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보] ‘전승절’ 북한 방문한 중국 사진작가의 북한 여행記 : 월간조선

중국의 유명 여류 사진작가 루산(盧珊)이 7월 24일 6·25 정전(停戰)을 기념하는 ‘전승절’(戰勝節·정전협정일은 7월 27일로 북한에서는 이를 전승절로 부른다) 60주년 행사 기간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렸다. 루산은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新浪)에서 팔로워(follower) 5만을 거느린 ‘파워블로거’로, 누적 방문자 수가 833만명에 달한다. 이 중 루가 현지에서 찍은 사진 십수 장과 함께 최근 올린 ‘북한 여행기’ 두 편은 최근 중국 네티즌 15만명이 구독했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8월 11일 루산과의 전화 인터뷰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행기를 추가로 입수해 전승절을 맞은 평양의 최근 분위기를 정리해 봤다. 그가 일기 형식으로 쓴 원문을 최대한 살렸음을 밝혀 둔다. 다만 중간 제목은 실정에 맞게 바꿔 달았다.

2013년 7월 24일

북한 여행을 위해 주거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7월 초 베이징(北京)으로 귀국했다. 때마침 미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베이징에서 휴식기를 가지려 했고, 어머니와 떠날 마땅한 여행지를 물색하던 참이었다. 우리 모녀는 23일 저녁 베이징을 출발해 랴오닝(遼寧)성 단둥(丹東)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고, 이튿날 아침 현지에서 북한 전문 여행사의 문을 두드렸다. 3박4일 일정으로 여행사에 1인당 3280위안(약 60만원)을 지불했다.

우리처럼 당일 여행사에 도착한 중국인 관광객 40여 명으로 팀이 꾸려졌다. 일행은 단둥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에 탑승했고, 신의주 세관을 거쳐 다시 목적지인 평양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평양에 도착해서는 버스 두 대에 20명씩 나눠 탔다. 각각의 버스엔 중국어가 가능한 북한 현지 가이드 2명이 동행했는데, 실상은 관광객들의 행동거지를 미행하려는 목적이 더 큰 듯했다.

북한으로 국경을 넘어가면서 들른 신의주 세관 직원들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담배며 술이며 무엇이든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의 짐가방을 샅샅이 뒤지던 북한의 세관 직원들은 유독 내 카메라와 소지품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북한 세관 직원은 내 가방에 있던 커피음료를 꺼내더니 능숙한 중국어로 “밀크티(奶茶)인가?”라고 말했고, 내가 “커피예요. 라떼”라고 답하자, 그가 곧 병 뚜껑을 열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음료를 꿀꺽꿀꺽 소리까지 내가며 마셔 버렸다. 내가 먹다 뚜껑을 닫아 놓은 라떼를 마시며 지어 보인 그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기차를 타고 5분만 가면 단둥의 상점에서 양껏 살 수 있는 그 커피를, 그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인 양 마셔 버리고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편으론 측은지심이 들었다.

세관의 검사는 으레 하는 통과의례처럼 무사히 끝났다. 짐 검사를 마친 뒤 다시 신의주역에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에 탑승했고, 우리 일행은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목적지인 평양에 도착했다. 북한 여행은 2008년에 한 번,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5년 만에 방문한 평양은 전보다 발전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30년 전의 중국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평양의 도시 분위기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조선전쟁(6·25) 정전협정일인 ‘전승절’ 행사 준비에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전승절 준비를 위해 평양 시내는 열병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3박4일 동안 우리는 광복로 인근에 있는 청년호텔에 묵었다. 원래는 외국인 전용호텔인 양각도호텔에 묵었어야 했으나 전승절 행사로 당국이 시 중심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모양이었다. 평소 이렇게 많은 외국인을 관리해 본 적이 없는 북한이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설명부터 해야겠다. 북한 여행은 지정 여행사를 통한 단체관광만 가능하다. 여행일정 중 개인행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단체관람만 허용된다. 호텔에서도 바깥출입 은 엄격히 통제됐다. 24일 북한에 도착한 우리와 전 일정 동행한 북한 가이드는 예쁘장한 얼굴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벌금을 내야 하고 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어떤 이들은 이들 가이드가 새벽 4시부터 호텔 로비에 앉아 관광객들의 출입을 감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포장마차에서 김밥을 샀는데 안에 밥만 있어

평양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파는 아가씨와 메뉴판.

