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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기사회생할 수 있나

단독 인터뷰-김성태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 북핵위기 극복의 운전대 잡기는커녕 조수(助手)도 못 돼”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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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연속 원내대표 장악한 친박 후보 꺾고 초유의 ‘흙수저’ 원내대표 탄생
⊙ 홍준표 대표와는 진주의료원 사태 때 인연 맺어… “둘 다 지긋지긋한 가난 겪었다”
⊙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친 노동자, 친 서민, 친 농민정당으로 향할 것”
⊙ 전쟁과 분단과 동족상잔 겪지 않은 외국사례 들면서 국정원 개혁한다는 건 말도 안돼
⊙ 국정원 특활비 문제 삼는 것은 국정원 해체 여론조성과 전 정권 망신 주겠다는 속셈
⊙ “내가 듣기로는 검찰에 총장이 3명이라는데… 그러니 청와대 하명수사만 하는 것 아니겠나”
⊙ 전임 원내대표 때 예산안 처리서 자유한국당 패싱은 대형 참사
⊙ 국정농단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만 책임 물으면 됐지 왜 삼성·롯데 등 괴롭히나… 그것은 현대판 물고문
⊙ 중국 방문서 대통령 무례당한 것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문책해야
⊙ 현 정권의 안보무능·안보불감증 잘 아는 김정은은 계속 ‘대한민국 패싱’ 할 것
  12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홍 대표가 돌연 “재밌네. 이야기가 재밌어”라고 했다.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국회에서 진행되는 당 신임 원내대표 경선(競選)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그에게 물었다. “김성태 의원은 어떻게 해서 원내대표를 한번 시켜 보려고 하신 겁니까. 원래 김 의원과 인연이 있으셨습니까?”
 
  홍 대표가 말했다. “아, 누굴 민다 이러면 나 그거는 안 해, 안 해.”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 선거에서 친홍(親洪·홍 대표나 김 신임 원내대표는 친홍이란 계파가 아예 없다고 부인했다)이 친박(親朴)에 패한다면 자유한국당은 다시 친박의 지배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홍 대표가 ‘허수아비’ 같은 무력한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도 홍 대표는 말했다. “근데 야당 원내대표는 좀 단순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머리가 복잡한 사람은 야당 원내대표 할 수 없습니다. 저돌적이고 단순하게 생각해야 돼요. 싸울 때는 싸우고 물러설 때는 물러서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해야지 계산하고 복잡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은 야당 원내대표를 해서는 안 됩니다.”
 
  홍 대표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김성태 의원이 노조를 해 보면서 협상도 잘해 봤고, 협상도 해 봤고 전투력도 있고. 이 시점에서는 가장 적합한 원내대표가 아닐까. 그래서 전투력 있는 사람 찾다 보니까 그렇게 됐죠.” 홍 대표에게 재차 물었다. “1차 투표에서 끝날 것 같습니까?” 홍 대표가 초조한 듯 말했다. “그리돼야 될 낀데.”
 
  14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와 만났다. 김 원내대표에게도 홍 대표에게 던졌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해 봤다. 김 원내대표는 처음으로 홍 대표와 자신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었다. “4년전 홍 대표가 경상남도 지사를 지낼 무렵 터진 진주의료원 사태 때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홍 대표와 별다른 친분이 없이 지냈습니다.”
 
 
  “박근혜, 홍준표 출당시키려 했다”
 
2017년 12월 12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모습. 김성태 원내대표는 “홍 대표는 솔직담백한 분”이라며 “우리 당 지사(知事)인데 어떻게든 도와야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 홍 대표는 진주의료원을 없애려 했지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홍 대표를 출당(黜黨)시키려 했습니다.”
 
  — 아니 진주의료원을 정상화하려는데 왜 출당시킵니까.
 
  “정권에 부담이 되니까 그랬겠지. 홍 대표 본인은 좌파 민노총과 싸운다고 하지만 여론도 안 좋고 지역 언론도 비우호적이었으니까요. 그때 홍 대표가 정권과 각을 세웠는데 따뜻한 눈길 한번 준 사람이 없었어요. 출당 얘기가 나왔을 때 말린 사람도 없고.”
 
