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 / 임영웅 현상

‘임영웅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이돌 즐기던 30~40대 여성층이 ‘임영웅 팬덤’ 주도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큰 키에 미남, 트로트라는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 소화… ‘바른생활’ 이미지
⊙ “글로벌로는 BTS, 국내에서는 임영웅”
⊙ 임영웅, 아이돌 팬덤에서 유입된 이들 통해 막강한 팬덤 갖추며 트로트를 다시 주류로 끌어올려
⊙ 아이돌 팬덤의 문법은 정치 등 사회 전반의 ‘팬덤화’ 현상으로 번져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지난 4월 8일 가수 임영웅이 시축한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에서는 임영웅 팬들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임영웅 효과’가 이제 출판계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가수 임영웅에 대한 국내 최초의 음악 평론 서적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 얘기다. 4월 14일 출간 즉시 인터넷서점 예스24 4월 3주 차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7위에 오르고 예술 분야에선 1위를 차지했다. 또 교보문고가 집계하는 4월 3주 차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예술 분야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는 임영웅의 음악 세계를 분석한 첫 단행본으로 ‘임영웅 신드롬’에 대한 분석 및 음악전문가 6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임영웅의 인기요소 등을 분석한 서적이다.
 
  한편, 이 같은 ‘임영웅 효과’가 한발 먼저 펼쳐진 곳도 있다. 극장가다. 3월 1일 극장 개봉한 임영웅 콘서트 다큐멘터리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다.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12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임영웅 전국투어 콘서트 〈아임 히어로〉 앙코르 공연 현장을 담았다. 역시 개봉 직전 예매율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최종적으로 24만9548명 관객을 동원, 역대 콘서트 다큐멘터리 흥행기록 4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1~3위는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34만2368명)과 〈브링 더 소울: 더 무비〉(33만8097명), 그리고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31만5012명)다. 세계적 K팝 스타 방탄소년단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특이한 사례지만, 근래 스포츠계에서도 ‘임영웅 효과’가 대서특필(大書特筆)된 바 있다. 4월 8일 열린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과 대구FC 경기에서 임영웅의 시축(始蹴) 및 하프타임 공연이 발표되자 예매 시작 10여 분 만에 서울 월드컵경기장 1, 2층 주요 좌석이 매진되고 하루 만에 3만5000여 장의 입장권이 팔려나간 건이다. 2018년부터 K리그 유료 관중을 별도 집계한 이래 역대 최고 유료 관중 기록은 2019년 서울과 수원 경기의 3만2057명이었다. 이를 임영웅이라는 이름 하나로 불과 하루 만에 경신하고 최종적으로 4만5007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더군다나 해당 경기는 시즌 개막전도, 이렇다 할 특급매치도 아니었다. 이 같은 기록이 쓰이자 축구팬들 사이에선 농담조로 이날을 ‘영웅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별칭을 반영한 언론미디어 기사들도 등장하는 실정이다.
 
 
  〈아임 히어로〉
 
3월 1일 극장 개봉한 임영웅 콘서트 다큐멘터리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사진=조선DB
  여러모로 참 대단한 문화 현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중심은 당연히 임영웅의 파죽지세(破竹之勢) 음악 활동, 즉 본업 부문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2년, 지난 한 해 동안의 음악 활동만으로도 그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2일 발매한 첫 정규 앨범 〈아임 히어로〉는 발매 첫 주 동안 110만2012장을 판매하며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발매 첫 주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시작된 첫 단독 콘서트 〈아임 히어로〉는 전국 7대 도시 공연에 앙코르 공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시어터 공연까지 총 28회에 걸쳐 약 24만7500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연말에는 멜론뮤직어워드 올해의 앨범상과 베스트 솔로 남자상에 이어 올해의 아티스트상까지 수상하고,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 남자 가수상, 지니뮤직어워드 올해의 남자 솔로상과 음원 대상, 써클차트 뮤직 어워즈에서도 올해의 남자 솔로 가수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많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임영웅은 4월 28일 기준 아이돌 차트 평점 랭킹에서 무려 109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작년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2022년을 빛낸 가수’ 30대 이하 부문 5위, 40대 이상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같은 한국갤럽 조사의 ‘2022년을 빛낸 가요’ 40대 이상 부문에선 10위 내에 ‘사랑은 늘 도망가’(1위), ‘이제 나만 믿어요’(4위), ‘우리들의 블루스’(8위) 등 임영웅이 부른 3곡이 한꺼번에 랭크되었다.
 
