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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21대 국회의원 인터뷰

미래통합당 유상범 당선인

‘정윤회 문건 수사’로 ‘적폐 1호’ 낙인… 검사 옷 벗고 국회 入城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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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중앙통 쌀집 5남매 중 셋째… 어머니 교육열로 15세 때 서울 유학길
⊙ 25년 强骨 검사, 文 정권 들어 ‘정윤회 문건 부실 수사’ 이유로 연이은 좌천
⊙ 조국 사태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보며 정계 진출 결심
⊙ “공수처법은 태생적으로 무효인 法, 各論도 허점투성이… 헌법訴願 판단 받을 것”
⊙ “고개 숙일 일 없던 삶… 선거운동하며 겸손 배웠다”
⊙ “당선 일등공신은 아내와 동생… ‘유오성 형’이라는 타이틀 싫지 않아”

劉相凡
1966년생.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31회) /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대전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창원지검장 역임 / 법무법인 문평 대표 변호사
사진=조준우
  마치 호(號)처럼 따라붙는다. 그냥 ‘유상범’이 아니라, ‘유오성 형 유상범’이다.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하나같이 이 번거로운 수식어가 붙어 있다. 동생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유상범(劉相凡・55)을 들여다보니,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우선 무서운 신인(新人)이라는 점이다. 출마 선언 단 두 달 만에 금배지를 달았다. 재수・삼수는 물론, 그 이상의 장수(長修)도 불사하는 게 여의도 입성이다.
 
  생애를 돌아봐도, 큰 곡절이 없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31회)에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검찰 내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범죄정보1·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대검 공판송무부장(지검장), 창원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수사는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2014년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검사 재직 당시다. 검사장으로 승진한 건 그 이듬해인 2015년 2월이다. 같은 해 12월 창원지검장으로 부임했다.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다. 이때 위기가 왔다. 2017년,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다. 좌천성 인사가 연거푸 이어졌다. 그해 6월, 창원지검장에서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전보됐다. 이어 두 달도 안 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다. 나가라는 소리였다. 사의(辭意)를 표했다.
 
  25년간 걸었던 외길이다. 뭇 사람들은 그를 ‘특수통 강골(强骨) 검사’라 불렀다. 마음 추스르는 데만 6개월을 보냈다. 황망한 가운데,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3년간 변호사로 살았다. 한 언론사는 이맘때 그를 더러 “두문불출했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조용히 지냈다.
 
 
  국회의원, 존중 가치 있는 사람
 
2015년 1월 5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당시 정윤회 문건 등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조선DB
  지난 5월 7일 서초구 법무법인 문평을 찾았다. 아직 정리할 게 있다며 여기서 보자고 했다. 수임 사건도 마무리 짓고, 정산(精算)도 끝내고, 짐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사무실 앞에 ‘변호사 일동’이 붙여놓은 당선축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즈가 컸다. 박수 받으며 떠날 일만 남아 보였다. 괜찮은 재기(再起)다.
 
  — 살다 보면 ‘짐 쌀’ 일이 많죠. 검찰청에서와 지금, 기분은 판이하게 다를 것 같습니다.
 
  “그때는 원치 않게 나온 거니까, 착잡했죠. 지금은 내가 선택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이니 기대감이 있죠. 동시에 현 정국(政局)으로 인한 부담감과 책임감도 교차합니다.”
 
  — 당선 직후 맨 처음 한 말이 뭔가요.
 
  “옆에 있던 처(妻)에게 ‘고맙다’고 했어요. 공식적으로는 ‘저를 선택해주신 유권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였고요.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해보면 알 겁니다.”
 
  — 검사 시절 특수사건 맡으며 국회의원 조사도 많이 하셨죠. 막상 그 입장이 돼보니 어떻습니까.
 
  “당시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은, 상당 부분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여론도 한몫했고요. 선거 치러보고 인식이 바뀌었어요. ‘극한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는 사람이 지역구 국회의원이구나’ 하고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존경까지는 안 해도 되지만, 존중할 가치는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 검사 시절엔 누구한테 고개 숙일 일 없었죠. 길거리에서 인사하고 명함 돌리는 거, 힘들지 않던가요.
 
