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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공개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⑤

일본인 강제 납북자, 중앙당 對日 련락소서 첩보원 양성 교관으로 근무

글 :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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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被拉者들이 北 정치범수용소로 갔다는 주장은 억지
⊙ 日, 모든 행불자를 다 北이 납치했다며 찾아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여
⊙ 對日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으로 써먹으려 소수 납치했을 듯
⊙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 몰랐을 수도… “일본 수역으로 련락소 잠수정 보냈다”는 식으로 보고했기 때문
⊙ “로씨아에서 수많은 北 사람 행불”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도대체 TV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註]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년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또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닉네임 ‘최이상’)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 등이 담겼다.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는 형국이다. 법을 수호해야 할 자리의 수장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이 모조리 수사 선상에 올라 있음에도 마치 개혁의 화신인 양 설쳐대는 것도 모자라, 아예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말아먹을 작정으로 국민을 갈등과 대결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위 진보라는 미명하에 70년 동안 분단의 현실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악선전과 분탕질로 기만하던 세력들의 실체를, 대한민국 국민이 적나라하게 볼 기회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인 선거를 통해 어느 한쪽에 쥐여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나라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는, 총알보다도 무서운 국민의 한 표임을 무겁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 정권의 기만책은 일찍이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서 발호하여 나치즘으로 극에 달했던 선전·선동술에 다름 아닌데, 그 막장의 끝을 우리는 바로 휴전선 너머 북한에서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북한 주민들을 꼼짝달싹 못 하는 권력의 노예로 만든 통치술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암흑의 땅에서 체제를 뒤엎으려 했던 북한의 혁명조직원인 필자의 아우는, 이번 연재물에서 ‘열대메기 양식장을 늘리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빗대 농담 아닌 농담으로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실을 기반으로 웃지 못할 희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담에 대한 기준이 조금은 다른 남북한의 상황을 감안해, 먼저 농담이 시작되는 배경에 대해 추가 설명을 첨언해보았다.
 
 
  열대메기 캠페인
 
  아우는 필자가 평소 궁금해하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솔직하게 답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과 대화한 경험을 기초로 보면, 자신이 아는 것보다는 조금 과장되게 언급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아우는 질문자의 의도나 기대치를 우선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하여 답변하려는 모습으로 오히려 필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북한 내부의 혁명조직이 하고자 하는 활동의 신뢰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우선 아우가 서로 대화과정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농담에 대한 배경을 먼저 언급하자면, 실제 북한은 김정일 생전에 그의 지시로 평양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메기 양식장이 생겨났다. 김정일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 해외출장까지 보내 메기 요리법을 습득하게 해서 직접 시식할 정도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토종 메기보다는 몸집이 큰 열대메기를 대상으로 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전 매체가 총동원되어 열대메기의 영양과 요리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로 평양의 주요 호텔과 고급 식당가에서는 수십 가지 열대메기 메뉴가 등장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동안 북한 전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열대메기라는 것이 외래종으로 북한의 기후 환경에 맞지 않고, 전력 사정의 열악함 등으로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사라진 메기를 다시금 불러들였다. 김정은은 한술 더 떠 “지금 일부 일꾼들이 아직도 이런저런 조건 타발(불평불만)만 하면서 메기 양식에 혁명적으로 달라붙지 않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몰아붙였으니, 유머가 사라진 어둠의 땅에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2014년 남한의 언론 매체인 연합뉴스는 “김정은이 지난해 ‘메기가 몸에 좋다’며 생산을 독려한 데 대해 북한 언론 매체들은 평양시 평양면옥에서 열린 ‘급양봉사부문 메기요리경연’에 40여 개 기관이 참가해 무려 70여 가지의 창안(창작)요리를 선보였으며, 메기껍질 종합냉채, 과일즙을 가미한 메기튀김, 생강간장 즙을 넣은 메기찜 구이, 메기껍질 묵, 버섯소매기 구이 등이 새롭게 개발된 메뉴로 소개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북한의 대외 선전용 매체 ‘조선의 오늘’은 경연대회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현장에서 만들어 전시한 요리들은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고 극찬했으며, 조선중앙통신도 “원자재인 메기의 풍미를 돋울 수 있게 보조자재들을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잘 조화시킨 버섯소매기 구이, 메기레몬향 튀김, 메기 감자전 등의 요리들도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메기공장과 여러 단위에서 내놓은 맛좋은 메기 훈제품들과 메기껍질 묵, 메기꼬리 튀김, 메기대가리 보쌈 등 부산물 요리들이 경연을 더욱 이채롭게 하였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정은은 평양 메기공장을 비롯해 5월 9일 메기공장, 삼천 메기공장 등 지난해 메기 양식장만 3차례나 시찰했으며, 지난해 10월 평양 메기공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야외 못들에서 욱실거리는 메기들을 보니 물보다 물고기가 더 많은 희한한 풍경”이라며 기뻐하였다.
 