 
  ‘영웅시대’
 
  현시점 한국 대중음악계는 방탄소년단과 임영웅으로 양분(兩分)된다는 말이 있다. “글로벌로는 방탄소년단이지만 국내에서는 임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임영웅 신드롬’은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이후 3년여 동안 수많은 언론미디어의 수천 건 기사들을 통해 샅샅이 분석돼온 바 있다. 인기 비결부터 능력치, 관심사, 인성(人性) 부분에 이르기까지 짚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다. 이제 그 분석 및 평론 서적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까지 등장했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좀 더 얘기해볼 만한 부분은 있다. 이 같은 ‘임영웅 신드롬’의 바탕이 된 ‘영웅시대’라는 이름의 임영웅 팬덤에 대해서다. 물론 그 대단한 열정과 막강한 조직력, 기획력 등에 대해서도 언론미디어상에서 수없이 다뤘지만, 좀 더 파헤쳐볼 만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부분이 ‘가수 임영웅’ 또는 ‘아이콘 임영웅’을 넘어 ‘현상으로서의 임영웅’을 설명하는 데 더 중요한 지점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영웅시대’ 면면을 자세히 다룬 《시사저널》 2022년 1월 31일 자 칼럼 “임영웅의 팬들은 어떻게 팬덤 문화를 바꿨나”부터 살펴보자.
 

  〈영웅시대의 핵심은 임영웅 공식팬카페(카페지기 신정훈, 물고기뮤직 대표)다. 회원 수가 1월 21일 현재 16만8000여 명이다. 임영웅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팬카페가 운영돼왔다. 모든 영웅시대 활동의 방향은 이 공식팬카페를 통해 전달된다. 팬카페에서 분화된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With Hero)가 가장 큰 영웅시대 조직이다. 전국 조직이다. 서울·경기, 광주·전남, 전북 등 9개 팀을 갖고 있다. 그 밑에 지역별로 ‘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분화한 것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다. 스터디방을 운영하고, 각종 봉사, 기부활동을 보다 긴밀하게 하기 위해 팬카페와 함께 위드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 위드 히어로 회원은 4000~5000명 정도다. 이 밖에 봉사활동을 위한 영웅시대 서포터즈, 히어로사랑, 히어로온, 영웅시대 밴드 등 전국에서 수백 개의 소규모 영웅시대가 활동하고 있다.(중략)
 
  영웅시대는 자발적이다. 그리고 조직적이고 열정적이며, 희생적이다. 여느 팬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참여를 한다. 내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동체에 참여하고, 스스로 활동한다. 그러면서 조직적이다. 각종 온라인 인기투표 등 목표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총공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활동에는 물리적인 동원 등은 전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열정적이기도 하다. 온라인 인기투표를 위한 ‘하트’ 등을 모아야 할 때 밤새워 하트를 모아 투표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표 기간 내내 이런 활동을 반복한다. 각종 기부와 봉사활동에는 희생적이다. 지난 2020년 8월 수재의연금 8억9668만원을 모아 ‘NGO 희망을 파는 사람들’에 기부했다. 11일 만에 1만5922명이 참여해 모금을 한 것이다.〉
 
