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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정상회담 그 후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이렇게 당했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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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거래의 달인’이 생존을 건 외교를 하는 북한정권에 당한 것
‌⊙ 동북아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판도라 상자를 누가 닫을 것인가? 연극이 끝날 때 한국인이 최대 피해자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
⊙ 전술핵만 재배치하였더라면 할 필요가 없는 모험이었다
‌⊙ “분별력이 마비된 한국인, 살리려면 주한미군을 빼내 벼랑에 세워야”(조슈아 스탠턴)
미국 내에서는 한국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04년 8월 이라크로 파병되기 위해 오산기지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미2사단 2여단 장병들.
  6월 12일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 공동 합의문이 나오자마자 전직 대사 한 분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트럼프를 국제질서 파괴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G7 회의는 깽판 치고 김정은에게는 속아 넘어간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를 단죄할 국제법은 없지만, 김정은을 반(反)인류범죄자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해야 한다는 유엔총회의 결의문이 살아 있는데, 세계 최악의 도살자(屠殺者) 앞에서 “만나서 영광이다”고 했던 트럼프가 희대의 사기극 피해자가 된 점은 분명하다.
 
  4개항 합의문의 제3항이 핵심인데 그 내용은 북한의 비핵화(非核化)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을 걸고 들어가는 한반도 비핵화이다.
 
  〈2018년 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판문점 선언문의 해당 문장 속엔 북한정권이 핵보유국 입장에서 핵군축 협상에 나서는 것을 한국이 지지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절대로 북한의 일방적 핵폐기 약속이 아닌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 약속을 관철시키겠다고 다짐한 것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김정은의 문법대로 나온 합의문이었다. 부시 정부 때 나온 2005년 9월 19일 선언보다 훨씬 후퇴한 합의이다. 트루먼이 살린 한국을 트럼프가 망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주는 합의였다. 부동산 거래의 달인이 생존을 건 외교를 하는 북한정권에 당한 것이다.
 
  정치인이 허영심에 빠지면 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트럼프도 하지 않았어야 했을 회담을 했다가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처럼 역사에 오명(汚名)을 남기게 되었다. 전쟁을 하지 않고는 없앨 수 없는 북한의 핵무기를 협상을 통하여 없애려고 덤벼들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문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나중에는 자신마저 속이는 과정에서 희생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쪽은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너무 잘 먹혀들어 놀랐을 것
 
  문재인 대통령은 수도권을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보호하는 데 시급한 사드 추가 배치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방어 훈련도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면서 금지하는 바람에 적전(敵前)·핵전(核前) 무장해제 상태로 만들어도 언론과 국민, 그리고 야당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는 한국인의 자위(自衛) 의지를 의심하였을 것이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한 부분은 후보 시절부터 표가 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연합 또는 낮은 단계 연방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해 온 점일 것이다. ‘헌법위반’이니 ‘적화(赤化)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은 모습에 존경심마저 생겼을지 모른다.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습니다.”(정의용)
 
  김정은은, 지난 3월 초 자신을 만나고 돌아간 정의용 특사가 발표한 이 내용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로 보도되는 데는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였지만, 트럼프가 미끼를 무는 것을 보고는 한국 정부가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한 ‘비핵화 사기극’은 굴러갈 것이라고 자신하였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미동맹 해체를 노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선대(先代)의 유훈’ 운운한 것뿐인데, 한국 언론뿐 아니라 세계 언론이 ‘김정은이 핵포기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여기에 미국 정부도 호의를 보이는 데 무릎을 쳤을 것이다. 트럼프가 정 특사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하였을 때는 자신의 전략이 너무 잘 먹히는 데 오히려 당황하였을지 모른다. 이는 문재인 정권이 객관적 중계자의 입장을 넘어서 적극적 협력자 역할을 해준 결과라면서 거듭 감격하였을 것 같다.
 
