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의 ‘아트토크’ ⑥ 그림의 ‘선구자’와 그 가치 : 월간조선

미술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역사적으로 남은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 사람을 계기로 해서 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대중음악 역사 속에 신화로 영원히 살아 있는 마이클 잭슨은 그 분야에서 ‘선구자’였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선구자’는 중요하다. 사람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이를 통해 역사를 바꾸기 때문이다. 미술의 역사에 남은 중요한 화가들 역시 선구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작가 이전까지 예술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는 눈을 열어 줬다. 그래서 결국은 유명하고 비싼 작가로 남게 된 것이다.

피카소가 비싼 이유

유명 화가, 비싼 화가 하면 누구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피카소(Picasso, 1881~1973)도 당연히 선구자였다.

르네상스 미술이 절정이었던 15세기 이후 400여 년 동안 서양미술에서는 원근법과 단일시점(single viewpoint)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었다. 멀리 있는 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커 보이고, 화가가 바라보는 한곳 시점에서 본 대로만 일관되게 그려야 현실을 잘 표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렇게 규칙에 맞게 그리는 것만이 꼭 세상을 잘 그려 내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사물을 사방팔방에서 본 시점을 다 한 화면에 넣어 그렸고, 원근법도 무시했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게 사실은 당시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는 이미 전통과 결별을 선언하며 변화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1, 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실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만이 예술이 될 수는 없었다. 피카소는 여기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세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냈다.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뉴욕 현대미술관 모마 소장)은 이런 작가의 특징이 처음 발현된 그림이기에,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그림 몇 개를 꼽을 때 꼭 들어간다. 이 그림은 직업여성 다섯 명의 누드를 그렸는데, 우선 이 여성들이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나 빤히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이전의 19세기 화가들이 그렸던 전통적인 누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태도도 획기적이지만, 기법적인 면에서는 여인의 모습을 앞뒤 양옆에서 본 시점을 마치 한 시점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린 것, 즉 다시점(多視點) 회화라는 게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인 것이었다. 오른쪽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면 이 점이 확연하게 보인다. 얼굴은 정면에서 본 얼굴이지만 코는 측면에서 본 듯 그린 것이고, 엉덩이는 뒤에서 본 시점이다. 그리고 그림 전체적으로 원근법도 무시했다. 이 때문에 뒤에서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성과 천막 안에 앉아 있는 여성들 사이의 거리감도 완전히 없어졌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입체파 미술을 알린 신호로 여겨져 서양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남은 것이며,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의 핵심 소장품이다.

중요한 건 피카소가 시작한 이런 ‘새로운 미술’이 피카소 혼자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피카소가 시작한 새로운 미술, 특히 그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 1907년쯤부터 시작한 ‘입체파(Cubism)’ 미술은 당대 유럽 미술계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후 서양미술과 전세계 미술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눈을 찾아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튀는 행동을 해서 혼자 날뛴 것에 그치면 광인에 불과하지만, 그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역사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피카소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은 화가인 것이다.

앤디 워홀이 비싼 이유

2013년 뉴욕 소더비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값인 1억500만 달러에 팔린 〈실버 카 크래시〉.

서양미술에서 20세기 초반을 뒤흔든 선구자가 피카소라면 20세기 후반에 이 역할을 한 건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다.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대표주자인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 캔, 캠벨수프 깡통,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이미 세상에 널린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소재로 사용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작가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없애 버린 작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품이 때로는 피카소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미술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앤디 워홀 작품은 <실버 카 크래시(Silver Car Crash, 1963)>로 작년에 뉴욕 소더비에서 1억500만 달러(약 1159억원)에 팔렸다.

이 작품은 실제 당시 어떤 신문에 보도되었던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 사진을 실크스크린 인쇄와 은색 스프레이 물감을 뿌리는 방법을 통해 흐리고 진하게 반복하며 찍은 것이다. 끔찍한 사고장면을 장식적인 그림으로 만들어서 낯설어 보이게 하는 그의 ‘재난시리즈(Death and Disaster Series)’ 중 하나다.

끔찍한 사고현장 이미지이지만 이렇게 은색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찍혀 있으니, 이 오리지널 이미지가 가진 끔찍한 느낌이 희석되는 효과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적으로는 아예 추상화에 가깝게 되었다. 앤디 워홀은 이런 방법을 통해 심각한 현실에 대해 관객들이 무감각하도록 만들었고, 그런 방법을 통해 끔찍한 현실에 면역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처지를 암시하기도 했다.

팝아트는 사실 195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대중의 호응을 얻고 폭발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미국 팝아티스트들에 의해서다. 미국은 당시 코카콜라나 마릴린 먼로 같은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로 뒤덮인 사회였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익숙한 싸구려 이미지가 상류층도 즐기는 고급예술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미국이 당시 가장 내세우던 민주주의 정신과도 맞았다. 앤디 워홀은 이런 시대에 그 시대에 딱 맞는 예술인 팝아트를 이끈 작가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워홀 이후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엄청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팝아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다시 말해, 앤디 워홀은 자신이 맹활약했던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구자’다. 그러니 그의 작품이 아무리 가벼워 보여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상관없다. 앤디 워홀이 끼친 선구자적인 영향력은 이미 그 작가만이 선점한 영역인 것이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이 단지 그림 그리는 기술이 뛰어나서 위대한 작가가 된 게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배운 대로, 그리고 과거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때 사회의 변화를 읽어 냈다. 그 변화에 따라 새로운 예술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그 흐름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들의 ‘혁명’에 동대의 다른 작가들과 후대의 작가들이 동참했다. 그래서 피카소와 워홀은 역사적인 의미가 누구보다도 큰 예술가들이고, 비싼 작가 1, 2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수백억 원씩 하는 이들의 작품 가격 뒤에는 ‘세상을 바꾼 것에 대한 가치’가 숨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개의 TV모니터로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역시 대단한 선구자였다. 1960년대에 이미 TV브라운관이 언젠가는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하며 비디오, 통신위성,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예술을 했고, 이는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비디오아트를 현대미술의 중요한 영역으로 끌어올린, 세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였다. 21세기 현재 뉴미디어아트를 하는 수많은 세계적 작가들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으로 백남준을 꼽는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어서 백남준이 훌륭한 아티스트로 남게 된 것이다.

예술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것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 8월 24일까지 계속되는 ‘굿모닝 Mr.로봇’에 전시 중인 백남준의 〈Baby Robot 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특히 ‘선구자’가 중요하다. 선구자, 즉 ‘처음’이라는 것은 곧 ‘새로움’을 뜻한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인 세계가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전에 유명했던 선배 예술가들의 세계를 잘 배워 답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이런 예술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감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의 것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예술가들은 그만한 역사적 위치와 수치(작품 가격)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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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의 ‘아트토크’ ⑥ 그림의 ‘선구자’와 그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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