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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명관 前 한국마사회장

“한국경제는 더 나빠질 것… 경제제일주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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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 사기업, 경제단체, 정치권, 공기업 두루 거친 전문경영인
⊙ 30년 삼성맨, 공기업 마사회에서 느낀 충격과 슬픈 경험
⊙ 박근혜 청와대 비서실장 제안받은 것 맞지만 두 가지 이유로 사실상 固辭
⊙ “이재용(삼성 부회장) 전화번호도 몰라… 최순실 정유라도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 삼성, 미래주력사업 찾기와 인재영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玄明官
1941년생. 서울高·서울대 법학과 졸업 / 호텔신라 대표이사, 삼성건설 대표이사,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 전경련 상근부회장 역임 / 한국마사회 제34대 회장
사진=조현호
  현명관 전 한국마사회장은 공무원, 대기업 사장, 경제단체 부회장, 정치인, 공기업 사장을 모두 지낸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1965년, 4회)에 합격해 부산시와 감사원에서 공무원으로 일했고, 1978년 삼성에 입사해 호텔신라 사장,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을 지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 한국마사회장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제주지사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2013~2016년 마사회 회장으로 재직할 때는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로 거론됐고, 마사회가 최순실 딸 정유라의 승마활동을 지원했다는 설과 부인이 최순실과 가까웠다는 설도 떠돌았다. 이런저런 소문에 휩싸였던 현 전 회장이 2년 만에 입을 열었다.
 
 
  사기업에서 공기업으로
 
마사회는 2014년 3월 ‘한국마사회 제2창업을 위한 Let's Run 혁신경영 선포식’을 갖고 제2창업을 선언했다.
  현명관 전 회장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그가 2016년 12월 마사회장에서 물러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마사회에서 퇴임한 후 언론 인터뷰를 전혀 안 하셨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면서 지냅니다. 제가 사기업, 공기업, 정치권을 두루 거치다 보니 그동안 쌓은 경험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공기업의 실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고요. 인터뷰를 안 한 건 마사회 직원들과 노조에서 건 소송 중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니 그랬습니다. 내년 초면 다 마무리될 거 같아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사기업과 공기업 CEO를 모두 해 본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사기업(삼성)에서 30년 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가 공기업으로 간 건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좋은 경험이라기보다는 슬픈 경험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느꼈는데, 첫번째는 ‘이런 경쟁 없는 기업도 있구나’라는 거였어요. 같은 ‘기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경쟁력이라는 면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어요. 물론 공기업보다 사기업이 치열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몸담아 보니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공기업은 경쟁이라는 걸 몰라요. 마사회를 비롯해 공기업이 독점기업이 많죠. 두 번째는 공기업이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혁에 앞장서고 지속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습니다. 투서가 난무하고, 공기업이다 보니 국회의원에게 투서가 가는 경우도 많아요. 경쟁력을 가지려고 바꿔 보려 하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겁니다. 그 두 가지는 공기업에서 크게 느낀 슬픈 경험입니다.”
 
  ― 삼성과 공기업은 기업문화에 차이가 있겠죠.
 
  “생각해 봅시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열심히 하는 사람, 성과를 낸 사람한테는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급여도 더 주고 상여금도 더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일반기업은, 특히 글로벌기업들은 다 그래요. 그런데 공기업은 호봉, 연차에 의해서 월급과 수당이 정해집니다. 성과도 평가하지 않고 성과급도 월급과 마찬가지고 승진도 순서대로고.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어요. 적자가 나도 국민세금으로 메꾸면 그만이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승진시켜 주겠다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임원이 되면 2년 임기제이니 부장으로 계속 있으면 정년까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본인이 임원 안 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공기업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 이른바 ‘고인 물’인가요.
 
