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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手의 세계

세계 최고의 저격수는 누구?

“시모 해위해, 바실리 자이체프, 크리스 카일… 6·25 때 국군과 미군을 무차별 사살한 인민군 저격수 차상률” 우리 군 저격수의 산실은 해병대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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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저격수나 전쟁을 미화(美化)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사람의 목숨을 앗는 저격수의 세계에도 기록이 남는 만큼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자료를 찾고 기사를 작성했다. 가슴 아픈 것은 상대를 많이 쏴 죽인 유명 스나이퍼에 인민군 차상률의 이름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지만 차상률과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군인과 우릴 위해 싸운 미군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대부분의 군사史 전문가들이 세계 최고 저격수로 꼽는 시모 해위해
⊙ “오른뺨에 총을 밀착, 스코프 십자가에 목표물이 메워지면 방아쇠를…”(스탈린그라드 박물관에 있는 바실리 자이체프의 저격총 옆 글귀)
⊙ 美 해군 특수전부대 네이비실의 자랑 크리스 카일… 그의 무덤 주변에는 항상 성조기와 꽃이 에워싸
⊙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로자 샤니나… 대표적인 여성 스나이퍼
⊙ 6·25 때 국군과 미군 무차별 사살한 차상률은 ‘공화국 영웅’
⊙ “전설의 스나이퍼 해스콕은 엎드린 자세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속옷도 안 입었다”
⊙ 국군, 북한군보다 저격수 수준 훨씬 높아
  저격수를 뜻하는 스나이퍼(Sniper)는 야생 도요새 스나이프(snipe)에서 나왔다. 18세기 인도의 영국군 장교 사이에 이 새를 쏘아 잡는 경쟁이 벌어졌다. 도요새는 워낙 작고 동작이 날래 맞히기 어려웠다. 스나이프를 떨어뜨릴 만큼 총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켜 그때부터 스나이퍼라고 불렀다. 저격수는 총알을 허비하지 않는다. ‘일발필중(one shot one kill)’이 모토다. 1,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이라크전을 거치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1차 대전 때 적 1명을 제거하는 데 들어간 탄약은 7000발, 2차 대전은 2만5000발이었다. 저격수들은 평균 1.7발을 사용했다. 저격수 한 명이 1개 중대(100명)만큼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저격수의 한 발은 치명적인 위협이다. 단 한 명의 저격수 때문에 1개 부대의 작전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철학자 볼테르가 “신(神)은 많은 병력 편이 아니라 정확한 사수(射手)의 편에 선다”고 했던 대로다. 사람의 목숨을 앗는 저격수의 세계에도 기록이 남는다. 그렇다면 역사상 세계 최고의 스나이퍼는 누구일까.
 
 
  ‘백색 죽음’ 시모 해위해
 
핀란드의 저격수 시모 해위해. ‘백색 죽음’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1939년에 발발한 소련-핀란드 전쟁, 일명 ‘겨울전쟁’에서 스탈린군과 맞서 상상을 초월한 전과를 올렸다. 조선DB
  대부분의 군사사(史) 전문가들은 핀란드의 저격수 시모 해위해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백색 죽음’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1939년에 발발한 소련-핀란드 전쟁, 일명 ‘겨울전쟁’에서 스탈린군과 맞서 상상을 초월한 전과를 올렸다.
 
  평범한 농민이자 사냥꾼이었던 그는 ‘겨울전쟁(1939년 12월 7일~3월 6일)’에서 라이플총으로 542명을 저격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치만이다. 기관단총으로 20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하니,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이 최소한 700명이 넘는다. 참전 일수가 90일 남짓하니, 하루 9~10명의 적군을 사살한 셈이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상황에서 하얀색 옷을 입어 위장한 채 구식 총으로 정확하게 목표를 맞히는 이 인간 사냥꾼은 소련군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당황한 소련군 지휘부는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가 쏜 것으로 보이는 총알이 날아오는 쪽으로 대규모 포격과 폭격을 가한 것이다. 결국 해위해는 턱과 왼쪽 뺨이 모두 날아가는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지만, 목숨은 구했다. 핀란드의 영웅으로 제대한 그가 개발한 전술은 지금도 전 세계 저격수들이 배우고 있다.
 
 
  바실리 자이체프
 
소련군의 전설적 저격수였던 바실리 자이체프. 조선DB
  스탈린그라드 박물관에는 소련군의 전설적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의 모신나강(M1891/30) 소총이 전시돼 있다. 총을 설명한 곳에는 “오른뺨에 총을 밀착, 스코프 십자가에 목표물이 메워지면 방아쇠를…”이라고 적혀 있다.
 
