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家를 찾아서] 한국 가곡·동요의 왕 ‘홍난파’의 후손들 : 월간조선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뒤편의 인왕산 자락 ‘성곽길’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과 뾰족한 처마로 이뤄진 양옥이 나온다. 난파(蘭坡) 홍영후(洪永厚·1898~1941) 선생의 집이다. 동(洞) 이름도 홍난파를 연상케 하는 홍파동(2-16번지). 넝쿨이 집 외벽을 빽빽이 차지해 이국적인 느낌이다.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홍난파가 이 집에서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살았다. 연면적은 지상·지하 각 층 121m2(36.7평).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90호로 지정돼 있다.

‘홍난파의 집’은 아이들의 체험학습지로 탈바꿈해 동요를 부르고 동시를 외우며 손톱에 봉숭아를 물들이는 공간이 됐다. 언제부턴가 ‘홍난파’란 석 자가 주홍글씨가 되고 있다. 홍파동을 찾는 발길도 뜸해지고 난파가 만든 가곡과 동요 역시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 곡이 실려도 작곡자 이름이 지워진 채다. 몇 년 전에는 ‘난파음악상’을 받은 작곡자가 수상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지난 2000년대 이후 친일파 청산 논란이 불거진 이후의 일이다.

난파 딸이 꺼낸 흑백사진 한 장

홍난파의 딸 홍정임씨가 공개한 유년시절 흑백사진.
좌우가 홍난파와 아내 이대형. 서울 홍파동 집 뜰에서 찍었다.

홍난파 선생의 후손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난파 선생은 1914년 아내 김상운(金祥雲)과 결혼해 맏딸 숙임(洪淑姙·1918~1984)을 낳았다. 아내가 병사하자 1934년 이대형(李大亨·1913~2004)과 재혼해 둘째 딸 정임(洪丁姙·1937~)을 낳았다. 이대형은 난파가 경성보육학교(유치원교사 양성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제자였다.

맏딸 홍숙임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둘째 딸 홍정임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난파의 벗이었던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가 창간한 영자지 《코리언 리퍼블릭》의 기자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 가 현재 LA에 살고 있다. 그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9월 말 ‘난파음악제’에 맞춰 한국에 온다는 것이었다. 9월 28일 인사동에서 만난 홍정임(80) 여사는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사진 속 아이는 약간 움츠려 있었다. 아빠와 눈매가 닮은 아이. 아빠와 엄마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고, 나비넥타이를 맨 아빠는 피곤해 보였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젊은 엄마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홍 여사는 이 사진을 손으로 쓸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홍파동 집 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가 3~4세 때예요. 아이가 아빠 무릎에 손을 얹는 일이야 그저 흔한 일이지만, 저한텐 그 순간이 길지 않았어요.”

홍난파는 딸 정임이가 네 살 때인 1941년 세상을 떠났다. 여든 된 딸은 사진 속 아버지를 응시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그때 이미 병약하셨대요. 소싯적에는 떡 먹기 내기에서 송편 100개도 먹었고 일본에서 공부하실 땐 ‘하숙집에서 밥을 일곱 공기를 먹었더니 다음날 주인이 나가라고도 했다’는데 왜 그리 식사를 못 하셨는지…. 사진을 보면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시잖아요.”

사진 찍을 당시 홍난파는 ‘경성중앙방송국’(지금의 KBS) 양악부(洋樂部) 책임자였다. 한국 최초의 관현악단이 그의 손에 의해 창설됐다. 난파가 경성방송국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1937년 6월 11일부터 8월 21일까지 종로서와 대구교도소에 수감됐었던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아버지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돼 72일간 투옥되셨어요. 수양동우회는 안창호가 조직한 민족운동단체로, 음악인 가운데 검거된 이는 홍난파와 현제명(玄濟明) 선생이셨대요. 어머니(李大亨) 말씀이 아버지가 메주처럼 전신이 퉁퉁 부어 감옥서 나오셨다고 합니다. 입은 옷은 벼룩똥, 빈대똥 천지였고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해요.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도 ‘보리밥, 보리밥’을 외치며 못 드셨고, 밥을 주발 뚜껑으로 반도 못 드셔서 어머니가 한 숟갈만 더 드시라고 간청을 하셨대요.”

