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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유선주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 ‘문빠’였던 내가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고발한 이유”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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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 가시면 국장님 사건 봐드릴게요”… 뿌리 깊은 유착과 ‘대기업 봐주기’
⊙ 관행 개선하려 했지만 번번이 묵살… 김상조, “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내부고발로 실태 공론화하자 돌아온 건 ‘갑질신고’와 ‘직무정지’
⊙ 공직자는 비리 신고하는 게 의무, 안 하면 직무유기 “내 할 도리 한 것”
⊙ 적법절차·투명성 강조하던 文 지지했지만… “김상조 모함하려는 이상한 여자” 취급
사진=조현호
  돌이켜보면, 그리 간절한 적이 있었나 싶다. 때는 제19대 대선을 하루 앞둔, 2017년 어버이날. 부모님을 모시고 간만의 저녁이었다. 분위기 좋은 중국집. 딸이 입을 떼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살짝 경직됐다.
 
  “엄마, 아버지. 이번엔 꼭 문재인 찍으셔야 합니다.” 봉투도 건넸다. 자그마치 100만원씩 들어 있었다. “딸이 공무원 생활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에요. 엄마, 아버지의 딸을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발요.” 절규에 가까웠다.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다 똑같다던 두 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층(浮動層)의 표까지 그러모으기 위해 그만큼 공을 들인 거다. 2년 후.
 
  “지금이요? 엄마, 아빠. 제가 죄송해요! 제 잘못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그러고 있죠.”
 
  유선주(柳仙珠·52)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급)의 자조(自嘲) 섞인 회상이다.
 
  유 국장은 판사 출신이다. 연세대와 동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창원지방법원 판사로 임용 후 대전지방법원, 청주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을 거쳤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을 끝으로 퇴사하고, 2014년 9월 공정위 심판관리관 개방직으로 임용됐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6월 부임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급 인사로, 정권의 정책 기조를 상징하는 인선이었다. 말마따나 ‘문재인에게 표를 긁어줬던’ 유 국장이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오래가진 않았다. 미세한 잡음이 일더니, 결국 고름이 터졌다. 2018년 10월 10일, 자신이 그토록 기대했던 김상조 위원장으로부터 직무정지 통보를 받은 것.
 
  다음 달인 11월 7일, 유 국장은 “직무배제는 헌법상 권리 침해”라며 김 위원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다. 중앙 부처 현직 간부가 기관장을 상대로 헌소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5개월의 격리처분. 유 국장을 만난 3월 1일, 그는 붉은 색감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뭐랄까. 조직과 정권과 다툼 중인 사람 같지 않았다. 특유의 초췌함 있잖나. 그보단 밝고 유쾌했다. 무겁고 어두운 상황을 웃음으로 표현해내는 여유가 있었다. 천성이다. 그는 “딱딱한 지식을 코믹하게 전달하는 ‘세상의 배꼽 달리’처럼 이 위기도 재미있게 헤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 옷을 예전 공정위 간부회의 때 입은 적이 있어요. 정확히 ‘빨갱이’는 아니었지만, 그쪽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더라고요. 빨강은 태양이고, 사랑이고, 생명인 피고, 장미꽃인데 말이에요. 그 좋은 걸 다 제쳐두고 왜 하필….(웃음)”
 
  ―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시절 재벌 저격수, 재벌 저승사자로 불렸죠. 그런 만큼 기대가 컸나 봅니다.
 
  “낚인 거죠. ‘평생을 재벌개혁으로 칼날 위에 살아’ ‘너덜너덜 낡은 가방 화제’ ‘청렴한 원칙주의자’ 이런 말에. 전부 가짜뉴스예요. 누군지도 모르고 살다가, 후보로 왔을 때 그를 처음 알게 됐어요. 기사들을 보고 저 사람이다 싶었죠. 마지막 한 방은, 한 인터뷰 기사 때문이에요. ‘불투명한 공정위의 합의 과정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더라고요. 그걸 쓴 게 《한겨레》 기자고, 거기 꽂힌 게 나죠. 그간 공직자한테 너무 바랐던 모습이거든요. 유튜브에 보면 김상조 인사청문회 영상이 있어요. 그거 한번 찾아보세요. 그 뒤에 끝까지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어떤 여자가 나옵니다. 그게 바로 나예요. 《한겨레》 기사에 낚인 채 속으로 ‘저 사람이 반드시 돼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갈등의 시작
 
2017년 6월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당시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들고 온 낡은 가방. 사진=조선DB
  김 위원장과의 마찰은 머지않아 빚어졌다. 일명 ‘성신양회 과징금 부당 감액 사건’을 둘러싸고다. 공정위는 2016년 3월 성신양회를 비롯한 7개 시멘트 제조회사의 담합 사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같은 해 5월, 성신양회를 변호한 김앤장의 A 변호사가 과징금을 감경해달라며 이의신청을 냈다. 그 근거로 성신양회가 3년간 적자라는 재무자료를 제출했다. 결국 A 변호사는 437억원의 과징금 중 218억원을 감경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유 국장은 해당 재무제표가 허위라는 걸 확인하고 감면을 취소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A 변호사는 공정위에서 5년간 일한, 이른바 ‘전관’이었다는 걸 알았다. 또한 공정위 직원 B씨가 이 변호사에게 “적자인데 왜 감경 주장을 안 하느냐”며 새로운 신청서 제출을 도와준 사실도 드러났다. 한편 김 위원장은 감경 당시 이를 적발하지 못한 것에 주목했다. 담당 실무자와 담당 과장, 그리고 유 국장에게 “성실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관리감독 책임을 묻겠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다.
 
