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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월간독자 리더(Reader)》 발행인 尹鶴 변호사

“사람들이 결국엔 ‘글’로 갑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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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것이 나오면 어떤 톨스토이보다 더 훌륭한 톨스토이 글이 되거든요”

⊙ 1997년 인수할 당시 500부 발행 잡지가 유가 10만으로 성장
⊙ 광고나 자극적 내용 없이 오로지 구독료와 읽을거리로 승부
⊙ 공연장, 전시 갤러리, 결혼·건강아카데미, 에세이스쿨 운영
⊙ “경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굉장한 경쟁력” “자신이 얼마나 큰 인물인지 알게 돼”
⊙ 일본版 잡지 발행 준비 中… “실패해도 성공이고 성공하면 대박”

尹鶴
1957년생. 서울대 법학과·同 대학원 법학 박사 / 변호사,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설립심사위원, 흰물결갤러리 대표, 신용협동조합중앙회 법률고문 역임 / 現 가톨릭평화방송 이사, 흰물결아트센터 대표, 《월간독자 리더》 발행인
  한때 잡지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교훈을 주며 상아(象牙) 같은 영감을 주었다. 엄청난 부수를 자랑한 적도 있었다.
 
  야생에서라면 이미 도태되었을 ‘오타쿠’ 같은 사람까지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잡지였다. 잡지는 실생활에 당장 요긴하진 못해도 갈 곳 없는 이들을 픽업하는 사륜구동 같은 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잡지는 미리 당겨 받은 유산도 없이 멀티미디어 홍수 속에서 밀려나고 있다. 어느새 “(잡지가) 너무 아름다워 질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쓴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있다. 단 한 명의 독자가 있는 한 고된 글쓰기, 원고 메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흰물결아트센터 대표인 윤학(尹鶴·63) 변호사는 《월간독자 리더(Reader)》 발행인과 《가톨릭 다이제스트》 대표로 있다. 소수 인력으로 매달 두 개의 잡지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2일 서울 서초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만드는 잡지는 종교지 같아 보이나 펼쳐보면 그렇지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이웃들의 ‘끈을 죈 등산화’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광고가 없고 자극적인 제목이나 폭로성 글도 없다.
 
 
  유가 10만이 넘는 메신저
 
《월간독자 리더(Reader)》 《가톨릭 다이제스트》 책들.
  구독료만으로 월간지를 꾸려가기란 무척 힘들 것 같지만 독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단다. 윤학 대표는 “독자들에게 충실한 읽을거리만 제공하면 좋은 잡지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광고를 싣지 않았다”고 말한다. 보통 배짱이 아니다.
 
  1997년 무렵 인수할 때만 해도 적자투성이 몇백 부의 조그만 잡지 《가톨릭 다이제스트》가 이제 유가 10만 부가 넘는 메신저로 변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가 어느 정도 자리 잡자 2007년 또 다른 잡지 《월간독자 리더(Reader)》를 창간했다. 한때는 미국판(版) 영어 잡지를 발행한 적도 있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낸 뒤 지금은 일본판 제작을 준비 중이다. 사람들이 영상에 이끌려 잡지를 멀리할 때 윤 대표는 잡지를 ‘블루 오션’이라 믿고 있다.
 
  ― 잡지사 직원 수는 몇 명인가요.
 
  “모두 합하면 한 20명 됩니다.”
 
  ― (월급 주려면) 부지런히 버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돈 버는 일은 안 하고요, 거의 돈 쓰는 일인데, 그런데도 돈이 부족하지는 않아요. 건물 임대 수익으로….”
 
  그러고 보니, 서울 서초구 대법원과 대검찰청사 맞은편 큰길에 위치한 흰물결아트센터와 흰물결빌딩이 윤 대표 소유다. 화려하진 않지만, 입지가 좋은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육지의 최남단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도초도’라는 작은 섬으로 이사해 살았으니 오리지널 흙수저 출신이다.
 
  ― 잡지 만드는 일 외에 변호사 업무도 보나요.
 
  “안 하죠.”
 