일정은 평양에 도착해 아리랑공연을 보고, 만수대와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등을 돌아보는 정도였다. 이번 여행에서 단체 여행객 숫자가 40명인 것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다. 지난 2008년 방문했을 때는 여행객이라고 해야 고작 8명이 전부여서 가이드의 감시망을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이번 북한 여행을 계획하면서 틀에 박힌 관광지를 가려고 북한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기회가 된다면 시내 곳곳을 돌아보고 북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이드의 감시망을 피해 두 차례에 걸쳐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 번은 저녁 7시에, 이튿날은 새벽 6시에 주변 눈치를 살피고 혼자 시내구경을 했다. 처음 호텔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몹시 긴장도 됐고, 한편으론 설렜다. 북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름 ‘변장’도 했다. 색감이 죽어 있는 소박한 옷을 골라 입었고, 머리도 풀어 단정하게 내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북한에 있는 모든 인민이 왼쪽 가슴에 단 김일성·김정일의 얼굴이 새겨진 쌍상(雙像) 배지가 없었다. 배지가 없어 허전한 가슴을 대신 어머니의 검정 크로스 백으로 가렸다.

바깥으로 나와서 본 평양 여성들의 차림새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하이힐을 신고 있었고, 슬리퍼 차림은 나뿐인 것 같았다. 화장은 또 어찌나 뽀얗던지, 그들 틈에 섞인 내가 마치 아프리카인이라도 된 듯했다. 누가 보더라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 같았다.

길을 걷다 작은 상점을 발견했다. 과자 등을 파는 잡화점이었는데,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상점 주인이 직접 만든 요구르트를 하나 맛봤는데 맛이 원료 그대로였다. 북한에서는 아직 ‘첨가제’를 넣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듯했다. 지갑에서 1위안(약 180원)을 꺼내 주었는데 주인이 받았다. 현지 주민에게 인민폐를 주는 것을 당국은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과주스를 사고 또 지폐를 내밀었는데 점원이 너무 많은 양의 북한 돈을 거슬러줬다. 북한 돈은 가치가 없어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인민폐를 좋아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북한 당국은 이런 현실이 여행객들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한다. 이후 들렀던 가게 몇 곳에선 인민폐를 받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평양의 밤거리는 제법 활기차 보였다. 불을 밝힌 채 노상에서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몇 곳을 지났고, 자장면과 꼬치류, 쟁반국수 등을 파는 모습을 구경했다. 음식을 파는 북한 아가씨는 정말 예뻤다. 중국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이곳에서 김밥을 샀는데 호텔에 돌아와서 보니 안에 밥만 들어 있었다. 숙소에 있던 관광객들에게 오늘 보고 들은 내용을 전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내 얘기를 듣고 이튿날 저녁 몰래 바깥으로 나갔다. 그도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7월 25일

통근시간 평양의 전차. 통근시간인데도 거리는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 9시에 일정을 시작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나는 이보다 3시간 전인 새벽 6시에 또 한 번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어머니를 대동했다. 평양의 아침 풍경과 주민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호텔에서 나온 우리를 본 한 북한 여성이 우리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꽃무늬 상의와 흰색 치마를 입은 이 여성은 우리 여행단의 감시를 맡은, 북한 당국에서 보낸 사람으로 보였다. 처음엔 같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착각했으나 이어 그의 왼쪽 가슴에 단 배지가 눈에 띄었다. 약간 긴장이 됐지만, 그가 제지할 때까지 계속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이때는 가슴 졸이느라 카메라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문을 나서자마자 오른쪽에 한 자동차 광고가 보였다. 북한의 인기 자동차브랜드인 ‘평화자동차’였다(평화자동차는 1999년 북한 남포직할시에 설립한 남·북한 합영 기업이다). 평양의 길거리에서 광고판을 만나는 일은 드문 편인데, 국산인 이 자동차는 예외인 듯했다. ‘자국의 차를 광고해 주겠다는데 설마 제지할까’ 싶어 용기를 내 사진기를 꺼내 찍었다. 뒤돌아보니 다행히 우리를 미행했던 북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평양의 아침풍경은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었다. 출근하고 등교하는 이들 틈에 섞여 거리를 걸었다. 도로엔 버스가 오갔고, 환경미화원이 길을 쓸고 있었다. 공기도 맑았다. 평양의 아침을 본 어머니는 옆에서 “이 장면, 마치 내 어릴 적 기억 속 베이징과 흡사하다”고 했다. 도시를 도는 전기버스와 정류장엔 그 흔한 광고 하나 없었다. 대신 풍경화만 보였다. 아침 출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베이징이나 상하이(上海) 같은 도심의 출근 풍경과는 사뭇 다른, 한적한 모습이었다.

