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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태극기 전도사’ 최인태 세계국기연구소장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國旗 제정’ 70주년”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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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때 ‘1919년 당시의 태극기’ 휘날려야”
⊙ 88서울올림픽 등 여러 국제스포츠 행사서 ‘세계 국기 관리’ 담당·자문 맡아
⊙ “國慶日에만 태극기 걸라는 法 없어… 집집마다 걸고 소중히 다뤄야”

崔仁泰
1945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졸업 / 前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시상식과장, 국민체육진흥공단 국장, 인천아시안게임·여수세계박람회·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스포츠대회 국기 검수 및 시상·자문위원. 現 세계국기연구소장
  올해는 1919년 조선 만민(萬民)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를 외친 ‘3·1절’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더불어 1949년 대한민국 국기(國旗)인 태극기의 양식·규격 등이 제정·선포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태극 도안의 기를 사용한 경우는 1882년 개화파 지식인 박영효가 수신사(修信使) 자격으로 일본에 갔을 때다. 이듬해 고종이 흰 바탕의 중심에 태극(太極)을 놓고 그 주위에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卦)를 배치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다만 규격과 문양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광복 전후(前後)까지 민관(民官)을 불문하고 각양각색의 태극기들이 사용됐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국기제정위원회의 결정에 이어 이듬해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 ‘태극기제정법령’이 반포됨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된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최인태(崔仁泰·74) 세계국기연구소장의 제언(提言)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 소장은 “지금 전국 시·도·군 등 많은 지자체가 3·1절 100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추진 중”이라면서 “관련 기념행사 때 1949년 제정된 ‘지금의 태극기’를 흔들어선 안 된다. 반드시 (정식 제정 전 다양한 종류로 사용된) 1919년 ‘당시의 태극기’들을 모아 걸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국기 전문가’인 그는 국내에서 열린 올림픽·박람회·육상대회·아시안게임 등 여러 국제행사에서 세계 국기 관련 시상·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200여 개국의 복잡다단한 국기들과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섭렵해, 대회가 있을 때면 경기·시상·부대행사에 맞춰 세계 국기를 관리해 왔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국기의 문양·색상·규격·게양법 등을 통달한 최 소장이 말하는 ‘국기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공무원들 보고 國旗 중요성 깨달아”
 
최 소장은 “전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될 이번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때는 1919년 당시 태극기는 물론 세계 국기도 함께 걸면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이 세상이 우리 대한의 독립을 보고 있다. 전 세계가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저력과 웅지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조현호
  1983년 6월 정부는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개최 준비를 위해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조직위)에서 활동할 임기제 공무원들을 모집했다. 당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최 소장은 고등학교 교사를 몇 년 지내다, 모 기업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공직 3급 대우를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과 올림픽 뒤에도 정부가 고용을 보장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영미권보다 프랑스 언어·문화의 영향이 강한 올림픽에서 이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재능과 경력을 인정받아 조직위 3급 과장으로 합격했다.
 
  2개월 뒤 세계군인체육대회 총회가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실무 연수 겸 방문한 그곳에서 최 소장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각국 대표단 탁상에 수많은 국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어느 나라 국기인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것이었다. 한 직원이 급히 구해온 책자를 보고서야 겨우 끼워 맞추다시피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 최 소장은 국제스포츠 행사에서 국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국제대회에서 국기를 모르고서는 홍보도 의전도 물자관리도 할 수 없었다. 최 소장은 그 길로 영국·일본의 국기 서적들을 탐독해, 세계 국기의 문양·색상·규격과 역사적 배경 등을 달달 외기 시작했다.
 
  “올림픽에서는 회의가 많이 열리잖아요. 총회부터 세부 회의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열리는데, 그때마다 각국 대표단 탁상에 국기가 놓입니다. 그뿐인가요. 주경기장부터 종목별 경기장, 선수단 숙소, 개·폐회식장, 하다못해 길거리와 유니폼에도 걸리는 게 국기입니다. 그 수많은 국기를 검수·배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려면 ‘빨리 숙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국내에도 (국기 관련) 책들이 보급됐는데, 워낙 틀린 게 많아서 어렵지만 원어로 된 외국 서적들을 구해 읽었어요. (한국의 경우) 1975년에 발간된 책을 8년이 지난 뒤에 보면, 그 사이 정세(政勢) 격변으로 국기가 바뀐 나라들이 수두룩했어요. 그런데 수정되지 않은 책을 봐서 오인하기 십상이었죠.”
 
