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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김여정 北 위임통치의 진실

하노이 노딜 후 무기력증에 빠진 김정은 “목숨 바쳐가며 최고지도자직 수행하기 싫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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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왕자’ 시절 단 한 번도 실패의 쓴맛 못 보았던 김정은
⊙ 미·북 정상회담 노딜, 일생일대의 치욕
⊙ “인권 불모지인 이 땅에서는 차라리 죽는 게 자랑스럽다”(하노이 실패 책임지고 총살당하기 직전 외무성 간부의 유언)
⊙ 김정은, 회담 실패 후 폭음·폭식… 이후 여성 측근만 챙기는 이상증세 보여
⊙ 최선희, 식사 중간중간 최고 존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 섞어 가며 김정은과 대화… 남성 간부들 큰 충격
⊙ 김정은 치료한 中 의사 “한 번 더 이런 일 생기면 장군님 목숨 위험하다”고 우려
⊙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선언한 김정은

[편집자 주]
국가정보원은 국회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위임통치’의 이유로 ‘김정은의 통치 스트레스 경감’을 들었다. 북한에서 ‘위임통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일성은 1인 통치 체제를 확립한 이후 누구에게도 권한을 나눠주지 않았다. 김정일은 이복형제를 숙청했고 2인자 소리를 듣는 부하는 바로 제거했다. 김정은도 고모부와 이복형을 처단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주요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수수께끼 같은 일이 북한에서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검증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당국 관계자 등 다수의 북한 관련 취재원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김정은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북한은 왕조 체제다. 왕조시대의 왕족과 귀족 사회처럼 사회가 계층화돼 있고, 김씨 일가는 그 정점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린다. 공식적으로 왕조시대의 칭호를 쓰진 않지만,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작은 왕자님’으로 불렸다.
 
  실제 김정은은 7세 때부터 왕세자 대접을 받았다.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베이징지국장이 출간한 《마지막 계승자(The great successor)》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김정은은 진짜 자동차와 진짜 총을 가졌다. 차는 김정은이 7세에 몰 수 있도록 개조돼 있었다. 김정은은 11세에 허리춤에 콜트 45구경을 차고 다녔다. 그의 방에는 소니 텔레비전과 컴퓨터, 비디오 게임기, 야마하와 스타인웨이 같은 명품 피아노가 있었다. 집에는 인공 폭포와 호수, 사격장, 작은 동물원이 있는 정원이 있었다. 김정은이 좋아한 것은 관저에서 농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정은과 그의 형 김정철은 집에서 수업을 받았고, 친구 없는 외로운 생활을 했다. 이복형 김정남과는 아예 놀지도 않았고 당시 동생 김여정은 너무 어려서 친구가 되지 못했다.”
 
  이 책은 김정은의 성장 과정과 북한 정권의 뒷이야기를 담았다.
 
 
  “공화국에 아직도 달구지를 끄는 인민이 있나?”
 
  태어날 때부터 호화롭다 못해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온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궁핍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 위에서 리어카와 달구지를 끌고 다니는 북한 주민을 본 김정은은 측근들에게 “공화국에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측근들은 간혹 있다며 거짓말을 했는데, 김정은은 만약 자신이 아버지 뒤를 잇는다면 저런 주민들을 없게 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고 한다.
 
  2008년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열병식을 20여 일 앞두고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김정일 뇌졸중은 당시 24세던 김정은이 갑자기 ‘세자’로 책봉된 계기였다.
 
  2010년 8월 26일 26세던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을 따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으로 갔다. 당시 환영 연회에서 김정일은 김정은을 데리고 나와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게 인사를 시켰다. 당시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을 인사시키면서 “우리의 후대가 조·중(朝中) 우의라는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중국 측에 통보한 것이었다. 그러고 한 달 뒤인 9월 27일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명령을 하달해서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발령 냈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김정일 옆에 섰다. 자신이 차기 지도자임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보름 뒤인 12월 30일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고, 이듬해 2012년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회의는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인민이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김정은의 헛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회담을 끝냈다.
  김정은은 2012년 첫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핵(核)과 미사일을 선택했다. 자신의 통치력을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로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돌아온 것은 경제제재였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석유 수입을,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인 석탄과 철광석, 납광석, 해산물 수출 등을 전면 금지시켰다. 경제제재는 김정은의 숨통을 짓눌렀다. 경제는 더욱 피폐해졌고, 북한 주민은 궁핍에 시달렸다. 유학까지 한 젊은 지도자에게 ‘혹시’나 하고 걸었던 북한 주민들의 기대는 ‘역시’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마식령 속도’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는 등 원산 인근 스키장과 각종 건축물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인민들의 착시(錯視) 현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시성 치적물은 경제 개선에 아무 효과가 없었다.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는 미림 승마장, 마식령 스키장, 평양 여명 거리 건설 등은 일반 북한 주민은 누릴 수 없는 1%만을 위한 대규모 위락시설인 까닭이다.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집권하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했던 김정은은 조급해졌다. 그는 자신의 장기 집권이 위협받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북한 주민의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핵심 탈북자는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경험은 자신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핵 폐기를 통해 대북제재 완화를 이루고 어느 정도 먹고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했다.
 