  유 국장은 “그 건은 실무자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자료 등록도 누락한 채 공정위 퇴직자와 사적으로 연락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면서 “후에 적법한 회수 절차를 진행했고, 오히려 국고금 회수를 성과 상향 근거로 인정받았다. 훈장을 받을 줄 알았더니 되레 주의 처분만 받았다”고 했다.
 
  주의 처분을 받고 유 국장은 소청심사를 냈다. 각하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재차 ‘미운털’이 박힌 셈이다.
 
  일은 연이어 또 터졌다. 일명 ‘유한킴벌리 담합 과징금 면제사건’인데, 여기서도 문제점을 발견한 것. 유한킴벌리 등의 담합은 2010~13년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유한킴벌리는 2014년에 이를 자진신고했다. 결국 유한킴벌리는 2018년 2월, ‘리니언시(Leniency·담합 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 혜택으로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이에 대해 유 국장은 “공정위가 본사의 강압 여부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리니언시를 적용했고, 이로 인해 담합 행위 공소시효 5년이 지나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졌다”면서 “문제점 발견 당시 이를 김 위원장과 부위원장에게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 및 간부 10명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기업 담합을 알면서도 늑장 조사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것.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2월 14일,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한 상태다.
 
  ― 공정위가 담합사건을 봐주면서 얻는 이득이 뭡니까.
 
  “사익 추구를 하는 거죠. (공정위에서 일하다 나간) 퇴직자 집단이 있습니다. 이 집단이 크게 학계와 대형로펌에 진출해 있고, 작게는 각 분파에 뻗어 있어요. 경제바다의 등대 역할을 해야 하는 공정위가 이 구조에서 어떻게 사익 추구를 하느냐면, 공정위보다 더 돈이 많은 대기업의 사익 추구를 잡는 걸로 해요. 적발만 해놓고, 조사에 늦게 들어가고, 늦게 처리하면서 살짝 봐주는 거죠. 수익이 계속 유지돼야 하니까 검찰에 안 주잖아요.”
 
 
  뿌리 깊은 유착관계와 대기업 봐주기
 
  공정위의 재취업 비리. 유 국장은 이미 국감 등을 통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는 대기업이나 대형로펌에 재취업한 퇴직자들이 공정위 상임위원 및 직원들과 만나 일명 로비 행위를 하면서 대형로펌, 대기업 관계자와의 만남을 알선하는 면담 관행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이를 공식적인 의견 청취 절차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8년 6월에는 검찰이 공정위 재취업 비리를 대대적으로 조사하기도 했다. 유 국장은 당시 조사에도 협조했다. 그는 “재벌총수 봐주기 건으로 진술할 당시, 검찰이 조직적 재취업 비리가 있다며 운영지원과 보고서를 알려주더라”면서 “공무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재취업 비리 의혹 몇 가지 사례를 ‘A라는 직원이 B사로 갔는데, 그때 B사에 이런 최초 조사가 일어났다’와 같이 진술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최근에 알고 보니 위 진술조서가 재취업 비리 재판에서 증거자료로 쓰였더라. 자연히 공정위에 소문이 났고 그즈음부터 직원들 눈빛이 이상해졌던 것 같다”면서 “공정위가 잘못한 거고, 덮친 건 검찰인데 법에 따라 진실을 말한 나를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그러니까 공정위 퇴직자가 로펌과 대기업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특유의 ‘대기업 봐주기’ 관행이 생긴 거다?
 
  그가 가방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수십 개의 파일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다양한 대기업 사례였다.
 
  “작년부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싶었어요. 보세요. A기업. 2013년 자진신고가 있었는데, 5년이 지난 시점까지 왜 조사를 안 할까? B기업, C기업… 쭉 있죠? 여기 적어놓은 것만 수십 개예요. 담합사실을 알고도 신고일로부터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간만 연장해놓고 처분을 안 하기도 해요. 이러다가 처분시효, 공소시효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거죠.”
 
  ― 담합으로 법원에 가는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패소하는 경우도 봤습니다만.
 
  “예를 들면 이래요. 회의에서 가격 담합을 했다는 사건이 있어요. 증거가 되려면 가격 결정했다는 회의록, 참여자 진술서 등이 필요하거든요. 근데 조사를 늦게 하다 보니 처분시효가 지나버리는 경우가 있게 되죠. 그러면 무리하게 뒤의 날짜 회의를 증거에 집어넣어서 행위시(行爲時)를 미룹니다. 이런 사건은 보통 공정위 심판정에 김앤장 변호사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처분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공정위는 처분시효 안 지났다면서 법원으로 보내요. 법원에서는 증거재판을 하니까 처분시효 지났다고 패소를 하겠죠? 그러면 공정위는 판사들이 담합 사건에 무식해서 패소했다 이렇게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겁니다.”
 
  ― 제동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비상임위원도 있지 않습니까.
 
  “상임위원들도 직원들이 검토해주는 합의 참고자료를 보고, 사건 파악하기 바쁘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니 비상임위원들에게 기대하는 덴 한계가 있겠죠. 담합사건 대부분은 소회의에서 처리합니다. 2인의 상임위원과 1인의 비상임위원 3인이 결정해요.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보고를 받는 내부자 상임위원들 의견이 결정력을 갖게 됩니다. 비상임위원 중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소신 발언을 하셨던 분은 있었어요.”
 
  ― 내부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2015년 ‘회의록 지침’을 만드셨죠. 지난해 10월 국감에서는 이 지침 중 ‘녹음 의무’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었고요.
 