  “그 정도가 아니에요. CEO가 회사를 발전시키자는데 직원들이 방해하는 경우 봤습니까? 공기업이 그래요. 제가 직원들에게 ‘나는 임기가 끝나면 나갈 객(客)이고 당신들이 주인이다, 당신들이 이 회사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주체다, 나한테 더 발전시켜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방해를 하느냐’고 토로했습니다. ‘CEO를 방해하는 건 당신(직원)들 손해다’라고 강조했는데도 안 변합니다. 공기업이 그래요.”
 
  ― 능력 있는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사기업과 공채 중심인 공기업의 다른 점이겠죠.
 
  “공기업에는 외부에서 특채로 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외부에서 유능한 사람이 오는 걸 두려워하고, 기존의 규정과 제도를 개혁하는 걸 반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순혈주의(純血主義)는 망할 수밖에 없어요. 외부수혈이 있어야 위기의식이 생기고 경쟁심리가 나오는 겁니다. 경쟁이 곧 발전을 가져오는 건데 공기업은 규정 자체가 외부수혈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게 문젭니다.”
 
 
  마사회를 진정한 서비스기업으로
 
현명관 전 마사회장은 부정적인 이미지였던 경마장과 화상경마장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경마공원을 찾은 어린이들.
  ― 그래도 마사회는 혁신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사회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마사회 하면 국민들이 경마, 즉 도박을 하는 공기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잖아요? 그러니 화상경마장이 동네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등 마사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깨지 않고는 마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국 화상경마장을 돌아봤어요.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경마하는 사람으로 변장하고 들어가서 분위기를 파악했습니다. 화상경마장이 마사회 수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동네에 경마장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건물 전체에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허름한 차림새의 경마꾼들이 돌아다니고 하니 당연한 일이죠.”
 
  ― 재임 당시 화상경마장 구조를 바꿨죠?
 
  “화상경마장이 다 입석이더군요. 그래서 경마장 내부구조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증권 객장처럼 환하게 트인 공간에 모두 앉아서 화상경마를 볼 수 있게 지정좌석제로 바꿨습니다. 또 화상경마장 영업일(금토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문화센터를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주고 백화점 문화센터보다 더 좋은 아이템도 만들었어요.”
 
  ― 내부 반발도 있었다고요?
 
  “입석으로 하면 1000명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지정좌석제로 만들면 500명밖에 못 들어오게 되니 매출이 줄고 경영에 지장을 준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공간이 쾌적해지면 고객이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고 주장했죠. 결국 매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 과천 등 경마장 분위기도 바뀌었습니다.
 
  “화상경마장뿐만 아니라 과천 경마장도 경마가 없는 날은 가족들이 놀러올 수 있는 공원으로 새로 꾸몄습니다. 그래서 경마장 이미지가 예전에 비해 좋아졌죠. 바깥 공간은 공원으로 리모델링하고, 실내 마권판매소도 리모델링했습니다. 처음 가 보니 마권 파는 곳을 직원 얼굴이 안 보이게 막아 놓은 게 꼭 교도소 면회창구 같은 거예요. 직원들이 고객을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군림하고 감시하는 분위기더란 말입니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마권판매소를 은행창구처럼 오픈된 구조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공기업을 혁신해 달라”
 
  ― 3년간 마사회에서 한 일이 많은데, 애초 마사회에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사실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에서 마사회 회장으로 가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갈 생각이 없어 거절했습니다. 실물경제에 대해 조언해 달라거나 그런 역할을 제안하면 모르겠지만 마사회는 내 전문분야도 아닙니다. 또 정권 바뀔 때마다 ‘공기업 낙하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 가서 낙하산 소릴 듣는 건 내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어요? ‘낙하산 인사라면 인사권자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 (박근혜) 대선 캠프에도 있었으니 공직 등 다른 직책이나 역할을 원했던 건 아닌가요.
 
  “자리를 원한 건 아니고,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있어요. 정치권에 있는 인사들 중 기업과 실물경제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행정부에도 별로 없으니 실물경제가 자꾸 실패하는 것 아니냐. 나는 사기업과 경제단체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 실물경제의 가교(架橋)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죠. 예를 들면 경제단체 같은 거. 그런 식으로 (마사회장직을) 거절했습니다.”
 