 
  ‘色이 틀려 퇴짜 맞고’ ‘바꿔 달아 경질되고’
 
  알쏭달쏭한 국기 공부를 하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올림픽 관련 업무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 암기라지만 엇비슷한 모양에 헷갈리기 일쑤였다. 가령 인도네시아가 ‘빨강-하양’이라면 폴란드는 ‘하양-빨강’인 식이었다.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국기는 모두 위에서부터 ‘빨강-하양-파랑’ 3선으로 이뤄져 있어 언뜻 보면 동일한 문양 같았다. 색도(色度)로 구분해야만 했다. 실제 나라마다 국기에 쓰는 빨간색만 6가지였다. 그 미세한 차이를 일일이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최 소장에겐 나름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일은 고역이었다.
 
  ‘국기 분간의 중요성’을 간과하다 사달이 난 적도 많았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를 준비해서 그 나라 대표단에게 확인받으러 갔는데, 갑자기 장내가 발칵 뒤집혔다. 국기가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원 바탕이 짙은 녹색인데 연록색으로 만들어왔다는 지적이다. 그날 최 소장과 납품업체 직원들은 밤새워 국기를 다시 제작해야 했다. 카자흐스탄 국기도 분간이 어렵긴 매한가지다. 배경색이 옥색도 청색도 아닌 오묘한 색이라 제작할 때 구현이 어려워 그 나라 대표단에게 퇴짜를 맞기도 했다. 최 소장 휘하에 있던 한 담당관은, 승마 경기 시상식 때 2등을 한 인도와 3등을 한 이란의 국기를 서로 바꿔 달아서 경질이 되었다. 야당이 권력을 잡거나 왕정으로 국체가 바뀐 나라의 경우 새 국기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선수단이 옛 국기를 그대로 들고 대회에 입장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게양법도 발목을 잡았다. 평상시 수평으로 걸 때를 제외한 ‘아래로 내려 걸기’를 하는 방법이 나라마다 달랐다. 200개 나라 중에 미국·러시아·그리스 등 80~90개 나라는 아무렇게나 내려서 걸 수 없었다. 주요 문양이 왼쪽 상단으로 가게 하는 이른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걸기’를 해야 했다. 또 내려 걸기를 할 때 주요 문양의 위치를 다시 고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려 거는 용도로만 쓰는 국기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뜻이다. 가령 캄보디아 국기는 중앙에 앙코르와트 사원이 있는데, 그냥 아래로 내려 걸면 사원이 옆으로 누운 형태가 된다. 최 소장은 그 사원 문양의 정확한 형태까지 파악하기 위해 캄보디아대사관에 직접 찾아가 원본을 확인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 돌며 각종 태극기 발굴·연구
 
최인태 소장은 2014년 다시 펴낸 세계 국기 연구서 《휘날리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워야 한다》에 1949년 공식 제정 전후로 사용된 역대 태극기들의 사진과 관련 설명을 수록했다. 사진=신승민
  “규격도 문제였죠. 국기는 나라마다 가로·세로 비율이 다 달라요. 우리나라 태극기는 (가로·세로가) ‘3대 2’ 비율입니다. 일본·중국도 3대 2인데, 미국은 5대 4죠. 카타르는 20대 8인가 그래요. 주최국 기준에 맞춰서 비율을 조정하는데, 지금이야 컴퓨터로 계산하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하나씩 제도를 떠서 계량해야 했죠. 또 국기 거는 순서를 한글로 할지 알파벳으로 할지도 정해야 하고, 국기와 조직위 및 세계연맹 등 관계 기관의 기를 어떻게 배치해서 걸어야 할지 대회 때마다 조율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국기 업무라는 게 붕 떠 있었어요. 국기 예산만 당시 돈으로 10억원에 가까웠는데도 어느 부서가 맡아야 하는지 규정이 없었죠. 일반 물건으로 취급해서 총무에 넘길 건지, 홍보나 의전으로 볼 건지 분간이 안 됐어요.”
 