 
  절묘한 용어 전술 ‘완전한 비핵화’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을 앞둔 지난 4월 19일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면서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의 종식, 자신에 대한 안전보장을 말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48개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면서 “비핵화 개념에서 (남·북·미 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는 영어로 ‘complete denuclearization’이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뜻하는 것으로 오인(誤認)될 수 있다. 4·27 판문점 선언에도 이 용어가 들어갔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문 대통령의 설명과는 달리 선언문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다. 이 대목은 북한의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를 뒷받침하여 미국의 핵도, 북한의 핵도 같이 없앤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새 용어가 전문가들을 속이진 못하였지만 언론이 별도 설명 없이 보도함으로써 일반인들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김정은이 수용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런 목적으로 북한의 전문가가 고안한 용어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확산을 금지한다든가, 동결하는 선에서 미국과 협상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 대해) 확인됐기 때문에 북·미 회담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바로 다음 날 문 대통령의 이 말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하여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선언하고, 앞으로는 핵군축 회담에 나서겠다고 다짐하였던 것이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문 대통령의 중대한 실언을 추궁하였어야 했으나 오히려 핵보유국 선언을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왜곡 보도하여, 독자들을 또 다시 오도(誤導)하였다.
 
 
  문재인의 이중전술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김정은은 한국 및 세계 언론이 너무나 잘 속는 데 놀라면서 다소 거북하게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북한이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실소(失笑)하지 않았을까?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주한미군의 위상변경 밀약이다. 대북(對北) 적대 자세를 버리고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 바뀐 주한미군이라면 동북아의 안정을 위하여 통일 이후에도 주둔해도 좋다는 합의였다.
 
  주한미군 법무관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 조슈아 스탠턴은 김정은-문재인 정권이 주한미군을 밀어내거나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데 ‘민족공조’할 것으로 본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freekorea.us)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 정부가 미국을 향하여 떠나 달라고 이야기하면 존중해야 한다. 아직은 문재인이 그렇게는 바라지 않는다. 그가 서둘러 그렇게 하면 정치적 반발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으로선 문정인을 이용하여 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게 해 놓고는 자신은 이를 부인하는 전술을 쓴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이중(二重) 전술을 쓰는데 이게 먹혀들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워싱턴에는 문정인이 사적(私的) 견해를 밝힌 것뿐이라고 안심시키면서 평양에는 다른 신호를 보낸다.
 
  중도 보수층은 미국이 제공하는 따뜻한 안보 담요로 몸을 감싼 뒤 잠자리에 들 것이지만 문재인은 그의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검열행위를 점진적으로, 내밀하게 진행할 것이다.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한국인들은 결국 문재인에게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주게 될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잘못 명명된 민주투사 임종석에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주어 헌법을 고치고, 내가 가정하고 있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한국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문재인이란 열렬한 협력자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찬. 이날 만찬은 친북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음식들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김정은은 4월 27일 판문점으로 나오는 게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문재인 정권이 너무나 따뜻하게 준비해 주니 자신감이 생겼으리라. 평양에서 자신들이 연출하는 것보다 더 세련된 우호적 무대 장치가 마련되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당일의 만찬메뉴를 소개하며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뜻을 담아 준비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 해역에서 잡히는 민어와 해삼으로 만든 ‘민어해삼 편수’, 윤이상의 고향 통영의 문어로 만든 ‘문어냉채’,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간 서산농장의 ‘한우숯불구이’ 등.
 