  이 정도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보고, 북한 아우의 열대메기와 관련한 농담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정신 나간 우리 장군님
 
  최: 대표님 오늘 저녁에는 우스갯소리 한마디 할 테니 이것을 보면서 쉬십시오. 제목은 ‘아무래도 우리 장군님께서 정신이 나가셨군’입니다.
 
  2011년 10월 어느 날이었는데, 하루는 평양시의 성 중앙기관에 위대한 장군님의 2011년 10월 5일 방침을 전달한다면서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하였다. 방침내용은 ‘최근 우리 인민들 속에서 열대메기 료리를 잘 만들 줄 몰라 메기로 남비탕이나 끓여 먹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메기로 남비탕을 끓여 먹을 것이 아니라 메기 샤부샤부를 만들어 먹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전달한 다음, 장군님의 말씀대로 메기 남비탕만 끓여 먹지 말고 메기 샤부샤부 료리를 해먹으라고 말하면서 방침전달을 끝냈다. 모두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메기 샤부샤부가 어떤 료리인지 아느냐고 서로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료리인지 알아야 해먹을 것이 아니냐고, 장군님께서 많이 잡수어본 료리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야 해먹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온갖 류언비어들이 나돌았는데, 누군가가 메기 샤부샤부란 료리는 메기의 살코기를 모두 발라내여, 고기는 버리고 순수 뼈다귀만 가지고 그것을 소금 하나 두지 않고 맹물에 삶아서, 뼈다구를 씹으면서 이따금 뼈다구 우린 맹물을 컵에 담아 마시는 료리를 메기 샤부샤부 료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앞에서는 말을 못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 끼리끼리 말하기를, “아무래도 우리 장군님께서 정신이 나가셨나 보다. 일 년에 한두 번 먹어보는 메기마저 고기는 못 먹게 하고 뼈다귀만 먹이려고 하시다니…”.
 
  최: 참 대표님, 메기 샤부샤부라는 게 어떤 료리에요. 뼈다귀 씹는 료리 맞아요?
 
  도: 하하. 저는 메기 샤부샤부라는 요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샤부샤부라는 요리는 끓는 물에 고기나 야채, 해물 등을 넣어 건져 먹는 요리를 말합니다.
 
  최: 북 사람들은 맹물에 삶은 뼈다귀 씹는 료리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서 당중앙위원회 지시문이라고 하면서 ‘메기 샤부샤부에 대한 말을 하지 말데 대하여’를 전달했습니다.
 
  도: 푸하하하. 참으로 엉터리 같은 당 중앙입니다.
 
  얼핏 들으면 재미있는 농담일 수 있겠으나, 북한에서의 모든 방침관철이라는 것이 수령에 대한 무오류의 원칙,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지침이라도 당이 결심하면 무조건 한다는 식의 북한판 가미가제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아닐 수 없다. 아우는 이 같은 방침이나 지시 등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래서 하루빨리 이런 사회를 뒤엎어야 한다는 것을 열대메기 농담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었다.
 
 
  일본인 납치자들과 관한 질문
 
북한 혁명조직원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주고받은 문자 대화를 통해 일본 납치자들이 북한 정치범수용소로 갔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했다.
  아우는 이런 농담을 던져놓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필자는 평소 아우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개인적인 의문이기도 하고, 다른 차원에서는 아우가 어느 정도 고급정보들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유도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간단히 언급한 후 내일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민감한 사건인 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던 납치범죄와 관련한 질문들이었다.
 