  ― 그런데 다시 제안한 겁니까. 박 전 대통령이 굳이 마사회를 부탁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제안이 두 번째 왔길래 내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계속 거절하기도 그래서 받아들였죠. 저 같은 사람이 공기업을 혁신해 주길 바란다고 했어요. 그래서 사기업에 있던 사람이 공기업에서 혁신을 이뤄 낸다면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 보기로 한 겁니다.”
 
  ― 승마선수인 정유라를 후원하기 위해 마사회에 삼성 출신인 현 회장을 보냈다는 소문이 있었죠?
 
  “그 얘긴 나중에 하겠지만 참 얼토당토않아서…”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에 출마한 현명관 후보가 제주 한 시장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습니까.
 
  “2005년 2월에 전경련 상근부회장직에서 물러나 삼성에 고문으로 있을 때 한나라당에서 입당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제주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입당했는데, 그때 당 대표가 박근혜 대표였습니다. 그 전엔 잘 몰랐고요. 제주도지사에 출마해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박빙의 치열한 상황이다 보니 ‘선거의 여왕’인 박 대표가 제주 유세를 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 대표가 신촌에서 ‘커터칼 테러’를 당한 거예요.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다 보니 퇴원해도 가까운 지방 유세는 갈 수 있겠지만 비행기는 타면 안 된다고 대표 주변사람들이 주장하더군요. ‘대전까지는 갈 수 있지만 비행기를 타면 기압차 때문에 봉합한 상처에 이상이 있을 수 있어 제주도는 못 간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박 대표가 퇴원 전날 ‘퇴원해서 제주 유세를 가겠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박 대표에게 굉장히 정치적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겁니다.”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죠?
 
  “제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경선을 위해 조직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박 대표가 ‘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경제정책을 담당해 달라는 얘기였죠.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곤란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실물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을 만들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책팀에 힘을 보태게 됐습니다. 그다음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경제정책팀에 있었고요.”
 
  ― 기업인 출신인데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정치적 욕심이 있어서라기보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지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경쟁력으로 먹고사는데, 서비스업 경쟁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가 서비스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가장 좋은 입지가 제주입니다. 중국 일본 등 주요도시를 비행기로 한두 시간 안에 갈 수 있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관광과 면적, 자원 면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광역단체장들이 예산 시즌이면 서울에 올라가 예산 따내기에 혈안이 되는데, 제주도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제주지사는 제주도의 CEO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업인인 제가 출마를 하게 된 겁니다. 그때 항공료를 절반으로 줄이는 저가항공을 제안했는데, 상대후보로부터 ‘사기’라고 공격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땐 잘 모르고 공격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웃음)”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설
 
  ― 박근혜 대통령 시절(2015년 2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습니다. 내정이 됐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병기 실장으로 급선회했다는 설도 있었는데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그런 얘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고 보도가 근거없이 나온 건 아닙니다. 《조선일보》가 제일 빠르더군요.”
 
  ― 본인이 거절한 겁니까, 아니면 내정 후 바뀐 겁니까.
 
  “그렇다기보다는… 두 가지 이유를 대며 ‘좀 더 신중을 기해 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지예요.”
 
  ― 두 가지 이유가 뭡니까.
 
  “첫 번째는 내가 삼성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겁니다. 삼성의 비서실장을 한 사람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다? 그건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었어요.”
 
  ― 그때 지라시(사설정보지)가 돌았는데요. 가정사가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꺼려졌습니까.
 
  “그런 이유가 있었죠.”
 
  현 전 회장은 첫 부인과 이혼 후 전모씨와 재혼했다. 두 사람은 2015년 당시 이미 재혼해 딸을 두고 있었지만 지라시에는 미확인 사실이 떠돌았다.
 
