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장에 물들다 〈21〉 사랑의 끈에 관하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가장 소중히 간직한 추억을 이야기하게 하면 진실을 숨기는 게 불가능합니다”(《파묻힌 거인》 중에서)
⊙ “당신 말이 맞소. 우리 나이가 되면 사람이 할 짓은 죄다 해본 셈이지…”(《허삼관 매혈기》 중에서)
⊙ ‘무슨 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파뿌리들이야’(이어령)
섬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만 했는데 한 번에 손님 한 명만 태울 수 있다. 일러스트=조선DB
  나이 든 남녀가 그 섬에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섬은 일종의 낙원(樂園)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에서 잠잘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 섬엔 참혹한 전쟁도 없으며 걱정도 두려움도 사람 사이의 그 흔한 배반도,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없다.
 
  세월에 지친 두 사람은 며칠을 걸어 섬 건너편 작은 만(灣)에 이르렀다. 섬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만 했는데 한 번에 손님 한 명만 태울 수 있었다. 장신(長身)에 마른 몸의 뱃사공은 긴 노를 들고 하늘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자 같았다.
 
  먼저 허리가 굽은 남자를 배에 태웠다. 그날 물결이 높았고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여자는 바위에 선 채, 배가 점점 작아져 점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마 후 배를 천천히 저으며 돌아오는 뱃사공의 모습이 보였다. 늙은 여자는 생각했다.
 

  ‘이제 내 차례이고, 사랑하는 남자와 곧 만나게 되리라.’
 
  그런데 뱃사공은 여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와서 밧줄을 서둘러 말뚝에 묶더니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건너게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에 덫으로 잡았다는 토끼 한 마리를 아무렇지 않은 듯 내밀었다. 홀로 된 그녀의 첫 저녁 식사로 제격일 것이라 생각하여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파묻힌 거인》(2022)
  얼떨결에 섬 건너편에 혼자 남게 된 여인은 울고불고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더러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뱃사공에게 찾아가 따지기도 했다. 뱃사공은 차분히 이렇게 말했다.
 
  〈이 노파(늙은 여인)가 말하는 섬은 여느 평범한 섬이 아닙니다. 저희 뱃사공들이 그간 수많은 손님을 그 섬에 실어 날랐고, 지금쯤 수백 명이 그곳의 들과 숲에 기거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섬은 기이한 속성이 있는 곳이라, 그곳에 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곤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나무와 수풀 속을 홀로 거닐게 됩니다. 어쩌다가 달 밝은 밤이나 폭풍이 불어닥치기 직전이면 다른 주민들의 존재가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날은 각자가 섬의 유일한 주민인 것처럼 삽니다. 저는 이 노파도 기꺼이 건너드릴 생각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그런 고독은 원치 않는다며 자기가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파묻힌 거인》 중에서)
 
  이 말을 듣고 여자는 뱃사공을 ‘교활한 자’라고 비난하며 “많은 부부가 그 섬의 숲과 조용한 물가를 팔짱 끼고 거닐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뱃사공이 이렇게나 잔인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그러나 뱃사공은 “그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며 조용히 반박했다.
 
  〈어쩌다가 두 사람이 섬으로 함께 건너가도록 허락받을 때도 있는데, 그건 드문 경우예요. 두 삶을 잇는 사랑의 끈이 이례적으로 튼튼해야만 가능합니다. 때로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뱃사공들은 부부나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 배를 기다리고 있으면 꼼꼼히 질문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을 잇는 끈이 물과 함께 건널 만큼 튼튼한지 알아볼 책임이 저희에게 있으니까요. 이 부인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남편과의 끈이 너무 약했습니다.〉(소설 《파묻힌 거인》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섬으로 가지 못한 여인과 뱃사공 간의 대화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파묻힌 거인》(2022)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 섬에 가기 위해선 사랑의 끈이 ‘이례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사랑의 매듭이 단단하지 못하면 배를 탈 수도, 섬으로 건너갈 수도 없다.
 
  뱃사공은 더러 서로를 잇는 끈이 질기다고 주장하는 부부나 연인을 만난 적이 있다. 뱃사공은 그 말이 진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한 사람씩 따로 묻고, 각자 따로 대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을 잇는 끈의 실체를 금방 알 수 있다. 뱃사공의 말이다.
 
