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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盧在鳳 전 국무총리

“대한민국 해체하는 위험한 혁명 진행 중”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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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이승만이 시작한 근대국가 건설을 1차적으로 완성”
⊙ “박정희 만났을 때 퇴학생 복학 부탁하자 희색 만면”
⊙ “김영삼~박근혜는 구체적 정체성 없어… 大同小異”
⊙ “박근혜 탄핵은 박근혜를 빙자한 체제 탄핵”
⊙ “조국 이해 안 가… 교수라고 하면 權府 핵심으로 들어갈 때는 사표를 내고 들어가야”

盧在鳳
1936년생. 서울대 문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뉴욕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대통령 정치담당 특별보좌관,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제14대 국회의원, 서울디지털대 총장 역임. 現 서울대 명예교수 / 저서 《시민민주주의》 《사상과 실천》 《한국민족주의》(편) 《정치학적 대화》(공저)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공저)
  1년 2개월 만에 노재봉(盧在鳳·83) 전 국무총리를 다시 만났다. 지난해 《월간조선》 8월호 인터뷰 때는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건국’의 의미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때 노 전 총리는 “1919년 건국 주장은 전복(顚覆)을 위한 프로파간다”라면서 “지금 실질적으로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다.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문재인(文在寅) 정권은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배제’ 조치를 계기로 반일(反日) 선동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파기했다. 온갖 의혹으로 가득한데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임을 자인(自認)한 조국(曺國)씨를 국민 다수(多數)가 반대함에도 기어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 과정에서 공중파 방송은 침묵했고, 정권 지지 세력은 안면몰수하고 조국씨를 ‘결사옹위’하는 홍위병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재봉 전 총리는 얼마 전 다시 한 번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하면서 그 존재를 해체해가는 위험한 혁명이 진행돼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할 것 같던 나라가 어쩌다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을까?
 
  모든 일에는 뿌리가 있는 법이다. 이런 상황도 어제오늘에 시작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침 올해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사태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 대통령은 5000년 찌든 가난을 몰아냈을 뿐 아니라 민주화로 가는 물적(物的) 토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그의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 정권 시절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주행(逆走行)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배태(胚胎)된 시절로 볼 수도 있다.
 
  노재봉 전 총리를 만난 것은 10·26사태 40주년을 계기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반추(反芻)해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진단해보기 위해서였다. 나라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老)학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노 전 총리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나 나누자”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이내 한국 현대사는 물론 서양 근대사까지 망라하면서 대하(大河)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정치학 강의가 되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었다.
  - 금년이 10·26사태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정희 대통령 하면 흔히 경제적 측면에서 많이 얘기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박정희 시대의 가장 큰 의미는 한마디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근대국가 건설을 1차적으로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이승만 대통령은 중세 왕조국가를 떠나서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농민이 전 국민의 80~90%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주민’을 ‘국민’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과제였습니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교육에 진력(盡力)하는 한편, 농지개혁을 단행했어요.”
 
  ― 그랬지요.
 
  “농지개혁을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실현한 것이라고만 보면, 한 측면만 보는 것입니다. 다른 제국주의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도 토착지배계급을 이용해서 통치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조선조의 뿌리가 그대로 내려왔단 말이에요. 이것을 청소해야 민주공화국이 출범할 수 있는 거죠. 농지개혁은 재래적 뿌리를 가진 통치계급을 완전히 청소해버린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막 근대국가로의 첫걸음을 떼는 때에 6·25전쟁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 어떤 점을 얘기하는 건가요.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경제가 파괴돼버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군인들이 현대전쟁을 경험하면서 처음으로 집단적 조직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전쟁을 경험한다는 것은 현대의 경제·과학·기술의 정수(精髓)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현대 국가의 행정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6·25전쟁 3년은 완전히 낭비된 세월은 아니었습니다.”
 
 
  “5·16, 반가운 일 아니지만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
 
  ― 그러면서 군부(軍部)가 성장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승만 대통령은 그런 것까지 캐치해서 제압한 노련한 정치가였습니다. 문제는 전시(戰時) 상태가 되면 동원(動員)이나 내적 방해요소의 정리 등을 위해 자유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죠.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국가이성(國家理性)을 발휘해야 할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링컨도 230여만명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쟁 상태라는 것은 잊어버리고 ‘왜 우리가 배운 대로 민주주의를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나선 것이죠. 그걸 부추긴 게 농지개혁으로 권력 기반을 상실한 세력이었지요.”
 