 
  ‘극성 팬덤’ 논란도
 
  그런데 언론미디어에서 딱히 다루지는 않지만, ‘영웅시대’에 대해 이렇듯 좋은 반응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이면(裏面)에 대해서도 사실 말들은 많다. 이런저런 불평도 많고 비판도 적지 않다. 대단한 열정만큼이나 유난한 ‘극성 팬덤’으로도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임영웅을 음원 차트 1위로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스트리밍을 반복하는 통에 음원 사이트 지니뮤직에선 매일 아침 차트 1위부터 15곡이 임영웅 노래들로 도배되는 현상이 무려 2년 넘게 이어졌었다. 이 같은 문제가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자 결국 지니뮤직 측에선 특정 가수를 제외하고 차트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새롭게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지니뮤직만의 상황도 아니다.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등에서도 많건 적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차트를 왜곡시키고, 인기 차트 바탕으로 최신 유행음악을 듣고자 하는 일반 음악 청취자들 욕구를 이지러뜨린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밖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이나 유튜브 채널 댓글란 등에 ‘영웅시대’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몰려와 다른 가수들을 뜬금없이 비판하고 임영웅만을 신격화(神格化)하는 분위기도 심심찮게 연출된다. 또 멜론뮤직어워드나 서울가요대상 등 각종 음악 시상식에도 임영웅 팬들이 가계정을 다수 생성해 임영웅에게 투표하는 행위[인터넷 팬카페에서 가(假)계정 생성 방법을 공유해 사실상의 부정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팅 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가 일어나 적잖은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확실히 문제가 될 법한 일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를 바라보는 기존 K팝 팬들 반응은 의외로 ‘놀랍지 않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K팝 아이돌 팬덤들도 많건 적건 이와 비슷한 일들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시대’처럼 그 규모가 웬만한 정상급 아이돌 내지 그보다도 큰 수준이라면 이처럼 왜곡된 행각들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임영웅 팬덤은 40~70대 중·노년층, 그중에서도 여성층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앞선 서적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 구매층의 성별과 연령별 분포로 봐도 그렇고, 콘서트 다큐멘터리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예매자 성별과 연령별 분포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에서 ‘임영웅’을 검색한 이들 분포도 이와 진배없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10~30대 중심인 K팝 아이돌 팬덤의 조직 구조와 활동 영역을 그대로 빼닮고, 심지어 지지하는 가수 이미지를 드높이기 위해 각종 자선기부 및 봉사활동을 팬덤 이름으로 펼치는 작업까지 똑같이 벌이느냐 말이다.
 
 
  아이돌 팬덤에서 임영웅 팬덤으로
 
2020년 10월 30일 〈미스터트롯〉 부산 콘서트가 열린 벡스코에 임영웅 응원색인 스카이블루로 염색된 스카프로 멋을 내고 나타난 한 임영웅 팬 모습. 사진=조선DB
  답은 단순하다. 기존에 아이돌 팬덤에서 활동하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임영웅 등 트로트 가수 팬덤으로 ‘넘어간’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팬덤 활동 방향과 조직 구성 등에 있어 ‘기존에 하던 모델’을 그대로 제시하면서 팬덤 문화에 낯선 다른 중·노년층 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이 팬덤 방향과 활동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하고 있다는 정황도 엿보인다. 그리고 이는 K팝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K팝 팬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아이돌 팬들이 ‘영웅시대’로 유입(流入)되는 흐름에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M.net 〈프로듀스 101〉 등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K팝 아이돌 팬들이 비슷한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이라는 점 때문에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유입된 경우다. 자신들이 직접 마음에 드는 아이돌을 선택해 투표하는 형식을 즐기던 팬들이 2019년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투표 조작 문제로 막을 내리자 비슷한 형식을 지닌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음악 장르의 벽을 넘어 유입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 특이한데, 아이돌을 좇다 보니 〈내일은 미스터트롯〉까지 오게 된 경우다. 방영 당시에도 화제가 됐듯 〈내일은 미스터트롯〉에는 기존 아이돌 출신 또는 아이돌 연습생 출신들이 노선을 바꿔 트로트 가수로서 참가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종 6위로 마무리 지은 장민호는 1세대 아이돌그룹 유비스 출신, 황윤성은 아이돌그룹 로미오 출신, 이대원은 아이돌그룹 베네핏 출신이었고, 김중연, 김희재 등도 K팝 기획사에서 아이돌을 꿈꾸며 연습생 생활을 했던 이들이다. 그 기존 팬들이 이들의 〈내일은 미스터트롯〉 참가와 함께 시청층으로 합류하고 그대로 관련 인터넷 게시판 등에 아이돌 팬덤 생리를 이식(移植)했다는 것이다.
 
