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白磁와 靑畫백자의 美 : 월간조선

한국 미술의 특징은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 순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아름다움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자연과 같은 아름다움을 창출하려면 자연을 깊이 관조하여 우리 자연의 특성과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가능하다. 우리 선인들은 자연의 특성과 그 이치와 진리를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도자(陶磁)문화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아름다움을 창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의식주(衣食住)는 인류와 함께 발전해 왔다. 먹는 것을 의미하는 ‘식(食)’은 그릇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릇 중에서 인류가 발명한 최대의 성과가 바로 도자기(陶磁器)이다.

1만2000년 전 土器 만들기 시작

홍치이년(弘治二年)이 쓰인 소나무ㆍ대나무무늬항아리(1489년 제작, 동국대박물관 소장. 국보 176호). 조선 전기 왕실용 청화백자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의 총칭인데 토기에서 도기로 다시 도기에서 자기로 발전해 왔다. 우리는 지금 자기시대에 살고 있으며 현대에는 특수한 자기인 뉴세라믹(fine ceramics)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1만2000년 전 처음으로 토기를 만들었다. 이후 도기시대를 지나 자기시대에 이른 것은 중국의 경우 8세기, 우리나라는 9세기 무렵이었다.

600~800˚C에서 구워내는 토기에서 1300˚C의 고(高)화도에서 구워내는 자기에 이르는 시간이 무려 1만1000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지금 세계 자기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 덴마크, 영국, 일본 등이다. 이들 자기문화 선진국에서는 처음부터 세계 최고의 자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서양 자기의 역사는 길지 않다.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서양(독일)은 900~1000년 뒤진 18세기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기술을 배워 만들기 시작한 일본도 17세기부터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자기가 얼마나 역사가 오래고 유구(悠久)한 전통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자기는 역사가 오래고 전통이 유구할 뿐 아니라 독특하고 우수한 질과 조형을 갖춘 예술적 가치가 높은 창작물이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 이래 융기문(덧띠·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 시대와 무문(無紋)토기 시대를 지나 삼한, 삼국시대 초기에는 단단한 와질토기(瓦質土器·기와처럼 단단한 토기) 시대를 거친다. 특히 삼국시대 4~5세기부터는 이른바 경질도기(硬質陶器·단단하고 굳은 성질의 도기) 시대를 맞이한다. 경질도기의 대표적인 예는 가야도기와 신라도기가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도 유사한 도기시대를 열어간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질도기에서 청자(靑磁)와 백자(白磁)시대를 열어가는 기초환경을 착실히 다지게 되는데, 통일신라 말기 9세기에 청자와 백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고려시대 들어 청자문화가 크게 발달하고, 조선시대 전기에는 분청사기(粉靑沙器)와 백자가 눈부시게 발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중·후기에는 백자 전성시대가 열린다.

白磁 중시한 조선

1456년에 제작한 ‘백자청화흥녕대부인 묘지(墓誌)’.

9월 30일부터 오는 11월 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하고 있는 조선 청화백자전(展)은 15세기 조선 초부터 19세기 조선 말기까지 성황을 이룬 조선백자 중에서 백자에 코발트로 푸른색의 문양을 그린 청화(靑畫)백자 전시회이다(일반적으로 청화의 한자 표기는 靑華이다. 그러나 우리의 청화백자를 의미할 때는 靑畫로 표기한다). 조선시대는 아무 문양이 없는 백자가 가장 기본이고 이 백자 바탕에 어떤 채료(彩料)로 문양과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청화백자, 철화(鐵畫)백자, 동화(銅畫)백자로 구분된다. 백자에 채료로 그림을 그리지 아니하고 투각이나 양인각, 음각으로 문양을 나타낸 것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백자의 두드러진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고려에서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민간 풍속이나 문물제도 등을 다룬 책)에 따르면, 세종시대에 어기(御器·임금님이 쓰는 그릇)는 백자기만을 쓴다고 돼 있다. 이후 《광해군일기》와 《경국대전 주해》에는 대전(왕)은 백자를 쓰고 동궁은 청자기를 쓰고 그 외 궁중의 각 관청에서는 청홍아리화(채문자기)를 쓴다고 돼 있다. 궁중에서 임금님은 아무 문양이 없는 순백자를 쓴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이외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왕이나 황제가 순백자를 쓰는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시대 때는 순백자를 최고로 여겼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우리의 옛 문헌에는 순백자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아주 어렵고, 순수함 등 예술성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백자를 귀히 여긴다는 기록이 많다. 조선 초인 세종대왕 때의 큰 학자요, 북쪽 지방의 육진을 개척한 명신(名臣) 김종서(金宗瑞)가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로 삼남을 순시하면서 고령현에 들렀을 당시, 밤에 현감(縣監)과 같이 밥상에 마주 앉았는데 그때 김종서가 밥상에 놓인 백자그릇을 보고 이 지방의 사기(沙器)가 매우 아름답다고 여러 번 감탄했다는 기록이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지식인 사이에서 백자에 대한 이해가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고령의 백자가 아주 귀한 상품(上品)이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의 백과사전격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청자를 사용하고 조선시대에 결백한 백자를 드높이 평가하여 여기에 그림을 그리면 순백자만 못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인지 전국의 조선시대 가마터를 조사·발굴해 보면 17세기까지는 백자가 99% 이상이고 청화(푸른색)나 철화(적갈색), 동화(붉은색)로 문양을 나타낸 것은 극히 드물다. 사실상 전부가 백자뿐이어서 오랫동안 가마터를 조사해도 문양 있는 사기조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화려한 중국·일본 백자, 순수미 강조한 조선백자