  한 언론인은 “정상회담이 아니라 음식 전시회를 준비하는 듯하다. 죽은 사람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잔칫상이 아니라 제사상 차리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지난 6월 초,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김정은의 이미지가 핵 미치광이에서 유능한 지도자로 바뀔 수 있었느냐’를 분석하였다. 이 신문은 〈김정은이 문재인이라는 아주 열렬한 협력자의 도움을 받아 근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그 이미지에 세계가 넘어갔다〉고 했다. 4·27 판문점 선언이 과거에 나왔던 내용을 그냥 반복한 정도이고, 과거 약속은 지켜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김정은의 이미지가 달라진 것은 연출된 근사한 그림, 즉 비디오적인 그림에 의해 여론이 바뀐 때문이라고 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문재인이라는 적극적 협력자를 찾아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를 설득하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에게 ‘김정은이 이성적인 사람이며 핵을 포기할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 이미지를 확 바꾼 다음 시진핑을 찾아가 ‘트럼프를 만날 때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뉴욕타임스》는 청와대의 여성 대변인의 말을 인용했는데, 기자에게 “우리는 가구 하나, 그림 하나도 이야깃거리가 되도록 장식했다”고 자랑했다. 김정은이 분계선을 넘어왔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북쪽으로 갔다가 오는 10초 동안의 쇼가 가장 효과가 있었다.
 
  기사는 마지막에 비판론을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고위 참모였던 나종일씨는 “김정은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자세가 옳다.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렇게 빨리 바뀔 수가 있느냐. 북한에 대해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심진섭씨는 대북(對北) 심리전 장교 출신인데 “세계 전체가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고 했다.
 
 
  판문점선언, 北에서 불러주고 南에서 받아 썼나?
 
  6·15, 10·4 선언문을 계승한 판문점 선언문은 핵폐기 선언이 아니라 핵보유를 인정한 바탕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로 가기 위한 한국의 체제정비, 즉 반공자유 안보체제의 해체를 노린 문건이다. 북한식 용어, 북한식 전략, 북한식 문장으로 작성되었다. 북에서 불러 주고 남에서 받아 쓴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선언문을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한미동맹 해체 및 연방제 통일에 합의한 문서이다.
 
  4월 28일자 주요 신문 사설 제목은 이렇다.
 
  ▲경향신문 = 핵 없는 한반도와 평화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다
 
  ▲서울신문 =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첫발을 떼다
 
  ▲세계일보 = 평화의 첫발 뗀 남북, 비핵화 마침표 찍자
 
  ▲조선일보 = 북핵은 ‘美·北’에 넘기고 對北 지원 앞세운 남북 정상회담
 
  ▲중앙일보 = 문재인-김정은, 비핵화 대장정 문을 열다
 
  ▲한겨레 = 판문점의 봄, 평화·번영의 시대 열다
 
  ▲한국일보 =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평화의 새 시대를 선언하다
 
  ▲매일경제 =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천명한 판문점 선언 이젠 실천이다
 
  ▲서울경제 = 한반도 대전환 이제 시작이다
 
  ▲한국경제 = ‘대한민국 가치 수호’ 더 중요해졌다
 
  맨정신을 가진 언론은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뿐이란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아래 글(4월 20일 북한노동당 전원회의 결의)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핵무장을 완성한 사실을 이렇게 자랑하고 있는데, 이를 포기한다면 김정은의 자리가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했는데, 그런 무기를 내려놓으면 북한정권은 독을 뺀 코브라와 같게 된다. 즉 지렁이가 되는 것이다.
 
 
  이걸 읽고도 核폐기를 믿는다면…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국가핵무력건설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하여온 군수공업부문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들과 일군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시였으며 우리 당 병진로선의 승리가 이룩됨으로써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갖추기 위하여 허리띠를 조이며 간고분투하여온 우리 인민의 투쟁이 빛나게 결속되였으며 우리의 후손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한 4월 27일 판문점 선언문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북측이 취한 주동적 조치들’은 7일 전 북한노동당 전원회의 결정, 즉 핵보유 선언(핵무력 완성에 따른 실험중지, 핵군축회담 제안 등 포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을 높게 평가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북한이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무력화를 위하여 같이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할 것이다.
 
  지난 5월 북한 부상 김계관은 성명을 내고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다시 분명히 하였다.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하여 수차에 걸쳐 천명하였다.”
 
  적대(敵對)정책 포기와 핵위협 제거는 한미동맹 해체를 뜻한다.
 