  “심판관리관실 직원들과 토론해서 새로 지침 만들고 녹음 의무까지 규정했어요. 그런데 녹음은 상임위원 이상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가능해요. 반발이 거세서 결국 안 됐죠. 김 위원장이 오면, 2년 이상 시행된 회의록 지침을 통해 녹음까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녹음을 하지 않아 계속 미궁에 빠진 사건들이 있었거든요. 기록을 세세히 남겨놓으면 대형로펌·대기업 재취업자들과 유착관계도 끊을 수 있고요.”
 
  ― 국감에서 김 위원장은 녹음할 경우 합의내용이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요.
 
  “회의록 지침 개정안에 합의사항(기록)을 외부에 유출하면 수사 의뢰한다는 내용도 넣었습니다. 유출될까 봐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건, 어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전 국민이 의혹을 가지는 경우 공정위 기록을 열어보도록 한다는 것을 국회 의결로 정하는 등 합리적인 조건도 내걸었고요. 만약 기록을 열었는데, 문제가 있으면 그게 10년 후라 할지라도 책임을 져야겠죠. 그렇게 되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일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외부의 영향도 안 받고 소신대로요. 국회, 언론, 감사원에 안 시달리는, 그야말로 독립적 위원회가 되는 거죠. 그런데 김 위원장과 공정위 주류 라인이 이걸 반대하는 거예요. 책임질 일 만들기 싫다는 걸로 해석됩니다.”
 
  ― 법정 다툼까지 번지기 전, 김 위원장에게 직언(直言)한 적 있습니까.
 
  “왜 안 했겠어요. 예를 들어 ‘사건 재조사 빨리 제대로 하셔야 한다’고 하면 말 듣지도 않고 잘라요. 너무 바빠서 공감이나 경청을 할 틈이 없었나 보죠. ‘나도 안다, 다 안다’ 이런 식으로요. 법 조항을 들어서 설명하면 그래요. ‘법은 입 다물라. 법으로만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요. 정확히 이렇게 말했어요. 완전 학생 취급당하는 느낌이었죠. 교수님이 학생 가르치듯이,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단지 변화하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라고요. 이 말을 국감장에서도 했었던가요? 얼마나 충격적이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김 위원장에게 ‘제발 이런 불공정한 면을 개선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라고 저 혼자 애원한 꼴이에요.”
 
  ― 말씀대로라면, 공정위는 일을 안 합니까. H기업 부당지원, D기업 중소기업 기술 탈취 등 굵직한 적발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봐주기’ 하는 기업이 있는 한편, 걸린 죄를 엄단하는 사례도 물론 있죠. 다만 김 위원장 부임 후 사건 처리 기준이 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이 변하면 걸린 죄가 안 걸린 죄로 처리되는 건지…. 차근차근 기준을 잡아가면 좋을 텐데…. 정책의 유연성과 규제 기준의 명확성, 일관성은 다른 차원이잖아요. 그런데 이 두 가지 기준이 공권력의 자의로 왔다 갔다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갑질은 어불성설, 오히려 내가 당했다
 
  전직 판사여서가 아니다. 법은 공동체의 약속이고, 약속을 지키는 건 신뢰의 기본이라 생각했다. 그게 옳다고 여겼다. 돌아온 건 “너만 청렴하냐, 판사 출신이라 뻣뻣하다”는 비아냥이었다. 차가운 직원들의 시선. 이는 곧 물리적으로도 돌아왔다. 지난해 국감 전후로 직원 20여 명이 “유 국장이 갑질을 했다”면서 서명과 함께 신고를 한 것. 김 위원장은 유 국장 직무정지의 이유로 ‘갑질’을 들었다. 그러면서 2018년 7월5일자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 대책〉을 근거자료로 제출했다. 한편 유 국장은 “직무정지는 김 위원장의 보복 조치이며, ‘갑질’은 이를 위한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그가 제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 대책〉은 근거자료가 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지난 2월 18일 국무조정실에서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나왔어요. 이게 갑질에 대한 기준이에요. 김 위원장이 제출한 문서는 ‘이러이러한 대책을 조만간 수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거든요. 2월 18일 수립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외려 제가 김 위원장과 사무처장 등 공정위 조직으로부터 갑질을 당한 겁니다. 이에 대해 항목별로 정리한 의견서를 2월 22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상태예요.”
 
  ― 갑질 신고 내용에 ‘결재를 잘 안 해준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찰한테 보낼 고발 결정문인데, 행위, 증거와 결정문 내용이 앞뒤가 안 맞아요. 재검토한 다음 보고하라고 했더니 막 대들면서 확답 없이 나가더라고요. 작년 8~9월의 일이에요. 그땐 사무관도 보란 듯이 나오던 때예요. 수정본이 와야 하는데, 안 와요. 그 건도 5년이 다 돼가던 거라서 빨리 처리했어야 해요. 전화했어요. 일주일 휴가 갔대요. 그땐 무서운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뭐지? 대체 뭐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사무관이 누르라는 대로 결재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죠.”
 
  ― 은연중에라도 갑질은 전혀 안 했다는 겁니까.
 
  “심판관리관실 구성원 대부분이 작년 4월 이후 바뀌었어요. 4월부터 신규 과장을 통해 전결권 박탈 작업과 사직 압박이 시작됐고요. 그런 처지로 전락한 계약직 외부인이, 검찰 수사로 ‘멘붕’ 상태에 빠진 부이사관 과장 포함 직원들 20여 명에게서 단체로 신고당할 만큼 갑질을 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건가요. 그것도 추석이 지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수십 명의 직원이 일제히 신고하는 게요. 직원들에게 ‘재취업하기 위해서 공무원 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걸 뛰어넘는 큰 보람을 찾으라’는 말은 한 적 있어요. 그게 갑질이었나 봅니다. 법치행정이니, 적법절차니, 공무원의 진실의무, 국민의 알권리 등등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피곤하고 짜증 났던 거겠죠.”
 