  〈가장 소중히 간직한 추억을 이야기하게 하면 진실을 숨기는 게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라 해도 저희 뱃사공들 눈에는 원망과 분노, 심지어 증오가 보이곤 하지요. 아니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주 메말라버렸기도 하고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전부인 경우도 있지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소설 《파묻힌 거인》 중에서)
 
  독자 여러분은 그 섬에 도착할 수 있을까. 각자가 지닌 사랑의 끈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소설 《파묻힌 거인》을 읽으며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잃어버렸거나 끊어진 끈의 실체를 또는 실체의 그림자를 얼마만큼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끈과 피… 피는 힘이자 돈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2013)
  눈에 보이지 않는 끈보다 더 값진 것이 피[血]라고 말하는 소설이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2013)다. 끈이 형이상학적인 무형물이라면 피는 형이하학적인 실체이다. 소설 속 허삼관은 피를 팔아 양식(糧食)을 구한다. 피는 힘이자 돈인 셈이다. 허삼관에게 매혈을 처음 가르친 근룡과 방씨는 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근룡이가 말을 받았다.
 
  “(중략) 우리는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 벌어요. 땅 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
 
  방씨가 거들었다.
 
  “근룡이 말이 맞소. 내가 방금 피를 판 건 집을 짓기 위해서요. 두 번만 더 팔면 집 지을 돈이 충분해지거든. 근룡이가 피를 판 건 우리 마을의 계화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고. 원래 계화는 다른 사람이랑 정혼이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파혼을 해서 근룡이가 눈독을 들이고 있지.”〉(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 중에서)

 
  ‘피땀’ 흘려 번 돈만큼 소중한 게 없듯이 피야말로 속이려야 속일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생의 끈일지 모른다. 허삼관은 고단한 인생 역정(驛程)을 거듭하는데 그 과정이 매혈 여로(旅路)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무려 열한 번에 걸쳐 피를 파는 험난한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굶주린 아내와 아들 삼 형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담보로 기나긴 매혈 여로를 걷는 허삼관의 초상(肖像)이야말로 우리 시대 가장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소설 속 허삼관과 어느 노인의 대화다.
 
  〈“그렇게 계속 피를 팔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수?”
 
  “며칠 있다 쑹린에 가면 또 팔 건데요.”
 
  “아니 먼저는 힘을 싹 팔고 그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넘기는 거 아니요?”〉(소설 《허삼관 매혈기》 중에서)

 
  허삼관은 목숨을 담보로 피를 판다. 아들이 큰 병에 걸려 생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매혈밖에 없다. 비정한 현실이지만,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어디 피뿐이겠는가? 노인은 이런 허삼관의 토로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 말이 맞소. 우리 나이가 되면 사람이 할 짓은 죄다 해본 셈이지….”
 
  사람의 할 짓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일… 어쩌면 목숨을 내놓는 일일지 모른다. 바로 피를 파는 일 말이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 허삼관네가 겪은 배고픔을 묘사하는데 당시 모든 중국인이 허기에 시달렸다고 한다. 멀건 옥수수죽 외에 먹을 양식을 마련할 대책이 당시엔 없었다. 허삼관은 57일간 옥수수죽만 먹어야 하는 상황을 더는 못 견디고 결국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이때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의 푸념을 들어보자.
 
  〈일락이(허삼관의 장남)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57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소설 《허삼관 매혈기》 중에서)
 
하정우가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고 만든 영화 〈허삼관〉(2015).
  삶의 양식(樣式)을 누리기 위해 양식(糧食)은 상당히 중요하다. 고난이 닥쳐 몸뚱어리 외에 아무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다면, 내다 팔 노동력조차 없다면 피라도 팔아야 한다. 매혈이야말로 살기 위한 마지막 양식(良識) 있는 선택이리라.
 