  ― 주위 사람들이 좀 부러워하지 않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오히려 무시하겠죠. 변호사가 일 안 하고 잡지 만든다고. 하하하.”
 
  ― 그래도 서초동 돌아가는 정보들은 이렇게 저렇게 들으시는 거죠? 법관 인사 같은….
 
  “이제는 별 관심이 없죠.”
 
 
  ‘제가 보낸 글 마음대로 고쳐도 돼요’
 
  ― 그렇습니까?
 
  “인사나 이런 데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판결하는지에 관심이 있죠. 또 대법원장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쌍안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어요.”
 
  ― 언제부턴가 서초동 법조타운이 가장 드센 시위 현장이 되었어요.
 
  “조국 사태 때문에… 완전히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조국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웃음) 이번 대선을 보세요. 진짜 진퇴양난입니다.”
 
  ― 잡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좋은 필진을 발굴했나요.
 
  “소설가 박완서(朴婉緖·1931~ 2011)씨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좋아했거든요. 《가톨릭 주보》에 쓴 글을 봤는데 너무 잘 썼어요. 글 청탁하고 싶어 찾아갔지만 우리한테 글을 주겠어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1997년 잡지를 처음 인수했을 당시 구독자 수가 500명밖에 안 됐을 때예요. 그런데 대가(大家)는 다르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을 존중하고…. ‘똑똑한’ 사람이야.”
 
  ― 똑똑함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네요.(웃음)
 
  “저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하지요. 하하하. 그분이 글을 정성껏 써서 보내셨더라고요.”
 
  박완서씨가 보내온 원고 끝에는 짧은 편지가 있었다.
 
  ‘제가 보낸 글 마음대로 고쳐도 돼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웬걸요.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칠 구석이 없었어요. 아, 이래서 대가구나….”
 
 
  “그렇게 한 잡지들, 다 망하지 않았나요?”
 
전남 신안군 도초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뒷줄이 윤학. 섬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고교 진학을 위해 빛고을 광주로 갔다.
  이번에는 동화작가 정채봉(丁埰琫·1946~2001)씨를 찾아갔다. 얼마 후 너무나 잘 쓴 글이 잡지 편집실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계속 써달라고 하면 염치가 없잖아요.
 
  실패한 경우도 있어요. 어느 작가의 글을 받아보니 거의 베꼈더라고요. 그분에게 따졌더니 자기가 조금 손을 봤대요.”
 
  ― 말도 안 돼.
 
  “그분 말씀이 ‘요즘 다 그래’ 하더군요. 속으로 ‘사기꾼이구나’ 했죠.”
 
  ― 글 에너지가 고갈된 분이었군요.
 
  “제가 잡지를 만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한두 마디씩 거들어요. 독자부터 확보해야 한다, 광고를 받아야 수익이 된다, 유명 필진을 둬야 한다는 등등의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잡지들, 신문들 다 망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 다 망한 건 아니고….
 
  “아니, 거의 망했어요. 90%, 아니 95%, 아니 99%가 망했지요. 《월간조선》이나 《신동아》 정도만 버티고 있지 않나요?
 
  저는 다짐했죠. ‘그런 방향으로 가지 말고 내용에만 충실히 하자.’ 물론 우리 책에 광고 실을 사람도 없지만….”
 
  ― 광고하고 싶다는 사람은 있었나요.
 
  “없죠. 이제껏 안 해왔으니까. 그래도 많이 보잖아요.”
 
  ― 10만 부 넘죠?
 
  “8만~9만 부 찍다가 때로 12만 부 찍고 그러거든요. 우리보다 많이 찍는 데가 《좋은생각》 정도인데 비슷한 성격의 일본 잡지 《PHP 스페셜(スペシャル)》은 100만 부 이상 나갑니다.”
 
 
  경쟁 가치와 비경쟁 가치
 
  ― 일종의 라이벌로 생각하는 잡지들이 있나요.
 
  “경쟁이니 라이벌이니 여기는 마음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나 갖는 거예요.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한데, 저는 삶의 가치라는 게 경쟁 가치와 비경쟁 가치가 있다고 봐요.
 
