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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구

‘띠동갑’ 고교 후배가 취재한 ‘윤석열’의 모든 것

알려지지 않은 윤석열의 ‘진짜’ 인맥!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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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집념과 원칙으로 무장한 윤석열의 ‘眞劍勝負’
⊙ 윤석열 총장이 어느 빈소에서 기립박수 받은 이유는?
⊙ ‘大望論’과 ‘功成名遂身退’… 윤석열의 선택은?
⊙ 고교 동창들의 당부, “윤석열을 ‘영원한 검사’로 남게 해달라”
⊙ ‘걸레스님’ 중광과의 인연…酒黨과 酒黨의 만남
⊙ “폭탄주 수십 잔 마시고도 끄떡 않더라”
⊙ 무리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와 과도한 ‘제 사람 챙기기’란 비판
⊙ “윤석열-우병우 사이가 나쁘다고? 오히려 친해”
⊙ 윤기중-윤석열 父子의 공통점 “두 사람 모두 원칙주의자”
⊙ 대검 방호원들이 윤석열에게 감동한 까닭
윤석열 검찰총장.
  ‘2019년 화제의 인물’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尹錫悅·60) 검찰총장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정권의 ‘총아(寵兒)’로 불리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시퍼런 칼날을 겨눴다.
 
  윤석열 총장은, 숱한 의혹에 싸여 있던 자신의 직속상관 격인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조국 전 장관은 ‘검찰개혁’을 앞세워 ‘윤석열 검찰’을 압박했다. 건국 이래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이처럼 팽팽하게 맞선 사례는 거의 없었다.
 
  결국 조 전 장관이 사퇴함으로써 ‘최종 승기’는 윤 총장이 거머쥔 셈이다.
 
 
  ‘윤석열은 누구인가’ 그 해답을 찾아서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던 지난 10월 11일 《한겨레》는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진술을 토대로 윤석열 총장이 ‘접대를 받았다’는 취지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윤 총장을 흠집 내기 위한 권부(權府)의 반격’으로 해석했다. 윤 총장은 “사실무근”이라며 해당 보도를 한 《한겨레》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렇듯 윤석열 총장은 매우 첨예하고도 아슬아슬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근혜 정권 핵심 인사들을 대거 구속시킨 윤석열 총장이다. 보수 세력은 그에게 ‘정치 검사’라는 낙인을 찍은 뒤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그 덕에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는 ‘대쪽 검사’ ‘적폐청산의 적임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문재인 정권 역시 상징성을 고려해 그를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임명했고, 2년여 만에 검찰 수장(首長) 자리에까지 발탁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직속상관을 넘어뜨리고,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도 대립하는 듯한 기구한 운명에 처했다.
 
  기자는 드라마틱한 ‘운명의 곡선’을 그린 윤석열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간 윤 총장에 대한 많은 보도가 나왔지만, 대개 표피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대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사시(司試)를 9년 만에 합격했다’ ‘결혼을 늦게 했다’ 정도가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의 전부다. 나머지는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당시 화제가 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거론된 내용뿐이다.
 
  ‘윤석열은 누구인가’란 본질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학창시절 등 그의 생애 전반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개 그 시절의 경험이나 대인관계가 지금의 윤석열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母校 충암高
 
윤석열 총장의 母校인 서울 충암고등학교. 사진=충암고 홈페이지 캡처
  기자는 윤석열 총장의 고교 친구들과 지인들을 수소문해 ‘인간 윤석열’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윤석열 총장은 충암고 8회(1979년 졸업) 졸업생이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충암고는 1969년 개교했다. 프로 바둑기사(棋士)를 많이 배출한 ‘바둑 명문고’이자 고교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 중 하나다. 이창호(9단)·유창혁(9단)을 비롯한 프로기사를 포함해, 유지현·심재학·박명환 등 유명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했다.
 
  굳이 개인적인 인연을 덧붙인다면 기자 역시 충암고(32회)를 졸업했다. 1960년생인 윤 총장과는 ‘두 번 돌린’ 띠동갑인 셈이다.
 
