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향 중 하나, 최근 자산가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른 침향
⊙ 고려 말기, 천년 후 침향이 되어 있길 기대하며 나무를 묻은 선조들
⊙ 침향박물관 정용주 관장, “진짜 침향은 태워 없애기 아까운 영물”
사진 : 침향박물관
⊙ 고려 말기, 천년 후 침향이 되어 있길 기대하며 나무를 묻은 선조들
⊙ 침향박물관 정용주 관장, “진짜 침향은 태워 없애기 아까운 영물”
사진 : 침향박물관
- 서울 강남에 있는 침향박물관 ‘침향헌’에 전시되어 있는 침향괴.
마이바흐 S600, 샤넬 넘버 5, 세종대왕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답은 바로 침향(沈香)이다.
마이바흐 S600은 내부에 자동으로 침향의 향이 분사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향수의 고전인 샤넬 넘버 5에도 침향이 들어간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던 시절부터 침향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침향을 좋아했다. 《세종실록》에는 침향이 모두 24번 등장한다. 조선시대 왕 중 최다 횟수다. 세종은 침향을 직접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용연향, 사향과 함께 세계 3대 향
침향은 용연향, 사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으로 꼽힌다. 용연향은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 등을 먹고 소화하지 못해 토한 토사물이 원료다.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향낭에서 채취한 분비물을 건조한 걸 말한다. 침향의 존재 자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뭐가 침향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보르네오,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시아에는 아퀼라리아속(屬)의 나무들이 서식한다(속은 종보다 한 단계 상위의 생물 분류 단계다). 20여 가지 이상의 종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아퀼라리아 아갈로카(Aquilaria agallocha Roxb, 이하 AAR)가 바로 침향나무다. 중국은 아퀼라리아 시넨시스(Aquilaria sinensis, 백목향)도 침향나무로 분류한다. 중국에는 AAR이 아닌 아퀼라리아 시넨시스가 주로 서식한다.
침향나무 내부에는 수지가 쌓인다. 사람으로 치면 혈관과 같은 물관을 따라 기름이 쌓인다. 벌레의 공격 등 외부로부터 받은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나무가 만드는 일종의 치유수단인 셈이다. 모든 침향나무가 수지를 만드는 건 아니다. 상처를 받은 나무만이 침향을 품을 수 있다. 침향나무의 수명은 길어야 200년. 나무의 일생이 끝난 후 침향의 삶이 시작된다. 땅에 묻힌 나무의 목재 부분이 썩어도 수지 부분은 상하지 않는다. 숙성될 뿐이다.
왜 이름이 침향일까. 침향나무 자체는 평균비중이 0.34다. 물에 넣으면 둥둥 뜬다는 얘기다. 수지가 침착되면 비중이 올라간다. 물속에 빠뜨리면 가라앉는다. 가라앉을 침(沈)자가 붙은 이유다. 상온의 침향에선 아무런 향도 맡을 수 없다. 체온 이상의 열이 가해지면 비로소 향기를 내뿜는다.
침향은 귀한 한약재이기도 하다. 《중약대사전》엔 5767가지의 한약재가 소개되어 있다. 침향에 대해서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비뇨 생식기능을 돋워준다. 피를 맑게 하고 막힌 기를 뚫고 오장육부를 보한다’고 설명한다.
천년 후를 기대하며 침향목 묻기도
처음 침향이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건 신라시대다. 《삼국사기》의 한 대목이다. 〈왕이 지시하기를 “관료들이 귀중한 수입품인 침향을 앞다투어 사치품으로 쓰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는 진골 계급을 포함하여 침향 사용을 엄히 금지한다”.〉
아시아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침향이 한반도 땅에 흔했을 리가 없다. 그러기에 더 신비하게 여겨졌으리라. 침향은 신앙과도 깊숙이 연관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6가지 공양물 중 하나로 향을 꼽는다. 향 외에 등, 차, 꽃, 과일, 쌀 등을 공양한다. 육법공양이다. 여기에서 향도, 다도, 꽃꽂이 등이 발전했다. 공양하는 향 중 제일로 치는 것이 침향이다. 2005년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개금할 때 불상 내부에서 침향이 발견되기도 했다.