 
  “적당히 있다 로펌 갈 거 아니냐”
 
인사청문회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기업을 상대로 시민운동을 해온 20년 동안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했다. 뒤쪽으로 유선주 국장이 경청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 신고받고 나서도 한동안 직원들을 대면했죠. 어땠나요.
 
  “2년 차 어린 사무관들은 눈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져서 숨었어요. 전 그냥 ‘아이고, 이해해요~’라고 했고요. 나이 많은 사무관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기에 ‘사무관님은 서명 안 하셨어요?’라고 묻기도 했고요. 그럼 ‘거참, 국장님 왜 그러세요~’ 이러죠. 우리랑 잘 지냈는데, 윗선에 뭘 밉보였냐고 묻는 직원도 있었고요. 드물지만, 낄낄대며 지나가는 직원도 있긴 했어요. 진짜 앙심을 품은 건데, 속기사들이에요. 제가 오고 나서 현황 파악을 해보니까 속기록이 몇 년 치가 없더라고요. 감사원 감사에 대비해서 안 한 거 작성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저항을 엄청 했죠. 동시에 과장이 감싸고돌면서 ‘어차피 적당히 있다가 로펌 갈 거 아니냐. 우리 애들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라’고 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 로펌 가겠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까.
 
  “으레 가겠거니, 한 거죠. 이제껏 그래 왔으니까요. 그 말 많이 들었어요. 공정위에서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렸을 때도, 의아해하면서 ‘국장님 나중에 로펌 가실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었죠. 이쯤 되니까, ‘아, 내가 로펌으로 가줘야 유착고리가 끊기지 않으니까 그러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자꾸 안 간다고 하고, 여기 영원히 남아서 ‘개선’을 외치며 자기들 피곤하게 만들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책임감이 없다, 갑질을 한다고 서명한 거죠. 여기서 책임감은? 자기네들 잘못을 은폐해주는 책임이죠. 오히려 그런 얘기가 하도 들려오니까 대형로펌과의 유착관계를 탐구하게 된 거예요. 껍질을 살짝 들춰보니까 ‘아, 이 유착고리를 어디서부터 개선해야 하나’ 싶더군요.”
 
  ― 한결같이 옆에 있어준 직원은 없었습니까.
 
  “그분도 지금 거의 왕따 비슷하게 됐어요. 외려 제가 힘내시라고 문자 자주 보내고 있어요. 또 목소리는 안 내지만, 조용히 응원해주고 있는 여러 명이 있어요. 저를 통한 조직의 변화를 꿈꾸고 있어요.”
 
  ― 정리하자면, 결국 김 위원장은 적법절차와 원리원칙을 지키는 직원이 눈에 거슬린 거다?
 
  “그저 조용히 있다 가고 싶었는데, 제가 적법절차, 투명, 그리고 책임, 이걸 계속 주창하니까요. 하라는 대로 입 다물고 방패막이 역할만 해야 했는데 진정한 개혁, 진정한 사과 운운하니 시건방지다 생각했겠죠. 개혁인지 개혁 ‘홍보’인지 열심히 하시려는 분 입장에서는요. 더구나 나가라고 눈치 줬는데도 안 나가고 공익신고를 하질 않나, 눈엣가시같이 거슬렸던 거죠.”
 
  ― 김 위원장은 조용히 있다 가려 했던 사람이다? 그 근거는 뭡니까.
 
  “김 위원장이 초반에 ‘잘못 처리한 A 사건을 신속하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제 보고를 듣더니, ‘안심하시라, 우린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니까 어공으로 일하다가 나갑시다’라는 취지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죠. 전 속으로 ‘나는 늘 공무원이었는데…’ 했고요. 나중에 일련의 말들과 정황을 정리해봤더니, 과거 적폐청산은 없을 테니까 안심하고, 기존 직원들 데리고 일하다가 가자는 얘기였습니다. 그걸 몰랐던 저는 주인 의식이 넘친 거죠. 자기 집인 양 가구 배치를 바꾸려 했으니, 얼마나 똥오줌 못 가린다고 생각했을까요.”
 
 
  공직자는 비리 신고할 의무 있어
 
2018년 6월 20일 오후 검찰이 공정위 퇴직자 비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물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사진=조선DB
  ― 혹시 이런 생각한 적 없나요. 적당히 타협하면 편했을 텐데, 하는. 그러니까 융통성을 약간 부리면 평탄했을 텐데 굳이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서요.
 
  “저도 융통성을 발휘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타협도 가능한 한도가 있는 겁니다. 중대한 공익인데 위법이라면 절대 타협을 해서는 안 되죠. 그게 공무원이 존재하는 이유 아닐까요. 옳다고 생각한 방법으로 살고 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일방적으로 핍박을 받은 거예요. 정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어요. 잘못된 거 고치자고 하는 게 제 일이잖아요.
 
  공정위 간부 3명이 대기업 임원한테 가전제품을 선물(?)로 받고, 적발돼서 감사를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모두 떠안고 수수금액을 낮게 계산해서 조직적으로 징계 수위를 낮춰준 적이 있습니다. 소청심사청구까지 해서 징계를 더 감경받았고요. 작년 국정감사에서 세게 지적받았고, 검찰에서 수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어요. 이들은 이런 식으로 조직력을 동원해서 서로의 잘못을 축소·은폐합니다.
 
  한편 성신양회 과징금 감경사건 때는 어땠나요. 정반대로 저에게 불이익을 떠안겼죠. 조직이익을 지켜달라거나 직원을 보호해달라거나, 한마디 인간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거나 부탁한 적도 없습니다. 대신 일방적으로 꿇고 방패막이가 되라고 한 거예요.
 