  기자가 충암고 출신이라 해도, 윤 총장 고교 동기들이 민감한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그에 대해 쉽사리 얘기해줄 리 없었다. 처음 취재에 돌입했을 때, 대다수 동창은 윤 총장에 대해 ‘동문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 ‘경조사 때 멀리서 보는 게 전부’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듣기에 따라 윤 총장이 ‘다소 비사교적이고 폐쇄적인 사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중 윤석열 총장과 ‘40년 지기(知己)’라는 그의 고교 동창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는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A씨에게 “윤 총장이 동문 모임에 잘 안 나온다고 하던데…” 하자, 그는 “사실이 아니다. 서로 친한 문과 출신 10여 명끼리는 지금도 분기별로 만난다”고 했다.
 
  40여 년간 이어진 이 모임은 독특한 모임명을 갖고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밝히는 사회의 횃불이 되자’는 의미가 담긴 두 음절짜리 순한글이다. 그는 “모임명은 물론 모임 멤버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충암고 3尹’과 ‘서울대 5인방’ 인맥
 
울산지검장 시절의 남기춘 전 검사장. 남 전 검사장은 윤석열 총장과 아주 친한 사이다. 이와 더불어 이은재·이동호·서석호 변호사, 표주영 전 삼성그룹 부사장이 이른바 ‘서울대 법대 5인방’이라고 한다. 사진=뉴시스
  이 모임엔 충암고 8회 중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 이른바 ‘3윤(尹)’이 포함돼 있다. 한 명은 판사 출신의 현직 변호사, 또 다른 한 명은 모(某)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마지막이 윤석열 총장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3윤’은 생일이 6일 간격으로 서로 비슷하다. 윤 총장이 12월 18일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12월 12일, 12월 6일이라고 한다. 세 사람 모두 본관이 ‘파평 윤씨’란 것도 공통점이다. 이 밖에 ‘중국통’으로 유명한 서울대 정모 교수, 모 대기업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낸 정모씨, 현직 변호사 신모씨, 총리실에 근무한 적 있는 이모씨도 이 모임 멤버다.
 
  다른 경로로 취재한 결과 충암고 ‘3윤’뿐 아니라, 윤석열 총장과 친한 ‘서울대 5인방’도 있었다. 윤 총장을 포함한 법조인이 4명이고, 한 명은 기업인이다.
 
  ‘5인방’ 중 한 명은 ‘남검객(南劒客)’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남기춘(사시 25회·법무법인 다전 변호사) 전 서울서부지검장이다. 홍대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남기춘 변호사는 2003~2004년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밑에서 중수1과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여야 정치인 40여 명을 기소했다. 남 변호사는 강력부 검사 시절 조양은·김태촌 등 조폭 두목을 구속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서울서부지검장 재직 시절인 2010년 한화·태광그룹 수사 도중, 검찰 수뇌부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내 화제가 됐다.
 
  당시 남기춘 지검장은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는 취지의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2013년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공개 항명 파동을 일으켜 징계 처분을 받자 특별변호인으로 나선 이가 바로 남기춘 변호사다.
 
  또 다른 한 명은 5인방은 아니지만, 그의 이름보다는 그의 아내가 일반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범죄심리학자로 자주 출연하는 이수정 씨의 남편 이은재(사시 25회·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변호사다. 이은재 변호사는 서울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배문고를 졸업한 이동호(사시 25회·법무법인 서우) 변호사, 경북고를 졸업한 서석호(사시 24회·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도 ‘5인방’ 멤버다. 마지막 한 명은 삼성그룹 부사장과 카버코리아 대표를 지낸 표주영씨라고 한다.
 
 
  ‘걸레스님’ 重光과 윤석열의 인연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 스님. 생전 윤석열 총장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사진=SBS 뉴스 캡처
  재미있는 점은 윤석열 총장이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승려 중광(重光·2002년 사망)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인(奇人) 중광은 생전에 “나는 걸레” “내 생활 전부가 똥이요, 사기”라고 외치며 파격 행보를 일삼던 이다. 1960년 양산 통도사에 입산했지만 불교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奇行)을 일삼다가 1979년 승적을 박탈당했다.
 
