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컬트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천만 영화에 올라
⊙ 미디어 총출동해 영화를 밀어주지 않아도 약간의 환경만 조성된다면 ‘천만 영화’ 가능
⊙ 양궁선수 안산 발언 등에서 보듯 ‘反日’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한 常數
⊙ 반일 선동이 먹혀드는 한편으로, 반일 영화가 흥행 실패하고 일본풍 음식점·일본 관광 성행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미디어 총출동해 영화를 밀어주지 않아도 약간의 환경만 조성된다면 ‘천만 영화’ 가능
⊙ 양궁선수 안산 발언 등에서 보듯 ‘反日’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한 常數
⊙ 반일 선동이 먹혀드는 한편으로, 반일 영화가 흥행 실패하고 일본풍 음식점·일본 관광 성행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영화 〈파묘〉
3월 24일 〈파묘〉가 ‘1000만 영화’ 자리에 올랐다. 개봉 32일 만에 역대 32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른 것이다. 4월 8일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1136만790명. 흔히 ‘국민의 5분의 1이 본 영화’로 불리는 ‘1000만 영화’ 중에서도 다시 ‘국민의 4분의 1이 본 영화’로 거듭날 전망이다.
〈파묘〉의 이 같은 일대 흥행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표적 영화 비수기(非需期)인 2월에 개봉한데다, 1000만 명이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게 흔치 않은 군중 심리임에도 직전 ‘1000만 영화’ 〈서울의 봄〉으로부터 불과 3개월여 만에 다시 반복됐다는 점, 그리고 공포영화는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인 탓에 소위 ‘대박’ 흥행이 어렵다는 기존 통념에서도 벗어났다는 점 등에서 모두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묘〉의 흥행 이유를 밝히려는 갖가지 분석과 해석도 언론미디어는 물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진다.
노이즈 마케팅(?)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 특이한 흥행 해석이 하나 더 추가됐다. 영화가 일으킨 논란이 언론미디어 정치·사회면까지 진출하면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로 관객들을 예상보다 많이 끌어모았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그 논란은, 많이들 알고 있듯, 〈파묘〉가 노골적 ‘반일(反日)영화’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비롯됐다. 상황을 담은 뉴시스 2024년 2월 26일 자 기사 〈‘건국전쟁’ 감독 “반일주의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 열광”〉을 보자.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영화 〈파묘〉를 두고 “반일주의를 부추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26일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하며 “진실의 영화에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사악한 악령들이 출몰하는 영화에 올인하도록 이끄는 자들은 누구냐”고 했다. (중략) 김 감독은 또 과거 김용옥 교수가 이승만씨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을 언급하며 “〈파묘〉에 좌파들이 열광하는 이유”라고 했다.〉
여러모로 해당 논란을 처음 수면으로 띄워 올린 화자(話者)가 한창 주목받던 인물이기에 보도 가치가 치솟은 경우일 수도 있다. 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닥친 상황이기에 이념 진영 대립으로 비화(飛火)될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과도하게 주목받는 현실도 존재했다. 어찌 됐든 김덕영 감독이 띄워 올린 ‘반일-좌파 영화 〈파묘〉’ 주장은 사실상 거의 모든 언론미디어에서 다뤄지며 세간의 화젯거리로 거듭났다. 지면(紙面)은 물론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까지 수없이 다뤄져 ‘모르는 이가 없는’ 논란으로 번졌다.
그러다 〈파묘〉가 결국 ‘1000만 영화’에 오르자 오마이뉴스에선 〈천만 돌파 ‘파묘’… 좌파영화-반일 프레임 오히려 도움 됐다〉(2024년 3월 24일 자)는 제목의 기사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비치기도 하고, 영화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역시 반일-좌파 주장에 “오히려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는 입장을 전하는 등 이렇게만 보면 우파 진영 입장에서 오히려 공연히 일으킨 논란이라는 인상도 들긴 한다. 그러나 문제는 〈파묘〉에 실제로 무리한 반일-항일 설정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라는 점이다.
쇠말뚝설의 허구
〈파묘〉는 어느 부호(富豪)로부터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移葬)하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의 얘기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 집안 묘의 처리를 통해 일제의 잔재(殘滓)를 제거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쇠말뚝 괴담’ 관련 내용이 등장하면서다. 정확히는 영화 후반부 이르러 갑자기 쇠말뚝을 제거하는 모험담으로 흐름이 바뀐다.
이에 문제를 지적한 풍수학자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의 《조선일보》 2024년 3월 16일 자 칼럼 〈‘파묘’ 속 풍수의 오해와 진실… 흥행 반갑지만 3가지 왜곡 있다〉를 보자.
〈〈파묘〉에는 세 가지 왜곡이 있다.
첫째, 쇠말뚝은 삼각점의 오해다. 감각 측량을 할 때 기준으로 정하는 세 점 말이다. 1895년 일본은 200여 명의 측량사를 보내 조선 땅을 측량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다. 망국의 슬픔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삼각점 표석 밑에 마귀를 묻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고 시달할 정도였다.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였으나 풍수 침략은 하지 않았다.