난파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홍난파의 둘째 딸 홍정임 여사.

수양(修養)동우회는 1913년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흥사단의 계열 단체다. 1937년 6월 ‘멸망에 함(陷)한 민족을 구출하는 기독교인의 역할’ 등의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배포하다 181명의 회원이 체포된다. 난파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홍 여사의 말이다.

“출옥 후 아버지는 회복이 어려웠다고 해요. 이런 상태로 몇 년을 사시다 가셨어요. 아버지는 흥사단가를 작곡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작곡한 150여 곡 중 3곡이 친일과 관련된 곡입니다. 그 3곡은 경성방송국에 재직할 때 총독부 명령으로 만들었어요. 친일 여부를 분류할 때 ‘직장을 통해 행한 행위는 친일에 해당 안 된다’는 조항이 있지 않나요? 북한에서는 홍난파를 국제적 음악가로 교과서에 소개하고 영화까지 만들었대요. 남한에서만 아버지의 전 생애가 손가락질 받고 있어요.”

그녀는 서러움이 북받치는지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아버지를 잃은 뒤 저는 일본에 원한을 갖고 살아왔어요.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 앓다 돌아가셨으니까요. 아버지가 종로서 유치장에 갇힐 당시 어머니가 임신 8개월 만삭이셨고 그 무렵 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람들이 저를 ‘이완용의 딸’ 취급을 하니까 감당하기 힘들어요. 일제에 아버지를 빼앗기고,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배척당하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홍파동 집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아버지가 홍파동 집을 사서 손수 마루를 다시 까셨다고 해요. 아버지가 화초에 물을 주곤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돌아가신 고모님 말씀이 ‘한번은 홍파동에 들렀더니 네가 꽃을 따서 야단을 맞고 울고 있더라’고 하셨어요.”

1937년 8월 21일 출옥한 홍난파는 4년여 만인 1941년 8월 30일 홍파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아버지가 잡혀가시기 전에 ‘빅터 레코드사’ 음악주임으로 계셨는데 유치장에 계실 때 레코드사 한국인 직원이 찾아와 사표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대요. 아버지는 ‘같은 민족끼리 이럴 수 있나’ 싶어 복수하겠다 맹세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옥 후에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다 떠나는데 원수가 어디 있느냐’며 마음을 돌리셨다고 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그렇게 듣고 싶어 하셨다고 해요. 병석에 계실 때 어머니께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곁에서 음악만 틀어달라’고 하셨대요. 그리고 ‘내가 죽거든 연미복을 입혀서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난파 집안과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

홍난파의 외손인 홍익표·김유순 부부.

홍난파의 외손자 연성대 홍익표(洪益杓) 교수(토목건축과) 내외를 홍파동 ‘홍난파의 집’에서 만났다. 홍 교수는 홍난파의 맏딸(홍숙임)이 낳은 1남2녀 중 장남이다.

“외할아버지는 미국 셔우드 음악대학 시절(1931~32년) 흥사단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단번이 266번이었다고 해요. 흥사단의 원래 명칭은 ‘재미(在美)조선기독유학생모임’입니다. 조선 유학생끼리 모여 기도하고 우리나라 걱정을 안 했겠습니까. 이들이 귀국해 식민지 조선의 포스트에서 자기 역할을 하니 일제가 위협을 느꼈을 겁니다. 외할아버지는 고문에 못 이겨 사상 전향서를 쓴 뒤에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홍 교수의 아내 김유순(金柔純)씨는 남양(南陽) 홍씨 집안에 전해진 이야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홍난파가 출옥하실 때 옷이 피투성이였다고 합니다. 매일 맞다시피 했고 위생 상태가 나빠 폐병에 걸렸고, 미국 유학시절 교통사고로 생긴 늑막염이 감옥에서 도졌다고 합니다. 같이 잡혀온 이들은 고문에 못 이겨 사흘 만에 ‘사상 전향서’를 썼지만 홍난파는 72일이나 버텼어요. 저라면 사흘도 못 버텼을 겁니다. 전향서를 쓰고 나온 뒤에도 총독부가 매일 순사를 보내 일본군가를 쓰라고 졸랐다고 해요. 당시 한번 감옥에 다녀온 이는 치가 떨려 다시는 가지 않으려 했대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 서양음악을 일찍 접한 홍씨 집안 내력이 궁금합니다.