등굣길의 학생들. 빨간 스카프가 공산주의 국가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때 북한 주민 2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 슴까?” 하고 물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뒷말만 들었다. 무언가 물어보는 듯했는데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궁금했던 걸까. 왜 가슴에 배지를 차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일까, 아니면 북한말을 할 줄 아는지 확인하려는 걸까? 중국에 돌아가면 북한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외국인을 거리에서 만났으니, 아마도 환전을 해 달란 뜻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침거리를 산책하며 상점 몇 곳을 더 둘러보았는데 중국처럼 아침식사를 파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가게는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중간에 과일을 파는 가게도 보았는데, 과일은 북한에서 매우 귀한 것이고,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평양의 상점은 똑같은 제품을 많이 진열해 놓는 게 특징인가 보다.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1970년대 일본을 처음 방문한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당시 일본에서 “쇼윈도에 진열품이 참 많다고 느꼈다”고 했다. 198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옷가게, 골동품 같은 시계가 잔뜩 걸린 잡화점 등을 지났고, 비누와 수건의 색깔을 구분해 마치 글씨를 쓰듯 ‘전승(戰勝) 60돌’이라고 진열해 놓은 잡화점에도 들렀다. 2012년 문을 연 쇼핑센터인 ‘광복지구상업중심’도 보였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의 65％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큰길가로 나오자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평양의 아파트 단지엔 근린시설이 제법 잘 갖춰져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도 많았다. 외부만 예쁘게 페인트칠했다면 오늘날의 베이징이라고 할 법도 했다.

호텔에서 2km쯤 걸어왔을까. 지하철역으로 가는 육교를 지나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호텔에서 나왔을 때 우리를 미행하던 그 북한 여성이 아직도 뒤에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올 동안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었어.” 그의 모습을 본 엄마와 나는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너무 무서워 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현지 안내원들은 왜 그렇게 예쁜지…

한복 차림의 얼굴이 고운 이 여성은 개선문 안내원이다.

이번 평양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으라면 만수대를 들고 싶다. 만수대는 평양직할시 19개 구역 중 하나인 중구역(中區域)에 위치한 높이 84m의 작은 산이다. 25일 평양 만수대 언덕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대형 동상 앞엔 많은 북한의 여성들이 꽃을 들고 서 있었다. 이들 중엔 한국의 전통 복장인 한복 차림으로 헌화를 준비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만수대 입구 주변으로 5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말끔한 형상의 빨간색 택시와 운전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만수대에서 오는 전승절에 열병식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 중인 동지들도 만났다. 내가 카메라를 가져가자 렌즈를 향해 웃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이 가리는 사람도 있었다.

평양 관광지 곳곳에서 만난 현지 안내원들은 참 예뻤다. 특히 평양 모란봉구역에 김일성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인 개선문에서 만난 여성 안내원은 나이는 들어 보였으나 연륜이 느껴졌고, 기품있고 고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리에서 만난 평양의 학생들은 교복차림이었다. 솔직히 어릴 적 내가 입었던 교복보다 더 예뻐 보였다. 머리에는 꽃핀을 찌르고 있었고, 목에 두른 붉은 삼각건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날 만경대에 있는 김일성 생가에는 조선전쟁 남녀 노병(老兵)들이 군복차림으로 대거 참관하러 왔는데, 관록을 드러내는 표정 모두를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관람 일정이 촉박해 일일이 담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며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현지 주민을 발견했다. 올해부터는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3G 망으로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평양공항에서 인민폐 50위안(약 9000원)이면 전화번호를 살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한 내부로 휴대폰을 가지고 올 수 있게 됐으나, 현지 기지국이 부실해 사실상 사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거리에 흰색 셔츠와 회색 바지 차림의 청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도 전승절 열병식의 예비훈련에 참석하기 위해 복장을 갖춘 듯했다.

7월 26일

판문점, 가깝지만 닿을 수 없는 곳

전승절을 맞아 북한 노병들이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참배하고 있다.