  2017년, 퀄컴에 사상 최고 금액인 1조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퀄컴이 이에 불복해 법정다툼을 하고 있잖아요. 제 진두지휘로 집행정지 사건에서 승소했죠. 직원 몇 명이 뛸 듯이 좋아하며 찾아와서 ‘국장님이 지휘하신 오케스트라의 작품입니다! 국장님에 대한 소문의 방향이 바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소문의 방향이 바뀐다? 그러면서 한 직원이 그럽디다. ‘나중에 로펌 가시게 되면 국장님 사건 봐드리겠습니다.’
 
  타협이요? 여기서 타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이건 타협이 아니라 범죄죠. 전 범죄행위는 하지 않아요. 판사 출신이라서? 아니요. 그걸 하는 순간, 책임이 따르잖아요. 그런 식의 책임을 져야 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비리를 바로 신고하는 게 의무예요. 안 하면 직무유기입니다.”
 
  ― 이 다툼으로 얻고자 하는 게 뭡니까. 공정위 입장에서는 대체 원하는 게 뭐냐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다툼을 하는 게 아니에요. 공권력의 일방적인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진실을 밝혀야죠. 공무원의 진실 의무를 실천하고 살았는데요. 웃기죠. 그냥 밝혀야 하니까 밝히려는 거예요. 정당한 ‘공익신고 마패’를 든 거죠.
 
  저를 계기로 제발 이런 공무원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렇게 당하는 공무원 사례도 없어졌으면 해요. 공무원도 언젠가 민원인이 돼요. 마치 영원한 공무원일 것처럼, 나이 어린 사무관이 ‘민원인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자살한 아들의 억울함을 풀려고 쫓아오는 아버지 민원인을 마주치면 ‘악성 민원인 또 떴다’면서 키득거리고 피하는 거, 그거 아니잖아요. 민원인인 우리 모두가 편한 사회를 만들자는 거예요.”
 
 
  개혁 꿈꾸며 촛불 들었지만…
 
  ― 그전에는 어땠습니까. 노대래·정재찬 위원장을 뒀었죠.
 
  “노대래 위원장은 딱 3개월이었죠. 그분이 외부에서 법률전문가가 왔으면 했고 제가 들어온 거예요. 그런 만큼 외풍을 막아주려 했어요. 저를 견제하는 과장이 있으면 불러서 밥도 먹고요. 무슨 얘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따르라고 했겠죠.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아부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밤 12시에 술 먹다 전화해서 ‘국장님! 사랑해요!’ 그러고요. 알고 보니 얼마 뒤 과장 승진을 앞둔 직원이었죠. 정재찬 위원장은 말 잘 듣는, 오리지널 모범 공무원이었고요. 결정권을 잘 행사하지 않는.”
 
  ― 첫 3개월이 전성기였겠네요.
 
  “노 위원장이 좀 (과징금 등을) 세게 때리는 분이었어요. 저도 이유 없이 감경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고요. 개선하자고 하는 건 개선됐고요. 마치 제가 결정권을 가진 사람처럼 비쳤겠죠. 신혼처럼 행복한 3개월이었죠.(웃음) 정말 그랬다니까, 하하. 이상적이었어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비리를 제보해주고 업무를 개선하자고 건의해줬으니까요. 메신저로 ‘국장님, 로펌에 가 있는 퇴직자가요…’ 이러면서요.”
 
  ― 자정(自淨)작용이 되던 때네요.
 
  “그렇죠. 제보를 받는다고 해서 바로 ‘그래?’ 하면서 달려든 것도 아니고, 항상 합의 과정을 거쳤어요. 근거 없이 의심하고 독단적으로 결론 내고 지시하는 성격이 못 돼요. 늘 증거를 통해 사실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종합 판단을 하면서 살아왔잖아요. 그러니까 혼자서 잘난 체하며 일을 처리한 적이 없습니다. 법을 만들 때도 모든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듯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항상 회의를 거치고 직원들 의견을 들었어요. 위아래 설득 절차는 당연하고요. 물론 실행 단계에서는 밀어붙이기도 했죠. 그래서 결단력과 추진력이 좋다는 평도 들었어요. 과정만 수차례 거치고 실행을 안 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그땐 제 생각이지만, 직원들도 신나 보였어요.”
 
  ― 변곡점(變曲點)은 언제 왔습니까.
 
  “스스로 열정, 정의는 있는데 세상 물정은 모르는 사람, 그걸 느꼈을 때요. 대기업 등과의 관계라든지, 중요 사건 처리에서 일반 국민보다 조직이익을 중시하면서 눈감는 모습을 보고 나서죠. ‘아, 20~30년 전 법원에서 본 듯한 모습이구나’ 하고 느꼈고, 군데군데 손을 봤죠. 암 환자 수술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덮어라’ 할 정도까지 갔어요. 내 힘으론 안 되겠구나, ‘개혁’이 필요하다 싶었죠. 그래서 촛불을 든 겁니다. 새 정권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제 삶이 뒤집힐 줄도 모르고….
 
  작년 5월에 저와 사무처장, 김 위원장 셋이서 법원을 예방(禮訪)한 적이 있어요. 김 위원장이 법원행정처장한테 그러더군요. ‘경제분석 능력이 있는 공정위가 ‘1심 경제 법원’이다. 공정위만큼 경제분석 능력을 키우셔서 법원도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대비하라’고. 훈계조로요. 옆에서 사무처장은 끄덕거리고 있고요. 예방 한 달 전 사무처장이 저를 호출하더니 ‘여기 1심 법원 기능하는 곳 아니다. 모든 공무원이 행복해서 출근하는 줄 아느냐. 전결권을 과장들에게 줄 거니까 받아들여라. 내가 상관이니까 내 지시 따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 두 멘트를 녹음해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희대의 위선 멘트가 됐겠죠.”
 