  최 소장은 국가의 제1 상징물인 국기에 관한 현장 매뉴얼이 없다는 문제점을 인식해, 2002년 세계 국기 연구서 《휘날리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워야 한다》를 펴냈다. 전 세계 국기의 생성·제작 배경과 국제행사 때 게양법, 잘못된 국기 게양·디자인 사례 등을 연구한 책이었다. 이때 빠진 것이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였다. ‘태극기 연구도 없이 어떻게 세계 국기를 연구하느냐’는 지적이 잇따르자, 최 소장은 2006년부터 태극기 전문 연구에 매진했다. 태극기의 연원과 의미를 연구하고, 태극기가 걸린 국내 현장들을 답사해 옳고 그른 게양 사례들을 분석했다. 국회·대학·문화재청·독립기념관 등에 보관된 옛날 태극기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서울 시청역에서 태극기 및 UN 참전군기 전시회를 열고, 태극기 제정 60주년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태극기 관련 제보와 자료 제공을 함으로써, 기사화된 경우도 수차례였다.
 
  이 연구 결과를 포함한 일종의 증보판 연구서가 2014년 출간됐다. 이 책에는 ‘태극기 역사 자료’라는 명칭으로 1949년 공식 제정 전후로 사용된 역대 태극기들의 사진과 관련 설명이 담겨 있다. 1882년 이응준·박영효 태극기부터 이듬해 조선 조정의 공식 반포 국기, 파리 만국박람회에 사용된 태극기, 독립문에 새겨진 태극기, 독립군 진군기,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 태극기, 진관사 발견 태극기 등이다.
 
 
  “3·1절 행사 때 萬國旗도 걸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작년 3월 1일 오전 제99주년 3ㆍ1절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독립문까지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한 뒤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당시 이 행사에서는 최 소장의 제언처럼 1949년 제정된 지금의 태극기와 1919년 당시 사용된 여러 문양의 태극기들이 함께 사용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 소장이 현재 안타까운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기 사랑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통령이 참여한 일부 행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대 3·1절 관련 행사에서, 1919년 당시 태극기는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국심의 상징물’인 태극기에 대한 대국민적 존중이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10월 15일이 태극기 제정일입니다. 외국에서는 ‘플래그데이(Flag Day)’라고 해요. 그 축제를 멕시코 같은 곳에서는 2박 3일 동안 합니다. 거의 국경일이나 다름없죠. (한국은 제정된 지) 올해가 70주년입니다. 2009년 60주년 때는 그날을 제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했어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일이죠…. 지금 우리나라는 국경일에만 (집이나 거리에) 태극기 거는 줄 아는데, 국기라는 건 집집마다 걸어야 하고 365일 상시로 걸어야 합니다. 스위스는 상가마다 국기가 쫙 걸려 있고, 캄보디아는 집안의 주방에도 국기를 걸어놓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경일에도 아파트 한 동에 겨우 두 집 정도 태극기를 거는 형편입니다. 통영항 가서 내려다보면 태극기 건 배는 별로 안 보여요. 언제부턴가 태극기는 ‘정부가 필요할 때만 길거리에 걸어주는 깃발’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초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최 소장은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운동 재현하는 장면을 봐도, 복식이나 소품 등은 당시 것을 쓰면서 국기는 왜 지금 걸 흔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예전에 벨기에에서 1815년 벌어진 ‘워털루전쟁’을 재현하는 장면을 봤는데, 거기서는 총·군복은 물론 군기(軍旗)도 200년 전 것들을 쓰더라. (우리나라에서) ‘3 ·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를 때는, ‘30년 7개월 후에 탄생한 (오늘날의) 태극기’가 아닌 1919년 당시 태극기가 휘날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제언이다.
 
  “올해로 딱 100년이 되는 ‘1919년 3월’은, 국가적으로는 물론 제게도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제 할아버지는 그해 3월 6일 서울 용두동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다가 일경(日警)에 체포돼 태형과 옥고를 당하셨지요. 손자인 제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또 그해 3월에 태어난 제 어머니도 현재 생존해 만 100세 생신을 앞두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전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될 이번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때는 1919년 당시 태극기는 물론 세계 국기도 함께 걸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1921년 당시 상해 임시정부도 3·1절 2주년 축하식 때 식장에 태극기와 함께 만국기를 걸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 대한의 독립을 보고 있다. 전 세계가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저력과 웅지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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