평양은 두 번째 방문인 데다, 위험을 무릅써 가며 몰래 찍은 사진 등을 블로그에 올리자 주변인들은 “왜 하필 평양이냐”고 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평양의 변화를 보고 싶었다. 세계에 하나뿐인 이 신기한 국가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곳곳에 뉴스거리로 가득한 점이 신기했다. 심지어 내 주변의 몇몇 한국 친구들은 “아니, 우리도 북한에 관심이 없는데 넌 왜 이렇게 관심이 많니” 하고 묻기도 했다. 어떤 이는 “차라리 서울에서 쇼핑하는 게 낫지 않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난 평양에서 이것저것을 보는 게 좋다.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5년 전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거리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을 향해 내가 렌즈를 들이대면 그들은 모두 경계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런 점이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많은 이들이 내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마 내가 여행한 이 며칠 동안의 기간이 평양은 전승절 같은 기념행사 주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도시가 안팎으로 시끌벅적했고 사진을 찍을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베이징이 중국 전체를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평양이 북한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어서 주제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9월 평양을 처음 여행했을 때 일이다. 당시 북한의 판문점에서 본 서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를 판문점으로 안내한 북한 가이드의 말이다. “저기 보이는 곳이 한국의 서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건너갈 수가 없어요. 조국이 통일되면 다음 번에 다시 방문해 주세요. 그럼 갈 수 있습니다.” 가이드의 말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 났다.

북한의 개성, 한국의 서울 경계에 있는 판문점은 서울 서북쪽에서 48km, 개성 동쪽 10km쯤에 있다. 과거 작은 마을이었던 이곳은 행인들이 거치는 역참(驛站)이었다. 이후 1953년 휴전협정인 이른바 ‘정전협정’에 서명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 여기서 서울까지는 약 70km쯤, 차로는 1시간 거리다. 정말 가깝지만 닿을 수는 없다. 우연찮게 나는 평양을 방문한 이듬해 1월 서울을 여행하게 됐고,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판문점을 찾았다. 이곳에서 당시 내가 서 있었던 북한의 판문점 쪽을 계속 바라봤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북한과 한국을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숫자는 193.60km이다. 숫자는 평양을 처음 방문한 이듬해 한국을 찾았을 때 서울 남산타워에서 본 것이다. 남산타워 전망대 조망 유리에 새겨진 193.6이 의미하는 숫자는 그곳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야경을 보기 위해 오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모습은 불야성 같았다. 이 밝은 불빛 너머에 있는 북한이 또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2008년 9월 평양 양각도호텔의 회전식 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본 평양의 야경이 떠올랐다.

평양의 부촌(富村)을 가다

북한의 옷가게.

다시 평양이다.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현지 여행사가 데려가는 필수 코스는 우의(友宜)상점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특산품을 파는 곳인데, 고국에 돌아가 지인들에 줄 선물을 마련하기 좋아 중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보통은 여행 일정이 끝나갈 무렵 데려간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일찌감치 선물을 사 뒀다. 우의상점을 빠져나와 주변 동네를 조금 더 둘러보려는 심산이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우리 단체에 감시 가이드 두 명이 따라붙었고, 우리 일행이 모두 상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들도 상점으로 따라 들어왔다. 나는 상점의 물건을 둘러보는 척하다 가이드들이 다른 여행객들에 집중하는 틈을 타 몰래 빠져나갔다.

우의상점은 평양 개선문과 공설운동장 인근에 있었다. 평양에서는 이른바 부촌(富村) 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동네로 접어드는 골목의 길거리엔 과일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었다. 사과, 배, 복숭아 정도로 종류는 많지 않았다. 나는 과일가게 주인이 인민폐를 받아줄지 반신반의하며 10위안(약 1800원)을 내밀고 배를 가리켰는데, 내 얼굴을 힐끗 본 주인이 겨우 배 두 개를 내줬다. 터무니없이 비싸게만 느껴졌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며칠 전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와 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월급이 월 200위안이라는 말을 들은 터였다. 북한에서는 가이드라는 직업이 준공무원에 속하는, 이른바 ‘체면치레’ 업종에 속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과일가게를 지나자 채소가게가 보였다. 이 가게에서 파는 것이라곤 오로지 작은 고추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골목길 탐방에 동행한 어머니가 “내 어릴 적 베이징 골목 상점들 같다”고 했다. 어머니가 어릴 적만 해도 오후에 채소가게가 문을 열면 동네에 긴 줄이 늘어섰다고 한다. 고추만 있으면 배를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고추를 사다가 볶아 밥에 비비면 그날의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평양 시민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고 지내는지 묻지 않았으나, 어머니의 눈에 비친 평양의 시장 풍경은 흡사 베이징의 옛 모습을 닮아 있었다고 했다.