둘째, 영화에 등장하는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는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1891~1968)을 겨냥했다. 그는 1919년 동경제대 철학과 졸업 후 총독부 촉탁으로 조선에 왔다. (중략) 무라야마는 조선의 지관 전기응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풍수》를 펴냈다. 조선 풍수는 이 책 덕분에 전해진다. 훌륭한 학자를 술수나 부리는 음양사로 둔갑시킨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중략)
셋째, 이른바 ‘쇠말뚝설’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풍수관에서 비롯된다. 바탕에는 ‘곤륜산에서 3개의 지맥이 중국으로 뻗으며, 그 하나가 백두산을 거쳐 한반도로 이어진다’는 관념이 있었다. 곤륜산은 시조, 백두산은 중조, 삼각산은 할아버지 산이 된다. 신성한 지맥에 쇠말뚝을 박을 순 없는 일이다. ‘쇠말뚝설’은 그래서 퍼졌을 뿐이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물론 일제 시대 등을 놓고 이 같은 사실 왜곡 및 무리한 설정은 그간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수없이 이뤄져 왔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같은 영화 미디어에서 〈파묘〉 이전의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5년 작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들 수 있다. 1938년, 외부와 단절된 경성의 어느 기숙 여학교를 무대로 한 영화다. 학생들이 하나둘 갖가지 이상 증세를 보이다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진상을 파헤쳐보니 사실 이곳은 학교의 탈을 쓰고선 병약(病弱)한 소녀들을 대상으로 일본군의 목적에 따라 생체(生體) 실험을 하는 시설이었음이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이런 학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보기에도 너무 과도한 설정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에 그냥 넘어갔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흥행에 실패해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1100만 관객을 넘어선 〈파묘〉와 달리 최종 누적 관객 36만 명에 그쳤다. 유사한 반일 메시지를 담은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저 ‘1000만 영화’ 정도 위치까지 가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화제와 비판의 중심에 서지 못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파묘〉의 좌파-반일 논란이 한창 펼쳐지던 때 또 다른 반일 감정 이슈가 터져 나름의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 3관왕의 ‘스타’ 양궁선수 안산이 3월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광주의 어느 쇼핑몰 내 설치된 일본 테마거리 표지판을 가리키며 “한국에 매국노 왜 이렇게 많냐”고 비방성(誹謗性) 문구를 게시한 건이다. ‘해외여행’ 콘셉트를 잡고 설치한 일본 테마거리이기에 일본 느낌이 나도록 한자로 “國際線 出發(日本行)”이라 적어놓은 표지판의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비방했다. 해당 쇼핑몰에는 중국, 미국 등 다른 국가들 테마거리도 존재했다.
여전히 반일 선동이 통하는 사회
이후 상황은 더욱 기묘해졌다. 안 선수의 비방에 공감한 일부 대중이 해당 음식점에 일제히 별점 테러를 퍼붓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수많은 언론에서 안산 선수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이어지자 안 선수는 다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아무런 문구 없이 전주 한옥마을 앞에서 촬영한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또 일부에선 민족주의를 자극해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는 비판이 새롭게 제기됐다. 상황이 계속 뒤죽박죽으로 뒤엉켰다. 심지어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까지 “호남 지방은 수탈의 고장으로 유독 호남에 신사(神社) 잔재가 많아 광복 이후 학생들이 나서서 신사를 부수고 다니기도 했다”며 해당 설치물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상황은 안 선수의 사과문 게시로 마무리 지어지긴 했지만,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이 전해준 사회 분위기 진단은 일목요연(一目瞭然)했다. 반일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1000만 영화’로 거듭나고,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일개 외식 자영업자에게 “매국노” 소리를 퍼부으며, 그 발언에 공감하는 이들도 등장하는 분위기.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반일 정서가 더없이 만연하고, 일본 보이콧 분위기도 여전하다는 인상이 깊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분명 〈한산: 용의 출현〉 〈리멤버〉 〈영웅〉 〈유령〉 등의 항일(抗日)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던 게 바로 작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업영화들이 애용하던 기존 항일 소재는 앞으로 시장을 이끌 20~30대 관객에겐 호소력이 크지 않다”며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대중음악 유행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음원 차트인 유튜브 음악 차트를 봐도 그렇다. 3월 22~28일자 주간 차트에서 일본 힙합그룹 크리피 넛츠의 노래가 당당 5위에 랭크돼 있다. 그 뒤로도 요아소비 등 수많은 일본 아티스트 음원이 100위 내 포진해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여타 대중문화 분야들, 일본 관광 등도 여전히 활황(活況) 중이다.
심지어 안산 선수 논란마저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 테마거리에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까지 조형물로 설치해놓은 상황임에도 안 선수의 소셜미디어 게시 이전까지는 광주 시민들로부터 이렇다 할 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자기 검열이 심한 부분이 일본 관련인데, 기획 측에서 이런 테마거리를 별문제 없으리라 판단했다는 점부터가 ‘달라진 분위기’를 드러낸다는 게 맞다.