 
  국방장관의 변신
 
4월 27일 판문점회담 당시 김정은과 악수하는 송영무 국방장관, 송 장관은 이날 만찬에서 김정은이 주는 잔을 두 손으로 받아 마셨다고 한다.
  판문점 회담 직후 한국군의 한 고위급 장교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 사진’은 보도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다. 판문점 회담 만찬에서 송영무(69) 국방장관이 김정은(34)으로부터 술을 받는 장면이었다. 김정은이 한 손으로 술을 따랐고, 송 장관은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
 
  송 장관은 만찬 후 마원춘 북한 설계국장과 손을 잡고 나왔다. 마원춘은 김정은 체제 선전에 소개되는 마식령 스키장을 설계한 인물. 국제사회는 스키장 건설에 아이들까지 강제 동원된 점을 들며 “북한 인권 탄압의 상징물”이라고 비판해 왔다. 송 장관은 한 언론과 전화 통화에서 “(옆에 앉은 마 국장이) 저를 ‘형님’이라고 하고 술을 따르고 하더라”며 “외국 사람 만나는 것보다는 정이 통하는 감정이 들지요”라고 했다고 한다. 국방장관마저 감상적 민족주의에 도취되어 피아(彼我) 구분을 상실한 듯하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월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 기조연설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우방국인 일본을 비판하고 김정은을 변호하였다.
 
  송 장관은 “(일본이 과거) 북한에게 계속 속았다고 해서 미래도 계속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북한과) 협상하고 평화를 창출하겠느냐”며 “오노데라 방위상이 브리핑(기조연설) 때 (북한이 과거에 했던) 약속을 (파기한 사실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송 장관은 “지금 통 큰 결단을 하고 나오는 북한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한국 국방장관이 김정일을 연상시키는 ‘통 큰 결단’이란 말을 쓰면서 자신을 변호하는데, 이런 ‘고마운’ 발언에 한국 언론의 비판이 전무(全無)한 데도 놀랐을 것이다.
 
 
  김계관이 던진 낚싯밥을 문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중순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전해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하여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하면 미·북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발표에 놀라면서 화를 냈다〉고 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가 〈위험 부담을 떠안고 미·북 회담을 계속 진행할지를 두고 참모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김 부상의 담화 발표 직후인 지난 5월 17~18일 참모들에게 미·북 정상회담 진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는 북한의 공식 담화 내용과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판문점에서 만난 뒤 자신에게 전해준 내용이 왜 모순되는지를 따졌다는 것이다.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에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처음부터 회담에 회의적이었던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건의를 받아들인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취소를 선언하자 마음이 허전하였을 것이다. 가수가 수십만 명 모이게 되어 있는 공연을 취소한 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때 등장한 것이 김계관이었다. 그는 부시, 라이스, 힐을 갖고 논,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다. 회담 취소 선언 직후 발표한 그의 성명서는 명문이다. 트럼프를 추어올리면서도 북한정권의 자존심을 지키고, 회담의 성격을 ‘만남’ 그 자체에 두면서 단계적 해법(解法)을 제안한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왔다”면서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고 충고하였다.
 
  김계관이 던진 낚싯밥을 문 이는 트럼프였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건설적인 제안이 왔다면서 ‘6월 12일 회담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트윗을 날렸다. 그 뒤 트럼프가 한 발언에서는 ‘만남 자체가 의미 있다’ ‘해결엔 시간이 걸린다’ ‘종전선언 검토’ 등 싫어하던 개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볼턴이 빠진 자리에 김계관이 들어간 느낌마저 주었다.
 
 
  핵폐기 불가능 체제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김정은이 북한의 핵을 폐기하고 경제발전에 전념하고 싶어 한다’고 한 여러 발언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김정은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는지, 추궁을 당할 것이다.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다는 점은, 노동당 규약과 헌법, 4·20 중앙당전원회의 결정문 등에 명백히 적혀 있을 뿐 아니라 체제의 생존이 핵무기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봐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 노동당의 최고 규범인 ‘조선로동당규약’은 〈조선로동당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을 벌이는 자세를 천명한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가 북한정권을 영토 불법 강점 반국가단체로 격하한 것에 대응한다.
 