  1977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초대전에서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걸레스님으로 불렸다. 중광은 해외에서 선화(禪畵)와 선시(禪詩)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는데, 그의 그림과 시(詩)에는 성기를 노출시킨 동물 등이 예사로 담겼다.
 
  중광과 윤석열은 어떤 인연이 있던 걸까. A씨 등 고교 동창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윤석열 총장은 ‘전두환 모의재판’ 직후 외가(外家)가 있는 강릉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불교 신자인 모친의 영향을 받았는지, 윤 총장은 강원 지역의 사찰을 배회했다.
 
  윤 총장이 낙산사에 갔을 때 그곳에 있던 중광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서 우연히 술자리를 가졌고, 이후 중광과 함께 산사(山寺) 등을 배회하며 친해졌다는 것이다. A씨는 “석열이가 검사가 된 후에도 자주 어울릴 정도로 두 사람은 인간적인 유대를 쌓았다”며 이런 말을 했다.
 
  “중광 스님이 관상(觀相)도 봤는데 석열이더러 ‘장차 크게 될 놈’이란 식으로 말했다죠? 나도 사석에서 석열이한테 ‘우리 중에 대통령이 나온다면 너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농담한 적이 많아요. 그때마다 석열이는 손사래를 쳤죠.”
 
 
  “호적에서 파겠다” “파볼 테면 파보십시오”
 
2016년 12월 13일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의 윤석열 수사팀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사무실에서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 당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대쪽 검사’ ‘적폐청산의 적임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조선DB
  윤석열 총장을 취재하면서 자주 들은 얘기 중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술 실력이었다.
 
  A씨에게 ‘윤 총장이 중광과 만나 주로 뭘 했나’라고 묻자 “주당(酒黨)끼리 술 먹으면서 돌아다녔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석열이는 술을 엄청 마시지만, 그러고도 비틀거린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A씨는 ‘폭탄주’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우리 아들이 특목고에 합격했을 때 일이니까 한 11~12년 전의 얘기죠. (아들이) 특목고 합격한 그해에 공교롭게도 ‘3윤’ 중 한 명의 딸도 의대에 합격했어요. 석열이가 우리를 축하해주러 왔는데, 그날 폭탄주를 70잔 가까이 마셨어요. 끄떡도 않더라고요. 그 다음 날도 멀쩡했고요.”
 
  대학 시절 하도 술을 먹고 다녀 그의 모친이 “호적에서 파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윤 총장은 “제가 장남인데 파볼 테면 파보십시오”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단다. 참고로 윤석열 총장 밑으로는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여동생이 한 명 있다.
 
  그는 “석열이는 술도 잘 마시지만 학창 시절 농구도 잘했고, 특히 노래 실력이 으뜸”이라고 했다. 과거 윤석열 총장의 연희동 집에선 가든파티가 종종 열렸는데, 그때마다 윤 총장은 가곡 ‘아베 마리아’,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같은 팝송을 멋들어지게 불렀다는 것이다.
 
  ‘3윤’ 중 한 명도 기자에게 윤 총장의 엄청난 주량(酒量)에 대해 얘기해준 바 있다. 그는 “윤석열 하면 일단 술을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석열이는 정의감도 있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윤 총장의 고교 동창이자 현직 법조인인 B씨는 “대학은 신림동(서울대)에 있었지만, 우리는 석열이네 집이 있던 연희동 근처에서 술을 많이 먹었다”며 “술에 취한 석열이를 집에 데려다준 적도 있다”며 웃었다. 그는 “한번은 석열이가 너무 취한 채 귀가해 부친한테 혼쭐이 났다”고 기억했다.
 
  B씨는 “문과였음에도 석열이는 수학을 아주 잘했다”며 “나도 수학만큼은 석열이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B씨는 윤 총장만의 독특한 ‘수학 문제 풀이’에 대해 들려줬다.
 