산수(山水)ㆍ인물무늬항아리. 조선 후기 청화백자에는 문인풍의 시(詩)와 그림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면 다른 나라는 어떠할까.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아주 대조적이다. 두 나라는 여러 가지 채료로 백자에 문양을 나타낸 것이 99%이고 문양 없는 백자는 1%에 불과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14세기 초 중국의 무역선(貿易船)에서 백자와 청백자가 2만여 점 발굴·인양된 적이 있는데 이때 발견한 백자와 청백자에는 양인각 문양이 가득 찼다. 문양 없는 백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14세기 중엽부터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명나라 초기부터 유상채자(釉上彩瓷·저온안료로 장식한 자기)가 발달해 삼채·오채·투채 등 아주 화려한 채색자기가 중국 도자기의 주류가 됐다. 청나라 때에는 한발 더 나아가 백자 표면에는 여러 가지 채색 문양을 가득 넣었을 뿐 아니라 백자 표면 전체를 황색, 적색, 갈색, 자주색, 다갈색, 흑색, 보라색 등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 다종(多種), 다양한 문양의 화려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략, 갖은 악행을 저질렀고 우리 문화를 말살·비하(卑下)하려고 악랄한 수단을 다 동원했다. 우리나라에는 독자적인 문화가 없고 모두 중국 문화의 아류(亞流)라고 폄하했다. 일본은 중국의 화려한 청화백자와 유상채자 문화를 받아들여 17세기 후반 이후 청화백자와 유상채자 문화가 크게 발달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수출해 지금 세계 도자문화의 선두주자가 됐다. 우리나라는 중국 원·명·청대의 주류였던 청화백자와 유상채자 문화를 옆에서 지켜보고도 청화백자만을 수용, 소량 제작했다. 화려한 유상채자는 조선 500년 동안 한 점도 만든 적이 없다.

그러면 조선백자가 추구했던 바는 무엇일까. 우리 선조는 조선백자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고 이상적인 백자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 실험은 500년간 계속됐다. 그래서 조선 전기인 15~16세기와 17세기 전반까지의 백자 빛깔과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까지의 백자 빛깔이 서로 다르다. 후기인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의 백자 빛깔 또한 이전과 다르다. 백자에 대한 이상과 취향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백자는 빛깔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백색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조형도 고려해 같은 항아리, 대접 접시라도 어떻게 하면 보다 잘생긴 것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던 것이다. 시대에 따른 빛깔의 변화와 더불어 조선 전기, 중기, 후기의 조형의 변화가 뚜렷하다. 우리처럼 백색과 단순 간결한 조형을 추구하면서 독창적이고 잘생긴 백자문화를 만들어낸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청화백자는 고려 말 궁중이나 귀족 사이에서 극소량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상 청화백자를 제작,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이다. 순백자와 푸른 청화의 만남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청화백자 제작

조선 후기 지식층의 서화, 골동, 분재 취미가 청화백자에 많이 반영됐다.