  1915년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자이체프는 우랄산맥 일대에서 자라며 사냥 사격술을 배웠다. 태평양 함대에서 근무하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그는 1942년 10월부터 한 달여간 242명을 저격해 죽였다. 사용한 총알은 243발. 100% 가까운 명중률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엄청나게 활약한 그는 영웅 칭호와 레닌 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저격부대 책임자가 되어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세 곳의 지점을 옮겨가며 넓은 목표 지역 내의 적들을 저격하는 전술을 전수했다. 자이체프가 양성한 저격수들은 2차 대전 동안 6000명의 적을 사살했고 그의 저격 전술은 현대전의 교범으로 자리 잡았다.
 
  자이체프의 활약상은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Craig)가 1973년 펴낸 논픽션 《에너미 앳 더 게이츠: 스탈린그라드 전투(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에 잘 소개돼 있다. 데이비드 로빈스(David L. Robbins)가 1999년에 내놓은 역사소설 《워 오브 더 래츠(War of the Rats)》에도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종전 뒤 자이체프는 키예프에서 섬유업에 종사하다 1991년 76세의 나이로 숨졌다. 얄궂게도 소련 해체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었다. 자이체프를 모델로 한 영화도 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년 작). 독일군을 적으로 하는 내용임에도 200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자이체프 역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남으로 꼽히는 주드로가 맡았다.
 
 
  크리스 카일
 
2012년 전쟁 경험담을 엮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저격수)》 출간 직후 촬영한 크리스 카일의 생전 모습. 조선DB
  크리스 카일은 미 해군 특수전부대 네이비실의 저격수로 복무하며 이라크전을 통해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 기록(공식 160·비공식 255명)을 수립한 스나이퍼다. 그가 이라크 전쟁에서 세운 ‘군공(軍功)’은 경이로울 정도다. 2100야드(1.9km) 거리 밖에서 저격에 성공하는가 하면 총 한 자루로 도로 위에 고립된 아군 해병부대를 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벌어진 근접전에서 반군을 권총으로 쓰러뜨리기도 했다. 카일을 두려워한 이라크 반군들은 그에게 ‘악마’라는 뜻의 ‘알-샤이탄(al-Shaitan)’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다. 전투 파병이 끝난 후 해군 특수전 저격수 및 대(對)저격수 팀 훈련과정 수석 교관으로 일하면서 최초의 네이비실 저격수 교본인 〈해군 특수전 저격수 교리집〉을 집필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카일은 은성훈장 2개, 동성훈장 5개, 해군과 해병대 근무유공훈장 2개, 그리고 해군과 해병대 공로표창을 받았다. 국가안보문제 유대 연구소가 수여하는 ‘위대한 조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일은 2013년 2월 2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는 미 해병대 저격수 출신 레이 라우스의 치료를 위해 텍사스주에 있는 사격장을 방문했다가 그에게 4발의 총격을 당하고 사망했다. 라우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다.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극장에서만 2억5000만 달러(약 2755억원) 수입을 거둬, 전쟁 영화 사상 미국 내 최고 수입 기록을 깼다. 이전까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2억1600만 달러)가 최고였다.
 
미국의 최고 저격수 중 한 명인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조선DB
  아직도 카일이 묻힌 텍사스 주립 묘지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병(老兵)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무덤 주위에는 항상 성조기와 꽃이 에워싸고 있다. 참전 용사나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카일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었던 가치를 지킨 수호자로 받아들여진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 불린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유튜브 캡처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 중에는 여성도 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키예프 대학 역사학도였던 그녀는 1941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보병으로 자원입대, 소련군 25사단에 배속돼 저격 훈련을 받았다. 파블리첸코는 오데사 전투에 투입돼 약 두 달 반 동안 무려 187명을 사살한 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전투에 가담했다. 1942년 6월 박격포에 부상을 당해 전선을 떠날 때까지 그는 소련군 공식 집계로 309명을 저격했고, 그중 36명이 적의 저격병이었다. 그는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 불렸지만, 아군에게는 상대 저격병을 사살해 준 구원의 천사이기도 했다. 그의 총은 자이체프가 사용한 모신나강(M1891/30)에 4배율의 PE스코프(조준경)를 장착한 것이었다.
 