침향의 흔적은 뜻밖의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경남 사천 흥사리에는 자그마한 돌비석이 있다. 높이 1.6미터, 너비 1.3미터, 성인 남자 가슴께 정도 높이다. 언뜻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돌이다. 전각과 이정표가 없다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원석 그대로에, 표면만 살짝 다듬어 비문을 새겼다. 한 자 한 자 내용을 더듬으면 예사 비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침향목(沈香木)을 묻으며 큰 소원을 발하려 합니다. …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인고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아무도 이 땅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 땅을 지켜나갈 것임을 모든 사람들이 뜻을 합해 대동발원(大同發源)합니다.’
매향비(埋香碑). 승려와 불자 4100명이 모여 매향 의식을 했음을 부처님과 후손들에게 알리려 세운 비석이다. 때는 고려 우왕 13년(1387),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시기였다. 이들은 침향목(향나무 혹은 참나무)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었다.
천년이 지나 미륵불이 오실 때쯤엔 나무토막이 침향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다. 과학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현세기가 시작될 즈음 대대적인 ‘침향 수색’이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활동했던 새천년준비위원회가 타임캡슐을 개봉하듯 침향을 찾고자 벌인 일이다. 전국의 주요 침향비 부근을 뒤졌지만 한 토막도 찾지 못했다.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
침향은 최근 금과 보석, 예술품에 이은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포천》지는 지난해 3월 침향을 다루며 ‘침향을 증류해 얻은 침향유만 해도 1킬로그램에 3만 달러 이상’이라며 ‘오래된 침향은 매우 진귀하다’고 소개했다. 톰 포드(Tom Ford), 디올(Dior)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침향을 이용한 향수를 내놓았다.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한 침향 조각에는 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억여 원의 판매 희망가가 붙었다.
침향은 CITES, 즉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에 등록되어 있다. 침향을 거래하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침향의 주산지인 베트남은 정부 차원에서 유통을 엄격히 감독하고 있다. 사실상 재배 침향이 아닌 자연산 침향은 기존 소장품들 외에는 거래가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거래량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가품도 많다.
침향박물관 침향헌의 정용주 관장은 ‘전 세계에 있는 진침향(진짜 침향)을 다 합해도 800여 킬로그램밖에 안 된다’고 했다. 정 관장은 세계적인 침향 컬렉터다. 사업을 하며 28년 전부터 침향을 모았다. 지난 2006년에는 서울 강남에 침향박물관을 열었다. 한의대 교수들 중에서도 진짜 침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단다. 단순한 침향이 아니라 ‘진침향’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그를 만나야 한다. 진침향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었다.
“아퀼라리아 중 AAR과 시넨시스에서 형성된 침향이 진침향입니다. 아퀼라리아속의 다른 종에도 수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걸 침향이라고 얘기하는데 ‘가침향’, 즉 가짜 침향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에서는 유사침향, 대체침향이라 부르지요. 그 세계가 있고 진침향의 세계가 있습니다. 크리스티 같은 대형 경매에서도 진침향은 만나기 힘들어요. 그만큼 귀합니다.
침향 덩어리 중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수지의 밀도예요. 밀도가 높으면 등급이 높다고 봅니다. 크고 속이 꽉 찬 침향은 최근에 채취한 게 아닙니다. 왕들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지요. 궁전의 침실이나 거실에 두곤 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전리품 조로 뺏기기도 했지요.”
― 대략적인 가격이 궁금합니다.
“진침향은 일단 시장에 나오질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가격은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AAR의 경우는 1그램당 300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도 갑니다. 수지 함유량이 적고 목질이 대부분인 건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지요. 침향나무의 뿌리에서 형성되는 게 가남향입니다. 침향 중에서도 가남향은 상당히 고가입니다. 1그램당 2만 달러 이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침향 가격이 굉장히 올랐습니다. 최근 몇 년간 10배 넘게 올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침향을 다각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얼마 전에 초청을 받아 하이난섬에 다녀왔어요. 가보니 향을 주제로 한 관광시설을 크게 만들고 있더군요. 중국에는 AAR이 없고 시넨시스만 있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침향을 그곳에 옮겨서 전시를 하면 어떻겠느냐며 요청을 해왔어요. 중국 옥션 쪽에서도 경매에 내놔달라고 요청이 와요.”