눈같이 흰 백자 바탕에 짙푸른 남색의 청화 문양을 두른 백자는 여유있는 생활이 가능한 사대부(士大夫)나 부상(富商)에게 인기가 많았다. 조선은 청렴결백과 검소한 생활풍조를 이상으로 한 나라였다. 그래서 만들기 어렵고 제작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청화백자를 권장하지 않았다. 청화백자에 들어가는 코발트는 명나라에서 소량 수입해서 썼다. 명나라에서도 양질의 코발트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귀했다. 명나라 홍무, 영락, 선덕제까지는 코발트나 청화백자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엄히 금지했다.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울수록 가지고 사용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처럼 청화백자의 인기는 계속 올라갔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성종 때 ‘회회청(回回靑·수입청)으로 만든 청화백자는 귀하고 특히 사치풍조를 조장하는 것이라 수입과 일절 사용을 금한다’는 어명(御命)까지 있었다.

아마도 당시 그 수요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 예종 때는 국내에서 나는 소위 토청(土靑)을 찾아내 청화백자를 생산하려 한 기록(왕조실록)도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우리 도자문화가 완전히 파괴됐다. 사기 장인(匠人) 수천 명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가마와 관련 시설은 대부분 파괴됐다. 재기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궁중의 중요한 연례행사에 쓰일 청화백자용문주병을 만들 수가 없어 청화백자용문주병을 바치는 사람에게 크게 포상한다는 영(令)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 청화백자의 생산량은 시대별로 달랐다. 조선 전기에는 매우 적었고 중기부터 조금씩 늘었으나 역시 순백자의 100분의 1에 불과했다. 17세기 전반까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후유증으로 도자산업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청화백자는 만들지도 못했다.

17세기 중·후반부터 청화백자가 명기(名器)로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 17세기 말~18세기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 청화백자 사상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조선 중기 청화백자가 만들어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0년 만에 청화백자가 다시 제작됐던 것이다.

18세기 후반 들어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종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청화백자가 생산됐다. 조선 중기의 필선이 가늘고 간결하고 단순한 문양에서 벗어나 필획이 굵고 대담한 다양한 문양의 백자를 만든 것이다. 조선 중기의 청화 문양에 비하면 참으로 대담무쌍하고 엄청난 모험을 수반한 대(大)변화였다.

18세기에는 우리나라 자연과 전통을 중시하는 문양 소재가 청화백자에 등장한다. 산과 들에 피어 있는 들풀과 난초를 주제로 한 도자기들이 생산된 것이다. 수량은 적지만 우리 도자미술의 정화(精華)이면서 청초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물 발굴사(發掘史) 차원에서 볼 때, 15~18세기 전반에 제작된 청화백자의 존재를 1960년대 초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깨진 파편 하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출간된 조선 도자기 연구서적을 통해 알 수밖에 없었는데 실물은 일본박물관이나 개인 소장물을 통해 구경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 수집품 중 매화문 조선 전기 청화백자가 유일했다. 1965~66년 국립박물관의 주도로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마리에 있던 백자요지를 조사하면서 발굴을 통해 조선 전기 청화백자 파편을 처음 발견했다.

조선 전기와 중기의 청화백자에 대한 이해와 중요도가 알려지면서 호암문화재단이 일본에 있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새로 발견된 조선 전기와 중기의 청화백자를 수집했다. 이후 호림미술관, 이화여대 박물관 등이 조선 전기와 중기의 희귀한 청화백자를 입수하면서 청화백자를 연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청화백자 특별전

광복 이후 조선백자의 전통을 이어받으려는 화가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 청화백자를 소장하고 감상을 즐겨 했던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항아리와 매화가지》.

청화백자는 일제 당시 일본박물관과 수집가 사이에 큰 인기를 끌어 발견되는 즉시 대부분 일본으로 밀수출됐다. 그래서 국내에는 거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1960년 후반부터 이병철 호암문화재단과 동원 이홍근, 수정(水晶) 박병래(朴秉來) 선생 등이 일본 지인들로부터 사들여와 그나마 일부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번 청화백자 특별전시회는 국립박물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공사립박물관, 개인 수집가의 청화백자를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우리나라 청화백자의 연구와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국의 명품 청화백자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60여 년간 도자사(陶磁史)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이처럼 전시품이 다양하고 내용이 충실한 전시회는 앞으로 다시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미술은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으로 새 시대의 변화와 인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출해 왔다. 특히 우리 도자기에는 하늘의 해와 달, 별이 문양으로 등장하는 등 이 땅의 삼라만상이 문양의 대상이어서 그 다양함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안타깝고 원통한 것은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도자문화가 크게 손상됐다는 점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전통을 찾아 희미한 명맥이나마 계승·발전시키려 하는 움직임이 196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해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이다. 도자문화의 전통을 잇겠다는 새로운 바람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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