  ―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게 4·19였군요.
 
  “장면(張勉)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어요. 장면 정부가 4·19 리더라는 학생들에게 해외순방을 시켜줬는데, 그들을 만나 보니 완전히 영웅이 돼서 권력이 자기들 손에 있다는 식으로 착각을 하고 있더군요. 내가 새파랗게 젊었을 때인데도 이런 혼란 상황에서 장면씨가 군을 장악하지 못하면 정권이 넘어갈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런 상황에 빠지면 군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조직된 집단이라는 게 군뿐이니까.”
 
  ― 5·16이 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상황상 불가피한 것으로 봤습니다. 박정희라는 쿠데타 리더는 일제(日帝) 때 일본군에서 교육받은 사람이지만, ‘국가가 어떠해야 한다’는 감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박정희와 그 그룹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이 국가라고 선언하고 여태까지 오긴 했는데, 내실(內實)을 보면 국가라고 행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 힘으로 국방도 못 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라는 생각이 꽉 찼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서의 요건을 완성한 해
 
1978년 가을 추수 현장을 돌아보는 박정희 대통령. 근대국가 대한민국의 요건을 1차적으로 완성했다.
  ―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 민정 이양을 앞두고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도 그런 생각이 절절하게 나오더군요.
 
  “그렇죠. 이제는 명실공히 근대국가로서의 내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경제발전’이었습니다. 그게 단순히 먹고살고, 풍요롭게 산다고 하는 물질주의적인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서의 요건을 완성한 게 언제냐? 1973년이었습니다.”
 
  ― 그 해가 어떤 해였습니까.
 
  “미국의 마지막 군사원조가 끝난 해였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근대국가 건설 과정이 1차적으로 완성되는 겁니다.”
 
  ― 3선 개헌이나 유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일들은 한두 해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후속되는 정치 세력이 바통을 받아서 나와야 하는데, 후계라는 게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잖아요. 정치체제상 야당이라는 것도 있고….
 
  게다가 위험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닉슨독트린, 월남 패망,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등. 월남이 패망했을 때에는 김일성이 중국으로 뛰어가고 난리가 아니었잖아요?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국민들은 그걸 잘 못 느꼈죠. 통치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이거 큰일 났다’ 싶었을 거고, 그래서 정치 형태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10월 유신을 지칭).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말년에는 2선으로 물러날 작정을 완전히 굳히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저도 얼마 전 박정희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셨던 분에게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두 번 만나보았는데, ‘독재를 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고 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와의 만남
 
  ― 언제, 어떤 자리에서였습니까.
 
  “돌아가시기 2년 전인가 3년 전이었는데, 정치학 교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할 때였습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권력을 위한 권력’을 위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부탁을 하나 했지요.”
 
  ― 어떤 부탁이었습니까.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을 처음 뵈었는데, 교수로서 부탁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그게 뭐냐’고 하더군요. ‘각하, 20대 청년들이 한번 반항해보는 기백이 없으면 나라가 어떻게 됩니까. 그 나이 때는 그래 보는 것입니다’라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저항하는 게 반민주·반독재 이런 거였지, 좌파적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퇴학(退學)을 당한 학생이 강의 듣겠다고 교실에 들어온 것을 스승으로서 내가 쫓아내야 합니까? 각하도 사범학교 나와서 가르쳐봤으니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 전통윤리에서는 군사부(君師父) 아닙니까? 아비보다 스승이 서열 위인데, 제가 저보다 위에 있는 대통령께 부탁합니다. 애들 좀 풀어주십시오’ 이랬더니….”
 
  ― 박정희 대통령 반응이 어땠습니까.
 
  “희색(喜色)이 만면이야.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아, 애들이 책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고 하면 내가 얼마든지 사 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하기에 ‘다 쓸데없는 짓도 하는 겁니다. 그걸 통해 성장하고 세상도 알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일본에서도 안보투쟁 때 어땠습니까? 그래도 나중에 보니 다 사회에 공헌을 합디다’라고 했어요. 박 대통령도 ‘아, 일본도 그렇다고 하더구먼. 노 교수 알았어. 풀어줄게’라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답이 나왔어요.”
 