일본 네티즌의 비아냥거림
사실 이보다 더 왜색(倭色)이 도는 설치물들도 대부분 별다른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간판’이 그렇다. 《뉴스위크》 일본어판 기사를 인용한 《매일경제》 2024년 2월 16일 자 기사 〈도쿄 아니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한국인 바글바글 간판은 일본어인 ‘이곳’〉 일부다.
〈일식당이나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이야 예전에도 흔했지만, 최근 들어 음식 스타일부터 매장 인테리어, 간판 표기까지 현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곳들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한글을 병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글 표기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작게 표기돼 있거나 아예 일어로만 된 간판들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해당 소식에 주목하는 건 지난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촉발돼 3~4년 전까지 유행하던 ‘노재팬’ 운동이 어느덧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처럼 현지풍 가게들이 유행 중인 데 대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해빙 무드로 돌아선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싱크탱크 겐론NPO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국 관계가 “나쁘다”고 답한 한국인은 급감한 반면 “좋다”고 답한 한국인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면 상황은 더 아리송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과 관련해 지금의 사회적 공기(空氣)란 대체 무엇일까 말이다. 한쪽에선 반일 메시지 영화가 ‘1000만 영화’로 거듭나고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일본어 간판을 보고 “매국노”라 비방하는 세상이지만, 다른 한쪽에선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키워나가며 일본어로만 적힌 가게 간판들까지 등장하는 세상. 이에 대해 위 《매일경제》 기사는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의 어느 한국 비하(卑下) 댓글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저 나라 국민은 몇%의 목소리 큰 선동꾼과 이에 영합하는 90%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소재가 없어 선동하는 이들이 조용하나, 이 몇%에 미끼를 던지면 미친 듯이 영합할 거다. 연못에 있는 잉어에게 식빵 한 조각 떨어뜨린 광경을 상상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 각자 판단은 자유지만, 애초 대중문화 소비란 상대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 및 심지어 민족 감정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진행되게 마련이라는 대원칙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노재팬’ 운동 당시가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을 뿐이고, 엄밀히 ‘노재팬’ 운동 당시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황만 가히 전체주의적으로 일본을 보이콧하는 분위기였을 뿐 물밑에선 그에 따른 반발과 반작용(反作用)도 상당했다. 그리고 그 물밑 흐름이 2020년대 들어 가시화(可視化)된 ‘일본 붐’으로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볼테스 V〉 사건’
어찌 됐든 이 같은 대원칙은 당연히 비단 한국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1942~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1945년 ‘마닐라 대학살’ 당시 무려 12만5000여 명에 이르는 마닐라 시민이 학살당해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반일 감정이 한국 이상이었다고까지 일컬어지는 필리핀만 해도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대표적인 예가 한창 반일 열기가 뜨거웠던 1970년대에 벌어진 ‘볼테스 V 사건’이다.
〈볼테스 V〉는 1977~78년 일본 아사히TV에서 방영된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필리핀 방송사가 수입해 1978년 방영을 시작했고, 당시 필리핀에서 최고 시청률 58%까지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문화 현상을 일으켰다. 로봇 애니메이션이라고 유소년층만 본 게 아니라 성인들까지 모조리 브라운관 앞에 앉아 열중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절찬리에 방영을 이어가다 종영까지 불과 4회 분만을 남겨놓은 시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령하에서 〈볼테스 V〉에 방영 금지 조치가 내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른 필리핀 대중의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고, 곧 마르코스 정권의 사회·문화적 억압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로 기억돼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이 결국 실각(失脚)하자마자 바로 〈볼테스 V〉 재방영부터 이뤄지는 흐름을 낳았다.
그럼 왜 불과 4회만 남겨놓은 TV 애니메이션을 굳이 방영 금지시켜야 했을까. 이에 대해선 상당 부분 〈볼테스 V〉 내 자리한 ‘왜색’ 때문이었으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시 칼을 휘두르는 거대 로봇 설정이 일본 사무라이를 연상시킨다며 일부에서 왜색 논란이 일었고, 마르코스 정권은 이런 논란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자신이 태평양 전쟁 당시 반일 투사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적(政敵)들을 친일로 몰아 공격함으로써 대중의 인기를 얻어온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 또 궁금해지는 게 당시 필리핀 대중의 멘털리티(mentality)다. 칼 휘두르는 로봇 정도에도 왜색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여전히 반일 감정이 거센 분위기였는데 어쩌다 〈볼테스 V〉에는 그렇게들 열광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이유는 단순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정도’가 당시 필리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양질의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필리핀의 사회·문화적 검열과 통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로 잘 알려진 세계적 필리핀 영화감독 리노 브로카조차 필리핀 밑바닥 인생들을 그린 1976년 작 영화 〈인시앙〉이 “아름다운 필리핀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열 삭제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니 말 다했다.
이렇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나오는 자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딱히 즐길 만한 것일 리 없었다. 와중에 일단은 아동용이라는 인식이 강한 애니메이션인데다 해외 콘텐츠이기도 한 덕에 당국의 관심을 끌지 않은 〈볼테스 V〉 쪽이 자국 콘텐츠보다 훨씬 자유로운 표현과 묘사들을 보여줬고, 그러다 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브라운관 앞으로 몰려들어 일개 애니메이션이 시청률 50% 이상을 달리는 문화 현상을 일으켰다는 해석이다.