  소설 속 허삼관은 황뎬에서 10번째 피를 팔다가 결국 쇼크로 쓰러져 생사를 오간다. 두 번 피 판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살아난다. 수혈을 받고 병원을 나온 그가 겨울바람 속에서 나무에 기댄 채 웅크리고 앉아 남은 돈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한기를 느끼고 나무에 기댄 채 웅크리고 앉았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으면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꺼내 세어보았다. 37원40전. 그가 피를 세 번이나 팔아 번 돈이 결국은 한 번 판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돈을 다시 잘 싸서 주머니에 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지나가던 겨울바람이 그의 눈물을 땅에 흩뿌렸다.〉
 
중국 소설가 위화. 그는 모엔, 옌롄커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3대 현대 작가로 꼽힌다. 사진=조선DB
  자식을 위해 피를 판 허삼관의 삶이 반드시 옳은 것일까. 왜 가족 공동체를 위해 가장의 희생을 강제해야만 할까.
 
  그런데 끈이 없다면, 사랑의 끈이 없다면, 피가 혹은 매혈이 그 자체로 온전히 의미를 지닐까.
 
  허삼관은 아내 허옥란이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 하소용과 한 번의 관계를 가진 후 임신한 상태에서 자신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러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피로 알고 있던 장남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을 크게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방씨가 보상의 대가로 허삼관의 집안 살림살이를 저당으로 가져가자, 허삼관은 이를 복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결국 다른 이의 피를 이은 아들로 인해 빚어진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아야 하는 허삼관의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피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남보다 못한 가족도 더러 있다. 지난 6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가족 간 절도, 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한 친족상도례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방송인 박수홍, 전 골프선수 박세리 등을 울린 법률이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박수홍은 친형 부부가 박수홍의 돈 수십억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박세리 역시 아버지가 사문서를 위조해 부녀간 채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피보다 끈이, 사랑의 끈이 더 이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일지 모른다.
 
  위화는 모엔, 옌롄커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3대 현대 작가로 꼽힌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전 세계 42개 언어로 번역돼 누적 2000만 부 이상 팔렸다(2023년 9월 기준). 출간된 지 31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60만 부 이상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훗날 배우 하정우가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고 영화 〈허삼관〉(2015)을 연출한 적도 있다.
 
 
  부드러운 끈이 우리를 연결해주었다
 
  끈이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영혼의 매듭이 아닐까. 한쪽이 없으면 몹시도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존재…. 그(그녀)의 기침, 숨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아 경계심이 사라지는 사람, 그런 사람 사이에 끈이 이어져 있다.
 

  내 남동생은 작고 하얀 침대에서
  한쪽 끝을 잡았다.
  나는 다른 쪽 끝을 잡아당겼다.
  아직 깨어 있다는 신호로.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할 수도 있었고
  노래를 불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해 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끝이 조금 해진
  그 부드러운 끈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연결해주고
  위안을 주었다.
  설령 하루 종일 말다툼을 했어도.
  동생이 먼저 잠들어
  그의 쪽 끈이
  바닥에 떨어지면
  나는 몹시도 그가 그리웠다.
  그의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토록 오래 떨어져 살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나오미 쉬하브 나이의 ‘끈’ 전문(류시화 옮김)

 
시인 류시화
  이 시를 우리말로 옮긴 시인 류시화는 “살아 있다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가느다란 실이라 할지라도, 혹은 한마디의 말, 한 편의 시, 한 곡의 노래를 통해서도 마음의 끈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끈이야말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이 아닐 수 없다.
 
  화자(話者)는 어린 시절 남동생과 한방에서 지냈다. 왁자지껄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며 한 시절을 보냈다. 종일 언성을 높이고 다툰 적도 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끈)을 느꼈고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잠든 동생의 고른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리움이란 서로 끈을 잡고 있기에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오미 쉬하브 나이(Naomi Shihab Nye·1952~)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의 옛 도시 라말라와 미국 텍사스를 오가며 자랐다. 시 ‘사연 없는 고양이는 없다’ 등을 썼다.
 
  2017년 창비신인상을 수상한 최지은 시인의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2021)를 잠깐 들여다보자. 시 ‘칠월, 어느 아침’은 화자와 어머니의 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머니의 뒷모습에 대한 기억을 꺼내는데 ‘단내가 풍기고/ 살짝 침이 고이기도 하는’ 유아기적 시절을 회상하며 시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늦은 저녁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르고, ‘다른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난 어머니가 생각난다. 사실의 기억인지 환영(幻影)인지 모르지만 등을 돌린 어머니를 앞에 두고 ‘신이 나도록 떠들’던 기억도 있다. 다만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나만은 영영 알지 못’한다.
 