  “전혀 모르는 분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면, 대부분 냉담합니다. 그 반응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면 힘들어요. ‘그게 당연하다’고 인식하니 다음에 한 번 더 다가갈 때 수월하더군요. 그렇게 두 번, 세 번 찾아가니 냉랭함이 무덤덤함으로 바뀌고 결국 반겨주시더군요. ‘마음을 사려면 끊임없이 다가가야 하는구나’ 했죠. ‘선거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한 발 더 뛴 사람이 승리한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사람인지라 상처도 받았을 텐데 어떻게 다스렸나요.
 
  “모욕적인 순간도 있었죠.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다짜고짜 삿대질하면서 ‘너! 나가!’ 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런 경험도 해봐야 성장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게임하듯이 생각했어요. ‘나는 지금 땅을 더 많이 따 먹는 방식의 게임을 하는 거다’ 이렇게 사고(思考)를 전환했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요.”
 
  —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표 말고 뭘 얻었습니까.
 
  “‘사람에게 다가가는 데 있어서는 겸손이 제1 요소구나’ 하는 걸 배웠습니다.”
 
 
  “청와대, 法治의 근본 완전히 부정”
 
  — 정량적(定量的) 비교는 어렵겠지만, 사법시험과 선거, 뭐가 더 힘듭니까.
 
  “당연히 선거죠. 사법시험은 자신의 역량만으로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스스로의 통제 영역 안에 있는 거고요. 선거에는 대상(對象)이 있잖아요. 게다가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이고, 마음까지 사야 하는 거니까 훨씬 힘들죠. 그런 와중에 상대편 후보도 같이 뛰고 있고, 그중에 선택을 받는 거니까.”
 
  — 무엇이 ‘사시(司試)보다 힘든 선거’에 뛰어들게 만들었나요.
 
  “조국(曺國) 사태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죠.”
 
  유 당선인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 대상 1호였다.
 
  “부실수사였던 정윤회 문건을 재조사하겠다.”
 
  지난 2017년 5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 직후 한 말이다. 유 당선인은 “조 수석이 내가 맡았던 사건을 부실수사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소위 ‘적폐’라는 멍에를 씌웠다”고 했다.
 
  “그런데 조국 사태가 진행되는 걸 보니, 참…. 위선(僞善)도 그런 위선이 없더군요. 잘못을 반성도 안 하고 변명으로 일관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검찰에는 반(反)개혁적 행태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정권을 보면서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정점(頂點)을 찍은 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입니다. 검찰에서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 했는데, 청와대에서 ‘불법적 영장’이라며 거부했지 않습니까. 권력 기관이 대한민국 법치(法治)의 근본을 완전히 부정해버린 단적인 예죠. 이 정권에 나라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마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건 지난 1월 30일이다. 지역구 기존 의원이던 염동열 미래한국당 의원이 강원랜드 관련 1심 재판에서 유죄(有罪)를 선고받았다. 염 의원이 무죄(無罪)를 받으면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상도의(商道義)’ 차원에서, 1월 30일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출마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檢·警 승부
 
  그날,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있다. 김재원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둘은 대학 때부터 친한 친구다.
 
  — 김재원 의원은 뭐라던가요.
 
  “나가라고 했으니까 나왔겠죠? 하하. 김 의원도 내가 검찰에서 나온 배경을 다 알고, 아주 오랫동안 교류해왔기 때문에 공천 신청을 한 번 해보자, 하더군요. 그다음에 아내에게 출마하겠다고 했습니다. ‘원하면 한번 해봐라’ 하더군요. 역시 뭐든, 마나님의 재가(裁可)가 없으면 안 되죠.”
 
  출마 지역은 ‘복합선거구’로,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무려 네 개 군(郡)이다. 상대는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인 원경환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검·경(檢·警) 승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전체 48.6%인 5만5975표를 얻어 1만1741표 차이로 원 후보를 따돌렸다. 그는 “상대적으로 젊고, 이력상 업무 능력이 보인다는 점 등이 지역민들에게 기대감을 준 것 같다”고 했다.
 