“문화는 원래 착시 현상 일으키기 쉬운 분야”
한국의 현 상황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이란 사실상 언제라도 계기가 생기면 불붙을 수 있는 종류의 상수(常數)인 건 맞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선 지난 2019년 10월 25일 방영된 KBS1 시사 프로그램 〈시사직격〉에서 구보타 노리코 일본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의 “혐한(嫌韓)이 있어서 반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반일이 나오니까 혐한으로 대응할 뿐이다. 그래서 갈수록 서로 싸움이 커지는 것”이라는 발언에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는 선우정 당시 《조선일보》 부국장(현 편집국장)의 답변이 자주 회자(膾炙)된다.
“가장 중요한 근대 시기에 일본에 35년 동안 지배당한 나라에 반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건 당연히 한국에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 하는 게 더 이상하다.”
물론 앞선 《매일경제》 기사가 제시한 여론조사 결과로도 현재 한일 관계가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게 한국의 반일 감정이다. 늘 자리해 있다.
다만 문화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문화 고유의 역할론에 근거, 시장의 필요에 따라 반(反)의 감정을 가진 나라 상품이더라도 주류(主流) 상품에 오르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1970~80년대에도 일본 가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나 ‘고이비토요’는 한국 성인층에서 소위 ‘웬만하면 알고 있는’ 노래였고, 이곳저곳에서 조용히 불려졌다. 포크 열풍이었던 당시 국내 대중음악시장에서 그런 양질의 엔카(演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본래 착시(錯視) 현상을 일으키기 쉬운 분야다.
실패한 ‘반일 영화’도 많아
다시 〈파묘〉로 돌아가 보자. 〈파묘〉가 반일 메시지를 담았기에 좌파 대중이 열광해 ‘1000만 영화’에 이르렀다는 해석은 여전히 무리다. 애초 반일 메시지 부분이 이렇다 하게 홍보된 영화도 아니었고, 사실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리는 와중에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해당 부분이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다. 반일 메시지라는 건 한국 영화에서 매우 ‘흔한’ 코드이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반일이란 한국인들에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 코드 중 하나라서다. 그러니 반일 메시지 자체가 흥행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반일 메시지를 담고 흥행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더 많기도 하다.
가까운 예로, 2022년 개봉해 206만 관객을 모은 송강호·이병헌 주연 영화 〈비상선언〉만 해도 그렇다. 한국 국적 민항기 내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발생, 빠르게 착륙하기 위해 비상선언을 하고 일본으로 향하지만 일본에선 자국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로 비상선언을 무시하고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를 출동시켜 민항기에 위협비행을 하며 착륙을 막는다. 그러다 결국 기관포로 경고 사격도 하고 심지어 가미카제 식으로 민항기에 충돌하려는 시도까지 벌인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은 세간에서 특별히 화제가 되지도 않았다. 이런 정도 반일 설정은 한국 영화에서 흔하디 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묘〉 경우와 다른 건, 〈파묘〉는 ‘1000만 영화’가 됐고, 〈비상선언〉은 흥행이 부진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영화라는 차이다.
나아가 반일-좌파 논란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 효과라는 주장도 실제로는 다소 과잉된 해석인 측면이 있다. 김덕영 감독의 “반일주의를 부추긴다”는 발언이 언론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던 2월 26일이면 〈파묘〉는 이미 개봉 4일 만에 230만 관객을 끌어들이고, 특히 토요일보다 일요일에 더 많은 관객이 드는 드문 현상을 보이며 일찌감치 ‘대박’ 영화로 도장이 찍힌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25일 일요일 박스오피스 집계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1000만 예상’이 돌기 시작했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아예 없었다고 볼 수는 없어도, ‘1000만 영화’가 된 주요 원인이었다고 보기도 매우 어렵다.
‘이유 없는 천만 영화’
그럼 뭘까. 좌파 영화라서 좌파 대중이 몰려간 것도 아니고, 논란이 언론미디어에 대서특필돼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특별히 본 것도 아니면 이 오컬트 공포영화가 이례적으로 ‘1000만 영화’에 오른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말이다.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최근 필자가 한 영화배급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설명이 있다. “이제 ‘1000만 영화’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다소 허탈한 설명이다.