 
  ‘트로트 아이돌’
 
2020년 6월 6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린 ‘한국전쟁 70주년 추모음악회’에서 ‘이젠 나만 믿어요’를 부르는 임영웅. 임영웅은 ‘바른생활 이미지’ 가수이기도 하다. 사진=조선DB
  이런 역할을 한 팬들은 30~40대 여성층이 대부분이다. 이 나이대가 아이돌 팬이라는 게 특이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1996~97년 등장한 H.O.T.와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그룹을 중학생 시절에 접하고 팬이 된 이들이 어느덧 40대 초반이다. 생각보다 아이돌은 오랜 역사를 지닌 상품이다. 이렇게 K팝 아이돌의 소비층 연령도 유소년부터 40대 중후반 중년층까지 확대된다.
 
  그리고 임영웅은 많은 점에서 이들이 즐기던 아이돌과 유사한 면면(面面)이 많다. 일단 큰 키에 미남이고, 트로트라는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발라드, 록, 재즈,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원숙하게 소화해낸다. 무엇보다 이른바 ‘바른생활’ 이미지다. 조금만 튀어도 구설에 오르기 쉬워 유독 ‘바른생활’ 이미지가 선호되는 아이돌 시장 생리에 적합한 모델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아이돌’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지금 임영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저런 현상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한마디로, 언론미디어 등에서 임영웅을 ‘트로트 아이돌’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트로트 가수인데도 다분히 아이돌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를 소비하는 팬들이 그를 아이돌처럼 소비하고 그렇게 팬덤을 구성하고 있기에 이와 같은 인기 구도가 가능한 것이다. 그 팬덤 구성원들이 대중문화 소비로부터 거리가 멀어진 중·장년층 중심이기에 다르게 보일 뿐, 실질적으로는 ‘또 다른 아이돌 팬덤’이라는 것이다.
 
 
  ‘정치인 팬덤’도 ‘아이돌 팬덤’과 흡사
 
  이를 좀 더 깊이 관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문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팬덤화 현상’이라는 화두를 놓고서다. 이제 아이돌 팬덤 생리를 꼭 빼닮은 정치인 팬덤 등도 흔하게 목격되며 언론미디어상에서도 종종 다뤄지고 있는데, 이게 ‘우연히’ 비슷한 성격의 팬덤들이 여기저기 다른 분야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절대다수가 아이돌 팬덤을 근거지로 뻗어나간 모양새다. 아이돌 시장 규모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커지다 보니 이를 소비하는 팬층도 여러 다양한 계층으로 대폭 뻗어나갔고, 그러다 보니 이들이 아이돌 팬덤에서 체험했던 각종 조직 논리와 생리들을 다른 분야로 이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임영웅 팬덤은 같은 ‘가수’라는 입장이기라도 하다. 근래 들어선 웬만한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도 아이돌 팬들 입김으로 똑같은 팬덤 현상이 일어나는 게 상례(常例)다. 예컨대 2019년 영화 〈걸캅스〉 같은 경우에도 일정 규모의 팬덤이 형성, 자신들이 지지하는 영화이기에 그 흥행 수치를 높이려 소위 ‘n차 관람’, 즉 같은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하는 운동도 벌이고 심지어 ‘영혼 보내기’라는 소비행태까지 낳은 바 있다. 말 그대로 영화표만 구매하고 영화는 보러 가지 않는 행태, ‘영혼만 극장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이돌 팬덤 멘털리티다.
 