  — 서울 면적의 9배죠. 거대 지역구인데, 각 지역 이해도는 어떻게 높였습니까.
 
  “제가 영월 사람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정서가 비슷한 곳입니다. 영월-평창, 횡성-홍천이 같은 지역구로 정서를 오랫동안 공유(共有)했고요. 물론 지역적 특색은 다 다릅니다. 횡성·홍천은 농촌 지역이면서 축산업이 중심이 되고 평창은 대규모 고랭지 농업을 하면서 관광이 중심이 되는 도시고요. 영월은…. 그 모든 것이 없는 도시입니다.”
 
  — 공약 내걸기가 보통 까다롭지 않았겠는데요.
 
  “농촌 지역에 대한 공약은 공통되지만, 교통도 다르고 그래서 힘들었죠. 영월은 동서고속도로 착공, 횡성은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평창은 올림픽 유산 작업 설치, 홍천은 용문 철도사업, 이렇게 나눠볼 수 있습니다.”
 
  — 다 지킬 수 있을까요.
 
  “쉽진 않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오랜 검사 생활로 얻은 장점 중 하나가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법조 국회, 율사(律士) 국회. 워낙 예전부터 있던 말이다. 그만큼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많다는 뜻이다. 제21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총 46명이다. 전체 300명 중 무려 15.3%를 차지한다. 어쩌면 이번엔 어깨가 더 무겁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곧 발족을 앞두고 있고, 정부가 강조한 검찰개혁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유 당선인은 이때 최전선에서 창(槍)을 들 인물 중 하나다.
 
 
  오거돈 性추행 진상조사단으로 활동
 
  국회 개원(開院) 전부터 당내 입지를 넓히고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직원 성(性)추행 진상조사단으로도 활동하면서다. 곽상도 의원과 김도읍·김미애·황보승희·전주혜 등 법조인 출신 당선자들과 함께한다. 조사단은 4월 28일 첫 회의를 열었고, 5월 6일 대검찰청에 오 전 시장과 부산시청·부산성폭력상담소·청와대 관계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강제추행,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 또는 수사 의뢰했다. 조사단은 또 부산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 나온 ‘김외숙 자문위원’이 법무법인 부산 출신의 현 청와대 김외숙 인사수석과 동일인인지, 법무법인 부산에서 공증을 담당한 변호사가 누구인지 등을 수사로 규명해달라고 했다.
 
  — 국회에 들어가면 상임위는 아무래도 법제사법위원회겠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신청했고, 희망하고 있고요.”
 
  — 법조인 출신 의원끼리 호흡은 잘 맞을 것 같습니까. 이번엔 초선(初選) 비율이 더 높던데요.
 
  “잘 맞을 거라 봅니다. 조사단 활동에서도 공조(共助)가 잘 되고 있고요. 전주혜 의원 같은 경우, 연수원 동기입니다. 대학 1년 후배고요. 총 46명 중 초선이 24명(52%)으로 절반이 넘습니다. 그만큼 초선의 목소리가 당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 당선 전, 공수처 폐지 법안 발의를 말하셨는데, 이제 발족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그땐 저희가 다수당(多數黨)이 될 줄 알고 그랬는데…. 혹시 몰라서 공수처 관련 정리를 좀 해왔어요. 설명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공수처법은 違憲, 태생적 無效”
 
지난 5월 11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 등과 함께 공수처법 헌법소원 심판 청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더니 책상 위 커다란 수첩을 열었다. 아까부터 끼고 있던 거다. 뭔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안경을 한번 다잡고 말했다.
 