“(홍익표) 난파의 아버지 홍준(洪埻)은 선교사 언더우드의 역관(譯官)으로 17년 동안이나 언더우드의 이웃에 살았어요. 중인인 역관 신분이었으니 서양 문물에 거부감이 없었을 겁니다. 홍준은 (언더우드를 도와) 《신약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참여했다고 해요. 홍난파는 경기도 화성(남양읍)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서울에 왔는데 지금 ‘서울 예원학교’ 자리(서울 정동 1-45번지)입니다. 예원학교 터에서 홍난파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홍난파가 27세 때인 1924년 새문안교회 찬양대원들과 함께. 뒷줄 왼쪽 끝이 홍난파 선생이다.

― 올해가 언더우드 서거 100주년이 됩니다.

“(홍익표)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입니다. 그의 집이 정동에 있었죠. 당시 ‘개화 1번지’였던 정동에는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가 있었고 개화교육의 요람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있었으니 학생들의 노랫소리와 찬송가, 오르간 합주 소리가 끊이질 않았을 겁니다. 그런 음악적 배경을 일찍부터 난파가 체험한 거지요.”

“(김유순) 난파의 형 홍석후는 제중원 출신입니다. 제중원은 1885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학 의료기관이자 세브란스 병원의 모태잖아요. 홍난파는 형을 따라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빠져 1년도 안 돼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형제의 성격이 너무 달랐대요. 형은 남자다웠으나, 동생은 해부(解剖) 수업을 못 견딜 만큼 섬세한 성격이었다고 해요.”

홍준의 2남2녀 중 장남인 홍석후(洪錫厚·1883~1940)는 1900년 제중원에 입학한 ‘세브란스 의전’ 제1회 졸업생이다. 동생 홍난파와 15세 차이. 조선인 최초의 개업의, 이비인후과·안과 의사로 난파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홍석후는 재유(載裕)·은유(恩裕)·성유(盛裕)·지유(志裕)·건유(建裕) 아들 다섯을 두었다. 건유(전 포스코 부회장)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상태다. 어린 시절, 재유~지유에 이르는 4형제가 삼촌인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홍익표) 난파는 형과 15세 차이로 조카 재유는 난파보다 5세 어렸고 은유는 8세, 성유는 10세, 지유는 15세 차이가 났어요. 난파는 조카들과 어울려 음악을 하게 되고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재유·은유는 아버지(洪錫厚)를 따라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한 뒤에도 음악활동을 병행했습니다.”

홍정임 여사에 따르면 홍재유는 만돌린과 색소폰, 은유·성유·지유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한다.

난파의 질부가 한국 최초의 여성 피아니스트 ‘김원복’

난파의 셋째 조카인 홍성유(1908~ 1936)는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난파가 다닌 동경고등음악학원을 졸업하고 1928년 세워진 중앙보육학교(유치원교사 양성학교) 음악과 교사가 됐다. 난파 역시 이 학교 음악주임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홍익표 교수의 말이다.

“홍성유는 한국 최초의 여성 피아니스트 김원복(金元福·1908~2002)과 결혼했습니다. 김원복은 홍난파의 곡 ‘봉숭아’를 작사한 김형준(金亨俊)의 딸이에요. 홍성유는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김원복은 난파와 같은 동경고등음악학원 출신으로 일본 유학시절 홍성유를 만났다. 1930년 귀국해 YMCA강당에서 부부연주회를 가졌다. 홍난파가 결성한 ‘난파 트리오’에 홍성유·김원복이 나란히 참여했으며(《매일신보》 1933년 9월 15일자 2면 참조), 중앙보육학교 교수로 3인이 나란히 재직한 일도 있다. (이후 난파는 경성보육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가 됐다.)

김원복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고 1973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김원복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남 사균(思均)은 상업에 종사했고, 차남 사일(思一)은 치과의사라고 한다.