  세상을 살아갈 때 경쟁하며 살아야 하지만 경쟁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어요. 경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굉장한 경쟁력이죠.”
 
  그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래전 밑줄 친 책에서 읽었던 경구 같은 놀라움, 지금도 판매되고 있지만 ‘고향만두’나 ‘가나 초콜릿’ ‘칠성사이다’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이랄까.
 
  “저는 대학(서울법대) 졸업 후 어두컴컴한 고향 집 구석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사법시험 수석이니 최연소니 3관왕이니 하며 신문에 오르내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초라함을 느꼈어요. 경쟁에서 뒤처진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법학 책을 펴면 머리만 아팠어요.”
 
  어느 날 우연히 낡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 속 ‘가치에는 경쟁 가치와 비경쟁 가치가 있다’는 한 문장이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름처럼 鶴 되어 나는 기분
 
윤학 대표는 수요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미국 LP가게도 샅샅이 뒤진다.
  “돈·권력처럼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쟁 가치는 이 세상에 한정되어 있는데, 아름다움이나 선함은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비경쟁 가치”라는 것이었다.
 
  “제가 갖게 되면 남이 갖지 못하는 경쟁 가치를 위해 발버둥 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경쟁 가치는 항상 경쟁 가치보다 나아요. (경쟁 가치를) 넉넉히 품어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제가 어느 자리를 차지하면 남이 그 자리를 못 차지합니다. 남이 차지하면 제가 못 갖는 것이고….
 
  근데 비경쟁 가치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친구들한테 줄 게 너무 많더라고요. 섬마을 향기를 담은 바닷바람을 줄 수 있고, 갈매기 울음소릴 줄 수 있고, 제 이름처럼 학(鶴)이 되어 창공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딱딱한 법서를 읽어도 가슴은 부드럽기만 했다.
 
  “공부가 저를 드높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정말 가치 있게 쓰일 거라 생각하니 법 공부도 재미있었습니다. 그해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었죠.”
 
  ― 사회생활이란 게 치열한 경쟁일 수밖에 없는데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느끼는 이가 더러 있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비경쟁 가치로 사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어요. 여러 곳에서 숨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사람들은 경쟁과 승리를 생각하지만 비가치 경쟁을 알게 되면 느낄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인물인지를….”
 
  뒤집어 생각하니 그는 스스로 거인(?)이라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 거인족의 후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방미인의 구수한 인생담…
 
윤학 대표가 강연하는 모습.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심리치료를 곁드린 인생담을 구수하게 푼다.
  윤학 대표는 두 개의 잡지를 발행하는 것 외에 흰물결아트센터라는 공연장과 전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또 결혼아카데미(제35기 배출), 건강아카데미(21기), 에세이스쿨(67기)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유료)이다.
 
  유명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 클래식 뮤지컬 〈첫사랑〉을 만들었고 자전적 이야기를 첼로, 피아노의 선율로 풀어내는 1인 15역 모노 뮤지컬도 수년째 정기 공연 중이다. ‘흰물결’의 대표적인 음악회 ‘사랑의 입맞춤’ ‘선녀를 버린 나무꾼’ ‘봄이 오는 소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기자는 이날(3월 2일) 오전 11시 ‘삶과 음악’을 주제로 ‘흰물결 수요예술학교’가 열린다고 해서 흰물결아트센터를 찾았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솔직히 불안했다. 평일 오전에 누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올까. 11시가 가까이 오자 60~70명이 객석을 메웠다.
 
  윤 대표는 팔방미인이었다. 음악 선곡은 물론 곡 설명에다 심리치료까지 덧댄 자신만의 인생담을 ‘썰’[說]처럼 구수하게 풀어냈다.
 
