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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 펴낸 박형준 부산시장

“反이재명 위기의식 조성해서 반사이익 얻겠다는 생각 넘어서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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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보수는 ‘진취적 보수’였지만, 진취성과 성찰 능력 약화”
⊙ “국힘, 국민 감정에 편승해 둥둥 떠다니는 느낌”
⊙ “광장 세력, 과거와 달라… 극우 딱지 붙여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아”
⊙ “민주당, 이념적 좌표 모호하고, 호남을 식민지화”
⊙ “우리는 미국이 견제해 주지 않으면 중국에 먹혀”
⊙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은 협소하게 운용할수록 더 약해지고, 폭넓게 운용할수록 강해진다”
⊙ “대선 과정에서 선수로 뛸 생각은 아직 없어”
사진=부산광역시청
  지난 2월 27일 국회도서관에서 ‘미래자유연대’ 출범식이 열렸다. 미래자유연대는 거리의 우파와 제도권 보수 정당 간의 연결고리가 되겠다고 자임하는 단체다. 이날 출범식과 함께 열린 창립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박형준(朴亨埈·65) 부산광역시장은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Mandate)’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박 시장은 같은 제목의 팜플렛을 배포했는데, 80페이지에 불과했지만 내용이 꽤 알찼다.
 
  박 시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으로 ▲트럼피즘 시대에 동맹을 강화하고 글로벌 연대(連帶)로 나아가는 리더십 ▲AI시대에 혁신의 리더십 ▲원전(原電)과 신재생에너지의 균형을 찾는 한국형 에너지 리더십 ▲저성장·저출생을 극복할 혁신균형발전의 리더십 ▲복지를 넘어 삶의 질에 투자하는 리더십 ▲강한 리더십을 위한 합작 리더십(collaborate leadership) 등을 꼽았다. 특히 앞의 세 항목이 명쾌하고 인상적이었다. ‘우회적인 대선(大選) 출사표(出師表)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보수(保守)의 어젠다로 손색이 없다 싶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3월 6일 부산으로 내려갔다.
 
 
  “정치권 언어, 이슈 파이팅에 그쳐”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
  ―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을 읽어 봤는데, 내용이 좋더군요.
 
  “세미나에서 나눠 주기 위해 서둘러 냈는데,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해서 다음 주쯤 정식 출간할 생각입니다.”
 
  ― 이 책은 어떻게 내게 된 겁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變曲點)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이 중요한 시기인데, 이 와중에 리더십 부재(不在)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정치가 자꾸 티격태격 싸우는 정치로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적인 문제를 한번 짚어 보는 취지에서 책을 내게 됐습니다.”
 
  ― 미국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유행했다던 ‘정치 팜플렛’이 연상되더군요.
 
  “우리 정치에 담론(談論) 공간이 너무 협소해요. 정치도 국가도 결국 스토리텔링인데, 그 능력이 너무 약합니다. 특히 정치는 언어인데, 우리 정치권의 언어들은 시대의 문제들을 다루는 게 아니라 굉장히 지엽적, 피상적입니다. 그때그때 이슈 파이팅을 하는 데 그치고, 길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 공감합니다.
 
  “또 하나, 과거에는 보수 정당이 아무리 청년들을 끌어들이려고 해도 잘 안 됐는데, 최근 보면 청년들 스스로 의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 청년들이 읽을 만한 보수에 대한 책이나 글이 너무 적은데 이 책이 그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계엄 사태 전부터 준비한 건가요?
 
  “예전에 썼던 ‘공진국가론(共進國家論)’(《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5년-기자 註)의 제2권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엄이 일어나고 보니 ‘그렇게 해서는 누가 읽겠나, 한가한 소리 아니겠나’ 싶어서 서둘러 팜플렛으로 전환한 겁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보수의 역사”
 
  ― 한국 정치, 한국 보수가 어쩌다가 이렇게 난파 지경까지 처하게 된 걸까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국 보수의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과거를 지키는’ 보수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보수의 모습을 통해 역사에 기여해 왔습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혁명가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도 산업화 과정에서 진취적인 리더십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도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민주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런 진취성이 있었기에 보수가 대한민국을 항상 한 단계 앞으로 끌고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맞습니다.
 