― 응할 생각입니까?
“시장에 가짜 침향이 돌아다니는데 지금 내놓을 이유가 없지요.”
역대 대통령들, 침향 애호
정 관장은 침향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침향은 단순히 향을 피우기 위한 재료만이 아니라는 것.
“보통 사람들은 침향을 향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침향은 피워서 없애버릴 만한 게 아닙니다. 약재로 쓰일 때도 거의 왕실에서만 쓸 수 있었어요. 침향은 영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기나 악기를 막아준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 침향박물관에 침향이 많지 않습니까. 무게가 1킬로그램이 넘는 침향은 전 세계에 45개밖에 없어요. 그중 11개가 여기에 있어요. 참관하러 오신 한의대 교수들이나 한의대생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덩치 큰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다 가기도 하지요.
침향의 세계는 오묘합니다. 그래서 침향을 다루고 소장하는 사람들은 침향에 많이 빠집니다. 누구라고 얘기하면 알 만한 사람들 중에서도 침향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날 때 침향을 그 부위에 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역대 대통령들 중에도 여러분 계십니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기에 오셨었지요. 전 전 대통령은 이런 기운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쪽이 기운이 좋다, 저쪽이 좋다 평가도 하시더군요. 며느리가 임신을 했을 때는, 아이가 침향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여기로 보내시기도 하셨지요.”
― 보통 소장가들은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길 꺼립니다. 박물관까지 연 이유가 있습니까.
“침향으로 사기를 치는 게 싫습니다. 어떤 한의사는 홈쇼핑에서 건강식품을 팔면서 침향을 넣었다고 선전하기도 했어요. 침향헌을 열면서 큰 것 몇 점을 서울시에 기증했습니다. 침향헌에 두되 소유권만 이전하는 식이었지요. 제가 죽으면 가족들이 팔 수 있잖아요. 못 팔도록 소유권을 국가로 넘긴 겁니다. 그래야 계속 공공에 공개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관련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기증품 관리가 잘 안 되더군요.”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미당 서정주의 시 〈침향〉의 한 부분이다. 미당 사후에 공개됐다. 한반도로 건너온 침향은 혼란의 시기 공덕을 쌓고, 후손을 축원하려는 소망의 결정체로 대접받았다. 침향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일이다.
마이바흐 S600은 내부에 자동으로 침향의 향이 분사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향수의 고전인 샤넬 넘버 5에도 침향이 들어간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던 시절부터 침향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침향을 좋아했다. 《세종실록》에는 침향이 모두 24번 등장한다. 조선시대 왕 중 최다 횟수다. 세종은 침향을 직접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용연향, 사향과 함께 세계 3대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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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향수 샤넬 넘버 5. 침향이 들어간다. |
베트남, 보르네오,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시아에는 아퀼라리아속(屬)의 나무들이 서식한다(속은 종보다 한 단계 상위의 생물 분류 단계다). 20여 가지 이상의 종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아퀼라리아 아갈로카(Aquilaria agallocha Roxb, 이하 AAR)가 바로 침향나무다. 중국은 아퀼라리아 시넨시스(Aquilaria sinensis, 백목향)도 침향나무로 분류한다. 중국에는 AAR이 아닌 아퀼라리아 시넨시스가 주로 서식한다.
침향나무 내부에는 수지가 쌓인다. 사람으로 치면 혈관과 같은 물관을 따라 기름이 쌓인다. 벌레의 공격 등 외부로부터 받은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나무가 만드는 일종의 치유수단인 셈이다. 모든 침향나무가 수지를 만드는 건 아니다. 상처를 받은 나무만이 침향을 품을 수 있다. 침향나무의 수명은 길어야 200년. 나무의 일생이 끝난 후 침향의 삶이 시작된다. 땅에 묻힌 나무의 목재 부분이 썩어도 수지 부분은 상하지 않는다. 숙성될 뿐이다.
