ‘동지’에서 ‘오빠’로 바뀐 것 등이다. 말투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바뀐 생각은 달라진 행동을 낳는다. 한국 드라마 속 청춘들의 행동이 북한 젊은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주인공 말투까지는 어찌어찌 따라 할 수 있는데, 옷차림은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귀고리, 머리염색, 청바지, 짧은 치마, 민소매를 엄격하게 단속하는 곳이 북한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 다른 건 다 참아도, ‘내로남불’만큼은 못 참는 건 남북 청소년이 같지 않겠는가. 이전 세대와 다른 건 이들이 통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반항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한류’를 막을 방법이 없다. 북한에는 ‘호기심’과 ‘재미’를 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창의력의 바탕은 자유인데, 북한에는 자유가 없지 않은가. 한류 맛을 본 ‘자유주의자’들은 어디로 얼마나 어떻게 튈지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김정은 머릿속 내전의 반군은 오늘도 신나게 진군 중이다. 김정은의 머리 밖 현실세계에서도 진군 중이다. 흥겨운 노래와 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들의 무기다.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의 별칭은 ‘카세트테이프 혁명’이다. 호메이니 연설이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이란 내부로 밀반입되었고, 밀반입된 ‘말’이 정권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는 힘이 세다. 그렇다면 북한 혁명의 별칭은 무엇이 될까? 아버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아들은 할리우드 스타인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에 심취했던 김 부자 역시 재미와 진실의 힘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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