  도: 아우님, 접니다. 어제 말씀드린 거 다시 질문드릴게요. 일본인 납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있는지요. 2002년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가 만나 5명의 일본 납치피해자와 함께 귀국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들 일본 납치피해자들은 대부분 노동당 핵심부서에 근무하고 있어 공개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정치범수용소 수용 내지 굶주림과 탄압으로 사망했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이런 실태를 알고 계시는 것이 있는지와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어떤 전략전술이 요구될 수 있을지 아우님의 생각을 여쭤봅니다.
 
  최: 일본인 랍치 피해자 문제는 우리 조직의 관심 밖에 일이므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조금 아는 것과 저의 소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02년에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와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 때, 고이즈미가 김정일에게 ‘우리 일본 국민에게 한 가지만은 명백한 해답을 주어야 국교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집니다’라고 랍치자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자, 김정일이 ‘나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우리의 일부 개인영웅주의자들이 일본에 몰래 가서 사람들을 데려다 일본어 교원으로 채용한 모양입니다’라고 인정하여 북에 의한 랍치 피해가 공식 인정된 모양입니다.
 
  최: 5명은 그때 데려오고 아직도 많은 랍치 피해자들이 북한의 로동당 특수부서에서 근무하거나 혹은 정치범수용소로 갔거나 일반사회에서 굶어 죽었다고 예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우리가 알기에는 중앙당의 대일 련락소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자기가 체험한 사실들을 몰래 말한 것이 사회에 퍼진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특수아지트에서 철저한 밀봉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주로 일본어 회화와 일본식 생활을 재현한 실습훈련이고, 그 훈련교관들이 일본인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훈련과 관련한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일본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아는 것으로 보아 일본사람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납치자, 중앙당 대일 련락소서 교관으로 근무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교포들을 환영하는 북한주민.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최: 모든 과목의 훈련교관들이 다 일본사람은 아니지만, 최종 검열을 하는 시험관들은 일본사람들인 것 같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자기는 이 일본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일본인 랍치에 대하여 소리가 나자 ‘아! 그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서 청소부로 일하는 50세쯤 되어 보이는 부인이 하루는 자기보고 ‘아저씨 이제 일본에 가요?’ 하면서 자기가 일본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자기가 일본사람이면 일본에 가고 싶지 않은가 하고 묻자, 여기가 좋다고 대답하며 자기는 원하면 아무 나라나 다 구경하고 올 수 있다고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최: 김정일이 자기도 몰랐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일일이 누구를 데려온다고 보고하지 않았을 수 있고, 다만 작전을 위하여 ‘일본수역으로 련락소 잠수정을 파견하려고 한다’ 이 정도로 보고하였을 수 있습니다.
 
  도: 예 그렇군요. 제가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들어가서 답장하겠습니다. 편하게 글 남겨주세요.
 
  최: 일본이 랍치 피해자로 추정되는 백수십 명의 명단을 북한에 제출하며 그들의 생사를 밝히라고 한다는데 그것은 무리입니다. 일본도 1억의 인구를 가진 대국인데 무슨 범죄인들 없겠습니까. 모든 행불자를 다 북한의 소행이니 찾아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특히 ‘바닷가에서 놀던 철부지 처녀애나 늙은이를 데려다 어디에 리용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납치자는 대일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일 뿐
 
요코타 메구미의 1977년 실종 이전 모습. 사진=마이니치
  최: 그것도 주먹치기식으로 아무나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상파악을 한데 기초해서 일본까지 잠수함을 보내야 하니, 얼마나 품이 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인들은 단지 대일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으로 써먹을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는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납치한 사람의 수가 몇 명 안 될 수 있습니다.
 