  ― 그 밖에도 이런저런 소문에 휩싸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마사회장을 맡긴 이유가 정유라를 지원하기 위해 삼성 최고위층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을 선택했다는 설도 있고요.
 
  “‘최순실게이트’ 당시 거짓이 이렇게 사실인 양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검찰이 제 휴대전화를 압수해서 조사했는데, 이재용 최순실 정유라와 한 번이라도 통화한 사실이 없어요. 조사를 다 받았는데 최순실게이트 중 저와 관련된 건 다 ‘카더라’일 뿐 사실로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언론중재위에 제소도 하고 고소고발도 하고 와이프가 언론사에 입장문을 뿌리기도 하고 했지만 참 허무하더군요.”
 
  ― 부인이 최순실과 가깝다는 의혹도 나왔었죠.
 
  “국정농단 사건이라며 온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절 당시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장했던 건데, 소송 결과 지난달 고등법원에서 허위인 것으로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김의원이 대법원에 항소를 했지만요.”
 
  ― 당시 ‘사실을 밝혀 달라’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만.
 
  “그때는 언론이 광풍에 휩싸인 상태였잖아요. 인터뷰를 하면 오히려 더 불을 지르게 될 게 뻔해서 안 했습니다. 인터뷰를 해서 진실을 알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참았습니다. 그때 인생공부를 많이 했고, 언론에 ‘단독’이라고 나오는 기사는 믿지 않게 됐습니다.”
 
 
  삼성에 대한 걱정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은 “지금의 삼성은 미래사업 창출, 인재영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가장 행복했던 때와 힘들었던 때를 꼽는다면요.
 
  “행복했던 시절은 신라호텔 시절입니다. 삼성에 들어와서 한솔제지(당시 전주제지)에 있다가 이사 직급으로 신라호텔에 왔는데 당시 신라호텔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오지’ 취급을 받던 곳이었어요. 그런 신라를 일류로 만들어 내면서 힘들지만 보람이 컸습니다. 힘들었던 건 삼성그룹 비서실장 시절입니다. 당시 YS정권과 삼성 간에 충돌이 있었고, 삼성과 중앙일보가 메이저 언론사들과 이른바 ‘언론전쟁’을 벌이기도 했고요. 삼성의 경영혁신도 있었고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어서 가장 힘든 시점이었습니다.”
 
  ― ‘30년 삼성맨’으로서 지금의 삼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삼성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삼성은 지금까지 잘해 왔고 다른 그룹보다는 잘하고 있지만, 걱정되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미래의 먹거리입니다. 지금 삼성을 먹여살리는 건 반도체인데, 한 기업이 한 품목에서 영원히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넘어갑니다. 반도체 다음엔 뭘 먹고 살 것인지 찾아야 하고 보여줘야 하는데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요. 바이오가 미래 먹거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둘째는 인재입니다. 삼성이 글로벌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세계 인재를 많이 영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성 CEO 중에 외국인이 있습니까? 해외 법인 말고는 본 적이 없어요. 삼성의 문화는 좀 더 개방적이 돼야 합니다. 주력기업에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혼혈주의를 강화해야 돼요. 셋째는 제조업 중심의 기업문화입니다. 삼성은 역사적으로 설탕, 전자, 화학 등 제조업에 주력해 왔고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나 소프트한 사업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져요. 골프장, 호텔, IT 등 다 국내에서는 일등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일류가 아닙니다. 잘하고는 있지만 소프트한 사업에 역량을 쏟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되려면 제조업에만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 이병철, 이건희 선대 회장과 함께 일했는데 3세 이재용 부회장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잘하고 있다고 보지만 나름대로 고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기업을 만들었고, 이건희 회장은 혁신으로 삼성을 탈바꿈시켰죠. 이 부회장도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고민을 하겠지만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삼성은 크게 어려워질 거예요.”
 
  ― 이건희 회장의 상태는 알고 있습니까.
 