  “수학 문제 중에 ‘증명’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증명은 논리적인 사고 없이는 풀기가 힘들잖아요. 석열이는 어려운 증명 문제를 몇 시간 동안 붙들고 앉아서 해결하더라고요. 신기한 건 기존의 풀이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거죠. 근데 희한하게 답은 맞아요. 다른 문제도 일반적인 풀이법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풀더라고요. 아주 집요하게, 또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한 친구예요. 기억력도 좋고, 논리적이라 그런지 피의자를 심문하는 능력도 뛰어나요. 석열이가 피의자를 심문하는 걸 보면 상대의 허점을 재빨리 포착해 치고 들어간다니까요.”
 
 
  친구 뒤통수를 때리며 윤석열이 한 말
 
윤석열 총장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검사로 알려진 이명재 전 검찰총장. 이명재 전 총장은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울 뿐 아니라 특수 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사진=조선DB
  ‘주당’들이 으레 그렇듯이 윤석열 총장 역시 사람 좋아하고 주변에 베푸는 데 특출한 재주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 동창 C씨는 윤 총장의 변호사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석열이가 변호사로 있을 때 번 돈을 거의 다 후배들에게 밥하고 술 사주는 데 썼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요. 자기 군(軍) 후배들을 자기 가족 이상으로 끔찍이 아꼈잖아요. 석열이한테도 그런 면이 있어요.”
 
  2002년 1월, 윤 총장은 돌연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 변호사로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1년 만에 “변호사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로 다시 복귀했다. 검찰 복귀를 종용한 이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자 검찰 내부에서 ‘최고의 특수통 검사’로 신망받는 이명재(李明載·사시 11회·전 청와대 민정특보) 총장으로 알려져 있다. 윤 총장도 사석에서 “이명재 총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총장의 고교 동창 C씨는 “석열이가 검사 시보(試補)로 근무할 때의 얘기가 재밌다”고 했다. 시보란 검사에 정식 임명되기 전 검사의 업무를 익히는 직책을 말한다. 의사로 따지면 인턴이나 레지던트와 유사한 과정이다.
 
  잘 알려진 대로 윤석열 총장은 대학 졸업 후 9년 만에 사법고시(사시 33회, 연수원 23회)에 합격했다. 그 바람에 검사 생활도 다른 대학 동기들에 비해 매우 늦었다. C씨를 통해 윤 총장의 시보 시절 얘기를 들어보자.
 
  “검사 시보에 불과했지만, 석열이가 동기들은 물론 사시 선배들보다 나이가 많잖아요. 그때 수원지검에서 근무하던 고교 동기를 통해 지검(地檢) 검사들을 불러 모아 석열이가 크게 한턱 냈지요. 그 배포에 놀라지 않은 검사들이 없었을걸요? 석열이는 자기 돈 아끼지 않고 베풀 줄 아는 친구예요.”
 
  A씨는 “아무리 친해도 할 말은 하는 친구가 윤석열”이라며 윤 총장에게 크게 한 방 먹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1989년 제가 모 대기업에 다닐 때 얘깁니다. 그 당시 우리 회사가 상장(上場)을 하는데, 간부 한 명이 ‘공모가 1만3000원짜리 주식을 주당(株當) 5000원에 1만 주를 주겠다’고 제안하더라고요. 앉은 자리에서 수억원을 버는 거니까 제 딴엔 고민이 좀 됐죠. 그래서 석열이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제 뒤통수를 치며 ‘임마 그거 배임이야, 배임’이라고 하더라고요.”
 
  C씨는 “석열이는 친구들의 부탁이라고 쉽게 들어주는 애가 아니다”라며 “나나 친구들이 뭔가 부탁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부탁을 한다 해도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 선에서 잘 매듭지을 줄 안다”고 평가했다.
 