  2시간 동안 소프라노 오페라 가수 데브라스(Netania Davrath)가 노래하는 ‘목동의 노래’, 재일동포 플루티스트 김창국이 연주하는 글룩(Gluck)의 ‘정령들의 춤’, 피아니스트 앙트르몽(Philippe Entremont)이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메라이’,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선명회합창단이 부르는 권길상의 ‘자장가’,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나 마르치(Johanna Martzy)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에다가 조영남·김도향의 ‘행복한 사람’, 브라더스 포의 감미로운 팝송 ‘그린 필즈(Green Fields)’까지 귀가 행복해졌다.
 
  몇몇은 국내 소개가 안 된 희귀 음반이었다. 숨소리까지 담아내는 ‘웨스턴 스피커’에서 음악이 흐를 때는 객석의 조명이 낮아졌다.
 
  “보통은 100명이 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수가 줄었어요. 어쩔 수 없죠.”
 
  기자가 경험 못 한 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학의 ‘잃어버린 신발 열 켤레’
 
  분명 요령 없어도 정직하게 사는 길이 있어…
 
  소년 윤학은 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광주의 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 누군가 그의 신발을 신고 가버렸다. 학교를 온통 뒤졌지만 신발은 온데간데없었다. 더럽고 닳아빠진 신발만 한 켤레 놓여 있었다. 발 고린내가 지독해 신기에도 겁이 났다.
 
  이후에도 그는 수없이 신발을 도둑맞았다. 어머니가 깨끗이 빨아준 신발이라 쉽게 표적이 되었던 것일까. 미심쩍어 쉬는 시간에 신발장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신발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이 볼까 책상 안에 신발을 들여놓을 융통성도 없었다. 입학 후 한 학기 동안 열 번도 넘게 신발을 새로 사야 했다. 섬마을에서 도회지로 공부하러 온 형편이라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한탄하셨다.
 
  “너처럼 요령 없는 사람이 커서 밥벌이라도 하겠냐. 너도 다른 아이들처럼 남의 신발이라도 한번 신고 와 봐라.”
 
  윤학은 겁먹은 아이처럼 방 한구석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메마른 땅에 샘물이 솟듯 마음속에서 어떤 희망이 일었다. 요령 부리며 사는 길도 있겠지만, 반대로 정직하게 사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국제거래 전문 로펌에 다니다 변호사 개업을 했어요.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아니라 사건 맡기가 쉽지 않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사건을 유치하는 브로커를 쓰거나 사무장을 따로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요령 부리지 말고 사무실을 운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한 달이 되도록 사무실을 찾는 고객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변호사님! 이 사건 맡아주세요”
 
  어느 날 처음으로 부인 두 명이 찾아왔다. 남편이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질렀는데 석방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석방시킬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답하면 사건을 맡기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그는 “첫 사건인지라 꼭 맡아 사무실 임차료를 내고 직원 월급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신발 열 켤레가 생각났다. 요령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남편의 죄가 큽니다. 석방시키기 힘들겠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부인 한 명이 “변호사님! 이 사건 맡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그 부인이 말했다.
 
  “모든 변호사가 돈만 많이 쓰면 석방시킬 수 있을 듯이 이야기했지만 변호사님은 정직하게 대답해주셔서 남편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 부인은 병아리 윤 변호사가 요구한 수임료 200만원보다 더 많은 300만원을 꺼내더니, 다시 100만원권 수표 30장을 내밀었다. 무슨 돈이냐고 묻자 “어차피 변호사 선임에 쓰려고 가지고 다닌 돈이니 그냥 넣어두라”고 말했다. 3000만원이면 당시 강남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다른 부인은 5000만원을 들여 전직 법무장관을 변호인으로 선임했지만, 결국 윤 변호사의 노력 섞인 ‘요령 없는’ 변론이 따른 남편이 더 빨리 석방됐다.
 
  “저를 찾아온 손님이 다른 분을 소개하고 그 손님이 또 다른 이를 소개해주었어요. 그때 그 부인에게 남편을 석방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쳤더라면 지금 저는 어느 길을 가고 있을까요?”
 
  정말이지 어느 길을 가고 있을까.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을까.
 