 
  아이돌 팬덤 문법, 사회 전반 확산
 
  이 밖에 각종 이념집단들은 물론 정치인 관련으로도 사례들이 많다. 앞선 〈프로듀스 101〉과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한데 얽히는 상황을 담은 위키트리 2017년 6월 16일 자 기사 “‘내 새끼’ 순위에 천국과 지옥 오가… 스트레스 극에 달한 ‘프듀’ 팬”을 보자.
 
  〈대학생 권××(22)씨는 강다니엘 연습생 때문에 친구와 싸웠다. 권××씨는 친구와 대형 여초 커뮤니티 아이디를 공유한다. 해당 커뮤니티는 회원 수가 60만이 넘어 젊은 층에 영향력이 강하다. 어느 날 권××씨는 친구가 강다니엘 연습생 루머 글에 단 동조 댓글을 발견했다. 친구는 권씨와 함께 쓰는 아이디를 본인 아이디로 착각하고 실수로 댓글을 달았다.
 
  “다니엘이 지금 1등이에요. 1등이라 그런지 견제가 많거든요. 웃긴 게, 친구랑 저랑 대선 때 같이 문재인 지지했어요. 문재인도 안티랑 가짜뉴스 많았던 것 기억하시죠? 걔랑 저랑 문재인 음해하는 글 쓰는 사람들 ‘패러’ 다녔거든요. 그랬던 애가 지금 다니엘 루머 글에 222, 333 따위 댓글이나 달고 있으니 내가 열불이 나요 안 나요? 심지어 다니엘 보고 최순실, 박근혜 언급하는 글도 봤어요. 다니엘이 국정농단 했나요? 기가 막혀서.”〉
 

  이를 두고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관점에서 이념과 가치를 내재화(內在化)하던 과거 세대와 달리, 90년대생은 군중으로 모여 압력을 행사하고 즉각적 피드백을 얻고자 한다.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의 콘텐츠 소비 양식과 유사하다”며 “이 세대 정치 소비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소비에 후행(後行)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활동에서 오는 성취·효능감이 우리 세대를 장악한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렇게 아이돌 팬덤의 문법은 사회 전반의 ‘팬덤화’ 현상으로 번져 어디서나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수가 절대 적지 않다.
 
  이 부분이 좀 더 관찰되고 연구돼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 팬덤 논리와 생리가 연령대만 바뀌어 ‘영웅시대’로 거듭난 데 대해 이렇게까지 언론미디어는 물론 학계에서까지 주목하는 실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비슷한 연배들이 벌이는 일이기에 놀랍고 독특한 현상이라 품평(品評)하기 이전에, 이 같은 멘털리티가 왜 한국 사회 곳곳에서 똑같이 펼쳐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발점이 되는 아이돌이라는 문화상품과 그 팬덤 형성의 심리적 근간은 또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확대시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트로트의 게토화’
 
임영웅은 2020년 9월 28일 ‘2020 트롯어워즈’ 사전 녹화장에서 대선배 이미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조선DB
  끝으로, 임영웅을 대변하는 트로트라는 음악 장르와 아이돌이라는 문화상품 간의 지난(至難)한 관계에 대해서도 한 번 짚어보자. 대중음악계에선 흔히 1990년대 중반부터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 방영된 2019년까지 약 사반세기 정도를 ‘트로트 암흑기’라고들 부른다. 트로트가 대중음악계 중심에서 밀려나 대중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 기간이 그 정도로 길었다는 뜻이다.
 
  그 중간쯤에 ‘부활’의 신호 정도는 있었다. 2004~2005년 장윤정의 ‘어머나’로 잠시 트로트가 되살아났던 시점이다. 현상적 인기 덕에 ‘어머나’는 2005년 2월 12일 MBC 음악 프로그램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는 1993년 김수희의 ‘애모’가 KBS2 〈가요톱텐〉에서 1위를 차지한 이래 트로트 가수로서 12년 만의 1위 기록이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그사이 12년 정도를 ‘1차 암흑기’ 정도로 볼 수 있다. 어찌 됐건 장윤정의 대성공 덕택에 이 시기 박상철, 박현빈, 강진 등도 함께 주류 무대에 나설 수 있었고, 심지어 트로트 걸그룹 L.P.G.까지 등장했었다. 그러나 2008년 즈음부터는 붐이 소강(小康)상태에 이르러 2019년까지 ‘2차 암흑기’가 펼쳐지게 된다.
 