 
  사법부 15년의 기억
 
  그의 판사 시절이 궁금해졌다. 그때도 이런 기질은 있었다. 중대 사건 앞에서 대충하는 법이나 타협이 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다. 한 중소기업에서 경영권을 두고 ‘형제의 난’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원고인 동생이 승소할 경우, 형은 거리에 나앉는 신세였다. 몇십 년간, 수십 건의 소송으로 이어진 싸움이었다. 우선 이를 일자별로 모두 나열해 정리했다. 당사자들 상황을 이해하고, 이입(移入)하기 위해 둘의 얼굴까지 그려가며 집중했다.
 
  “그렇게 나온 판결문이 수십 건의 기존 판결을 뒤집었어요. 비로소 진실을 밝힌 거죠.”
 
  해당 판결문은 그 후로 후배 판사들의 재심사건에서 족보(族譜)처럼 쓰인단다. 또 있다. 예비 판사 시절이다.
 
  “창원에 있을 때예요. 두산중공업에서 300명인가 해고무효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데서 참 고생 많았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 근로자들 승소판결을 했는데, 그 이유는 해고 사유와 절차를 지키지 않고 위법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처음 법원에 발을 디디고, 그 사건을 맡으면서 법과 현실과 형평의 지점이 어딘지를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적법절차의 중요성과 소신도 배웠고요.”
 
  ― 천안지원에 있으면서 무슨 계기로 공정위로 넘어오게 된 겁니까.
 
  “대전고등법원에서 군인 장성 2명이 고가의 갈비세트를 받아오는 등 비위 행위로 파면된 두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이었죠. 부장판사가 있고, 좌배석, 제가 우배석이었어요. 각각 1건씩 배당됐어요. 소장(訴狀)에는 일종의 미풍양속이고 관행이다, 근속기간을 참작해서 봐달라고 돼 있었지만, 저는 공무원 뇌물은 엄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뇌물을 받는 게 미풍양속이라니요. 그런데 2대 1로 의견이 나뉘었어요. 대치상태로 계속 갈 수 없으니까, 결국 제가 ‘봐주자’는 판결로 흡수된 거예요. 그때 법원의 합의 구조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로부터 얼마 뒤, 군인의 담당 변호사가 연락을 해왔어요. 공정위 심판관리관으로 가보는 거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법원 합의 절차에 약간의 불합리성을 느껴 헌법재판소 파견을 생각하던 차에, 공정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공정위’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봐주자’는 판결이 났으니, 그 변호사가 결과만 보고 저를 유착에 능한 사람으로 보고 제안한 거였어요. 실제로 공정위에 온 직후 그 변호사와 함께 다니던 공정위 퇴직자가 정보교환을 원했고, 사건 청탁까지 했습니다. 제가 한마디로 일축했더니, 그 후론 연락을 딱 끊더라고요.”
 
 
  문재인을 지지했던 이유
 
유선주 국장이 2016년 11월, 과징금 산정의 전 단계에 걸쳐 조정과정 투명화와, 관련 기준을 명확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과징금 고시를 개선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 2014년, 심판관리관 부임 당시 인사동정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사법부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위원회 심결 절차의 종국적 해결 능력을 강화하고 심결 절차의 절차적 적법성을 높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더라고요.
 
  “그대로 했다고 자부해요. 저를 대변하는 키워드가 ‘절차’ ‘투명성’ ‘약자’예요. 약자 편에 서다 보니까,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적이 많아서 자연히 그쪽으로 끌렸죠. 정치에 관심 없었어요, 알지도 못했고. 야당, 즉 약자일 때 민주당이 항상 그랬잖아요. ‘여당은 부패했다. 뇌물 받고, 유착했다’. 부패, 뇌물, 유착. 이건 안 좋은 거잖아요. 와! 민주당이 정의롭구나, 했던 거예요. 정작 투표도 잘 안 했어요.”
 
  ― 그 정도면 거의 정치적 무관심 수준인데요.
 
  “정말 반성하는 부분이에요. 생계, 그야말로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사람도 아니고, 정말 내 일이 바빠서, 기록 쌓아놓고 그거 본다고 관심을 안 가진 거잖아요. 판사씩이나 돼서 지 할 일만 하고 밥 먹으면서 드라마 얘기나 하다가, 또 일하고…. 제 인생 꾸리느라 바빠서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곱만큼도 몰랐다는 거죠.”
 
  ― 부모님께 간곡히 투표를 부탁하셨잖아요. 그럼 언제부터 관심을 가진 겁니까.
 
  “공정위 가서부터는 홍보정책회의도 들어가고 그러니까 뉴스도 찾아보고 그랬죠. 그전까진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어요. 다만 주변에 ‘문재인 파(派)’들이 많았죠. 대표적으로 제 남편. 촛불 탄핵 후에 사람들이 전부 감동에 빠져 있었잖아요. 마약처럼. 그때 민주당이 유일한 대안이고, 남은 건 문재인을 뽑느냐, 마느냐의 기로였어요.
 