  — 그 말은 홍 대표가 고립무원이었다는 얘기네요. 좋게 말하면 계파도 없었다는 뜻이 되겠고요.
 
  “그렇죠. 4선을 지낸 분이고 원내대표와 당 대표, 도지사까지 지낸 분인데. 저도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계파가 없는 것에 대해. 전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당 지사(知事)인데 어떻게든 도와야되지 않겠는가 하고요.”
 
  — 무슨 계기가 생겼습니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영씨였는데 홍 대표가 진 장관과도 극심한 의견 차이를 빚었어요. 그때 당·정·청 간의 이견 해소를 하는 역할을 제가 맡게 됐습니다. 두 달 반 만에 정확히 본인도 수긍하고, 청와대도 수긍하고, 정부도 수긍하고, 당도 수긍하는 해법을 내놓고 갈등을 종식시켰습니다.”
 
  — 홍 대표로선 김 원내대표에게 내심 고마웠겠습니다.
 
  “그거야 제가 모르겠고 그분과 제가 따지고 보면 인연이 많지요.”
 
  — 무슨 인연입니까.
 
  “홍 대표가 말을 함부로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솔직담백한 분입니다. 저처럼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으셨고. 아버지가 현대중공업 경비를 하셨고 어머니는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라고 하신 적도 있고. 저 역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형 트레일러를 몰았잖아요.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홍 대표나 저는 항상 아웃사이더였어요. 그동안 겪은 시련과 고통, 말로 다 못합니다.”
 
  김 원내대표와의 인터뷰를 이어 가기 전에 그와의 인연을 밝히려 한다. 내가 김 원내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한국노총 사무총장이었고 나는 조선일보 사회부 소속으로 노동부에 출입하고 있었다. 첫 만남 이후 잘 지내던 그와 나 사이에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돼 출범한 직후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민주노총과 친해지려는 제스처를 여러 번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노동계의 중심(重心)이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그것이 한국노총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하필이면 조선일보 창간기념일이던 2003년 3월 5일 새벽 150여 명의 한국노총 시위대가 조선일보 미술관 1층 건물을 점거한 채 농성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전까지 조선일보 1층 로비를 점거한 시위대는 없었다. 나중에 사정을 물어보니 김 원내대표는 “서울시의원을 한 적이 있어서 조선일보 내부 구조를 안다”고 했다. 그 일은 악연(惡緣)이었으나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됐다. 이후 정계에 진출한 그는 서울에서도 야당세가 가장 센 서울 강서을에서 강적들을 격파하고 내리 3선을 했다.
 
  재선의원 때부터 김 원내대표는 이런 불만을 가끔 털어놓았다. “내가 이래도 서울지역구 재선의원인데 푸대접도 이런 푸대접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친박·서울대·금수저 출신들이 보수를 등에 업고 온갖 호사를 누리는 사이 힘 없고 백 없는 비박·비서울대·흙수저 출신들은 거수기 역할만 했던 게 이른바 보수당의 속사정이었다.
 
  그러기에 12일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7년간 7번의 원내대표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박은 전승(全勝)을 거두고 있었다. 만일 여기서 또다시 친박이 승리할 경우 자유한국당 홍준표 체제는 궤멸하고 자유한국당은 영원히 국민들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검찰이 하는 짓은 하명(下命) 수사”
 
국가정보원 전경.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없어야 한다”며 “하지만 국가안보 기능은 어떤 경우에도 해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선DB
  — 당선을 축하합니다. 당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요.
 
  “이제 자유한국당은 금수저·웰빙정당·엘리트정당이 아닌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취약계층을 아우르는 당이 될 겁니다. 친 노동자, 친 서민, 친 농민정당으로 향할 겁니다.”
 
  — 홍준표 대표도 원내대표 선거에 꽤나 신경을 쓰는 눈치였습니다.
 
  “하하. 제가 지면 홍 대표도 위험해지지 않았겠어요?”
 
  — 앞으로 홍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역할 분담이 주목됩니다.
 
  “홍 대표께서는 당을 이끌면서 대 국민을 향한 호소를 하는 역할을 하실 거고 저는 대여(對與)투쟁을 맡아야지요.”
 