  국제적 영웅이던 파블리첸코는 캐나다와 미국, 영국 등지에 초대받아 대중 강연 등을 했고, 백악관에 초대받아 루스벨트와 그의 부인을 예방하기도 했다. 파블리첸코는 1943년 소련 영웅금성훈장을 탔고, 소령 예편 전까지 저격 교관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 학위를 받은 뒤로는 사학자로 일했다. 1916년 7월 12일 태어나 1974년 10월 10일 별세했다. 그녀의 시신은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16세기에 건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에 안장됐다. 파블리첸코의 일대기 역시 2015년 영화로 개봉됐었다. 제목은 〈1941:세바스토폴 상륙작전〉.
 
 
  로자 샤니나
 
루드밀라 파블리첸코에 버금가는 소련 여성 명사수 로자 샤니나. 유튜브 캡처
  로자 샤니나도 루드밀라 파블리첸코에 버금가는 여성 명사수다. 1924년 소련의 아르한겔스크에서 태어난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대에 입대한 오빠가 전사하자 자원입대했다. 군사 훈련에서 뛰어난 사격술을 보인 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한 소련군이 독일군을 밀어붙이자 저격수 소대의 소대장이 되어 공격 선봉에 나섰다. 그녀가 겨눈 총에 독일군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한 번에 두 명의 적을 쏴 죽이는가 하면 하루에 5명의 적을 없애기도 했다. 샤니나는 1944년 4월 초부터 저격수로 나서 다음 해인 1945년 1월 28일 동프로이센 공세 작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숨질 때까지(21세) 9개월여 동안 적군 59명을 사살했다. 샤니나는 영광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소련군 여성 저격수 중 최초였다.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주 샨가루이(Shangaly)와 스토로에후스코에(Stroyevskoye) 등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도로(샤니나 거리)가 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제3산악 사단에 배치, 345명의 소련 병사를 저격한 독일 최고 저격수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유튜브 캡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전투에서 독일군 저격수는 가공할 전투력을 발휘했다. 개전 초 거의 모든 참전국이 저격수를 운용했지만, 망원조준경을 갖춘 저격수 부대를 운용한 나라는 독일밖에 없었다. 광학기술과 관련 산업이 발달한 덕분이었다. 저격수의 실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독일 최고의 저격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제3산악 사단에 배치, 345명의 소련 병사를 저격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최다 기록이다. 당시 제3 산악 사단장은 소련군 2개 중대의 공격을 헤체나우어의 저격만으로 물리쳤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헤체나우어는 특별한 지원 없이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전선의 은폐된 진지에서 소련군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다고 증언했다.
 
  “아군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날 밤, 포병이 공격 준비 사격을 했지만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했고 탄약도 부족해 오히려 적의 대 포병 사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단독으로 적 지휘관과 포병만을 골라 장거리 저격을 가했다. 결국 적은 잠잠해졌고 아군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헤체나우어는 동료에게 “두뇌가 우수한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차상률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저격수 차상률은 소련제 모신나강 저격총으로 국군과 미군을 합쳐서 총 120명을 사살했다. 유튜브 캡처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저격수 차상률은 소련제 모신나강 저격총으로 국군과 미군을 합쳐서 총 120명을 사살했다. 이륙하던 미군 측 헬기를 단 한 발로 격추시켰다는 말도 있다. 물론 당시 헬기는 내구성과 방호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차상률은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차상률은 6·25 전쟁을 그린 한국 영화 〈고지전(高地戰)〉에 나오는 저격수 ‘2초’의 모티브라고도 한다. ‘2초’는 총을 맞고 나서 2초 후에 총성이 울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북한은 6·25 전쟁 때 제2차 세계대전 시 소련군처럼 2인조 저격수를 운용했다. 그들의 야전 규정에는 ‘저격조나 사냥꾼 조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공격을 준비하는 적을 끊임없이 타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북한군과 중공군 저격수들은 피란민으로 위장, 유엔군을 기습 공격하고 작전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전쟁 후 북한은 〈인민군 군사상식〉이란 책을 통해 저격수들의 활약을 선전했다. 선전·선동 목적으로 작성된 책인 만큼 신뢰도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북한군의 저격수 운용 방식을 짐작게 하는 내용이 많다. 차상률에 대한 내용은 이 책에도 나온다.
 
  “1952년 한 해 동안 동부전선에서 행동한 인민군과 해방군 저격수들은 1만6000여 명의 적병을 소멸했다. 적들이 밤에는 습격이 무섭고, 낮에는 저격수가 무서워 못 살겠다고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특히 인민군 저격수 차상률이 소련제 모신나강 저격총으로 무장, 120여 명의 한국군과 미군을 사살하고 헬리콥터를 추락시켰다.”
 