  남편이 매일 친문(親文)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는데, 그게 제 귀에도 조금씩 들어오더라고요. 어느 날 남편이 그래요. ‘당신이 늘 하는 말인 ‘공정, 투명, 책임, 적법절차’를 문재인 또한 강조한다’고요. 자기가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가 실은 이런 부분 때문이라고요. 마음이 조금씩 기울다가, 결정적으로 어떤 기사를 봤는데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문재인은 자기 약속에 강박증에 걸린 사람이다.’ 거기서 딱! 꽂힌 거예요. 이분이구나! 이렇게요. 최근에 그 기사를 다시 찾아봤어요. 문재인의 10대 약속이라면서 ‘권력기관 적폐청산’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왜 공정위 적폐청산은 안 하는 거죠?”
 
  그는 이쯤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 고 싶다고 했다. 새 헌법에는 무엇을 담으려 했던 건지, ‘인간의 존엄성’은 헌법 조문 속 죽은 활자였던 건지.
 
  “사람을 살린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왜 죽여요? 약속 안 지키는 거잖아요. 약속에 강박증 걸렸다면서요. 저를 구명하고자 하는 분이 문 대통령께 가서 제 소식을 알린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김상조를 모함하려는 이상한 여자’라고 했다더군요.”
 
  ― 기사 몇 줄만 읽고 표를 던지는 게 무지한 소시민의 이야기만은 아니었군요.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잘 속으니 위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거고,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하는 불행한 운명이 되는 거고요. 결국 정의를 부르짖던 철학자들이 팽을 당하면서 조금이라도 남긴 유산으로 이렇게나마 발전한 거 아닌가 싶네요.”
 
  ― 남편은 아직 문재인 지지합니까.
 
  “(웃음) 당신 때문에…! 그러면 내가 언제? 그래요. 하하, 발뺌이라니요. 못 빠져나가요. 과거의 말, 행적을 시계열로 다 종합해서 판단하니까요. 어쨌든 결국 남편 때문에… 이건 농담이에요! 말하는 걸 그대로 믿고 뉴스 하나만 보고 판단했으니, 제 책임이죠.”
 
  결혼은 41세에 했다. 만혼(晩婚)이었지만, ‘혼인의 낭만’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결혼한 동료들 앞에서 그런 적 있어요. ‘부부가 함께 요가를 하고, 욕조에 거품 받아서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지내면 정말 행복하겠다’라고요. 동료 주부 판사들은 ‘어휴, 얘 어떡하니, 빨리 결혼시켜야겠다’ 그랬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짝을 만났다. 그는 “세속적 기준에서 ‘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눈에만큼은 보석 같은 남자”라고 했다.
 
  “부부끼리 공경하는 표시로 맞절을 하는 의식이 있어요. 그걸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부부가 얘기든, 기도든, 절이든, 산책이든, 뭐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나이 들길 꿈꾸고요. 같이 안 할 거면 결혼은 왜 했나? 이런 주의예요. 이왕이면 더 노력하고, 사랑하면서 살고 싶고요.”
 
  ― 학창시절엔 어땠나요. 친한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형용사가 뭐예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 같은, 마음 여린, 철학자, 예술가 이런 거요.”
 
  ―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유선주란 사람도 잘 아는 측근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은 공정위에 간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나요.
 
  “남편, 친구, 법원 동료…. 다 반대했죠. 남편은 마지막까지 ‘굳이 안 가도 된다’고 완곡하게 얘기했고요. 좀 세게는 ‘너 거기 가면 하루 만에 나온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이 중 가장 격하게 반대한 건 법원 동료였어요. 힘들 때 같이 삼천 배도 갔던, 친한 동료죠. 결정될 즈음 먼저 알려주려고 법원 앞 식당에서 만났어요. 말 꺼내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식당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이었죠. 너무 놀라서 쫓아나갔죠.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도 없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거길 왜 가냐. 그 범죄 조직에 왜 가냐. 아는 사람이 거길 갔다가 2년도 못 채우고 지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전전긍긍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야 기사를 찾아봤더니 모 위원장, 모 국장들이 뇌물 받고, 재판 받고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휴, 순진한 저는 어떡한 줄 아세요? 출근하기 전, 운영지원과에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저기, 사람들이 범죄조직이라고 그러던데…’ 했더니 ‘와보시면 알겠지만, 이곳은 맑고 깨끗한 곳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렇죠? 면접 보러 갔을 때 사람들 보니까 다들 피부도 깨끗하시고, 좋은 사람들인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났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 만류 속에서도 공정위를 선택했던 건 그만큼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겠죠. 그게 뭐였습니까.
 
  “내 몫을 할 수 있겠다고 여겼어요. 공정위에 들어간 직후 업무계획서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준사법기관으로 가는 백년대계에 사법부에서의 내 전문성과 경험을 다 기여하겠다’고 썼어요.”
 
 
  “나는 공익신고자, 보호받아야 마땅”
 
지난해 국감 현장. 김상조 위원장과 뒤로 유선주 국장(왼쪽 끝). 사진=조선DB
  그는 현재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부패방지법, 두 가지 법 모두에 얽혀 있다. 유 국장은 “이 사달이 나고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부패방지법을 두루 살펴보니, 공직자의 경우 그 둘 사이 다리를 교묘하게 끊어놨더라”면서 “공직자가 공익신고자로 나서기 어려운 제도의 빈틈에 탄식이 나온다”고 했다. 이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월 28일 유 국장을 공익신고자로 인정하고 공익신고자로서의 보호 조치와 불이익 조치 등의 금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 2012년 참여연대에서 ‘공익제보자 탄압 그만하라’고 목소리 높인 적이 있습니다. 연락 안 왔습니까.
 
  “지금까지는 경실련 한 군데밖에 없어요. 호루라기재단에서는 전화번호만 물어보더니, 그걸로 그만이었고요. 들어보니까, ‘그 사건은 너무 복잡하고 다른 사례와 달라서 어쩌고’ 그러더라고요. ‘살아 있는 권력에 대드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한 곳도 있고요.”
 
