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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속의 한반도

4·27 판문점 회담의 평가와 美北정상회담 전망

“회담 실패 시 미국이 북한 공격 확률은 100%”–《더 힐》

글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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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볼턴, 판문점 선언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었던 말들”
⊙ 불가침협정을 맺은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보다 오히려 더 높아
⊙ 4·27 선언, 과거 남북비핵화공동선언, 9·19 선언보다 비핵화에 대해 더 모호해
⊙ 키신저, “핵 동결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핵확산의 계기가 될 것”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회담이 있었다. 김정은이 비록 판문점이기는 하지만 남한 땅에서 한국의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이 만남에 대해 열광했다. 한국 사람들은 무려 77% 정도가 김정은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 모르는 젊은이들 중에 “이제는 군대 안 가도 되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나올 정도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문재인-김정은 만남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이런 약속들이 여러 번 있었고, 솔직히 이번 남북한 간 판문점 선언은 과거의 약속들보다 진전된 바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모호해졌고, 퇴보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뉴스위크》 인터넷 판 4월 28일 자 보도 기사 제목은 이날의 회담을 대단히 시니컬하게 묘사했다. 기사 제목은 ‘김정은의 역사적 회담, 전 세계가 보았다, 북한만 빼고(Kim Jong Un’s Historic Meeting Was Watched All Over the World, Except in North Korea)’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인터넷 언론 매체 중 하나인 《브라이트바트(Breitbart)》는 4월 27일 자 기사 제목을 ‘살인자가 분명한 김정은과의 회담을 낙관하면 안 된다(Enormous Amount of Skepticism’ Is Needed with ‘Explicit Murderer’ Kim Jong-Un)’라고 뽑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반대하는 CNN은 4월 28일 자 보도에서 ‘김정은은 독재자이며 평화회담이 그 사실을 바꾸지 않는다(Kim Jong Un is a tyrant. Talk of peace in Korea doesn't change that)’고 보도했다.
 
  이처럼 미국의 관점을 소개하는 것은 열광적인 한국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북한을 비핵화(非核化)시키는 결정적인 관건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남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다가올 미북회담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4월 27일의 판문점 회담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한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판문점에서의 합의문은 평화에 관한 합의문으로는 9번째, 핵 폐기에 관한 합의로는 3번째가 된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판문점 4·27 합의를 보고 “오래전부터 들었던 말들”이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4월 2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1992년의 남북한 간 핵 합의가 잘 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에 준해서 북한 핵을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침협정이 평화 보장하나?
 
5월 9일 김정은과 만난 폼페이오 美국무장관은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이번 판문점 회담이 개최된 과정을 보면 북한의 핵 폐기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했을 회담이었다. 그러나 핵에 관한 문장은 3장으로 나누어진 합의문 중 3장의 마지막 부분인 4항에 한 줄 정도 언급되었을 뿐이다. 4항을 직접 인용해 보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핵을 없애겠다는 4항의 언급은 상당히 애매하지만, 바로 위 3항은 남북한의 평화에 대해 보다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남과 북은 정전(停戰)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많은 이가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평화가 오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역사를 보았을 때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 불가침협정을 맺은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보다 오히려 더 높다. 당연한 일이다. 전쟁할 가능성이 없는 나라들은 원천적으로 평화협정이나 불가침협정을 맺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 간 종전(終戰)선언은 그동안 북한이 법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왔던 일이기도 하다. 북한은 휴전협정(정전협정)에 반대하고 조인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종전협정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우겼다. 북한의 이런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한미(韓美)동맹의 체결을 대가로 휴전에 ‘반대하지 않은 것’일 뿐이지 휴전을 지지한 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은 ‘한국을 대신’해서 휴전협정에 조인한 것이니 한국도 휴전 당사국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문점 선언의 종전 관련 문항을 읽은 미국 사람들은 “종전선언은 반드시 미국과 북한 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미흡한 판문점 합의
 
  많은 전문가가 이번 4·27 합의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비핵화 약속이 과거 두 번의 비핵화 약속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1991년 12월 31일 선언되었고 1992년 1월 20일 발효된 남북비핵화공동선언과 2005년 9월 19일의 비핵화선언은 2018년 4월 27일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어떠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비핵화공동선언은 총 6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들만 살펴보자.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 핵 통제 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6항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9·19 공동선언 역시 4·27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북한 측이 보유하고 있는 선언문 맨 앞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6자는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조선반도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6자 회담의 목표라는 것을 일치하게 재확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들을 포기하며 멀지 않은 시기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을 리행할 것을 공약하였다.”
 