최지은 시인의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2021)
  통조림 뚜껑을 따는 소리가 들려오고
  늦은 저녁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
 
  문득
  내가 세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다른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났는데
  저녁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누굴까 생각하는 사이
  또 한번, 통조림 뚜껑이 열리는 소리
  붉고 통통한 강낭콩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하얀 식탁보, 투명한 유리 화병, 흔들리는 꽃.
  고요가 생겨납니다
 
  나는
  등 돌린 어머니의 몇걸음 뒤에서
  신이 나도록 떠들어보기도 하지만
  어머니께 무슨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나만은 영영 알지 못합니다
  눈을 뜨자 내 곁엔 검은 개가 배를 드러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오늘은
  나의 생일
 
  시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섞이어 풍겨옵니다
  이 여름이 한번 더 지나가도록
  짧은 꿈의 손님은 모른 척 숨겨두기로 합니다
  어두운 아침입니다
 
  -최지은의 ‘칠월, 어느 아침’ 일부

 
  시인은 생일 아침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잠에서 깼다. 곁에 어머니 대신 검은 개가 배를 드러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잠든 개에게서 풍기는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는 어쩌면 어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의 젖내일지 모른다. 검은 개와 어머니, 그리고 화자인 시인 사이에 연결된 ‘끈’이 있음을 느낀다. 그 끈이 한여름 밤의 ‘짧은 꿈’일지라도 그 간절함은 한없이 깊다.
 
 
  파뿌리와 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끈’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고(故) 이어령(李御寧)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의 파뿌리 이야기를 말년에 즐겨 말하곤 했다. 다음은 선생의 말씀이다.
 
  〈살면서 선행을 베푼 적 없는 인색한 노파가 지옥에 갔어. 지옥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수호천사가 그 노인을 가엽게 보고 하나님께 간청을 하지. ‘생전에 저 노파가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으니 선처해달라’고.
 
  하나님은 그 노파가 파 한 뿌리를 붙잡고 천국으로 오는 것을 허락해. ‘평생 인색했지만 그래도 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이라도 했으니 그것을 기억한다’고. 노파가 신이 나서 파뿌리를 붙잡고 지옥불을 빠져나오려는데, 그걸 본 다른 놈들도 ‘살려달라’고 그 파뿌리에 우르르 아귀처럼 달라붙는 거야.
 
  노파가 달라붙는 손길을 밀쳐내며 소리쳤지.
 
  ‘이거 내 파뿌리야!’
 
  그 순간, 후드득 파뿌리는 끊어지고 모두 지옥불에 떨어졌다네.〉

 
  파뿌리야말로 끈과 다르지 않다. 이 파뿌리는 소설의 다른 대목에도 등장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등장인물 중 막내아들 알료샤는 어느 늙은 사제를 존경해 수도원의 수사(修士)가 되려 한다. 그 사제는 신(神)의 사랑을 받아 죽어도 살이 썩지 않을 것이라고 알료샤는 굳게 믿었지만 그 믿음은 무참히 깨진다. 사제가 죽고 그 몸이 썩어 들어가자 알료샤는 이렇게 탄식한다. 다음은 선생의 계속된 말이다.
 
  〈‘내가 수사가 되기는 틀렸다. 고결한 성인도 저렇게 되는데, 나는 이미 죄인이니 다 글러먹었다.’
 
  그날 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알료샤의 꿈에 죽은 신부가 나타난 거야. 천국에서 잔치가 열렸다면서 알료샤를 불렀다네.
 
  ‘너 뭐 하는 거야? 빨리 와.’
 
  ‘거기는 천국이잖아요. 저는 못 가요.’
 
  ‘무슨 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파뿌리들이야.’〉

 
  파뿌리는 끈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끈이 땅에 떨어졌다면 다시 잡으면 되고, 끈이 느슨하다면 다시 죄면 된다. 파뿌리 같은 끈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독자 여러분이 들고 다니는 책가방이나 백팩, 핸드백, 스마트폰, 그리고 편지 안에 끈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만큼의 힘을 이 끈에 주고, 얼마만큼의 길이로, 얼마 동안 유지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