  최: 또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거나 탄압,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하는데 거의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면 일반사회인으로 생활했다는 것인데, 실지로 보안부 주민등록국에 일본인들이 등록된 적이 없으며, 그들과 같이 생활했다는 자료는 더더욱 들은 적이 없습니다. 특히 정치범수용소로 말하면 아무나 들여보내는 데가 아닙니다. 대표님 자체가 수용소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시고 있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우는 필자에 대해서도 과장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치범수용소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북한인권운동가를 앞에 두고, 인권유린의 대명사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식의 핀잔 아닌 핀잔은 필자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아우는 유독 정치범수용소와 북한 보위부에 대한 필자의 언급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들을 보였는데, 그것은 자신과도 관련되었을 수 있는 사안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어서 여기서는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한다.
 
  최: 그들이 로동당 핵심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설(說)이 맞을 수 있으며, 그 수는 불과 몇이 안 되고 또 대접을 잘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일 첩보원 양성과 대일 첩보자료 분석과 종합과 같은 중요한 일을 담당하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많은 비밀을 아는 그들을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최: 모든 일본의 행불자가 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억지이며, 또 그들이 북한에 의해 랍치됐다는 증거도 없는 조건에서, 만일 국제사회가 일본인 랍치 피해자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면, 행불자 중에서 북을 위해서 일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골라서 명단을 제출하여, 이 중에서 현재 북에 있거나, 있었으며, 년로하여 사망하였으면 있다 없다 이 정도라도 확인해달라는 식으로 한 발자국씩 접근해나가야 조금이라도 전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랍치 피해로 말하면 北이 최대 피해국

 
1977년 북한에 납치된 딸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의 부모 시게루(왼쪽)·사키에 씨가 지난 2014년 3월 17일 도쿄 인근 가와사키시(市)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소 짓는 모습. 이 부부는 지난 10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메구미가 북한에서 낳은 딸 김은경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도: 현재 국제사회에서 김정은 압박의 가장 선두국은 일본과 미국입니다. 미국도 일본의 영향력으로 예전과 다르게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은 유엔에서의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대결로 예상치를 뛰어넘는 파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여쭤본 것이고 정치범수용소도 그곳에서 탈출했거나 나왔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문제점과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우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 8·15 광복 전에 조선인들과 결혼한 재일본 교포들의 귀국 사업 때 같이 들어온 일본인들도 랍치 피해자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랍치 피해로 말하면 북한이 최대 피해국입니다. 실지로 로씨아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행불되었는데 그들이 모두 로씨아를 위하여 전화 감청원으로 일하거나, 3국에서 행불된 수많은 사람이 지금 CIA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어디 있습니까. 로씨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접을 잘 받는다고 합니다. 북한도 이것을 모르지 않지만, 증거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도: 아우님 말씀은 우리의 신뢰관계를 떠나서도 참으로 믿음이 갑니다. 항상 실사구시(實事求是) 하려는 모습이 아주 좋고요. 제가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저의 굳어진 사고에 대해 가감없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들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 단지 저의 소신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도: 아우님, 제가 드리는 질문에 대해서는 남한이나 저희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잘못되게 생각하는 부분을 남김없이 말씀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도록 가르쳐주십시오. 북한 주민의 자유와 해방은 아우님과 그 조직원들, 지지자들이 성취하는 것이고, 저희는 손을 잡고 함께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잘못 생각하거나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을 정확히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최: 잘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도: 아우님의 사명을 완수할 때 평양에 꼭 가야지요. 예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평양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평양만큼은 김정일에게 돈 갖다 바치면서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우님께서 초청할 때는 한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최: 내 나라 한반도가 통일되는 날 평양에 초청하겠습니다. 서울 구경을 시켜주시겠습니까.
 
  도: 꼭 상호 방문합시다. 제 고향 부산에서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북한 혁명조직원은 “로씨아에서 수많은 北 사람이 행불되었다”며 “랍치 피해로 말하면 북한이 최대 피해국”이라고 주장했다.
  아우는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 한번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선 대화의 자리를 일어섰다.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대뜸 지난번에 언뜻 나누었던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최: 아 참 대표님,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셨지요. 축구경기에서 어떤 위치를 맡으십니까.
 