  “공수처는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관입니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위반이죠. 그리고 상위법이나 정부조직법 어디에도 설치 근거 규정이 없습니다. 또한 공수처법 45조에 규칙제정권이라고 있습니다. ‘조직과 운영은 공수처 규칙으로 정한다’고 돼 있는데 헌법상 규칙제정권은 헌법 기관, 행정 각부에 있으며 법률상 규칙제정권은 위임을 예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컨대 공수처가 자발적으로 규칙제정권을 부여한 건데, 이것도 위헌(違憲)인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공수처가 대법원장・대법관・검찰총장・판사·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에게는 수사・기소권을 가지는데, 나머지 공직자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가지거든요. 한 기관이 어느 대상자에 대해서는 사법(司法) 경찰의 역할만 하고, 판사·검사에 대해서는 소추(訴追) 기관의 역할을 하는 식으로 수사 대상자에 따라 기능을 분배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평등의 원칙이나 조직 구성의 원칙에 무조건 반하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 잘 지적되지 않는 부분인데, 2019년 4월 26일 백혜련 의원이 제출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들어갔죠. 이후 본회의에 상정하면서 같은 해 12월 24일, 윤소아 의원이 수정안을 제출했단 말입니다. 패스트트랙으로 가결된 건 이 수정안입니다. 기존 법안이 아니라요. 각론(各論)이 허점투성이인 것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 무효(無效)인 거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족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이십니까.
 
  “독소(毒素)조항 개정 등 작업을 해야죠. 물론 쉽지는 않겠죠. 지난 2월 강석진 의원이 헌법재판소에 공수처법 헌법 소원(訴願) 사건을 청구했잖아요. 3월에 정식 심판에 회부한 상태고요. 이것과 관련해서 추가로 깊이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입법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니 위헌소송 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터뷰하고 나서 4일 후인 5월 11일 그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과 함께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 소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제출했다.
 
 
  “윤석열 총장은 원칙주의자”
 
  — 벌써 공수처장 하마평(下馬評)도 나옵니다. 최근 신임 공수처장으로 이정미 전 헌재소장 대행, 김영란 전 대법관이 언급되면서 비(非)검찰 출신 여성이 적임자란 얘기도 들리는데요.
 
 
  “그건 크게 근거가 있는 내용이라기보다, 공수처가 권력 유지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한 비난이 워낙 많으니, 그걸 희석시키기 위한 도구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현실적으로 중립적 공수처장이 가능하다 보시나요.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까.
 
  “그 기관에 과연 적임자가 있을 수 있겠나 싶어요. 어쨌든 발족을 하면 누군가 임명이 되겠지만, 처장보다 중요한 건 공수처 차장과 검사예요. 그런데 구성을 보면 ‘검찰청에 있는 검사는 2분의 1을 넘지 못한다’고 돼 있거든요. 이건 쉽게 말해 한 명도 임명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우려하는 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죠. 구성원을 이런 식으로 채운다면, 공수처장이 누가 되든 권력 유지의 도구로 활용될 건 자명해 보입니다.”
 
  — 여권 일각에서는 공공연히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꼽는데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이들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제가 많이 지켜봐왔어요. 누군가가 시민단체를 통해 고소·고발을 할 것이고, 어차피 기존에 고소·고발 건도 있으니까요. 발족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첩(移牒)을 요청할 거고, 그 외에 이 정권의 개혁에 반한다고 해서 찍어 누른 고위직 검사들도 같이 고소·고발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그림이 그려지네요.”
 
  — 윤석열 총장의 행보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특수부도 같이 했고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입니다. 흔히 ‘검찰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고요. 윤 총장은 기본적으로 수사를 함에 있어서 ‘증거가 나오면 수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론자입니다. ‘왜 이렇게 수사가 많아지느냐’ 하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증거가 나왔으면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의니까요. 그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일지라도요. 그런 차원이지, 이분이 무슨 정치적 고려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인생 최대의 위기
 
선거운동을 하며 ‘숙이는 법’을 배웠다는 유 당선인.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모습. 사진=유상범 SNS
  —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은요. 25년간 ‘내가 봐도 이건 좀 바뀌어야 한다’고 느낀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인정합니다. 검찰 비난은 모두 ‘직접 수사’에서 비롯됩니다. 절대량을 줄여야죠. 직접 수사를 하게 되면 자연히 성과에 대한 부담이 생깁니다. 그럼 노력을 하겠죠. 그 과정에서 ‘별건(別件)수사를 했다’ ‘전 정권만 찾아본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반개혁적 행위를 한다는 지적도 직접 수사 때문이고요. ‘검찰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있을 때만 검찰이 수사를 한다는 식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 직접 수사 축소는 이 정권에서 말하는 개혁과 궤(軌)를 같이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의 검찰개혁은 직접 수사도, 수사 지휘도 하지 말라는 거죠. 검찰이 왜 출현했습니까. 프랑스혁명 이후 법원과 경찰만 있는 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너무 심해서입니다. 이를 견제하는 인권보장 기능으로 태동한 거예요.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와 통제가 검찰 본연의 기능인 거죠. 여기서 통제란 건, 수사에 대한 게 아니라 적법절차 준수에 대한 통제예요. 유럽 내 대부분의 검사들은 그래서 직접 수사를 잘 안 합니다. 그런데 수사 지휘권은 철저히 가지고 있어요. 경찰이 1차 수사권을 갖고, 검찰은 지휘감독하는 게 인권보장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이에요.”
 