그저 볼 만한 영화가 없는, 소위 대진(對陣) 운이 좋은 시점에 오랫동안 못 보던 나름 신선한 소재의 영화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춰 나오기만 해도 해당 시점에 대중의 이목을 빼앗아가는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1000만 영화’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온갖 미디어가 총출동해 영화를 밀어주고 지금 세상의 특정한 멘털리티를 건드리지 않아도 약간이라도 ‘이벤트성’을 자극하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가능해진 게 ‘1000만 영화’라는 얘기다. 물론 그럴싸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존재하는 ‘1000만 영화’도 있지만, 점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산 선수 논란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자극적인 화젯거리가 없던 시점에 등장해 필요 이상으로 화제를 모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굵직한 사회·문화 현상들도 모두 의미 없는 것이냐는 반박이 나올 법도 한데, 그 심오한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는 현상들도 있는 반면 반일 감정처럼 가히 상수적인 코드를 건드리는 경우는 굳이 ‘현상’이라는 표현까지 쓰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현실에 가까울 수 있겠다. 요즘처럼 언로(言路)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개개인 전체에 열려 있는 세상에선 오히려 단순한 상황에 대한 확대 해석, 과잉 해석 쪽을 더 주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문화란 정말이지 의도했든 아니든 착시를 불러오기 쉬운 부문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국가적 마찰 막아줘야
끝으로,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문화란 국가나 민족, 또는 종교 간 극단적 충돌을 막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지대하다는 점이다. 정치·외교가 안정돼야 상대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상대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문화를 통한 서로 간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정치·외교적인 마찰도 극단까지 치닫는 일을 막아준다는 역할론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선 대부분 그 정반대, 즉 민족 감정에 따른 대중의 배타적 심리를 부추기는 방향으로만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어지곤 한다. 그러고는 민심을 반영했다는 애매한 명분을 덧붙인다. 반일-좌파 영화인 탓에 흥행이 됐든 아니든, 〈파묘〉 같은 논란과 갈등의 이슈가 앞으로도 끊이지 않으리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이는 이유다.⊙
〈파묘〉의 이 같은 일대 흥행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표적 영화 비수기(非需期)인 2월에 개봉한데다, 1000만 명이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게 흔치 않은 군중 심리임에도 직전 ‘1000만 영화’ 〈서울의 봄〉으로부터 불과 3개월여 만에 다시 반복됐다는 점, 그리고 공포영화는 취향을 많이 타는 장르인 탓에 소위 ‘대박’ 흥행이 어렵다는 기존 통념에서도 벗어났다는 점 등에서 모두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묘〉의 흥행 이유를 밝히려는 갖가지 분석과 해석도 언론미디어는 물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진다.
노이즈 마케팅(?)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 특이한 흥행 해석이 하나 더 추가됐다. 영화가 일으킨 논란이 언론미디어 정치·사회면까지 진출하면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로 관객들을 예상보다 많이 끌어모았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그 논란은, 많이들 알고 있듯, 〈파묘〉가 노골적 ‘반일(反日)영화’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비롯됐다. 상황을 담은 뉴시스 2024년 2월 26일 자 기사 〈‘건국전쟁’ 감독 “반일주의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 열광”〉을 보자.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영화 〈파묘〉를 두고 “반일주의를 부추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26일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하며 “진실의 영화에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사악한 악령들이 출몰하는 영화에 올인하도록 이끄는 자들은 누구냐”고 했다. (중략) 김 감독은 또 과거 김용옥 교수가 이승만씨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을 언급하며 “〈파묘〉에 좌파들이 열광하는 이유”라고 했다.〉
여러모로 해당 논란을 처음 수면으로 띄워 올린 화자(話者)가 한창 주목받던 인물이기에 보도 가치가 치솟은 경우일 수도 있다. 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닥친 상황이기에 이념 진영 대립으로 비화(飛火)될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과도하게 주목받는 현실도 존재했다. 어찌 됐든 김덕영 감독이 띄워 올린 ‘반일-좌파 영화 〈파묘〉’ 주장은 사실상 거의 모든 언론미디어에서 다뤄지며 세간의 화젯거리로 거듭났다. 지면(紙面)은 물론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까지 수없이 다뤄져 ‘모르는 이가 없는’ 논란으로 번졌다.
그러다 〈파묘〉가 결국 ‘1000만 영화’에 오르자 오마이뉴스에선 〈천만 돌파 ‘파묘’… 좌파영화-반일 프레임 오히려 도움 됐다〉(2024년 3월 24일 자)는 제목의 기사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비치기도 하고, 영화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역시 반일-좌파 주장에 “오히려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는 입장을 전하는 등 이렇게만 보면 우파 진영 입장에서 오히려 공연히 일으킨 논란이라는 인상도 들긴 한다. 그러나 문제는 〈파묘〉에 실제로 무리한 반일-항일 설정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라는 점이다.
쇠말뚝설의 허구
〈파묘〉는 어느 부호(富豪)로부터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移葬)하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의 얘기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 집안 묘의 처리를 통해 일제의 잔재(殘滓)를 제거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쇠말뚝 괴담’ 관련 내용이 등장하면서다. 정확히는 영화 후반부 이르러 갑자기 쇠말뚝을 제거하는 모험담으로 흐름이 바뀐다.
이에 문제를 지적한 풍수학자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의 《조선일보》 2024년 3월 16일 자 칼럼 〈‘파묘’ 속 풍수의 오해와 진실… 흥행 반갑지만 3가지 왜곡 있다〉를 보자.
〈〈파묘〉에는 세 가지 왜곡이 있다.