  — 정당 사상 최초의 당무감사 결과가 주목됩니다.
 
  “홍 대표가 15일 일본에서 귀국하시고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당무감사 결과를 발표할 겁니다.”
 
  — 그동안 보수층은 야당답지 못한 야당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간첩을 잡지 못하는 국정원(國情院)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에 우려가 큽니다.
 
  “그렇게 국정원을 무력화시키려면 차라리 국정원을 없애야지요. 현 정권은 뻑하면 외국의 사례를 드는데 외국과 우리가 사정이 같습니까?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겪는 외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처럼 동족상잔의 전쟁과 비극을 겪은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시각부터 잘못됐으니 엉터리 국정원 개혁안이 나오는 거지요.”
 
  — 그래도 현 정권은 국정원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없애야지요.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안보 기능은 어떤 경우에도 해체돼선 안 됩니다. 저는 현 정권의 국정원 무력화가 두 가지 코스로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 그 두 가지가 뭡니까.
 
  “국정원 특활비를 문제 삼아 국정원 존폐의 문제로 끌고 가는데 국정원 특활비라는 것엔 나름대로의 기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특활비를 끄집어내 전(前) 정권·전전(前前)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을 하려는 시도가 분명합니다. 비밀인가도 없는 버전을 만들어 낸 뒤 국정원의 모든 정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정권에 유리한 것만 발췌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게 그 증거입니다.”
 
  — 검찰은 또 그 수사를 열심히 하겠지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면 검찰이 무슨 일을 벌일지 뻔합니다. 전 국정원적폐청산TF도 안 믿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사람, 민주당 현역의원의 남편 등이 달려들어 안보를 무력화하고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검찰 문제도 그래요. 지금 검찰이 하는 짓은 정권의 하명(下命)수사에 불과합니다.”
 
  — 검찰은 지금 누가 진짜 수뇌부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제가 듣기론 검찰총장이 셋 있다고 하더군요. 문무일 총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거 무슨 차장검사 ….”
 
 
  “방송장악 목표는 보수궤멸 프로젝트”
 
2017년 12월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석으로 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국회 예산안 처리와 관련 “엄청난 참사였다. 자유한국당이 패싱된 거 아니냐”며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한테 사과를 받아냈다. 또 다시 패싱시키면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 국정원 해체와 정권의 명령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검찰 못지않게 공영방송 장악도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러더간 보수의 ‘입’이 봉쇄되지 않겠습니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공영방송 장악은 시민사회노동조직을 앞세운 인민재판식 언론탄압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영구집권을 위해서겠지요.
 
  “실제 목표는 보수정당, 보수세력의 씨를 말리려는 보수 궤멸 프로젝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공정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현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지요. 반대편은 죽이고.”
 
  — 각 정부부처에서도 적폐청산위원회를 만들어 과거를 캐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말이 적폐청산이고 혁신이지 속셈은 전 정권의 뒤를 캐는 데 혈안이 돼 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홍위병 조직이지요.”
 
  — 그런데 이런 정권과 맞서야 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면면은 나약하기만 합니다. 혹시 김 원내대표가 앞장서는데 아무도 안 따라나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 따라나서면 안 따라나서는 대로 하는 거지요 뭐.”
 
  — 많은 국민은 정우택 직전 원내대표가 무력하게 국회예산안 처리에 임한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참사(慘事)지요. 예산안을 심의하는데 자유한국당이 패싱(passing)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사과를 받았어요.”
 
  — 누구한테요.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오늘 아침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저도 경고했습니다. 앞으로 또다시 의도적으로 자유한국당을 패싱시키면 단호하게 맞서겠다고요.”
 
  — 작년부터 시작된 국정농단의 광풍(狂風)이 여전히 거셉니다.
 
  “참으로 저도 걱정입니다. 어느 정도 했으면 국가안보와 국가경제와 기업을 걱정해야 할 텐데요.”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나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대한 재판도 곧 열리는데 기업에서도 근심이 크다고 합니다.
 
  “지금 정권이 기업에 하는 짓은 물고문이나 다름없어요. 국정농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책임을 묻고 최순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자유한국당은 최순실 사유재산 몰수에 대한 법률에 찬성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기업경영에 차질을 빚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되지요.”
 
