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북(北)에 억류됐던 어느 종교인이 털어놓는 실상

“라면 맛 알게 된 북한 군인들, 남한 동경하게 돼”

글 : 신승민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최근 한 모임에서 북한 억류상황과 주민들의 생활상 밝혀
⊙ “김일성 빼고 하나님 넣으면 되고, 김정일 빼고 예수님 대입하면 된다”고 강연한 걸 빌미로 특대형 국가전복음모죄로 종신형 선고받아
⊙ “100달러면 10년 군대 복무해야 받을 수 있는 당원증을 즉시 구입할 수 있어”
⊙ “겨울날 산에 올라 곡괭이질… 수용생활 두 달 새 몸무게 23kg 빠져 팔다리 못 움직이고 숨 쉬기 힘들어 잠도 못 자”
2011년 12월 20일 아침 북한 개성으로 향하는 출입구인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에서 군 관계자가 몰려든 취재진을 통제하고 있다. 북한에 3년 가까이 억류됐다가 최근 풀려난 한 종교인은 강연에서 구금 당시 상황과 북한 민생의 실상에 대해 밝혔다. 사진=조선DB
  북한에 3년 가까이 억류됐다가 최근 풀려난 한 종교계 인사가 구금 당시 상황과 북한 실상에 대해 밝혔다.
 
  그는 1997년부터 100차례 이상 북한을 오가며 고아원과 노인 요양시설 지원, 빈민 구호 활동 등 인도주의 사업을 해왔다. 2015년 1월 북한 나선 지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던 중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국가 전복’ 혐의로 무기(無期)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뒤부터 3년 가까이 억류생활을 하다 최근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뼈만 남은 아이들
 
2014년 11월 30일 북한 주민들이 벌거숭이산 넓은 면적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종교인의 강연에 따르면 함경남도의 산지(山地)는 ‘벌거숭이’ 민둥산이라고 한다. 그는 “30년간 나무 심어도 복원이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사진=조선DB
  이 인사는 최근 국내 모임에 참석해 북한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지금껏 실행해 온 대북 인도 지원 민간 사업과 기독교 전도(傳道) 활동, 억류 후 수용생활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했다.
 
  연단에 선 그는 조곤조곤 설명하는 어조였지만 말뜻은 단호했고 내용은 분명했다. 북한에 억류될 당시의 사정과 인도 지원 사업의 성공 사례들, 수용생활의 고단함을 회고할 때는 감회에 젖은 듯 탄식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강연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기력은 오히려 더 생기와 활력을 찾은 듯 보였다.
 
  그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TV 모니터 화면에 띄워놓고 강연을 시작했다. 주로 북한 인도 지원 사업에 관한 사진들이었다.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아이들, 식량 지원과 선교 활동의 기록들, 전답을 경작하는 모습과 교육 사업 결과물 등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은 다양했다.
 
  이 인사는 먼저 북한의 기아 상태를 설명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탁아소마다 마치 콩팥 이상이나 말기 암 환자처럼 복수로 가득한 배와 뼈만 남은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며 “마른 강냉이를 먹고 연명하는데, 걷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1997년도부터 300만이 아사했고 780만이 영양실조 상태”라며 “지금도 고아원 하나에 3000명의 아이들이 수용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천리마 및 만리마 운동’ 등으로 많은 주민이 죽거나 다쳤다고 말했다. 고관들은 여성을 노리갯감으로 삼았고, 그로 인한 사생아(私生兒) 비율이 높다고 했다. 병영 내에서 군인들도 많이 죽는다고 했다.
 
  영양실조로 인해 학생들의 발육상태도 부진하다고 그는 말했다. 14~18세 중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이 한국의 초등학생 정도의 체격이라는 것이다. 남벌(濫伐)로 인한 자원 고갈도 심각하다고 했다. 함경남도의 산지(山地)는 대부분 ‘벌거숭이’ 민둥산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30년간 나무를 심어도 복원이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사진으로 본 평양의 기차들 또한 그의 비유대로 ‘폐차’ 같았다. 문짝과 창문조차 제대로 없었다.
 