  ― 박 대통령이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그 세계에는 인간적인 다이얼로그(대화)가 없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내부에서 터진다”
 
1979년 11월 6일 10·26사건 진상을 발표하는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정권은 질서와 안정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 10·26사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휘하 기관들도 강해지는데, 그들이 꼭 박정희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 과잉행동도 했어요. 그렇게 되면 ‘내부에서 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부 부처 국장들과 식사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건 직감(直感)이었어요. 아닌 게 아니라 내부에서 터지더군요.”
 
  10·26 이후에 ‘서울의 봄’이 왔지만, 그 봄은 짧았다. 1980년 5·17조치로 신군부(新軍部)가 권력을 장악했고, 5·18이 터졌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 ‘서울의 봄’ 때, 신군부의 등장을 예상할 수 있었나요.
 
  “최규하(崔圭夏)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된 후, 헌법개정 문제가 대두됐어요. 최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1년 6개월 잘 준비해서 국민에게 개헌안(改憲案)을 내놓겠다’고 하더군요. ‘국가를 강력하게 이끌고 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민들이 깜짝 놀라 있는 상태다. 지금 데모도 나고 그러는데, 국민들이 3개월은 참을 수 있다. 그동안 빨리 개헌안을 내서 안정화시키지 않으면 군이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얼마 후 대통령 비서실에서 각 대학 연구소 소장을 부른 자리가 있었는데, 나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참석했어요. 또 ‘1년 6개월’ 소리를 하기에 들으나 마나 한 소리여서 그냥 졸다가 나왔어요.”
 
  ― 그런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상세하게 모든 사실을 알아서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충 봐서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한번은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공사가 찾아왔어요. 커피 한잔 마시면서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더군요. ‘최규하 대통령이 이대로 가면 6개월 내에 무너진다. 이 공백 상태에서 최 대통령이 정치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가면 군이 나온다’고 말해주었지요. ‘군의 누구냐’고 하기에, ‘나는 군에 아는 사람이 없다. 객관적으로 봐라. 지금 조직된 집단은 군밖에 없다. 정당들은 혼비백산해 있거나 서로 권력 잡겠다고 싸움만 하는데, 6개월 이상 못 간다’고 말해줬어요. 아닌 게 아니라 딱 6개월 후에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下野)하더군요.”
 
 
  “전두환은 안정, 노태우는 자유민주주의 진일보”
 
  ― 전두환 정권 시기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전두환 대통령 때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안정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한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어린애가 밤에 맘대로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그걸 보고 참 희한하다고 말했어요.
 
  또 하나, 흔히 잊어버리고 있는데, 전두환 정권 때 처음으로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무역적자)에서 플러스(무역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때 150억 달러의 플러스가 생겼지요. 이건 대단히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단임(單任)으로 끝내고, 직선제(直選制) 개헌 후 네 명의 후보가 나와서 자유롭게 경쟁한 끝에 노태우 대통령으로 넘어간 것도 평가할 일입니다. 제일 어려운 게 권력계승 문제인데, 6·29선언으로 부드럽게 넘어갔습니다. 6·29선언 발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거제포로 석방과 맞먹는 결단’이라고 신문이 쓴 기억이 납니다.”
 
  ― 노태우 정권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노태우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한 단계 발전시켰습니다. 그때처럼 자유로운 때가 어디 있었어요? 언론도 그렇고….”
 
  노 전 총리는 “하지만 1987년부터 민주화 30년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한 겁니다. 이게 단계적으로 발전하다가 노태우 대통령이 이를 진일보시켰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외교를 공산권 포함 전(全) 세계적인 외교로 확대시킨 것도 노태우 대통령의 큰 업적입니다.”
 
 
  “청와대 들어갈 때 대학에 사표 내”
 
노태우 대통령과 노재봉 전 총리. 1993년 8월 18일 노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중 함께 일했던 총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의 사진이다.
  ― 노태우 정권 시절 대통령 특별보좌관, 비서실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냈는데, 노태우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노태우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 시절 두 번인가 만난 적 있지만, 특별한 인연은 없어요. 대선이 끝나고 당선자 시절에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비서실장을 맡으라고 해요. 깜짝 놀랐죠. 학과장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비서실장이라니…. ‘그런 능력이 없다’는 식으로 부드럽게 사양했어요.”
 