 
  大尹-小尹의 친밀함을 상징하는 ‘물건’
 
‘대윤’ 윤석열 총장과 함께 ‘소윤’으로 불리는 윤대진 수원지검장. 두 사람의 각별한 친분은 검찰 내에서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사진=뉴시스
  이와는 조금 다른 얘기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다. 바로 ‘대윤(大尹)’ 윤석열과 가장 절친한 후배인 ‘소윤(小尹)’ 윤대진 전 법무부 검찰국장(사시 35회, 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의 형 관련 문제다.
 
  윤대진 전 검찰국장의 형인 윤모씨가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윤 총장이 변호사를 알선해주는 듯한 통화 내용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된 것이다. 당초 윤석열 총장은 “(윤대진 형과 관련해) 아는 바 없다”는 식으로 일관해왔지만, 통화 내용이 공개된 후에는 “윤석열 후보자가 거짓말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대윤’ 윤석열과 ‘소윤’ 윤대진은 세상이 다 아는 ‘명콤비’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법조계 인사 D씨는 그 친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재떨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윤석열 총장은 비흡연자이지만 그의 방에는 항상 재떨이가 있었습니다. 그건 흡연자인 윤대진 검사장을 위한 재떨이였어요. 윤 검사장이 자주 자신의 방에 오니까 윤 총장이 윤 검사장을 위해 배려 차원에서 갖다놓은 거죠. 그 정도로 서로 죽이 맞는 가까운 사이란 얘깁니다. 두 사람이 함께 수사를 한 적도 많고요.”
 
  ‘윤대진 형’에 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 ‘거짓말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양 갈래 의견이 맞선다. 윤 총장의 지인들은 대체적으로 그를 이해하는 눈치였다.
 
  A씨는 “나중에 윤대진 국장이 ‘윤 총장은 관여한 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며 “오히려 후배(윤대진)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석열이가 ‘모른다’는 식으로 얘기한 거다. 그게(변호사 알선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나라 법조인 전부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씨도 “석열이가 치부(致富)를 했다거나, 전직 검찰총장처럼 사생활 문제가 있다면 지탄받아야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건 조금 치사한 일”이라고 했다.
 
  윤 총장을 잘 아는 법조계 지인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청문회 이후에도 ‘윤대진 형’ 이야기는 공론화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워낙 작은 건에 불과해 정치권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중천 접대 의혹’ 보도와 관련해서도 C씨는 “문제의 《한겨레》 기사를 읽어 보니 접대를 받은 시기 등 구체적 정황이 다 불분명해 보였다”며 “내가 아는 한 석열이는 접대나 청탁하고는 무관하다”고 단언했다.
 
 
  윤석열과 우병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일각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윤석열 총장과 우병우 전 수석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사진=조선DB
  윤석열 총장이 소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보수층 일각에서는 ‘윤석열이 심증으로만 수사한다’고 그를 비판했다. 별건(別件) 조사 등을 통한 무리한 기소로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박 정권 인사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는 얘기였다. A씨는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며 “석열이는 철저하게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하고, 예단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D씨는 “별건 조사는 특수통 검사들의 수사 방식이기도 하다”며 “확실한 혐의가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피의자들에게 별건을 들이미는 건 수사 현실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윤 총장은 수사의 핵심을 짚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다”고 평가했다.
 
  윤대진 검사장이 윤 총장의 가장 친한 후배로 알려져 있는 데 반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윤 총장과 사이가 나쁜 것으로 인식돼 있다.
 
  이에 대해 D씨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우병우는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윤 총장은 중수부 2과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수사기획관은 중수부 1~2과장에게 수사를 배분하는데, 우병우 기획관은 중요한 수사는 거의 다 윤석열 2과장에게 배분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병우 전 수석이 믿고 신뢰하는 검사가 윤석열 총장이었다는 얘기다. 우 전 수석이 대검 범죄정보기획관(2009~2010)으로 있을 때에도 윤 총장은 그 밑에서 범죄정보기획 2담당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D씨는 “2011년 중순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 당시, 국회가 대검 중수부 폐지에 합의하자 중수부 수사팀이 참고인을 돌려보내는 등 강력하게 항의한 일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수사팀에 몸담고 있던 우병우, 윤석열, 윤대진, 노승권(사시 21회, 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은 술집에서 통음(痛飮)을 했다고 한다. D씨의 말이다.
 