  — 너무 국내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국민들은 국가안보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해결과 남북관계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조수(助手)도 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금수저 후예들의 지지에 의존 안 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세워야 한다”며 “체질을 바꾸고 반성을 해야만 현 정권의 포퓰리즘, 정치보복, 국가불안, 사회주의적 국가운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 왜 상상도 못했던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안보의식이 결여됐으니 그렇지요. 현 정권의 안보무능, 안보불감증은 보기보다 심각합니다. 이러니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 체제 아래서는 대한민국을 가볍게 패싱할 겁니다. 미국과 협상하고 중국과 거래하겠지요. 우리나라를 지켜야 할 사드 미사일 문제만 해도 그래요. 왜 중국에 3불을 말합니까? 국민과 국가를 지키려는 건데.”
 
  — 그런데도 또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당하면서까지 중국에 갔습니다.
 
  “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문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외교적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국민들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세워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기득권 땅부자, 금수저의 후예들의 지지에 의존해선 안 됩니다. 체질을 바꾸고 뼈저린 반성을 해야만 현 정권의 포퓰리즘과 정치보복, 국가불안, 사회주의적 국가운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저희는 가지지 않은 자를 위한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내대표에 나설 때부터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인재 찾아 천리길 프로젝트’ ‘100인 정책 전사단(戰士團)’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땀흘려 일해서 성공한 이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 입지전적 인물들을 영입하겠습니다.”
 
  — 언제 원내대표 출마를 결심했습니까.
 
  “제가 바른정당에서 복당(復黨)한 이후에 보니 아직도 자유한국당이 집권당 시절의 체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이대로 갔다가는 2년6개월 후에 우리 모두가 고려장당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앉아서 떼죽음을 당할 것이냐 …, 친박 위주의 당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껴 출마를 결심했지요.”
 
2017년 1월 9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 김성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우리 당에서 재산은 가장 적지만. 전국을 돌며 호소했다”며 “엄동설한에 들개처럼 처절하게 싸우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 유세과정에서 친박들도 만났습니까.
 
  “제 러닝메이트도 친박 출신인데요. 물론 우리 당에서 재산은 가장 적지만. 제가 전국을 돌며 호소했어요. ‘태평성대라면 나 같은 인물이 여러분 앞에 나서지도 않을 거다. 엄동설한에 들개처럼 처절하게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 호소가 일정 부분 그분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은 당 서열 1·2위가 비서울대, ‘흙수저’ 출신이 장악하게 됐다. 김성태 신임 원내대표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2015년 《조선일보》에 쓴 칼럼이다.
 
 
  중동건설 현장 근무
 
  올해 쉰일곱인 김성태(金聖泰)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것은 1985년이었다. 정확히 30년 전이다. 지금은 없어진 한양건설 소속으로, 처음에는 건축부에서 자재 업무를 맡았고 나중에는 중기부에서 덩치 큰 25t짜리 독일제 벤츠 덤프트럭을 몰았다. 사우디에 가기 전 그는 서울지하철 3호선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서울역 맞은편 대우빌딩~퇴계로 구간이었다. 지하에서 굴을 파던 그가 열사(熱砂)의 땅을 파러 간 것은 돈 때문이었다. “결혼을 해야 했어요. 돈을 모을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5대1의 경쟁을 뚫고 김포공항에서 사우디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직항(直航)이 없어 태국 방콕을 거쳐 스무 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서 견디다 문이 열리는 순간 ‘훅’ 하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안으로 밀려와 얼굴을 때리던 순간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우디는 지금으로 치면 천연 찜질방과 다름없었다. 평균기온이 섭씨 48도에서 50도, 어떨 때는 55도까지 치솟았다. 체감기온이 60도를 넘었지만 그는 쉬지 못했다. “새벽 6시에 작업을 시작해 13~14시간씩 일했어요. ‘오버타임(Overtime) 수당’ 받으려고요.”
 