아들이 없던 홍난파는 형의 넷째 아들 지유를 양자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홍정임 여사는 “그런 얘기가 있으나 호적이나 족보에 양자로 올리지 않았다”고 했고, 홍익표 교수는 “(양자 사실을) 전혀 모른다”며 부인했다.

― 홍난파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외손자 홍익표 교수는 동요 작곡을 첫손으로 꼽았다.

“외할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 중앙보육학교와 경성보육학교 교수를 지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이 부를 노래가 없었대요. 교과서에는 일본 노래가 실렸고 가사도 모두 일본말로 돼 있었으니까요.”

홍난파는 모두 117곡의 동요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동요를 꼽자면 ‘고향의 봄’(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낮에 나온 반달’(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고드름’(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햇볕은 쨍쨍’(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등이다.

음악평론가이자 ‘홍난파의 집’ 운영이사인 신도성(申道成)씨는 홍난파의 동요를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사람들이 음악을 전달하는 중요 수단이 유성기였어요. 홍난파는 콜롬비아 축음기 회사와 자신이 쓴 《조선동요백곡집》 전곡을 레코드로 취입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많은 곡이 서금영·이경숙·최명숙·김영자 등 당시 유명 가수들의 목소리로 음반이 제작됐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널리 전파되었어요. 홍난파가 한국음악사에 남긴 영향이 크지만, 어린이를 위한 동요 110여 곡을 작곡해 전파했다는 것은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공로가 아닐까요?”

“아버지가 설 땅을 찾아드리고 싶다”

1923년 6월 14일 한국 최초로 관현악 반주와 합창을 지휘하고 있는 홍난파.

음악가와 의사가 많았던 홍난파 집안은 현재 1~2세대를 거치며 다양한 영역에서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난파의 딸 홍정임은 소아정신과 의사인 박호현(朴晧炫·85) 사이에 1남1녀를 낳았다. 브라운대(인문계열)와 예일대 비즈니스스쿨을 나온 딸 난송(朴暖松·50)은 미국의 케이블 채널 ‘AMC 네트웍스’의 부사장이다. 이 회사는 선댄스(Sundance)TV, BBC 아메리카, 독립영화 기업인 IFC 등 여러 케이블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 음악전문채널 MTV에서 근무했다고 전한다.

코넬대(도시계획과)와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아들 승균(朴丞均·46)은 미국 건축회사 중견간부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대형 뮤직홀 등을 건축하기도 했다. 홍 여사는 “아이들이 어릴 때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시켰다. 그러나 아이들 의사를 존중해 예술가의 길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제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을까요? 타고난 재능은 있으나 후천적으로 발휘 못 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회에 가면 ‘내 자리가 저 자리인데…’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져요.”

난파의 외손인 홍익표·김유순 부부는 두 아들을 뒀다. 첫째 성지(洪性志·34)는 MBC 기술제작부에서 전자음향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아니지만 카메라·영상·음향 등의 방송기술도 예술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둘째 성후(洪性厚·31)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홍익표 교수는 “어머니(홍숙임)가 피아니스트여서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지만 저는 공학도가 되었고 공대 교수가 됐다. 부모님은 제 의사를 존중하셨다”며 이렇게 말했다.

“음악가 집안이라 할 만큼 많은 음악가가 탄생했으나 이제는 직업군이 넓어졌어요. 제 형제 중에 피아니스트가 있지만 선택을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강제로 음악을 시키면 훗날 힘이 드니까요.”

홍정임 여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단국대 죽전캠퍼스에 ‘난파기념음악관’이 있고, ‘난파 홍영후 전시실’이 있어 선친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어요. 어머니가 생전 단국대에 보관증을 받고 맡기신 것들입니다. 장충식(張忠植) 단국대 이사장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난파기념사업회는 선친의 일부 유품을 찾고 싶어 합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많은 사람이 자주 접할 수 있는 공간에 전시관을 마련하는 게 꿈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최초의 바이올린 곡 작곡 및 연주, 최초의 관현악단 지휘자, 최초의 음악전문지 발행인이셨어요. 이제 그분 업적이 외면당하고, 그 삶을 증언할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어요.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한 그분의 업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믿어요. 아버지가 설 땅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