  “알고 보니 그 자리를 주도한 건 직급상 최선임자인 우병우가 아니라 윤석열 총장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병우도 윤 총장이 주도하는 걸 용인했대요. 사시와 연수원 기수는 우병우가 빨라도, 나이는 윤 총장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만큼 서로 존중하는 사이예요. 그날 술자리에서 윤 총장은 두 시간 가까이 말을 하더랍니다. 윤 총장은 아는 게 워낙 많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말이 길어질 수밖에요. 그와 만나려면 그날 할 일을 다 끝내고 가야 할 정돕니다.”
 
  D씨는 “과거 윤대진 검사장이 맡은 사건은 무죄를 많이 받았지만, 윤석열 총장이 다룬 사건 중 무죄를 받은 건 얼마 안 된다”고 했다. D씨는 수사와 관련해 윤석열 총장이 보여준 ‘원칙주의’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과거 윤 총장 지인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그 지인이 윤 총장에게 ‘잘 봐달라’는 식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윤 총장은 ‘알겠다’고만 답했고요. 그 뒤 윤 총장은 수사팀에 ‘더 세게 (조사)하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지인이든 뭐든 간에 ‘잘못을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윤 총장의 지론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는 비판받아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본사 전경. 윤석열 총장을 비판하는 이 중 한 명은 윤 총장의 무리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거론한다. 사진=《월간조선》
  또 다른 법조계 인사 E씨는 윤 총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윤 총장이 집념을 갖고 수사를 벌인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국정농단 사건 이후 윤 총장이 가장 신경을 썼던 수사가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라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윤석열 총장 머릿속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넘어 삼성 승계 과정까지 파헤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고발한 혐의는 분식회계인데 왜 승계까지 수사선상에 올렸는지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승계 문제는 이미 국정농단 때 다뤄진 혐의 아닙니까. 거기서 명확히 규명을 못 했기 때문에 윤 총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과도하게 집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2018년 12월부터 분식회계 수사를 했는데, 증거인멸 등으로 8명을 재판에 넘긴 게 전부고 분식회계 혐의로는 한 명도 구속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럼 수사를 접어야 하는 게 맞죠.”
 
  윤석열 총장은 미국의 유명한 자유시장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감명 깊게 읽었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 부친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받았을 정도로, 투철한 자유시장경제 신봉자임을 자처해왔다. 그는 총장이 되기 전 사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한다”며 “남들이 나를 좌파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자유시장경제가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E씨는 이러한 사례들을 거론하며 “자유시장경제하에서 기업의 건전성은 기업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검찰 권력이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 총장은 그러나 검찰 권력을 이용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식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에 접근했다”며 “이는 모순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수사하면서 간부 8명을 증거위조·증거인멸 및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후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승계도 다시 수사 중인 상태다.
 
  E씨는 또 “검찰 내부에서 윤 총장을 따르는 후배도 많지만, 일부는 ‘자기 사람만 챙긴다’며 따가운 시선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로 비(非)특수부 출신 검사들 사이에 이런 불만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현재 부산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F씨도 다소 박한 평가를 내렸다. F씨는 “윤 총장이 법률 지식에 있어 뛰어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며 “검사로서 촉이 강하다는 주변의 평가처럼 수사 감각이 뛰어난 분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윤 총장은 ‘리더십이 뛰어난 형님’이란 인상뿐”이라고 평했다.
 
 
  결혼식 때 고생한 방호원들에게 私費 200만원 쾌척
 
  윤석열 총장의 아내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도 대중의 관심에 놓여 있다. 12세 나이 차를 극복하고 두 사람은 2012년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스토리를 잘 아는 이의 얘기다.
 