  이 같은 ‘트로트 암흑기’는 아이돌산업의 부흥 및 그에 따른 주류(主流) 미디어의 동향(動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K팝의 효시(嚆矢)’ 정도로 여겨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때가 1992년이다. 이들의 슈퍼스타 등극은 곧 10~20대 초반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아 대중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용돈시장’의 탄생을 알렸다. TV 등 주류 미디어는 이처럼 새로운 현상에 덩달아 열광했고, 대중문화판 자체가 1020세대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낳았다. 그리고 곧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워 반영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트로트 가수들은 트로트 전문 프로그램 바깥에선 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소위 게토(ghetto)화된 것이다.
 
 
  아이돌에 밀렸던 트로트
 
  돌이켜보면 장윤정의 ‘어머나’로 잠깐 트로트 붐이 다시 일었던 것도 시기적으로 당시 아이돌산업 동향과 관련이 깊다. 당시는 아이돌산업이 일시적으로 위축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소리바다 등 인터넷 불법 디지털음원 서비스 등장 탓에 아이돌산업이 수익원을 잃어 새 아이돌 공급이 잘 이뤄지지 않고 아이돌 자체가 주류 미디어에서 잠시 모습을 감추던 때다.
 
  그러다 2007년 무렵부터 심기일전(心機一轉)한 아이돌산업이 소녀시대, 빅뱅, 원더걸스 등 이른바 2세대 아이돌을 내놓고 다시 한 번 대중음악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들은 아이돌 연습생 시절부터 이른바 ‘만능 엔터테이너’를 지향하며 방송 예능 프로그램 활동을 전제로 연습해온 터라 등장 즉시 각종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들을 장악해나갔다. 이러니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에 스포트라이트가 향할 겨를이 없었던 셈이다.
 
  대중음악산업에서 어떤 장르건 이렇듯 퇴조(退潮) 분위기가 짙어지면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세대교체가 불가능해진다. 설 무대가 좁아지니 트로트 지망생 자체가 줄어드는 측면도 있지만, 이들을 홍보해주고 스타로 키워줄 지상파 방송 등 주류 미디어에서 ‘안전제일’을 내세우며 기존에 친숙한 얼굴들만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트로트 암흑기’ 동안 송대관, 설운도, 태진아만 줄기차게 주류 미디어에 등장했던 이유다. 이럴수록 상호작용으로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도 한층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현대 군중이론의 또 다른 예시
 
  이 같은 흐름에서 임영웅이라는 아이콘의 탄생은 상당히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구석이 있다. 아이돌이라는 상품 탓에 ‘밀려난’ 트로트 장르에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벤치마킹한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 아이돌’을 탄생시키고, 그 정점에 오른 임영웅은 바로 그 아이돌 팬덤에서 유입된 이들을 통해 막강한 팬덤을 갖추며 트로트를 다시금 주류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탓에 퇴조했지만 아이돌의 생리와 문법을 흡수함으로써 다시 부활, 아이돌 상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존하게 된 절묘한 관계가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아이돌의 영향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막대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또 다른 예시가 되기도 한다. 어느 분야건 아이돌 시장 및 그 팬덤의 생리와 문법을 흡수해 적용해야만 대중이 반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현대 군중이론의 또 다른 예시로서 연구할 필요도 있을 법하다. 이렇듯 ‘아이돌 천하’에 맞서는 트로트 열풍, ‘임영웅 신드롬’이라 보도되는 현상이 어쩐지 ‘아이돌 천하’를 더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인상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3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