 
  하노이행 열차 안에서 서울로 3차례 전화한 김정은
 
하노이로 향하는 전용 열차 안에서 김정은은 서울에 세 차례 전화를 걸었다. “영변만 내놓으면 틀림없는 거냐”며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워싱턴의 전략과 분위기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캐물은 것이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이 만나고 있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실험을 추가로 하지 않고, 핵시설을 일부 폐기하는 정도만 내놔도 미국이 경제제재를 전면 해제할 것으로 믿은 것 같다. 가짜 비핵화로 대북제재를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김정은은 김씨 왕조 체제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다.
 
  김정일은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한 안전판이 핵이라고 믿고 지난 25년 동안 나라의 모든 것을 쏟아왔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을 감내하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렇게 얻은 핵을 김정은이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핵실험까지 성공한 나라가 핵을 포기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비핵화’ 미끼를 던지자 한·미 정부가 이에 환호했다. 그렇게 성사된 게 1~2차 미·북 정상회담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은 68년간 적대해온 미·북 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북은 ▲미·북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송환 등 4가지가 담긴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김정은은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2차 회담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하러 가는 도중에 서울로 세 차례나 전화를 걸어서 묻고 또 물었다고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은 밝혔다.
 
  “하노이로 향하는 전용 열차 안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로 세 차례 전화를 걸었다. ‘영변만 내놓으면 틀림없는 거냐’며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워싱턴의 전략과 분위기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캐물은 것이다.”
 
 
 
‘고철’ 내놓으면서 최고 수준 호가 불러

 
  여기서 말하는 ‘영변’이란 평안북도 남동쪽에 있는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 그리고 영변 핵연료봉 제조 공장 등을 말한다. ‘영변만 내놓으면’이란 뜻은, 다른 핵 제조 의심 지역 말고, 오로지 영변 핵시설만 사찰을 받은 뒤 파괴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되는 거냐, 그런 뜻으로 해석된다.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은 평양에서 가까운 ‘강선’ 지역, 그리고 ‘산음동’ 지역을 핵시설로 지목하고 있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삭간몰’이란 곳을 핵시설로 짚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강선·산음동·삭간몰 이 3곳 말고 영변만 내놓으면 미국이 확실히 대북제재를 풀어주는 것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답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매우 낙관적으로 대답했을 가능성은 크다. 2차 회담장에서 김정은의 표정이 이를 대변한다. 김정은은 곧 대북제재를 푸는 지도자가 될 생각에 들뜬 표정이었다.
 
  2019년 2월 27일 260여 일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만난 김정은은 처음으로 자신의 매물을 내놨다. 김정은의 카드는 문 대통령에게 물어본 대로 영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이었다.
 
  25년이 넘은 플루토늄 시설은 ‘고철’로 아무 의미가 없다. 영변 우라늄 시설은 의미가 없지 않지만, 북이 2010년쯤 스스로 이를 외부에 공개할 때부터 ‘협상용’이었다. 영변 ‘고철’을 내놓으면서 제재를 다 풀어달라는 최고 수준의 호가를 부른 셈이다.
 
 
  평생을 왕자, 왕으로 살아온 김정은의 굴욕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에게 영변 ‘고철’만 내주는 비핵화 쇼로 제재의 99%를 허물려 했던 김정은의 전략은 예상외(?)로 통하지 않았다. 미국이 퇴짜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영변 + α’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김정은은 거부하는 배짱을 부렸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협상에 임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1단계 수준인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신들만 하던 ‘벼랑 끝 전술’에 역으로 당한 김정은은 당황했다. 영변 범위 내에서 폐기 대상을 최대한 확대할 수 있다는 식으로 다급하게 미국에 매달렸지만,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평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굴욕적인 제안을 할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하는 일은 무조건 성공할 것이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살았던 김정은에게 제재 해제를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북으로 돌아가게 된 하노이 회담은 일생일대의 치욕이었다.
 