왜 이름이 침향일까. 침향나무 자체는 평균비중이 0.34다. 물에 넣으면 둥둥 뜬다는 얘기다. 수지가 침착되면 비중이 올라간다. 물속에 빠뜨리면 가라앉는다. 가라앉을 침(沈)자가 붙은 이유다. 상온의 침향에선 아무런 향도 맡을 수 없다. 체온 이상의 열이 가해지면 비로소 향기를 내뿜는다.
침향은 귀한 한약재이기도 하다. 《중약대사전》엔 5767가지의 한약재가 소개되어 있다. 침향에 대해서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비뇨 생식기능을 돋워준다. 피를 맑게 하고 막힌 기를 뚫고 오장육부를 보한다’고 설명한다.
천년 후를 기대하며 침향목 묻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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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사천에 있는 매향비. |
아시아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침향이 한반도 땅에 흔했을 리가 없다. 그러기에 더 신비하게 여겨졌으리라. 침향은 신앙과도 깊숙이 연관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6가지 공양물 중 하나로 향을 꼽는다. 향 외에 등, 차, 꽃, 과일, 쌀 등을 공양한다. 육법공양이다. 여기에서 향도, 다도, 꽃꽂이 등이 발전했다. 공양하는 향 중 제일로 치는 것이 침향이다. 2005년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개금할 때 불상 내부에서 침향이 발견되기도 했다.
침향의 흔적은 뜻밖의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경남 사천 흥사리에는 자그마한 돌비석이 있다. 높이 1.6미터, 너비 1.3미터, 성인 남자 가슴께 정도 높이다. 언뜻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돌이다. 전각과 이정표가 없다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원석 그대로에, 표면만 살짝 다듬어 비문을 새겼다. 한 자 한 자 내용을 더듬으면 예사 비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침향목(沈香木)을 묻으며 큰 소원을 발하려 합니다. …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인고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아무도 이 땅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 땅을 지켜나갈 것임을 모든 사람들이 뜻을 합해 대동발원(大同發源)합니다.’
매향비(埋香碑). 승려와 불자 4100명이 모여 매향 의식을 했음을 부처님과 후손들에게 알리려 세운 비석이다. 때는 고려 우왕 13년(1387),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시기였다. 이들은 침향목(향나무 혹은 참나무)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었다.
천년이 지나 미륵불이 오실 때쯤엔 나무토막이 침향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다. 과학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현세기가 시작될 즈음 대대적인 ‘침향 수색’이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활동했던 새천년준비위원회가 타임캡슐을 개봉하듯 침향을 찾고자 벌인 일이다. 전국의 주요 침향비 부근을 뒤졌지만 한 토막도 찾지 못했다.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
침향은 최근 금과 보석, 예술품에 이은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포천》지는 지난해 3월 침향을 다루며 ‘침향을 증류해 얻은 침향유만 해도 1킬로그램에 3만 달러 이상’이라며 ‘오래된 침향은 매우 진귀하다’고 소개했다. 톰 포드(Tom Ford), 디올(Dior)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침향을 이용한 향수를 내놓았다.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한 침향 조각에는 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억여 원의 판매 희망가가 붙었다.
침향은 CITES, 즉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에 등록되어 있다. 침향을 거래하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침향의 주산지인 베트남은 정부 차원에서 유통을 엄격히 감독하고 있다. 사실상 재배 침향이 아닌 자연산 침향은 기존 소장품들 외에는 거래가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거래량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가품도 많다.
침향박물관 침향헌의 정용주 관장은 ‘전 세계에 있는 진침향(진짜 침향)을 다 합해도 800여 킬로그램밖에 안 된다’고 했다. 정 관장은 세계적인 침향 컬렉터다. 사업을 하며 28년 전부터 침향을 모았다. 지난 2006년에는 서울 강남에 침향박물관을 열었다. 한의대 교수들 중에서도 진짜 침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단다. 단순한 침향이 아니라 ‘진침향’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그를 만나야 한다. 진침향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었다.