  ― 아, 첫 조각(組閣) 때 벌써 제안이 있었군요.
 
  “그때는 그렇게 넘어갔는데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 후 개각(改閣)을 하는데, 통일원 장관이나 외무부 장관으로 입각(入閣)하라는 제안이 또 들어왔어요. ‘서울대 교수로 시작했으니 교수로 끝내겠다’고 했어요. 세 번 찾아왔는데 다 거절했죠. 그런데 개각 후에도 특보(특별보좌관) 자리를 새로 만들 테니 들어오라는 거예요.”
 
  ― 노태우 대통령이 왜 그렇게 총리님을 원했을까요.
 
  “글쎄요. 아마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민정당 사람들이 찾아와 대책을 묻기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준 적이 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특보 자리로 들어오라는 걸 옥신각신하면서 3, 4개월을 끌었어요. 나중에는 ‘정 그러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고요. ‘내 팔자인가보다’ 하면서 서울대에 사표 내고 청와대로 들어갔죠.”
 
  ― 아, 사표를 내고 청와대로 들어갔습니까.
 
  “물론이죠. 청와대 들어가는 게 어디 뒷자리 보고 들어가는 겁니까?”
 
  ― 어떤 사람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나는 조국이라는 사람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적어도 교수라고 하면 권부(權府)의 핵심으로 들어갈 때는 사표를 내고 들어가야 할 거 아닙니까? 밥 먹고 살기 위한 자리로 들어갔나? 이용희(李用熙·전 국토통일원 장관) 교수도 박정희 대통령 때 특보로 들어갈 때 사표를 내고 들어갔어요. 그걸 당연한 룰(rule)로 생각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김영삼~박근혜는 大同小異”
 
  그때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대로 김영삼(金泳三) 정권에 대한 평가도 부탁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권을 제외하면 김영삼 정권부터 박근혜(朴槿惠) 정권까지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깜짝 놀랐다. 저마다 개성과 공과(功過)가 있고, 한 시대를 만들었던 김영삼・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이명박(李明博)・박근혜, 다섯 명의 역대 대통령들을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다니….
 
  ―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전부 구체적인 정체성(正體性)이 없는 정권입니다. 박근혜를 보세요. 중국 전승절(戰勝節) 행사 참석한다고 천안문까지 올라갔다가 나중에 가서는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고…. 그러니 그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뭐란 말입니까? 이명박은 뭐라고 했어요? 중도실용(中道實用)이라고 했잖아요? 대한민국이 그런 국제적 위치에 있는 나라입니까? 노무현, DJ, YS, 전부 비슷합니다.”
 
  흔히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을 일러 한편에서는 ‘민주진보정권’,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정권’이라고 말한다. 세 정권의 정체성을 비슷한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재봉 전 총리는 문재인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는 정체성이 다른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다. 얼마 전 발표한 글에서 노 전 총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금년 초, 문재인 대통령은 연말까지 한국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만들어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중대한 발언을 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나라의 모습일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늘 그러하듯이 그는 암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발언 특성을 보여왔다. 그런 암호의 해독을 두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그의 정치 기술의 특성이다. 혼란은 그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 자산이다. 어떤 자산인가? 그것은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것이다.
 
  정치세계에서 혼란은 필히 증오심과 복수심을 유발한다. 생소한 이 르상티망이란 단어는 불어(佛語)인데, 이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평등의식이 휩쓸면서 사회적으로 만인 대 만인의 비교전쟁이 폭발하면서 각자가 갖게 된 분노와 복수의 정신 상태를 이르는 용어이다. 그 상태는 반드시 환상에 가까운 적을 생산해내는 특성을 갖는다. 한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이른바 좌파는 어떤 적을 만들어냈는가?〉
 
 
  체제 탄핵과 통혁당
 
노재봉 전 총리는 2017년 박근혜 탄핵은 박근혜를 빙자한 체제탄핵이었다고 말한다.
  ‘르상티망’(원한·증오·복수심 등)은 노재봉 전 총리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분석할 때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keyword)다.
 