  ― 요즘 정서적 안식처가 있다면요.
 
  “8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이에요. 성격도, 직업도, 정치색도, 나이도, 출신학교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에요. 정치 얘기, 경제 얘기, 책 얘기를 하고, 어떤 날은 책 덮어놓고 놀기도 하고요. 생각이 다르지만 결코 싸우지 않죠.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이곳이 좋아요. 여기서 회원들과 함께 경청질문과 상생토론의 ‘하브루타 한국문화 만들기’도 공부할 계획이에요.”
 
  ― 이번 경험으로 얻은 씁쓸한 교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전쟁터라는 걸 모르고 살았구나. 저는 ‘사람은 모두 훌륭하다’라는 전제를 깔고 살아요. 모두 각자의 고귀함이 있고,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행복한 것이고,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아니었구나. 나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했구나…. 여기서 더 부대끼면 ‘나만 이상한 사람, 여기서 살 수 없는 사람’으로 갈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면 애써 ‘아냐, 이런 사람도 필요해’라고 바꿔요. 저는 안 죽을 거예요. 절대로. 판사였던 사람이 공익신고‘법’을 믿고 뛰어들었는데, 죽어봐요. 다른 사람은 뛰어들 엄두도 못 낼 것 아니에요. 공익신고법은 살인법으로 남겠죠. 그래서 절대 안 죽을 거예요. 음…. 그럴 일은 결코 없겠지만, 혹시라도 주검으로 발견된다면 살해당한 것이니까 꼭 살인자를 찾아주세요! 미리 유언을 남깁니다. 농담인 거 아시죠, 하하하.”
 
  ― 짐짓 웃고 있지만, 사실 힘드시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는, 글쎄요. 여기에 집중하니까 힘든 걸 잘 모르겠는데, 볼이 패고 피부가 버석버석 말라가고 몸이 아파오는 걸 보면 꽤 힘든가 봅니다.(웃음)”
 
  ― 긴 싸움이 될 것 같은데….
 
  “그래요? 전 금방 끝날 것 같아요. 5G 시대잖아요.”
 
  ― 긍정적이시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뜨잖아요. 매일이 새로운 날이잖아요. 그럼 저는 ‘오늘 또 신나게 살아야지’ 합니다. 비록 그날 울부짖더라도, 다음 날이면 또 희망이 생겨요.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게 제 삶의 빛이 되는 게 너무 즐겁단 말이에요. 근데 그걸 이상하다고 하면 저는 뭐라고 해야 하나요. 서로 상대방을 향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끝이 없겠죠….”
 
  김상조를 모함하는 이상한 여자, 자유한국당과 내통하는 적폐, 외골수, 독불장군, 조직부적응자. 이를 모두 종합해 일명 ‘미친 ×’. 현재까지 들었던 오명(汚名)이다. 이 싸움은 금방 끝날 것이고, ‘재밌게’ 헤쳐나갈 셈이다. 그러나 이 오명을 일일이 벗기는 일은 숙제로 남았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유 국장은 다만, 이런 해명이 형벌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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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대기자    (2019-04-19)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메마른 땅에서 솟아나는 셈물과도 같은 유선주님 때문에 희망을 갖습니다.
옳은 일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는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가져요.
  김배현    (2019-04-15)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0
유국장 님ㆍ글 잘 읽었습니다ㆍ힘 내시고요ㆍ밥 많이 드셔요ㅎㅎ
  정상으로돌려놓자    (2019-04-14)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유선주국장님 응원합니다. 당연히 공직자가 비리신고 더 철저히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당신같은 법조인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힘이 나네요. 끝까지 화이팅하세요!
  Happy    (2019-04-06)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0
감추고 싶은게 너무 많은가보다
우리는 좋은제품 사서 사용한건데
너무 힘들다
믿었던 김상조란분도 저정도면 믿을사람없는거 같다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이러면 안돼지
  또속는다    (2019-04-05)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야들아 박근혜 죽일때랑 이정부 죽이는거랑 같은거다...미국 일본 작품에 기사쓰는 좃선.....
그냥 그렇다고..... 힘없는 나라야.....정치판에 왜 들어가서 김상조....쩝
  oekwan    (2019-04-04)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0
차라리 전문 사기꾼에게 속으면 자기 탓 이라도 하지, 취임사 보세요, 역사에 남을 글 귀들이
있지만 그 글 귀는 연설비서관이 서준 대독에 불과한데, 국민들은 속은거죠, 글 귀와 반대로 가고 있어요, 세상이.나라가.조직이.관행.문화를 바꿀꺼라 했고, 바꿀거라 생각했는데, 실천은
...... , 차라라 옛날이 ...
  내로남불    (2019-04-04)     수정   삭제 찬성 : 13   반대 : 0
법을 공부한 엘리트들도 겉모습만 보고 속는 다는데 헛웃음이 나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좌파들의 정체를 아셨다니 다행입니다. 정권 바꿔서 공정거래위원장 적격자라고 생각됩니다. 힘내십시오
  孤竹    (2019-04-03)     수정   삭제 찬성 : 35   반대 : 1
격하게 성원한다. 참으로 촛불 민심을 배반한 위선자들이구먼.
  김대옥    (2019-04-03)     수정   삭제 찬성 : 45   반대 : 1
아주 작은 위원회 조차 녹음을 하는데 공정위전원회의 및 소회의 표결결과와 녹음기록을 남기지 않겠다고 내부회의록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유선주 국장을 직위해제 하겠다고?
김상조씨 뭐 하는 겨?
이런 미친...
공정위가 진짜 공정위 맞는겨?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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