“아퀼라리아 중 AAR과 시넨시스에서 형성된 침향이 진침향입니다. 아퀼라리아속의 다른 종에도 수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걸 침향이라고 얘기하는데 ‘가침향’, 즉 가짜 침향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에서는 유사침향, 대체침향이라 부르지요. 그 세계가 있고 진침향의 세계가 있습니다. 크리스티 같은 대형 경매에서도 진침향은 만나기 힘들어요. 그만큼 귀합니다.
침향 덩어리 중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수지의 밀도예요. 밀도가 높으면 등급이 높다고 봅니다. 크고 속이 꽉 찬 침향은 최근에 채취한 게 아닙니다. 왕들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지요. 궁전의 침실이나 거실에 두곤 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전리품 조로 뺏기기도 했지요.”
― 대략적인 가격이 궁금합니다.
“진침향은 일단 시장에 나오질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가격은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AAR의 경우는 1그램당 300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도 갑니다. 수지 함유량이 적고 목질이 대부분인 건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지요. 침향나무의 뿌리에서 형성되는 게 가남향입니다. 침향 중에서도 가남향은 상당히 고가입니다. 1그램당 2만 달러 이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침향 가격이 굉장히 올랐습니다. 최근 몇 년간 10배 넘게 올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침향을 다각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얼마 전에 초청을 받아 하이난섬에 다녀왔어요. 가보니 향을 주제로 한 관광시설을 크게 만들고 있더군요. 중국에는 AAR이 없고 시넨시스만 있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침향을 그곳에 옮겨서 전시를 하면 어떻겠느냐며 요청을 해왔어요. 중국 옥션 쪽에서도 경매에 내놔달라고 요청이 와요.”
― 응할 생각입니까?
“시장에 가짜 침향이 돌아다니는데 지금 내놓을 이유가 없지요.”
역대 대통령들, 침향 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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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침향박물관을 연 정용주 관장. |
“보통 사람들은 침향을 향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침향은 피워서 없애버릴 만한 게 아닙니다. 약재로 쓰일 때도 거의 왕실에서만 쓸 수 있었어요. 침향은 영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기나 악기를 막아준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 침향박물관에 침향이 많지 않습니까. 무게가 1킬로그램이 넘는 침향은 전 세계에 45개밖에 없어요. 그중 11개가 여기에 있어요. 참관하러 오신 한의대 교수들이나 한의대생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덩치 큰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다 가기도 하지요.
침향의 세계는 오묘합니다. 그래서 침향을 다루고 소장하는 사람들은 침향에 많이 빠집니다. 누구라고 얘기하면 알 만한 사람들 중에서도 침향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날 때 침향을 그 부위에 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역대 대통령들 중에도 여러분 계십니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기에 오셨었지요. 전 전 대통령은 이런 기운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쪽이 기운이 좋다, 저쪽이 좋다 평가도 하시더군요. 며느리가 임신을 했을 때는, 아이가 침향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여기로 보내시기도 하셨지요.”
― 보통 소장가들은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길 꺼립니다. 박물관까지 연 이유가 있습니까.
“침향으로 사기를 치는 게 싫습니다. 어떤 한의사는 홈쇼핑에서 건강식품을 팔면서 침향을 넣었다고 선전하기도 했어요. 침향헌을 열면서 큰 것 몇 점을 서울시에 기증했습니다. 침향헌에 두되 소유권만 이전하는 식이었지요. 제가 죽으면 가족들이 팔 수 있잖아요. 못 팔도록 소유권을 국가로 넘긴 겁니다. 그래야 계속 공공에 공개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관련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기증품 관리가 잘 안 되더군요.”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미당 서정주의 시 〈침향〉의 한 부분이다. 미당 사후에 공개됐다. 한반도로 건너온 침향은 혼란의 시기 공덕을 쌓고, 후손을 축원하려는 소망의 결정체로 대접받았다. 침향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