  ― 오늘날 우리나라를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르상티망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586세대 운동권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1980년 광주(光州)입니까, 혹은 그 이전 박정희 유신정권입니까.
 
  “뿌리가 깊어요. 그게 결국은 박근혜 탄핵으로 연결되는 건데, 박근혜가 뭘 했는지 간에, 탄핵 과정을 보면 제1단계로 거짓말을 만들어냅니다. 거짓말을 만들어내서 대중을 감정적으로 흥분시켜, 헌법재판소로 가서 탄핵이 되잖아요. 위선과 흥분이라고 하는 르상티망이 작용한 건데, 사실 박근혜 탄핵은 박근혜 개인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박근혜를 빙자해 체제를 탄핵한 것입니다. 나는 이게 좌파의 장난, 이북의 오퍼레이션(operation)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 오퍼레이션의 핵심은 아직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어요.”
 
  ― 그게 누굽니까.
 
  “통혁당(통일혁명당)입니다.”
 
  ― 통혁당은 1960년대 후반 당국의 수사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세상에는 없어진 것으로 되어 있지만, 김일성의 특명을 받은 여간첩이 통혁당을 재건해놓고 갔지요. 이후 그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했던 신영복이죠. 신영복이 죽고 난 후의 지도자는 표면에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그게 누구입니까.
 
  노재봉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복역했던 소위 진보진영의 원로 한 사람의 이름을 댔다. 노 전 총리는 “그 세력이 시민운동단체들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서 NL(민족해방) 세력이 청와대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시 노 전 총리의 글을 인용해본다.
 
 
  문재인의 서열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여느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비서관이 군의 대장을 불러내기도 하고, 익명의 열정으로 일해야 할 일개 수석이 개헌안을 발표하기도 하는 곳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서진 중심은 특수한 좌파인 주사파(主思派), 즉 김일성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집단은 투쟁 경력으로 서열이 결정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문맥에서 보면, 문 대통령은 서열 질서의 정상 위치에 있는 듯하지는 않다. 또한 그들 대다수는 특정 이데올로기 이외에는 별로 체계적 공부를 한 사람들도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문 대통령이 항상 A4 용지로 된 원고를 앞에 놓고 발언하는 내용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청와대 참모요원들의 지력(知力)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포착된다. 평소 용어 조작에 훈련된 그들임을 감안하더라도 전문 지식인들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개념들이 이따금 나오는 것을 보면, 밖에서 고도로 훈련된 이데올로그들이 논리를 입력해주는 일이 빈번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실례로, 평창올림픽에서 북한 인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신영복을 거론하며 훌륭한 사상가라고 언급한 일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가 누구이기에?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으로 오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다. 그 통혁당은 지금 사라졌는가? 통혁당은 김일성이 가장 중요시했던 남한의 지하 혁명조직이었다. 이미 와해된 그 조직을 김일성의 특명을 받은 여간첩이 재건해놓고 갈 정도의 비중을 가진 조직이었다.
 
  신영복은 그 재건된 통혁당의 지도자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종용의 지령도 이 조직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조직의 최상위에 있었던 신영복은 민족해방파의 지도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훌륭한 사상가로 불렀던 문 대통령이, 이른바 ‘민족해방전쟁’을 통해 월남이 공산화된 것을 두고 환희의 전율을 느꼈다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일까?〉
 
  노재봉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조국도, 그 집단 내에서는 서열상 하위에 속한다”면서 “뒤에 문제가 있는 자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낭만주의
 
  ― 르상티망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셨는데, 그 르상티망의 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르상티망은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연결되는데, 미학적(美學的)으로는 독일의 낭만주의에서 비롯됩니다. 낭만주의는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독일에서 나타나 19세기와 20세기를 휩쓸었습니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을 통째로 받아들였고, 일제시대 일본 유학생들은 또 그걸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해서 독일의 낭만주의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사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우리가 배운 게 전부 낭만주의였어요. 6·25전쟁으로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피란 수도 부산에서 ‘시인의 밤’ 행사를 열고, 배 쫄쫄 굶으면서 돌체다방에 앉아 ‘시인은 시대의 선구자’ 어쩌고 하고….
 