  “그런데 그 진취적 기질이 어느 순간 약화됐어요. 이와 함께,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능력도 약화됐습니다. 간혹 성찰이 있기는 했지만 겉핥기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 계엄 사태와 그 이후의 상황들은 그런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겠네요.
 
  “선출된 권력이 그걸 유지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유야 어떻든 간에 국민들께 죄송한 일입니다. 이에 대한 성찰이 깊이 있게 일어나야 하는데, 현장 싸움에 매몰되다 보니 그러지를 못하고 있어요. 특히 당(국민의힘)은 바깥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이를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략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런 기능을 당이 잃어버렸어요.”
 
  ― 과거에는 그런 성찰이 있었던가요?
 
  “2000년대 초만 해도 돌아가신 박세일(朴世逸) 교수님 등을 중심으로 그런 걸 고민하는 집단이 있었고, 저도 거기에 참여했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도 노무현 탄핵 사태, 차떼기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 실천적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감정에 편승(便乘)해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의 광장 세력, 과거 태극기 세력과 달라”
 
2월 1일 부산역 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 걱정입니다.
 
  “즉자적(卽自的)인 싸움, 즉 반(反)이재명·반민주당, 그리고 그걸 이념적으로 규정하여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반사이익(反射利益)을 얻겠다는 생각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제시하고, 국민들이 ‘여기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데, 나라를 걱정하는 그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승화(昇華)시킬 방안은 없겠습니까?
 
  “지금 광장에 나온 세력은 옛날의 태극기 세력의 재판(再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조국(曺國) 사태 때부터였다고 봅니다. 전광훈 목사 같은 분이 일부 집회를 주도하기는 했지만, 그런 분들로는 다 담아 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번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봅니다.”
 
  ― 일부에서는 그들을 ‘극우(極右)’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이념적으로 꼭 오른쪽 끝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부터 연세 든 분들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고, 과거처럼 구호 중심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 페스티벌처럼 하고 있어요. 과거의 광장 세력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이를 경원시하거나 극우라는 딱지를 붙여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말씀하신 것처럼 그 에너지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토론 배틀’ 등 통해 다이내믹 만들어 내야”
 
  ―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그런 역할을 당이 해야 합니다. 당의 책임 있는 사람들, 스스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유튜브 같은 데 나와서, 그동안 우리 당이 무엇이 부족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깊이 있는 토론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 조기 대선을 하게 된다면 그런 토론을 하는 큰 장(場)이 열릴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토론 배틀 형식으로 해도 되고, 다양한 이벤트로 만들 수도 있겠지요. 우리 국민들이 미스터트롯 등 그런 경연(競演) 방식의 프로그램들에 익숙하잖아요. 정치에서도 그걸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이내믹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런 다이내믹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가진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분도 있더군요.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정치가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를 반대했다, 혹은 어떤 국면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다 하는 것 때문에 확확 쏠리고, 우상화(偶像化)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면 허상(虛像)을 좇게 되지요. 그런 게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그런 데서도 좀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보수 정당이 상대적으로 약한 호남, 노동자, 청·중년층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민주당, 이념적 좌표 없어”
 
  ― 호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책을 보니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화되면서 호남 소외, 지역 소외가 당의 체질로 구조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더군요. 하지만 국민의힘이야말로 수도권을 잃고 ‘영남 DJ당’ ‘영남토호당’으로 왜소화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지적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성찰해야 할 대목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거의 비슷해요. 민주당은 호남이 정치적 뿌리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된 호남 출신이 아니라 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국민의힘도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조금 다르지만, 대구·경북만 해도 거의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지 ‘토호’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어요.”
 
  ― 그게 뭔가요?
 
  “국회의원은 한편에서는 국정을 전체적으로 다루지만, 지역구도 살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역구 사업에 매몰돼 재선, 3선 하는 ‘골목형 정치인’이 너무 많아졌어요. 국정 전체를 바라보고 국가적 리더십을 구축(構築)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옛날보다 적어졌어요.”
 
  ― 국민의힘이 수도권 선거에서 계속 패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대선 전망도 어둡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수도권 세 곳 가운데 두 곳에서 국민의힘이 이겼고, 기초자치단체장도 국민의힘 출신들이 꽤 있어요. 총선에서 진 것은 호남, 청중년층 인구가 많은 지역구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도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유리한 점도 있어요.”
 
  ― 뭡니까?
 