 
  장 타오팡
 
중국 최고의 명사수로 알려진 장 타오팡. 1953년 6·25 전쟁 종반 중국인민해방군 24군단 소속으로 국군과 미군 214명을 저격했다. 유튜브 캡처
  장 타오팡은 중국 최고의 명사수로 알려졌다. 1953년 6·25 전쟁 종반 중국인민해방군 24군단 소속인 장 타오팡은 삼각고지 전투에 저격수로 투입된다. 18일 동안 매복 끝에 나타난 적에게 12발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 오히려 역공을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상황을 다시 분석하고 가늠쇠 사용법을 터득한 그는 32일 동안 214명을 저격했다. 적이 쓰러지고 최소 15분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만 저격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뒤늦게 저격수의 중요성을 깨달은 미국은 해병대 저격수들을 투입했다. 저격 소대의 수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정찰중대장이며 젊고 유능한 저격수인 홀메스(G. Holmes). 그는 719m 고지의 저격전투에서 장거리 사격을 가해 중공군들을 완전히 궤멸시켰다. 미 해병 저격수들은 약 400m 정도의 사거리에서 좋은 목표물을 발견, 차례차례 제거하고 기관총 사수까지 명중시켰다.
 
 
  아부 타신
 
173명의 이슬람국가(IS) 대원을 사살한 아부 타신. 조선DB
  최근 활동 중인 저격수 중에서는 아부 타신이 첫손에 꼽힌다. 환갑을 넘긴 노년의 이 스나이퍼는 173명의 이슬람국가(IS) 대원을 사살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그는 2017년 5월 시아파 민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지금까지 저격수로 활동 중이다. 타신이 최고의 저격 실력을 갖춘 것은 풍부한 실전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제4차 중동 전쟁과 이란-이라크전 등 총 5차례의 굵직한 전쟁에 참전했다고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타신은 “전쟁 후 은퇴해 지내다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았다”면서 “IS의 누구도 우리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하겠다고 신께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향이 한눈에 보이는 산 위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카를로스 해스콕
 
베트남전 영웅 카를로스 해스콕.
  베트남전 영웅인 미국의 카를로스 해스콕 상사 같은 뛰어난 저격수는 그 존재만으로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6월 미 제1해병사단 소속의 해스콕은 코끼리 계곡에서 잠복하던 중 개활지를 향해 일렬로 전진해 오는 월맹군을 발견한다. 800m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해스콕 상사가 선두지휘관과 부사관을 사살하자 월맹군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얼마 후 총알이 날아오는 곳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가 모두 머리통이 날아가고 만다. 월맹군들은 이렇게 꼼짝도 못하고 더위와 갈증을 참으며 밤을 지새우고 저격수들은 교대로 조명탄을 쏜 뒤 적군을 사살했다. 저격은 이렇게 5일 동안 지속됐고, 월맹군은 결국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이후 해스콕은 짐승을 뛰어넘는 ‘인내자’라고 불렸다. 해스콕은 미군의 저격 학교 시스템을 정립하다시피 했다. 미 해병대 저격학교의 모토인 ‘One shot, One kill’을 만든 것이 해스콕이다.
 
  해스콕은 가장 먼 거리를 저격(2286m)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의 기록은 2002년 아프간 전쟁에서 캐나다군의 롭 펄롱이 2430m에서 적군을 저격함으로써 경신됐다. 이 기록 역시 2009년 11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아프간에서 2475m의 저격에 성공하면서 깨졌다. 2017년 6월 23일 CNN은 캐나다 특수부대 사령부의 말을 인용, 이 사령부 소속의 한 스나이퍼(저격수)가 3540m 거리에서 목표 대상을 사격해 명중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스나이퍼는 모술 전선 후방에서 이라크군을 도와 수니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캐나다 최정예 특수부대 JTF-2 소속이다. JTF-2 측은 군 보안상의 이유로 언제, 어떻게 저격이 성공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JTF-2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전 세계 신기록을 크게 뛰어넘는다.
 
 
  천부적 자질과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력
 
길리 슈트를 입고 위장한 채 잠복 중인 미군 저격수와 관측수. 미 육군
  저격수는 천부적인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틀 동안은 꼼짝하지 않고 사격자세를 취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영화나 게임에서처럼 뛰어다니며 저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전증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셔도 안 되고 완벽한 매복을 위해 담배도 금물이다.
 