  우리가 근대문화라고 접한 게 죄다 낭만주의인데, 젊었을 때 ‘상업을 권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이승만 대통령은 여기서 완전히 비껴나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다 그렇지요.
 
  “그런 낭만주의자들에게는 빈곤(貧困)이 미덕(美德)이었죠. ‘경제발전은 순전히 부르주아들이 착취하기 위해 하는 거다’, 이런 식의 인식이었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소득 좀 올라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죠.
 
  “어려서부터 시작해서 몇십 년 동안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합리적 이성이 약해요. 그들(현 집권 세력)은 자기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본 적이 없잖아요? 경제가 뭔지 모른다고. 공리주의(功利主義)·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이런 거는 순 쌍놈들의 사상으로 취급하고, 경험주의 같은 거는 거절하고….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 같은 현상이 생기는 거죠.”
 
 
  문재인이 말한 ‘남측 대통령’의 의미
 
작년 9월 평양 방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남측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재봉 전 총리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들어오면서 낭만주의 사고와 딱 접합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지금 북한하고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쪽은 개인(individual)을 기초로 해서 이성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게 기회를 보장하는 체제이고, 그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국민의 내용입니다. 저쪽(북한)은 개인이라는 게 없잖아요. 집단으로, 생물학적으로 규정해놓고 있잖아요. 같은 언어를 쓰고 역사적 경험도 과거에는 같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종족적으로 같다고 해서 한 민족은 반드시 한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 문재인 대통령이나 일부 국민은 대한민국을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임시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 가서 ‘남측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남측’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가 지도상 어디 있으며, 유엔 멤버 중에 어디 있습니까? 국가라는 존재를 스스로 깔아뭉개버리는데, 이게 보통 일입니까?”
 
  ― 그런 소리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것은 임시정부에서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얘기이자, 연방제(聯邦制)를 얘기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연방제라고 하면 김일성의 연방제와 연결되는 건데, ‘나는 남쪽의 도독(都督)’이라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 그런 생각 갖고 있는 사람은 미관말직(微官末職)이라도 맡으면 안 되는데,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정말 큰일입니다.
 
  “장준하씨가 《사상계》를 하면서 ‘통일이면 어떤 통일이라도 좋다’는 글을 쓴 적이 있잖아요? 그럼 저런 놈의 체제로의 통일도 좋다는 얘기입니까?”
 
 
  “(현 집권 세력은) 진보가 아니라 반동”
 

  ―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발전 과정에서 미국·일본 등 세계와 접목되기도 해서 이제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낭만주의적 민족 개념으로부터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해왔는데, 문재인 정부의 반일(反日) 선동에 젊은이들까지 따라가는 걸 보면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반일 감정은) 근거 없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근대국가를 만들 적에 조선시대 《경국대전》 가지고 했던 겁니까? 일본이 했던 걸 그대로 답습하면서 우리도 대륙법 계통으로 연결된 것 아닙니까? 일본한테 착취만 당하고 배운 건 하나도 없나요? 문화의 전파(傳播)는 모조리 무시해버리고 있어요. 세계는 전파가 부단히 일어나는 곳입니다. ‘일본 문화는 우리가 원류(源流)다, 일본 너희는 우리보다 하위다’, 이런 식의 의식을 가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식의 민족주의에 빠질 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문명의 미션(mission)을 자각했으면 좋겠어요.”
 
  ― 그게 뭡니까.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 끝에 붙어 있지만, 동북아(東北亞)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를 국시(國是)로 하는 나라입니다. 아직도 유라시아 대륙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나라들이 많아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전체를 인간이 인간답게 만드는 사회로 만드는 걸 우리의 미션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크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 지금은 오히려 완전히 그걸 걷어차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걷어차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고 있죠. 이 친구들(현 집권 세력)은 진보가 아니라 반동(反動)에 가깝습니다.”
 
  ― 관심은 온통 과거에 가 있고, 미래에 대한 관심은 없는 사람들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 AI 시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그에 맞게 구조와 기능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없어요.”
 