  “민주당에는 이념적 좌표가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모호하고, 어떤 면에서는 불투명하고, 어떤 면에서는 좌표 자체가 부재(不在)합니다.”
 
  ― 국민의힘은 이념적 좌표가 있나요?
 
  “국민의힘은 그래도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틀 속에서 죽 커왔고, 의식했건 못 했건 간에 그걸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걸 충실히 지켰느냐고 물으면 비판 받을 대목이 많지만, 그건 얼룩입니다. 얼룩은 지우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념 자체가 모호하거나 불투명하거나 좌표가 없다면, 그런 세력에게 국가를 맡기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겠지요.”
 
 
  “호남에 뿌리박은 보수 리더 키워야”
 
박형준 시장은 글로벌허브 특별법 제정 등 현안 논의를 위해 3월 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났다. 사진=뉴시스
  ― 말씀하신 것처럼 수도권에서의 선거를 위해서도 호남을 외면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새만금 예산 계속 주고, 5·18 행사 때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 불러도 달라지는 게 없잖습니까.
 
  “중요한 것은 연속성입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일회적으로 비례대표 몇 명 호남에 주는 건 도움이 안 됩니다. 호남에 뿌리박은 건전한 보수 리더를 키워 내야지요. 전남 순천에서 당선됐던 이정현 전 대표나 전북 전주에서 당선됐던 정운천 전 의원 같은 분들이 있잖아요. 호남에 씨앗을 뿌리고, 진정성 있게 그들을 키워 내야지요. 그 지역에 나가서 떨어졌더라도 당에서 중용하고, 장관으로 쓰고 하면서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호남에도 건전한 보수 세력, 중도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 저도 호남에 좋은 분들이 많이 있는 건 압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늘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더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당이 호남을 식민지화했어요. 민주당은 당대표도, 원내대표도, 정책위의장도, 최고위원들도 대부분 수도권 인사들입니다. 그래서는 호남이, 지방이 보일 리가 없지요. 오늘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얘기했어요. ‘민주당이 맨날 입으로는 국가 균형발전을 얘기하지만, 호남을 봐라. 호남이 40년 동안 당신들을 밀어 줬지만 호남에 혁신 거점 하나 못 만들지 않았느냐. 호남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만 만들었지, 호남을 발전시킨 건 아니잖냐.’”
 
  ― 이재명 대표는 무슨 일로 만났습니까?
 
  “부산시가 추진해 온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려고 만났습니다. 2년 전부터 이 대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그동안 만나지 못했어요. 대통령도 그동안 수십 번 만났는데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다니, 뭐가 이렇게 벽이 높은지…. 오늘 부산에 온다고 하기에 또 요청을 해서 만났어요.”
 
  ― 성과가 있었습니까?
 
  “내가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얘기가 없고, 북극항로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만 잔뜩 하더군요.”
 
 
  강한 리더십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람직한 정치 리더십과 관련해,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은 ‘강한 리더십을 위한 합작 리더십(collaborate leadership)’을 강조한다.
 
  〈공화정이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눈부신 성취를 거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권력을 형성하는 복잡한 메커니즘과 국민 선출 권력의 원천적 취약성, 그리고 견제와 균형 등 제도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공화제와 민주주의에서 리더의 덕목은 권위주의 체제의 리더의 덕목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탁월함(Arete)을 요구합니다.
 
  현대 공화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 준 여러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링컨, 처칠, 루스벨트, 레이건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민주주의 하에서도 강한 리더십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뚜렷한 역사적 성취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들의 강한 리더십은 강한 퍼스낼리티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권위주의적 개인 특성을 지닌 ‘스트롱맨’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어렵고 복잡한 조건 하에서 보다 폭넓은 권력 기반을 형성하는 것을 통해 강한 리더십의 조건을 만들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노예 해방이든 반파시즘이든 대공황이든 미소 냉전 체제이든 시대의 문제들을 풀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은 협소하게 운용할수록 더 약해지고, 폭넓게 운용할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처럼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늘 부조화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카리스마는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 카리스마가 권위주의적 러더십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카리스마는 강한 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가 자유, 공화, 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지혜로운 권력 운용과 결합할 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최선의 러디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형 정치 리더십의 파산, 그리고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스트롱맨(Strongman)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는 추세 속에서 경청할 만한 얘기다.
 