  — 정윤회 문건 수사가 정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아닌 문건 유출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을 받았죠.
 
  “비판 여론이 일 때마다 반박자료를 내고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했어요. 그렇다면 재수사를 하라고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잖아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사건으로라도 다뤄지지 않고요.”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나요.
 
  “이 정권 들어와서 두 명의 역대 대통령이 구속되고 대법원장도 구속됐죠.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그 사건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었으면, 출마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당시 국민의 기대에는 미흡했을지 몰라도,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수사였다고 자부합니다.”
 
  — 그런데 돌아온 건 좌천성 인사였죠. 혹시 그때가 인생 최대의 위기였습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게 위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검사 인생을 살았으니까, 그때가 최대의 위기가 맞아요. 그전까지 제 경력을 보시면….”
 
  — 승승장구, 혹은 탄탄대로?
 
  “큰 굴곡 없는.”
 
 
  “추미애, 법률가 맞나 싶어”
 
  — 그런데 보복성 인사는 역대 정권마다 다 있지 않았나요. 심지어 법무연수원 교재 《수사 감각》(2019)에도 명시해놓을 정도로 공공연한 생리(生理)인데, 이번 정권에서 특히 다른 양상이 있습니까.
 
  “과거에는 그래도 시비(是非)를 따졌어요. 구체적인 잘못이 있을 때, 그 책임을 물으며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지금은 ‘전 정권에서 잘나가던 검사는 무조건 적폐’라 하는 거고요. 적어도 인사철도 아닌데 수사 중간에 날아가거나 좌천되지는 않았습니다. DJ 아들 수사, YS 딸 수사 때도 그랬어요. 지금보다 더한 일이었는데, 그분들은 적어도 수사 기관이 가진 기본적 권리를 존중해줬단 말이에요. 이번 정권은 그런 게 아예 없어요. 네 편, 내 편 갈라서 ‘너는 무조건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거 아닙니까. 조선시대 사화(士禍)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 그런 차원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어떻게 보십니까.
 
  “과연 법률가가 맞나 싶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법률적 관점에서 사안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정치 논리죠. 인사 관행부터 시작해서 법률가적 기질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 역대 가장 이상적인 법무부 장관은 누구로 보십니까.
 
  “특별히 어느 분이 이상적이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만 이상적인 검찰총장은 꼽을 수 있어요. 송광수 검찰총장입니다.”
 
  — 어떤 면에서요.
 
  “대선 자금 수사를 하면서 정치적인 압박이나 조직의 논리가 아닌, 검사로서 대응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직(職)을 내걸 수 있는 자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까.
 
  “따로 없어요. 워낙 대선배였으니. 요즘에야 가끔 인사를 드리긴 합니다.”
 
 
  두메산골 출신
 
당선증을 들고 부모님 묘소를 찾은 유상범 당선인.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유상범 SNS
  — 정치이념의 좌표는 어디쯤으로 놓고 계신가요.
 
  “진영 논리에 따른 보수는 아닙니다. 무조건 좌파가, 혹은 민주당이 나쁘다, 그런 성향은 아닙니다. 개혁적 보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대학 때 학생운동은 하셨습니까.
 
  “관심은 있었는데 얼치기 운동만 했고요, 가까이 지낸 친구들은 있었죠. 그들과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운동권 학생들만큼 용기가 없었다고나 할까. 혹은 스스로가 그만큼 치열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깊이 관여는 안 했습니다.”
 