  규약은 통일 의지를 이렇게 드러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
 
  한미동맹을 해체,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민주 세력을 타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 한반도 전체를 김일성주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촛불혁명’이 이 ‘민주주의 혁명’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맞다고 판단하면 문재인 정권과 손잡고 한미동맹 및 반공자유민주주의를 해체한 뒤 6·15 선언에 적힌 대로 ‘낮은단계 연방제’로 진행, 한반도 공산화의 첫 관문을 넘으려 할 것이다.
 
  규약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중략)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겠다고 했다. 6·15 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노동당 규약을 옮긴 듯하다.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 핵 병진노선’을 명시하였다.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후 개정된 규약엔 이것이 반영되었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며,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사회주의 경제강국, 문명국건설을 당의 핵심 사업 방향〉으로 못을 박은 것이다.
 
  북한의 헌법에도 ‘핵보유국’이란 명시가 있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
 
  북한 체제의 최고 규범인 노동당 규약과 헌법에 명시된 ‘핵보유’를 김정은이 아무리 절대적 독재자라도 돈을 대가로 팔아넘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늘의 별따기’를 선전하는 것과 같다.
 
  북한 체제는 핵무력을 생존의 무기를 넘어 적화통일의 무기로 삼는다. 전략적 무기인 핵과 정치적 무기인 한국 내 종북세력을 결합시키면 전쟁 없이도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인을 정신 차리게 하려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조슈아 스탠턴.
  조슈아 스탠턴(Joshua Stanton)은 주한미군에서 법무관으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근무한 사람이다. 미국으로 돌아가선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일하였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를 도와 대북(對北)제재 관련법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2004년부터는 freekorea.us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포린폴리시》 등 저명한 언론 및 잡지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에 대하여 의회에서 증언한 적도 있다. 특히 북한의 인권문제를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두 달 전 “한국의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하여 미국의 안전담요를 거두라”는 제목의 글을 사이트에 올렸다. 자유를 지키려는 자주국방 의지를 상실하고 분별력도 의심스러운 한국인을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은 주한미군 철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 문재인 정권이 김정은에게 굴복, 한국의 자유와 번영을 넘겨주려 하는데도 한국인들은 박수만 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스탠턴 씨는 한국에 위협을 주는 것은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침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4월 27일 문재인-김정은 회담 이후의 변덕스러운 한국 내 여론 변화는 한국인들이 정권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89%가 회담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78%가 김정은을 믿을 수 있다고 답할 정도이면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겼다. 그는 대형(大兄)을 사랑하였다.”
 
  소설의 주인공이 전체주의 국가의 세뇌에 넘어간 것을 가리킨 말이다. 한국인들이 돌변하여 학살자 김정은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런 국민들을 정신 차리게 하려면 미군을 철수시켜 벼랑에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스탠턴 씨는 한국인의 변덕은 집단 노이로제 증상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문재인은 10개월 전엔 햇볕정책을 재개하라는 사명을 국민들로부터 받았다고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국인의 분별력을 과대평가한 것 같다고 했다. 평화적 협상이 김정은을 제외한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교육 받은 영리한 사람들이 뻔한 장난에 놀아나거나 자신의 운명을 정신병자(사이코패스)에게 맡기려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나?
 
  미군이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서야 한국인들은 마음을 모으고 이성을 찾을 것이다. 핵무장한 전체주의 국가, 특히 반대자를 말살하겠다고 공언하는 북한정권과 국가의 자원 및 정부의 시스템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대자를 말살하겠다는 북한정권의 경고는 절대로 빈말이 아니다.
 