  “살아 계신 건 분명합니다. 근데 지금 가족 입장에서 면회는 환영을 안하니까….”
 
  ― 삼성은 이 정권에선 당분간 어렵지 않겠습니까.
 
  “삼성바이오 문제나 이재용 부회장 상황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상당히 위축돼 있습니다.”
 
 
  위축된 기업들
 
2004년 11월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맨왼쪽)이 경총, 상의, 무역협회 부회장들과 함께 경제 현안에 대한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 전경련 상근부회장 할 때가 노무현 정권 시절인데. 그때도 기업이 위축되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주2일 휴무제, 법인세율 인상,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업 입장에서는 곤란한 여러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땐 전경련이 재계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권과 충돌이 좀 있었죠. 정부는 전경련이든 상의든 경총이든 경제단체를 소통의 창구로 활용해야지. 껄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기업들이 각자 목소리를 낼 수는 없으니 경제단체가 있는 건데, 싫은 소리 한다고 백안시하면 정부 스스로 마이너스입니다.”
 
  ― 지금 전경련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전경련은 대기업의 창구입니다. 대기업이 아무리 싫어도 투자의 기반을 조성하는 능력이 있는 곳은 대기업뿐입니다. 물론 재벌 오너들의 갑질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 비난받아야 할 점은 있지만, 정부는 대기업과 협력해야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요즘 기업들은 투자를 아예 안 하고 그냥 쉬고 있어요. 현실 안주, 안전 경영, 현금 중시 이런 키워드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 기업이 투자를 안 하고 있으니 경기는 더욱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는데, 소득의 종류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자산소득이 있잖아요? 세 가지 다 기업이 만드는 겁니다. 근로자는 근로소득을, 기업은 사업소득을, 주주는 자산소득을 가져가는 거죠. 다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돌아가는 겁니다.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근데 기업이 투자를 왜 안 하겠어요? 규제가 많고 경기가 안 좋고 북한 등 외생변수가 많으니 안 하는 겁니다. 정부는 규제를 적절히 조절하고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투자를 하라, 고용을 늘려라 하고 지시하는 건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거리가 먼 겁니다.”
 
  ― 북한 김정은이 한국에 오면 삼성 공장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대통령이 기업에 대북 투자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투자하라고 시켜서 투자하는 기업인은 없습니다. 하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요. 물론 종전이 되면 북한이 새로운 투자 및 성장의 거점인 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습니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개성공단 보면 누구 한마디에 쫓겨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겠어요. 북한은 좋은 변수임에는 틀림없지만 개방이 되고 불안감이 사라지고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야만 기업들이 투자를 할 겁니다.”
 
 
  경제제일주의의 리더십 필요
 
현명관 전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은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경선 후보 경제자문단에 참여하며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 나갈 해법이 있을까요.
 
  “경기 침체와 악화는 예상되는 거고, 미·중간 무역전쟁 등 외부 변수도 많아 더 어려워질 일만 남은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한 단계 더 힘을 받고 하려면. 경제제일주의의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외교와 대북관계에 집중하고 있는데, 민생문제 해결 없이는 모든 게 다 허사입니다. 잘살아야 된다는 건 기본이에요. 이런 경제제일주의에 입각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온 국민을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더해져야겠죠.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 국민에게 꿈과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 경제제일주의 리더십이라면 박정희 리더십 같은 겁니까.
 
  “박정희 리더십이 독재와 인권침해 등 비난받을 일도 많지만 한 가지,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국민들에게 심어 줬다는 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런 실용주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지도자가 이념지향적이어서는 경제를 살리기 어려워요.”
 
  ― 보수쪽에 눈여겨보는 리더감이 있습니까.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도 많은데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건전한 여당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야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전하고 힘 있는 야당이 있어야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야당은 통합돼야 해요.”
 
  ―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없이 보수통합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과거에 시빗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데 연연하지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서 이끌고 나가는 경제제일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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