  —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사실 조금 안 맞아요. 시골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원이 된 건 아니거든요. 영월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와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으니까요.”
 
  — 서울 유학이라니, 어머님 교육열이 대단했나 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아주 깊은 산골 집성촌(集姓村)입니다. 어머니가 그곳으로 시집와 5남매를 낳고 농사지으며 사시다가, 계속 거기서 자식 키우면 좋은 교육을 못 시킬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엔 영월 읍내로 이사를 갔어요. 거기서 둘째 형을 중2 때 서울로 전학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형이 서울대를 들어간 거죠. 그때 어머니가 나머지 아이들도 다 서울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 둘째 형님은 지금 서울대 공대 교수시죠. 이과, 문과, 예체능의 정점을 찍은 형제군요.
 
  “하하, 그렇게 되나요.”
 
  — 그럼 서울에서는 어디 거주했나요. 하숙을 했나요.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셨어요. 어머니도 매주 밤 기차 타고 올라와 먹을 것과 생활비를 챙겨주셨고요. 다음 날 다시 밤 기차 타고 내려가시고 하는 생활을 막내가 클 동안 반복하셨죠. 음…. 얘기하다 보니까 개천에서 용 난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요즘은 대치동에 발 안 담그면 서울대 못 간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때도 그런 게 있었습니까.
 
  “없었죠. 그땐 대치동이라 해봐야, 은마아파트랑 휘문고등학교밖에 없을 때예요. 그땐 학원이 다 노량진에 있었고요. 저도 일반 학원을 다녔죠.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 다니고, 평이했어요.”
 
  — 과외 같은 건 안 받고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니까, 과외 금지령이 떨어졌었어요. 그래도 과외하는 친구들은 몰래 했지만, 저는 그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이 아니었어요. 영월에서 부모님이 쌀장사하면서 교육시켰다니까요.”
 
 
  “대운상회 아들 유상범”
 
  ‘대운상회.’ 지금은 없어진 쌀집 이름이다. 그가 검사 생활 시작할 때까지 영업했다니 꽤 오래 한 셈이다. 불우이웃에게 쌀 기부도 많이 해, 인심 좋기로 소문났다고 한다. 선거운동 때 지역 어르신들에게 “대운상회 아들 유상범”이라고 하면 대번 알아들었다. 아버지는 사법시험 합격한 아들을 유달리 자랑스러워했다. 일기장 첫 페이지에도 아들 자랑이 있다. 그런 아들을 두고두고 보진 못했다. 유 당선인은 “1996년, 69세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면서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소에 가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아버지 보내드리고 유품(遺品)을 정리하는데 일기장이 하나 나왔습니다. 첫 페이지에 제 얘기가 있더군요. 사법시험 합격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요.”
 
  — 부모님의 자랑거리셨군요. 그러고 보니 형제들이 모두 공부 머리를 타고났나 봅니다.
 
  “형님은 모르겠는데, 저는 아닙니다. 머리가 타고났으면 재수를 했겠습니까.”
 
  — 사법시험도 재수했습니까.
 
  “대학 4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했는데, 첫 시험에서 한 번 떨어지고 졸업 후 두 번째에 붙었죠. 그런 거 보면 정말 공부 머리가 뛰어나진 않은 것 같군요.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고, 서울대 법대에 사시 합격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서울대 법대 출신 친구들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 안에서는 또 부류가 나눠집니다.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따로 있어요.”
 
 
  국회의원 하면서 피하고 싶은 일
 
동 틀 무렵부터 아내와 선거운동 중인 모습. 유 당선인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며 명함을 안 받는데도 아내는 끝까지 ‘유상범 후보를 꼭 주위에 알려 달라’며 명함을 건네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사진=유상범 SNS
  — 그나저나 부인께서 엄청 어려 보이던데, 몇 살 연하인가요.
 
  “동갑입니다. 66년생, 말띠, 55세요.”
 
  — 믿기 힘든데요. 어떻게 만났나요.
 
  “지금 국회에 있는 모 인사가 제 처의 중학교 1년 선배예요. 그 친구 소개로 대학교 3학년, 9월 11일에 만났어요. 집사람은 같은 학교 약대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있네요. 저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스타일이고 아내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이라 상호 보완이 잘 돼요.”
 