  “양가 집안 다 불교라 스님이 중매를 해서 결혼이 성사됐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죠. 사실 김건희씨 모친인 최씨가 윤 총장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어요. 윤 총장의 모친이 교수 출신(이화여대)이라 까다로운 걸로 주변에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윤석열 배필이 누가 될지’가 관심사 중 하나였죠. 그런데 윤 총장 부모님도 며느리를 매우 아낀다고 하더라고요. 김씨 역시 시부모님에게 깍듯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겉보기와는 다르게 윤 총장은 순정파이자 애처가예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묻는 장면을 자주 봤어요. 부부 금슬이 아주 좋아 보이더라고요.”
 
  두 사람의 결혼식은 검찰 내에서 화제가 됐다. 당시 대검찰청 청사에 식장(式場)이 마련됐는데, 서초역 사거리 일대가 윤 총장 하객들이 타고 온 차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윤 총장 지인의 말이다.
 
  “하객이 너무 많아 식장까지 올라가기도 벅찼어요. 윤 총장을 보러 왔다가 통로가 막혀서 못 보고 간 사람도 많았어요. 인근 교통도 마비였죠. 대검 방호원들은 물론, 서초경찰서 직원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거들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에 윤 총장이 결혼식을 위해 애써준 대검 방호원들에게 200만원을 사비(私費)로 줬습니다. 방호원들이 ‘대검에서 결혼한 사람 중 윤석열 검사처럼 우리를 신경 써준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윤 총장의 부친 윤기중(尹起重·89) 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에 관한 얘기도 자주 등장했다. 《박정희 압축 민주화로 이끌다》는 저서를 쓴 김인규(金仁奎·64)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기중 교수의 연세대 제자다. 김인규 교수는 학부에서 응용통계학을 전공하고, 동(同)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모신 은사 가운데 진정한 참스승이며 가장 멋진 분이 윤기중 교수”라고 밝혔다. 김인규 교수의 말이다.
 
  “아마 윤석열 총장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부친일 겁니다. 윤 총장은 부친의 엄격한 지도 아래 성장했어요. 윤 총장에 대한 윤기중 교수의 믿음과 신뢰는 아주 컸습니다. 특히 윤 총장이 변호사 생활을 접고 다시 검찰로 들어갔을 때 가장 반긴 이가 부친입니다. 윤기중 교수는 윤 총장에게 ‘부정한 돈 받지 말라’며 입버릇처럼 강조했어요.”
 
  김인규 교수는 “윤기중 교수는 박사 학위가 없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 없이 어떻게 교수에 임용됐냐’고 반문하자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윤기중 교수가 교수에 임용될 때엔 석사 학위만 갖고도 대학교수를 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그 당시 ‘구제(舊制) 박사’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박사 학위 없는 사람들에게 학위를 주는 제도였습니다. 간단한 논문을 작성해 다른 대학 소속 교수들에게 심사받아 통과하면 (박사) 학위를 주는 일종의 ‘품앗이’였죠. 너 나 할 것 없이 이 제도를 이용해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윤 교수는 그걸 거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게 윤 교수의 논리였죠. 윤기중 교수의 그러한 원칙주의를 아들(윤석열)이 물려받지 않았나 싶어요.”
 
  김 교수는 “윤기중 교수는 세심하고 자상한 면이 있었다”며 “연말연초에 제자들에게 연하장을 보냈고, 제자들이 박사 학위를 받고 오면 꼭 식사 자리를 마련해줬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스승의 날’을 맞아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 그때도 윤기중 교수가 직접 계산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 윤기중 교수는 건강이 나빠진 아내를 위해 충남 공주에 내려가 있다. 김인규 교수에 따르면, 윤 교수는 “젊을 때 제자들은 챙겼으면서 집사람 건강은 잘 챙겨주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A씨도 윤기중 교수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저한테 술을 가르쳐준 분이 윤기중 교수입니다. 석열이 연희동 집에는 지하실이 있는데, 거기엔 여러 종류의 술이 있었어요. 나와 친구들은 석열이네 집에서 아버님(윤기중 교수)이 주시는 ‘마패’라는 브랜디를 자주 마셨습니다. 아버님이 약주를 좋아하셔서 아들(윤석열 총장) 친구들을 불러다가 한 잔씩 따라주며 주도(酒道)를 가르쳐준 셈이죠.”
 