  서방 국가와 달리 북한이나 중국에서 최고지도자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바이블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은은 약속을 못 지킨 능력 없는 지도자가 된 것이다.
 
 
 
김영철의 식음전폐한 석고대죄

 
  김정은은 분노했다. 그리고 책임을 실무자들에게 돌렸다.
 
  “미친것들(회담 관련자들) 내가 먼 곳까지 왔는데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시켰다.”
 
  하노이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60시간 기차여행 내내 대미(對美)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굶으면서 김정은의 객실 앞 통로에서 석고대죄했다고 한다. 북한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김영철은 혁명화 조치(강제 노역 및 사상 교육)를 당했다. 그는 북한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위성에서 두 달 가까이 조사를 받았는데, 과거 비리까지 탈탈 털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김영철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세계적 시선 때문에 못 죽였다고 한다. 원래 북한은 사상검열을 통해 처형 명분을 억지로 꿰맞춘다. 강도 높은 사상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중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김성혜·신혜영, 열차가 평양 도착하자마자 정치범 수용소行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무 협상을 담당한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도 함께였다. 신혜영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을 대동한 점을 의식해 김정은이 직접 발탁한 인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가 2019년 3월 5일 새벽 김정은이 평양에 도착한 모습을 공개한 것을 보면, 김정은은 북한군과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웃으면서 여자·남자아이가 전달한 꽃다발도 받으며 인자한 웃음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때 김성혜와 신혜영은 수용소로 끌려간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을 이유로 외무성 간부 5명도 총살을 당했는데, 이들은 정상회담 당시 돈을 받고 미국 측에 미리 협상 정보를 건넨 혐의를 받았다.
 
  외무성 간부 한 명은 총살 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권 불모지인 이 땅에서는 차라리 죽는 게 자랑스럽다”고 외쳤다고 한다. 이 간부가 마지막 유언을 외치는 순간 총살장은 술렁거렸다. 이 간부는 유엔 쪽 일을 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분노한 대상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데 이어 2019년 8월 문 대통령이 공동올림픽·평화경제 등을 말하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사상 최악의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것 등이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여정이 남북교류협력기금 총 700억원가량이 투입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를 폭파한 것도 같은 이유다.
 
 
  회담 실패 후 이어진 김정은의 폭음, 폭식
 
폭음·폭식을 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여성을 극진히 챙긴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여전히 통용하는 북한 사회에서 이례적이었다.
  회담 실패 책임을 실무진과 문 대통령에게 지웠지만, 김정은은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민들의 불만 고조 현상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회담 결렬 직후 거의 매일 폭음(暴飮)과 폭식(暴食)을 했다. 혼자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정보 당국 등에서 나왔다.
 
  김정은의 주량은 만만찮다. 평소 주량이 와인 10병에 달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 만찬 때 김정은은 도수가 40도인 ‘문배술’과 18도인 ‘두견주’를 매번 원샷으로 마셨다. 우리 쪽 인사들이 술을 따라주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고 한다.
 
  당연히 건강이 악화됐다. 브레이크 없이 먹고 마시면 풍선처럼 부풀 수밖에 없다. 김정일도 그러다가 고도 비만,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 등을 앓았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왔다. 전문가들은 170cm 안팎의 키에 130kg이 넘는 체중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김정은의 키와 체중을 감안하면 체질량지수(BMI)가 40 이상으로 초고도 비만에 해당한다. 심혈관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목 부위 비만으로 숨 쉬는 기도가 좁아져 생기는 수면 무호흡증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정은은 서른넷이던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200m 정도를 천천히 걸으면서도 얼굴이 벌게지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일가(一家)는 심근경색증 가족력이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82세에, 아버지 김정일은 69세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폭음과 폭식을 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여성을 극진히 챙긴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북한 사회에서 이례적이었다. 김정은은 2019년 최선희, 현송월 노동당 부부장과 식사를 했다. 그냥 밥만 먹었으면 됐는데, 남성 간부들을 병풍처럼 세워놓았다고 한다. 식사 자리를 숨죽여 지켜보기만 했던 남성 고위 간부들은 큰 모멸감을 느꼈다.
 
  최선희는 식사 중간중간 최고 존엄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를 섞어가며 김정은과 대화를 했다. 남성 간부들은 하노이 회담과 관련한 사람 대부분을 죽이거나 숙청한 김정은이 최선희에게 관대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최선희도 하노이행에 동행했다. 이 식사 자리는 김정은에 대한 남자 간부들의 충성심이 떠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 남자 간부들은 김정은의 정신 상태를 우려했다고 한다.
 