  이미 북한은 1992년과 2005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를 담당할 기구 및 검증에 대해서도 약속했었다. 남북한 사이에 비핵화 약속이 없어서 혹은 평화협정이 없어서 북한이 핵을 만들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북한이 약속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핵무기와 평화에 대해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대화를 시작한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관념적 혼란에 빠진 북한 관리들에게 김일성이 했다는 말이다.
 
  “남조선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만반의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일단 유사시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게 되면 남조선의 발전된 경제가 다 우리 것이 된다.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이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라고 말했는데 위의 김일성의 언급이야말로 유훈 중의 유훈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 정상은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며 선언문을 마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남북한 양측이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김정은이 한국 정부의 유화정책 때문에 대화에 임했는지, 혹은 미국의 강압정책 때문에 대화에 임했는지 생각해 보자.
 
 
  북한에 억류되었던 미국인들의 귀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10일 펜스 부통령 등과 함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나가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씨 등을 영접했다. 사진=뉴시스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5월 8일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 김정은과 90분 동안 회담을 한 후 북한에 억류되었던 한국계 미국인 3명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정부는 국무장관 전용 비행기와 병원시설을 갖춘 보잉 737기를 북한으로 보내, 억류되었던 미국인 3명을 데리고 온 것이다.
 
  미국은 이들을 데리고 오는 과정을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했다. 보잉 737기는 미국과 북한 간의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없는 비행기로서 평양을 출발 일본 요코다 미 공군기지와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 워싱턴 부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까지 18시간 이상의 비행을 했다. 워싱턴 근교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는 소방차 두 대가 사다리를 서로 맞대고 대형 미국 국기를 게양, 이들을 환영했다. 감동적인 장면은 3인의 미국인이 공항에 도착한 후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직접 비행기로 들어가서 억류당했던 3인을 영접한 후 그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걸어 내려 왔고, 계류장에는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5월 10일 새벽 2시40분경의 일이었다.
 
  마침 미국을 방문하던 중, 이 장면을 밤 깊도록 TV로 지켜본 한국의 국제 정치학자인 필자는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3인 모두 한국인의 피를 나눈 사람들로 성도 김씨들이었는데 저들은 미국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기에 저렇게 풀려 나오게 되었고, 새벽 3시가 다 돼가는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부부의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저들과 똑같은 피를 나눴지만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수많은 한국인 납북자들이 지금도 당하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방송들은 2009년 이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미국인이 처음으로 단 한 명도 없게 되었다고 즐거워하며 트럼프 외교정책상 또 하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인 억류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고 있는 북한이 미국인들을 석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식 외교의 또 하나의 승리라고 말하며 자부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많다. 실제로 트럼프는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다. 김정은을 ‘미친 것이 확실한 인간’이라고 말했고 ‘꼬마 로켓 맨’이라고도 했으며 말로 안 될 때는 언제라도 군사력을 사용하겠다고 협박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최대한 압박 정책을 독트린이라는 말로 미화하기 시작했으며, 트럼프의 최대한 압박 독트린(Maximum Pressure Doctrine)으로 인해 김정은이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맞는 이야기이다.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걸어 나온 것이 아니며, 자발적으로 미국인들을 석방해 준 것도 아니다. 북한은 이들을 모두 미국의 간첩이자 북한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악한 정치범으로 간주하고 감금했던 것이다. 미국의 폭스TV 방송은 북한 관영 매체들이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의 대화 중에도 미국을 격렬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척 슈머 미국 상원의원은 북한이 미국인들을 납치했다가 풀어주는 행동은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북 정상회담 전망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뜸을 들인 끝에 김정은과의 회담 장소와 날짜가 6월 12일 싱가포르라고 결정되었다. 장소의 선택은 미국에 유리한 곳이 되었다고 보인다. 싱가포르는 비공식적인 미국의 동맹이라고 인식되는 곳이다. 미국의 해군이 중립적 입장에서 힘을 과시(demonstration of power)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날아 올 수 있는 가능한 거리이기도 하며 최악의 경우 육로를 이용할 수도 있는 곳이다.
 