 
  “남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것’ 먹나”
 
2009년 4월 7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광명성2호 발사 장면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당시 발표한 뇌졸중 이후 김정일의 모습. 이 종교인의 헌신에 한때는 북한 인도 지원사업에 대해 김정일의 지원까지 있었다. 그는 “언젠가 북한 당국에서 편지 하나를 보내오더라. ‘이분들이 하는 일에 대해 일절 방해하지 말라’는 식의 ‘무사통과증’ 같은 내용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진=조선DB
  이 인사는 이같이 곤경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고자 해외동포 기업가들과 함께 인도적 지원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고 한다. 그는 “해주, 사리원, 청진, 함흥 등 1만350명의 북한 주민들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먹이고 입혔다”고 말했다.
 
  “라면 공장을 운영해 4만 개의 국수 제품을 만들고 해당 공장에서 일하는 주민들에게 급여와 식량을 지급했다. 선양에 있는 라면 20억원어치를 사서 트럭 1500대에 나눠 실어서 원산 고아원과 군인들에게 지급했다.”
 
  이 인사는 “한국 라면의 맛을 알게 된 북한 군인들은 적개심 가득했던 눈빛을 고치고 남한에 대한 동경심을 키웠다”고 말했다. 북한 군인들은 “어떻게 남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것(라면)을 먹을 수 있느냐”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는 “18년간 수만 톤의 식량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그의 지원 사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후원자의 기부로 안경 80만 개를 기증했고, 의사 출신이 북한 주민을 치료했다. 양로원을 짓고, 영어 교육을 했으며,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운동도 했다. 가발공장 운영, 블루베리 경작 자문 등을 했고, 함경북도 내 큰 호수를 논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위생 관리를 위해 2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목욕탕을 지었으며, 도서관도 지었다. 북한 스포츠 선수들의 설비 등도 지원했다.
 
  이 종교인의 헌신에 한때는 해당 지원 사업에 대해 북한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북한 당국에서 편지 하나를 보내왔다. ‘이분들이 하는 일에 대해 일절 방해하지 말라’는 식의 ‘무사통과증’ 같은 내용이었다.”
 
  그에 따르면 18년간의 대북 인도 지원 사업 추진을 통해 150번가량 북한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왜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던 것일까.
 
 
  “곡사포로 당신을 죽이고 싶다”
 
  이 인사는 억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평양 및 나진 선봉 등 북한에 지원 사업을 하러 갔다가 조사 당국에 잡혀 10개월을 조사받았다”며 “국정원과 관계됐는지, 미국과 관계됐는지 등 18년간 내가 북한에서 인도 지원 사업을 벌인 것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최고존엄 모독’으로 사형이 구형됐다. ‘수령과 인민을 갈라놨다’는 이유였다. 이후 ‘특대형 국가전복음모죄’로 변경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북한 조사 당국이 ‘계급적 원수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계급적 원수는 절대 안 변한다’는 북한의 철학이었다. 일종의 ‘씨암탉’ 개념이다. 공산당의 철칙으로, 계급적 원수는 새끼를 쳐서 계속 북한 사회를 불온하게 만들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실컷 도와줬는데 결국은 그렇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과거 했던 발언들도 문제가 됐다.
 
  “한 강연에서 ‘북한은 (김씨 부자 숭배 등으로) 신학적 오리엔테이션이 잘 활성화돼 있다’ ‘김일성을 빼고 하나님을 넣으면 되고, 김정일을 빼고 예수님을 대입하면 된다’는 등 얘기하며 북한에서의 기독교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김씨 왕조 우상숭배 비판을) 조금 세게 했다. 북한 관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걸 녹음한 것을 들이밀었다. 당시 제일 계급이 높았던, 김일성주의에 도취된 조사관은 나를 ‘그냥 죽이고 싶지 않다. 곡사포로 널 죽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최고존엄, 즉 수령 모독죄에서 다시 특대형 국가전복음모죄가 씌워지고 죄명 몇십 개가 더해졌다고 한다. 당시 그는 겨울철에 두 달간 중노동을 한 결과 몸무게가 23kg이나 빠졌다고 한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고 손가락도 굽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급격하게 살이 빠져 숨 쉬기가 힘들어 밤에 잠을 못 잤다고도 했다.
 