  밥은 속칭 ‘군대 짬밥’ 수준이었고 낯선 양고기 냄새에 질렸지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탈수(脫水) 현상이 심해 하루에 1.5L들이 물통을 보통 네 통씩 마셔댔다. 그 와중에서 잊을 수 없는 게 ‘즉석 막걸리 제조’의 추억이다.
 
  “명절 같은 때 고향이 그리워 견디기 힘들어지면 달궈진 모래를 파고 통을 묻지요. 물 반 드럼, 건포도 한 봉지, 설탕 한 봉지, 이스트 한 덩어리를 넣고 하루가 지나면 막걸리가 돼요. 건포도도 대추도 전부 퉁퉁 불어 터져 있는 뜨끈뜨끈한 막걸리를 마시며 ….”
 
  1년 6개월 만에 그는 소원대로 결혼하고 집도 샀다. 진주공고를 나온 그가 훗날 대학과 대학원에 간 것도 사우디 덕이었다. 갈 곳도, 돈도 없어 독서 빼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중동 근로자 대부분이 저축한 것은 검소해서가 아니라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께선 근로자들이 월급에서 가불(假拂)할 액수를 300리얄로 제한했습니다. 겨우 사우디에서 필요한 것만 딱 살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조국으로 보냈어요. 그렇게 엄격히 하지 않았다면 돈을 못 모았을 겁니다.”
 
  1970~80년대 신문에는 ‘제비족’ ‘중동(中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중동에서 남편이 보내 온 돈을 주체하지 못한 아내들이 제비족에게 재산을 날렸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건설 근로자들이 땀 흘려 번 돈이 나라를 부유하게 적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동에서 김성태처럼 일한 근로자는 250만명에 달한다. 한때 그들이 송금한 ‘오일달러’는 대한민국 외환 보유액의 75%를 차지했다. 그들이 보내 온 돈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울산석유화학단지 같은 중화학공업의 초석이 됐다.
 
  그런 그가 만 30년 만인 지난달 2일부터 닷새 동안 사우디를 방문했다. 30년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25t 트럭의 클러치를 밟다 오른쪽 무릎 연골이 파열됐던 이 젊은이는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지금은 새누리당의 중진(重鎭) 의원이 됐다.
 
  “제가 일했던 곳이 사우디 국립 이맘(Imam)대학입니다. 세계에서 이슬람 대학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지요. 거길 갔을 때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서 분개하고 반성했어요. 왜 우리는 250만명의 젊은이가 나라 위해 헌신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국외(國外) 건설 근로자의 날’ 제정 발의
 
2011년 9월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당시 김성태 한나라당 국회의원(정중앙) 등이 발표하는 모습.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홍 대표께서는 당을 이끌면서 대 국민을 향한 호소를 하시는 역할을 하실 거고, 저는 대여(對與)투쟁을 맡겠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김 의원은 최근 ‘국외(國外) 건설 근로자의 날 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1970년대 후반 중동 근로자들은 조국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그 노고와 의미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외 건설 근로자의 날을 제정하고 ….”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국외 건설 근로자의 날’ 제정 법률안 발의는 대한민국이 지금은 대부분 60~70대가 된 250만 중동 근로자를 위해 처음으로 취한 행동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만큼 역사의 망각(忘却)에 능한 민족도 드물다는 뜻이다. 6·25전쟁 전몰 장병에겐 현충탑이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닦다 숨진 근로자들에겐 위령탑이 있다. 심지어 별의별 민주화 투사들을 위한 동상이나 기념탑도 즐비하다. 그런데 왜 산업 전사(戰士)들의 공은 30년이 지나도록 기억되지 못하고 아무도 기리지 않는 것인가.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년들의 중동 진출을 얘기하다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영화 대사를 빗대 비아냥거렸다. “너나 가라, 중동!” 아마 그들은 중동을 ‘지옥’이라고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30년 전 중동은 우리 근로자를 ‘머슴’처럼 부리던 부자 동네였다.
 
  나는 이런 현상의 책임이 청년들의 무지(無知)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생떼’ 투쟁엔 지레 겁을 집어먹고 지갑을 활짝 열지만 정작 기려야 할 일에는 인색한 기성세대의 잘못된 태도가 이렇게 나약하고 무책임한 세대를 낳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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