첫째, 쇠말뚝은 삼각점의 오해다. 감각 측량을 할 때 기준으로 정하는 세 점 말이다. 1895년 일본은 200여 명의 측량사를 보내 조선 땅을 측량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다. 망국의 슬픔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삼각점 표석 밑에 마귀를 묻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고 시달할 정도였다.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였으나 풍수 침략은 하지 않았다.
둘째, 영화에 등장하는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는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1891~1968)을 겨냥했다. 그는 1919년 동경제대 철학과 졸업 후 총독부 촉탁으로 조선에 왔다. (중략) 무라야마는 조선의 지관 전기응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풍수》를 펴냈다. 조선 풍수는 이 책 덕분에 전해진다. 훌륭한 학자를 술수나 부리는 음양사로 둔갑시킨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중략)
셋째, 이른바 ‘쇠말뚝설’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풍수관에서 비롯된다. 바탕에는 ‘곤륜산에서 3개의 지맥이 중국으로 뻗으며, 그 하나가 백두산을 거쳐 한반도로 이어진다’는 관념이 있었다. 곤륜산은 시조, 백두산은 중조, 삼각산은 할아버지 산이 된다. 신성한 지맥에 쇠말뚝을 박을 순 없는 일이다. ‘쇠말뚝설’은 그래서 퍼졌을 뿐이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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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성학교〉 |
같은 영화 미디어에서 〈파묘〉 이전의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5년 작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들 수 있다. 1938년, 외부와 단절된 경성의 어느 기숙 여학교를 무대로 한 영화다. 학생들이 하나둘 갖가지 이상 증세를 보이다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진상을 파헤쳐보니 사실 이곳은 학교의 탈을 쓰고선 병약(病弱)한 소녀들을 대상으로 일본군의 목적에 따라 생체(生體) 실험을 하는 시설이었음이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이런 학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보기에도 너무 과도한 설정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에 그냥 넘어갔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흥행에 실패해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1100만 관객을 넘어선 〈파묘〉와 달리 최종 누적 관객 36만 명에 그쳤다. 유사한 반일 메시지를 담은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저 ‘1000만 영화’ 정도 위치까지 가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화제와 비판의 중심에 서지 못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파묘〉의 좌파-반일 논란이 한창 펼쳐지던 때 또 다른 반일 감정 이슈가 터져 나름의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 3관왕의 ‘스타’ 양궁선수 안산이 3월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광주의 어느 쇼핑몰 내 설치된 일본 테마거리 표지판을 가리키며 “한국에 매국노 왜 이렇게 많냐”고 비방성(誹謗性) 문구를 게시한 건이다. ‘해외여행’ 콘셉트를 잡고 설치한 일본 테마거리이기에 일본 느낌이 나도록 한자로 “國際線 出發(日本行)”이라 적어놓은 표지판의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비방했다. 해당 쇼핑몰에는 중국, 미국 등 다른 국가들 테마거리도 존재했다.
여전히 반일 선동이 통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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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재미를 보지 못한 ‘반일영화들’. 왼쪽부터 〈한산〉 〈리멤버〉 〈영웅〉 〈유령〉 |
결국 상황은 안 선수의 사과문 게시로 마무리 지어지긴 했지만,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이 전해준 사회 분위기 진단은 일목요연(一目瞭然)했다. 반일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1000만 영화’로 거듭나고,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일개 외식 자영업자에게 “매국노” 소리를 퍼부으며, 그 발언에 공감하는 이들도 등장하는 분위기.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반일 정서가 더없이 만연하고, 일본 보이콧 분위기도 여전하다는 인상이 깊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분명 〈한산: 용의 출현〉 〈리멤버〉 〈영웅〉 〈유령〉 등의 항일(抗日)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던 게 바로 작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업영화들이 애용하던 기존 항일 소재는 앞으로 시장을 이끌 20~30대 관객에겐 호소력이 크지 않다”며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대중음악 유행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음원 차트인 유튜브 음악 차트를 봐도 그렇다. 3월 22~28일자 주간 차트에서 일본 힙합그룹 크리피 넛츠의 노래가 당당 5위에 랭크돼 있다. 그 뒤로도 요아소비 등 수많은 일본 아티스트 음원이 100위 내 포진해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여타 대중문화 분야들, 일본 관광 등도 여전히 활황(活況) 중이다.
심지어 안산 선수 논란마저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 테마거리에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까지 조형물로 설치해놓은 상황임에도 안 선수의 소셜미디어 게시 이전까지는 광주 시민들로부터 이렇다 할 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자기 검열이 심한 부분이 일본 관련인데, 기획 측에서 이런 테마거리를 별문제 없으리라 판단했다는 점부터가 ‘달라진 분위기’를 드러낸다는 게 맞다.
일본 네티즌의 비아냥거림
사실 이보다 더 왜색(倭色)이 도는 설치물들도 대부분 별다른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간판’이 그렇다. 《뉴스위크》 일본어판 기사를 인용한 《매일경제》 2024년 2월 16일 자 기사 〈도쿄 아니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한국인 바글바글 간판은 일본어인 ‘이곳’〉 일부다.