  그는 “윤기중 교수는 ‘조국 수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내 아들은 원칙대로 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大望論’의 虛와 實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가운데)과 부인 김건희(왼쪽)씨가 청와대 본관에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시작을 기다리며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총장이 향후 정치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A씨는 “《노자(老子)》에 ‘공성명수신퇴(功成名遂身退)’라는 말이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 말은 ‘공을 이루고 이름을 얻으면 그 직임(職任)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몸을 갖는 게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 운운은 했지만 석열이는 대권(大權)은 물론 정치에 전혀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람 일은 모르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검찰총장 이후, 석열이가 어떤 길을 갈지에 대해 직접 들은 바는 없지만 우리는 40여 년간 알고 지냈다. 그럼 대충 이 친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안다”고 했다.
 
  B씨 역시 “《월간조선》이 윤석열에 관한 기사를 쓰는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윤석열을 정치인으로 키우자’는 의미로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씨는 윤 총장은 정치할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자는 이 말들을 “윤석열을 ‘영원한 검사’로 남게 해달라”는 절친한 친구들의 진심 어린 당부로 해석했다.
 
  이들의 바람과 달리 윤석열 총장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윤석열 총장은 모친상을 당한 친구 황인규 씨엔씨티에너지 부회장의 빈소인 서울 아산병원을 찾았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던 시점임에도 시간을 내 빈소를 찾은 것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와 변호사를 지낸 황인규 부회장은 〈소나기〉로 유명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1915~ 2000)씨의 조카다. 윤 총장이 빈소에 들어서자 조문객들의 눈이 일순간 그에게 쏠렸다. 이 자리에 있던 윤 총장 지인의 얘기다.
 
  “윤 총장이 들어서자, 그를 잘 아는 이들이 기립박수를 쳐주더라고요. 사실 빈소에서 박수를 친다는 건 상주(喪主)에게는 대단한 실례죠. 그런데도 조문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그게 뭘 말하는 거겠습니까. 우리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국 장관 일가를 겨냥해 수사를 벌이는 윤 총장에 대한 일종의 격려로 받아들였습니다.”
 
  D씨는 “윤 총장은 공·사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남자는 공직(公職)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D씨는 “검사도 공직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며 “사실 ‘윤석열 대망론’은 이미 반 년 전부터 서초동 바닥에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권 핵심 인사 중 현재까지 ‘별다른 흠이 없는 사람은 윤석열뿐’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고검장 출신의 전직 특수부 검사는 이런 말을 해줬다.(이때는 조 장관이 사퇴하기 전)
 
  “현 시점에서 윤석열 총장에게 대권은 무의미합니다. 윤 총장과 같은 ‘승부사’에게는 눈앞에 놓인 싸움에서 당장 승리하는 게 중요한 법이죠. 윤 총장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국 수사에서 성과를 내는 거고, 다른 하나는 검찰개혁이란 압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입니다. 일단 검찰개혁은 윤 총장이 전략적인 차원에서 정권이 요구한 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남은 건 조국 수사입니다. 이게 ‘진검승부’죠. 윤석열의 반격이 이뤄지는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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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자    (2019-11-06) 찬성 : 10   반대 : 4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인데 이렇게 주목 받아야 하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법은 동일 해야 할 것이다. 이전 정권이나 지금 정권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수사가 진행 되고 있는 지는 여전히 의문 스럽다. 조국 수사도 결과를 보기 까지는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이진욱    (2019-11-05) 찬성 : 18   반대 : 4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정도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자기의 역활을 하면 그 다음에는 편안히 여생을 보내도 된다. 괜히 정치다 뭐다하고 자기의 업적과 사명을 색바래게 하는건 바보스러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껏 많지않았나, 그런 사람을 보고서라도 자기길을 선택하는게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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