 
  “애매한 양다리 걸치기 안 돼”
 
박형준 시장은 2월 2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미래자유연대 창립 세미나에서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미래자유연대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에서는 국내정치만 다루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 트럼피즘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도 제시한다. 박형준 시장은 여기서 ‘동맹을 강화하고 글로벌 연대로 나아가는 리더십을 펼치라’고 주문한다. 먼저 그중 몇 대목을 보자.
 
  〈2차 패권 전쟁(1차 패권 전쟁은 2차대전, 2차 패권 전쟁은 냉전-기자 註)과 마찬가지로 3차 패권 경쟁도 기본적으로 체제 경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당 1당 체제의 대립인 것입니다. 따라서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과 체제 대립으로 분단 역사를 지속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가치동맹을 명확히 해야 문명 충돌의 국면에서 중국의 강력한 민족주의(중화주의)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시진핑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한국이 실제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중국의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장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순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중략)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정권을 뒷받침하는 세력(기독교 복음주의 세력, 빅테크 세력, 보수 전략 그룹)은 동맹의 단호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애매한 양다리 걸치기나 과거의 반미 정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샌드위치 신세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여기도 ‘땡큐’, 저기도 ‘셰셰’ 하는 양다리 걸치기를 실용주의로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에게는 배신감을 주고 중국에게는 조롱 받는 노선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이 모습을 명확히 보여 주었습니다. (중략) 이 3차 패권 경쟁 시대에 민주당이 집권해 문재인 노선을 답습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민주주의 진영에서 벗어나게 되면 반도체, 원자력과 방위산업, 조선업, 자동차 등 그나마 미중 패권 경쟁에서 기동 공간을 갖는 한국의 주력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첨단 기술 협력 네트워크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큽니다.
 
  애매한 절충주의나 양다리 걸치기는 더욱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일입니다. 미국으로부터 경시되고, 중국에게는 조롱 받고, 일본에게는 외면 받고, 북한에게는 이용당하는 그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사나운 큰형’이 된 미국
 
  ― 트럼프가 생각보다 거칠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트럼피즘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하루하루 행동이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저 사람, 정상이 아니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겠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는 일정한 일관성, 정합성(整合性)이 있습니다.”
 
  ―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미중(美中) 경쟁은 과거 냉전 시대 미소(美蘇) 경쟁과는 달리, 단순한 이념 전쟁이 아니라 기술 전쟁, 경제 전쟁의 성격도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갈등입니다. 트럼피즘에서는 글로벌 자유질서 자체를 ‘중국을 계속 키워 주는 질서’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게다가 미국도 더 이상 ‘정원사’ 노릇을 계속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자체가 3차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거예요.
 
  중국에 대한 압박이라는 점에서는 바이든 정권이나 트럼프 정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피즘은 ‘동맹을 압박해서 국제 질서에 대한 동맹의 기여도를 더 높여 미국의 부담을 덜어 주면, 미국은 그걸 기회로 더 강한 힘을 갖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예요.”
 

  ― 지금 같아서는 미국에 빈정이 상해서 동맹국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요.
 
  “동맹들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지요. 과거에는 미국이 가치 외교라는 차원에서 동맹의 부담을 어느 정도 자기들이 짊어지면서 큰형 노릇을 했다면, 이제는 굉장히 사나운 큰형 노릇을 하겠다는 거죠. 그렇다고 우리가 동맹을 척질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주지 않으면 (중국에) 다 먹힐 수 있는 환경이에요.”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트럼피즘에 대해 우리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은 아니고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실리적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 강화해야겠지요. 일시적으로 미국과 얼굴을 붉히게 될 경우도 있겠지요. 그럼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다뤘던 방식, 박정희 대통령이 카터나 포드를 다뤘던 방식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에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걸려 있습니다.”
 
 
  “대타협 통해 규제 개혁해야”
 
박형준 시장이 2월 7일 르노코리아 전기차 생산시설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부산광역시
  박형준 시장은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에서 ‘혁신의 리더십’도 강조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1984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주의적이던 이스라엘의 경제 체제를 민간의 창의를 극대화하는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해 오늘날과 같은 창업국가·혁신국가로 변모시킨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를 꼽았다. 박 시장은 AI시대의 대한민국도 그런 수준의 대합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지금처럼 국론(國論)이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그런 정치·사회적 대합의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래도 민주당도 최근 AI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 엔비디아 같은 회사 만들어지면 뜯어먹을 궁리부터 하는데 그게 긍정적이라고요?
 