  도: 아 예, 요즘은 통 하질 못하고 있는데 제 포지션은 공격입니다. 제가 골을 좀 잘 넣습니다. 하하.
 
  최: 저는 축구에서 항상 수비를 맡습니다.
 
  도: 서로 잘 만났습니다. 언제 한번 남북시합을 하시지요.
 
  최: 저는 공격을 저지시키는 것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수비에서 기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 독재의 질주를 저지시키는 것, 멋있습니다. 중심, 중심이 깨지면 다 깨진다. 그다음은 흐름…. 서로 무지하게 머리싸움을 하지요.
 
  최: 옳습니다. 그것입니다. 공격수의 생각을 미리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혁명조직원의 부모는 모두 고인
 
  도: 아우님, 우리 꼭 이렇게 합시다. 일을 하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죠. 그때도 굳건히 서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다 깨집니다.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제가 그럴 수 있고, 아우님의 평양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꼭 그렇게 합시다. 저는 이걸 아우님과 나의 중심이라고 믿습니다. 시작의 마음으로 굳건히.
 
  최: 예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부친께서 생각의 40%만 수행돼도 성공한 인생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도: 아버님이 작고하셨습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작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네요. 눈물 납니다. 제가 불효자식이거든요. 생전에 한 번도 마음 편히 못 해 드렸어요.
 
  최: 그렇습니까. 제가 군 복무 때 아버님이 돌아갔을 때 집에 못 갔댔습니다.
 
  도: 어머님은 생존해 계십니까. 아우님 모친 말입니다.
 
  최: 어머님도 3년 전에….
 
  도: 아 그래요, 저는 어머님은 생존해 계십니다. 마음이 허전하시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아우님을요.
 
  최: 오히려 마음이 가볍습니다. 만일 우리 일이 잘못돼도 부모님들을 하늘나라에서 데려다 수용소에 보내겠습니까. 어머님께 효도하십시오. 떠나면 그때는 후회만 남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이 하고자 한 일들이 발각되거나 실패로 모두가 죽게 되었을 때, 자신들만 죽으면 되지 아직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연좌제라는 죄목으로 죄 없는 부모님, 처자식까지 처벌되는 살벌한 세상에 남아 있는 나의 아우. 어머님 한 분이라도 생존해 계실 때 효도하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불효자인 필자에게 비수로 가슴에 꽂혔다. 《월간조선》의 표지에 나온 필자를 누군가에 의해 전해 듣고서, “제발 위험한 일 안 하면 안 되느냐”며 나지막이 꾸짖으시던 어머님이 떠올라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도: 그래요. 그런 점에서는 그럴 수 있겠습니다. 부모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도우실 겁니다. 우리 서로 힘냅시다.
 
  아우 자신도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게 뻔했다. 얼핏 자신의 모친이 북한에서는 유명한 공훈배우였다면서 어머님을 따라 수많은 배우를 만난 이야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빨갱이 집안으로 자신의 계급적 토대와 과거를 알면 크게 실망할 거라는 이야기도 말이다. 아우는 곧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뭔가 마음에 부담되는 일이 있을 때 곧잘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필자를 세뇌시키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듯이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통일 시 北 주민들의 운명
 
미국에서 열리는 납북자 규탄대회에 앞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귀환납북자들과 필자(맨 왼쪽).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최: 대표님,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자유민주주의 통일 시에 차려지게 될 북 주민들의 운명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해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우선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남한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도: 강연료를 어떻게 얼마나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명강연자이신데요.
 
  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세가 오릅니다.
 
  도: 아우님의 강의가 대단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다음 호에는 위에서 언급한 아우의 강연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놓을까 한다. 우선 제목을 보면, ‘남한식의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될 때 북한 주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북한 내부에서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체제가 남한보다 더 우월한가’를 설득시키는 것으로, 만약 북이 남에 흡수되었을 때 북한 주민 모두는 지금보다 더한 노예로 전락할 것임을 아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선전·선동술을 필자나 남한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우의 이 글이 너무나 기다려졌고, 막상 그 글을 보았을 때 담긴 내용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아직도 여운이 있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참으로 많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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