  “겨울날 산에 올라가 곡괭이질을 했다. 중노동에 몸 위에서는 땀이 흐르는데 발은 양말 4개를 신고도 너무도 시렸다. 새카맣게 동상이 걸려 의사에게 보이니 ‘조금만 더 지났으면 절단했어야 했다’고 했다. 여기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더해졌다.”
 
 
  북한 감독관, “당신을 친구 삼고 싶다”
 
  그는 금식기도를 하며 고된 노역을 버텨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들어가서는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창문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는 병원은 수용소보다 편했지만 역시 감옥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잠자는 시간 말고는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나의 강인한 신심에 놀란 한 북한 감독관은 ‘이번 사건만 아니면 당신을 친구 삼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나의 설교 내용 5년 치를 독파하며 자신도 모르게 감화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종교인은 당시를 회고하며 “사실상 내가 VIP였더라”고 말했다. 50명 정도의 감시 및 보조인원이 자신이 혼자 있는 옥사를 관리했으니 일종의 특별대우 아니냐는 역설적 얘기였다.
 
  “그때가 내가 목회를 한 지 30년이 되던 해였고 환갑에 이른 나이였다. 나도 모르게 깃든 매너리즘을 치유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내가 당시 좀 흔들려서 ‘한 6개월 정도 수도원을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걸 다 들으시고 거의 완벽한 수도원을 2년 넘게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 아닌가 싶다. 당시의 억류 생활이 나의 영적 청춘을 회복시켰다.”
 
  이 인사는 병원과 수용소에 있을 때 TV로 북한의 뉴스를 접하고 북한서적도 100여 권 정도 읽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 보도에서는 정식 뉴스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심한 욕설과 폭언, 증오, 적개심 등을 표출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방도 일삼았다고 한다. “그냥 죽이면 안 된다. 때려죽이고, 말려 죽이고, 태워 죽여야 한다”고 극언했다고 한다.
 
  그는 “지원 사업을 통해 북한을 오가고 억류 생활하는 동안 공산주의의 폐해를 직시하게 됐다”고 했다.
 
  “교육도 의료도 무상이지만 병원에는 치료약이 없다. 학교에는 공책이 없다. 공산화의 의미가 없다. 인민들의 배급량은 줄었다. 달러 가치는 높아 100달러면 10년 군대 복무해야 받을 수 있는 북한 당원증을 즉시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암시장이 발달했다. 북한 관료사회는 형식주의와 거짓 보고가 일상이다. 그로 인한 북한의 인적, 물적 피해는 공식 집계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종교인은 “북한을 지금도 잘 모르지만 억류돼 수용 생활을 하면서 하나는 제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베풀고 주는 자로서만 다녔지, 주민들의 고난에 직접 동참하지 않았다. 수년간 구금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도 인도적 지원해야”
 
동해선 북한 쪽 출발역인 금강산청년역 근처에서 북한 주민들이 철도 보수를 하고 있다. 이 종교인은 강연에서 자신을 억류한 북한을 여전히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살려야 민족의 장래가 있다”며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운 친남파(親南派)는 죽고, 적대적인 고위급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조선DB
  강연 말미에 이르러 그는 북한과 달리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상위 5%, 10% 이상에 드는 국가”라며 “앞으로 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북한을 여전히 용서하고 사랑한다”면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살려야 민족의 장래가 있다.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운 친남파(親南派)는 죽고, 적대적인 고위급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난은 통과하지만 번영은 통과하기 힘들다”면서 “어려움은 이겨내도 번영은 도취돼 쓰러진다. 잘산다고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회복할 기회를 주실 때 정신 차리고 새벽기도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회 : 17060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2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박혜연    (2017-12-26)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11
알고보니 저 종교인이 바로 캐나다 큰빛교회 담임목사이신 임현수목사님이넹 ㅡㅡ
  박혜연    (2017-12-26)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6
인간아!!!! 너희같은 애국우파들만 단식하고 종북좌파들은 단식도 안하냐 실없는소리를 하고있네!!!!

2018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