  공산주의자들이 회담을 할 때마다 상황 선정에 능한데 이번에는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우선 대화를 앞두고 억류하고 있었던 3명의 미국인을 미국으로 송환함으로써 기선을 제압당하고 말았다. 미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류당한 3명의 미국인은 미국이 최악의 경우, 즉 무력으로 북한 핵을 해결하려 할 경우, 인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국 국민들이 피해를 당할 것을 확실히 알면서 폭격 작전을 결행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 자신의 목표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얼마 전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Irreversible) 해체(dismantlement)해야 한다는 주장인 CVID는 북한에는 더욱 가혹한 PVID로 바뀌었다. 여기서 P란 ‘영구히’(permanent)라는 의미다. 즉 북한은 영구적으로 핵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북한에 핵과학자들을 외국으로 내보내라는 거의 극단적인 조치마저 요구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국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비록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미국 언론들을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화학무기를 제공했음이 확실하다는 보도조차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북한은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을 폐기하고 싶겠지만 일본의 오노데라 방위장관은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에게 북한의 미사일 중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까지 모두 폐기 대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핵 동결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핵확산의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키신저 박사의 언급을 보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북한의 핵을 동결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가 될 것이다. 일본의 핵무장은 미국도, 중국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오노데라의 언급은 우리나라도 당연히 했어야 할 말이었다 .
 
 
  체제보장의 한계는?
 
  북한은 단계별로 핵을 폐기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 말의 본의가 시간 벌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안보 보좌관 존 볼턴은 남북한 간에 이미 존재하는 제대로 된 합의인 1992년의 남북한 비핵화 선언에 기초, 북한 핵을 폐기시키겠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해결방식은 리비아식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먼저 핵을 폐기한 후 체제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 원수가 지속적으로 독재정치를 하다가 반군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방치했다. 일부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카다피의 독재정권이 리비아 국민들의 저항을 받을 때 미국이 리비아 국민들의 반정부 행동을 진압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자신의 독재정권의 지속을 요구할지 모르지만 북한을 올바르게 통치하는 것이 정권 지속의 관건임은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미국은 지금 김정은에게 인권개선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정은이 어느 날 갑자기 민주주의, 개혁주의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핵을 검증하고 해체하기 위해 상당수의 미군 병력이 상당 기간 동안 북한에 진입해서 작전을 전개해야 할 것인데 김정은이 그런 상황을 버텨 나갈 수 있을지, 그래서 현재 미국의 요구들을 들어주어야 할지의 여부는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은 이번에는 북한 핵을 확실하게 제거하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다.
 
  만약 김정은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트럼프는 자신이 수도 없이 약속했던 대로 회담장을 걸어 나오고 말 것이다. 그다음 수순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의미 있는 인터넷 매체 《더 힐(The Hill)》지는 이번 회담이 실패로 끝나면 미국이 북한을 무력 공격할 확률은 100%라고 보도한 바 있었다.
 
  김정은에게는 어느 경우라도 대단히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저지른 일들의 업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회과학자가 연구해 낸 방법론을 적용할 경우 그래도 김정은에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rational choice)은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는 것보다 미국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그동안 능수능란한 유도 선수처럼 미국을 넘어뜨릴 수 있었다. 지금 북한이 상대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500kg 거구의 분노한 고릴라에 비유될 수 있겠다. 꼼수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말이다. 6·12 미북회담을 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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