시장을 구경 중인 우리 모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이발소와 옷가게 등을 지날 때 이곳에 있는 주민들이 우리를 심상찮게 바라봤다. 나는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이었고, 언밸런스한 주황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본 대다수의 평양 여성들은 모두 복장이 단정했다. 내 옆에 있던 엄마는 덩치가 산만 해서 누가 봐도 북한 사람 같지 않았다. 내가 북한에서 본 여성 중 살이 찐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우의상점에서 기념품 구매를 마칠 시간이 된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소프트 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발견했고, 인민폐를 내밀었으나 거절당했다. 전날 상점에서 요구르트를 사고 남은 돈 2000원을 내밀자 그제야 거스름돈 없이 아이스크림콘 한 개를 내밀었다. 오는 길에 나와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현지 주민들과 마주쳤고, 내가 평양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괜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우의상점으로 돌아오자 멀리서 가이드 중 한 명이 우리를 향해 황급히 손짓했다. 그의 눈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인근 주민 거주지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상점으로 돌아온 우리 모녀를 심하게 타박하지는 않았다.

7월 27일

김정은 보고 웃고 떠들자 TV꺼

전승절 열병식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행사장으로 모이고 있다.

27일은 여정의 마지막 날이자 전승절 당일이기도 했다. 오전 10시쯤 호텔에서 짐을 꾸려 나와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평양역에 도착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승절을 기념하는 열병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차를 기다리는 대기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북한 주민들과 우리 일행은 함께 열병식 생중계를 지켜봤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대기실에 들어와 소란스럽게 사진을 찍는 등 누가 봐도 관광객 티를 냈다. 텔레비전에서 생중계 중이던 열병식 행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화면은 김정은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텔레비전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꺼졌다. 모두 정전(停電)인 줄로만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곳의 전기는 모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생각해 보니 경건한 자세로 지켜봐야 할 열병식 장면을 두고 우리 일행이 소란을 피운 탓에 기차역에서 텔레비전의 전원을 차단해 버린 듯했다. 김정은이 등장하는 장면에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단둥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또다시 신의주 세관을 거쳤다. 과장을 좀 더 보태자면 정말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휴대하고 있던 카메라를 일일이 켜더니 사진 한 장 한 장을 돌려보며 지우기 시작했다. 북한에 ‘몹쓸’ 사진이 있는지 찾으려는 원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여행객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빌미를 찾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세관 직원은 내 옆에 있는 일행의 가방에서 중국 담배 한 보루를 찾아냈다. 직원이 “이건 뭐요?” 하고 물으며 이 남성을 들들 볶았고, 남성이 이해했다는 듯 “가져다 피시죠”라고 말하자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만면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인 한 호주 청년은 이날 세관 직원들의 집중 타깃이 됐는데, 이 가난한 외국인 배낭여행객의 가방에서 이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 호주 돈 있나? 조선(북한) 화폐와 바꿔 주겠네!”라고 말했다. 북한의 돈을 가지고 국경 밖을 나가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터였다.

전승절을 맞아 북한 여성들이 헌화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불미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내가 줄을 선 검색대에서 세관 직원이 가방 검사를 하는 동안 한쪽에선 북한 직원이 중국 관광객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이 이 여성의 남편에게 발각된 것이다. 남성과 세관 직원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말싸움은 끝날 줄 몰랐다. 내 검사가 끝나 나는 기차에 탔고, 이로 인해 단둥으로 출발하는 기차의 출발 시각이 지연되기도 했다. 세관을 통과하며 느낀 점은 북한 세관 직원들의 ‘날강도’ 같은 심보와 음흉한 행태다. 사람의 본성이란 게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일까.

북한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북한 가이드가 매 순간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는 가이드가 길거리에 있는 신축 고층 아파트의 절반이 비어 있는 것을 가리켜 “나중에 통일되면 남쪽 동포들이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같은 중국인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국과 대만의 감정이랄까. 지난 2009년 방문한 한국에서는 상반된 반응을 느꼈다. 서울에서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통일에 놀라울 만큼 무감각했다. 당시 서울에서 4년 동안 생활했다는 캐나다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한국 사람은, 특히 젊은이들은 북한에 관심이 없어. 북한이란 나라가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지. 마음 아픈 일이야.”

이 말이 정말인가 싶어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몇 달 전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평양 사진을 보여줬다. 이들은 깜짝 놀라며 “아, 북한 국기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판문점은 가 봤니?” 하고 묻자 그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중국인과 외국 관광객들도 한 번씩은 가 보는 판문점을 가 보지 않았다는 말이 나는 정말 이상하게 들렸다.

시간이 물처럼 흐른다 해도 동포의 피는 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한반도를 여행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차를 타고 평양에서 서울을 건너가고 싶다. 그때쯤이면 두 도시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겠지.⊙

상단주메뉴

북한정보

‘전승절’ 북한 방문한 중국 사진작가의 북한 여행記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