 
  김정은 건강과 관련한 온갖 소문과 추측
 
  미국 CNN은 지난 4월 20일(현지시각)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라는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데일리NK도 김정은이 지난 4월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 내에 있는 김씨 일가 전용 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별장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언론 보도와 더불어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은 북한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선전하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태양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2012년 집권 이후 빠짐없이 참석해온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에도 불참하면서 더욱 불거졌다. 금수산태양궁전엔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돼 있다.
 
  이후 김정은의 건강과 관련한 온갖 소문과 추측이 열흘 넘게 쏟아졌다. 청와대가 “북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하는데도 북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5월 1일 잠적 20일 만에 김정은은 평남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등장했다. 김정은이 공개 행보에 나선 것은 4월 11일 평양에서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이후 처음이었다.
 
  도대체 2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기간 김정은이 정말 수술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중국인 의사가 김정은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것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김정은이 이 중국인 의사들로부터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치료는 아닌 듯하다. 다만 당시 김정은을 치료한 의료진은 김정은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장군님, 지금은 큰 문제가 아니라도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오빠 김정은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김여정은 숙청까지도 본인이 주도한다고 한다. 여린 성격의 김여정이 권력을 쥐어봤자 뭘 어떻게 하겠느냐는 북한 수뇌부와 김정은의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을 수 있다.
  치료 후 북한 고위층은 그간 쌓인 지시문의 사인을 받으러 김정은에게 갔다. 김정은이 말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들은 귀를 의심했다. 김정은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최고지도자직을 수행하기 싫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고 한다. 만사가 귀찮은 무기력증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의 마지막 희망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였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9년 6월 평양 방문 직후 국가기관의 공무원과 교사들에게 북한 관광을 의무적으로 갔다 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평양에서 김정은에게 북한 관광 중국인을 200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전문가 추산으로 2019년 북한을 여행한 중국인은 100만명가량. 1인당 2000위안(약 34만원)을 쓴다고 가정하면, 북한의 관광 수입은 3억 달러에 달한다. 200만명이면 6억 달러다. 김정은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외화수입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마저도 코로나19 등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 수뇌부는 난리가 났다. 김정은이 아무것도 안 한다면 ‘유일령도체계 10대 원칙’의 10조 2항이 지켜지지 않는 탓이었다.
 
  10조 2항은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은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이다. 북한 수뇌부는 김정은의 자식이 성장할 때까지 백두혈통의 일원인 김여정이 유일한 대안이라 판단했다. 이 대목은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최근 김정은은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초토화한 함경도 마을을 시찰하고, 당 중앙군사위를 주재하는 등 대외 활동을 늘렸지만, 김여정은 위임통치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무기력증을 털고 다시 일어선 것일까. 나름의 답은 갑자기 권력을 손에 쥔 김여정의 ‘눈빛’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빠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김여정은 숙청까지도 본인이 주도한다고 한다. 여린 성격의 김여정이 권력을 쥐어봤자 뭘 어떻게 하겠느냐는 북한 수뇌부와 김정은의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을 수 있다. 김정은은 억지로라도 일어서야 했을 것이다.
 
 
  김정은, 김여정 폭주에 제동 걸은 듯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 제1부부장의 역할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국내외 정보 당국에서 그의 위상을 키워주고 있다”며 “김정은이 이에 제동을 걸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최고 수뇌부들이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숙청설이 제기되지만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인 김 제1부부장이 엮일 가능성은 작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김 제1부부장은 백두혈통인 만큼 그의 잠행은 정치적인 상황과 관계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김정은의 소위 위임정치가 이미 2012년부터 본격화된 점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통치방식이 그의 건강상태와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이 복잡한 국내외 현안들을 모두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위임정치는 간부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그만큼 책임도 지게 하고, 그는 핵심적인 정책 결정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것이란 이야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정은의 위임정치와 북한 파워 엘리트의 위상·역할 변화’라는 제목의 세종논평에서 “이런 김정은의 통치방식으로 인해 김여정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지시 같은 일부 간부들의 미숙한 결정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위임정치’가 북한의 대남·대외·안보·경제 정책 전반에 미칠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센터장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에 항일빨치산 2세대의 대표 주자인 최룡해를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하고 그에게 당시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보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군부의 개혁과 세대교체를 이끌어냈다. 2013년에는 개혁적인 성향의 박봉주를 총리직에 임명, 그의 경제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등 사실상 ‘위임정치’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10일(현지시각) 오전 8시45분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김정은은 건강하다. 그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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