  ‘에세이스쿨’ 강좌를 연 이유는…
 
몇 해 전 윤학 변호사와 아내 박수아씨가 연극 연출가 김정옥과 함께 다녀온 프랑스 여행 중의 모습이다.
  ―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에세이스쿨’ 강좌가 있네요. 직접 글쓰기를 가르치나요.
 
  에세이스쿨 홍보문구에서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글쓰기’는 나와의 만남이다. 나와 진실하게 만나면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삶에 새로운 세계가 다가온다.〉
 
  윤 대표의 말이다.
 
  “네, 그렇습니다. 잡지를 맡게 됐을 때 저는 책을 홍보하고 독자 수를 늘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보다 책의 품격, 좋은 글을 실어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잡지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좋은 글을 찾아보니 실망스러웠어요. 멋 부린다고나 할까? 자기 이야기가 거의 없었어요. 어디서 읽은 듯한 글, 봄이 와서 좋다든지, 봄에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어쩌고 저쩌고 해서 행복하다든지, 그런 글 있잖아요. 살아 있는 글이 아니었어요. 예를 들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같은 뻔한 글이면 죽어 있는 글이잖아요.
 
  그럼,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을 해봤어요. 참 드물더군요. 기자들한테 글을 맡겨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바라는 글이 아니었어요. 안 되겠다! 아예 직접 가르쳐보자고 결심했죠.”
 
 
  “네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월간독자 리더(Reader)》와 《가톨릭 다이제스트》에는 ‘좌담회’라는 특별한 코너가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착한 이웃을 등장시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 우리가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뭘까요.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국어시간에 글의 기승전결이라든지 화려체니 건조체니 하는 것부터 배우잖아요. 저는 ‘문법 무시하고 문체 잊어버려라’고 말해요. ‘글은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죠.
 
  그런데 강조점은 있어요. ‘가슴속에 있는 것을 쓰되 그림을 그리듯 써라’고 말해요. 글만 한 진짜 그림이 없어요. 그림보다 더 그림이 글입니다.”
 
  ― 맞습니다.
 
  “‘주제니 소재니 다 필요 없다. 네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그럼 제일 좋은 게 나온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것이 나오면 어떤 톨스토이보다 더 훌륭한 톨스토이 글이 되거든요.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게 진실이지 누구한테 간접적으로 들어서 전하는 것은 이미 왜곡되기 마련이거든요.”
 
  ― 기자 초년병 시절, 저는 주관을 멀리하는 법부터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을 옥죄게 되고 한동안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졌어요.
 
  “저는 주관적인 글이 가장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흔히 사람들은 다수의 타인이 공감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객관적이라는 것도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주관적인 경험이나 판단에서 시작되거든요.
 
  심지어 우리가 객관적이라 믿었던 것이 진실과 다른, 진실이 아닌 경우가 더 많잖아요. 천동설(天動說)이 위력을 떨치던 시대 땐 ‘지구가 평평하다’가 객관적 사실로 취급받았어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지구가 둥글다’는 자신의 주관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사람들이 다 안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식의 억눌림 현상, 그게 우리 글을 망치고 있어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윤 대표는 매달 잡지에 글을 쓰고, 외부 청탁의 신문사 칼럼도 정기적으로 쓴다.
 
  “저 역시 글쓰기로 날밤을 새웁니다. 제 글을 읽고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다,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는 독자들의 편지를 무수히 받았어요. 제 삶을 들여다보면 ‘내가 무엇을 잘하느냐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
 
흰물결아트센터의 대표 음악회인 ‘사랑의 입맞춤’에 출연한 음악가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학 대표다.
  ― 잡지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살아가는 이야기이지만, 뭐랄까 이타적인 내용의 글을 담은 잡지랄까?”
 
  ― 신앙과 연결되는?
 
  “연결돼 있죠. 근데 꼭 신앙이랄 수 없는, 우리 잡지를 보면 신앙 이야기라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하느님이 어쩌고 하는 내용이 드물어요. 그게(잡지의 지향점이) 독선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그게 선(善)한 것이라면 독선은 아니거든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우리 잡지는 사람을 좀 귀하게 여긴다고 할까? 예를 들어 눈물을 짜내는 식의 이야기는 반드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런 이야기는 안 실어요.”
 