〈일식당이나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이야 예전에도 흔했지만, 최근 들어 음식 스타일부터 매장 인테리어, 간판 표기까지 현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곳들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한글을 병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글 표기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작게 표기돼 있거나 아예 일어로만 된 간판들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해당 소식에 주목하는 건 지난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촉발돼 3~4년 전까지 유행하던 ‘노재팬’ 운동이 어느덧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처럼 현지풍 가게들이 유행 중인 데 대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해빙 무드로 돌아선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싱크탱크 겐론NPO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국 관계가 “나쁘다”고 답한 한국인은 급감한 반면 “좋다”고 답한 한국인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면 상황은 더 아리송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과 관련해 지금의 사회적 공기(空氣)란 대체 무엇일까 말이다. 한쪽에선 반일 메시지 영화가 ‘1000만 영화’로 거듭나고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일본어 간판을 보고 “매국노”라 비방하는 세상이지만, 다른 한쪽에선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키워나가며 일본어로만 적힌 가게 간판들까지 등장하는 세상. 이에 대해 위 《매일경제》 기사는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의 어느 한국 비하(卑下) 댓글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저 나라 국민은 몇%의 목소리 큰 선동꾼과 이에 영합하는 90%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소재가 없어 선동하는 이들이 조용하나, 이 몇%에 미끼를 던지면 미친 듯이 영합할 거다. 연못에 있는 잉어에게 식빵 한 조각 떨어뜨린 광경을 상상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 각자 판단은 자유지만, 애초 대중문화 소비란 상대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 및 심지어 민족 감정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진행되게 마련이라는 대원칙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노재팬’ 운동 당시가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을 뿐이고, 엄밀히 ‘노재팬’ 운동 당시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황만 가히 전체주의적으로 일본을 보이콧하는 분위기였을 뿐 물밑에선 그에 따른 반발과 반작용(反作用)도 상당했다. 그리고 그 물밑 흐름이 2020년대 들어 가시화(可視化)된 ‘일본 붐’으로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볼테스 V〉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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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인기 높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볼테스 V〉 |
〈볼테스 V〉는 1977~78년 일본 아사히TV에서 방영된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필리핀 방송사가 수입해 1978년 방영을 시작했고, 당시 필리핀에서 최고 시청률 58%까지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문화 현상을 일으켰다. 로봇 애니메이션이라고 유소년층만 본 게 아니라 성인들까지 모조리 브라운관 앞에 앉아 열중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절찬리에 방영을 이어가다 종영까지 불과 4회 분만을 남겨놓은 시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령하에서 〈볼테스 V〉에 방영 금지 조치가 내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른 필리핀 대중의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고, 곧 마르코스 정권의 사회·문화적 억압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로 기억돼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이 결국 실각(失脚)하자마자 바로 〈볼테스 V〉 재방영부터 이뤄지는 흐름을 낳았다.
그럼 왜 불과 4회만 남겨놓은 TV 애니메이션을 굳이 방영 금지시켜야 했을까. 이에 대해선 상당 부분 〈볼테스 V〉 내 자리한 ‘왜색’ 때문이었으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시 칼을 휘두르는 거대 로봇 설정이 일본 사무라이를 연상시킨다며 일부에서 왜색 논란이 일었고, 마르코스 정권은 이런 논란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자신이 태평양 전쟁 당시 반일 투사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적(政敵)들을 친일로 몰아 공격함으로써 대중의 인기를 얻어온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 또 궁금해지는 게 당시 필리핀 대중의 멘털리티(mentality)다. 칼 휘두르는 로봇 정도에도 왜색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여전히 반일 감정이 거센 분위기였는데 어쩌다 〈볼테스 V〉에는 그렇게들 열광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이유는 단순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정도’가 당시 필리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양질의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필리핀의 사회·문화적 검열과 통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로 잘 알려진 세계적 필리핀 영화감독 리노 브로카조차 필리핀 밑바닥 인생들을 그린 1976년 작 영화 〈인시앙〉이 “아름다운 필리핀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열 삭제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니 말 다했다.
이렇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나오는 자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딱히 즐길 만한 것일 리 없었다. 와중에 일단은 아동용이라는 인식이 강한 애니메이션인데다 해외 콘텐츠이기도 한 덕에 당국의 관심을 끌지 않은 〈볼테스 V〉 쪽이 자국 콘텐츠보다 훨씬 자유로운 표현과 묘사들을 보여줬고, 그러다 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브라운관 앞으로 몰려들어 일개 애니메이션이 시청률 50% 이상을 달리는 문화 현상을 일으켰다는 해석이다.
“문화는 원래 착시 현상 일으키기 쉬운 분야”
한국의 현 상황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이란 사실상 언제라도 계기가 생기면 불붙을 수 있는 종류의 상수(常數)인 건 맞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선 지난 2019년 10월 25일 방영된 KBS1 시사 프로그램 〈시사직격〉에서 구보타 노리코 일본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의 “혐한(嫌韓)이 있어서 반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반일이 나오니까 혐한으로 대응할 뿐이다. 그래서 갈수록 서로 싸움이 커지는 것”이라는 발언에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는 선우정 당시 《조선일보》 부국장(현 편집국장)의 답변이 자주 회자(膾炙)된다.
