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의 ‘아트토크’ ⑤ 화가의 개인 삶이 녹아 있는 그림 : 월간조선

아이를 키우는 30대 엄마가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자의 삶을 그린 그림이거나 소설일 때 그 작품은 관객(독자)들의 공감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경험해 보지도 않은 군대 생활이나 아직 못 겪어 본 60대 이후의 삶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쓴다면, 그 작품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그녀가 직접 피부로 겪은 삶을 그릴 때 진정 사람들의 눈과 머리와 가슴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일 그녀가 다른 소재의 그림이나 소설을 창작해 낸다고 해도, 그 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삶이 녹아 들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화가들이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화가의 그림에는 그의 삶과 성격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 무수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역사 속의 화가들 그림은 물론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 고흐는 정신병자였나?

런던 코톨드 미술관에 있는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1889).

개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림 하면 누구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화가는 아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28~1909)일 것 같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고, 화풍도 딱 그의 삶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반 고흐는 과거 미술과 다른 새로운 그림을 그려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너무 앞서 간 그의 화풍은 일찍 인정을 받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았다. 실연, 간질, 우울증, 성병 등으로 좌절도 여러 번 겪었고,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있었다. 정신병원을 나와서 프랑스 북부로 삶의 거처를 옮긴 뒤에도 정신적인 치료를 받았고, 끝내 원인이 정확하지 않은 총상으로 생을 마감했다. 37세 젊은 나이였다.

반 고흐는 흔히 정신병자였다고 하지만, 그가 진짜 정신병자였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논란이 많다. 정신이상이라기보다는 평생 자아(自我)와 투쟁을 한 사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반 고흐가 평생 자신과 싸웠다는 사실은 그가 남긴 수많은 자화상(自畵像)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자화상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30대 초반부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여러 버전으로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렸다. 누구보다도 자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예술가이기에, 화가가 어떻게 자신을 그려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고, 그림을 통해 그에 대한 답을 구하려 했다. 이런 고민이 잘 나타난 그의 자화상들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런던 코톨드 미술관,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 세계적인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다.

풍경화에도 자신의 격정 담아

경매에서 5700만 달러에 팔린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1889).

반 고흐가 자신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화가 폴 고갱과 의견 다툼을 한 뒤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리고 그린 그림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1889)은 몇 가지 버전이 남았는데, 매우 유명하다. 이 자화상에는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의 눈빛이 들어 있다. 좌절을 겪는 자신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화가로서의 고집과 의지가 보인다.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자신의 정신적인 불안 상태를 치유한다고 믿었다.

한번은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1889년 여름에 극심한 발작 끝에 자살을 시도하자, 병원 측은 그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그의 화실(畵室)을 없앤다. 그러자 반 고흐는 그림 그리는 것만이 자신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애원해 두 달 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다시 붓을 잡자마자 그리기 시작한 것 역시 자화상이다. 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알려진 <턱수염이 없는 자화상>(1889)은 이때 나왔다.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가득하고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생각이 뚜렷해서, 도대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한 탐구에 미쳐 있었으며, 수많은 자화상을 통해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반 고흐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 지역 풍경도 많이 그렸는데, 자연 풍경에도 자신의 고독하고 괴로운 삶을 녹여 넣었다.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꽃, 사이프러스나무, 올리브나무, 들판을 특히 많이 그렸다. 사이프러스나무와 올리브나무는 생 레미 지방의 특색이었다. 반 고흐는 그 나무들이 지닌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을 잡아 내되 거기에 작가 자신만의 주관적 감정을 넣어서 격정적인 자연, 심리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뭉크의 삶 들어 있는 <절규>

경매에서 1억1990만 달러에 팔렸던 뭉크의 <절규>(1895).

<절규>로 유명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역시 기구하게 살았던 작가다. <절규>는 현대인들 마음속에 있는 공포와 불안을 시각화한 그림이지만, 뭉크의 개인적 경험이 응축된 그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뭉크의 집안은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어머니는 결핵으로 뭉크가 5살이었을 때 죽고, 누나와 남동생도 일찍 죽었으며, 여동생은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뭉크는 여동생을 만나러 정신병원에 드나들곤 했는데, 그 병원 근처에는 도살장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즉, 뭉크가 어린 시절부터 겪고 들어야 했던 죽음과 고통의 소리가 이 그림 속에 응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화가들의 개인 삶이 작품에 녹아 들어 있어도, 그게 그 작가 혼자의 아주 특이하고 개별적인 이야기라면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어필하기는 힘들 것이다. 반면 그 화가 개인의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겪을 법한 이야기일 때 더욱 많은 관객을 울릴 수 있다.

뭉크의 끔찍한 개인적 경험 역시 꼭 뭉크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의 그림은 더욱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멀쩡히 살다가도 이따금씩 악 소리치며 도망가고 싶은 공포감이 현대인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닐까?

당시 사람들은 물론, 지금의 우리도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낯섦, 외로움, 공포 같은 감정을 뭉크의 개인 경험을 통해 대리 표현해 준 그림이 바로 <절규>다. 그런 보편적 정서를 그려 내되, 뭉크 개인의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기에 이 그림은 더 많은 사람에게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슬픈 모딜리아니의 슬픈 누드

경매에서 6890만 달러에 팔린 모딜리아니 <침대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

이탈리아 출신의 근대화가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36세 젊은 나이로 죽어 작품도 많이 남기지 못했고 어떤 미술사조에 해당되지도 않지만, 오히려 어떤 미술사조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개성 때문에 더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작가다.

특히 긴 타원형 얼굴에 사슴처럼 긴 목을 하고 있는, 우수에 젖은 여인 초상들이 그의 대표작들이다.

2010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890만 달러에 팔려 모딜리아니의 그림 중 최고가를 기록한 <침대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1917)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서양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소재인 여성 누드인데, 완벽한 모습의 여신이 아니라 평범한 동시대 여성을 그렸다. 모델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지만, 충분히 감각적이고 그러면서도 모던하다. 무엇보다도 어딘가 슬픈 모습이어서 더 잊히지 않는 그림이다.

모딜리아니의 인물화 속 모델들은 늘 이런 우수에 젖은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는 모딜리아니 작가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모딜리아니는 술과 마약에 중독돼 방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건강도 여의치 않았는데 그나마도 제멋대로 살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의 그림 속 단골 모델이자 아내였던 잔 에뷔테른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 모딜리아니를 따라 투신자살했다. 어찌 보면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삶의 비운(悲運)을 다른 사람의 몸과 표정에 이입(移入)해 그린 것이 아닐까 한다.

모딜리아니는 원래 조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결핵을 앓았고 몸이 약했던지라 체력이 달려서 조각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조각에서 손을 떼고 회화만 하게 되는데, 조각가로 출발해서인지 인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인물화가 대다수이고, 몸과 얼굴의 곡선을 중시하는 조각 같은 인물화를 그렸다.

요즘 현대미술 작가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자기의 은밀한 삶을 작품 속에 완전히 노출되게 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꼭 노골적으로 노출하지 않더라도, 미술작가들의 작품과 그의 개인적 삶은 절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미술작품이어야만 관객들의 공감을 제대로 얻어 내게 된다.⊙

상단주메뉴

이규현의 ‘아트토크’ ⑤ 화가의 개인 삶이 녹아 있는 그림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