  “그게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그건 민주당이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겁니다. 또 한국 경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핵심은 대타협 구조를 만들어 규제 개혁을 하는 것입니다. 인식과 발상을 전환시키는 큰 틀의 타협을 해야 그 힘을 가지고 규제 개혁다운 규제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 2021년 보궐선거에서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후 4년이 지났습니다. ‘혁신의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내세울 만한 게 있습니까?
 
  “그게 한 열 개는 되는데…. 우선 혁신의 인프라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가덕도 신공항인데,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원래 계획보다 6~7년 앞당겨서 할 수 있게 된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와 연결해서 수소 대심도 고속열차를 세계 최초로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 예타(예비타당성조사)에 들어가 있습니다. 에코델타시티, 북항 개발, 제2센텀시티 등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그동안 부산이 이룩한 성취들을 좔좔 읊었다. 투자 유치 3배 증가(2021년 2.1조원→2024년 6.2조원), 2024년 세계 살기 좋은 도시 아시아 6위(《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EIU), 글로벌금융센터(GFCI) 지수 26계단 상승(2020년 51위→2024년 25위), 시민행복지수 특·광역시 1위(국회 미래연구원, 2023년), 한국 아동 삶의 질 전국 1위(세이브더칠드런·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2024년), 부산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SDG 시티어워즈 대상 수상(UN ESCAP-Citynet), 청년 고용률 역대 최고(46.7%) 달성(2024년 3분기), 부산형 모태펀드 7516억원 조성(2021~24년), 글로벌 스마트센터 지수(SCI) 세계 13위·아시아 2위(2024년), 《뉴욕타임스》 ‘아름다운 해변도시’ 글로벌 톱5 선정, 영국 로열러셀스쿨·영국 웰링턴칼리지 국제학교 건립 확정….
 
 
  “산은, 부울경을 新산업 기지로 바꾸는 메기 역할”
 
박형준 시장은 지난 1월 10일 미국 시애틀의 IONQ를 방문, 양자과학기술 MOU를 체결했다. 사진=부산광역시
  이런 실적에도 불구하고 박형준 시장의 부산시정(市政)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다.
 
  ― ‘박형준 시장이 되지도 않을 엑스포를 된다고 해서 윤석열 대통령을 오도(誤導)하고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건 굉장히 큰 오해인데, 엑스포는 2014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국가사업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저희는 그걸 이어받아서 한 것입니다. 부산이 엑스포를 하려고 한 것은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기 위한 전략의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상대를 잘못 만나서 지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게 굉장히 많아요. 부산의 브랜드 가치가 굉장히 높아졌고,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해 부산의 인프라 구축 사업들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엑스포는 유치하지 못했지만 부산이 국제 MICE산업[Meeting(기업 회의), Incentive tour(인센티브 관광), Convention(국제회의), Exhibition(전시)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서, 부가가치가 높은 복합적인 전시산업] 도시로 발돋움해서 각종 국제대회나 회의를 많이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 ‘떡을 나눠 주는 정책’이 아니라 ‘떡을 만들 수 있는 떡시루를 만드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산업은행(산은) 부산 이전 요구 등을 보면 노무현 정권 시절의 공공기관 이전처럼 중앙에 있는 것을 찢어서 지방에 나눠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산은에게 서울에서 하던 일을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게 아닙니다. 산은이 부산으로 와도 서울 영업망은 그대로 있을 것이고, 서울에서 하던 일은 그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이 내려와서 부산뿐 아니라 울산·경남을 전통적 제조업 기지에서 신산업 기지로 바꾸는 메기 역할, 새로운 신호탄이 돼달라는 것입니다.”
 
 
  “선수로 뛰는 건 아직 NO”
 
  ― 《대한민국 재건을 위한 명령》을 보면, 단순히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있게 되면, 출마할 생각이 있습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보수 담론에 대한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선수로 뛰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 ‘노(No)’입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지금’이라는 건 오늘 이 시점을 말하는 겁니까?
 
  “만일 대선을 뛰겠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제 일상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 책을 낸 것도 벌써 다른 움직임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유혹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판이 만들어지면 그 판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까지만 조금 기여할 생각입니다. 그 이상은 진짜로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 대선 경선에 나서서 아까 말씀하신 당의 다이내믹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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