  윤학 대표는 10여 년 전 미국인을 위한 잡지를 만들기 위해 미국에 갔었다. 그러고 보니 배포가 보통이 아니다. 그때 만났던 미국인이건 동포건 예외 없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미국과 한국은 문화가 다르고, 미국인과 한국인은 정서가 다른데 어떻게 그 문화와 정서의 차이를 극복할 것이냐? 동포를 위한 잡지면 몰라도 미국인을 위한 잡지는 불가능한 일 아니냐.”
 
  이 말을 듣고 그는 “미국인과 한국인이 다르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면서 옆에 있던 백발의 미국 할머니에게 ‘좋수꽈? 좋수꽈?’ 하고 물으면 미국 할머니는 ‘원더풀! 원더풀!’ 하고 답합니다.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제주 할머니가 한국말 못 하는 미국 할머니와 서로 웃고 떠드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느낌은 같아요. 그리고 그 감동으로 소통하지요. 이렇듯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은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미국版, 일본版 잡지 발행의 도전
 
젊은 시절의 윤학과 아내 박수아씨.
  윤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과 한국은 정확히 말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고 해야 하는데 아니 그냥 같다고 해버려도 되는데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진리인 양 하는 이유가 뭘까요? 예외가 원칙을 지배해버리는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고 있나요?”
 
  하지만 미국판 잡지 발행을 일단은 접어야 했다. 한국말을 영어로, 영어를 스페인어로, 포르투갈어로 번역할 사람은 많았지만 글 속에 담긴 정신을 제대로 담아낼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란다.
 
  “번역을 잘못하면 영 엉뚱한 글, 읽기 싫은 글,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 된다는 걸 수없이 경험한 제가 계속 엉성한 책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하에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 일본판 잡지를 발행하면 일본인 필진을 둬야 하나요.
 
  “그런 생각도 틀에 갇힌 사고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도 일본인이 쓴 좋은 글을 다 읽잖아요. 물론 한국인의 글도 싣고, 현지 일본인의 글도 실어야겠지만 저만의 색깔로 《PHP 스페셜》 같은 100만 부 잡지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안 되면? 저는 항상 그러거든요. 성공한 것이 성공이 아니에요. 성공한 것 같지만 실패한 이들을 숱하게 봐왔잖아요. 실패한 대통령의 초상(肖像)을 보세요.
 
  반대로 실패해도 가치 있는 일을 하면 저는 성공이라고 봐요.”
 
 
  실패해서 성공하겠다는 믿음
 
  ―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실패한 것 같지만 성공하는 길을 가려고 해요. 실패해도 성공이고, 그러나 성공하면 대박이고요.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명의 구독자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일본에서 시작하려면 초기 자본이 많이 들잖아요. 또 일본에서 제 책을 기다리는 분이 누가 있어요? 하하하. 누가 우리 잡지를 사보리란 장담을 못 해요. 그래도 한 명이라도 읽으면 성공이라 생각할 겁니다.”
 
  ― 어떻게 공략할 생각인가요.
 
  “삶에서 목마름을 영원히 채울 순 없어요. 저는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일할 겁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결국엔 ‘글’로 갑니다.
 
  사람은 몸과 정신, 영혼으로 돼 있다고 하잖아요. 몸을 만족시키는 곳은 많아요. 정신을 만족시켜주는 곳도 많고요. 감성이라든지 지성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데는 드물어요. 종교가 그걸 해야 하는데 세속화되어 만족 못 시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 육을 중시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영을 갈망하기 때문에,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그쪽으로 회귀하게 돼 있어요.
 
  보세요. 살다 보면 돈 많이 준다고 오라는 데가 있어도 가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권력을 준대도 마다하는 이가 있거든요. 잇속을 따지면 가야 하는데 안 가거든요. 왜 그럴까요?
 
  우리 잡지를 보고 사람들이 영에 눈을 뜨게 되면 그제야 정신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게 될 겁니다. 그게 우리 책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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