  스탠턴 씨는 한국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군사적 역량이 아니라 정치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민족사의 정통국가이며, 한국의 정치, 사회적 제도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서 지켜낼 만한 것이고, 전체주의 체제에 항복하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멸망으로 갈 것임을 알게 될 때만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역사적 추세가 항복으로 기울었다면 주한미군의 존재는 그것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대세(大勢)를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있는 한국인들까지도 나태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인에게 가짜 안도감을 주어 경계심을 마비시킴으로써 부모세대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쌓아 올린 번영과 자유를 청와대가 조용하게 넘겨주는 데 동의하였음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전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생존의 결의를 다지는 것을 방해하고, 애국심을 키우는 데도 지장을 주며, 불굴의 투지를 가져야 살 수 있는데도 그런 부담을 지려 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축소한다거나 철수한다는 계획을 유출시켜라. 그리하여 전체주의와 학살을 두려워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을 깨어나게 하라, 자신을 지킬지 포기할지는 그들의 선택이지 미국의 의무가 아니다. 미국이 싸우기 싫어하거나 지켜줄 가치도 없는 한국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순 없다. 동맹이 직업이 되어선 안 된다. 동맹이 자살의 약속이 되어서도 안 된다.〉
 
 
  수용소와 핵무기가 체제를 유지시킨다
 
  《워싱턴포스트》의 잭슨 딜 부편집국장은 싱가포르 회담 하루 전 기명(記名) 칼럼에서 〈만약 트럼프가 북한의 괴물 같은 범죄를 무시한다면 이것들이 그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최근 국제변호사협회가 세 사람의 존경 받는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반(反)인도범죄 혐의로 고발할 수 있는지를 검토시킨 결과 11개 조건 중 10개를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집단적 인간 말살, 노예화, 고문, 성폭행, 고의적인 굶기기, 강제노역, 처형, 강제낙태 등.
 
  그는 핵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정권을 지원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김정은 정권의 생존은 핵무기 및 강제수용소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대인 수용소 같은 강제수용소가 운영되는데, 어떻게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외국인이 투자를 할 수 있나?
 
  그는 소련 및 공산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서방세계의 인권문제 제기가 결정타였다면서 트럼프가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이고, 수용소의 유령들이 그를 찾아와 괴롭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마이클 커비 북한인권문제 유엔조사위원회 의장이 한 말을 인용하였다.
 
  “이 나라가 저지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행의 중대성, 규모, 지속 시간, 성격은 현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체주의 체제임을 폭로한다.”
 
 
  판도라 상자를 닫을 힘이 없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한이 중국을 종전(終戰)선언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것처럼 합의한 것은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07년 10월 4일 선언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 당시 중국을 자극하였다. 북한은 미국과 핵문제 담판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이것이 중국을 자극하여 두 차례의 시진핑-김정은 회담이 이뤄졌다. 러시아 외무장관도 10년 만에 평양을 방문, 김정은의 단계적 핵문제 해결 방식을 지지하였다. 문재인과 김정은 두 사람이 열어젖힌 한반도의 판도라 상자는 다중(多重) 방정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남북 관계, 미중(美中) 관계, 일중(日中) 관계, 그리고 러시아 변수. 19세기 말, 1945년에 이은 세 번째의 동북아 질서 재편성 타이밍이다. 국체변경에 따른 내전적 상황, 무력충돌, 그것도 핵전쟁 가능성 등을 품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이다. 나중에 새 질서가 굳어질 때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핵무기를 갖지 않은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압박, 빼내 갔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고 한국도 공동사용권을 갖는 합의만 하였더라면 피할 수 있는 위기였다. 북한의 핵과 남한의 전술핵을 균형 맞춰 놓고 대북(對北) 제재를 계속하는 한편 수도권에 사드를 집중 배치하였더라면 시간은 한국 편이었다. 이처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거부하고 굳이 김정은에게 활로를 열어준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은 짐작되지만 지금부터는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기는 하였지만 닫을 힘은 없는 것이다. 한반도 게임에서 8000만 한국인은 중국·미국·일본·러시아와 달리 생명을 건 생존투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끔찍한 내일이 보인다. 애당초 판도라 상자는 열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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