“가장 중요한 근대 시기에 일본에 35년 동안 지배당한 나라에 반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건 당연히 한국에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 하는 게 더 이상하다.”
물론 앞선 《매일경제》 기사가 제시한 여론조사 결과로도 현재 한일 관계가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게 한국의 반일 감정이다. 늘 자리해 있다.
다만 문화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문화 고유의 역할론에 근거, 시장의 필요에 따라 반(反)의 감정을 가진 나라 상품이더라도 주류(主流) 상품에 오르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1970~80년대에도 일본 가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나 ‘고이비토요’는 한국 성인층에서 소위 ‘웬만하면 알고 있는’ 노래였고, 이곳저곳에서 조용히 불려졌다. 포크 열풍이었던 당시 국내 대중음악시장에서 그런 양질의 엔카(演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본래 착시(錯視) 현상을 일으키기 쉬운 분야다.
실패한 ‘반일 영화’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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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 |
가까운 예로, 2022년 개봉해 206만 관객을 모은 송강호·이병헌 주연 영화 〈비상선언〉만 해도 그렇다. 한국 국적 민항기 내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발생, 빠르게 착륙하기 위해 비상선언을 하고 일본으로 향하지만 일본에선 자국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로 비상선언을 무시하고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전투기를 출동시켜 민항기에 위협비행을 하며 착륙을 막는다. 그러다 결국 기관포로 경고 사격도 하고 심지어 가미카제 식으로 민항기에 충돌하려는 시도까지 벌인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은 세간에서 특별히 화제가 되지도 않았다. 이런 정도 반일 설정은 한국 영화에서 흔하디 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묘〉 경우와 다른 건, 〈파묘〉는 ‘1000만 영화’가 됐고, 〈비상선언〉은 흥행이 부진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영화라는 차이다.
나아가 반일-좌파 논란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 효과라는 주장도 실제로는 다소 과잉된 해석인 측면이 있다. 김덕영 감독의 “반일주의를 부추긴다”는 발언이 언론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던 2월 26일이면 〈파묘〉는 이미 개봉 4일 만에 230만 관객을 끌어들이고, 특히 토요일보다 일요일에 더 많은 관객이 드는 드문 현상을 보이며 일찌감치 ‘대박’ 영화로 도장이 찍힌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25일 일요일 박스오피스 집계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1000만 예상’이 돌기 시작했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아예 없었다고 볼 수는 없어도, ‘1000만 영화’가 된 주요 원인이었다고 보기도 매우 어렵다.
‘이유 없는 천만 영화’
그럼 뭘까. 좌파 영화라서 좌파 대중이 몰려간 것도 아니고, 논란이 언론미디어에 대서특필돼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특별히 본 것도 아니면 이 오컬트 공포영화가 이례적으로 ‘1000만 영화’에 오른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말이다.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최근 필자가 한 영화배급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설명이 있다. “이제 ‘1000만 영화’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다소 허탈한 설명이다.
그저 볼 만한 영화가 없는, 소위 대진(對陣) 운이 좋은 시점에 오랫동안 못 보던 나름 신선한 소재의 영화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춰 나오기만 해도 해당 시점에 대중의 이목을 빼앗아가는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1000만 영화’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온갖 미디어가 총출동해 영화를 밀어주고 지금 세상의 특정한 멘털리티를 건드리지 않아도 약간이라도 ‘이벤트성’을 자극하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가능해진 게 ‘1000만 영화’라는 얘기다. 물론 그럴싸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존재하는 ‘1000만 영화’도 있지만, 점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산 선수 논란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자극적인 화젯거리가 없던 시점에 등장해 필요 이상으로 화제를 모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굵직한 사회·문화 현상들도 모두 의미 없는 것이냐는 반박이 나올 법도 한데, 그 심오한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는 현상들도 있는 반면 반일 감정처럼 가히 상수적인 코드를 건드리는 경우는 굳이 ‘현상’이라는 표현까지 쓰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현실에 가까울 수 있겠다. 요즘처럼 언로(言路)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개개인 전체에 열려 있는 세상에선 오히려 단순한 상황에 대한 확대 해석, 과잉 해석 쪽을 더 주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문화란 정말이지 의도했든 아니든 착시를 불러오기 쉬운 부문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국가적 마찰 막아줘야
끝으로,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문화란 국가나 민족, 또는 종교 간 극단적 충돌을 막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지대하다는 점이다. 정치·외교가 안정돼야 상대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상대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문화를 통한 서로 간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정치·외교적인 마찰도 극단까지 치닫는 일을 막아준다는 역할론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선 대부분 그 정반대, 즉 민족 감정에 따른 대중의 배타적 심리를 부추기는 방향으로만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어지곤 한다. 그러고는 민심을 반영했다는 애매한 명분을 덧붙인다. 반일-좌파 영화인 탓에 흥행이 됐든 아니든, 〈파묘〉 같은 논란과 갈등의 이슈가 앞으로도 끊이지 않으리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