  ― 기업에 대한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업에 문제점도 있지만, 기업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거는 모험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게 쉬운 일입니까?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기업인들이라고 하면 오너들이 다 먹는 줄 알아요. 저축과 재(再)투자라는 개념이 없어요.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온건하다고 하는 노동자들을 초청한 적이 있는데, 현대자동차 노동자 한 사람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노동은 우리가 하는데 이익이 생긴 것은 왜 자본주가 다 가져가느냐’고….”
 
 
  “경제는 국정의 부수적 영역이라고 생각”
 
  ― 지금 우리는 사회 각 부문을 장악한 좌파 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권에 의해 나라를 ‘네다바이’(사기) 당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과거 노태우 정권 시절 좌파 세력을 차단할 기회가 없었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젊어서 한번 해보는 얘기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운동권 핵심으로 포섭될 뻔하다가 빠져나온 학생들로부터 ‘일부 학생이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혈서(血書) 쓰고 충성 맹세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남한 내부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북한의 전복 전략이 상당히 깊이 침투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세력화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 그들이 왜 그렇게 확산된 것일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원래 낭만적 사고의 뿌리가 있는데다가, 그걸 바탕으로 해서 (북한의) 전복선전이 활동한 거라고 봅니다.”
 
  ― 경제도 큰일이 났습니다.
 
  “모든 경제지표(指標)가 내려가고 있는데, 회복할 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미 징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일본이 경험했던 ‘잃어버린 20년, 30년’ 지경으로 갈 것 같습니다.”
 
  ―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만 해도 집권 초기에는 좌파 이상주의자를 경제참모로 썼다가도 경제가 꺾인다 싶으면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시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펀더멘털(fundamental)이 좋다고 생각하고, 통계를 다르게 해석하고, 그래서 안 되면 돈 뿌려서 표를 사는 거고….”
 
  ― 설사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더라도 그것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는 불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사람들은 경제를 국정(國政)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부수적(附隨的)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문재인 정권이 반일 캠페인을 시작할 때부터 이번 기회에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까지 망가뜨리자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소미아 파기와 주한미군 기지 반환 요구 등을 하는 것을 보니 결국 그렇게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맹관계를 깨고 나간다는 데 대해 거의 ‘광신적인 믿음(fanaticism)’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은 레이몽 아롱이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를 향해 ‘이 사람들은 부수는 것만 생각하지 실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며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도구로 쓰는 것은 기만이다’라고 비판하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내년 선거가 가능할 것인가’
 
  ― 여러 가지로 답답한 일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희망이 될 만한 얘기를 하나 해주십시오.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게 안 보이네요. 금년 초부터 나는 ‘내년 선거가 가능할 것인가란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는 얘기를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제도적인 노멀 프로세스(normal process)에 의한 선거가 될 수 있을지….”
 
  ― 선거는 자기들 입맛대로 선거법 개정해서 치르지 않겠습니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게 다 실험이 된 거고, 정치 안정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게 드러났어요. 결국 개헌을 하려고 그러는 건데, 개헌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 끝나는 거죠.
 
  “이길 방법이라고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우리가 미국·일본과 결착이 되어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그와는 정반대이니….”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지금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가’ 하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언론이 이를 위한 노력을 함께 해줘야 합니다.”
 
 
  ‘문명의 선’
 
  ‘그래도 한마디 희망이 될 만한 얘기를 해달라’는 청(請)에 그렇게 답하는 노재봉 전 총리에게서 평생 감상이나 막연한 낙관을 거부하고 냉철하게 정치현상을 분석해온 학자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지를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 어린 답을 얻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 전 총리가 얼마 전 발표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지금 나라의 형편을 정책적 시각에서만 보면 분명히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라는 것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하면서 그 존재를 해체해가는 위험한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혁명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없어진다. 한국 국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연설 한 구절로 마감한다.
 
  “여기 이 반도에 세계를 돌고 시간을 통해 내려오는 ‘문명의 선’(line of civilization)이 그려졌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전쟁, 품위와 타락, 법과 폭정, 희망과 절망의 경계선입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곳에서 수없이 그어진 선이며, 그 선을 지켜내는 것은 자유 국가들이 언제나 해야만 했던 선택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문명의 선’을 지켜내는 자유민(自由民)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통일’이라는 미명(美名)하에 ‘망국노(亡國奴)’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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