  완벽한 매복을 하면 일반 보병들은 바로 옆을 지나가도 눈치 채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저격 훈련을 받은 예비역의 이야기다.
 
  “저격수 훈련병들은 교관이 지정한 지역에 산개, 위장을 한다. 이후 조교들이 우리가 산개한 지역을 수색하는데 발견되면 실격이다. 합격한 저격수 훈련병들의 매복, 위장 실력이 어느 정도겠나. 여기서 합격을 하면 목표물에 사격하는 과정이 이뤄지는데, 끝까지 발각되지 않아야 최종 합격이다.”
 
  군사작전에 나선 저격수는 눈에 띄기 어려운 색깔의 옷이나 위장복을 입고 그 위에 더해서 식물을 잔뜩 붙인 길리 슈트(ghillie suit)를 추가로 걸치거나 아예 식물을 온몸에 감는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길리 슈트는 나뭇잎이나 줄기, 모래, 눈 등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보이게 한 위장복의 하나다. 주로 올이 굵은 삼베, 직물, 노끈 등으로 만들며 잔가지나 나뭇잎 등을 겉에 덧붙여 주변 환경과 구분이 되지 않게 해 적 경계병의 눈을 피하는 효과가 있다.
 
  길리 슈트는 스코틀랜드의 사냥터 관리인들이 휴대용 은닉도구로 개발한 것이 그 기원으로 알려졌다. 채수윤 군사전문가가 말한 바로는 이를 처음 사용한 부대는 영국군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연대 소속의 기마의용병 부대였던 로뱃 정찰대(Lovat Scouts)다. 1899년 10월~1902년 5월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2차 보어 전쟁 과정에서 편성된 로뱃 정찰대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에 영국군의 첫 정규 스나이퍼 부대로 개편되었다.
 
  눈도 아주 좋아야 한다. 위장을 구별하기 위해 색맹이 없어야 하고 나안 시력도 2.0 이상이어야 한다. 한국 정규군에 스나이퍼가 필요하다고 최초로 주장한 저격수 전문가 황광한 예비역 준장은 “모기가 물어도 꿈쩍 않는 인내력이 필요하다”며 “전설의 스나이퍼 해스콕은 엎드린 자세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속옷도 안 입었다”고 했다.
 
  저격수는 지적 능력도 탁월해야 한다. 탄도학, 무기의 특성 및 판별 능력 및 조작, 각종 기기의 조작 및 운영 능력, 탁월한 독도법이 밑받침돼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저격수는) 기억력이 좋아야 하며 적절하고 간략히 보고하고 판단하는 능력도 구비돼야 한다”고 했다.
 
 
  남북한의 저격수 수준은?
 
  우리 군 저격수와 관련한 내용은 대부분이 대외비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모은 취재기록을 공개하자면 일단 우리 저격수들이 사용하는 대표적 저격총은 AW50 모델이다. 항공기 테러 같은 원거리 지원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저격총으로 영국 애큐러시 인터내셔널사가 개발한 12.7mm의 대구경 총으로 도주 차량의 엔진도 폭발시킬 수 있다. 전문 저격소총인 독일제 SSG-3000과 SSG-69도 쓴다. 최근에는 국산 기술로 개발된 K14저격소총을 사용하는 부대도 있다. 2017년 12월 28일 레바논 지중해 연안 나쿠라 해변의 사격장에서 열린 유엔레바논평화유지군(UNIFIL) 사격경연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동명부대원’들이 사용한 총이다.
 
  우리 군 저격수의 산실은 해병대다. 해병대는 사단-여단급은 물론 연대와 헌병특경대까지 전문 저격수를 양성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해양경찰특공대도 위탁교육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우리 군 저격수 수준에 대해 “800m 밖에 있는 표적을 가뿐히 맞힌다”고 했다. 집중력과 실력은 뛰어나지만, 장비 면에서 1km를 맞히는 미군엔 뒤떨어진다.
 
  북한의 저격병들은 구(舊)유고슬라비아의 분대 저격수용 소총인 M-76을 국산화해 쓰고 있다고 한다. 북한제 저격총의 유효 사거리는 800m. 최고 600m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사격하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보병 전술에서 저격수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분대당 저격수 한 명을 배치하고 있다. 북한군 저격수는 연대급 이상의 단위에서 집체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한 탈북자는 “항일 빨치산 시절 김일성 부대 저격수와 6·25 당시 북한군 저격수의 활약상에 대해 세뇌 교육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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