  — 아내는 당선인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한결같다고 칭찬합니다.”
 
  — 슬하에 2남을 두셨죠. 뭐합니까.
 
  “첫째는 29세, 둘째는 25세. 하나는 회사원, 하나는 대학생이면서 로스쿨 준비 중입니다. 둘 다 키가 크고 잘생겼어요. 182cm, 187cm.”
 
  — 둘째는 법조인의 뒤를 이을 수도 있겠네요.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되면, 네.”
 
  — 딱히 말리고 싶다거나, 환영한다거나, 그러지는 않나 봅니다.
 
  “반대도, 찬성도 안 해요.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원한다면 해라’. 우리 부모님이 절 그렇게 가르쳤거든요. 항상 자식의 의사를 존중해주셨어요. 그런 양육 방식을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선거운동 때도 ‘이건 아빠가 선택한 길이니까, 와도 되고 안 와도 된다’고 했어요. 고맙게도 와줬지만.”
 
  — 정치하면서 이런 모습만은 안 보여야지, 하는 게 있나요. 적어도 이런 일로는 뉴스에 오르내리지 않겠다는.
 
  “첫째는 뇌물수수, 둘째는 성(性)문제, 셋째는 막말입니다. 품격과 자존감, 그리고 아무리 불리해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지킬 줄 아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5남매 중 셋째. 딱 중간이다. 그래서인지, 눈치가 빠른 편이다. 어떤 질문이든 요지를 빨리 파악했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나 할까. 두서없이 던지는 말에서도 키워드를 뽑아냈다. 우리끼리 얘긴데, 인터뷰하기 참 편한 상대였다. 물론 모든 답이 정제(精製)된 채 돌아와 다소 심심한 맛은 있다. 의미상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랬다. 긴 문장을 말하면서도 문장의 호응관계를 완벽하게 지켰다. 조사(助詞)가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정정했다. 구조적으로도 ‘막말’이 나오긴 힘든 성향 같았다. 그런 그가 말미에 가서 갑자기 “(기사에) 양념을 좀 쳐주겠다”면서 ‘그나마’ 짭조름한 얘기를 들려줬다.
 
 
  ‘유오성 형’
 
  — ‘유오성 형’이라는 타이틀, 이제 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역사가 어언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마치 제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변천사는 조금 있습니다. 기원전, 기원후로 나뉘는 것처럼 2001년 영화 〈친구〉 전후로 나뉩니다. 〈친구〉 이후에는 “인사하세요, 여기 유오성 형 유상범 검사입니다”가 됐고, 그 전에는 “인사하세요, 여기 〈주유소 습격사건〉의 유오성 형 유상범 검사입니다”였어요.”
 
  — 하긴 ‘유오성 형’이라서 득도 많이 봤죠. 이번 선거운동의 일등공신이었잖아요.
 
  “10명 중 7명은 저를 안 보더군요. 왜 많은 분이 유세장에 유명 연예인들 데리고 오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공짜로 썼습니다.”
 
  — 힘들다는 소리는 안 하던가요.
 
  “오히려 제가 많이 혼났어요. ‘한 명이라도 더 봐야 하는데, 뭐하냐’고. ‘빨리 좀 따라오라’고. 명함 주면서 쭈뼛쭈뼛하면, 뒤에서 막 밀어버리고…. 식당 같은 데서 나올 때, 발판 같은 거 삐뚤게 돼 있으면 바로 해놓고 나와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고요. 동생한테 많이 혼나면서 배웠습니다. ‘배우가 감동적인 연기로 관객들 마음을 사듯이, 이것도 똑같다’면서. ‘빨리 다가가서 숙이라고, 좀 숙이라’고.”
 
  — ‘숙이라고, 좀 숙이라고’ 해서 어떻게 좀 많이 숙어졌습니까.
 
  “한 4주쯤 지나니까 90도까지 숙어지데요.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더라고. 하하하.”
 
  그는 그렇게 정치인이 돼가고 있었다. 인터뷰 후에는 문밖까지 배웅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도 눌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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